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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이유 - MBC 느낌표 선정도서
제인 구달 지음, 박순영 옮김 / 궁리 / 2003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제인 구달. 그녀를 처음 보았을 때의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큰아이가 네 다섯살 정도 되었을 때인 것 같다.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아이 아빠의 손에 하루는 내셔널 지오 그래픽이란 비디오 테잎 두 개가 들려있었다. 이 비디오가 얼마나 교육적이며 좋은 것인가를 우리에게 설명하기 위해 약간은 억양이 상기되어 있는 신랑의 말에, 반신반의하긴 했어도 그 성의를 생각해 저녁상을 물리자마자 우린 모두 TV 앞에 둘러앉아 내셔널 지오그래픽이란 프로를 시청했다. 그런데 신랑의 말을 입증이라도 하듯 도입부의 배경음악부터 나와 아이를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그 날의 강렬한 인상 속에 제인 구달 그녀가 있다. 침팬지들과 약간의 거리를 두고 그들을 방해하고 싶지 않은 듯한 표정으로 평화롭고 인자한 미소와 함께 앉아있는 그녀의 모습은 아름답고도 신비로웠다. 침팬지들과 많은 날들을 함께한 그녀를 무리의 일원으로 침팬지들이 받아들였다는 나레이터의 해설을 듣곤 그저 놀라웠다. 그 놀라움은 그녀가 여성이기 때문에 더욱 컸던 것 같다. 가냘프게만 보이는 그녀의 어디에서 그런 힘이 나왔을까. 그게 늘,지금껏 궁금했었는데 얼마 전에야 겨우 이 책을 통해 그녀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다.
책을 통해 알게 된 그녀의 삶은 처음부터 끝까지 나의 기대를 한번도 저버리지 않는다. 그녀의 어린시절은 생명에 대한 호기심과 경외감, 사랑으로 가득 차있고 대니 할머니의 성경구절은 힘들 때마다 그녀에게 영적인 충만함으로 채워지게 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녀는 희망을 단 한번도 완전히 손에서 놓은 적이 없다라는 생각이 든다. 사람들은 그녀에게 이렇게 묻는다 한다. 어떻게 그렇게 평화로울 수 있냐고? 그러고 보면 사람들의 이런 의문은 그녀에 대한 공통적인 호기심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좁은 우리에 갇혀 발과 다리는 자라지 않고 몸집만 비대해진 돼지들. 인간은 더 많은 고기를 얻기 위해 이렇게 돼지를 사육한다는 사실은 일찍이 우리에게 알려진 사실이지만,인간적인 연민으로 가득찬 그녀의 글을 읽으면서 그녀처럼 이젠 고기를 먹지 못할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었다.내 의지의 나약함으로 이런 감정이 비록 순간적인 흔들림으로 끝날 것 같긴 하지만 내 속에 숨어있는 사악함과 이기심을 보는 것 같아 맘이 편치 않았다. 비록 우리의 밥상에 올려지기 위해 키워진다 해도 그들이 사는 동안의 행복까지 뺏을 권리에 대해서 애초에 생각조차 해 본 적이 없기때문이다.방목하는 젖소가 좋다는 말을 들을 때만 해도 자유롭게 자란 젖소에서 양질의 우유가 생산되어 사람에게 더 좋은 먹거리를 제공한다는 생각만했지 그들이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젖소의 자유와 행복이 양질의 우유로 귀결되어지는 우리의 이기심이 부끄럽다.
막연히 그녀에 대해 침팬지를 사랑하는 여성,마음이 따뜻하고 용기있는 여성정도로만 생각해왔었는데,이 책을 통해 동물보호론자라는 소극적인 입장에서 그녀를 평가하는 것이 얼마나 큰 실례가 되는지를 알게 되었다.그리고 왜 그녀가 세계를 움직이는 열명의 여성 가운데 하나인지 이해하게 되었다. 동물 보호의 차원을 넘어서 인류가 궁극적으로 도달해야 하는 곳이 어디인지를,그녀는 삶의 전과정을 통해 우리를 설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나이가 너무 많이 들어버린 제인 구달을 보며 우선 걱정이 앞선다.그리고 그녀의 소망대로 우리들이 하루빨리 달라지길 소망해보며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실천들이 무엇이 있는지를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