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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화 옆에서 ㅣ 민음사 세계시인선 50
서정주 지음, 이남호 엮음 / 민음사 / 1997년 11월
평점 :
품절
혐오스런 이름을 피해 독서를 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한편 혐오스런 이름을 직접 대면해보고자 하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다, 라고 변명하자. 그리고는, 서정주를 읽자.
『국화 옆에서』는 평론가 이남호가 서정주의 처녀시집인 <화사집(1941)>에서부터 <노래(1984)>에 이르기까지 서정주의 시세계를 더듬어서 새로 엮은 ‘시선집’이다. 이미 교과서에 실릴 정도의 시인이라면, 우선은 시선을 통해서 시인의 상상세계의 큰 줄기들을 훑어보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사실 예전의 나는, 이미 여러 평론가들이 달라붙어서 온갖 단물 쓴물을 다 빨아 마신, 그 정도의 가치 검증이 끝난 시인이라면, 전집으로 읽어주는 게 독자된 겸허한 도리가 아닌가, 라고 그렇게 황당하게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 황당한 생각은 내 안에 오랫동안 자리 잡고 있었는데, 한때 <한겨레>에 연재되었던 신경림의 문학칼럼을 읽고 가볍게 폐기해버렸다. 신경림의 말은, 오히려 좋은 시선이 없어서 탈이란 것. 어쨌든 그 이후론 정반대의 독서를 한껏 옹호하게 되었는데, 대가의 시들은 시선으로 먼저 읽는 게 좋겠다, 라는 생각. 전집을 읽자고 다짐할수록 그 ‘전집'이라는 특이한 권위와 신비 때문에 다가가기가 힘들어진다.(마치 ’고전‘이라는 이름처럼!) 그러나, 시선집은 독자를 한없이 편안한 마음으로 이끈다.
유종호는 “아무 말이나 붙들고 놀리면 그대로 시가 되는 경지에 이른 미당은 정히 부족 방언의 요술사다”라고 미당을 평가한다. 시를 ‘언어미술’로 생각하고 토속어에 끌리는 유종호가 한 말임을 감안해보아도 그렇게 황당한 평가는 아닌 듯 하다. 과문한 탓에 나는 언어의 완성도면에서 서정주를 능가하는 시인을 읽어 본 일이 별로 없다. 그건 불행한 일이다. 정말이지 타락한 시인의 타락한 언어라고 내뱉을 수밖에 없다. 서정주가 구사하는 언어의 관능만큼은 다른 시인들에 비해서 저 멀리로 달아나고 있는 듯 하다. “아무것도 뉘우치진 않으련다”(「자화상」)던 미당. 미당 시에 대한 내 독후감이 어리석었던 시절의 짧은 인상으로 전락해버리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