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9일 아침이 밝다.
눈 떠서 제일 먼저 든 생각. 얼른 씻고 올라가서 호텔 조식이란 걸 먹어봐야지. 크크 스카이라운지에 있는 호텔 뷔페 음식은 뭐, 좀 느끼하긴 했지만 그럭저럭 먹을 만했다. 한국에서도 먹을 수 있는 것 빼고 못 먹어본 걸 먹으려고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여기랑 별반 차이도 없는 것 같다. 원진의 뒷쪽으로 마닐라베이가 보인다. 바다다! 좀 촌스런 행동이지만 원진을 모델삼아 사진 한 방 찰칵! 한국사람들이 꽤 많은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이 호텔은 적은 편이란다. 아침 먹고 시원한 아이스워터-원진의 느끼한 속을 달래주는-까지 들이키고 방으로 돌아와 신애를 기다렸다. 심심해서 텔레비젼을 켰는데 광고가 나온다. 우리나라의 홈쇼핑 비슷한 건데, 우리나라와는 틀리게 여드름연고나 흉터를 없애는 연고같은 게 많다. 분명 오래되어 보이는 흉터를 감쪽같이 없애준다는 연고 광고를 보면서 사기~~라고 소리치며 웃었다. 음... 화장품 선전이었나... 커버덤같은? ㅋㅋㅋ 훗날 들은 얘기에 의하면 여기 필리핀 사람들은 얼굴 하얗고 피부 매끈하고 까만 긴 생머리에 대한 환상같은 게 있단다. 나도 필리핀에서는 피부좋은 미인축에 속할까? ^^
기다리다가 혹시나 싶어 로비에 나갔는데 다행히도 신애를 만났다. 나와 원진이 가져온 달러를 호텔 옆 환전소에서 환전하고, 봉고차에 몸을 실고 '팍상한 폭포'로 향했다. 우리에겐 두 명의 동행자가 생겼는데 신애의 친구 미니와, 그녀의 동생 허니. 허니는 웃는 모습이 귀여운 소년(?)이었는데, 처음엔 신애도 미니도 허니-내 귀엔 꼭 그렇게 들렸다-라고 불러서 난 진짜 이름이 '허니'인 줄 알았다. 푸하하하 미니의 원래 이름은 선민, 허니의 원래 이름은 종헌이라고 하는데, 우린 그 '허니'란 발음이 주는 느낌이 넘 맘에 들어서 계속 '허니'라고 느끼하게-특히 내가 ^^;- 불러대며 좋아했다. 그때마다 허니는 싱긋 웃어주었지만, 속으론 얼마나 느끼하고 민망했을지...크크크 그래도 좋다!!

팍상한 입구-왼쪽부터 신애,허니,원진
팍상한 폭포를 올라가기 위해선 두 장정(?)의 힘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우리가 탄 방카라는 작은 배는 아마도 부자간에 모는 것 같았는데, 나이 지긋하게 든 깡마른 아저씨가 앞에서 끌고, 역시나 깡마른 아들이 뒤에서 밀었다. 원래는 두 명 정도가 손님으로 타는데, 우린 한 명만 따로 탈 수가 없어서 세 명이 함께 탔고, 그 중에 몸무게가 만만찮은 내가 끼여 있었으니, 두 장정의 고초는 말할 것도 없겠지? 두 남자는 어찌나 힘들어 하는지, 계곡을 거슬러 올라가는 내내 미안한 마음에 몸둘 바를 모르겠더라. 혹자는 그들이 두 사람을 태우고 올라가도 힘들다는 소리를 하긴 마찬가지라고 하더라만. 암튼 배 바닥이 끌리는 소리에도 가슴이 벌렁거리는 것이었다. 히히히

배를 타고 강을 거슬러 올라가며... 빡빡 밀은 머리가 우리배를 지휘하는 아저씨~~

이게 플래툰, 지옥의 묵시록 등의 배경이 되었다고 하는 바로 그 팍상한 폭포
폭포가 생각보단 크진 않았다. 위의 사진에 나와 있는 뗏목을 타고 폭포 속으로 들어간다. 폭포의 쏟아지는 물을 정통으로 맞으면 엄청 따갑다는데, 우린 옷이 흠뻑 젖어도 왠지 즐겁기만 했다. 나와 허니는 디카를 속에 품고 행여 물이라도 들어갈까 전전긍긍하느라 제대로 맞진 못했지만 그래도 신났다. 하하하. 폭포 속에서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전설도 있다는데, 내가 소원을 빌었던가? 기억나질 않는다. 내려오면서 빌었던 것 같기도... ^^;; 내려오는 길은 한결 가뿐했다.

늦은 점심을 먹었던 길 옆 풍경... 논(?) 한가운데의 홀로 서 있는 나무가 인상적이었다.
정말 맛있는 점심이었다. 신애가 전날부터 열심히 준비한 맛있는 반찬이랑 밥을 먹으면서 행복했다. 필리핀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패스트푸드점 '졸리비'의 야외테이블에 가져간 음식들을 펴놓고, 옆에서 누가 뚫어져라 쳐다보든 말든 열심히 파리 쫓아가며 먹는 맛이란... 정말 꿀맛이었다! 물론 자리값으로 졸리비에서 음료수를 사는 정도의 매너는 기본이고. 히히히. 다시 생각해도 침이 흐른다. ^^
팍상한에서 아닐라오의 '오렌지 다이브 리조트' 로 가는 길엔 즐거운 수다꽃이 피었다. 이런 저런 얘기에서 영화배우-특히 남자배우 이야기에 열을 올리기도 하고, 정말 우연히도 똑같은 디카를 가지고 있는 허니와 사진 이야기로 꽃을 피우기도 했다. 어둑어둑해질 무렵 우리의 두번째 밤을 보낼 '오렌지 다이브 리조트'에 도착했다. 2층 카페에선 분위기 있는 음악이 흘러나오고, 바로 눈 앞엔 검은 바다가 춤추고 있었다. 짐을 대충 풀고 나서, 키가 훤칠하신 한국인 사장님이 차려주신 저녁 만찬을 눈앞에 둔 순간,

오렌지 클럽의 저녁만찬1

오렌지 클럽의 저녁만찬2
우린 상 하나 가득 차려진 푸짐한 해산물에 김치찌개에 감동하고 말았다. 기름기가 살살 흐르는 닭 바베큐에 마늘양념된 조개구이, 맛있는 양념속으로 가득찬 통오징어, 커다란 게는 말할 것도 없고... 우리는 흐흐흐 침 흘리며 정신없이 먹어댔다. 늦은 점심 때문에 더 먹지 못함을 탓하면서...
맛있는 저녁 만찬 후, 은근한 조명아래 까만 밤바다를 바라보며 음악을 즐기고 바람을 즐겼다. 바람은 자유로운 기운을 품고 내 가슴을 풀어헤치고, 빗장 열린 마음은 향기로운 커피의 부드러움으로 가득찼다. 하늘엔 별이, 귓가엔 쏴아 밀려드는 파도소리와 열대의 향취를 돋우는 감미로운 음악이, 그리고 우리들 사이엔 뭔가 친밀하고 따뜻한 기운이 오고 가는 듯한, 낭만적이고 매혹적인 열대의 밤이었다.

도마뱀, 빛에 혹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