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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 랜덤 시선 16
김경주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6년 7월
구판절판


<외계(外界)>

양팔이 없이 태어난 그는 바람만을 그리는 화가(畵家)였다
입에 붓을 물고 아무도 모르는 바람들을
그는 종이에 그려 넣었다
사람들은 그가 그린 그림의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다
그러나 그의 붓은 아이의 부드러운 숨소리를 내며
아주 먼 곳까지 흘러갔다 오곤 했다
그림이 되지 않으면
절벽으로 기어올라가 그는 몇 달씩 입을 벌렸다
누구도 발견하지 못한 색(色) 하나를 찾기 위해
눈 속 깊은 곳으로 어두운 화산을 내려보내곤 하였다
그는, 자궁 안에 두고 온
자신의 두 손을 그리고 있었던 것이다--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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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싸움 세계사 시인선 56
김승희 지음 / 세계사 / 1995년 6월
품절


<솟구쳐 오르기 ․ 10>

황금의 별을 나는 배웠다,
어린 시절의 별자리여,
마음속 어느 혼 속에
고통의 상처가 있어
그 혼돈 속에서 태어나는 별,
혼돈과 함께 태어나는 황금의 별이 있다고
나는 배웠고
그 말은 나를 매혹하였다

혼 속에 상처를 간직하지 않으면
무엇이 나를 별이게 하겠는가?
나는 고요히, 울면서,
인생이 나에게 주는 모든 쓰디쓴 혼돈
모든 쓰디쓴 상처
그 상처의 악령들을 나는 사랑하였다,
인생을 구제하는 건
상처의 옆구리에서 흘러나오는 상처의
오케스트라,
그 상처의 오케스트라 속에서만 터져나오는
황금의 별들의 찬란한 음악

(하략)-34~3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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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로 가득 찬 책 - 제25회 김수영 문학상 수상 시집 민음의 시 137
강기원 지음 / 민음사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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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의 도서관>

이곳엔 새 책뿐이야
책장을 열면 글자가 사라지지

'새'를 뽑아 들자
짝짓기하던 한 쌍 나란히 날아오르고
'내'를 펼치자
혀 풀린 벙어리처럼 소리 내며 흐르는 여울
'결'을 찾아보자
어디선가 다가와
돌결, 살결, 숨결, 소릿결, 나뭇결, 물결……
의 주름을 펴는 저 명지바람
'흙'은 부풀 대로 부풀어 하늘과의 경계를 지우고 있어
아지랑이 지우개로

늙을수록 지평선 커지는 어느 봄날의 도서관
반백 살의 어린아이가
수없이 보아 온 책들의 낯섦 앞에서
캄캄하게 환한 갈피 사이에서
홀로 돌아 나오는 길을 잃네
침묵의 지진계
그 미세한 떨림도 모르는 채-16~17쪽

<이별>

이별을 천천히 발음하자
이, 별이 되었다
이, 별에서
저, 별로
건너갔을 뿐이다
그리니치 자오선의 시간에서
시간 없는 시간으로
공간 없는 공간으로
돌려놓았을 뿐이다
먼지와 동갑내기가
된다는 것
중력에서 조금
벗어난다는 것
영혼의 처녀막이
찢어진다는 것
망각의 지우개가 생긴다는 것
A.D.에서 B.C.로
바뀐다는 것
태어나기 전으로
되돌아간다는 것
뿐이다-10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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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두꺼비집을 내려놨나 - 개정판 민음의 시 21
장경린 지음 / 민음사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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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리운동>

이 얼 싼 쓰
우 류 치 빠
명동 2가 83번지 화교소학교
열 살 남짓
스무 명 남짓한 아이들이
앞으로 굽혔다가
뒤로 젖혔다가
허리운동을 합니다
뽀얀 모래먼지 이는 운동장
담장을 타고 넘는
이 얼 싼 쓰
우 류 치 빠
조국은 크고 머나먼 나라
굽혀도 굽혀도
손 끝에 발등이 닿지 않는
머나먼 나라-11쪽

<라면은 퉁퉁>

우리 관군이 육전에서 패배를 거듭하고
있는 동안 해전에서는
이순신 장군이 연전연승 일본 함대를 적멸시켜

전세를 역전시키고 있었다. 4번 타자
김봉연이 타석에 들어서자
관중들은 함성을 지르며

묵묵히 걸어나갔다. 최루탄 가스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유로운 삶을 위해서 그들은

콘돔이나 좌약식 피임약을
상용하였으므로 대부분의 아이들이
외동아들이거나 외동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라면은 퉁퉁
불어 있었다. 정확히 물을 3컵 반
재어서 부어넣었는데, 어떻게, 면발이 퉁퉁-2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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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이다 - 정보고속도로에서 행복해지기 위한 안내서
니콜라스 네그로폰테 지음, 백욱인 옮김 / 커뮤니케이션북스 / 199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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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는 색깔도, 무게도 없다. 그러나 빛의 속도로 여행한다. 그것은 정보의 디엔에이를 구성하는 가장 작은 원자적 요소이다. 비트는 켜진 상태이거나 꺼진 상태, 참이거나 거짓, 위 아니면 아래, 안 아니면 바깥, 흑이거나 백, 이들 둘 가운데 한 가지 상태로 존재한다. 이해를 쉽게 하기 위해 우리는 비트를 1 혹은 0으로 간주한다. 1의 의미, 혹은 0의 의미는 별개의 문제이다. 컴퓨팅의 초창기에 비트열(a string of bits)은 대개 수치 정보를 가리켰다.-17쪽

형태가 없는 데이터 개념은 어느 단계까지 확장될 수 있을까? 뉴스 리포트(가능하다), 혹은 소설(상상하기 힘들다)까지? 비트가 비트가 되면 해적질과 같은 오래된 질문이 아니라 새로운 질문이 제기된다.
이제 더 이상, 미디어는 메시지가 아니다.-62쪽

디지털 세계에서 미디어는 메시지가 아니다. 미디어는 메시지의 구현이다.-7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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