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0월 24일 아침 7시 경

꽤 이른 시간인데도 눈이 뜨인다. 어젯밤 보통때보다 일찍 잠이 든 탓일게다. 일출을 볼까 생각하다가 서해안에서 뭔 일출, 그냥 좀더 뒹굴하기로 한다. 어젯밤 요기하고 남은 과자 부스러기를 털어넣는다. 아침밥이 따로 있나. 뱃속이 대충 차면 그만이지. 아, 왠지 흘러가는 시간을 놓치고 있는 것 같아 아까운 생각이 든다. 생각보다 몸의 컨디션도 괜찮은 것 같고 이만 일어나야겠다. 어제 추위에 떨만큼 떨었으니 단단히 챙겨입고 모텔을 나선다. 심포항 주변을 돌아보고 금산사로 가야지. 아직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한적하다. 차를 몰고 오는 사람은 꽤 있다. 심포항의 백합이 유명하단다. 뭐, 같이 먹을 사람이 있어야 먹어보지. 다음에 누군가와 다시 와야겠다 마음 먹는다. 




심포항의 아침




느긋한 기분으로 슬슬 방파제를 향해 걸어간다. 방파제 위에 세워져 있는 오토바이마저 친근하고 정겹다. 포근한 느낌이 드는 갯벌을 바라보고 있으니 마음이 평온해진다. 한참을 그러고 있다가 엉덩이를 털고 몸을 일으킨다. 손님을 맞이하는 백합 아주머니의 손길이 꽤 분주하다. 심포항이 깨어나고 있다. 난 기지개를 펴고 있는 심포항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단호하게 떠난다.  세상 끝에 마음을 묻고.

김제버스터미날 옆 조그만 분식에서 아침 겸 점심을 먹을 요량으로 따끈한 국물의 만두국을 시켰다. 아, 가격은 무지 싼데(2,500원), 싼 값을 하는 멀건 국물이라니. 그래도 시장이 반찬이라 국물 하나 남기지 않고 모조리 먹어치웠다. 배를 채울 수 있다는 기쁨으로.

2004년 10월 24일 11:03

금산사행 버스에 몸을 싣다. 금산사로 가는 길 역시 가도가도 끝이 없는 황금빛 들판의 천지이다. 버스 창으로 들어오는 햇볕이 가을볕답지않게 따갑다.

모악산 금산사는 큰 절이다. 모악산과 금산사란 이름이 큰 산을 뜻하는 고어 엄뫼, 큼뫼에서 비롯됐다고 하더니, 과연 마당도 널찍하고 시원시원하다. 오른쪽에 당간지주, 왼쪽에 금강문을 지나 보제루 아래를 통해 계단을 오르면 눈 앞이 확 트이면서 오른쪽으로 비스듬히 삼층 미륵전이 제일 먼저 눈에 띈다.  겉으로 보기엔 3층이지만 안에서 보면 모두 트인 통층구조인 미륵전은 하부의 규모에 비해 위로 올라갈수록 급격히 체감되어 묵직하고 웅장한 느낌을 준다. 미륵전 안에는 건물 안에 들어 있는 입불로는 가장 큰 높이의 미륵입상과 보살상이 모셔져 있다.  미륵전 앞 감나무에선 빨갛게 감이 익어간다.

 
미륵전과 감나무

하늘이 너무 파랗다. 너무 파래서 가슴이 시릴 나이가 되었단다.  미륵전 북쪽의 송대라는 높은 대에서 내려다보는 경치가 일품이다.  금산사 경내가 한눈에 보인다. 가슴이 확 트이는 것 같다.


송대에서 내려다보는 금산사 경내


송대 위의 오층석탑과 석인상


미륵전에서 올려다 보는 송대 위 오층석탑

호남 미륵신앙의 도량이라는 금산사는 드넓은 경내에 국보 제 62호로 지정된 미륵전을 비롯하여 노주, 석련대, 오층석탑, 혜덕왕서 진응탑비, 당간지주, 석종, 육각다층석탑, 석등 등 수많은 보물과 문화재를 가지고 있다. 넓은 마당 곳곳에 놓여있는 그 보물들을 찾아 돌아보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송대에 올라 금산사 전경을 내려다본다. 칼 하나 옆에 차고 세상을 굽어보는 장군의 기분이 이럴까. 세상을 다 가진 것같은 기분이다.  자, 이제 돌아가야 할 시간이다!

2004년 10월 24일 15:20

피곤했나 보다. 금산사에서 김제행 버스를 타자마자 거의 비몽사몽 헤롱대다가 그만 내려야할 곳을 지나치고 말았다. 터미날을 가려면 어느 방향으로 가야하는지 감도 잡을 수 없는 상태. 졸지에 김제 택시를 타는 수밖에. 그래도 운때가 맞았는지 아슬아슬하게 15:50발 인천행 마지막 버스를 타는 요행을 누리게 되었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순 없을 터. 이틀동안 꽤나 정든 김제땅을 떠나게 되서 아쉽지만, 나를 기다리고 있는 따뜻하고 포근한 나의 집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이 기쁘다. 언제나 그렇지만, 돌아갈 곳이 있다는 사실이 더없이 소중하게 생각된다. 

 나를 아는 이 없는 곳에서 나를 버리고, 다시 나를 채우고 돌아온다. 일상에 지친 나에게 여행은, 그렇듯 여행을 통해 나를 버리고 나를 새로이 채워서 또다시 살아내게 하는 힘이다.   여행은...날 채우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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