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1월 3일 오후 7시경,  쓸쓸한 사무실을 뒤로 하고 코트 깃을 세우고 총총걸음으로 버스정류장으로 가서 노란색 버스를 기다리다가 문득 앞에 서 있는 남자의 옆모습을 보는 순간,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되돌아오지 않는 사랑에 괴로워하다가 결국 내가 먼저 돌아서버린(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내가 차 버린) , 한때 내가 몹시 사랑했던 과선배의 얼굴이 바로 눈앞에 있는 게 아닌가. 순간 난 얼른 고개를 돌리고 뒤돌아 나무 뒤로 숨어버렸다. 나무 뒤에서 그가 맞는지 아닌지 훔쳐보면서 그의 행동을 주시했다. 약간 떨어진 곳에서 불빛 사이로 언뜻 보이는 그 남자의 얼굴은 어떻게 보면 그의 얼굴이 아닌 듯도 했지만, 두 손을 바지 주머니에 넣는 습관이나 손바닥 전체로 머리를 쓸어올리는 모습은 영락없는 그 같았다.  가슴이 마구 뛰었다. 차마, 아니 절대로 그에게 예전과는 많이 달라진-여실히 망가진 내 얼굴을 보일 순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하나...  바로 그때 내가 기다리던 노란색 버스가 들어왔다. 그가 그 버스를 타려고 하는지 잠시 지켜본 후, 난 튀어나가듯 그의 옆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가 맞는지 다시 한번 확인하고 싶었지만, 절대로 뒤를 돌아볼 순 없었다. 내 얼굴은 철저히 숨겨야 했으니까. 버스에 오르자마자 창문 가까이 자리잡고 밖을 주시했지만, 먼지로 뿌옇게 흐려진 유리창을 통해 그를 제대로 살펴보는 것은 불가능했다. 곧 버스는 출발했고, 금방 그의 모습은 뒤로 멀어져갔다.

같은 날 오후 7시 30분경,  용산역에 내리자마자 바로 눈 앞에 있는 의자에 앉아 있던 커플남이 커플녀에게 뜨거운 키스를 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대담함에 미소 지으며 그들을 스치고 지나가 조금 떨어진 에스컬레이터에 오른 후에도, 그 열기는 식을 줄 몰랐다. 그들의 키스는 계속되었고, 난 과연 그들이 얼마동안 그러고 있을 건지 몹시 궁금해져서 에스컬레이터에 올라 선 후에도 계속해서 그들을 주시했다. 그들은 내 시야에서 사라질 순간까지도 떨어질 줄 모르고 정신없이 서로를 탐닉했다.      문득 난 그들이 부러워졌다...

갑자기 나의 가슴에 쓸쓸한 바람이 들어왔다.

지금 회사가 용산에 있었을때, 용산역 길목에 단골로 가던 튀김집이 있었는데, 그 아주머니 인심이 얼마나 좋으신지 1000원치를 먹으면 배가 가득찼다. 거의 언제나 돈을 내는 것보다 더 많은 튀김들을 먹었으니까. 그렇게 팔아서 손해는 안 보실지 걱정이 될 정도였다.  지금도 용산역 부근을 가게 될 때마다 항상 그 아주머니가 생각이 나서 꼭 한번씩 들리곤 하는데, 어제도 예외는 아니었다.  아주머니의 여전한 얼굴을 보니 몹시도 반가웠고, 아주머니표 특제 양념 닭튀김을 먹으며 변하지 않은 맛에 감탄사를 연발하며 즐거워했다.  잠깐 요기를 한 후에 애들이랑 같이 먹으려고 도너츠 2천어치만 싸달라고 했더니, 아주머니께선 여전한 인심을 발휘하셔서 튀김을 한 가득 싸서 넣어 주신다. 아주머니와 옥신각신 한 후에 돌아서는 내 마음이 불룩한 비닐주머니만큼이나 따뜻함으로 가득차서, 난 더이상 외롭지도 쓸쓸하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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