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9월 19일, 한비야씨의 책 <바람의 딸, 우리 땅에 서다>를 읽다가 나도 우리 땅에 서고 싶어 짧은 여행을 떠나다.

햇볕이 꽤 따갑다. 서산 좀 못 미친 운산에서 내려서 홍일슈퍼 앞에서 용현계곡쪽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린다.  역시나 버스 시간표는 인터넷에서 찾은 것과는 조금 틀리다.  사이좋게 앉아 있는 여학생과 남학생 옆 빈자리에 앉아 햇볕 바라기.  고양이같이 가르릉거리다.


서산마애삼존석불 옆 돌탑

음...사진이 너무 커서 민망하군.  사진속의 돌탑들은 서산마애삼존석불 옆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조그만 돌탑들. 어딜 가든 우리네 사람들은 돌탑 쌓는 걸 참 즐긴다.    조그만 전각안의 서산마애삼존석불은 언제봐도 정겹다.  하지만 이번엔 빛의 방향에 따라 달라지는 그 신비한 미소를 볼 수 없었다.  한쪽 구석에 있는 전등 걸린 긴 장대를 아무리 살펴봐도 스위치가 달려 있지 않으니. 그 옆의 두꺼비집을 감히 건드리긴 그렇고. 그래서 아쉽지만, 열심히 머리 속으로만 예전의 그 따스하고 환한 미소를 떠올리면서 한참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마애삼존불에서 좀더 윗쪽으로 20여분쯤 걸어올라가면 널직한 평지에 보원사지가 있다.


보원사지 당간지주 - 참 준수하지 않나?


보원사지 5층 석탑

에잇! 뻔해서 재미없는 사진들이지만...  참 준수하지 않나? 쭉 뻗은 늘씬한 자태를 보라구. 5층 석탑을 보면서 난 부여의 정림사지 5층 석탑을 떠올렸는데, 아니나다를까 부여의 정림사탑이래로 충청도 지역의 고려시대 석탑에서만 볼 수 있는 백제 양식을 그대로 이어받았단다.  무엇보다 기단부분의 조각들이 섬세하고 아름답다.  고려 광종때의 법인국사의 부도와 부도비도 상당히 섬세하고 보존상태가 좋다. 비를 받치고 있는 거북이와 비 머리의 용 새김, 그리고 부도의 조각도 화려하고 섬세하면서 전체적으로 균형잡힌 아름다움을 엿볼 수 있다...


보원사지 석조

이것이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음...보기드물게 하나의 돌로 된 것이라는데 물빠짐 구멍이 보인다. 안에 들어가서 눕고 싶었는데 참았다. 큼직하고 시원스레 보여서 좋았다. 

무슨무슨 사지라는 곳에 가면, 터만 덩그러니 남은 그 곳에서 왠지 세월의 무상함이 느껴져서 마음이 스산해질 때가 있다. 부귀영화도 한순간이고, 사람도 죽어 흙으로 돌아가고, 그 자리에 뒹굴고 있는 돌덩이들. 그 자리를 메우는 건 해마다 푸르고 싱싱하게 자라나는 무성한 잡초들. 


개심사로 들어가는 길-누렇게 영글어가는 벼 이삭들


신창저수지


개심사로 들어가는 길은, 나무그늘 하나 없는 구불구불 시멘트길이다. 조선시대 12진산의 하나였던 상왕산의 울창한 숲을 모두 베어내고 외제 풀씨를 뿌려 만들었다던,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드문 드넓은 초원, 김종필씨의 '삼화목장'-지금은 '축협 한우 개량사업소 농장'-을 보며 따가운 햇살에 벼와 함께 내 살도 익어간다.  신창저수지 위를 백로가 활개를 치며 날아간다.

개심사에 새로 일주문이 생겼나보다. 금방 세운 듯 반질거리는 나무. 소담스런 개심사에 어울리지 않게 우람하다.  난 그 일주문보다도 '세심동'이란 세 글자를 찾아 헤맨다.  몇 안되는 음식점을 지나 짙은 나무 그늘에 고마워하며 조금 걸어 들어가면 세심동 표지가 보인다. 거기서부터는 돌계단이 시작된다.  쉬엄쉬엄 돌계단을 밟고 올라가 제일 먼저 만나게 되는 길죽한 네모난 모양의 연못.  어? 자동차닷!


개심사 연못에 빠진 자동차- 어쩌다?


자동차와는 어울리지 않는 외나무다리의 운치

종루옆 계단을 올라 안양루 옆 해탈문을 지나면 대웅보전이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일단 부처님께 인사부터 드리고. 삼배만 하려다가 발동걸려서 108배를 하고 나니, 전신에 땀이라. 후들거리는 다리로 계단을 내려와 심검당을 정면으로 하고 앉아서 아담한 풍경을 즐기며 소박한 기쁨을 누리다.


심검당-무성한 나뭇잎에 가려 심검당의 휘어진 아름다운 대들보가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이게 무엇이게? 아는 사람은 안다!

엽기적인 사진이다. 아무래도 좀 구린 곳에서 구린 포즈로 찍다보니 촛점이 좀 흔들렸지만, 이게 무슨 사진인지 아는 사람은 다 알 게다.  뭐냐구?  힌트-변 그리고 쥐...      순천 선암사에 갔을 때, 난 사진기가 없음을 한탄했다. 그 멋지고 유쾌한 공간인 ㅎㅇㅅ를 자자손손 남기고 싶었는데. 그래서 이번엔 큰 맘 먹고 찍다. 


몹시 곤하셨나 보다-식탁에 엎드려 잠이 드신 아주머니


개심사 범종각의 휘어진 기둥의 아름다움

네 개의 기둥 모두가 휜나무로 되어 당장이라도 무너질 듯 위태롭게 보이지만, 곧은 나무로 만든 기둥과 조금도 다름없이 거뜬하게 널따란 지붕을 받치고 있다.  곧은 놈은 곧은 대로, 휜 놈은 흰 대로 맞물려 제 몫을 충분히 다할 수 있다는, 그래서 이 세상의 모든 인간은 자신에게 맞는 역할과 존재 의미를 가지고 태어났음을  희망적으로 보여주려는 의지가 담겨있는 듯.


배롱나무꽃- 떠나간 벗을 그리워함? 사람이 간지럼타듯 나무가지를 손으로 긁으면 잎이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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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타로카드점괘에 의하면, 난 relationship에는 관심이 없다는데, 관심이 쬐금 가는 사람이 생겼다.  

이름하야, 청소하는 남자.

지난 목요일, 청소하는 아주머니의 버림(?)으로 발생한 문제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부딪힌 그 남자, 열 받아서 따지러 내려갔다가 그의 나직하고 부드러운 목소리에 그만 할말을 잃고 순순히 그가 수습하길 기다리게 만든 남자, 아마도 분명 유부남일 그 남자이다.  

지난 금요일, 밤 10시를 막 넘긴 시간에 야근을 마치고 엘리베이터를 나선 순간, 내 눈에 들어오는 이가 있었으니, 그는 그 늦은 시간에 열심히 현관 바닥에 비누칠을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안녕하세요. 어머, 이 늦은 시간에 일하시는 거예요? 수고가 많으시네요. ^^

그는 벌떡 일어났지만, 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다만, 수고하세요란 말을 던지며 유유히 스쳐 지나왔지만, 이상하게도 내 가슴이 조금 두근거렸다.  어머, 웬일이니? 

그는 키가 크지도, 얼굴이 잘 생기지도 않았고, 머리는 막 벗겨지려는 참이지만, 부드럽고 나직하며 낭랑한 목소리가 사람의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며,  또한 한 눈에 성실하고 책임감있는 사람이라는 믿음을 가지게 만들었다. 그런 그를, 오늘 아침에도 또 만났다. 난 빙긋이 웃으며 과감하게 그에게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마침 드릴 말씀이 있었는데...  다름이 아니라...

혹시나 '고백'이라도 하려는 것일까. 글쎄...

-전에도 몇번을 말씀 드렸는데, 저희 층 담당하시는 아주머니가 문을 잘 안 닫으시네요. 평일에야 상관없지만, 사람이 근무하지 않는 토요일에 문을 열어놓으시다니, 마침 제가 그날 회사에 나가서 다행이지, 아님 다 가져가라 공고하는 것이나 마찬가지 아니겠어요? 한번만 더 부탁을 드릴께요. 제발, 문을 좀 닫아주십사 전해주시겠어요?

그렇다. 그와 나는 여전히 청소하는 남자와 청소하는 사무실을 담당하는 사람의 관계일 뿐이다.

하지만, 난 그를 보는 게 은근히 기쁘다.  내일도 볼 수 있으려나...  히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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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굼 2004-09-13 2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일도 뵐 수 있길..

무탄트 2004-09-14 0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alt님, 응원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왠지 오늘은 볼 수 없을 것 같네요. 사실 볼 수 없다는 게 그를 위해서는 더 좋은 일이지 싶어요. 청소하시는 아주머니들이 일을 만들면 만들수록 수습을 위해 그가 자주 들러야 할테니까요. 그를 자주 보기 위해서 아주머니들께 일을 더 많이 만드시라고 할까요? 크크크
 

며칠 전부터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영 개운치가 않다.  평소처럼(새벽1,2시) 자는 데도 불구하고, 아침이면 삭신이 쑤시고 회사 가기가 은근히 싫어지는 병에 걸린 거다.  

일명 회사에 가기 싫다 병.  언젠가부터 일년에 한두 번 정도는 아침에 눈 떴을 때, 못 움직일 정도로 많이 아픈 것도 아닌데, 몸이 영 찌뿌드드하며 회사에 몹시 가고 싶지 않은 날이 있다.  그럴 땐, 탁월한(?) 연기력으로 아픈 척 가장하여 하루를 완전히 제껴버린다.  알아도 어쩌겠어. 아파서 그렇다는데...  연기를 할 땐 양심에 조금 찔리지만, 윗분에게 전화 사기(?)를 치고 나서 집에 가만히 누워 있으면, 몸이 그렇게 편할 수가 없다. 온 세상이 밝아 보인다. 무얼 해도 즐겁다. 학교 가기 싫다고 꾀병 부리는 아이의 심정이 이럴까. 학교 가기가 얼마나 싫으면 그럴까. 항상은 아니겠지만, 그 아이에게도 가끔은, 아주 가끔은 정말 학교에 가고 싶지 않은 날이 있는 게 아닐까. 만약 내 아이가 그렇다면, 학교를 빼먹고 같이 놀아주어야겠다고 생각하는 난 나쁜 엄마인 걸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이 많아서, 혹은 회사 분위기상 빼먹을 수가 없어서 억지로 몸을 추스리고 출근했다.  아니나 다를까 아침부터 일이 터진다.  어제까지 멀쩡하게 책상 위에 올려져 있던 중요부품이 든 박스가 없어졌단다. 씩씩거리며 우리층의 청소를 담당하는 아주머니를 찾아갔다.  물론 그 아주머닌 안 계셨다.  그리고 '역시나' 그 아주머니가 그 박스를 치웠던 거다. 여기서 왜 '역시나'라고 할까 궁금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뭔가 없어질 때마다 청소하는 아주머니를 의심해서야 되겠냐는 사람도 있을 거다. 하지만, 문제는 있어야 할 장소에 있어야 할 물건들이-사소한 것들이었지만- 없어진 게 이게 처음도 두번째도 아니란 거다. 그 전엔 아무리 지저분해도 함부로 말없이 치워버리는 일은 절대 없었다.  오늘같은 경우엔 마침 청소용역 담당자가 와 있어서 책임지고 그 물건들을 찾아주어서 다행이었지, 아니면 수백만원어치의 물건들을 몽땅 잃어버릴 뻔 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회사 가기 싫다 병이 심하게 도진 날엔, 뭔가 사소한 것이나마 잘 풀리지 않는 일이 생기곤 했다.  내 몸이, 내 머리가 미리 예감한 걸까.  어쨌거나 꾀병은 꾀병이다.  크크크

점심 때 인삼주 두 잔에 삼계탕을 거하게 먹었더니, 몸이 나른하다. 약발을 받는 건지 안 받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암튼 오후에는 조용하게, 다만 조용하게 일하다가 퇴근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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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22일

한국으로 돌아가는 마지막 날이다. 어젯밤 마지막 밤을 그대로 보내기가 아쉬워, 원진이가 사서 리조트에서 먹다 남은 술과 치즈를 곁들인 크래커 등을 안주삼아 못다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늦게서야 잠이 들었다. 밤 11시 30분 비행기이라 꽤 넉넉한 시간이 남아 있지만, 마닐라 교외로 나가기엔 좀 빠듯할 듯해서 전부터 신애가 좋다고 하던 인트라무로스를 보러 가기로 했다.

먼지 1587년부터 건축되어 1606년에 완공된 필리핀에서 가장 오래된 석조 교회인 성아구스틴교회(San Agustin Church)부터 들렀다. 두 명의 이탈리안 건축가 Alberoni와 Dibella에 의해서 채색되었다고 하는 둥근 아치모양의 천장과 돔이 인상적이었다. 강단을 비롯한 교회내부는 바로크 양식으로 장식되었다고 한다.


성아구스틴 교회의 내부-미사를 드리고 있다.

성아구스틴교회는 2차 세계대전에서도 유일하게 살아 남은 건물로,  18세기에 만들어진 파이프 오르간으로도 유명하단다. 파이프 오르간? 그게 어딨었지? 맨 앞에 있던 건가? 사진 찍느라 제대로 못 봤다.  ㅠ.ㅠ

교회 제단 바로 옆문으로 나가면 SALA DE LA CAPITULACION이란 방이 있는데, 이곳에서 1898년 스페인이 미국에 항복하는 조인식이 거행되었다고 한다.


3,400kg이나 되는 커다란 종...안내아저씨가 꼭 찍으라고 해서 찍었다.

회랑에서 창문을 통해 바라본 정원

교회를 포함한 산아구스틴박물관은 가운데 정원을 네 개의 회랑이 둘러싸고, 그 주위를 다시 여러 방들이 둘러싸고 있는데, 그 중 첫번째 회랑엔 필리핀 화가 Enriquez, Fuster 등이 그린 유화들이 전시되어 있다.


납골당 내부

나에게 인상적이었던 곳 중에 하나가 납골당(Crypt)이었다. 전엔 신부들을 위한 식당 또는 Refectory(휴게실)으로 쓰였다고 하는데, 1932년 Augustinian(성아구스틴의신봉자) 의 mausoleum(대영묘)에서 현재는 필리핀 가족들의 납골당으로 개조되었다고 한다. 이 기념물은 일본 점령기(1942~1945)동안 희생된 사람들의 상기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그래서일까. 왠지 비감한 기운이 감돌고 있는 것 같다. 내부의 벽감은 새로운 납골당의 별관으로 이용되고 있다고 한다.  이 휴게실 한쪽엔 필리핀의 예술작품과 나무로된 얇은 돋을새김, 가구, 촛대, 예배의자와 행렬할때 쓰는 삼각기 등 Pagrei Collection이 전시되어 있다.

성아구스틴 교회를 나와서, 다음은 마닐라 성당으로 갔다.  로마네스크 양식의 우아한 아름다움을 엿볼 수있는 성당에선 한참 미사가 진행중이었고, 입구에서 인상 험한 아저씨가 성아구스틴교회와는 달리 내부에서 사진을 찍을 수 없다고 강경하게 저지하여 결국 난 내부를 자세히 보지 못하고 외부에서 사진 몇 장 찍은 걸로 아쉬운 마음을 달랠 수 밖에 없었다.


마닐라 성당

안트라무로스의 산티아고 요새에 가본 이후로, 난 필리핀의 역사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되었다.


산티아고 요새의 아치형 석벽


수중감옥으로 물이 들어오는 곳






 

 

 

 

 

 

 

 

 

 

 

 

 



 

 

 

(아직 정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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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가기 전부터 원진과 타로카드점이나 집시점을 보자고 했었다.  게이쇼에서 신나서 너무 열심히 머리를 흔든 때문인지, 나이 탓인지 생각보다 피곤하긴 했지만, 타로카드점을 볼 수 있는 기회를 놓칠 순 없었다.  처음엔 영화에서 흔히 등장하는 마귀할멈같이 조금 괴상하고 화려한 색깔의 옷차림을 한 집시를 기대했지만, 그런 내 예상과 달리 그녀는 소박하고 평범한 인상과 옷차림이었다.  원진이 먼저 시작했다. 원진에겐 주로 이성관계에 있어서 결혼과 일에 있어서 Successful이란 단어가 주로 나왔다. 내년에 결혼한단다. 올 가을쯤-9,10월쯤 더 큰 곳으로 직장을 옮기고 일에 있어서도 성공할 거란다.  대체적으로 좋은 이야기였다. 옆에서 들으면서 안 그런 척 하려고 했지만, 이상하게도 많이 긴장됐다. 이깟 점괘쯤이야 하고 무시해버리면 그만이련만. 드디어 내 차례가 돌아왔다.

타로-당신은 not ambitious하고 simple한 사람이군요. 지금 다니는 회사에 만족하는 편이고 회사를 옮기거나 새로 시작하는 것을 두려워해요. 그리고 당신은 지금 no relationship(그녀는 주로 이성관계를 이말로 표현했다)하군요. 현재 당신이 다니고 있는 회사에 계속 다니는 것도 괜찮아요. 하지만 당신은 지금 고민하고 있군요. 회사를 계속 다닐 건지, 그만둘건지...

사실이었다. 난 내가 생각해도 야심만만한 스타일도 아니고, 지금 다니는 회사가 불안하기도 하고 지겹기도 해서 그만두고 싶어하지만 적지 않은 나이 때문에 망설이는 것도 사실이었다. 지금 나에게 중요한 것은 job이고 적은 나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남자를 만나는데 사실 별 관심이 없다. 물론 가끔 외로울 땐 누군가 있었으면 싶지만... ㅋㅋㅋ

타로-현재 당신이 살고 있는 집이 당신에게 걱정을 주고 두려움과 무서움을 느끼게 하는군요. 당신에게 나쁜 영향을 미치는 건 아니지만, 당신이 그 집때문에 잠을 못잘 정도로 걱정하고 있으니 집을 옮기는 게 좋겠어요. 다음달쯤 집을 옮기게 될지도 모르겠군요.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집의 보증금 문제 때문에 고민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었다. 안그래도 필리핀 휴가 다녀오면 집주인에게 나가겠다고 얘기하려고 했는데, 내가 그 문제에 대해 미처 물어보기도 전에 그녀가 그렇게 말해서 놀랐다.

타로-당신에겐 오래된 친구나 새로운 친구와의 관계에 아무 문제가 없어요. 좋아요.   당신은 2남 2녀를 낳게 되겠군요. 그 중에 쌍둥이도 있구요. 지난 남자와는 깨질 징조가 보여요.  당신은 next year부터 start to study하는 게 좋겠어요.   당신에겐 많은 temptation(일시적 유혹의 의미)이 있어요, 그 유혹중에 세 남자가 있는데 relationship(이성관계)뿐만 아니라 job(일)에 모두 해당되요. 그들의 국적은 중국, 한국, 대만이예요.(사실 이건 믿어지지 않지만 딱 잘라 그렇게 말하는 게 신기했다) 8월말이나 9월초쯤 지금 당신이 살고 있는 도시를 떠나 시골로 갈 일이 생기겠군요.

예전부터 난 아들 둘, 딸 둘을 낳고 싶었다. 하나는 넘 외롭고, 같은 성끼리 외롭지 않게 둘씩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으니까.  필리핀 다녀와서 어머니께 쌍둥이 얘기를 꺼냈을 때, 난 의외의 사실을 알게 됐다. 오래전에 돌아가신 외할머니께서 쌍둥이를 낳으셨는데, 어려서 죽었단다. 쌍둥이는 집안내력이고 대를 걸러 나오기가 쉽다던데, 그럼 내가 정말 쌍둥이를 낳게 되는 것일까. 그리고 회사가 불안해지면서 공부하고 싶은 게 생겨서 생각 중이었는데, 행동으로 옮겨야 겠다. 공부하는 게 좋다니까. ^^

타로-당신의 건강은 전반적으로 좋은데, 단것을 좋아해서 그게 당신의 건강을 위협하겠군요. 그래도 별 문제없이 80살 넘게 살겠어요. 단것을 조심해요.    당신의 행운의 숫자는 6이고, 그래서 2006년엔 rich하겠군요.  two job을 가지고 two house를 own할거예요. 당신은 점점더 부자가 되겠군요. two job과 two house가 필리핀에 하나, 한국에 하나 있겠군요. 당신 친구가 사업파트너제의를 해서 동업(음식점,의류관련,전자관련사업이란다)을 하면 부자가 될거예요.

아! 난 내가 집 두채를 소유하고 부자가 된다는 소리에 갑자기 힘이 솟고 행복해졌다. 그 놈의 돈이 무어라고 많다고 해서 꼭 행복할 리도 없겠지만, 그래도 없는 것보단 낫지 않겠는가. 게다가 두채의 집을 소유하게 된다니, 내가 전세를 몇번 옮기고 난 뒤부터 내 집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지만......  근데, 웬 필리핀이야? 신애 말인즉 점을 보는 여자가 필리핀 사람이라 필리핀이란 지명이 자주 나온단다. 그래도 원진에겐 그렇지 않았는데 나에겐 대놓고 필리핀에 다시 올 징조가 보이며, 필리핀에 있으면 한국에 있을 때보다 아이디어도 많이 나오고 더 좋을 거라고 했다. 한국에 있어도 나쁘진 않을 거랬지만...

그녀는 타로카드를 섞어 쫙 늘어놓고, 처음엔 세 장, 두번째는 일곱 장, 세번째엔 열 네 장을 고르게 하고, 그 다음부턴 섞은 후 내가 일곱 장의 카드를 고르고 나면 뒤집어 보기 전에 질문을 받아 고른 카드를 뒤집어 보며 그 질문에 답을 했다.

난 우리 어머니의 건강이 무엇보다 걱정되고 궁금해서 물었는데, 심장(간이 안 좋으신데, 이건 뭔 소린지 모르겠다)이 안 좋고 전체적으로 안 좋긴 한데, 괜찮아(recover)질거고 오래 사실거란다. 우리 부모님 사이도 괜찮고, 남동생도 직장이나 일, 공부에 있어서 차분하게 잘 해낼 것이나, 역시 내가 우려했던 대로, 내 여동생의 남자친구의 attitude가 좋지 않아 내 여동생이 힘들어하며, 내년쯤 지금의 남자와 헤어지고 새로운 남자를  만나 결혼할 것이란다.  내가 우리 형제 중에서 제일 잘 되고(부자되고)  happy하며, 나의 남편은(나의 이상형같이) smart하고 gentle하며 understanding한 사람이란다.  여동생(처음엔 배다른 여동생이라고 해서 내 가슴을 철렁거리게 했다)이 남편 집안 사람들이랑 문제가 있겠단다. 내가 내년에 회사를 그만두고 여행을 하고 싶은데 괜찮겠냐고 했더니, 문제없단다. It's ok. 남편이랑 여행하면 enjoy할 수 있단다. 하하하

나의 카드에 주로 나오는 것은, 돈이었다. 번쩍이는 돈. 그리고 여동생 남자친구의 attitude가 문제가 됐다. 나의 점괘도 좋은 편이어서, 보고 나니 피곤함이 싹 사라지고 기분이 좋아졌다.  물론 타로카드의 점괘가 다 맞는 것도 아닐 것이고, 또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변하기 마련이라고 하지만, 내가 생각했던 것을 말하기도 전에 꼬집어 내듯 이야기 할때는 조금 놀랍기도 하고, 또 대부분 좋은 이야기들이어서 어쨌거나 믿어도 손해날 것 없다는 생각을 했다. 

예전에 관상을 좀 볼 줄 알고, 천수경과 주역을 몇 번 읽어서 좀 안다던 과선배가 하던 말이 잊혀지지 않는다.  관상도 수상(손금), 족상(발금), 사주팔자도 변하지만, 한가지 변하지 않는 게 있다고, 그건 마음 속의 '심상'이란다.  아마 굳은 신념을 가지고 행한다면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을 것이란 뜻이 아닐까.  가끔은 산적두목같고 운동선수같기도 했던, 덩치좋고 시꺼멓고 항상 셔츠의 단추를 여러 개 풀어놔 오히려 느끼한 인상을 주던, 하지만 알고보면 재밌고 박식했던 그는 지금쯤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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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녀 2004-09-02 18: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거기가 어디여요? 필리핀의 어느 타로집이죠? 나 가볼래요 ^^
무탄트님하고 친해둬야겠네요. 돈하고 친하시다니...
여행, 즐거우셨겠어요.

무탄트 2004-09-02 19: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필리핀에 있는 동생이 신경써준 덕분에 정말 즐겁게 보냈습니다. 필리핀에 가실 일이 있으시면 그 분 연락처를 알아내서 전해드리기로 하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