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상시에 나라면, 이 정도로 죽고 싶어지다니 그래서야 쓰나, 이랬을꺼다.
그런데 지금은,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몹시도 괴롭다. 사실 늑장부린 내 잘못도 조금 있긴 하지만, 결정적인 잘못은 아무리 연락해도 안되는 나의 전 상사에게 있다고 볼 수가 있다. 그가 나에게 자신이 전부 책임지겠다는 뉘앙스의 말을 던졌으므로. 그가 이직하기 전에 나에게 그 부분에 대해선 전혀 인수해준 게 없으므로 아는 게 전혀 없는 난 그런 그의 말을 평소처럼 철썩같이 믿는 어리석음을 발휘한 것이고. 그가 회사를 그만두기 전에도 그랬듯이, 그는 결정적인 부분에서 나에게 아무런 보탬도 되지 않는다. 오히려 평온한 나를 깊숙이 휘저어놓았을 뿐이다.
아까 전까지 난 몹시도 울고 싶었다. 지금 회사에 들어와서 5년이 넘도록, 내가 공적인 일로 울어본 것은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 두 번 정도는, 말도 안되는 일로 목소리 높여 호들갑스럽게 고함지를 줄만 아는, 자신의 감정을 컨트롤 할 줄 모르는 아이같은 어느 이사와 대판 싸우고 너무도 분해서 나도 모르게 저절로 눈물이 나왔던 것 빼곤, 글쎄 특별히 기억나는 것도 없다. 아일랜드의 한 대사처럼, 눈물을 흘리기보단 욕을 먼저 해댔으니까. 가끔 혼자서 궁시렁 거리면서, 혹은 다른 이들과 대놓고 맘에 안드는 상사를 씹으면서 수다를 떨고 나서, 집에 들어오면 회사에서 있었던 일은 깨끗하게 잊어버리는 게 내 나름의 스트레스 해소법이었으니까.
지금 난 선택의 기로에 서서, 그대로 도망가버리고 싶은 마음을 꾹 누르고 있다. 내가 견딜 수 있는 만큼은 견뎌주겠다고, 부딪혀주겠다고 결심했으므로. 하지만, 요 며칠 같아선 나의 그릇이 작음을 절실히 느끼며 이 모든 걸 접어버리고 싶을 만큼 힘들고 우울하다. 물론 나보다 더 힘든 상황에 놓여 있을 사람이 바로 우리 사장이고, 그런 그가 나를 닥달하는 심정을 이해한다. 그래서 난 그가 나를 닥달하고 힘들게 한 사실보다, 그가 나에게 '미안하다'고 한 말에 더 눈물이 날 것 같다. 그 말엔 마치 '이젠 끝이야'라고 말하는 것같은 그런 비장한 기운이 감도는 것만 같아서. 남편의 축 쳐진 어깨를 보는 게 마음아파 싫은 아내의 마음처럼. 이렇게 얘기하니, 사장과 내가 남다른 사이같이 느껴지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인간적인 공감의 선을 넘지 않는다.
난 지금 사막을 꿈꾸고 있다. 죽음이 아니라. 진짜 사막으로 가기 전에 내 마음 속의 사막을 들여다 볼 것이다. 이제 그 날이 머지않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