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버거에 대한 명상 - 민음의 시 7 민음 오늘의 시인 총서 25
장정일 지음 / 민음사 / 198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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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시절, 정확히 언제인지는 모르는 때. 동네 서점에 둘러 이것저것 둘러보다가 평소에 무관심하던 시집 코너에 나도 모르게 서있게 되었다. 잠시 후, 내 손에 들린 시집은 장정일의 『햄버거에 대한 명상』이었다. 장정일이란 문제아적인 인간도 알고 있었고, 이 시집 이름도 알고 있었지만, 그 알맹이를 직접 맛본 적은 없었다. 그 알맹이의 맛은, 신선!했다. 그리고 나서 몇 년 후, 지금. 나는 급히 훑어보고 급한 감동을 속이 체한 듯 받은, 그 시집을 다시 보게 되었다. 이제는 천천히, 즐기면서, 처음부터 해설부분까지 전부 맛보았다.

예전의 그ㅡ신선한ㅡ맛이 아니었다.

물론 장정일의 시들이 바뀐 것은 아니다. 나란 불량독자가 바뀐 것이다. 이 시집을 서점에서 빠르게 훑어 보았을 때 받았던 작은 충격 같은 감동을 느끼게 했던 시들(<햄버거에 대한 명상>, <아파트 묘지> 등)은 오히려 감동에서 멀어져 있었다. 오히려 그 이외의 시들에게서 약간의 운율을 느끼게 하는 시들을 발견했을 뿐.

왜 그럴까,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한 가지 단서를 발견했다.

“시란 노래인 것이다.”

이 시집을 처음 봤을 때는, 기발한 발상이 담긴, 그래서 너무도 신선한 시들을 느꼈던 것이다. 그러나 두 번 봤을 때 그 발상은 이제 반은 죽어버린 것이 돼버렸던 것이다. “낯설은 것”이 시라고 할 때, 이 시들은 좋은 시임에 틀림없지만, “노래”가 시라고 할 때 이 시들이 (일반 독자, 즉 시를 읊조릴 사람들에게는) 끝까지 좋은 시라고 남을 수 있을 지는 의문인 것이다. 우리가 새로운 노래를 접하게 될 때 낯선 노랫말들과 가락에 의해 신선함을 느낄 수는 있지만, 계속 듣게 된다면 그 노래의 신선함은 어느 정도 퇴색해 있을 것이다. 그래서 노래는 자꾸 들어도 그 새로움이 지겹지 않고 오히려 귀에 익어질수록 좋아지는 노래가 좋은 노래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이 바로 음악성이다. 시에도 발상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음악성이 있는 것이다. 좋은 운율감은 곧, 중독성이고, 그 중독성은 좋은 시의 가장 마지막 단계가 아닐까.

비교해보자. 이 시는 두 번째 읽었을 때 가장 뛰어난 시라고 생각했던 것. <사철나무 그늘 아래 쉴 때는>

*어쨌든, 지금껏 읽은 시집 중에 가장 뛰어난 것의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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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수 사색사화집
김춘수 지음 / 현대문학 / 200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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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김춘수가 사화집(詞華集 ; 시선집)을 냈다. 시선집이라면 김춘수가 낸 것 이외에도 수없이 많겠지만, 이번 책은 조금 색다르다. 소월의 시에서부터 기형도의 시까지, 네 가지 색깔(四色)을 가진 시들로 나눈 것이다. 이름난 시인이 꼽은 이름난 시들을 읽는 즐거움에서부터 시작하여, 그 시를 비평한 글까지 함께 읽을 수 있어 좋다.

김춘수가 밝혔듯이 “이 사화집은 일종의 실천비평practical criticism이라고 할 수 있겠고 작품 검증을 통한 한국의 당대 시사(詩史)라고도 할 수 있”다. 즉, 시인은 이 사회집을 만들 때, 오히려 시인의 눈을 통해서라기 보다는 비평가의 눈으로 시를 본 것이라 할 수 있겠다. 그래서인지, 이 사회집 안에 실린 모든 시들이 나를 자극시키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만큼 시 비평은 더욱 날카롭다. 김수영 시 「어느날 고궁을 나오면서」에 대해서 메시지가 과도하게 노출되어 있으며 느슨하고 풀어져 있고 매우 처지는 시라고 하였다. 그러나 그러한 비평 뒤에 김수영이 7,80년대를 살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상상은 김수영 시 전반에 대한 평가는 매우 높다는 것을 보여준다. 아무리 대가의 시라 해도 질이 떨어지는 시가 있다면 다른 전체적인 평가와는 별개로 날카롭게 비평에 임해야 함을 보여준다.

김춘수의 시평은 조금 어려웠다. 전문용어도 자주 등장하는 편이었고 책의 내용을 생각해보면 일반인들이 이 책을 많이 읽지는 않으리라 본다. 한 마디로 베스트셀러가 되기는 힘들겠다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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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드 훔치기 - 한 저널리스트의 21세기 산책
고종석 지음 / 마음산책 / 200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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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석. 진정한 자유주의자, 또는 세련된 문체로 글을 쓰는 스타일리스트로 이름이 높다. 그의 책, <코드 훔치기>는 부제인 “한 저널리스트의 21세기 산책”이란 말처럼 20세기를 정리하고 21세기를 내다보는 저널리스트로서의 모색이다. 그러나 이 책은 ‘예언서’가 아니며, 오히려 20세기의 앎에 대한 회고라 할 수 있다. 지나간 길을 되돌아다 보면, 앞으로의 여정도 드러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미래의 길이 확연히 드러날 수 있도록 되도록 다양한 길들을 회고해보아야 한다.

이 책에서는 [사회주의의 미래]에서부터 [자유의 한계 ; 마리화나의 경우]에 이르기까지 문학, 동성애, 종교, 영어, 노동, 가족, 생태주의, 문화와 정치, 미국, NGO, 인터넷 따위의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이 때문인지 언론고시생들에 대한 추천도서로 자주 꼽히기도 한다.

고종석이 「책 앞에」에 밝혔듯이 원래 이 책의 텍스트들은 「모색21 ㅡ 전환기의 이념과 사상」이라는 이름으로 한국일보에 연재된 주간 기획물이었다. 책의 맨 마지막에 자리잡은 [자유의 한계 ; 마리화나의 경우]는 주제의 민감성 때문에 신문에 실리지 못했다고 한다. 이처럼 이 책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의 자유주의, 개인주의적 관점이 엿보인다. 그러나, 때로는 이러한 자유주의에 기초한 모호함이 그의 정확한 의견이 무엇인지 어렵게도 한다.

지금처럼만 아니라면 이 방법도 저 방법도 최소한 지금보다는 좋을 것이다라는 의견이다. 물론 이러한 진단이 옳을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의 대학 교육 제도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러한 대학 교육이 바뀌어야 한다는 사실까지도. 중요한 것은 우리 사회에 바람직한 대학 교육 제도가 어떤 방식이며 이것을 어떻게 적용시키겠는가, 하는 점이다. 저널리스트로서의 의견이라고 하기에는 조금은 무책임하지 않은가.

모색은 부분적으로 전망이다. 모색이 일반적 전망과 다른 것은 그 속에 의지나 욕망이 스며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전망은 일종의 예언이다. 흔히 듣는 말이지만, 예언은 가능한 한 멀리 그리고 추상적으로 내리는 것이 안전하다. 너무 가까운 미래에 대한 예언은 우려먹을 수 있는 시간이 너무 짧아 예언자에게 불리하다. 적어도 예언자의 생애가 끝난 뒤의 시점에 대한 예언을 하는 것이 현명하다. 너무 구체적인 예언은 엇비슷하게 맞추었더라도 꼬투리를 잡히기 쉽다. 추상적으로 두루뭉실하게 얘기함으로써 도망갈 구멍을 미리 마련해 놓는 것이 슬기롭다. 「책 앞에」(10~11쪽 일부)

처음 이 부분을 읽을 때는 대수롭지 않게, 그저 솔직한 글이라고 생각했으나 앞의 [미래의 교육] 부분을 읽고 나서 다시 보니, “추상적으로 두루뭉실하게 얘기함으로써 도망갈 구멍을 미리 마련해 놓는 것이 슬기롭다.”라는 말이 무척이나 눈에 거슬렸다.

한 개인 모두를 ㅡ고종석과 같은 저널리스트나 지식인이라 할지라도ㅡ 좌파나 우파로 규정할 필요도 없겠으나 좌파나 우파 모두의 의견을 접수하여 자기 주장을 펼 때에는 그 까닭이 두 의견에서 모두 합리성을 발견했을 때가 되어야지, 자신의 “도망갈 구멍을 미리 미련해” 두기 위해서 라면 그것이 “슬기”로울지는 몰라도 무책임한 것이 될 수도 있다.

* 참 좋은 책이다. 다양한 방면에 대한 식견을 높이는데 좋은 책.
* 그가 자주 인용하고 거론하는 자크 아탈리의 <21세기 사전>도 읽어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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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읽는 세계사 - 거꾸로읽는책 3 거꾸로 읽는 책 3
유시민 지음 / 푸른나무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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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이 책의 제목을 보고는 현대의 역사적인 사건으로부터 인류의 탄생까지 시간의 역순으로 거꾸로 되돌아가면서 훑어보는, 마치 영화 [박하사탕]과 같은 서술 방식의 책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니었다. 이 책을 다 읽고 난 뒤에 생각해보니, “거꾸로 읽는”다는 말은 시각을 달리해서 본다는 말이었다.

그렇다면 이 책은 시중의 대중을 상대로 한 역사관련 서적과 다른 점이 있단 말인가. 보통 역사에 관련된 책들은 역사소설이 아니라면 대중의 흥미를 유발하기 위해 “상식 밖의”라는 수사를 다는 시시껄렁한 접근을 하는 책들이 대부분이다. 물론, 이런 책들이 역사에 대한 대중의 흥미를 유발한다라는 미덕을 가진 것은 분명하지만 그런 책들에는 선정성이 역사의 진실에 대한 호기심이나 갈급함보다 우선 하기 마련이다. 조선시대에 요즘 못지 않은 바람둥녀(?) 어우동 같은 사람이 살았다는 것은 쉽게 잊혀지기 마련이고 더 이상의 역사적인 물음표를 던져주는 주제는 아니다. 미시사를 연구하는 역사학자에게는 몰라도, 최소한 대중적인 독자들에게는 말이다. 즉, 이런 책의 독자들은 책의 마지막 장을 덮자마자 단물 빠진 껌 내뱉듯이 버리고 말기 때문이다.

저자가 말하건대, 이 책에 대한 서평은 거의 없었는데 단 하나의 서평이 있어, 자신을 기쁘게 했다고 한다. 즉, “1980년대 청년 지식인의 지적(知的) 반항”이란 것이다. 실제로 저자는 군사독재정권 타도투쟁 운동 자금의 마련을 위해 책의 앞부분 절반을 썼으며, 나머지 반 역시 경찰에 쫓기면서 쓴 글이라고 한다. 이 책에 어째서 사회주의적 시각이 드러나는지 그 이유가 명백해진다.

책을 다 읽고 나서 제목을 다르게 붙여봤다. “분노의 20세기 史”라고. 실제로 이 책은 저자가 독재정권과 사회에 분노를 느끼던 때에 쓰여졌으며 내용 역시 분노의 역사를 다루었다. 유태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감옥에 갇혀야 했던 한 장교의 일을 다룬 “드레퓌스 사건”에서부터 “러시아 10월 혁명”, 모택동과 홍군의 “대장정”, “미완의 혁명 4.19”과 같은 혁명, 투쟁사. 그리고 “사라예보 사건”과 “베트남전쟁” 등 세계사의 굵직한 전쟁을 다룬 부분. “백인은 악마다!”라고 외쳤던 “검은 이카루스, 말콤 X”와 “핵과 인간”, “20세기의 종언, 독일 통일”까지.

이 모든 것에는 분노와 피와 눈물이 섞여 있다. “거꾸로 읽는” 책이라 그런지 젊은 시절의 저자의 분노가 느껴져서인지 이 책은 보통 따분하거나 가벼운 선정성을 담는 그런 책과는 분명 다르다. 역사책을 읽고 나서 졸리는 하품이 아닌, 뜨거운 분노를 느낄 수 있다는 것. 멋진 일이다.

분노의 20세기를 넘어 다음 세기에는 기쁨의 21세기를 기리는 책이 나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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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 읽기의 혁명
손석춘 / 개마고원 / 199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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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 내게는 단순한 신문'지'가 아니라 선생님이시다. 세상을 보는 눈을 가르쳐주고 모르는 것에 대해 친절히 알려주는 고마운 존재. '아우라'라는 낯설고도 어려운 말을 처음 접하게 된 곳도 신문에서였으며, 그 뜻이 무언지 궁금히 여기다가 며칠 뒤에 그 뜻을 알려준 것도 신문 기사에서였다. (아우라는 예술작품에서 흉내낼 수 없는 고고한 '분위기'를 뜻하는 말이라고 한다.) 이처럼 내게 새로운 언어를 알려준 존재가 신문이었던 것처럼 세상의 새로운 것을 알려주고 설명해 준 것이 또한 신문이었다. 고로 신문은 책 이상의 스승이었다.

그러나, 신문은 참 스승은 아니었다. 신문은 내게 세상의 모든 가르침을 주는 것도 아니었으며, 진리(신문 기자, 그들이 말하는 팩트! 마저도 진리의 전부는 아니다.)만을 이야기하는 것도 아니었으며 세상을 보여주는 데에 신문이 쓰는 돋보기는 굴절되고 왜곡되어 있었다. 또한 생각해 보건대 신문이란 놈은 장사꾼이었다. 광고로 먹고사는 철저한 장사꾼. 게다가 강자에게 한없이 약하고 약자에게는 한없이 강한 동네 깡패이기도 했다. 돈과 힘에 혈안이 되어 이리저리 곡필을 일삼는 신문. 어느 순간, 그런 모습들이 신문에서 보이기 시작했다.

- A라는 제품 기사가 있다. 와~ 이 기사 보니까 정말 사고 싶네. 그리고는... 그 지면 아래에 어김없이 나오는 A 제품 광고.

- B 대학이 남다른 데가 있나보다. 정보교육에서도 앞서고, 총장이란 사람도 생각이 앞서나가는 듯 하네. 신문 기사에는 분명 그렇게 실려 있었다. 아... 그렇군 B 대학은 이제 발전의 길을 걷겠군. 자, 지면을 넘겨보면... 역시나 등장하는 B 대학의 대문짝만한 광고.

이렇듯, 나는 주로 광고와 기사와의 관계를 보는 독법을 통해 신문의 부조리한 점을 많이 보았다. 그러나 역시 광고 정도를 자세히 보고, 또한 신문의 '보이는 것'만으로 신문을 제대로 볼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제대로 신문을 읽는 것은 보이는 것 즉, 편집을 제대로 읽는 것이 우선 되어야 한다. 이 책의 부제인 '편집을 읽어야 기사가 보인다'라는 말은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을 가장 잘 압축한 말이라 할 수 있다.

실제로 신문사에서 일하면서 편집을 담당했었던 저자 손석춘이 신문 편집에 대해 생각해온 것들을 이 책에 담아내고 있다. 이 책의 미덕에는 우리나라에서 발행되는 신문들의 기사를 갈무리한 사진이 많이 들어 있다는 점도 있는데, 이 때문에 내용의 이해도 빠르게 되고 그만큼 글이 줄어들어서 읽는데 부담이 줄어든다. 한겨레의 여론매체부 미디어팀장으로서 타 매체들을 비평했던 그의 전력도 이 책을 쓰는데 큰 도움이 되었던 모양이다.

이 책은 내게 신문 읽기의 '혁명'까지는 가져다주지는 않았다. 신문을 스승으로만 모시던 생각을 깨뜨리면 절로 신문에 대해 의심하게 되고, 편집도 다른 방법으로 보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굳게 믿고 있었던 것. 그것에 대한 의심을 해보면 이전에는 생각지 못했던 것을 생각하게 되고 보이지 않았던 것도 보이게 된다. 의심은 때로, 눈을 열게 한다.

이 책, 신문에 대해 많이 알고 있지 않았던 사람에게는 분명 큰 도움이 될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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