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은 참 즐겁게 보냈다.




새로운 친구 말대로, 나이 먹어서 마음 맞는 사람 만나기도 힘들고 친구 되기는 더더욱 쉬운 일이 아니라는데, 좋은 친구가 한 명 생겼다. 나보다 나이가 두 살 많긴 하지만, 무슨 상관인가. 친구가 되자고 들면 60된 할머니도 상관없는 그런 관계를 은근히 꿈꾸지 않았던가. 그 새로운 친구 진영이와 새벽 4시가 넘도록 술을 마셨다. 가벼운 맥주로 시작해서 노래방에서 열을 올린 후, 출출한 배와 가슴을 다시 따뜻한 정종대포와 오뎅국물로 채웠다. 매사에 뜨뜻미지근한 내가 화끈하면서도 분명한 그의 카리스마에 끌렸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새벽 4시 반, 새로운 친구를 택시태워 보내고, 다시 나 혼자서 술을 퍼마시기엔 뭣한 시간이어서, 10년 친구가 묵고 있다는 찜질방이 있는 서울역까지 한번 걸어보자 싶었다. 신발이 좀 불편하긴 했지만 다행히도 아주 차가운 날씨는 아니어서 걸을만 했다. 이대, 아현, 충정로를 지나 서울역 방향으로 걸어가니 가는 길 건너편 왼쪽으로 '실로암 불가마'라는 간판이 붙은 커다란 24시간 찜찔방 건물이 보였다. 분명 저기 있을 게야. 주위를 둘러봐도 그 건물 말고는 그럴싸한 찜질방이 보이지 않는다. 그 건물 근처 해장국집을 눈여겨 본 후 아파오기 시작하는 발바닥때문에 조심스레 걸어 서울역으로 갔다. 6시가 조금 지난 서울역에는 꽤 사람들이 많았다. 이른 새벽부터 어디론가 떠나는 사람들. 난 자리잡고 앉아서 친구에게 문자를 보낸 뒤 읽다 만 책을 펴들었다. 눈이 시큰거려 잠시 졸았는데, 친구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어디고? 나, 서울역이지. 오래 기다렸나. 아니, 30분쯤 됐어. 신촌에서 서울역까지 걸어왔거든. 정말이가? 지금 씻고 나갈께. 응, 도착하면 전화해.




가슴이 두근거렸다. 10년만에 만난 친구에게 많이 변한 내 모습을 보여줘야 할지 한참을 망설였다. 지금 내 모습을 보면 많이 실망할텐데. 그래도 왠지 그 친구에겐 내 모습을 보여줘 실망하더라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꽤 오랜 시간이 흐른 듯한 느낌이 들어 친구에게 전화하려다가 눈을 들어 주변을 살펴보니, 그 친구가 보였다. 여전한 모습이었다. 살이 많이 쪘다는 친구의 농담을 슬쩍 받아 넘기고 웃었다. 친구의 유머감각이 여전했다. 10년을 훌쩍 넘긴 후에 다시 만나도 예전처럼 농담을 주고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 고맙고 행복해서 정말 많이 웃었다. 눈물이 나고 배가 아플 정도였다.




눈여겨 봐 뒀던 해장국집에서 멀겋지만 시원한 맛의 해장국을 걸치고, 조조할인되는 영화를 하나 보자면서 종로로 갔다. 웬걸, 8시 30분이 되었는데도 극장 문은 모두 닫혀 있었고 우린 탑골 공원 앞 버거킹에서 커피를 마시며 카페인을 충전했다. 서울극장에서 10시 30분 '나비효과'를 봤는데, 전날 밤을 샜던 터라 처음부분에서 깜빡 코를 골았다가 친구가 깨우는 것보다도 주인공의 아버지가 주인공의 목을 조르는 장면에서 엄청난 음향에 화들짝 놀라 잠을 깼다. 이번엔 내가 친구의 조는 모습을 잡아내려고 옆을 돌아보았지만 그는 열심히 영화에 집중한 표정이었다. 나는 신기했다. 그가 10년 전 모습 그대로 내 옆 있는 것 같아서. 친구랑 영화를 보고 인사동에서 점심을 먹고 정독도서관에 가서 200원자리 자판기 커피를 빼들고 잠시 벤치에 앉았는데 햇볕이 따뜻했다. 요즘 내게 따사로운 햇볕이 주는 감동은 매번 남다르게 느껴진다. 친구의 농담에 한참을 배꼽잡고 웃다가 도서관을 나와 삼청동길을 걷는다. 오래된 집들이 아기자기하게 이쁘다. 발바닥에 불이 날 것 같아서 삼청공원의 벤치에 앉아 따뜻한 햇볕을 쬐며 막간을 이용해서 졸다가 북촌한옥마을의 어느 골목을 헤맨다. 발바닥에 불이 날 지경이라 한걸음 한걸음이 고통의 연속이지만, 오랜만에 만난 친구를 그냥 그대로 보낸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일. 강남고속터미날에서 밥을 먹여 친구를 보내면서, 그를 멀리 떠나보내는 것도 아닌데, 이제 맘만 먹으면 언제든 볼 수 있을텐데, 이상하게도 서운한 기분이 들었다.




10년 친구를 고속버스에 태워 보내고 돌아오는 길은 실신할 것 같이 밀려오는 졸음과의 싸움의 연속이었지만, 새로운 친구를 사귀고 여전한 10년 친구를 만나서 보냈던 행복한 시간들은 한동안 내 마음에 남아 살아갈 힘을 줄 것이다. 친구를 다시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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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11월 28일 아침


어젯밤 일찍 잠이 든 때문인지 일찍 눈이 뜨인다. 아직 모두들 잠이 덜 깬 사이, 사진기를 들고 아침 산책을 나선다. 해는 점점 떠올라 산을 온통 주홍빛으로 물들이고, 모텔 뒷쪽에는 흑염소 한 마리가 나를 보더니 내쪽으로 오려고 몸부림치면서 매애~~ 애달프게 불러댄다. 길 건너편 산중턱에서 내려다보는 전망이 좋을 것 같아 올라갈 길을 찾는데, 어딘가에 묶여있지 않은 듯 보이는 개 한 마리가 뛰쳐나와서 정신없이 짖어대는 통에 그만 용기를 잃어버렸다. 난 개가 무섭다. 신선한 아침공기 들이마시며 땀이 조금 날듯말듯하게 걸어다니다가 방으로 들어가니 기분이 좋다. 애들은 하나둘씩 일어나 씻고, 우린 어제 맛있게 저녁을 먹은 식당으로 내려가 아침식사로 재첩정식을 시킨다. 따뜻한 햇살아래 약간 쌉싸름한 재첩국과 나물반찬들을 느긋하게 먹으면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이 시간이 난 견딜 수 없이 행복하다. 사랑이 무언지,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관계가 어떤건지, 어떤 이야기를 나눠도 좋기만 하다.



모텔 뒤 전경



나의 사랑하는 친구들과 아침을 먹으면서


곧 이별의 시간이 다가왔다. 아침 먹기 전 얘기한 대로 나와 원진만이 원래 마음먹은 대로 계속 걷기로 하고, 몸이 편찮은 남편이 걱정되는 미혜는 먼저 서울로 올라가고 어제 찬 바람 맞으며 무리한 결과(이건 나의 잘못이다. ㅜ.ㅜ) 악화된 감기로 몸이 아픈 은선은 일단 순천에서 기다리기로 한다.  아침을 먹고 난 후 짐을 꾸려 문을 나서자마자 하동으로 가는 버스가 한 대 오는 바람에 제대로 된 이별도 하지 못하고 둘을 보내려니 마음이 짠하다. 원진과 나는 다시 19번 국도로 돌아왔다. 햇살은 따뜻하다 못해 뜨겁게 우릴 반긴다. 조금 걷다보니 길 옆으로 야생(?)차밭이 보이고, 밭을 둘러싸고 있는 대나무숲 너머로 섬진강의 하얀 모래톱이 보인다. 대나무숲으로 난 길을 뚫고 지나가 하얀 모래 위에 우리의 발자국을 남긴다. 바로 앞에서 보는 섬진강물은 생각했던 것보다도 훨씬 깨끗하다. 모래가 투명하게 비칠 정도다. 물빛이 은빛이다.


.
19번 국도변에서 앞서가는 원진



섬진강 모래를 밟다



섬진강에 손을 담그는 원진



야생(?)차밭이라고 보기엔 너무 질서정연한가? ^^;;


헤헤헤이~~ 노래를 부르고 싶은 기분이다. 하지만 가사를 제대로 아는 노래가 없다. 이럴 때를 대비해서 진작에 알아뒀어야 하지만, 어쨌거나 신나서 말처럼 뛰어다니고 싶은 기분이다. 어울리지도 않는 밤에 피는 장미~를 불러대며 걷다가 맘에 드는 풍경이 나오면 사진기를 들이대고, 그러다가 뒤쳐지면 훨씬 앞서 있는 원진을 따라잡기 위해 정신없이 뛰어야 하지만, 그래도 말할 수 없이 자유로운 이 기분만은 어쩔 수가 없다. 평사리에 가까워오니, 아마도 드라마 <토지>를 찍기 위해 만든 것으로 보이는 세트장이 숨겨진 보물처럼 대나무숲에 살짝 가려져 있다. 앗싸! 정신없이 사진을 찍어댄다. 원진을 비롯해서 주위에 있는 모든 것이 나의 모델이다. 미혜와 은선도 같이 보면 좋았을 것을. 못내 아쉽다.



아마도 드라마 <토지> 세트장



초가집 앞에서 원진




초가집 옆 나룻배


셋트장을 지나니 섬진강변 바로 옆으로 둑이 하나 나 있다. 난 이 둑이 정말 사랑스럽다. 한 줄로 서서 걸어가야 하는 갓길과는 달리, 둑 위에서는 둘이서 어깨동무를 하고 걸어도 괜찮을 만큼 넉넉하고 여유롭다. 둑 위에서 바라보는 섬진강의 경치에 감탄하면서 걸어가고 있는데, 띠리리 전화가 온다. 미혜다. 너희 지금 둑길을 걷고 있지? 어? 어떻게 알았어? 나랑 은선이랑 하동으로 가면서 그 둑을 보고, 쟤들이 분명 저기를 걸어갈 거라고 예상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너희 둘이 보이네. 지금 우린 버스를 타고 서울로 가고 있어. 순천행 버스가 파업으로 오후에 두 대밖에 없대. 기다리기엔 시간이 넘 많이 남아서 은선이보고 같이 올라가자고 했지. 잘했네. 너 혼자 보낼려니 마음이 좀 그랬는데. 근데 순천가는 버스가 1시 30분이랑 3시 30분에 있대. 늦지 않게 가라구. 오케이~ 땡큐~ 전혀 생각도 못했는데, 우릴 지켜보는 이가 있다니 왠지 기분이 이상하다. 빙긋 웃으면서 원진이랑 둑 위를 걸어간다. 언니, 우리 나이 먹어도 이렇게 행복하게 다닐 수 있을까요. 그럼. 넌 할 수 있을 거야. 정말 행복하다, 그지? 이 순간을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둑 위에서 바라본 섬진강



재첩을 잡기 위한 그물인가...


19번 국도가 악양면 최참판댁으로 들어가는 길과 만나는 외둔삼거리를 지나면 왼쪽으론 악양의 드넓은 벌판이 훤하게 펼쳐지고, 오른쪽으론 섬진강변에 너무도 잘 정비되어 오히려 딱딱해 보이는 평사리공원이 자라잡고 있다. 아미산 자락 아래 드넓게 펼쳐지는 평야는 정말 시원하다 못해 악! 소리가 날만큼 아름답다. 막혀있던 가슴이 외둔삼거리를 지나는 순간 탁 트이는 기분이라고 할까. 순천행 버스의 파업으로 인해 쫓기는 시간만 아니었다면, 푹 쉬어가고 싶을 만큼 아름다운 곳이다. 이곳으로 들어오기 직전에 맞닥뜨렸던, 사이좋게 나란이 서서 섬진강변을 바라보고 있던 비석의 주인공도 지금 나와 같은 심정이었을까 궁금해진다.  




악양의 아름다운 평야 - 사진에 그 넓음을 다 담지 못함이 안타깝다.


상행선의 시작인 순천으로 가는 버스를 타려면 시간이 빠듯할 듯 싶어 하동으로 가는 버스를 잡아타려고 뒤를 흘금거리지만 좀처럼 보이질 않고, 우린 아름다운 다리를 가진 마을, 미점리로 들어간다. 삼거리 앞 수퍼에서 군것질거리를 사들고 나오는 순간, 눈 앞을 스치고 지나가는 하동행 버스. 세워달라고 손을 흔들어봤지만 소용없다. 순천행 버스 시간에 맞추려면 저 버스를 꼭 타야하는데... 중국의 악양과 그 경치가 비슷하여 악양이라 이름붙였다는 악양면의 소상팔경 중 하나인 악양루가 길 건너편의 담 뒤로 보이지만, 아쉽게도 시간이 없다. 히치하이킹이라도 하는 수밖에. 생각할 겨를도 없이 손을 내밀어 흔드니, 봉고차 한 대가 선다. 하동요~ 감사합니다~ 숨 넘어갈 듯 정신없이 봉고차에 몸을 실고, 수퍼 옆에 외로이 앉아 계시는 할머니의 왠지모를 슬픔이 감도는 표정을 마음에 담는다. 잊을 수 없는 우리의 여행도 막바지를 향해 달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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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11월 26일 22:57 영등포역에서 출발


다소 피곤함을 감수하고서라도 시간의 활용면에서나, 비용면에서나 유용한 밤기차를 즐겨 타지만, 사실 밤기차에서 눈붙이기는 쉽지 않다.  집에서라면 잠들고도 남은 시간인데도 다들 가슴이 설레서 그런 걸까, 무슨 할 얘기들이 그렇게 많은지 두런두런 얘기들 주고받는 소리가 은근히 신경쓰이기 때문이다. 다소 감기기운이 있는 은선은 맥주 한 캔 하더니 윗도리를 덮어쓰고 일찌감치 잠이 들었고, 원진도 곧 잠이 든 것 같은데, 미혜와 난 앞자리에 앉은 할아버지들께서 얘기 나누는 소리에 잠들기가 쉽지 않다. 사실은 나도 미혜랑 얘기하고 싶었지만,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참고 억지로 눈을 붙인다.


2004년 11월 27일 새벽 03:20 구례구역에 도착


생각보다 날씨가 춥지 않다. 숨 한번 들이켜고 역내 화장실로 가서 차가운 물에 세수를 하니 정신이 번쩍 든다. 따뜻한 커피 한 잔으로 속을 녹이고, 지도를 보면서 어디를 갈 것인가 생각해보라고 했지만, 눈을 다시 붙일 장소도 시간도 마땅치 않은 그 새벽에 차라리 구례읍까지 걸어서 가자고 모두를 닦달하여 길을 나선다. 구례읍까지 6km남짓 되는 거리, 18번 국도를 걷는다. 휘영청 밝은 보름달때문에 주위가 환하다. 옛날 산길을 걷던 나그네에겐 이처럼 밝은 보름달의 빛이 정말 요긴했을게다. 읍내로 들어오면서 해장국집을 암만 찾아도 없어서 구례경찰서 앞 편의점에서 컵라면으로 요기를 하고, 다시 읍내를 빠져나온다. 서시교를 지나는데, 막 해가 떠오르기 시작하여 작은 내를 주홍빛으로 물들인다.



구례읍 서시교에서 바라보는 일출


서시교를 지나 19번 국도로 접어든다. 19번 국도의 갓길로 걸어가는데, 쌩하니 커다란 트럭이 지나간다. 길 옆에는 저만치 떨어져있는 둑이 있는데, 그에 가려 물줄기는 보이지 않는다. 저 둑에만 올라가면 볼 수 있을텐데. 한참을 두리번거리다가 둑으로 올라가는 길을 찾았다. 야호! 역시 한눈에 물줄기가 내려다보인다. 생각보다 폭이 넓지 않다. 섬진강이 맞나. 어쨌거나 우린 둑 위를 걷길 잘했다고 만족스러워하며 즐겁게 걷는다. 조금 걷다보니 곡성쪽에서 내려오는 물줄기와 만난다. 드디어 섬진강이다. 



섬진강 줄기를 내려보며 둑을 걷다


상하수도 사업소 옆을 지나 둑길은 끝이 난다. 다시 19번 국도 갓길을 따라 오르막길을 오르면 오른쪽으로 조그만 정자가 보인다. 용호정이다. 경치도 괜찮고해서 잠시 쉬어가려는데, 서늘한 바람이 속속들이 파고들어 추워서 도저히 앉아있을 수가 없다. 지도를 보니, 근처에 운조루가 있다.


운조루(雲鳥樓)는 호남의 대표적인 가옥으로 원래는 1776년 무관 유이주(柳爾胄, 1726∼1797)가 지은 가옥의 사랑채를 일컫는 말이란다. 운조루의 운자는 구름, 조자는 새를 나타내는 것으로 '구름 속의 새처럼 숨어 사는 집'이라는 뜻과 '구름 위를 새가 사는 빼어난'이라는 뜻도 지니고 있고, 집터를 잡는 과정에서 돌거북이 출토되어 운조루의 터가 비기에서 말하는 금귀몰니의 명당임을 입증하는 것이라 해석되기도 한단다.  주인어른의 말씀에 따르면 운조루의 대문에 걸려있는 뼈가 호랑이의 뼈란다. 유이주가 호랑이를 잡아 가죽은 임금에게 바치고 뼈는 대문에 걸어두었다는데, 이는 옛사람들이 잡귀가 함부러 침범하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가 아닐까 싶다. 운조루에서 무엇보다 돋보이는 건, 안채나 사랑채 곳곳에 보이는 창살이다. 특히 안채의 지붕아래에는 조그만 다락방같은 공간이 보이는데, 아마도 바깥출입을 할 수 없는 여인들을 위한 것이 아닐까 싶다. 안채로 들어가는 입구에 있는 쌀을 넣는 나무통이나 안채 마당에 있는 장독대, 운조루 밑의 마차바퀴가 특히 인상적이었지만, 전체적으론 다소 쓸쓸하고 쇠락한 느낌이다. 논산의 윤증고택에 비해 관리가 소홀한 느낌도 없지 않다. 관리나 보수가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정부의 부실한 보조를 탓하는 주인어른의 술에 취한 듯한 붉은 얼굴과 목소리가 왠지 서글픔을 느끼게 한다.



운조루의 사랑채 입구

사랑채의 떨어진 문짝이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게 한다



안채 마당의 장독대



운조루 아래의 마치 바퀴



아궁이



운조루에서 내려다보는 마당 풍경


운조루 앞에서 피아골 연곡사로 가는 버스를 탄다. 거기에는 꼭 가기로 은선과 내가 미리 약속한 터였다. 새벽부터 계속해서 걸어서 다소 피곤했던 우리는 버스를 타자마자 창을 통해 들어오는 따뜻한 햇살아래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거의 반쯤은 감겨진 눈으로 피아골의 계단식 논의 아름다움을 비몽사몽 감상하면서. 어느덧 매표소에 가까와졌는데, 우리는 그것도 모르고 정신없이 졸았다. 뭔 아가씨들이 그리도 정신을 못 차리오, 근데 어디 가오? 버스기사 아저씨의 목소리에 겨우 눈을 뜬다. 연곡사 가는데요, 그라믄 화엄사도 갔소, 표는 끊었소? 아니오. 그럼 저기 앞 매표소에서 한 사람당 3,200원 주고 표를 끊어야 하는데, 그랄라요? 그래야죠. 연곡사 말고 다른 데도 갈거요? 아니요. 그라믄 내가 매표소를 그냥 통과시켜 줄테니, 나한테 나중에 담배값이나 줄라요? 네. 우린 마치 007첩보작전이나 수행하듯 긴박하게, 자는 애도 깨워서 엎드려서 숨으라고 시키고, 버스는 매표소를 그대로 통과해서 달린다. 차비와 담배값을 드릴려고 했더니, 담배값은 옆으로 돌려서 달란다. 3,000원만 달라는 아저씨께 5,000원을 드리고 나오는데, 그래서는 안될 일이지만 왠지 기분이 뿌듯하고 모험이라도 한듯 신난다.


연곡사로 올라오는 길에 붉게 물든 단풍잎이 떨어진 모양이 마치 피가 뚝뚝 떨어진 것 같다. 너무도 고운 선명한 핏빛이다. 아저씨 말씀으론, 속설에 도선이 연곡사 뒤의 산의 모양이 제비가 날개를 펼친 형상의 명당이라 절을 세웠지만, 앞에 산이 하나 가로막고 있어 크지 못한단다. 과연 그 산때문에 답답한 감이 없지 않다. 계단을 올라 연곡사 대웅전 오른쪽 산길을 조금만 올라가면, 우리가 보기를 원했던 '동부도'가 있다. 실제로 보니, 과연 동부도는 아름다웠다. 섬세한 조각과 결코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날아갈듯이 산뜻한 지붕돌, 상륜부의 가르빙가 조각 등, 그 동부도를 보다가 30미터쯤 윗쪽에 있는 북부도를 보니, 아무것도 모르는 우리가 보기에도 한눈에 차이가 난다. 우리 주위엔 주황빛 깃털을 가진 아름다운 새 한쌍이 날아다닌다. 마치 우리 할머니가 나를 지켜주듯이.


 
연곡사 동부도


동부도 옆 부도비-거북의 날개가 이채롭다

연곡사 대웅전 앞마당의 단풍나무와 범종각


 연곡사에서 나와 피아골로 향한다. 순전히 점심을 먹기 위해서다. 비수기라서 그런지 사람이라곤 우리뿐인 것 같다. 몇 군데를 들렀지만, 주인장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다. 한참을 올라가서 어느 가정집 거실같은 곳에서 드디어 꿀맛같은 산채비빔밥을 먹고는, 커다란 거실창을 통해 한가득 들어오는 따뜻한 햇살아래 잠시 꿀맛같은 단잠을 즐긴다. 20여분 남짓한 시간이지만 몸이 녹아들듯 달콤하다.  매시간 30분에 출발한다는 버스를 타기 위해 허겁지겁 뛰어나와 다행히도 버스를 놓치지 않았다. 연곡사 들어가는 길과 19번 국도가 만나는 삼거리에서 내려 강나루 휴게소에서 예쁜 커피잔에 나오는 300원짜리 커피를 마시며 잠시 행복해하다가, 다시 하동으로 가는 19번 국도로 접어든다.


도보여행의 철칙 중 하나가 차가 달리는 반대방향으로 차를 마주하고 걸어야 하는 것이지만, 우린 섬진강을 보고 싶어 차와 같은 방향으로 걷는다. 성수기가 아니어서 다행이다. 섬진강 건너편의 861번 도로로 걷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갓길의 폭이 넓지 않아 일렬로 걷다보니 대화를 나누는 건 거의 불가능하지만 그래도 좋다. 이렇게 걷는 줄도 모르고 불편한 신발을 신고 온 은선이 고생이지만 누구보다 꿋꿋하게 잘 걷는다. 맨 뒤에서 그들을 보는 나는 마냥 뿌듯하다. 멀리 신기루처럼 남도대교가 보인다. 우리 저기서 일몰을 보자. 신기루같아요. 그리 멀지 않을 거야. 한발 한발 더디게 다가오는 대교에 올라도 해가 지는 곳은 멀다. 일몰 보기가 하늘의 별따기다. 어디가야 일몰을 보지. 장관이라는 섬진강 일몰을 포기해야 할 것 같다. 화개장터를 지난다. 장날이 아니라서 그런지 초라한 규모다. 우린 그냥 지나친다. 이제 슬슬 잘 곳을 찾아야 하는데... 화개장터를 지나 조금 더 걸어가니 오른쪽에 꽤 큰 모텔이 하나 나온다. 남도모텔이라나 뭐라나. 옆에 가든이랑 식당이 하나 있다. 지은 지 얼마되지 않은 듯 깨끗하지만, 어쩐지 모텔이라기보다는 황토방이나 콘도같다. 가운데 거실 같은 게 있고 그 거실엔 싱크대가 달려있다. 양 옆의 복도를 사이로 마주보는 방들이 놓여있다. 처음에 들어갔던 방엔 온기라곤 눈꼽만큼도 없이 썰렁해서 방을 바꿔야했지만, 3층엔 우리뿐이어서 우리가 온전히 세낸 듯한 느낌이다. 따뜻한 방으로 옮기고 난 뒤, 우린 허기진 배를 달래러 모텔 옆 식당으로 갔다. 무엇을 시킬까 잠시 고민하다가 참게탕 작은 것과 소주 한 병을 시켰는데, 이 참게탕이 꿀맛이다. 구수한 국물에 애들 표현을 빌리자면 대게보다 탱탱하고 고소한 겟살맛이란다. 비록 살은 얼마 없었지만. 원진과 나 둘이서 소주 한 병을 해치우고 난 얼큰해진 기분으로 잠시 밤바람을 쐰다. 동네 개들은 낯선 이들을 반기듯 혹은 경계하듯 짖어대고, 멀리 남도대교의 불빛은 반짝인다. 아...행복하다.



(두번째 이야기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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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즘은 좀 일찍 잠이 드는데, 그런 날엔 새벽 1,2시쯤 꼭 잠이 깬다. 깨서 다시 바로 잠이 들면 다행인데, 문제는 그렇게 깨는 날엔 꼭 3,4시쯤 되어야 잠이 온다는 것이다. 오늘 새벽에도 예외는 아니어서, 밤 12시가 조금 넘어서 잠이 깬 후로는 책을 읽어도, 무슨 짓을 해도 좀처럼 잠이 들기가 힘들었다. 출근해서 하루를 견디기 위해선 반드시 더 자야 했지만, 눈이 뻐근해도 달라붙지 않는 걸 어떻게 하랴.



그러다가 4시쯤 겨우 다시 잠이 들었다. 깊이 채 잠들기도 전에 난 어깨와 팔을 쓰다듬는 듯한 느낌에 소스라치게 놀라서 잠이 깨었다. 몸을 옆으로 돌릴 수도,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도 없었다. 온통 까만 세상이 날 짓누르는 것 같았다. 심한 공포감에 사로잡힌 건 아니었지만 그 상태로 잠들 수는 없었기에, 젖 먹던 힘을 다해 손을 움직여 텔레비전 리모컨의 파워 버튼을 눌렀다. 텔레비전에서 흘러나오는 희미한 불빛을 보는 순간, 난 정신을 잃고 비로소 깊은 잠 속으로 빠져들어갔다.



2. 동호회의 아는 동생인 그는, 고등학교 시절 남달리 영기를 느끼는 능력이 강했다고 한다. 귀신 들린 것처럼 체육시간에 비가 올 것도, 자율학습을 하게 될 것도 알았다고.  그 당시 그가 살던 집, 특히 그의 방의 터가 좋지 않았던 것 같다고. 잠을 자면 거의 언제나 가위에 눌렸고, 심지어는 학교에서 한낮에 가위에 눌린 적도 있었다고 한다. 어느 날 그의 동생이 그 얘길 듣고 콧웃음을 치며 일주일을 같이 자겠다고 했다. 일주일이 지나 그 방을 나갈 때까지도 그의 동생은 침묵을 지킬 뿐이었다. 나중에 그에게 미안하다고 하면서, 자신이 자다가 깨서 검은 그림자 같은 것이 형을 목을 조르고 있는 걸 보았다고 했단다.



3. 오늘 새벽 자다가 깨서 가위 눌렸다는 걸 안 순간, 난 그 이야기를 떠올렸다. 조금 무서웠지만, 아주 공포스럽진 않았다. 눈을 슬그머니 떴을 때 보이는 세상은 그저 까맣고, 가끔 희끄무레한 것이 보인 것도 같지만, 그것 때문에 많이 무섭진 않았다. 다만,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혼자 지내면서 텔레비전을 켜놓고 자는 습관이 들었던 나는, 그때 텔레비전에서 흘러나오는 불빛과 소리만 들으면 괜찮아질 것 같았고, 안간힘을 다해서 텔레비전을 켠 순간, 과연 난 갑자기 긴장이 풀려버린듯 스르르 잠이 든 것이다.



난 왜 가위에 눌린 것일까? 이럴 때 어른들은 심신이 허해져서 그렇다고들 할 것이다. 아마도 요즘 들어 부쩍 심해진 스트레스와 압박, 긴장감때문이 아닐까. 오늘 밤은 달콤하고 깊게 잠들고 싶다. 더이상 새벽에 잠깨는 일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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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nerist 2004-11-24 2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훠어어어이~~~ ^_^o-

무탄트 2004-11-25 16: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헐헐헐 고맙당~~~ ^^ 근데 어젯밤은 잘 잤는데도, 잠이 모자라. 잠이 모자라. 넌 우째 지내는지... 이제 커플 볼 날도 머잖았당.
 

 2003-06-15 오후 9:54:10 
 
지금 시각이 오후 6시 33분입니다.  마치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아요.  어떻게 보냈는 지도 모를 정도로 바쁘게 지낸 하루를 정리하는 마음으로 기억을 되돌려 봅니다.

6월 14일 오후 1시 50분, 네 명의 청춘들은 전주행 기차에 몸을 실었습니다. 화장실 냄새가 조금씩 풀풀 날리는 끄트머리 자리에 마주보고 앉아서 전주에 도착할 때까지 끝없이 수다를 떨었지요.  전주시외버스정류장 근처 식당에서 10분만에 비빔밥 한 그릇씩 뚝딱 해치우고 대둔산행 마지막 버스에 몸을 실었습니다.  슬슬 졸음이 몰려들더군요. 한숨 눈을 붙이는데, 갑자기 어떤 압박같은 게 느껴져서 눈을 떴더니, 아! 병풍처럼 펼쳐지는 산꼭대기의 바위들, 대둔산의 장중하고 수려한 모습이 가슴을 설레게 했습니다.  한편으론, 아! 장난이 아니겠구나.  슬슬 산행의 부담이 압박으로 다가오는 것 같았지요.

대둔산 입구의 <쌍둥이 민박>에서 여장을 풀었습니다. 주인이 오기도 전에 떡하니 널찍~한 방을 하나 잡아서 편안~한 옷으로 갈아입고 시원~하게 세수하고 이불을 깔아놓고 누워서 뒹구는 맛은 그만이었습니다.  마치 제 집에라도 온 듯 편안했었지요. 허나 피끓는 네 청춘이 마냥 뒹굴고 있을 수만은 없는 노릇! 게다가 민박집 앞마당에서는 솥뚜껑 위 삼겹살이 지글거리며 유혹하고 있었지요.

평소 제 소원인 막걸리 한 잔! 을 외치며, 아그들을 재촉하여 밤길을 나섰습니다.  들어올 때까지만 해도 제법 환했는데 어느새 어둠이 깊이 깃들었더군요. 민박집에서 조금 올라오면 보이는 <전주할매식당>에서 할머니의 토속적인 손맛이 깃든 파전,도토리묵 등 토속 안주에 걸죽한 동동주 한 잔씩 걸치고 딱 기분좋을 만치 거나하게 취해서 돌아오는 길은 왠지 행복했습니다. 뭐든 할 수 있을 듯 자유로운 기분에 노래라도 부르고 싶은 밤이었습니다. 거기에 별까지 떠 있었다면 정말 좋았겠지만, 흐린 날씨 탓에 별보기를 포기하고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내일을 위해서!  (제 개인적으로는 "제발 내 옆으로 다가오지 말아죠~~!!"를 외치면서...ㅋㅋㅋ)

 핸드폰 벨소리에 얼핏 잠이 깨었는데, 누군가 부스스 일어나서 씻으러 가더군요.  '찐'이 잠을 잔 것 같지도 않은데 벌써 일어나야 한다고 투덜대는 소리에 동감하면서 우린 채비를 서둘렀습니다. 5시 반에 이른 아침을 해치우고 몸을 "예열"시키기 위해서 커피 한 잔 들이키면서 일찌감치 산행을 시작했습니다.  이른 산행이 좋은 이유, 매표소 그냥 통과의 자그마한 행복에 고무되어 힘차게 첫발을 내딛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금새 땀이 솟아오르고 다리가 후들거리기 시작했지요.

그런 저와 찐과는 달리, '쑥 뜯는 처녀-일명 쑥처녀' 와 몇마디만 나누면 금방 신상정보를 캐내는 '조사관' 은 평소에 운동으로 축적된 체력을 자랑하며 저만치 앞서갔습니다.  가끔 '쑥처녀'가 쑥을 뜯느라 뒤로 쳐지기도 했지만요. ('찐'은 '쑥처녀'가,'쑥처녀','조사관'은 제가 개인적으로 아그들한테 붙인 별명입니다. 아그들이 즐거워하리라 믿습니다. ^^;;;)

산행을 시작한 지 얼마되지 않아서, 이번 산행의 첫번째 인연이 된 6명의 남정네들을 만났습니다.  그 무리 중에서 제일 나이가 많은 아저씨, '빠삐용'표 줄무늬 바지를 입고 있어서  "성은 빠요, 이름은 삐용"이라 불리우게 된, 일명 '삐용 아저씨'는 처음에는 허리가 아프다며 느림보인 저와 '찐'보다도 뒤쳐져 계시더만, 대둔산의 하일라이트인 <금강구름다리>에 도착하자마자 숨가쁘게 꺼낸 말, "빨리 찍어!"라는 심상찮은 말을 필두로 걸죽~한 입담을 자랑하며 언제 그랬냐는 듯이 정상인 <마천대>까지 거뜬하게 오르셨지요.  물론 허리엔 복대를 차고서 말입니다. ㅋㅋㅋ

  대둔산의 명물인 <금강구름다리>와 <삼선철사다리>의 아찔한 스릴과 쾌감은 정말 압권이었습니다. 깊은 계곡 사이에 걸쳐진, 공중에 뜬 <금강구름다리>에서 조금이라도 뛸라치면 다리의 흔들림이 고스란히 느껴져서 순간 정신이 아찔해지고 간담이 서늘해지지요.  거기다가 아래를 내려보게 되면, 감탄사는 저절로 나오기 마련입니다. <삼선철사다리>에서는 양 옆의 손잡이를 꼭 잡으셔야 합니다. 그리고 되도록이면 앞서지 마세요. 아니, 팽팽한 긴장감을 맛보고 싶으시다면, 기꺼이 제일 앞에 서세요. 가파르기 그지없는 좁은 철제사다리를 오르는데, 마치 하늘계단에 오르듯 앞은 아득히 멀기만 하고 아래는 까마득하며, 뒤따라 오는 사람들의 압박에 뒷골이 송연하여, 잠시 숨을 돌린다는 것조차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그저 한없이 앞으로, 아니 위로만 올라야 하는 그 기분은, 정말 그만입니다. 그렇듯 힘들게 오른 후, 뒤돌아  저 먼 산과 계곡을 굽어보는 맛은 마치 신선이 된 듯한 기분이지요.

  산행은 전체적으로 그리 힘들진 않았습니다.  완주쪽에서 동심바위와 금강구름다리를 거쳐 정상인 마천대까지 1.7km밖에 되지 않으니까요. 다만 놓여있는 돌계단들이 삐죽하고 미끄러지기 쉬운 모양을 가지고 있어서 오를 때나 내려올 때 조심해야 되겠더군요. 

정상인 <마천대>에 올라서 미리 준비해온 양갱이랑 과자 등을 먹으려니 빗방울이 하나 둘씩 떨어집디다.  '삐용'아저씨는 자기 일행과 함께 내려가자고 성화셨지요.  밥을 사주겠다는 둥, 차를 태워주겠다는 둥 열심히 설득을 하셨죠. 전 듣는 둥 마는 둥, 다른 분들께 논산이나 대전으로 내려가는 길을 열심히 물었지만, 차편이 마땅찮더라구요. 비도 오는데 모르는 길을 내려가는 것도 좀 걱정되구요.

결국은 올라온 길로 돌아가기로 결정했습니다.  물기 머금은 돌계단은 미끈거렸고, 다리도 아프고 해서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가기로 했지요.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가는 것도 또 다른 맛이겠다 싶어서요. 올라올 때는 더딘 그 길이,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가니 허망할 정도로 금방이었습니다.

결국 삐용아저씨 일행과 함께 XX황토방이란 곳에서 맛있는 점심을 배불리 먹고, 대전으로 가는 버스를 탈 수 있는 곳까지 차도 얻어탔습니다.  "정"이란 동호회의 일원이시라는 그분들을 만나게 되어서 어찌보면 행운이었지요.  ^^

 금산면의 그 버스 정류장에서 기다리는데, 기다리는 버스는 오지 않고, 웬 봉고차가 하나 섰습니다. 처음엔 저희보고 네팔 사람이 아니냐고 묻는 것 같았습니다.  ㅋㅋㅋ 아니요, 저희는 토종 한국인인걸요. 어디까지 가느냐고 물으시길래, 대전역까지 간다고 했더니 고맙게도 태워 주시겠답니다.  아니, 이런 행운이!  저흰 얼씨구나하고 차에 올랐습니다.  차 안에는 몇 명의 네팔 남자분들이 타고 있었습니다.  그 중 한 젊은이는-저보다 나이가 어린- 한국어를 꽤 잘했습니다. 한국에 있은 지 3년 정도 됐다는 그 청년은 네팔에서는 대학생이었대요. 전공이 뭐냐니까 "수학"이랍니다. 오우! 저랑 같군요. 비록 제가 수학을 싫어하긴 했지만 말입니다. 그 청년의 영리해보이는 까만 눈동자가 기억에 남는군요. 아무튼 반가움에 이런 저런 얘기들을 주고 받으면서 우린 즐거웠습니다.  선교사를 하신다는 한 네팔 분은 정말 한국어가 능숙했습니다.

기꺼이 마음좋게 대전역까지 태워 주신 그 분들 덕분에, 우린 정말 편안하고 빠르게 올 수 있어서 얼마나 좋았던지. 게다가 시간이 넉넉하게 남아서 대전역 앞의 재고서적이나 헌책을 파는 서점(이름이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군요)에서 책구경까지 할 수 있었습니다.   어딜가나 숨책인은 어쩔 수가 없군요. ^^

 두 인연 덕분에 편안하고 행복하게 대전역으로 온 우리는, 또 운좋게도 대전에서 서울로 가는 좌석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비록 한 자리가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요. 또 인연이 되었던지 서울행 기차를 기다리면서 유심히 봐둔 양복입은 한 귀여운 총각이, 창가쪽의 자신 자리를 기꺼이 양보해 주었습니다. 처음엔 (제가) 음료수라도 내밀면서 감사를 위장한 '관심'을 표하려 했지만, 피곤함에 우리는 이내 곯아 떨어졌습니다.  ㅋㅋㅋ

 지금 생각해보면 유래없이 맛있게 배불리 먹고, 재미있고 편안했던 이번 여행은 세 인연들 덕분이었던 것 같습니다.   언제나 생각하는 것이지만, 여행의 좋은 점 중 하나는 이렇듯 좋은 사람들을 만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 여행을 멈출 수 없는 것 같아요.  이렇듯 오늘은 행운이 끊이질 않아서 마치 한여름밤의 꿈을 꾼 듯한 기분입니다.  ^^

아! 이번 여행에서 전 정말 마음에 드는 수확을 하나 거두었는데요,  삐용아저씨 일행 중에서 처음엔 강력반 형사처럼 생겼다고 생각했지만 다시 보니 귀여운 구석이 있던 우체부 아저씨가 사주신 "등긁개"입니다.  전부터 하나 장만하고 싶었는데, 암만 봐도 정말 맘에 들어요. 이모저모 쓸모도 많구요.  삐용아저씨가 부인에게 줄 선물을 하나 추천하라고 했을 때, 전 이 "등긁개"가 맘에 든다고 해서 늙은이같다고 핀잔을 들었지만 말입니다.  ^^

여러 가지 재밌는 이야기들이 오고 갔습니다만, 제 기억력으로는 무리로군요. 아그들이 저의 모자람을 보충하여 거시기 재밌는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주길 바랄 뿐입니다.  ^^

 
 
 1. 백수연(6/16,1:0): 아아.. 너무 부러워요..-_-.. 담엔 꼭 가보리라. 특히 그 구름다리!!!....꼭 타봐야징  
 2. 오명희(6/16,9:4): 아내에게 등긁개를 사다주면 남편에게 서운함을 느꼈을 겁니다. 이건 기혼과 미혼이 느끼는 차이 일까요?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3. 임정연(6/17,13:38): 아 저도 놀러가고 싶네요 ^^  
 4. 찐(6/17,14:11): 생각나는 게 많아요! 밤에 잘때 언니 옆에 딱붙어 괴롭히기. 진짜 맛있던 전주할매식당 된장국. 삐용아저씨.네팔청년들. 잊을 수 없는 삼선계단과 구름다리에서의 짜릿한 두려움!! 아아아-  
 5. 엘프(6/17,19:46): 비오는 날 죽음을 각오하고 월출산 올랐다가 후유증에 대둔산은 포기해야 했던 아픔이 있죠.. 좋았겠다~ =)   
 6. 미단(6/18,16:57): 네팔이 아니라 태국입니다.  
 12. 찐(6/18,21:20): 아냐 네팔이잖아. 내가 인도 오른쪽 위에 있는 거 맞냐고 물어보기까지 했는데 인도 왼쪽엔 파키스탄이죠 라고도 물었고. 그렇다고 말하는 거 같이 들었잖냐. 그때 히말라야산이랑 라마단 얘기도 했쥐 ^^  
 13. 찐(6/18,22:35):
http://file.barunson.com/upfile/card/cedc33.swf?a=1 당근! 당근! 당근! 당그은~썽! 이젠 인터넷첫화면으로ㅋㅋ i^^i  
 14. 무탄트(6/19,9:27): 맞어. 네팔이랬어...내가 세계지도까지 꺼낸다는 둥 했잖우. 네팔은 힌두교가 많다고 했던 것도 같은데...파키스탄은 이슬람이라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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