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9월 19일, 한비야씨의 책 <바람의 딸, 우리 땅에 서다>를 읽다가 나도 우리 땅에 서고 싶어 짧은 여행을 떠나다.

햇볕이 꽤 따갑다. 서산 좀 못 미친 운산에서 내려서 홍일슈퍼 앞에서 용현계곡쪽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린다.  역시나 버스 시간표는 인터넷에서 찾은 것과는 조금 틀리다.  사이좋게 앉아 있는 여학생과 남학생 옆 빈자리에 앉아 햇볕 바라기.  고양이같이 가르릉거리다.


서산마애삼존석불 옆 돌탑

음...사진이 너무 커서 민망하군.  사진속의 돌탑들은 서산마애삼존석불 옆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조그만 돌탑들. 어딜 가든 우리네 사람들은 돌탑 쌓는 걸 참 즐긴다.    조그만 전각안의 서산마애삼존석불은 언제봐도 정겹다.  하지만 이번엔 빛의 방향에 따라 달라지는 그 신비한 미소를 볼 수 없었다.  한쪽 구석에 있는 전등 걸린 긴 장대를 아무리 살펴봐도 스위치가 달려 있지 않으니. 그 옆의 두꺼비집을 감히 건드리긴 그렇고. 그래서 아쉽지만, 열심히 머리 속으로만 예전의 그 따스하고 환한 미소를 떠올리면서 한참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마애삼존불에서 좀더 윗쪽으로 20여분쯤 걸어올라가면 널직한 평지에 보원사지가 있다.


보원사지 당간지주 - 참 준수하지 않나?


보원사지 5층 석탑

에잇! 뻔해서 재미없는 사진들이지만...  참 준수하지 않나? 쭉 뻗은 늘씬한 자태를 보라구. 5층 석탑을 보면서 난 부여의 정림사지 5층 석탑을 떠올렸는데, 아니나다를까 부여의 정림사탑이래로 충청도 지역의 고려시대 석탑에서만 볼 수 있는 백제 양식을 그대로 이어받았단다.  무엇보다 기단부분의 조각들이 섬세하고 아름답다.  고려 광종때의 법인국사의 부도와 부도비도 상당히 섬세하고 보존상태가 좋다. 비를 받치고 있는 거북이와 비 머리의 용 새김, 그리고 부도의 조각도 화려하고 섬세하면서 전체적으로 균형잡힌 아름다움을 엿볼 수 있다...


보원사지 석조

이것이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음...보기드물게 하나의 돌로 된 것이라는데 물빠짐 구멍이 보인다. 안에 들어가서 눕고 싶었는데 참았다. 큼직하고 시원스레 보여서 좋았다. 

무슨무슨 사지라는 곳에 가면, 터만 덩그러니 남은 그 곳에서 왠지 세월의 무상함이 느껴져서 마음이 스산해질 때가 있다. 부귀영화도 한순간이고, 사람도 죽어 흙으로 돌아가고, 그 자리에 뒹굴고 있는 돌덩이들. 그 자리를 메우는 건 해마다 푸르고 싱싱하게 자라나는 무성한 잡초들. 


개심사로 들어가는 길-누렇게 영글어가는 벼 이삭들


신창저수지


개심사로 들어가는 길은, 나무그늘 하나 없는 구불구불 시멘트길이다. 조선시대 12진산의 하나였던 상왕산의 울창한 숲을 모두 베어내고 외제 풀씨를 뿌려 만들었다던,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드문 드넓은 초원, 김종필씨의 '삼화목장'-지금은 '축협 한우 개량사업소 농장'-을 보며 따가운 햇살에 벼와 함께 내 살도 익어간다.  신창저수지 위를 백로가 활개를 치며 날아간다.

개심사에 새로 일주문이 생겼나보다. 금방 세운 듯 반질거리는 나무. 소담스런 개심사에 어울리지 않게 우람하다.  난 그 일주문보다도 '세심동'이란 세 글자를 찾아 헤맨다.  몇 안되는 음식점을 지나 짙은 나무 그늘에 고마워하며 조금 걸어 들어가면 세심동 표지가 보인다. 거기서부터는 돌계단이 시작된다.  쉬엄쉬엄 돌계단을 밟고 올라가 제일 먼저 만나게 되는 길죽한 네모난 모양의 연못.  어? 자동차닷!


개심사 연못에 빠진 자동차- 어쩌다?


자동차와는 어울리지 않는 외나무다리의 운치

종루옆 계단을 올라 안양루 옆 해탈문을 지나면 대웅보전이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일단 부처님께 인사부터 드리고. 삼배만 하려다가 발동걸려서 108배를 하고 나니, 전신에 땀이라. 후들거리는 다리로 계단을 내려와 심검당을 정면으로 하고 앉아서 아담한 풍경을 즐기며 소박한 기쁨을 누리다.


심검당-무성한 나뭇잎에 가려 심검당의 휘어진 아름다운 대들보가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이게 무엇이게? 아는 사람은 안다!

엽기적인 사진이다. 아무래도 좀 구린 곳에서 구린 포즈로 찍다보니 촛점이 좀 흔들렸지만, 이게 무슨 사진인지 아는 사람은 다 알 게다.  뭐냐구?  힌트-변 그리고 쥐...      순천 선암사에 갔을 때, 난 사진기가 없음을 한탄했다. 그 멋지고 유쾌한 공간인 ㅎㅇㅅ를 자자손손 남기고 싶었는데. 그래서 이번엔 큰 맘 먹고 찍다. 


몹시 곤하셨나 보다-식탁에 엎드려 잠이 드신 아주머니


개심사 범종각의 휘어진 기둥의 아름다움

네 개의 기둥 모두가 휜나무로 되어 당장이라도 무너질 듯 위태롭게 보이지만, 곧은 나무로 만든 기둥과 조금도 다름없이 거뜬하게 널따란 지붕을 받치고 있다.  곧은 놈은 곧은 대로, 휜 놈은 흰 대로 맞물려 제 몫을 충분히 다할 수 있다는, 그래서 이 세상의 모든 인간은 자신에게 맞는 역할과 존재 의미를 가지고 태어났음을  희망적으로 보여주려는 의지가 담겨있는 듯.


배롱나무꽃- 떠나간 벗을 그리워함? 사람이 간지럼타듯 나무가지를 손으로 긁으면 잎이 움직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