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라 에스쿠데로(VILLA ESCUDERO)
아침 일찍 마닐라를 출발하여 차창 밖의 시골풍경을 감상하다가 한숨 자고 일어나니, 어느덧  빌라 에스쿠데로에 도착했다. 커다란 방갈로 같은 곳에서 조식이 포함된 입장권을 끊고, 먼저 에스쿠데로 가족박물관을 관람하기로 했다.  커다란 저택 같은 곳에 금빛 찬란한 종교 예술품부터 스페인 시대의 것으로 보이는 역사유물뿐만 아니라, 필리핀의 야생동물이나 해양동물 표본, 동양의 도자기 및 일본의 의상, 우리나라의 유물 몇 점 등이 다양하게 보관되어 있다.

여기 박물관에 왼쪽의 사진처럼 아이를 안고 있는 여왕의 금빛찬란한 모습의 인형들이 많다.

 

 

 

 

 

 

 

 

 

 

 

 

짧은 시간 안에 많은 것을 보려니 마음만 조급해져서 사실 많이 보지 못했다. 몰래 찍느라 사진들은 흔들린 게 많아서, 몰래 찍은 벌이려니 한다. ^^;;

 박물관을 나와 카라바우(VARABAO:물소)가 끄는 수레를 지나, 폭포물이 발 담그고 필리핀의 전통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식당을 찾아서 한참을 걸었다. 


 이 사진을 찍는 나의 뒷부분엔 인공적으로 조경된 듯한 라바신폭포(LABASIN WATERFALLS)가 있다.  카레맛이 나는 음식부터 우리나라 잡채 비슷한 것까지 부페식으로 담아 물 위에 마련된 식탁에 앉아 발목까지 차는 물에 발을 담그고 먹는 맛이 새롭다.

 

 

 

 

 

 

 

 

 

오후 2시쯤엔 민속무용 공연도 볼 수 있는데, 신애 말로는 상당히 잘 짜여지고 레파토리도 다양한 편이라고 한다. 반복되는 왈츠리듬에 좀 졸리기도 했지만.


공연이 끝난 뒤, 아이들과 함께 원진


아이들과 함께 웃고 있는 신애


민속공연장을 나오면서..비에 촉촉히 젖은


꽃 든 아가씨...김치~~

내가 생각해도 공연의 레파토리는 다양한 편이었다. 특히 긴 대나무 장대를 이용한 춤은 우리가 하던 고무줄 놀이를 연상하게 해서 왠지 흥겨웠다.  우리나라 중고생쯤 보이는 남자애들이 딱딱한 코코넛 열매를 가슴과 팔, 다리, 엉덩이에 대고 부딪혀가며 추는 춤은 역동적이고 소리가 주는 경쾌함에 빠져들게 했다. 수영복이 있으면 천연풀장에서 수영을 즐겨도 좋을 것 같고, 민속무용공연장에서 주위를 흐르는 긴 호수에서 대나무 뗏목을 타보는 것도 좋겠다.


민속무용공연장에서 바라본 호수-멀리 조그맣게 뗏목이 보인다

 

어메이징 게이 쇼

극장 주인이 한국인이라는 그 곳에서 어메이징 게이 쇼라는 것을 태어나서 처음 보았다.  빌라 에스쿠데로에서 보았던 민속무용과 비슷한 공연도 있었지만, 무대의 화려함은 비교도 안되게 눈이 부실 지경이었다. 설사 그것이 쇼를 위한 것이었다고 할지라도, 곱게 화장하고 아름다와지려고 노력하는 그들의 모습은 내가 여자로서 그동안 얼마나 나태했던가를 반성하게 하고 부끄럽게 했다. 물론 외적인 미와 함께 내적인 미도 중요하다고는 하지만 말이다.



1시간 남짓 화려한 조명과 무대, 의상에 넋이 빠지고, 흥겨운 음악에 취해서 정신없이 머리를 흔들어대는 사이 시간은 후딱 지나가서 어느새 마칠 시간이 되었다. 마지막 인사를 한 뒤, 게이 댄서들은 무대 뒤로 나와 손님들과 포즈를 취해 사진모델이 되어주는데, 그 댓가로 팁을 받아 호르몬 주사를 맞거나 수술을 하는데 보탠다고 한다.  나는 훌라춤을 추던 댄서와, 신애는 화려한 나비같은 의상을 입은 댄서와, 원진은 기모노 의상을 입은 뚱뚱한 댄서와 즐겁게 사진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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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쩍! 눈이 뜨인다.  그녀들은 아직 잠에 빠져있고, 내 부실한 몸뚱이는 밤새 열기에 조금 시달렸는지 땀으로 약간 끈적거린다.  잠시동안 정신을 추스리며 누워있다가 선선한 아침바닷바람을 쐬고 싶은지 왠지 근질거려서 서둘러 디카를 들고 방을 나섰다. 바다도 그제서야 부스스 눈을 뜨는 것 같다. 


오렌지 클럽 앞 바닷가-고기잡는 어부

파도소리를 들으면서 한적한 바닷가를 걷는다. 부드러운 아침 햇살이 공기 속에 슬며시 퍼지고, 멀리 작은 부둣가에서 고기잡는 어부의 모습이 한폭의 풍경화같이 아름답다.  오렌지 다이버 클럽은 미술을 전공하신 사장님이 손수 만드신 곳이다. 곳곳에 그려져 있는 다이버나 물고기 벽화들 역시 그분의 솜씨다.


오렌지 클럽 앞뜰


낭만적인 열대의 밤을 보냈던 그 자리

오렌지클럽에 멀지 않은 작은 부둣가에 배 한척이 묶여 있다. 우리가 다이빙을 하러 갈 때 탄 배다.  배 사진을 찍으러 가까이 가다가 물이끼에 미끄러졌다. 그 와중에도 카메라만은 살리겠다고 팔꿈치가 까진 것도 몰랐다. 자꾸만 샌들이 미끄러져서  무릎으로 엉금엉금 기어 올랐다.  꼴이 말이 아니었지만, 웃음이 나왔다.  혼자서만 즐기기엔 너무 아까워~~  괜스레 자고 있는 애들을 깨웠다. 

아침을 먹고 배를 타기 전에 잠수복으로 갈아 입었다.  배만 볼록 튀어나온 모양이 꼭 텔레토비같다. 게다가 이때를 대비해서 한국에서 공수해간 캡짱 모자를 쓰고 선글라스를 내려쓴 내 모습은 내가 상상해도 웃긴다. 크크크. 점심때 먹을 먹거리를 기다리는데 햇볕이 따갑고 두꺼운 잠수복을 입고 있으니 조금 후덥지근하다. 필리핀 다이버가 오리발에 바닷물을 담아 목덜미에 부어줬다. 아! 목에서 등줄기를 지나 다리끝까지  타고 내려오는 시원함이란!! 소스라친다.  배는  전체적으로 길죽한 모양에 양 옆엔 균형을 잡기 위한 지지대가 달려있다.  이윽고 배는 출발하고 시원한 바닷바람이 뺨을 스친다.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의 포말이 뺨에 스치는 기분이 상쾌하다. 2,30분쯤 달려 어느 한적한 바닷가에 도착했다. 필리핀 원주민의 원두막같다.  그늘진 원두막 아래 나무의자에 누워 있으니 산들거리는 바람이 딱 기분좋을 정도다. 허니랑 신애랑 먼저 잠수를 시도한다.  수영을 전혀 못해서 겁이 난다던 미니는 왠걸 제일 오랫동안 바닷속에 머물러 있다. 원진은 생각보다 일찍 물속에서 나온다. 귀가 뚫리지 않아 두려웠단다.  마지막으로 내가 들어갔다. 두번이나 물에 빠져 죽을 뻔한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 나는, 처음에 물 속으로 머리를 집어넣는 것이 너무 두려웠다. 나보다도 덩치가 작은 다이버의  손을 꼭 잡고 머리를 물 속에 겨우 넣는데, 몸을 제대로 가눌 수가 없으니 순간 호흡기로 숨을 쉬는 걸 까먹을 정도로 당황했다. 코를 막고 귀를 뚫리게 만드는 일은 잘된 건지 귀가 아프진 않았지만, 아플까봐 계속 두려웠다.  바다속은 평온했다. 거기의 시간은 바깥세상과는 달리 느릿하게 흐르는 것 같았다. 바닥에 깔려 있는 돌들의 이끼들을 보면서 조금씩 앞으로 나아갔지만, 뜻대로 몸이 움직여주질 않아 여전히 두려웠다. 다이버의 오케이 신호에 나도 모르게 오케이 신호로 답했지만, 사실 두려움에 제 정신이 아니었다.   결국 얼마 가지 못하고 다시 되돌아왔다.  낭패감과 동시에 안도감이 들었다. 

점심을 먹고, 다시 한번 다이빙을 시도하기로 했다. 이번엔 배에서 바로 잠수를 시도하는 거다. 사실 초보들에겐 힘든 일이긴 했지만. 그런데 잠수할 장소에 배를 세우자 높은 파도에 배가 기우뚱거린다. 배가 금세라도 뒤집어질 듯 출렁거려서 결국 포기하고 리조트 앞 바다에서 한번 더 시도하기로 했다. 짙은 남청빛 바다가 꿈틀거린다. 내가 타고 있는 배가 난파한다면 난 꼼짝없이 죽을테지. 깊은 바닷속으로 내 몸은 한없이 가라앉을테고. 어떤 느낌일까. 죽음은, 내 영혼은 평화로울까. 숨이 막힐 것 같은, 폐속을 차 오르는 바닷물을 시시각각 느끼면서 공포감에 사로잡히지는 않을까...... 파도의 움직임을 말없이 바라보다가 눈을 감고 바다의 움직임에 몸을 맡긴다. 좌우로 위아래로 내 머리와 몸은 출렁거린다. 문득 눈을 떠보니, 그들은 웃고 있다. 내가 조는줄 알았단다. 씨익 웃어준다. 어느 새 난 파도가 되어 깊고 푸른 바다를 떠돌고 있다.  

리조트 앞바다에서 다시한번 다이빙을 시도하기로 했다. 파도가 꽤 높았지만, 바다 속 세상은 오히려 평화롭다고 한다. 난 용기 내어 두번째 시도를 했다.  결과는 실패작이었다.  물 속으로 머리를 집어넣는 것은 여전히 무서웠고, 높은 파도 탓인지 몸을 더욱 가눌 수 없어서 두려움은 더 커졌다. 난 엉겹결에 호흡기를 빼버렸다. 코로 숨을 쉬고 싶다는 강렬한 열망에 정신을 잃었다. 끔찍했다. 실패했다는 자괴감과 비겁함에 분노를 느꼈다. 분해서, 눈물이 나왔다. 그 자리에 주저앉아 한참을, 뜨거운 햇살아래 우두커니 바다만 바라보았다......

 다이빙만 25년을 하셨다는 오렌지클럽 사장님이, 파도가 거울처럼 잔잔해져서 마치 바다가 호수같아질때 다시 한번 시도해보라고 힘을 주셨다. 과연 나도 이 공포증을 극복하고, 그 아름다운 푸른빛 세상을 볼 수 있을까.  다이빙을 하는 사람들만이 느낄 수 있다는 그 공감대와 동질감을 나도 느낄 수 있을까......

 


오렌지 클럽의 해넘이

물에 대한 공포감도 내 식욕을 꺾지는 못한 듯 했다.  참치회의 감칠맛이 혀끝을 감돌고, 얇은 만두피같은 걸로 싸여있는 바나나롤은 겉은 아삭하고 속은 입안에서 살살 녹을만큼 맛있다.  망고쥬스도 좋아하지 않는 내가 반해버린 망고의 부드러움.  우리나라 고구마 비슷한 것이 있는데, 우리 고구마보단 단맛이 덜했다.


오렌지클럽 최후의 만찬-참치회와 고구마?


살살녹는 바나나롤-옆의 팩소주를 생각해보면 크기를 짐작할 수 있다. 크크크


즐거운 추억을 함께 한 우리들


왼쪽에서부터 원진,신애,미니, 그리고 뒷모습은 오렌지 사장님 ^^

서툰 솜씨탓에 담아낸 모습들이 뚜렷하지 않고 어둡게 나와서 우리 지인들은 서운할지 모르겠지만, 난 외려 그 어슴푸레하고 아스라한 느낌이 좋다. ^^


마지막 노을- 오른쪽 푸른 하늘 위에 어슴프레 보이는 하얀 점이 바로 달(moon)이다

 

오렌지빛 아름다운 노을을 뒤로 하고 마닐라로 돌아왔지만, 그 밤을 그대로 보낼 순 없었다. 그래서 내가 평상시에 노래부르던 나이트클럽 비스무레한 바에서 마지막을 보내기로 했다. 이름하야 '하바나 클럽' 오!! 이름부터 근사하고 뭔가 그럴듯한 냄새를 풍기지 않는가!  쿠바의 하바나 나이트를 떠올리게 하는 하바나 클럽. 크크크.  귓가에 살사 음악이 흘러들어오는 순간부터 내 가슴은 하릴없이 두근두근 뛰기 시작했다. 음악이 날 부르는 거다.  바 내부는 그리 크지는 않았는데, 벌써부터 살사 춤에 정신없이 빠져있는 사람들이 쌍쌍이 공간을 차지하고 춤을 추고 있었다. 다행히도 우린 들어가자마자 자리를 잡고 앉아서 맥주 한 병씩 시켜 얼음과 함께 들이키면서 슬슬 분위기에 취하기 시작했다. 머리 희끗한 할아버지는 한 젊은 여성과 춤 삼매경에 빠져있고, 아마도 쿠바 사람임이 틀림없을 듯한 역시 머리 희끗한 흑인 할아버지는 음악에 맞춰 자유롭고 능숙하게 살사리듬을 타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뒷쪽 구석에 있던 게이 오빠 한 쌍이 나와서 능숙하기 이를 데 없는 쇼맨쉽-눈을 마주치면 윙크를 하거나 우아하게 살짝 머리를 넘기는-을 발휘하면서 빠른 스핀과 다소 과장된 듯 하지만 지극히 전문가다운 폼을 보란듯이 선보이는 게 아닌가.  아! 그들이 무대에 나타나면 다른 이들은 빛을 잃었다.  내 앞에 혹은 내 뒤에 앉아 있던 남자는 춤을 추고 싶지만 파트너가 없는 듯 이러저리 눈치를 보면서 가슴 속 열망을 조금씩 비치고, 약간 정신 나간 듯한 한 아줌마는-아마도 노래를 따라 부르는 걸로 봐선 스페인이나 남미쪽의 사람일 듯한- 내가 보기엔 조금 이상한 리듬이지만 충실하게 음악을 느끼는 스텝을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싶어 안달했다.  우리들도 슬슬 음악을 느끼고 분위기에 취해서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잠시 후에 금발머리의 아가씨가 나와서 브라질 삼바를 추기 시작하면서 바의 열기는 절정을 향해 치닫기 시작했고, 그 열기가 어느 정도 가라앉고 게이 커플을 비롯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나둘씩 빠져나가서 한산해질 무렵, 브라질 댄서 출신이라던 그 아가씨의 룸메이트가 우리 자리로 와서 그 브라질 댄서가 원진이가 참 예쁘다고 했다면서 우리에게 말을 걸고 몇가지 살사스텝을 가르쳐 주었다.  드디어 미니를 제외한 우리 일행은 모두 몸을 일으켜 그녀가 가르쳐 주는 스텝을 밟으면서 흥겨워했다. 허니는 한국으로 돌아가면 꼭 살사댄스를 배워야겠다면서 깊은 관심과 굳은 결의를 표명했고, 우린 아쉽지만 그 곳을 마지막으로 미니와 허니에게 이별을 고했다.  그 밤의 열기를 가슴 깊이 간직하며 언젠가 다시 만날 날을 기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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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9일 아침이 밝다.

눈 떠서 제일 먼저 든 생각. 얼른 씻고 올라가서 호텔 조식이란 걸 먹어봐야지. 크크  스카이라운지에 있는 호텔 뷔페 음식은 뭐, 좀 느끼하긴 했지만 그럭저럭 먹을 만했다. 한국에서도 먹을 수 있는 것 빼고 못 먹어본 걸 먹으려고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여기랑 별반 차이도 없는 것 같다.   원진의 뒷쪽으로 마닐라베이가 보인다. 바다다! 좀 촌스런 행동이지만 원진을 모델삼아 사진 한 방 찰칵!    한국사람들이 꽤 많은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이 호텔은 적은 편이란다.  아침 먹고 시원한 아이스워터-원진의 느끼한 속을 달래주는-까지 들이키고 방으로 돌아와 신애를 기다렸다.  심심해서 텔레비젼을 켰는데 광고가 나온다.  우리나라의 홈쇼핑 비슷한 건데, 우리나라와는 틀리게 여드름연고나 흉터를 없애는 연고같은 게 많다. 분명 오래되어 보이는 흉터를 감쪽같이 없애준다는 연고 광고를 보면서 사기~~라고 소리치며 웃었다.  음... 화장품 선전이었나... 커버덤같은? ㅋㅋㅋ   훗날 들은 얘기에 의하면 여기 필리핀 사람들은 얼굴 하얗고 피부 매끈하고 까만 긴 생머리에 대한 환상같은 게 있단다.  나도 필리핀에서는 피부좋은 미인축에 속할까?  ^^

기다리다가 혹시나 싶어 로비에 나갔는데 다행히도 신애를 만났다.  나와 원진이 가져온 달러를 호텔 옆 환전소에서 환전하고, 봉고차에 몸을 실고 '팍상한 폭포'로 향했다.  우리에겐 두 명의 동행자가 생겼는데 신애의 친구 미니와, 그녀의 동생 허니. 허니는 웃는 모습이 귀여운 소년(?)이었는데, 처음엔 신애도 미니도 허니-내 귀엔 꼭 그렇게 들렸다-라고 불러서 난 진짜 이름이 '허니'인 줄 알았다. 푸하하하  미니의 원래 이름은 선민, 허니의 원래 이름은 종헌이라고 하는데, 우린 그 '허니'란 발음이 주는 느낌이 넘 맘에 들어서 계속 '허니'라고 느끼하게-특히 내가 ^^;- 불러대며 좋아했다.  그때마다 허니는 싱긋 웃어주었지만, 속으론 얼마나 느끼하고 민망했을지...크크크 그래도 좋다!!  


팍상한 입구-왼쪽부터 신애,허니,원진

팍상한 폭포를 올라가기 위해선 두 장정(?)의 힘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우리가 탄 방카라는 작은 배는 아마도 부자간에 모는 것 같았는데, 나이 지긋하게 든 깡마른 아저씨가 앞에서 끌고, 역시나 깡마른 아들이 뒤에서 밀었다. 원래는 두 명 정도가 손님으로 타는데, 우린 한 명만 따로 탈 수가 없어서 세 명이 함께 탔고, 그 중에 몸무게가 만만찮은 내가 끼여 있었으니, 두 장정의 고초는 말할 것도 없겠지? 두 남자는 어찌나 힘들어 하는지, 계곡을 거슬러 올라가는 내내 미안한 마음에 몸둘 바를 모르겠더라. 혹자는 그들이 두 사람을 태우고 올라가도 힘들다는 소리를 하긴 마찬가지라고 하더라만. 암튼 배 바닥이 끌리는 소리에도 가슴이 벌렁거리는 것이었다. 히히히


배를 타고 강을 거슬러 올라가며... 빡빡 밀은 머리가 우리배를 지휘하는 아저씨~~


이게 플래툰, 지옥의 묵시록 등의 배경이 되었다고 하는 바로 그 팍상한 폭포

폭포가 생각보단 크진 않았다.  위의 사진에 나와 있는 뗏목을 타고 폭포 속으로 들어간다.  폭포의 쏟아지는 물을 정통으로 맞으면 엄청 따갑다는데, 우린 옷이 흠뻑 젖어도 왠지 즐겁기만 했다.  나와 허니는 디카를 속에 품고 행여 물이라도 들어갈까 전전긍긍하느라 제대로 맞진 못했지만 그래도 신났다. 하하하.    폭포 속에서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전설도 있다는데, 내가 소원을 빌었던가? 기억나질 않는다.  내려오면서 빌었던 것 같기도... ^^;;   내려오는 길은 한결 가뿐했다.


늦은 점심을 먹었던 길 옆 풍경... 논(?) 한가운데의 홀로 서 있는 나무가 인상적이었다.

정말 맛있는 점심이었다.  신애가 전날부터 열심히 준비한 맛있는 반찬이랑 밥을 먹으면서 행복했다.  필리핀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패스트푸드점 '졸리비'의 야외테이블에 가져간 음식들을 펴놓고, 옆에서 누가 뚫어져라 쳐다보든 말든 열심히 파리 쫓아가며 먹는 맛이란... 정말 꿀맛이었다!     물론 자리값으로 졸리비에서 음료수를 사는 정도의 매너는 기본이고.  히히히.  다시 생각해도 침이 흐른다.  ^^

팍상한에서 아닐라오의 '오렌지 다이브 리조트' 로 가는 길엔  즐거운 수다꽃이 피었다.  이런 저런 얘기에서 영화배우-특히 남자배우 이야기에 열을 올리기도 하고, 정말 우연히도 똑같은 디카를 가지고 있는 허니와 사진 이야기로 꽃을 피우기도 했다.  어둑어둑해질 무렵 우리의 두번째 밤을 보낼 '오렌지 다이브 리조트'에 도착했다.  2층 카페에선 분위기 있는 음악이 흘러나오고, 바로 눈 앞엔 검은 바다가 춤추고 있었다. 짐을 대충 풀고 나서, 키가 훤칠하신 한국인 사장님이 차려주신 저녁 만찬을 눈앞에 둔 순간,


오렌지 클럽의 저녁만찬1


오렌지 클럽의 저녁만찬2

우린 상 하나 가득 차려진 푸짐한 해산물에 김치찌개에 감동하고 말았다.  기름기가 살살 흐르는 닭 바베큐에 마늘양념된 조개구이, 맛있는 양념속으로 가득찬 통오징어, 커다란 게는 말할 것도 없고...   우리는 흐흐흐 침 흘리며 정신없이 먹어댔다.   늦은 점심 때문에 더 먹지 못함을 탓하면서...

맛있는 저녁 만찬 후, 은근한 조명아래 까만 밤바다를 바라보며 음악을 즐기고 바람을 즐겼다.  바람은 자유로운 기운을 품고 내 가슴을 풀어헤치고, 빗장 열린 마음은 향기로운 커피의 부드러움으로 가득찼다. 하늘엔 별이, 귓가엔 쏴아 밀려드는 파도소리와 열대의 향취를 돋우는 감미로운 음악이, 그리고 우리들  사이엔  뭔가 친밀하고 따뜻한 기운이 오고 가는 듯한, 낭만적이고 매혹적인 열대의 밤이었다.


도마뱀, 빛에 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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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8일 저녁 8시 30분 마닐라행 비행기를 타다.

기내식 나오는 비행기 처음 타봤다.  누구 말처럼 이쁜 처자들이 방긋방긋 웃으면서 반겨준다.  저녁도 걸러 배고픈 참에, 기내식으로 나오는 비프 스테이크가 연하고 쫄깃하니 맛있다.  와인도 한 잔 곁들이고, 차도 주는 대로 넙죽넙죽 받아 마시고.  배가 불러서 잠이 올 터인데, 말똥말똥하다.  창밖을 봐도 별빛 하나 없이 까만데, 멀리 비행기 날개 끝에 달린 불빛 하나만 껌뻑거린다.  겨우 깜빡 잠들었는데, 아! 갑자기 귀가 떨어져 나갈듯 쑤시고 아파서 잠이 깼다. 마닐라에 가까와져서 고도 조정하느라 그런 건지는 알겠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더 아프다. 식은 땀이 흐른다. 조금 과장을 보태서 스튜어디스를 불러서 살려달라고, 약이 있으면 달라고 애원하고 싶은 맘은 굴뚝이지만, 다른 사람들은 모두 멀쩡한 것 같아 차마 쪽팔려서 부르지 못하고 식은 땀을 뻘뻘 흘리면서 열심히 침만 꼴딱 삼켰다.

드디어 내렸다. 가슴이 두근거린다. 고도 적응이 채 되지 않아 멍멍한 정신으로 입국신고서를 작성하고 밖으로 나오니, 어디가 어딘지도 모르겠고 우리를 마중나오기로 한 아리따운 아가씨도 보이지 않는다.  마침 나에게 있던 천 페소로 백 페소짜리 공중전화카드를 사서 공중전화기 앞으로 가려는데, 뒤에서 반갑게 부르는 소리, 그녀다. 앗싸! 이제부터 시작이다.

4박의 일정 중에 3박을 묵게 될 우리의 호텔, Pan Pacific Manila Hotel은 별 다섯 개짜리 특급호텔들 중에서도 신애가 특별하게 신경써서 고른 곳이다. 호텔이란 곳에서 자보는 게 처음인 나로서는 조금 떨리고 괜스레 쭈뼛하면서도 은근히 기분이 좋다. 내부시설은 아담하고 깔끔하다. 동갑내기 소년에게서 부탁받은 선물들과 우리가 준비해간 선물들로 잠시동안 신애를 즐겁게 하고, 내일을 위해 잠시 헤어졌다. 시원하게 샤워하고 영화에서만 보던 가운을 걸치고 푹신한 침대위에 누웠는데, 이상하게도 쉽게 잠이 오지 않는다. 옆 침대에 있는 원진은 금새 곯아떨어졌는데 난 한참을 뒤척이다가 잠이 들었다. 가슴이 너무 설레여서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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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nerist 2004-08-27 1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쳇... 보고싶어라... 아리따운 동갑내기 아가씨. ㅜㅡ

무탄트 2004-08-30 1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행기 쓰다 말고, 다른 일 하느라 급하게 저장하면서 설마 누가 봤겠으 했는데, 그새 네가 봐버렸구나. 우리의 여행 이야기와 더불어 너의 아리따운 동갑내기 아가씨 이야기를 시간 나는 대로 틈틈이 올릴테니 즐겨 보렴. ^^
 

아무리 생각해봐도, 난 비평가가 되지 못할 거다.

책을 읽든 영화를 보든, 난 전체 이미지를 떠올리고 그 느낌을 기억할 뿐,  자세하고 사소한 내용까지 기억하고 파헤쳐서 설명하고 비평하는 것은 나에겐 무리가 아닐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난 그렇다. 

남들이 비평해 놓은 것은 감탄하며 잘 읽으면서, 막상 내가 비평이랍시고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생각하려고 하면, 이건 어설프고 빈약하기 그지 없어서 제 얼굴에 침 뱉는 일이 되기 쉽상이다. 오죽하면 '평'자 붙은 독자서'평'까지도 두려워해서 단 한편의 글도 올린 적이 없으니, 대체 나의 머릿속 구조는 어떻게 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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