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0월 24일 아침 7시 경

꽤 이른 시간인데도 눈이 뜨인다. 어젯밤 보통때보다 일찍 잠이 든 탓일게다. 일출을 볼까 생각하다가 서해안에서 뭔 일출, 그냥 좀더 뒹굴하기로 한다. 어젯밤 요기하고 남은 과자 부스러기를 털어넣는다. 아침밥이 따로 있나. 뱃속이 대충 차면 그만이지. 아, 왠지 흘러가는 시간을 놓치고 있는 것 같아 아까운 생각이 든다. 생각보다 몸의 컨디션도 괜찮은 것 같고 이만 일어나야겠다. 어제 추위에 떨만큼 떨었으니 단단히 챙겨입고 모텔을 나선다. 심포항 주변을 돌아보고 금산사로 가야지. 아직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한적하다. 차를 몰고 오는 사람은 꽤 있다. 심포항의 백합이 유명하단다. 뭐, 같이 먹을 사람이 있어야 먹어보지. 다음에 누군가와 다시 와야겠다 마음 먹는다. 




심포항의 아침




느긋한 기분으로 슬슬 방파제를 향해 걸어간다. 방파제 위에 세워져 있는 오토바이마저 친근하고 정겹다. 포근한 느낌이 드는 갯벌을 바라보고 있으니 마음이 평온해진다. 한참을 그러고 있다가 엉덩이를 털고 몸을 일으킨다. 손님을 맞이하는 백합 아주머니의 손길이 꽤 분주하다. 심포항이 깨어나고 있다. 난 기지개를 펴고 있는 심포항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단호하게 떠난다.  세상 끝에 마음을 묻고.

김제버스터미날 옆 조그만 분식에서 아침 겸 점심을 먹을 요량으로 따끈한 국물의 만두국을 시켰다. 아, 가격은 무지 싼데(2,500원), 싼 값을 하는 멀건 국물이라니. 그래도 시장이 반찬이라 국물 하나 남기지 않고 모조리 먹어치웠다. 배를 채울 수 있다는 기쁨으로.

2004년 10월 24일 11:03

금산사행 버스에 몸을 싣다. 금산사로 가는 길 역시 가도가도 끝이 없는 황금빛 들판의 천지이다. 버스 창으로 들어오는 햇볕이 가을볕답지않게 따갑다.

모악산 금산사는 큰 절이다. 모악산과 금산사란 이름이 큰 산을 뜻하는 고어 엄뫼, 큼뫼에서 비롯됐다고 하더니, 과연 마당도 널찍하고 시원시원하다. 오른쪽에 당간지주, 왼쪽에 금강문을 지나 보제루 아래를 통해 계단을 오르면 눈 앞이 확 트이면서 오른쪽으로 비스듬히 삼층 미륵전이 제일 먼저 눈에 띈다.  겉으로 보기엔 3층이지만 안에서 보면 모두 트인 통층구조인 미륵전은 하부의 규모에 비해 위로 올라갈수록 급격히 체감되어 묵직하고 웅장한 느낌을 준다. 미륵전 안에는 건물 안에 들어 있는 입불로는 가장 큰 높이의 미륵입상과 보살상이 모셔져 있다.  미륵전 앞 감나무에선 빨갛게 감이 익어간다.

 
미륵전과 감나무

하늘이 너무 파랗다. 너무 파래서 가슴이 시릴 나이가 되었단다.  미륵전 북쪽의 송대라는 높은 대에서 내려다보는 경치가 일품이다.  금산사 경내가 한눈에 보인다. 가슴이 확 트이는 것 같다.


송대에서 내려다보는 금산사 경내


송대 위의 오층석탑과 석인상


미륵전에서 올려다 보는 송대 위 오층석탑

호남 미륵신앙의 도량이라는 금산사는 드넓은 경내에 국보 제 62호로 지정된 미륵전을 비롯하여 노주, 석련대, 오층석탑, 혜덕왕서 진응탑비, 당간지주, 석종, 육각다층석탑, 석등 등 수많은 보물과 문화재를 가지고 있다. 넓은 마당 곳곳에 놓여있는 그 보물들을 찾아 돌아보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송대에 올라 금산사 전경을 내려다본다. 칼 하나 옆에 차고 세상을 굽어보는 장군의 기분이 이럴까. 세상을 다 가진 것같은 기분이다.  자, 이제 돌아가야 할 시간이다!

2004년 10월 24일 15:20

피곤했나 보다. 금산사에서 김제행 버스를 타자마자 거의 비몽사몽 헤롱대다가 그만 내려야할 곳을 지나치고 말았다. 터미날을 가려면 어느 방향으로 가야하는지 감도 잡을 수 없는 상태. 졸지에 김제 택시를 타는 수밖에. 그래도 운때가 맞았는지 아슬아슬하게 15:50발 인천행 마지막 버스를 타는 요행을 누리게 되었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순 없을 터. 이틀동안 꽤나 정든 김제땅을 떠나게 되서 아쉽지만, 나를 기다리고 있는 따뜻하고 포근한 나의 집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이 기쁘다. 언제나 그렇지만, 돌아갈 곳이 있다는 사실이 더없이 소중하게 생각된다. 

 나를 아는 이 없는 곳에서 나를 버리고, 다시 나를 채우고 돌아온다. 일상에 지친 나에게 여행은, 그렇듯 여행을 통해 나를 버리고 나를 새로이 채워서 또다시 살아내게 하는 힘이다.   여행은...날 채우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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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10월 22일 저녁 10시 50분경

밤기차를 타기 전에 허기진 배를 햄버거로 때우고 멍하니 천장만 바라본다. 오늘따라 읽을 책도 가져 오지 않았고, 음악 역시 듣고 싶지 않다.  내 옆자리에 앉은 아저씨는, 자신이 옥스퍼드 출신이라는 건 아무도 모를 거라는 둥, 알고보면 제비라는 둥, 듣는 사람도 없는데 혼자서 열심히 중얼거린다. 가끔 영어도 섞어가며. 어쩌면 그도 정말 예전엔 한때 잘 나가던 사람이었는지도 모른다. 사람의 앞날이란 모르는 것이다. 문득 가슴이 뭉클해진다. 혼자 떠나는 게 처음도 아닌데, 왠지 외롭고 쓸쓸하게 느껴져서 눈물이 날 것 같다. 감기가 오려는지 슬금슬금 몸에 열기운이 뻗치고 머리가 어질어질하다. 아프면 안되는데 싶어 쌍화탕을 하나 사서 입안에 털어넣는다.  

2004년 10월 23일 03:15

장성역에 도착했다. 알싸하고 서늘한 공기로 허파 속을 가득채운다.  아직 이른 새벽이라 가끔 다니는 택시가 눈에 띌 뿐 걸어다니는 사람은 거의 없다. 밤하늘의 별을 보며 심호흡 한번 하고 나서 피씨방을 찾아 두리번 거린다.  필요한 정보를 뽑고 나니 얼추 5시가 다 됐다. 어디서 아침을 먹을까 기웃거리다가, <원진네 해장국>이란 간판에 남다른 친근감을 느끼고 들어섰는데, 그날따라 계모임이라도 하는지 갑자기 청소부 아저씨들이 한꺼번에 들이닥쳐 금새 방안을 가득 메운다. 따가운 시선들을 애써 무시하며 시원한 콩나물 해장국 한 그릇으로 뱃속을 달래고 서둘러 길을 나선다. 장성버스터미날의 아저씨들은 혼자 다니는 내가 신기했던지 나서서 친절한 말을 던지신다. 때론 친절이 지나쳐 약간 오버하기도 한다. 아가씨, 나 오늘 5시에 마치거든. 구렁이 담 넘어가듯 슬쩍 웃음으로 받아 넘기고 6시 30분에 떠나는 백양사행 첫차에 몸을 싣는다.

2004년 10월 23일 07:10

그 시간에 버스를 타고 백양사에서 내리는 사람은 나뿐이다. 꽤 이른 시간인데도, 매표소엔 벌써 사람이 나와 있다. 젠장, 이렇게 이른 시간에도 나와 있단 말인가. 곧 단풍철이라서 그렇단다. 다른 곳에 비해 꽤 비싸게 느껴지는 입장료(3,400원)를 내는 수밖에. 어쨌거나 기분은 상쾌하다. 신선한 공기를 들이마시니 살 것 같다. 바쁜 일 없으니 슬슬 걷는다. 단풍을 감상하기엔 좀 이른 시기지만, 성질 급한 낙엽들이 쌓여 있는 곳을 밟으면서 부스럭 소리도 즐긴다.


연못에 비친 쌍계루의 풍경

 쌍계루 근처 연못에서 사진 찍느라 여념없는 사람들을 지켜보면서 나도 쌍계루의 아름다운 모습을 마음과 카메라에 담는다.  저만치 앞에서 혼자 걷고 있는 여인을 따라 정신없이 올라가보니, 청진암이다. 혼자 오셨어요? 뒤돌아 말을 걸어주는 것이 못내 고맙고 반가워서 금새 친해졌다. 알고보니, 나보다 몇 살 연상이다. 남편분이랑 함께 여행중이라는데, 남편은 주차장에서 자고 있을 거란다. 여행을 시작한지 열흘쯤 지났는데, 지난 밤엔 차에서 주무셨다고.  처음 만난 사람인데도 이런 저런 얘기에 시간가는 줄 모르고 정신없이 수다를 늘어놓았더니, 언니 그런 내가 맘에 드신단다. 여자에게 헌팅당하기는 처음이다. ^^;; 기꺼이 서로 연락처를 주고 받았다. 속초에 오면 놀러오라고 하신다. 앗싸!


백양사 대웅전-뒤에 펼쳐지는 병풍같은 학바위가 일품이다 - 사진이 원작을 못 따라감이 아쉽다


속초에 사신다는 길조 언니를 찍은 유일한 사진이다

백양사 뒤 계곡을 따라 3.5km쯤 올라간 곳에 자리잡은 운문암에서 내려다보는 전망이 가장 좋다는데, 이번엔 처음부터 등산보다는 그냥 여유있게 걷겠다고 마음 먹은 터라 아쉽지만 다음을 기약하며 발길을 돌린다. 주차장에서 길조 언니와 아쉬운 이별을 하고 천천히 내려와서 좀 기다리는데, 버스가 한 대 들어오길래 봤더니 아침에 백양사로 올 때 탔던 버스의 그 운전기사 아저씨가 아닌가. 어, 아침이랑 좀 달라보이시네요. 어허, 아가씨가 아침엔 정말 비몽사몽이었나보네. 네, 그랬나봐요. 하하하. 커피 한 잔 주고받으면서 기분좋게 얘기를 나눈다. 장성터미널에서 잠깐 뵜던 다른 아저씨가 오셨는데, 백양사역은 왜 가냐고 물으시길래, 김제로 일몰을 보러 간댔더니, 어허, 아가씨 사랑의 아픔이 있나부네, 하신다. 아, 그런가. 마음이 조금 뜨끔하다. 11시 40분경, 손주가 보고 싶어 아들 집에 가신다는 한 할아버지의 묵직한 보따리짐들이 너무 무거워보여 잠깐 들어드린다. 플랫폼에서 기차를 기다리는 사람은 오직 그 할아버지와 나 뿐이다. 기분좋은 바람이 뺨을 스치고 지나간다. 평화로운 기분이다.

2004년 10월 23일 12:19 김제역

하마터면 졸다가 못 내릴 뻔 했다. 역 앞 기사 식당에서 육개장 한 그릇 먹고 거전마을로 가는 버스를 탔다. 만경강 하구의 거전마을로 가는 길은, 우리 나라 유일의 지평선 축제가 열릴 정도로 드넓은 벌판을 끼고 수십분 동안 시원스레 달릴 수 있는 길이다. 멀리 보이는 나지막한 산들이 흐릿하게 보일 때는 정말 지평선만 있는 것같기도 하다. 거전마을의 오솔길을 조금 걸어 들어가면 눈 앞에 고즈넉한 갯벌이 펼쳐진다.


만경강 하구의 거전마을에서 보는 갯벌풍경


아무 방파제나 털썩 주저앉아 멍하니 갯벌을 바라본다. 낡은 배들의 시체(?)들이 다소 쇠락한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어쩐지 한적한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마을 입구에선 몇 명의 낚시꾼들이 망둥어를 잡느라 여념없다.


거전마을 - 낚시꾼의 하루


다리 위에서 낚시하는 사람들의 그림자


만경강 하구의 어느 풍경

만경강 하구 ....이준관

만나자.
만날 테면 만경강 하구에서 만나자.
만나면, 우리는 머나면 서해 바다가 된다.
숭어잡이에서 돌아온 배에서
지느러미가 푸른 숭어를 보자.
숭어야, 비안도 앞바다의 푸른 파도는 잘 있는가.
보름달 뜨면 알을 까러 바닷가로 몰려나오던
게들은 잘 있는가

마늘을 뽑는 아낙네들이 강을 바라본다.
물빛을 닮은 그네들의 눈 밑까지 강물이 넘실대고,
갈대뿌리를 쪼아대던 물새떼들이 강물을 차고 날아 오른다.
아낙네들의 등적삼이 파랗게 젖는다.

무당집이 있는 언덕을 올라가면,
서러웁게 머리를 박박 밀어버린 무당집 딸.
낮달 속에 숨은 무당집 딸.
서러운가? 서러우면 밥풀꽃 속에 코를 묻고
미치도록 강물 냄새를 맡아라.

슬픔은 저 혼자 깊어져 강바닥에 닿아라 하자.
바지락을 캐고,
고기 대신, 새우 그물에 노을을 뜨는,
낮은 처마에 불을 켜는 사람들.
만나자.
만날 테면 만경강 하구에서 만나자. 
 

 http://blog.naver.com/123jina/3620179에서 발췌

 아마도 난 제대로 된 만경강 하구를 보지 못한 것이리라. 하지만 '슬픔이 저 혼자 깊어서 강바닥에 닿는' 듯한 느낌은 무엇인지 알 것 같다. 쇠락한 슬픔. 허리가 구부러진 할머님의 총총 걸음에서도. 안타깝다.

거전마을에서 되돌아나와 10여분쯤 달리면 멀리 사보이모텔을 지나 망해사 표지판이 나온다. 왼쪽의 오르막길로 접어들면 두 갈래 길이 나오는데, 왼쪽 길은 낙조대로 오른쪽 길로 내려가면 망해사다. 망해사는 그다지 큰 절은 아니지만 한눈에 들어오는 풍경이 아늑하고, 바닷가 벼랑위에 세워진 범종각 뒤로 펼쳐지는 풍경이 그림처럼 아름답다. 자판기 커피 한 잔의 따뜻함을 안고서 낙조대로 올라간다. 해가 지려면 아직도 두 시간 남짓 남았는데, 쉴새없이 몰아치는 바람이 꽤 차갑다.  낙조대에서는 갯벌도, 넓은 들판도 한눈에 들어온다. 갯벌을 보다가 뒤를 돌아보면 추수가 끝난 누런 들판에서 짚 태우는 연기가 안개처럼 퍼진다.


망해사 옆 낙조대에서 바라본 들

 오후 5시가 넘어간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수록 낙조대에 몰아치는 바람은 매섭고 차갑기 그지없다. 따뜻한 차를 마셔대도 잠시 뿐이다. 가방 안에 들어있는 옷이란 옷은 몽땅 꺼내입고 신문지를 깔고 앉아서 온몸으로 바람을 맞는다. 온몸이 주체할 수 없을만치 덜덜 떨려도 절대로 포기할 순 없다. 절박한 기분이었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이 일몰을 보기 위해서 내가 존재하는 것 같았다.


낙조대에서 보는 주홍빛 하늘


어느덧 해는 산 뒤로 넘어가고, 금새 주위는 어둑어둑해진다. 언덕을 내려와 심포항쪽으로 가는 길에 하늘은 금방 깜깜해졌다. 나처럼 걷는 사람은, 아니 사람이라곤 찾아볼 수 없어서 조금 무섭다. 쌀쌀한 바람에 코 끝이 알싸하다. 시골에서는 밤이 깊고 길어 해가 넘어갈 즈음엔 모두들 따뜻한 방에서 두런두런 이야기꽃을 피우겠지. 따뜻하고 아늑한 불빛을 볼때마다 몹시도 절박하고 필사적인 기분이 된다. 밤길 떠나는 나그네의 심정이 이랬을까. 아직 묵을 곳을 찾지 못했던 나는, 미리 적어놓았던 <사보이모텔>의 전화번호를 눌렀다. 혹시나 방이 없으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다행히도 방이 있단다. 일단 마음이 놓였다. 버스를 타고 오면서 대충 봐뒀던 길이건만, 밤에 걸으니 낯설다. 그래도 씩씩하고 용감하게 팔을 휘휘 내저으며 걸어간다. 이것도 재밌는 경험이군. 왠지 즐거워진다.  심포항에는 횟집뿐이라 저녁은 굶게 생겼다. 모텔 주인아줌마에게 요기할만한 곳을 물어 찾아갔지만, 계모임 손님이 우선이라 백반은 사절이란다. 한참동안 슈퍼를 찾아 구한 과자 몇 봉지가 그 날 나의 저녁식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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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녀 2004-11-15 1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 가을엔 꼭 단풍구경을 가고 싶었는데, 어쩌다 보니 가을이 다 가네요.

이러다 나중에 꼬부랑 할머니 되어서, 가고싶어도 못가는 거 아닌가 몰라요...

혼자 열심히 다니시는 무탄트님이 부러워요...

함께 사는 남자랑 세 번째 만나던 날인가? 백양사에 갔었는데...

무탄트 2004-11-15 1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랑녀님, 다운될까봐 조금씩 올리는 글을 벌써 봐주시다니... 하하하

아직 이야기는 더 남았으니 계속 지켜봐주시어요. ^^;;;

그리고 호랑녀님도 혼자 다닐 수 있으세요. 좀 쓸쓸할 때도 있지만 혼자 가는 여행이 더 좋고 마음에 남음은 말할 것도 없구요. ^^

호랑녀 2004-11-17 09: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뭐가 엄청 더 올라왔군요... ^^ 성질도 급하지...

사진 참 좋네요. 사진에도 일가견이 있으시군요.

무탄트 2004-11-17 1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직 부족한 게 많은 사진이지만, 여행다니면서 혼자만 보기 아까운 풍경들을 조금씩 맛만이라도 보여드리는 것으로 위안삼고 있습니다. ^^
 

평상시에 나라면, 이 정도로 죽고 싶어지다니 그래서야 쓰나, 이랬을꺼다.

그런데 지금은,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몹시도 괴롭다.  사실 늑장부린 내 잘못도 조금 있긴 하지만, 결정적인 잘못은 아무리 연락해도 안되는 나의 전 상사에게 있다고 볼 수가 있다. 그가 나에게 자신이 전부 책임지겠다는 뉘앙스의 말을 던졌으므로. 그가 이직하기 전에 나에게 그 부분에 대해선 전혀 인수해준 게 없으므로 아는 게 전혀 없는 난 그런 그의 말을 평소처럼 철썩같이 믿는 어리석음을 발휘한 것이고. 그가 회사를 그만두기 전에도 그랬듯이, 그는 결정적인 부분에서 나에게 아무런 보탬도 되지 않는다. 오히려 평온한 나를 깊숙이 휘저어놓았을 뿐이다.

아까 전까지 난 몹시도 울고 싶었다. 지금 회사에 들어와서 5년이 넘도록, 내가 공적인 일로 울어본 것은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 두 번 정도는, 말도 안되는 일로 목소리 높여 호들갑스럽게 고함지를 줄만 아는, 자신의 감정을 컨트롤 할 줄 모르는 아이같은 어느 이사와 대판 싸우고 너무도 분해서 나도 모르게 저절로 눈물이 나왔던 것 빼곤, 글쎄 특별히 기억나는 것도 없다. 아일랜드의 한 대사처럼, 눈물을 흘리기보단 욕을 먼저 해댔으니까. 가끔 혼자서 궁시렁 거리면서, 혹은 다른 이들과 대놓고 맘에 안드는 상사를 씹으면서 수다를 떨고 나서, 집에 들어오면 회사에서 있었던 일은 깨끗하게 잊어버리는 게 내 나름의 스트레스 해소법이었으니까.

지금 난 선택의 기로에 서서, 그대로 도망가버리고 싶은 마음을 꾹 누르고 있다. 내가 견딜 수 있는 만큼은 견뎌주겠다고, 부딪혀주겠다고 결심했으므로. 하지만, 요 며칠 같아선 나의 그릇이 작음을 절실히 느끼며 이 모든 걸 접어버리고 싶을 만큼 힘들고 우울하다.  물론 나보다 더 힘든 상황에 놓여 있을 사람이 바로 우리 사장이고, 그런 그가 나를 닥달하는 심정을 이해한다.  그래서 난 그가 나를 닥달하고 힘들게 한 사실보다, 그가 나에게 '미안하다'고 한 말에 더 눈물이 날 것 같다. 그 말엔 마치 '이젠 끝이야'라고 말하는 것같은 그런 비장한 기운이 감도는 것만 같아서. 남편의 축 쳐진 어깨를 보는 게 마음아파 싫은 아내의 마음처럼.  이렇게 얘기하니, 사장과 내가 남다른 사이같이 느껴지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인간적인 공감의 선을 넘지 않는다.

난 지금 사막을 꿈꾸고 있다. 죽음이 아니라.  진짜 사막으로 가기 전에 내 마음 속의 사막을 들여다 볼 것이다. 이제 그 날이 머지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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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11월 3일 오후 7시경,  쓸쓸한 사무실을 뒤로 하고 코트 깃을 세우고 총총걸음으로 버스정류장으로 가서 노란색 버스를 기다리다가 문득 앞에 서 있는 남자의 옆모습을 보는 순간,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되돌아오지 않는 사랑에 괴로워하다가 결국 내가 먼저 돌아서버린(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내가 차 버린) , 한때 내가 몹시 사랑했던 과선배의 얼굴이 바로 눈앞에 있는 게 아닌가. 순간 난 얼른 고개를 돌리고 뒤돌아 나무 뒤로 숨어버렸다. 나무 뒤에서 그가 맞는지 아닌지 훔쳐보면서 그의 행동을 주시했다. 약간 떨어진 곳에서 불빛 사이로 언뜻 보이는 그 남자의 얼굴은 어떻게 보면 그의 얼굴이 아닌 듯도 했지만, 두 손을 바지 주머니에 넣는 습관이나 손바닥 전체로 머리를 쓸어올리는 모습은 영락없는 그 같았다.  가슴이 마구 뛰었다. 차마, 아니 절대로 그에게 예전과는 많이 달라진-여실히 망가진 내 얼굴을 보일 순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하나...  바로 그때 내가 기다리던 노란색 버스가 들어왔다. 그가 그 버스를 타려고 하는지 잠시 지켜본 후, 난 튀어나가듯 그의 옆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가 맞는지 다시 한번 확인하고 싶었지만, 절대로 뒤를 돌아볼 순 없었다. 내 얼굴은 철저히 숨겨야 했으니까. 버스에 오르자마자 창문 가까이 자리잡고 밖을 주시했지만, 먼지로 뿌옇게 흐려진 유리창을 통해 그를 제대로 살펴보는 것은 불가능했다. 곧 버스는 출발했고, 금방 그의 모습은 뒤로 멀어져갔다.

같은 날 오후 7시 30분경,  용산역에 내리자마자 바로 눈 앞에 있는 의자에 앉아 있던 커플남이 커플녀에게 뜨거운 키스를 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대담함에 미소 지으며 그들을 스치고 지나가 조금 떨어진 에스컬레이터에 오른 후에도, 그 열기는 식을 줄 몰랐다. 그들의 키스는 계속되었고, 난 과연 그들이 얼마동안 그러고 있을 건지 몹시 궁금해져서 에스컬레이터에 올라 선 후에도 계속해서 그들을 주시했다. 그들은 내 시야에서 사라질 순간까지도 떨어질 줄 모르고 정신없이 서로를 탐닉했다.      문득 난 그들이 부러워졌다...

갑자기 나의 가슴에 쓸쓸한 바람이 들어왔다.

지금 회사가 용산에 있었을때, 용산역 길목에 단골로 가던 튀김집이 있었는데, 그 아주머니 인심이 얼마나 좋으신지 1000원치를 먹으면 배가 가득찼다. 거의 언제나 돈을 내는 것보다 더 많은 튀김들을 먹었으니까. 그렇게 팔아서 손해는 안 보실지 걱정이 될 정도였다.  지금도 용산역 부근을 가게 될 때마다 항상 그 아주머니가 생각이 나서 꼭 한번씩 들리곤 하는데, 어제도 예외는 아니었다.  아주머니의 여전한 얼굴을 보니 몹시도 반가웠고, 아주머니표 특제 양념 닭튀김을 먹으며 변하지 않은 맛에 감탄사를 연발하며 즐거워했다.  잠깐 요기를 한 후에 애들이랑 같이 먹으려고 도너츠 2천어치만 싸달라고 했더니, 아주머니께선 여전한 인심을 발휘하셔서 튀김을 한 가득 싸서 넣어 주신다. 아주머니와 옥신각신 한 후에 돌아서는 내 마음이 불룩한 비닐주머니만큼이나 따뜻함으로 가득차서, 난 더이상 외롭지도 쓸쓸하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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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나를 사랑했을까.

긴 시간이 지난 후 만난 그의 표정은 싸늘하고 냉소적이었다.  난 그저 먹먹하기만 한데, 그는 아직도 분노에 찬 듯한 눈동자로 나를 쏘아보았다.   그 옛날, 그는 나를 사랑했을까.

나는 눈동자를 기억한다.  

내겐 거울을 통해서든, 바로 쳐다보는 것이든, 영화 속에서든, 눈동자를 통해 전해져 오는 느낌이 기억에 가장 오래 남아있다. 그래서 내가 잊을 수 없는 건, 바로 그 '눈동자' 이다.

그의 눈동자가 내게 닿아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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