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드 훔치기 - 한 저널리스트의 21세기 산책
고종석 지음 / 마음산책 / 2000년 10월
평점 :
품절


고종석. 진정한 자유주의자, 또는 세련된 문체로 글을 쓰는 스타일리스트로 이름이 높다. 그의 책, <코드 훔치기>는 부제인 “한 저널리스트의 21세기 산책”이란 말처럼 20세기를 정리하고 21세기를 내다보는 저널리스트로서의 모색이다. 그러나 이 책은 ‘예언서’가 아니며, 오히려 20세기의 앎에 대한 회고라 할 수 있다. 지나간 길을 되돌아다 보면, 앞으로의 여정도 드러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미래의 길이 확연히 드러날 수 있도록 되도록 다양한 길들을 회고해보아야 한다.

이 책에서는 [사회주의의 미래]에서부터 [자유의 한계 ; 마리화나의 경우]에 이르기까지 문학, 동성애, 종교, 영어, 노동, 가족, 생태주의, 문화와 정치, 미국, NGO, 인터넷 따위의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이 때문인지 언론고시생들에 대한 추천도서로 자주 꼽히기도 한다.

고종석이 「책 앞에」에 밝혔듯이 원래 이 책의 텍스트들은 「모색21 ㅡ 전환기의 이념과 사상」이라는 이름으로 한국일보에 연재된 주간 기획물이었다. 책의 맨 마지막에 자리잡은 [자유의 한계 ; 마리화나의 경우]는 주제의 민감성 때문에 신문에 실리지 못했다고 한다. 이처럼 이 책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의 자유주의, 개인주의적 관점이 엿보인다. 그러나, 때로는 이러한 자유주의에 기초한 모호함이 그의 정확한 의견이 무엇인지 어렵게도 한다.

지금처럼만 아니라면 이 방법도 저 방법도 최소한 지금보다는 좋을 것이다라는 의견이다. 물론 이러한 진단이 옳을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의 대학 교육 제도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러한 대학 교육이 바뀌어야 한다는 사실까지도. 중요한 것은 우리 사회에 바람직한 대학 교육 제도가 어떤 방식이며 이것을 어떻게 적용시키겠는가, 하는 점이다. 저널리스트로서의 의견이라고 하기에는 조금은 무책임하지 않은가.

모색은 부분적으로 전망이다. 모색이 일반적 전망과 다른 것은 그 속에 의지나 욕망이 스며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전망은 일종의 예언이다. 흔히 듣는 말이지만, 예언은 가능한 한 멀리 그리고 추상적으로 내리는 것이 안전하다. 너무 가까운 미래에 대한 예언은 우려먹을 수 있는 시간이 너무 짧아 예언자에게 불리하다. 적어도 예언자의 생애가 끝난 뒤의 시점에 대한 예언을 하는 것이 현명하다. 너무 구체적인 예언은 엇비슷하게 맞추었더라도 꼬투리를 잡히기 쉽다. 추상적으로 두루뭉실하게 얘기함으로써 도망갈 구멍을 미리 마련해 놓는 것이 슬기롭다. 「책 앞에」(10~11쪽 일부)

처음 이 부분을 읽을 때는 대수롭지 않게, 그저 솔직한 글이라고 생각했으나 앞의 [미래의 교육] 부분을 읽고 나서 다시 보니, “추상적으로 두루뭉실하게 얘기함으로써 도망갈 구멍을 미리 마련해 놓는 것이 슬기롭다.”라는 말이 무척이나 눈에 거슬렸다.

한 개인 모두를 ㅡ고종석과 같은 저널리스트나 지식인이라 할지라도ㅡ 좌파나 우파로 규정할 필요도 없겠으나 좌파나 우파 모두의 의견을 접수하여 자기 주장을 펼 때에는 그 까닭이 두 의견에서 모두 합리성을 발견했을 때가 되어야지, 자신의 “도망갈 구멍을 미리 미련해” 두기 위해서 라면 그것이 “슬기”로울지는 몰라도 무책임한 것이 될 수도 있다.

* 참 좋은 책이다. 다양한 방면에 대한 식견을 높이는데 좋은 책.
* 그가 자주 인용하고 거론하는 자크 아탈리의 <21세기 사전>도 읽어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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