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그동안의 어둡고 암울했던 분위기를 벗어 던지고, 발랄하고 신나는 이야기를 해야겠다.

어떤 이는 아니라고 하겠지만, 사실 은밀하게 뒤에서 요리조리 업치락뒷치락 속삭(?)이는 이야기만큼 신나고 재밌는 일은 드물지 않나? 암튼간에 오늘 내 이야기의 주인공은 나의 친구 남녀이다. 그 친구 중 한 사람은 이 사이트를 알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난 이야기할란다. 그 친구가 읽고 나의 의도를 알아서 따라준다면 더할나위없이 좋은 일이고.

음... 그 남녀 이야기를 하려면, 일단 10년을 훌쩍 뛰어넘은 과거로 돌아가야겠다. 나에게는 중학교 시절부터 연락을 취하고 가끔 만나던 초등학교 남자친구들이 있었다. 홍일점으로 놀아도 아쉽거나 꿀리는 건 전혀 없었지만 가끔 때가 맞으면 내 고등학교 여자친구들이랑 함께 있는 자리에 초등학교 남자친구들을 데리고 와서 같이 놀기도 했다. 어찌보면 불쌍한 이들이었다. 그들이 즐거워하거나 말거나 순전히 나의 즐거움을 위해서 그런 자리를 마련했다고 볼 수 있으니까. 어찌됐거나 청춘 남녀들이 한 자리에 모여 있는데 아무 일이 없을 순 없는 것.  그러다가 한쌍의 청춘남녀가 눈이 맞았는지 나 몰래 둘이서만 영화를 보러갔다는 것이다. 아, 그것까진 좋았다. 그 한쌍의 남녀 중 남자, 내 생일엔 18k귀걸이? 흥! 그런 건 고사하고 뭘 선물했는지 기억나지도 않는 선물을 했지만, 그 여자의 생일날엔 18k귀걸이를 턱하니 선물하는 게 아닌가! 헉! 순간 배신감에 뒤통수를 맞은 듯 아뜩한 느낌마저 들었지만 둘이서 좋아한다면야 내가 밀어줄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일이 제대로 진전되기도 전 어느 날 그 남자친구에게서 연락이 끊어졌다. 우린 그 녀석이 대전으로 이사가서 학교에 다니더니 아무래도 보다 젊은 여자친구를 사귀었나보다 했다. 그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도 꽤 오랫동안 잠수를 탔고, 다시 돌아와서 또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때 그 여자친구 J는 내게 이렇게 물었다.  H랑 연락되니? 아니, 될 턱이 있나.

그러고는 가끔 그 남자친구 H의 생각을 했고, J를 비롯한 내 친구들도 가끔 그 녀석이 보고 싶다고들 했다.

그리고 8년의 시간이 흘렀다.  H랑 연락이 끊어진 지는 어언 10년 가까이 됐을 게다. 같은 사무실에 있는 동생이 제 첫사랑 오빠의 사이홈피를 몰래 스토커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문득 그 녀석을 떠올렸다. 어쩌면...  혹시나 했더니 아니나다를까 그 녀석이 떡하니 사진 속에 있는 것이 아닌가. 그 녀석을 찾아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들의 홈피를 다 훑으면서도 설마설마했었는데, 인연이 계속되려는 건지 그 놈이 나타난게다.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가지고. 아! 반가웠다. 그리고 잠시 망설였다. 아는 체를 해야 할 것인가 말아야 할 것인가.  그 녀석이 날 보면 무지 실망할텐데 보자고 하면 봐야하나 어쩌나. 몇 번을 망설인 끝에, 문득 J를 떠올리면서 용기를 냈다.  바로 나임을 알리면 재미없을테니 스무고개를 하자고 해야지.

허나, 그 스무고개는 그의 인내심뿐만 아니라 나의 인내심을 시험하는 것이었다. 매일 한 개씩 한 고개를 넘어 여섯고개째 되었을 때, 난 그만 인내심을 잃고 말았다. 나에겐 죽어도 잊혀지지 않는 바로 그 귀걸이 사건을 들먹거렸건만, 그는 모르겠다고 하는 게 아닌가.  성질급한 나, 바로 결정적 힌트를 날렸다. 이 힌트를 냈음에도 불구하고 맞히지 못한다면, 그냥 영원히 모른 채 살리라.  그러나 H, 날 실망시키지 않았다. 우리의 이름을 하나하나 언급하여 나를 감동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것이다. 사실 우릴 기억하는 게 당연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그의 나 몰라요, 전혀 기억이 안나는데라는 작태를 생각하면 이름을 기억해주는 것만해도 감지덕지인 기분이었던 게다. 어쩌면 그게 그의 교묘한 심리작전이었을지도 모르지만.

암튼간에 그와 나 드디어 만났다. 서로에게 세월이 결코 비껴가지 않았음을 확인하며, 간만에 너무 웃어서 숨을 쉬지도 못하는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이런저런 수다를 떨다보니, 자연~스럽게 그에게 J의 소식을 전하게 됐고, 그는 나에게 J와 다른 친구의 전화번호를 가르쳐달라고 했다. 물론, 당근 가르쳐줬다.  안가르쳐줄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를 만나 그 다음 주말, 그러니까 지난 주말에 우연히(지금 생각하니 필연적인 우연이 아닐까 싶다)급조된 계모임이 있었고 H도 마침 내려갈 일이 있다기에 애 둘 딸린 아줌마와 나를 태워 달라고 H를 꼬셨다. 인간성 좋기로 소문난, 내가 인간성 하나는 보장하는, 그 친구는 당근 우릴 태워주기로 했다. 문제는 계모임의 총무인 J에게 우리가 그의 차를 타고 내려간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은 데 있었다. 웬만해선 찔러도 피 한방울 안나올 J에게 차비를 대달라고 해서 겨우 말미를 얻었는데, 그의 차를 타고 내려가면서 먹을 음식에 군것질 거리에, 통행료로 그 기차값을 써버리는 바람에 본의아니게 J에겐 그 사실을 숨겨야했던 것이다. 왜? 그녀에게서 그 차비를 뜯어(?) 내는 게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는 사람은 알테니까. 그리고 내가 원래 거짓말은 잘 못한다. 가끔 뻥은 쳐도. ㅡㅡ;; 암튼 차가 밀리지 않고 제 시간에만 도착했다면, 거짓말이 뽀록날 일도 없었을테지만( 정말 난 꿈에도 몰랐다, 주말에 차가 그리 밀릴 줄은) 서울에서 대전까지 차가 무지 밀리는 바람에 밤 10시가 되어서야 친구 집에 도착하게 된 거다. 물론 짬짬이 J의 전화가 걸려와서 공포분위기를 조성했음은 말할 것도 없다. 난 그녀의 전화를 받는 게 무지 무서웠지만(왜 그녀를 무서워하게 됐는지는, 아마도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때문에 떳떳하지 못해서 그럴 게다) 차가 밀려서 늦어지니 어차피 거짓말이 들통나기 마련인 상황에서 '매는 먼저 맞는 게 낫다'라는 속담을 다시 한번 되새기며 이실직고를 하고야 말았던 것이다. 그리고 말을 마치자마자 전화기를 H에게 떠넘기면서 동시에 나의 책임도 적당히 전가시켜 공범을 만들었다. H, J의 전화를 받으며, 내가 그리 보고 싶나? 쪼금만 기다려라. 햐! 그 말에 그리도 일이 쉽게 끝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역시 J는 H의 밥일거라는 나의 억측이 현실로 드러나는 결정적인 순간이었다. 우린 필사적으로 H를 꼬셨다. 같이 가자. J는 네가 COVER해라. 응?

결국 H는 또 우리의 꼬임에 다시한번 넘어갔고, 우린 그를 데리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절대절명의 순간! 나의 억측이 또다시 들어맞았는지 J는 무사히 넘어가는 듯 했다. K의 말에 의하면 그날따라 J의 말투며 대화가 보통때보다 훨씬 부드러웠다고 한다. 그런데. K와 내가 모처럼 밤을 같이 새자고 그렇~~게 꼬시며 쑤셔대도 눈꼽만큼도 들어가지도 않던 J가 H가 있어서 그런지 은근슬쩍 밤을 새는 게 아닌가. 어허, 이런~~~ 그때 우린 이미 눈치를 깐 것이다. 꼴딱 밤을 새고 다음날 J를 데려다 주러 H가 다녀오고, 그리고 우린 모두 뿔뿔이 흩어져서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지만, 일은 거기서 끝난 게 아니었다.

다음날 주말동안 보여준 H의 남다른 의리있는 모습에 감동한 아줌마들을 대표해서 내가 그의 싸이홈피에 한 글 남기고, 그 글 위에 J가 다시 한 글을 남기고 난 뒤, 한동안 H의 답글이 안 올라온다 싶더니, 결정적인 답글이 어제 올라온 것이다. 이 글은 이야기의 전개상 몹시 중요하다고 사료되는 바, 여기에 인용을 하겠다.

 

J :  (생략) 어젠 수고 많았고..어딜 가나 식지 않는 인기 ㅋㅋ
아줌마들 아니면 애들한테...실속 좀 챙기고 올해 꼭 장가가라이~~
H: 니가 그런말을 하다니.......정 결혼이 어렵다고 느껴질땐 날 찾아오느라 내가 널 구제해 줄테니....하하하하. 니 가만히 보아하니 내한테 시집올것 같은데...푸하하하
올해안에 장가가라고.......화딱질나네. 야아 올해 캐바짜 며칠 남았다고 ...쌩뚝맞쬬........어이 아지매 정신 차리라이.호호호

이 글을 보고 나서도 눈치 까지 못한다면 바보일게다. 우리들(내 고등학교 계모임 여친들)은 둘 사이에 흐르는 미묘한 뭔가를 눈치채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우린 H와 J를 연결시켜주는 연애(를 빙자한 결혼)추진위원회를 발족하게 된거다. 물론 위원장은 나다. 왜? 둘 사이의 공통분모는 나니까. 결과가 좋으면 옷 한벌 빼입는 건 당연한 일이고. (짠순이짠돌이들이라서 우려되는 게 없잖아 있지만, 그래도 악착같이 받아낼거다. 암 난 자격이 되고 말고. 우하하하) 둘을 처음 만나게 한 것도 나이고, 둘을 다시 만나게 한 것도 나이니까. 내가 앞서가는 것인지도 모르지만, 혹시나 H가 이 글을 읽고 학을 떼게 될지라도 난 변함없이 추진할 거다. 그 전에 K의 충고에 따라 H의 J에 대한 마음을 정확하게 떠보고 확인하는 것이 나의 첫 임무가 될 것이다. 자! 이제 그 날을 위해 힘을 내자! 아자! 아자! 아자!

김칫국부터 마시는 일이 될지도 모르지만, 어쨌거나 모처럼 신나는 일이 생겼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우헤헤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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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놀랐다.

그 사람이 특별히 내게 심하게 얘기한 것도 아니었다. 한두 번 듣는 얘기도 아닌걸 뭘. 그런데 그의 전화를 끊자마자 눈물이 솟구쳤다. 평상시 회사에서는 눈물을 흘리지 않으리라 다짐했고, 내 개인적인 일 외엔 호들갑스런 문간방 이사와 싸우면서 열받고 분해서 흘린 눈물외엔 눈물 흘릴 일도 거의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봇물 터지듯 터진 눈물을 참는 게 힘들다. 무엇이 그리 서럽다고 눈물이 끊이질 않는 건지, 나도 도통 알 수가 없다. 내 머릿 속에 들어있는 물이란 물이 모조리 빠져나오기라도 하듯, 조금만 건드리면 터질 것 같은 눈물의 샘을 건드린 것처럼 그렇게 운다. 지금도 누가 무슨 말이라도 건네면 금방이라도 눈물이 나올 것 같다.

나의 상황에 비하면 울 사장님은 벌써 울어도 몇 번을 울만큼 힘들었을 게다. 화장실에서 서럽게 울다가 빨갛게 된 얼굴을 사장님에게 들켰다. 표내지 않으려고 했는데,  눈치빠른 울 사장님 벌써 눈치채시고, 돈이 없어서 그런 거, 네 잘못도 아니고 내 탓인데, 다 잊어버려라 하신다. 그 말 들으니 눈물이 더 솟구치려고 하는 걸 억지로 참았다.  

이런 내가, 내가 생각해도 우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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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가지만 빼면 괜찮다고 나왔다. 그 몇 가지도 정상의 범주를 완전히 벗어난다기 보다는 조금 조심하거나 신경써야 할 정도. 결과가 생각했던 것보다 잘 나와서 기분이 좋긴하지만, 잘 나왔기 때문에 오히려 이 결과를 신뢰할 수 없는 것처럼 생각되는 건 왜일까. 뭔가 그럴싸한 병명이라도 하나 붙어나오길 은근히 기대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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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그대가 어쩌다가

사랑에 지쳐 어쩌다가

어느 이름모를 낯선 곳에 날 혼자 두진 않겠죠.

비에 젖어도 꽃은 피고

구름 가려도 별은 뜨니

그대에게 애써 묻지 않아도 그대 사랑인 걸 믿죠.

저기 하늘 끝에 떠 있는 별처럼

해 뜨면 사라지는 그런 나

되긴 싫어요

사랑한다면 저 별처럼 항상 거기서 빛을 줘요

그대 눈부신 사랑에 두 눈 멀어도 돼

하늘에 박힌 저 별처럼 당신의 아픔으로 묶여

움직일 수가 없지만 난 변하지 않을테니

 

작은 꽃잎 위에 맺힌 이슬처럼

해 뜨면 사라지는 그런 나

되긴 싫어요

사랑한다면 저 별처럼 항상 거기서 빛을 줘요

그대 눈부신 사랑에 두 눈 멀어도 돼

하늘에 박힌 저 별처럼 당신의 아픔으로 묶여

움직일 수가 없지만 난 변하지 않을테니

 

(비에 젖어도 꽃은 피고

구름 가려도 별은 뜨니)

묻지 않아도 난 알아요 그대 내 사랑인 걸

(작은 꽃잎의 이슬처럼

저기 하늘 끝 저 별처럼)

다시 해 뜨면 사라지는 내가 되긴 싫어요

변하지 않을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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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할 말은 아니지만, 뭐 누가 들어도 짜증나는 이야기라서 하고 싶진 않았지만, 하도 속이 답답해서 여기에 하소연이라도 해야 내 속이 시원해질 것 같다.


내 개인적인 일 때문은 아니지만, 빚쟁이에게 졸리는 기분이 어떤 건지 요즘 생생하게 실감하고 있다. 통장 잔고는 바닥났는데, 돈이 언제 들어올지 주인도 알 수 없는데, 돈 줄 데는 태산같은 상황. 돈 주세요. 언제쯤 입금시켜 주실 건가요. 저도 그걸 알면 참 좋겠네요. 드려야 하는데... 할말이 없다. 돈이 있어야 주지. 배째라고 하고 싶지만, 그것도 한두 번. 입 잘 맞춰야 하는데 이쪽과 저쪽이 서로 다른 얘기해서, 나만 나쁜 사람되는 상황도 허다하다. 이제 익숙해질만도 한데, 사실 예전보단 많이 익숙해지긴 했지만, 가끔은 힘들다. 빚쟁이들이 전화해서 언제까지 되냐고 독촉하면, 난 입을 다물어 버린다. 줘야 하는데 어차피 줄 수 없는 상황이라면 긴 말이 무슨 필요 있나. 내가 말없이, 드려야 하는데...좀 그렇네요, 하고 한참동안 침묵을 지키고 있으면, 휴~~ 한숨 한번 쉬고 또 전화드릴께요. 가능한 한 좀 부탁드려요, 한다. 네.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감사. 그런데 내 입에선 죄송합니다도 아니고 감사합니다란 말이 흘러나온다. (전화를 끊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런 뜻이겠지.


이렇게 빚쟁이들에게 한바탕 쫓기고 난 뒤에는 얼른 퇴근해야한다. 더이상의 전화는 사절. 오늘 하루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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