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미치 앨봄 지음, 공경희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2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이 책꽂이에 꽂혀있은지 한참 되었다. 베스트셀러에는 손이 잘 안가는 나의 이 나쁜 습관 때문에 책을 받아놓고도 한참을 버려두었다. 그런 버릇으로 놓친 책이 수없이 많으면서도, 쉬이 고쳐지지 않는다.  얼마전 우연히 언급된 덕에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나는 내 마음에 새겨두어야 할 수많은 귀한 생각들을 놓쳤을 것이다.

루게릭병에 대해서는 예전부터 들어왔다. 천재 물리학자인 스티븐 호킹이 이 병에 걸려 투병중이고, 그의 모습을 TV에서도 본 적이 있다.  루게릭 즉, 근위축성 측색경화증(amyotrophic lateral sclerosis)은 뇌와 척추에 이상이 생겨 근육이 무력화되고 상실되는 질병이다. 주로 다리에서부터 시작되는 이 병은 서서히 걷지 못하다가,  더 진행되면 몸통근육이 제어를 잃고,  나중에는 숨을 쉬는것마저 튜브로 해야한다. 걸린 사람은 결국 5년이내에 사망하게 되는 무서운 병이다.

이 책은 루게릭병에 걸린 모리교수와 그의 제자 미치와의 화요일마다 이루어지는 수업에 대한 이야기다.  모리교수가 숨을 거둘때까지 있었던 총 14번의 수업은 미치에게도 인생의 전환기가 되었겠지만, 책을 읽는 내 마음에도 문을 두드렸다.

- 내 몸이 천천히 시들어가다가 흙으로 변하는 것을 보는 것은 끔찍하기 짝이 없지. 하지만 작별 인사를 할 시간을 갖게 되니 한편으로는 멋진 일이기도 해. 누구나 그렇게 운이 좋은 것은 아니거든.

죽음을 눈앞에 둔다면 어떤 심정일까. 나라고 죽지 않을리는 없겠지만, 정말로 그 사실을 인식하고 있는 건 아닌 듯하다. 가끔씩 죽음에 대해 상상을 하곤 하지만, 모리교수가 말하는 죽음에의 직면은 아니었다.

- 자기가 죽게 되리라는 사실을 깨달으면, 매사가 아주 다르게 보이네. 어떻게 죽어야 좋을지 배우게. 그러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도 배우니까.

젊다고 해서 죽음이 먼 것은 아니다. TV를 보면 나오는 각종 사고들이 나를 피해간다는 보장은 없으니까. 죽음을 대비하고 사는 삶이라면 집착도 욕심도 버릴 수 있으리라.  매 순간을 소중히 여기고, 충실할 수 있으리라. 모리교수는 그걸 전하고 싶었을 것이다.

- 삶에서 의미를 찾았다면 더 이상 돌아가고 싶지 않아. 앞으로 나가고 싶어하지. 더 많은 것을 보고, 더 많은 일을 하고 싶어하지. 아마 65살이 되고 싶어 견딜 수 없을걸.

나이를 먹는다는것이 괴로운 일이 아니라고 한다. 오히려 그 나이속에 10살의 나도 20살의 나도 30살의 나도 존재한다고 한다. 현재의 삶에 충실하다면, 후회없는 시간을 보낸다면 나이 먹는것이 두려울 일이 뭐가 있으랴. 모리교수가 죽어가면서도 끝까지 행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그것이었다.

눈물을 줄줄 짜내는 책은 아니었다. 감정을 자극하기보다는 가슴에 호소하는 글이었다.  사랑과 용서를 바라는 모리 교수의 말씀이 언제까지고 여운으로 남는것은, 그의 말이 진심에서 우러나왔기 때문일것이다. 아니, 어쩌면 욕심에 똘똘 뭉친 내 정곡을 찌르는 말이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천천히 시간을 들여 읽어야 할 책이다. 모리 교수의 명복을 빈다.

- 우리가 서로 사랑하고, 우리가 가졌던 사랑의 감정을 기억할 수 있는 한, 우리는 진짜 우리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잊혀지지 않고 죽을 수 있네.  죽음은 생명이 끝나는 것이지, 관계가 끝나는 것이 아니네.


댓글(5)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인터라겐 2005-04-28 1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이책 덤으로 받았더랬죠....이책 보면서 사는것에 대해 정말 감사했는데...또 이렇게 쉽게 잊으려고 하네요.... 다시 한번더 마음을 다잡고서...

날개 2005-04-28 1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증정을 많이 했던가요? 저도 증정본인데.. 그래서 더 손이 안갔었죠..^^;;

하루(春) 2005-04-28 16: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글이 엔진역할을 했나요? 잘 읽었습니다. 저도 다시 읽고 싶은 충동이 듭니다. 다만, 읽어야 할 책이 많은 관계로... ㅎㅎ~ 근데, 증정을 많이 했나 보죠? 저희집의 2권은 모두 돈 주고 산 건데.

날개 2005-04-28 16: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습니다. 하루님..^^ 님 때문에 읽었습니다..ㅎㅎ

날개 2005-05-01 1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말씀들이 참 많은 책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