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 늑대의 눈 비룡소의 그림동화 56
조나단 런던 글, 존 반 질 그림, 김세희 옮김 / 비룡소 / 2000년 7월
평점 :
절판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차분함으로 사물을 고요히, 그러나 예리하게 응시하는 듯한 회색 늑대의 눈빛은 바라보는 이로 하여금 가슴 한켠이 서늘해지는 두려움과 경외심을 느끼게 하지요. 잔인하고 무서운 늑대의 모습이나 그림책에서 악역을 맡아놓고 하는 희화화된 늑대의 모습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답니다.

전 어릴 적 특히 인간과 동물의 우정과 모험을 극적으로 그려 나간 영화를 빼놓지 않고 보 려고 참 많은 정성을 기울였어요. 그런 영화를 보고나면 형언할 수 없는 감동이 어린 맘을 온통 휘젖곤 했으니까요. 저의 이런 희열과 들뜸의 경험을 제 아이들에게 물려주고 싶은 맘에 늘 이런 내용의 책에 대한 갈증을 느껴왔죠. 그리고 아이가 어서어서 자라길 학수고대했답니다.

어느덧 힘찬이는 그 떨림을 이해할 나이가 된 것 같아요. 그런데 정작 저는 이 책을 처음 읽고는 아무런 느낌을 받지 못했어요. 그건 한 편으로 서운하기도 하고 한 편으론 이해가 되지 않는 불가사의였죠. 힘찬이는 한 동안 이 책을 손에서 놓을 줄 몰랐으니까요. 읽고 또 읽으며 이 책이 주는 감동과 재미를 혼자 음미하는 것을 쳐다보며 제가 보지 못한 어떤 부분을 아이는 보았다는 생각만 할 뿐이었죠.

생각해 보면 저의 이런 무덤덤함은 너무 많은 모험과 극적인 반전에 익숙해지고 무뎌진 저의 감각이 문제인 것 같더군요. 판을 이미 다 짜 놓고 이런 이런 내용으로 전개될 것이라는 끼워맞추기식의 억지가 아직은 날카롭고 깨끗한 감성으로 책을 대하는 아이의 시선을 놓치고 만 거죠.
다시 한 번 더 생각해보면 과장되지 않은 담담함으로 사실적으로 그려나간 문장이 시리도록 푸른 겨울산의 서늘함과 회색 늑대의 우울하면서도 거부할 수 없는 위엄이 서린 눈빛과 한덩어리가 되어 아이의 맘을 그토록 사로 잡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그리고 인간들의 무모한 사냥으로 멸종 위기에 처한 늑대들의 위태로운 삶을 책의 마지막에 실린 작가 노트를 통해 읽고 나면 회색 늑대의 눈빛이 왜 그리 차갑고 무겁게 젖어드는지를 알 수 있어 마음이 착잡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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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4-04-11 1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를 쓰는 즐거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