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부터 몹시도 보고 싶었던 영화였다. 원진이에게도 그렇게 말했더니, 그런 내 마음을 눈치채고 시간을 내주어 오늘 아침 첫 상영순서에 보았다.

음... 길게 말할 시간도 없고, 스포일러를 만들 수도 없어서 그냥 보고 난 느낌을 짤막하게 적어야겠다.

하나. 대체 전쟁은 왜 일으킨 걸까? 그 전쟁이 일어난 이유가 뭘까? 마치 장난같다. 장난 같은 이유로 전쟁을 일으키고 어이없는 구실을 들어 전쟁을 끝내는 것 같다. 나머지 시민들은 장단만 맞추는 엑스트라에 불과한 걸까. 그렇듯 전쟁이란 것이 알고 보면 아주 사소한 이유로 시작되고, 전쟁에서 최대의 피해자는 일반 시민들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일까. 윗대가리의 조종에 의해 제멋대로 움직여지는... 난 전쟁이 싫다.

둘. 사실 해피앤드를 원하고 내가 만들어도 그렇게 결말 지었겠지만, 왠지 맥이 빠진다. 아, 마지막 장면 중에서 내가 예상하지 못했던 건 하나 있다. 노랑색 인물. 그건 정말 예상치 못했던 거다. 피시식 헛웃음이 튀어나왔다. 그래도 해피앤딩은 좋다.

셋. 이번에도 변함없이 하늘을 떠다니는 성이 나온다. 난 천공의 성이 좋다. 나에겐 날고 싶은 욕구같은 게 있는 모양이다.

졸립다. 할 일이 태산인데, 길게 쓸 힘도 없다. 일을 해야 한다. 어쨌거나 가슴 짠하고 즐거운 시간이었다. 원진이와의 대화는 언제나 나에게 짠한 감동을 준다. 난 변해야 한다. 변할 것이다. 변하고 말 것이다. 언젠가는 나도 하늘을 둥둥 떠다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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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여러 가지 꿈을 꿨다.  아침에 일어나서도 분명 기억하고 있었는데, 벌써 희미해졌는지 기억이 안난다. 징그러운 꿈 한 가지만 빼고.

나도 몰랐는데 어느 새, 내 왼쪽 팔뚝이 벌겋게 부풀어 오르고 종기가 터지기도 하고, 말미잘의 촉수같은 괴물 입(왜 있잖은가,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외계 괴물의 입이나 배에서 튀어나오는)이 튀어나와서 나도 모르게 소리를 마구 질러대며 잠을 깼고, 나중엔 그것이 꿈이란 사실을 분명히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계속해서 비명을 질러댔다. 아침 해가 중천에 떠서 온 세상이 환한 바로 그 시간에 나는 악몽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었던 것이다.

그 전에도 뭔가 슬픈 꿈을 꾼 것 같긴 한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쩌면 내가 지금 읽고 있는 <제인에어 납치사건>을 읽다가 잠이 들어서 그런 걸까. 이상한 꿈들이었다. 물론 난 항상 그렇듯 개꿈이군, 혹은 내가 지금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것이 은근하게 꿈을 통해서 나타난 것이 아닐까 맘 편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다른 꿈도 기억나면 재밌을텐데...음...꿈을 꾸면서 기억해뒀다가 나중에 글로 써야지 생각했는데... 기억 안나믄 할 수 없고. 으쓱

 

덧글] 아, 그 꿈의 의미를 이제서야 알 것 같다. 나도 모르게 내 팔뚝에 퍼진 상처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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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의 남친H와 부모님 이야기

Y의 남자친구 H는 짠돌이다. 학생 시절, 전철의 표를 집어넣는 게이트 중에서 프리하게 움직이는 데를 골라서 공짜로 타고 다니는 일이 허다했다고. 지금은 돈도 벌고 Y가 싫다고 해서 자제하고 있는 중이지만 옛날 버릇 어디가나. Y를 만나러 오는 날, Y가 나오는 게이트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한번씩 삑 소리가 난다고. 출발할 때 프리게이트를 이용한 게다. 둘이서 데이트하러 움직일 때에도 습관적으로 게이트의 돌아가는 부분을 슬쩍 밀어서 확인하고는, 봐라! 이거 프리다, 막 돌아간다,고 하면서 다 빠져나와서는 그래도 여친 눈치가 보이는지 마지막에 돌아서서 카드를 찍는단다.  여친이 무섭긴 하나 보다.

돌아서면 방금 있었던 일도 까먹는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Y와 H 사이의 재미난 이야기는 무궁무진하지만,  아무튼 남친 H 못지 않게 알뜰살뜰하고 남 신세지기 싫어하는 Y, 데이트 비용도 정확하게 반반씩 부담하는데 하루 만원이다. 1인당 1만원. 두 사람이니 2만원의 돈으로 밥 먹고 영화보는 등의 그날 비용을 제하고 나면 모자라는 게 아니라 거의 매번 남는단다. 아니, 어떻게 그렇게 쓸 수 있지? 나도 펑펑 쓰는 사람은 아니지만, 어떻게 하면 2만원으로 둘이서 밥 먹고 차 마시고 영화보는 게 가능할 수 있는지 궁금해서 미치겠더라고.  그래서 Y에게 물었지.  언니, 돈암동에선 3천원짜리 밥도 많아요. 커피는 학교 안에 들어가서 자판기 커피 마시구요. 민들레영토가면 기본 입장료로 영화도 볼 수 있어요. 가끔 컵라면 사서 떡뽁이랑 먹을 때도 있구요. 햐! 그렇군. 정말 귀여운 알뜰살뜰 커플 아냐? ㅋㅋㅋ 아무튼 그렇게 해서 많이 남는 날은 7천원 정도가 남기도 하는데, 남은 돈은 '파리의 연인'에서 유명해진 바로 그 돼지저금통에 고스란히 담긴다고.

Y의 집에서 조용히 잠자고 있는 문제의 저금통. 평소에 과일을 무지 좋아하시는 Y의 어머니, 그날따라 돈은 한푼도 없는데(전편에서 얘기했다시피 Y집 살림은 온전히 Y의 몫이고 오로지 Y의 주머니에서만 돈이 나온다) 때마침 과일 장수 트럭이 소리를 질러대니까 과일이 너무너무 먹고 싶은 게야. 그래서 어머니의 눈에 띈 게 바로 그 저금통인 게지. 아는 사람은 다 알겠지만 파리의 연인표 저금통은 물렁한 저금통이 아니거든. 표나지 않게 부수거나 우그러뜨려서 돈을 빼내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지. 그래도 너무나 과일이 사먹고 싶으신 어머니, 나중에 다시 채워 넣기로 하고 아버지에게 부탁을 하셔서 저금통에서 딱 12천원만 꺼내기로 했어. Y의 아버지, 과연 이 저금통에서 어떻게 돈을 꺼내신 걸까?

장소는 Y의 집. 사방이 고요한데 어디선가 뭔가 긁어대는 소리만 일정하게 들리고 있어. Y의 아버지, 누워서 뭔가를 하고 계시는데, 아! 의료용 핀셋으로 저금통의 지폐를 하나씩 꺼내시고 계시는군. 운좋게도 단번에 5천원짜리도 걸렸고. 해야할 일이 반은 줄어버린 거지. 그렇게 각고의 노력끝에 드디어 어머니의 소원-12천원어치 과일-이 이루어졌어. 딸과 장래 사위가 될지도 모르는 청년의 데이트 잔금이 들어있는 저금통에서 돈을 꺼내 사드신 과일 맛은 과연 어떨까?

그렇게 일은 저질렀는데, 빤한 살림에 저금통에 다시 채워넣을 만한 돈이 없다는 게 문제였지. 평소에 Y가 그 저금통에 든 돈이 얼마인지 십원짜리까지 다 알고 있으니 절대로 손대지 말라고 몇번이나 엄포를 놨으니, 언젠가는 뽀록날 일이 아니겠어? 결국 Y의 부모님은 Y에게 이실직고를 하시게 된 게야. Y, 한편으론 기막히고, 한편으론 그렇게 하셔야 했던 부모님이 안쓰러웠다고 하더군. 결국 12천원의 돈은 Y의 주머니에서 나와 다시 그 저금통으로 되돌아가게 되었지. 안 넣으면 또 어떻냐구? 아니, H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는 게야? 프리게이트로 다니는 사람이믄 말 다한 거 아닌감. 평소 행동으로 유추해봤을 때, H 그동안 쓰고 남은 돈 다 기록해서 그 저금통에 들어있는 돈이 얼마인지 다 헤아리고 있을껄. 그럼~ 그러고도 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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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는 동생 Y.

참 괜찮은 친구다. 가끔 가슴이 철렁할 정도의 농담을 잘하지만 유머감각 있고, 알뜰하며, 부지런하다. 그녀는 집안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가장이며 좋은 딸이다. 아니 좋은 딸이었다. 대학교도 부모님 손 빌리지 않고 장학금에 대출금 받아 다니면서 아르바이트해서 생활비에 보탰다. 졸업하고 나서도 쉬지 않고 아르바이트하다가 울 회사에 들어와서 받은 월급 족족 부모님의 생활비와 사업자금으로 바치다시피 했다. 그녀 이제 30대를 바라보는 시점에 이르고 보니, 가지고 있는 게 하나도 없어 결혼도 감히 꿈꾸지 못한다.

그녀는 혼자가 아니다. 그녀에겐 오빠도 여동생도 있지만, 오빠는 나가서 집과 담 쌓고 산지 오래고, 여동생도 운좋게(내가 보기엔 운이 많이 따른 것 같다) 공무원 시험에 붙어서 집과 두 시간 정도 떨어진 변두리로 발령받아 부모님과는 일찌감치 멀어지는 행운을 얻었건만, 그녀만은 여전히 부모님에게서 벗어나지 못한다. 올해까지만이라고 약속과 다짐을 받아냈건만, 그녀의 부모님 밑빠진 독에 여전히 물붓기하듯 미련을 못 버리시고 그녀에게 1년만 더,라고 말씀하신다. 그녀의 오빠, 동생에겐 한 말씀도 안하시면서, 그들이 싫어요라고 말하면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 오직 그녀만을 붙잡고 늘어지고 오직 그녀에게만 희생할 것을 강요하신다. 그녀, 이제 지칠 대로 지쳤다.

그녀의 오빠, 일찌감치 집을 나가 살면서 악착같이 돈을 모았다. 부모님이 아프시다거나 급한 일이 있어도 나 몰라라 한 적도 많았다. 다 나중에 잘 모시기 위해서라지만, 지금도 그렇게 나몰라라 하는데 나중에라고 잘 헤아릴까. 그동안 그는 집안의 형식적인 맏이였을 뿐, 실질적인 가장 노릇은 그녀가 다 했다. 그동안 그녀, 오빠는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왔다.

그녀의 여동생, 그녀에겐 유일무이하다시피 소중한 피붙이이자 친구였다. 그 동생이 학교를 휴학하고 혹은 졸업하고 놀면서 공무원 시험준비할 때, 그녀 용돈 쥐어주며  뒷바라지 했다. 가끔 구박하기도 했다지만, 내가 보기엔 정말 좋은 언니였다. 동생 운이 좋게도(내가 보기엔 피터지게 공부한 것 같지도 않은데, 과거운이라는 게 있긴 있나보다) 공무원 시험에 떡하니 붙어서 이제 아무 걱정없게 되었다. 여기에 이르기까지 긴 세월동안 어쩌면 언니의 갖은 스트레스를 받아주느라 나름대로 힘들었을지도 모르지만 어쨌거나 결과가 좋으니 무슨 상관이랴. 게다가 동생은 직장 핑계삼아 집을 떠나고 부모님을 떠나고 언니를 떠나서 자유롭게 살 수 있게 되었으니 무엇을 더 바라리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지는 법. 눈에 보이지 않으면 없는 셈치고 살 수도 있겠지.

이제 문제는 그녀다. 그녀는 옛날부터 지금까지 줄곧 그녀의 부모님께 매여 있는 유일한 인물이었다. 집안 사정이 어려우면 고민하고 발 동동 굴리는 사람도 그녀뿐이었고, 그녀의 부모님 그녀에게 모든 걸 맡기시고 한편으론 안쓰러워하면서도 돌아서면 아무 생각없이 그녀를 의지했다. 몸이 아프면 투정부릴 데도 그녀밖에 없었으며, 그녀가 그렇게 잘하다가 조금만 못해도 금방 서운해했다. 자식은 오직 그녀밖에 없는 듯, 다른 자식이 그들에게 못하든 잘하든 상관없이, 오직 그녀의 행동만이 그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듯 했다.

그녀, 이제 30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니, 앞이 깜깜해졌다. 회사는 어려워져서 오늘내일 하고, 재수없는 부장때문에 때려치우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으며, 그녀의 부모님이 하신 원래 약속대로라면 올해까지만 견디면 된다라는 희망마저 물 건너 가버렸다.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는 덫에 빠진 듯 그렇게 막막한 느낌인 것이다. 지금까지 쌓여왔던 부모에 대한 원망과 서운함이 갑자기 봇물 터진 듯 견딜 수 없어진, 정말 지칠대로 지쳐버린 그녀는, 이제 반란을 준비하고 있다. 어차피 언제 끝날 지 알 수 없는 회사, 진작에 접어버리고 싶었던 회사를 그만두고 차라리 백수가 되어 보란 듯이, 이제 나 능력없으니 더이상 제게 기대지도 바라지도 마세요, 라고 몸으로 말하고 싶다는, 말해야만 할 것 같다는 그녀. 부모의 내리 사랑만이 전부가 아니고 자식된 도리도 중요하단 걸 알지만, 그리고 그녀가 없는 빈 자리가 나에게 줄 허전함과 그 여파를 알지만, 그녀를 옆에서 쭉 지켜봐 온 나로선 그녀의 마음을 십분 이해하고도 남기에 나 역시 마음으로 그녀를 보낼 준비를 해야겠다. 어찌 됐던 그녀가 택한 방법이 결과적으로 그녀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게 되기를 정말 마음으로 바라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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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일이 태산인데 말야. 오늘도 난 하릴없이 싸이홈피 속을 헤매고 있어.

사무실 동생이 첫사랑 오빠를 그렇게 엿보고 있다는 재미난 사실을 알게 된 이후, 난 내 과거의 남자들이 잘 있는지, 혹시나 싸이홈피라도 하나 만들어놓은 게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가끔 그 속을 헤매게 돼.

그와 조금만 비슷한 사람만 봐도 혹시...하고 달려들지만, 그도 변한 걸까. 난 그인지 잘 모르겠어.

난 그들을 찾기 위해 내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다른 이의 이름을 빌려서 오늘도 헤매.

아, 그들은 다들 잘 있을까.

 

아. 한 사람 찾았다. 아랑. 그는 여전하다. 분위기 잡는 것도 여전한 것 같고. 그도 혼자인 것 같다. 네이버상의 그의 홈피 첫 마디는 이렇다.  11월 12일.. 그녀가 돌아왔다 라고...  그에게도 그동안 그녀가 있었다가 없어졌다가 다시 돌아왔나보다. 신기하다. 그는 나의 존재를 까마득하게 까먹고 있을텐데, 난 이렇게 멀리 떨어진 이곳에서 그의 흔적들을 본다. 그가 사진에 관심이 있는 줄 예전엔 미처 몰랐는데 그의 사진들이 맘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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