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서 확신할 수 있는 일이란 아무것도 없다, 라는 플라시보님의 글이 생각난다.
어렸을 때도 내게 세상은 불확실한 것 투성이었고, 부끄럽지만 지금도 내게 확실한 건 없다. 다만 요즘 내가 나이를 먹어가고 있구나, 라고 느끼게 하는 게 있다면, 그 하나는 예전에 '그런 것인가 보구나' 하고 머리로 이해되던 것들이 이젠 마음으로 절실하게 와닿는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그런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나도 모르게 나의 말투는 달관 혹은 단정적인 투가 되어버린다는 것인데, 문득 그런 나의 말투를 느낄 때마다 아차 싶고 나의 편견, 독단이 아닐까 두려워지기도 한다.
죽지 않으면 사는 거지.
모군은 늙은이같은 말투라고 했지만, 나로서는 조금은 시니컬하게 내뱉은 말이었다. 어쩌면 그 말은 다른 누구보다도 내 자신에게 하는 말이었는지도 모른다. 한때 내게도 죽고 싶은 순간이 있었다. 어떻게 하면 보다 편안하게 죽을 수 있을까 생각해보기도 했다.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지만, 그때 난 죽음을 맞을 용기도 없었고 그냥 죽어버리기엔 하고 싶은 것도, 미련도 너무 많았다. 살다보면 앞으로 내게도 죽고 싶은 순간이 있을 것이다. 그때마다 난, 죽지 않으면 사는 거지, 라고 중얼거리면서 살아야 하는 이유, 살고 싶은 이유들을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하나둘씩 떠올릴 것이다. 아마 그렇게 난 죽지 않고 살아갈 것이다.
돈을 요구하는 남자(애인)
얼마 전에 한 남자가 서울대 출신의 방송국 직원 행세를 하면서 여러 여자들에게 결혼 혹은 사랑을 빙자하여 돈을 뜯어내는 행각 끝에 뇌출혈로 쓰려져서 그 병원에 5명의 여인들이 병문안을 오는 바람에 들통난 사건이 있었다. 난 한 남자의 달콤한 말과 곱상한 외모에 반해서 몸과 마음뿐만 아니라 돈까지 고스란히 갖다바친 여자들을 탓하려는 게 아니다. 아마도 그 여자들은 그 남자가 필요로 하는 돈을 주면 그의 사랑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착각했던 것일 수도 있다. 눈꺼풀에 씌인 콩깍지때문에 그녀들은 실수를 했을 것이다. 잘은 몰라도 그 남자의 작태를 모두 알게 된 후에는 누구보다도 자신이 그런 바보같인 자기 자신을 심하게 질책하며 괴로워할테니 다른 사람들까지 보태지 않아도 될 것 같다. 그리고 어디까지나 나쁜 짓을 저지른 사람은 여자들의 바보같은 사랑을 이용한 그 남자이니까. 나 역시도 그 입장이라면, 한 남자가 작정하고 그러거나 혹은 조금 허술해 보이는 수작일지라도, 그가 나를 사랑한다는 착각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는 상태라면, 그가 돈이 없다고 필요하다고 했을 때 내가 나서서 돈을 빌려주겠다고 도움을 주겠다고 자청해서 제 무덤을 팠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다른 사람 머리는 깎아도 제 머리는 못 깎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다만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돈을 요구하는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 아닐 가능성이 많다는 점이다. 쉽지는 않겠지만, 그런 상황에 부닥쳤을 때 난 일단 한발 뒤로 물러서서 그 관계를 재고해 보기를 권한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나의 괴로운 짐을 지우고 싶지 않다. 때론 고통을 나누면 반이 된다는 걸 알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