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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학계 김소월·이육사 詩 해설 문제 많다”
주장_ 고영자 평론집 『바로잡는 국문학』 탱자 刊 | 2004 | 508쪽

2005년 02월 26일   이은혜 기자 이메일 보내기

일문학 전공자가 국문학계에서 정설처럼 여겨져오는 몇몇 작품론에 문제가 많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고영자 전남대 교수는 최근 낸 평론집 ‘바로잡는 국문학’에서 기존 김소월, 이육사론에 메스를 가하고 새로운 견해들을 내놓았다.


소월의 시에 대한 기존 국문학계 평가는 ‘여성적’ 또는 ‘민요적’이라는 견해에 집중돼있다.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허공중에 헤여진 이름이여!”로 시작되는 ‘招魂’, 이에 대해 조동일 서울대 교수는 “소월은 시세계에 안주해서 위안을 찾으려는 태도를 지니고 슬프면서도 감미로운 망각에의 애착을 버리지 않았다”(‘김소월 연구’, 새문사 刊)라고 해석했다. 시어 중 ‘님’이란 단어에 주목해 서정적인 시로 평가했던 것. 신동욱 前 연세대 교수는 ‘소중한 임을 잃은 경험’은 인간의 보편적 경험이라며, ‘초혼’ 역시 인간 보편적인 경험 위에 짜여져 있다는 견해를 내놨다.

 
이런 해석에 대해 저자는 “오독의 여지가 많다”라며 비판을 가한다. 소월이 산 시대적 배경이나 그의 민족정신이 전혀 감안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 저자는 당대의 역사적 배경에 주목을 요한다.


‘초혼’은 관동대지진 때 학살당한 조선인들의 넋을 보고 그들의 혼을 불러내는 의식이라는 것. 당시 소월은 일본에 체류해 2만여명의 조선인들이 학살되는 것을 목격했고, 서둘러 귀국한 후 ‘초혼’을 창작했다. 그러나 기존 연구자들이 역사적인 사실이나 ‘초혼’이란 단어의 상징적 의미를 간과했다는 게 저자의 지적이다.


“산에는 꽃피네/ 꽃이피네/ 갈봄 여름없이/ 꽃이피네”로 시작되는 ‘山有花’ 역시 오독됐다는게 저자의 견해다. 고 교수는 김윤식 서울대 교수가 “산유화를 다만 소월의 ‘자연관’을 나타내는 시로 단정짓고 있다”(‘김윤식 교수의 시 특강’, 한국문학사 刊)라고 비판한다. 조동일 교수(‘한국문학통사’, 지식산업사 刊)나 권영민 서울대 교수(‘평양에 핀 진달래 꽃’, 통일문학 刊)의 해석 모두 매한가지다. 그러나 저자는 ‘산유화’는 일본 벚꽃 이데올로기의 근원이 되고 있는 ‘산벚꽃’을 의식해 그 산벚꽃이 우리 강산에 번지는 것을 ‘탄식’한 역설적인 슬픔의 시임을 주장하고 있다.

국문학계, 일본자료 섭렵 부족해
이육사론에 대해서도 기존 연구자들과 다른 견해를 내놨다. 저자는 김재홍, 김학동, 김윤식, 조동일 교수의 연구를 살피면서, 이육사의 ‘청포도’를 과실로만 보는 건 무리라고 비판한다. 저자는 일제시기 검열을 피하기 위해 육사는 상징적이고 암시적인 표현을 쓸 수밖에 없었고‘청포도’의 ‘靑’은 ‘청년’의 ‘청’과 어원을 같이한다고 말한다. 특히 육사는 대한임정기 중 투철한 민족정신과 조국의 광복을 위해 투쟁했던 열성적 투사였기 때문에 청년을 의식한 시어로서 ‘청포도’를 썼다고 보는 것이다. 이에 저자는 “내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이라는 시구를 “내고장 칠월은/ 청년운동이 활발해져가는 시절”로 해석하는 것이 가능해진다고 본다. “기존 비평들이 당시 잡지를 도배하다시피 한 청년 담론을 염두에 두지 않고 해석했다. 전반적으로 국문학계 연구가 일본의 자료들을 충분히 섭렵하지 못한 채 이뤄져 잘못된 定說이 교과서를 통해 학생들에게 전해지는 게 안타깝다”라고 꼬집었다.


이같은 견해가 제기되는 것에 대해 조두섭 대구대 교수(국문학)는 “국문학계의 선행연구들이 한정된 자료에 근거하고 있다”라며, “새로운 자료들이 많이 발견되고 있는만큼 다양한 관점에서 재조명될 필요가 있다”라고 말한다. 박현수 경북대 강사(국문학)도 “다양한 해석이 제기되는 것은 바람직 하다”라고 말하면서도, 그러나 “소월이나 육사의 시를 기존과 너무 다르게만 보려 하면 오히려 일탈된 해석으로 나갈 수도 있다”라는 우려를 나타냈다. 
 이은혜 기자 thirteen@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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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2005-02-26 17:30

* 아직 책을 읽어보지 않았으므로 뭐라 말하는 건 이를지 모르겠으나 김소월에 대한 평가 부분만큼은 확실히 이전부터 나역시 공감하고, 문제로 느끼고 있던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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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자누스 2015-10-25 04: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월이나 육사의 시를 기존과 너무 다르게만 보려 하면 오히려 일탈된 해석으로 나갈 수도 있다”라는 우려가 우습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