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가기 전부터 원진과 타로카드점이나 집시점을 보자고 했었다. 게이쇼에서 신나서 너무 열심히 머리를 흔든 때문인지, 나이 탓인지 생각보다 피곤하긴 했지만, 타로카드점을 볼 수 있는 기회를 놓칠 순 없었다. 처음엔 영화에서 흔히 등장하는 마귀할멈같이 조금 괴상하고 화려한 색깔의 옷차림을 한 집시를 기대했지만, 그런 내 예상과 달리 그녀는 소박하고 평범한 인상과 옷차림이었다. 원진이 먼저 시작했다. 원진에겐 주로 이성관계에 있어서 결혼과 일에 있어서 Successful이란 단어가 주로 나왔다. 내년에 결혼한단다. 올 가을쯤-9,10월쯤 더 큰 곳으로 직장을 옮기고 일에 있어서도 성공할 거란다. 대체적으로 좋은 이야기였다. 옆에서 들으면서 안 그런 척 하려고 했지만, 이상하게도 많이 긴장됐다. 이깟 점괘쯤이야 하고 무시해버리면 그만이련만. 드디어 내 차례가 돌아왔다.
타로-당신은 not ambitious하고 simple한 사람이군요. 지금 다니는 회사에 만족하는 편이고 회사를 옮기거나 새로 시작하는 것을 두려워해요. 그리고 당신은 지금 no relationship(그녀는 주로 이성관계를 이말로 표현했다)하군요. 현재 당신이 다니고 있는 회사에 계속 다니는 것도 괜찮아요. 하지만 당신은 지금 고민하고 있군요. 회사를 계속 다닐 건지, 그만둘건지...
사실이었다. 난 내가 생각해도 야심만만한 스타일도 아니고, 지금 다니는 회사가 불안하기도 하고 지겹기도 해서 그만두고 싶어하지만 적지 않은 나이 때문에 망설이는 것도 사실이었다. 지금 나에게 중요한 것은 job이고 적은 나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남자를 만나는데 사실 별 관심이 없다. 물론 가끔 외로울 땐 누군가 있었으면 싶지만... ㅋㅋㅋ
타로-현재 당신이 살고 있는 집이 당신에게 걱정을 주고 두려움과 무서움을 느끼게 하는군요. 당신에게 나쁜 영향을 미치는 건 아니지만, 당신이 그 집때문에 잠을 못잘 정도로 걱정하고 있으니 집을 옮기는 게 좋겠어요. 다음달쯤 집을 옮기게 될지도 모르겠군요.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집의 보증금 문제 때문에 고민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었다. 안그래도 필리핀 휴가 다녀오면 집주인에게 나가겠다고 얘기하려고 했는데, 내가 그 문제에 대해 미처 물어보기도 전에 그녀가 그렇게 말해서 놀랐다.
타로-당신에겐 오래된 친구나 새로운 친구와의 관계에 아무 문제가 없어요. 좋아요. 당신은 2남 2녀를 낳게 되겠군요. 그 중에 쌍둥이도 있구요. 지난 남자와는 깨질 징조가 보여요. 당신은 next year부터 start to study하는 게 좋겠어요. 당신에겐 많은 temptation(일시적 유혹의 의미)이 있어요, 그 유혹중에 세 남자가 있는데 relationship(이성관계)뿐만 아니라 job(일)에 모두 해당되요. 그들의 국적은 중국, 한국, 대만이예요.(사실 이건 믿어지지 않지만 딱 잘라 그렇게 말하는 게 신기했다) 8월말이나 9월초쯤 지금 당신이 살고 있는 도시를 떠나 시골로 갈 일이 생기겠군요.
예전부터 난 아들 둘, 딸 둘을 낳고 싶었다. 하나는 넘 외롭고, 같은 성끼리 외롭지 않게 둘씩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으니까. 필리핀 다녀와서 어머니께 쌍둥이 얘기를 꺼냈을 때, 난 의외의 사실을 알게 됐다. 오래전에 돌아가신 외할머니께서 쌍둥이를 낳으셨는데, 어려서 죽었단다. 쌍둥이는 집안내력이고 대를 걸러 나오기가 쉽다던데, 그럼 내가 정말 쌍둥이를 낳게 되는 것일까. 그리고 회사가 불안해지면서 공부하고 싶은 게 생겨서 생각 중이었는데, 행동으로 옮겨야 겠다. 공부하는 게 좋다니까. ^^
타로-당신의 건강은 전반적으로 좋은데, 단것을 좋아해서 그게 당신의 건강을 위협하겠군요. 그래도 별 문제없이 80살 넘게 살겠어요. 단것을 조심해요. 당신의 행운의 숫자는 6이고, 그래서 2006년엔 rich하겠군요. two job을 가지고 two house를 own할거예요. 당신은 점점더 부자가 되겠군요. two job과 two house가 필리핀에 하나, 한국에 하나 있겠군요. 당신 친구가 사업파트너제의를 해서 동업(음식점,의류관련,전자관련사업이란다)을 하면 부자가 될거예요.
아! 난 내가 집 두채를 소유하고 부자가 된다는 소리에 갑자기 힘이 솟고 행복해졌다. 그 놈의 돈이 무어라고 많다고 해서 꼭 행복할 리도 없겠지만, 그래도 없는 것보단 낫지 않겠는가. 게다가 두채의 집을 소유하게 된다니, 내가 전세를 몇번 옮기고 난 뒤부터 내 집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지만...... 근데, 웬 필리핀이야? 신애 말인즉 점을 보는 여자가 필리핀 사람이라 필리핀이란 지명이 자주 나온단다. 그래도 원진에겐 그렇지 않았는데 나에겐 대놓고 필리핀에 다시 올 징조가 보이며, 필리핀에 있으면 한국에 있을 때보다 아이디어도 많이 나오고 더 좋을 거라고 했다. 한국에 있어도 나쁘진 않을 거랬지만...
그녀는 타로카드를 섞어 쫙 늘어놓고, 처음엔 세 장, 두번째는 일곱 장, 세번째엔 열 네 장을 고르게 하고, 그 다음부턴 섞은 후 내가 일곱 장의 카드를 고르고 나면 뒤집어 보기 전에 질문을 받아 고른 카드를 뒤집어 보며 그 질문에 답을 했다.
난 우리 어머니의 건강이 무엇보다 걱정되고 궁금해서 물었는데, 심장(간이 안 좋으신데, 이건 뭔 소린지 모르겠다)이 안 좋고 전체적으로 안 좋긴 한데, 괜찮아(recover)질거고 오래 사실거란다. 우리 부모님 사이도 괜찮고, 남동생도 직장이나 일, 공부에 있어서 차분하게 잘 해낼 것이나, 역시 내가 우려했던 대로, 내 여동생의 남자친구의 attitude가 좋지 않아 내 여동생이 힘들어하며, 내년쯤 지금의 남자와 헤어지고 새로운 남자를 만나 결혼할 것이란다. 내가 우리 형제 중에서 제일 잘 되고(부자되고) happy하며, 나의 남편은(나의 이상형같이) smart하고 gentle하며 understanding한 사람이란다. 여동생(처음엔 배다른 여동생이라고 해서 내 가슴을 철렁거리게 했다)이 남편 집안 사람들이랑 문제가 있겠단다. 내가 내년에 회사를 그만두고 여행을 하고 싶은데 괜찮겠냐고 했더니, 문제없단다. It's ok. 남편이랑 여행하면 enjoy할 수 있단다. 하하하
나의 카드에 주로 나오는 것은, 돈이었다. 번쩍이는 돈. 그리고 여동생 남자친구의 attitude가 문제가 됐다. 나의 점괘도 좋은 편이어서, 보고 나니 피곤함이 싹 사라지고 기분이 좋아졌다. 물론 타로카드의 점괘가 다 맞는 것도 아닐 것이고, 또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변하기 마련이라고 하지만, 내가 생각했던 것을 말하기도 전에 꼬집어 내듯 이야기 할때는 조금 놀랍기도 하고, 또 대부분 좋은 이야기들이어서 어쨌거나 믿어도 손해날 것 없다는 생각을 했다.
예전에 관상을 좀 볼 줄 알고, 천수경과 주역을 몇 번 읽어서 좀 안다던 과선배가 하던 말이 잊혀지지 않는다. 관상도 수상(손금), 족상(발금), 사주팔자도 변하지만, 한가지 변하지 않는 게 있다고, 그건 마음 속의 '심상'이란다. 아마 굳은 신념을 가지고 행한다면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을 것이란 뜻이 아닐까. 가끔은 산적두목같고 운동선수같기도 했던, 덩치좋고 시꺼멓고 항상 셔츠의 단추를 여러 개 풀어놔 오히려 느끼한 인상을 주던, 하지만 알고보면 재밌고 박식했던 그는 지금쯤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