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마태우스 > 대학생

 

 

 

 

 

1. 70년대
유시민이 대학을 다니던 시절에는 1학년을 마치고 나서야 전공을 정했다고 한다. 당시 최고로 잘나가는 과는 법대였지만, 유시민은 경제과를 택했다. 왜그랬을까? 딴지일보에 실린 그의 말이다.
[도~~~저히 쪽 팔려서 못 가겠는거야. 법대를. 법대를 간다는 얘기는, 유신헌법부터 시작해서 당시 법률을 공부해서 사법시험을 봐야 된다는 의미고, 그죠? 그때 판사가 된다는 거는, 정말.. 법정 방청석에 중앙정보부 요원들이 수첩 들고 와서 앉아서 체크할 때의 법원 아닙니까.. 그러고 긴급조치란 게 있어 가지고, 유인물 한 장 잘 못 쓰면 사형까지 시킬 수 있는 그런 시스템인데.. 그 밑에 가서 쪽 팔리게, 판검사 하냐 이거야..]

이런 사람은 유시민만이 아니어서, 경제과 78학번에는 최고의 인재들이 다 모여들었다고 한다. 그의 말이다. "그 정운찬 선생이, 지금도 78학번을 그래 칭찬하잖아. 78만큼 뛰어난 애들이 많이 모였던 적이 없다 이거야. 그 양반 말로는"

2. 80년대
내가 대학 1학년이던 80년대 역시 군부독재가 지배하는 시절이었다. 우리 과만의 특성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당시 우리들의 사회의식은 70년대와 같지 않았다. 우리는 소위 '운동권'들을 경원시했고, 그들이 '광주사태'가 어쩌니 하면서 선동을 해도 관심을 갖는 애들은 많지 않았다. 대학에 간 이후에 알게 된 광주의 진실은 분명 충격적이었지만, 난 내 인생을 감옥에서 보내고픈 마음이 추호도 없었다. 학교에는 전경이 상주했고, 늘상 벌어지는 시위 때마다 많은 학우들이 연행되었다. 난 데모도 안했는데 얼떨결게 잡혀갈까 두려워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 앉아 시위를 구경하곤 했다. 한 학우의 말이 기억난다. "시위 안할 거면 이리와서 돌이나 깨요!"

비록 참여는 못했을지언정, 우리들 마음 속에는 군부독재에 대한 저항심이 자리잡고 있었다. 전경들이 수시로 불심검문을 해대는 사회, 머리를 짧게 깎았다는 이유로 닭장차에 끌고가는 야만적인 사회에서 어떻게 그러지 않을 수 있겠는가? 운동권을 멀리하긴 했지만, 이정우, 김민석이나 임종석 등 당시 운동권 리더들은 우리에게 영웅이었다. 심정적 동조가 있었기에 모든 시민이 거리로 나간 87년 6월, 우리과 애들도 흰 까운을 입고 시위에 동참했고, 87년 대선에서 노태우를 찍는 게 쪽팔린 거라는 공감대가 형성될 수 있었으리라.

3. 90년대, 그리고 현재
절차적 민주주의가 자리잡은 87년 이후, 시위는 많이 사그라들었다. 91년의 분신정국 이후에는 그나마 시위의 방향도 등록금 투쟁이나 학교비리 같은 것으로 바뀌었다. 사회주의의 몰락과 맞물려져, 대학생들에게 마르크스는 더 이상 필독서가 아니었고, 각종 무협지가 대출순위 톱텐을 점거하기 시작했다. 대학생들은 이제 정치에 관심이 없고,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토플점수와 사법고시였다.

내가 속한 써클만 해도 그랬다. 진료써클을 표방하며 소외된 사람들을 돌보는 활동을 하는 그들이 노무현보다 이회창의 지지율이 낮다고 탄식들을 해댔다. "난 돈 많이 버는 의사가 될거야"라는 글을 버젓이 올린 사람도 있었다. 물론 이해할 수 있는 측면이 있다. 군부독재는 이미 물러갔고, 그들의 눈에 한나라당은 군부독재의 후신이 아닌, 민주당과 열린우리당보다 조금 더 부패한 당일 뿐이니까. 또한 고교 때까지 누리지 못했던 대학생활의 낭만도 즐겨야겠고, 갈수록 좁아지는 취업난에 대비해 자격증도 따고, 자신의 실력을 연마하는 게 필요하니까. 사회정의라는 게 밥을 먹여주는 것도 아닌 바, 신자유주의의 광풍 속에서 누가 돈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그렇긴 해도, 앞으로 우리 사회를 이끌어갈 대학생들이 지금 보여주는 모습은 우려스럽기 그지없다. 대학생이 공부보다는 정치투쟁을 해야만 했던 과거도 바람직한 게 아니지만, 지금처럼 타인의 고통에 무관심한 대학생들이 앞으로 만들 사회는 대체 어떤 모습일까?

20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광화문에 모인 사람들은 대부분 30대, 그걸 보면서 생각했다. 대통령이 쿠테타로 물러나는 일이 십년쯤 후에 일어난다면, 촛불을 들고 광화문에 갈 사람이 과연 있을까,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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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여행자 2004-03-16 2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00년대에 대학 입학한 한 명으로, 마태우스 님 글을 읽으니... 심히 쪽팔려진다. 분명 지금도 이타적인 대딩들은 있다. 그러나 많지는 않다.

연우주 2004-03-17 0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00학번이셨군요...^^ 그런데 어째 저보다 나은 것 같습니다. ^^

도서관여행자 2004-03-17 1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00"년대"에 입학했는데, 빵빵학번은 아녜요^^;

연우주 2004-03-17 2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그러면, 그 뒤의 학번이시라는~~~. 헉헉. 놀랍습니다.
 

[사회]
[클릭!세상] ″탄핵,왜 내뜻과 달라″ 택시기사―승객 시비 속출
[국민일보 2004-03-16 18:24:00]

노무현 대통령 탄핵을 둘러싼 정치적 입장이 다르다는 이유로 사소한 시비를 벌이다가 폭행으로 번져 경찰에 입건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서울 강남경찰서는 16일 대통령 탄핵과 관련한 의견 충돌 끝에 싸움을 벌인 김모(31·자영업)씨와 택시기사 양모(37)씨를 불구속 입건했다.

김씨는 이날 새벽 1시10분쯤 논현동에서 택시를 타고 청담동으로 가던 중 라디오에서 탄핵 이야기가 흘러나오자 양씨에게 “라디오를 꺼달라”고 요구하면서 둘 사이에 시비가 벌어졌다.

양씨는 “재미있게 듣고 있는데 왜 끄라고 하느냐”며 반문했고,김씨는 막무가내로 라디오를 꺼줄 것을 고집했다. 목적지에 도착하자 김씨는 지갑에서 돈을 꺼내 양씨에게 던진 뒤 욕설을 퍼부었고 끝내 둘은 차 밖으로 나와 멱살잡이를 벌이다 경찰에 연행됐다.

앞서 15일 서울 남대문경찰서는 탄핵 문제로 시비를 벌이던 회사원 3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날 오후 8시30분쯤 지하철 시청역 앞에서 박모(52)씨 등 회사원 3명이 민모(55)씨가 운전하는 택시를 세운 뒤 차량 안으로 상체를 밀어넣고 대뜸 “찬성이야,반대야”라고 민씨에게 물었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며 되묻는 민씨에게 박씨는 “탄핵에 찬성하면 탈 것이고 반대하면 안 타겠다”고 말했다. 이에 민씨는 “나는 그런 것 모르니 손님 알아서 결정하라”고 응수하자 박씨는 다짜고짜 민씨의 뺨을 때렸다.

화가 난 민씨는 차 밖으로 나와 박씨와 멱살잡이를 했고 박씨 일행 2명도 가세해 몸싸움을 벌였다.

선정수기자 jsun@kmib.co.kr

...아버지는 택시를 몬다. 이토록, 시절이 하 수상하니 아버지가 걱정된다. 아버지는 아마도 노무현을 지지하는 것 같은데, 이라크전 파병을 지지하시는 등 나와는 좀 다른 정치견해를 가지셨다. 나는, 인류 역사상 최강대국의 '기독교인' 대통령인 부시를 두둔하고 이라크전 파병을 지지하는 아버지는, 진정한 의미의 기독교인이 아니라는 둥, 당신의 면전에 대고 막말도 많이 했다. 아버지가 그런 정치견해를 갖게 된 배경을 거의 다 알고 있으면서도 그렇게 말한 거다. (아버지는 젊은 날에 절망 속에서 생을 접는 선택 대신에 기독교에서 구원을 발견했는데, 아버지가 접한 기독교는 불행히도 한국에 널리 퍼진 근본주의 신학에 가까웠다. 게다가 아버지 세대들의 대부분이 그렇듯이 미국이 퍼준 옥수수죽 한 그릇에 진심으로 감사하셨다. 그리고 자기실현이나 야망을 위해서, 지성의 탑을 쌓기 위해서 고심할 나이 쯤에 생활전선으로 쫓겨나셨다. 아버지는 지금도 물론 '텍스트들'에서 위로를 받거나 새로운 지적 발견, 구체적인 지식과 정보를 얻을 기회가 별로 없다.) 그런 말을 신경질적으로 쏟아 놓고는, 늘 괴롭고 죄송한 마음이 들지만, 나는 늘 날카롭고 거친 목소리로 아버지에게 대들고 개긴다. "책 좀 읽더니만 니가 대드는구나...." 당신의 노동력을 착취해서 책도 보고 글도 읽고 생각도 바꾸고 그러면서도, 그렇게 함부로다. 당신 덕분에, 펜대 굴려 먹고 사는 머리노동자가 될 가능성이 점점 더 커지고 있지만, 그렇게 아버지에게 함부로다, 나는.

...아버지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무릎 꿇고 기도하고 식사 전에 반드시 성경책을 읽으신다. 나는 그렇게 경건한 아들이 못 돼서 그런 아버지를 따르지 못한다. 정말 못난 아들이다. 예전엔 아프거나 시험이 있는 전날에는 가끔씩 아버지께 기도해 달라고 그랬는데, 그렇게 기도를 부탁한 일이 언젯적 일인지... 이젠 가물가물하다. 아버지의 아침기도에는 내 이름도 들어있을텐데......, 아, 오늘 밤엔 아버지의 핸들을 위해 기도해야겠다.

 

 

 

 

 

.......술 마신 뒤 누군가에게 행패부리고 싶을 때나, 정치적으로 흥분했을 때엔 택시 타지 맙시다. 차라리 걸어 다닙시다. 건강에도 좋고, 술도 깨고, 흥분도 가라앉히고, 돈도 아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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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여행자 2004-03-16 2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구, 이번 탄핵 정국은, 아래 토론에서의 홍세화 말마따나, "택시 기사의 상식에 맞추어서 하면 되겠지요."

2004-03-16 22: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04-03-17 1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고비가 빨리 지나갔으면 좋겠군요. 민심이 흉흉해져서 더 이상은 원...

님의 글 읽으면서, 결국 신앙은 긍휼이고 사랑인 것 같습니다. 아버님을 위해 기도하시는 님의 기도가 꼭 이루어져서 오늘도 아버님이 안전 운전하시길 바래봅니다.

도서관여행자 2004-03-17 1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stella09님.
 

“한국 민주주의 중대한 진전 계기”


△ 좌담 참석자: 홍세화 기획위원, 이병천 강원대 교수·경제학,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사회학,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사학

긴급좌담: ‘탄핵정국’ 어떻게 볼 것인가

3월12일 오전 11시56분, 16대 국회는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가결했다. 그러나, 여당인 열린우리당이 반발하는 가운데 대통령 탄핵소추를 의결시킨 한나라당, 민주당, 자민련 등 야 3당은 곧바로 민심의 이반에 직면했다. 국민여론의 역풍, 정국은 급반전했다. 탄핵에 대한 국민적 저항이 전국 곳곳에서 촛불시위로 타오르고 있다. <한겨레>는 3·12 탄핵사태의 의미와 국민 저항의 성격을 들여다보는 좌담회를 3월14일 본사 회의실에서 열었다. 좌담회에는 홍세화 기획위원과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사회학), 이병천 강원대 교수(경제학),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사학)가 참석했다.

홍세화=격동이라 불러야 할까요. 제 경우에는 특수한 경험인 것 같아요. 1987년 6월항쟁을 한국 땅에서 겪지 못했던 저에게 지금의 국면은 이해하기 어려운, 생소한 상황입니다.

한홍구=생소하긴 마찬가지입니다.(웃음) 1987년 6월항쟁에 이르기까지 만날 대통령 보고 물러나라고만 해봤지 정당하게 우리 손으로 뽑은 대통령을 지키자고 길거리에 나가보는 경험은 이번이 처음이거든요.

조희연=야당의 대통령 탄핵으로 촉발된 상황이 어찌 보면 87년 6월항쟁에 준하는 항쟁으로 발전해 가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왜 이런 국민적 저항이 일어나는가. 그건 87년 민주항쟁 이후 10여년 동안 우리 사회가 민주사회로 가기 위한 진통의 과정이 있어왔는데요, 이런 과정이 복합적으로, 지그재그로 진행됐습니다. 그러니까, 민주개혁 추진 주체의 때론 부패도 있고 국정운영의 미숙함도 있고요. 이런 지그재그로 진행되는 민주개혁의 과정 속에서도 87년 6월항쟁이 보여주는 민주주의 마지노선이라는 게 있습니다. 이번 탄핵은 6월항쟁이 설정해준 민주주의의 마지노선을 보수적 야당들이 건드렸다, 이 민주주의 마지노선을 침범한 것입니다.


△  "참여정부 잘해나갔으면 이리 쉽게 당했을까"

이병천=탄핵정국과 시민사회의 저항운동을 보면서, 한국 민주주의의 실망스런 측면과 희망적 측면을 다 봅니다. 실망적이라는 것은 한국 민주주의가 약한 민주주의라는 것이고 보수 수구세력이 강인한 기반을 갖고 있다는 겁니다. 시민사회도, 제도정치 내에서도 그렇단 거죠. 그러나 한편으론 수구 보수세력조차도 계산착오를 했고, 이 착오는 엄청난 역풍을 받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노 대통령도 탄핵을 면할 수도 있었던 기회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탄핵을 받았다는 것은 결코 자랑스런 일은 아니거든요.

=저는 조금 다른 시각으로 보는데요. 파병문제 등 정말로 헌법 정신에 위배되는 사안은 저처럼 평화 문제를 다루는 처지에서는, 아주 중대한 탄핵 사유가 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이번 야당이 제기한 그런 문제는 전혀 탄핵거리가 안됩니다. 그 때문에 이렇게 국민들의 역풍을 받았다고 봅니다. 6월항쟁 이후에 우리 사회가 민주화를 이뤄왔는데, 이 민주화라는 게 상당한 진척도 있었지만 과거 청산을 이루지 못했어요. 과거 청산 없는 민주화였어요. 형식적인 면에서 민주화가 이뤄졌지만, 민주화의 중요한 전진이 군인이 정치에 개입했나 안했나에 초점을 두는 거죠. 거기선 성과를 얻었지만, 과거 군사독재에 협력했던 세력들, 거기서 이득을 봤던 세력을 민주화 과정에서 걸러내는 일은 전혀 못했다는 겁니다. 그래도 민주주의가 더디지만 조금씩 진전했습니다. 김대중 정권 들어섰고, 노무현 정권 집권했고. 수구세력의 입장에서는 김대중 집권은 아이엠에프 위기상황에서 어쩌다가 정권을 잃었지만, 다시 정권을 수구세력이 찾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잃어버린 5년까진 어떻게 견딜 수 있었지만, 말하자면 ‘잃어버릴 10년’까지는 못 견디는, 그러한 위기감 속에서, 정통성과 상관없이 (대통령을) 끌어내려 했다는 거죠. 요컨대 이번 사태가 과거 청산 없이 진행된 민주화가 수구반동세력에 의해 중대한 도전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일반 민중들이 반발하는 것이죠.

=탄핵 사유를 보면, 선거법 위반했다, 경제 실정했다, 측근 비리를 잘 관리하지 못했다 등 세가지인데, 이건 사유가 된다고 볼 수 없어요. 이것은 국민의 일반적 상식으로 볼 때 그래요. 탄핵한 민주당, 한나라당이 고립화된 형국이고 탄핵의 정당하지 못했음이 너무나 빨리 드러나고 있어요. 이는 수구 보수세력에 의한 쿠데타적 성격을 띠는 사건입니다. 그러나 집권 이후 참여정부가 집권해준 시민사회 동력을 잘 결집해서, 개혁을 잘 수행해 나갔다고 한다면 강력한 민주정부로서 잘 해나갔다면, 시민사회 동력이 이탈하지 않도록 했다면, 가정이긴 하지만, 보수 수구세력이 이런 정도로 쉽게 공격을 할 수 있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 "시시비비 가리는 태도 필요...양비론은 문제"

=이 정국에 대한 노 정부의 책임, 지난 1년 간의 실정, 훨씬 유연한 국정운영을 할 수도 있었던 것 아니냐는 말이죠.

=저는 이 교수 말씀에 동의하는 부분이 있거든요. 말하자면 노 정부가 어떻게 태어났는가 하는 지점에서 느린 사회민주화 과정의 선상에서 월드컵 때 붉은악마, 촛불시위 등 분위기 속에서 태어난 것이 노 정권이란 말이죠. 그런 흐름 속에서 시민사회의 역량과 잠재력과 같이하면서 나아가지 못하고, 어떤 의미에서 뺄셈을 해온 것 아닌가. 결국 이것이 수구세력에게 반격의 빌미 자체는 아니더라도 그런 상황이 될 수 있었다고 봅니다. 이 점은 수구세력의 반동적 성격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지만, 4년 임기를 다한 국회의원들이 4년 임기가 남은, 뽑은 지 얼마 안된 대통령을 이런 식으로 할 수 있을 만큼, (개혁의) 시간적 지체에 대한 부분이 있다는 것입니다. 지난 1년 동안 참여정부가 예컨대 분당사태랄지, 시민사회 역량으로 합칠 수 있는 부분까지 배제시켜온 점이 있지 않나 하는 겁니다

=그것은 수구세력이 ‘룰’을 지켜줄 때 가능한 거거든요. 저는 처음부터 그럴 마음이 없었다고 봐요. 시민사회 역량이 분산되었다 말씀하지만, 그런 부분이 김대중 정권 때도 일정하게 있었죠. 김대중 정권이 긍정적인 면, 성취한 면 굉장히 강했지만, 국내개혁 지지부진에 대해 따가운 비판이 있었고요. 노 정부는 취임 초기부터 상당히 신자유주의적인 부분을 많이 받아들였고, 그렇기에 시민사회운동 쪽에서 비판받았습니다. 그 점은 동의합니다. 한나라와 민주당이 주장하는 부분을 오히려 노 정권이 많이 받아들인 거죠. 그것이 역으로 본질적으로는 개혁에 가까운 집단이 굉장히 신자유주의적인 정책을 펴나가고 있을 때, 수구 보수세력들이 정책적으로 국민들에 호소할 수 있는 여지가 사라져 버린 상황이었죠. 여기에다, 노 정권이 앞으로 5년을 정상적으로 버틴다고 했을 때 수구보수세력 입장에선 ‘잃어버린 10년’까지 갔을 때 과연 보수세력이, 수구세력이 재집권 가능한가, 이에 대한 회의가 있었던 거죠. 이제 국회에서 의석 다수일 때 아예 끌어내려 버리자 했던 것이죠.

=글쎄요. 탄핵이 필연적이었는가라는 질문이 제기될 수 있을 것 같아요.


△ "수구에 분노해서이지 노가 예뻐서가 아니다."

한=이번 사태의 본질이, 수구 보수세력이 두차례의 선거에서 패배했고, 대중들에 의해서 점점 그들의 영향력이 위축되어가는 그 상황에 대한 극도의 위기감 속에서 탄핵이 강행된 것 아닌가 하는 것이죠. 전선의 본질도 민주 대 반민주 구도보다, 오히려 6월항쟁 때보다 전선이 넓어진 것 아닌가, 그때 수구세력의 영향 아래 있었던 일반적 보수 시민들이 이제 상당히 등을 돌려 버린 그런 상황이 아닌가 하는 거죠.

=제 생각이 한 교수와 다른 것은 아닌데요, 수구세력이 강함과 동시에 약해졌고 고립화되었고, 시민사회의 발전이 제도정치의 낡음을 추월해 버리는 양상을 우리가 보게 됩니다. 참여정부의 기반이 굉장히 다양하고 이질적이고 유동적이다는 지적을 한 바 있는데요, 참여정부는 시민사회 개혁 동력을 결집하고 확장시켜야 하는 과제를 갖고 있었는데, 물론 참여정부는 준비되지 않은 대통령이죠, 이는 김대중 정부와는 매우 다른 점이죠. 이 점은 어쩌면 참여정부의 한계뿐만 아니라 한국 민주주의의 한계라고 보는데요. 그러나 어떤 면에서 이번 상황에서 정부가 좀 안이했다고 봐요, 정권 초기. 왜냐면 초기에 실기하면 안된다는 걸 우리가 경험으로 교훈으로 알고 있거든요. 그래서 평화와 새정치와 성장과 분배의 균형과 조화, 사회통합적 노사관계는 대단히 중요한 집행과제들이거든요. 집권 초기 이를 방기하면서 노 정부가 약한 정부가 점점 약한 정부가 되었기 때문에 수구 쪽에 반격의 계기를 마련해준 것은 아닌가 하는 것이죠.

=양면을 봐야 한다는 말씀인데요, 탄핵까지 이르지 않을 수 있는, 좀더 유연하고 포괄적인 국정 운영은 불가능했던가 하는 의문을 던질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수구 대 개혁이랄지, 민주 대 반민주로 구도로 수렴되는 현실을 직시하면서도 그 속에 내재된 또다른 측면들, 노 정부의 오류와 한계성을 동시에 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두가지를 짚고 싶은데, 하나는 노 정부의 캐릭터의 독특함이 있습니다, 이 자체가 양면적인 점 있는데, 나름대로 지역주의나 부패정치에 타협하지 않으면서도 원칙을 지키고자 한, 그러면서 자수성가한 정치인이 갖는 개성과 자기중심적 측면이 있습니다. 그 개성이, 자기중심주의가 많은 네티즌을 환호하게 하고 한편으론 그 자기중심주의가 대우건설 전 사장 경우처럼 보수 정당들의 즉자적 반응을 불러내는 면도 있습니다. 이는 동전의 양면입니다. 또 하나는 우리 사회가 노 정부 이후에 수구 보수세력이 급격히 능동화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수구 보수세력이 잃어버린 5년과 잃어버릴 5년까지를 생각하면, 10년까지 상실의 시대를 경과해야 하는, 그런 극단적 위기의식이 있습니다. 이런 극단적 위기감, 노 정부의 국정운영의 효율성을 떠나서 강력한 수구 보수세력, 능동화된 수구 보수세력의 강력한 도전이란 측면이 현존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해야 할 것 같아요.


△  "노, 시민사회와 같이가지 못하고 개혁 지체"

=지금 말씀한 캐릭터를 보자면, 구체적인 민생 관련 정책에서는 쉽게 보수적으로 바뀌는데요, 말하자면 아주 쉽게 우회전하면서도, 성격, 캐릭터에서는 인간으로서 정서적인 측면은 견고하거든요. 결국 이런 것이 민주당 분당을 낳았는데, 분당만 없었어도 탄핵은 애당초 불가능했던 거거든요.

=저는 노 대통령의 독특한 개성이자 캐릭터가 기본적으로는 지역주의, 부패정치를 접점으로 하는 구정치와 개혁정치의 대립 속에서 형성된 것이라 봅니다. 이 캐릭터가 세계화, 이라크파병에 대한 정책에서 진보적일 수 있는 성격인가는 의문을 가질 수 있고 명백한 한계가 있습니다. 민주 대 반민주 전선에서 견결하게 싸우지만, 지금 민주 대반민주로 급격히 수렴되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론 노 정부의 한계를 짚어봐야 합니다.

=저는 캐릭터보다 훨씬 무거운 문제가 있는 것 같아요. 이 정권은 소수자로 출발해서 빚진 게 없는 거죠. 그래서 훨씬 선명하게 정치를 해나갈 수 있고, 이를 개혁적인 측면이라고 봤는데, 1년을 보면 정치인으로서 한 개인의 자질과 역량에 문제가 있는 것 같아요.

=과거의 권위와 비교해 보면, 과거 권위는 엄청난 정치자금을 독점하고 경찰, 국정원, 보안사 등 국가기구를 이용해서 엄청난 정보를 독점하고 검찰을 손에 쥐고 그렇게 행사한 권위주의였는데, 노 대통령은 이 부분을 놔버린 것이죠. 본인이 놔버리면서 다른 쪽에도 그런 걸 요구했고요. 노 정부는 적어도 부패정치, 정치자금 문제와 관련해서는 상당한 성과 있었어요.

=국정 수행 리더십의 행태적 측면에 대해서는 개방적으로 봐야 한다고 봅니다. 그것은 탈권위주의적이고 어떤 점에서 참을 수 없는 가벼움으로 다가오는 측면이 있지만 바로 그 점이 네티즌이나 젊은층에게는 다가가는 점이거든요.

=이 정권의 대미종속적 발언, 이라크 파병에 대해 분노했지만, 그런 부분을 빼고 국내정치 문제에서, 가령 검찰이나 정치자금문제를 비롯해 적어도 정치판을 새로 짜나가는 측면은, 미리 예측하고 시나리오를 짜고 가도 이렇게 될 수 없을 정도로, 승부사 적인 측면이 있습니다. 재신임 발언에서부터 지금 탄핵정국까지, 이렇게 과거 청산 안된 지점에서 계속 과거청산을 바라온 사람들 처지에선 노 대통령이 쉽게 탄핵도 피해가고 민주당 분당도 피해갔으면, 그렇게 정치를 이끌었다면 한국 정치가 민주화 위해서 한단계 업그레이드 되는 것이겠습니다만. 저는 이것이 6월항쟁이 미완이었기 때문에 겪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이런 부분은 미완의 4·19, 미완의 6월혁명이 당시 제기됐으나 남겨둔 과제를 이번 기회에 마무리지을 수 있는 계기를 삼음으로써, 정말로 노무현을 비판할 수 있는, 신자유주의 정책을 비판하고 민노당 등 진보정당의 존립문제를 정말 우리 사회가 진지하게 고민할 수 있는, 한국 민주주의가 중대한 진전을 해나가는 계기가 되었다고 봅니다.

=우리가 수구와 보수세력을 뭉뚱그려 이야기하는데, 이번에 수구와 보수가 갈라지는 중요한 계기가 되지 않을까 합니다. 굉장히 중요하죠. 조 교수도 뭉뚱그려서 이야기하는데. 저는 보수는 합리적 보수, 자유주의 보수세력과 수구세력을 구분해야 한다고 봅니다. 이번에 수구세력의 도발로 인해서 그것이 파열하는, 정면충돌하는 것으로, 그래서 보수와 수구가 구분되는 중대한 사건으로 볼 수는 있잖겠는가.

"보수와 수구와 결별 시작했다"

=동의합니다. 우리 근현대사에서 불행한 일이 양심적 합리적 보수세력이 제대로 설 자리가 없었던 거죠. 지금은 수구가 너무 나갔죠. 보수세력 입장에서 정상적인 사고를 가진 이들이 저거 따라가선 안되겠다 하다 보니까 고립이 형성된 것이죠. 지금 국면에서는 6월항쟁 때보다 중요한 대목이 있습니다. 보수적인 사람들, 6월항쟁 때는 막연히 중산층이라 불렸지만, 한국사회에서 보수적 생각을 가졌어도 이번 탄핵사건에서 아, 수구가 저런 것이구나, 해도 해도 너무한다 하고 생각하는 그 세력들에게 한국 민주주의의 미래가 달려 있다고 봐요. 지금 이 단계에서 한국사회가 발전하느냐 안하느냐 거기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건 시민사회나 진보세력이라기보다는 이제 수구와 결별하기 시작한 보수세력이라고 봅니다.

탄핵안을 헌재에 제출한 법사위 위원들이 유신헙법 기초한 사람하고 친일진상규명법안에 강력한 반대를 했던 인물이었거든요. 유신과 친일문제, 그 한국사회가 갖는 문제를 상징적인 사람들이 노 대통령을 탄핵하는 것이라는 것이, 이는 과거청산은 안되었지만 민주화가 되었기 때문에 그나마 언론 등에서 친일 문제 제기해서 이야기가 가능해진 것죠. 그래서 이 저항국면 가능해진 겁니다. 이제는 보수세력이 이런 점을 알게 되었고 수구세력의 장난에 넘어가지 않게 되었다고 봅니다.

=저는 모든 문제가 6월항쟁의 미완에서 비롯되었다고 보는 견해에 찬성하지만 반대도 합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 6월항쟁 자체가 단일한 항쟁이 아니라 노동자대파업을 동반했던 이중적 성격을 지녔던 사건인데, 그 이후 많은 사태가 변화했고 많은 잠재적 가능성을 지녔던 항쟁이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 많은 가능성을 어떻게 이끌지 고민해야 하는데, 노 정부는 미완의 6월을 재출발시킬 수 있는 상징적 대표성을 가지고 있지만 그렇지 않은 측면도 있다고 생각해요. 말하자면 그간 제도정치권뿐 아니라 시민사회 운동 자체 내에서 말하자면 참여연대와 경실련의 분화가 있었고, 노동운동과 그것을 기반한 민주노동당이 출현을 했는데, 때문에 그런 것을 동시에 끌어안는 시각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6월항쟁을 볼 때도 그런 점을 끌어안는 시각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오늘의 탄핵을 볼 때도 민주대연합 전선의 구도 속에서 탄핵은 부당하고 규탄하고 무효화해야 하고 탄핵 불복종운동을 펼쳐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헌법재판소는 이에 대해 역사적 시각으로 결정해야 하지만, 그러나, 노의 손을 거저 들어만 줄 수 없다는 것이에요. 강한 단서를, 아주 강한 단서를 달아야 한다는 것이죠. 결국은 참여정부 출범 때 가졌던 기대가 왜 너무도 빠르게 실망으로 변했는가, 왜 정권 초기 왜 지지세력이 이탈했는가, 노가 자기 역할 제대로 했는가 강한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어요. 그러니 이런 탄핵사태에 대해서도 자기책임을 자각할 필요가 있다는 겁니다. 진보적 시민운동이 노무현의 손을 들어준다면 저는 10년, 15년 앞으로도 똑같아진다고 생각합니다.

=동의합니다. 어제 광화문 집회에서 그랬고 인터넷에 오른 글들을 보면 끌어내려도 우리가 끌어내린다는 겁니다. 여기 모인 이 함성을 열린우리당이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이것은 수구에 분노해서이지 노가 이뻐서, 노가 좋아서는 아니라는 거죠. 어제 집회장에서도 스티커를 붙이고 다니는 게 ‘나, 노사모 아니라니까요’였거든요.

=왜 시민사회가 노를 방어하는가, 이게 재미있는 질문이라고 생각해요.

조=친노, 반노 구도로 단일화하는 것은 외려 경계해야 합니다. 6월항쟁이 제기한 민주주의의 마지노선과 함께 6월항쟁의 진보적 잠재력의 확장이라는 측면이 있거든요. 이 측면에서 보면 노 정부가 여러 한계를 갖고 있는 것이고요. 6월항쟁 통해 군부정권 퇴진시켰으나, 사실상 우리 사회에 광범 존재하는 보수세력을 일거에 퇴진시킨 것은 아니죠. 이런 과제들이 이번 극적 사건을 통해서 극명하게 부각되고 있다는 점, 그러니까 6월항쟁 통해서도 극복되지 않았던 것을, 수구 보수세력의 강력한 저항들을 국민들이 직시하게 되는 강력한 계기입니다. 이번 탄핵정국 보면서 우리 사회 보수세력들이 성찰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이 탄핵이 노의 권력을 응징한다고 생각했는지 모르겠지만 이것이 이에 대한 부메랑이 되어서 국민적 저항을 촉발하게 된 겁니다. 우리 사회 보수세력이 부단히 스스로를 합리화하고 민주화해야 하는 과제를 가지고 있다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고 봅니다.

=이번 탄핵의 행태라는 것도 말하자면 노 정부 출범 시기에 보수 수구세력이 탈바꿈 못한 것을 이번에 새로운 형태로 반복하고 있는 것 아닌가. 그렇게 함으로써 다시 자충수를 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옳습니다. 역사의 진전이 자살골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나 자살골이 괜히 넣어지는 것은 아니란 말이죠. 자살골 넣을 만한 상황이 되었던 것이고. 그 한골의 자살골로 완전히 국민들에 의해 무너져 내리면서, 박관용 국회의장 이야기가 그대로 실현이 되는 겁니다. 완전히 자업자득이고 대한민국은 계속해서 전진해 나가는 상황인 것이죠. 이게 완전히 수구 한나라당이, 한나라당이나 민주당으로 대표되던 의회세력이 엄청난 타격을 입을 수 있는 상황에서 새로운 합리적 보수세력이 등장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어 가고 있단 것이죠. 제가 보기에 열린우리당은 성격이 굉장히 모호한데, 시민운동과 진보세력 내에서 고민거리가 민노당이 과연 진보세력을 대표하고 있느냐 하는 거잖습니까. 저는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보거든요. 열린우리당 속에서 보면 이념적으로 보수와 진보가 섞여 있는데 이것이 이제는 수구가 몰락한 토대 위에서 이념적 분화가 본격화될 수 있는 그런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저는 견해가 좀 달라요. 제일 먼저 수구세력에 대한 성격 규정을 정확히 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회창 발언에서 합리적 보수로 탈바꿈해야 한다고 한 것은 그들이 보수세력이었다는 전제가 있어야 한단 거죠. 저는 그것을 보수라고 보지 않고 수구, 반동이라고 보는 거죠. 이 뿌리는 한 교수 계십니다만, 우리는 일제 잔재 청산하지 못한 데서 비롯한 것인데, 일제 잔재를 청산 못한 것에 머문 게 아니라 바로 그들이 국가를 경영하게 되었다는 것이잖아요. 애당초 그들에게 민족이건 보수건 머리 속에 없었을 수 있고, 그것이 분단이란 구조 속에서 극우 반공주의로 나가고 70년대 이후 지역, 지역주의 매개로 계속 집권이 가능했기 때문에 그들에겐 자기 성찰의 필요성, 기회가 없었다는 것이죠. 지금처럼 힘의 논리로만 무장해 있었지, 어떤 합리성을 갖출 필요도 없었고 그럴 사람도 애당초 아니라는 겁니다. 열린우리당의 성격에 대해서 저는 자유주의 보수세력이라고 보는 것이죠. 진보를 대변한다고는 전혀 생각할 수 없다고 봅니다.

=87년 6월항쟁 이전에 독재체제라는 것은 민주적 제도정치를 억압했던 것이죠. 과거 수구적 보수세력으로 다수 세력으로 존재해온 상황이고. 그에 반해서 일종의 자유주의적 세력은 상대적으로 취약하고 동시에 진보적 세력들은 배제되어 있었죠. 그런 점에서, 이번 기회를 진보적 정치세력이 진입함으로써 87년 항쟁에 내재된 정치개혁 과제를 풀어나가는 쪽으로 봐야 하는 것 아닌가 합니다.

=저는 지금 국면이 노 출범 때 환호만큼은 아니라고 보거든요. 일부 적극적 흐름도 있지만, 그동안 구태적 국회 양상에 대한 분노가 저변에 깔려 있다고 봅니다.

=대선 때 노무현 승리에 기분좋게 도취돼 있었던 데 비해서, 지금은 노가 해답이 아니란 걸 깨달은 상황에서 이렇게 모여 있다는 것이 한국 민주주의에서 중요한 단계라고 봅니다.

=노 출범 시기에 시민사회 운동이 노를 지지했던 것과는 다른 규정을 갖는다고 봅니다. 개혁 자유주의 정부의 개혁성을 촉구해야 한다는 것이죠. 예컨대 택시기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들의 정치적 커먼센스가 굉장히 높더라구요.

=정치적 보수세력이 87년 항쟁에 대한 역사적 반동을 획책하니까 전국민이 나서게 되는데, 저는 그와 동시에 그 획책 세력이 더 결정적으로 약화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 힘이 열린우리당의 강화로만 나타나선 곤란하다, 민노당, 이라크 파병 등 노 정부의 한계 탓에 정책화되지 못했던 것들을 어떻게 지금 투쟁에서 관철할 것인가가 중요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런 탄핵사태까지 온 데는 두 가지 책임부분을 짚고 싶어요. 하나는 조선일보 포함한 보수적 언론들의 여론 왜곡과 다른 하나는 시민단체의 형식주의적 양비론 같은 것이 이렇게 탄핵까지 오지 않도록 예방적 역할을 못하지 않았나 싶어요. 시민사회단체가 사안에 대해서 시시비비를 가리는 태도가 필요해요. 말하자면 노의 잘못은 (수구세력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잘못인데요, 양비론은 문제라 봅니다.

=헌법재판소가 잘 판단해야 합니다. 법치, 규칙이 중요한데, 그렇지 못할 때는 법 자체를 무너뜨리게 됩니다. 헌재도 오늘 이 정국에서 자신의 위치를 새로 자리잡을 수 있는 기회로 삼아야 할 겁니다. 이 사태의 의미를 제대로 읽고 판단해주었으면 합니다.

=결과적으로 같은데요, 헌재는 법적으로 제대로 판단해주었으면 합니다. 결과적으로 그리 될 때 헌재도 제자리를 찾아나갈 것이죠.

=헌재가 상식에 따라 판단해줬으면 해요.

=이 교수 말씀대로 택시 기사의 상식에 맞추어서 하면 되겠지요.(모두 웃음)

=지금은 대의정치를 기본으로 하는 의회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극단적으로 민심과 대의기관이 괴리가 벌어진 거죠. 그걸 수습할 수 있는 기간이 한달 앞 총선입니다. 과거 3당합당과 이번 한, 민, 자 공조가 유사합니다. 말하자면 신3당합당입니다. 이 신3당합당을 한국의 민주주의가 막아냈다는 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여의도에서 통곡하던 분위기가 하루 만에 종로에서 축제 분위기로 갈 수 있는 것이 한국 민주주의의 무시할 수 없는 저력이라고 봅니다. 그럼에도 수구보수세력의 힘이 여전히 막강하기 때문에, 저 자신도 광화문에서 축제분위기를 즐겼지만 우리가 맘을 놓기는 아직은 이릅니다.

=정치세력이 상호 인정하며 경쟁하자는 홍 선생님의 말씀 중요하다고 봅니다. 6월항쟁까지 이르는 독재정권의 균열과정이 과거 파쇼적 보수세력의 한없는 추락의 과정이었다면 민주세력(보수, 진보)의 한없는 상승의 과정이었다 봅니다. 보수세력의 추락이 정지되고 상승하던 민주세력의 상승과정이 정지되는 그 지점이 지역주의라고 봅니다. 추락하던 보수세력은 추락을 멈추고 상승세력은 멈추는 교착상태가 왔습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를 거치면서 이 교착상태가 깨지고 있다는 거죠.

=한국 민주주의가 한걸음씩 진전해온 것은 확인되는 사실입니다. 특히 노 정부는 새롭게 국민지지를 받았지만 굉장히 약한 정부로 출발했는데 그만큼 승리가 불안정한 승리였죠. 그 불안정 속에서 새로 개혁세력을 결집하는 데 대한 숙고와 자각을 했어야 하는데 이런 것이 잘 안되었다, 그런 불안정과 지그재그의 맥락 속에서 우리가 있고, 공방 속에서 약한 민주주의를 더 강하고 내포적 힘으로 발전시켜 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정리 허미경 기자 carmen@hani.co.kr 사진 김종수 기자 jongs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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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의 겉과 속 2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3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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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 시절, 강준만의 『대중문화의 겉과 속』을 재미있게 읽었다. 그 후 몇 년 만에 후속작이 나왔다니, 정말 반갑다. 책 제목에서는 “대중문화”라고 했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 세계와 일상의 겉과 속을 다룬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정도로 대중문화는 이미 ‘대중’이라는 수식어가 거추장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우리의 일상을 뒤덮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책을 통해서 우리가 발붙이고 살고 있는 실제 세계에 대해서 알고자 한다면, 다른 책들보다도 이 책을 들면 좋을 성 싶다. 전작에서 강준만은 언론학도답게 대중매체 중심으로 기술했었다. 그 때문에 무언가 부족한 느낌이 있었다. 이번 2권에서는 그 부족한 점을 메우고 이론적인 측면을 좀더 강조했으며, 새롭게 등장해서 우리 삶을 뒤흔들고 있는 인터넷에 대해서도 다루었다. 그러나 여전히 아쉬운 점은, 텍스트들의 조합과 평가라는, 강준만 스타일의 글쓰기가 여전하기 때문에 자신만의 실제 분석이나 평가가 없다는 것. 그러니까, 이 책은 “텍스트 속에 비춰진 대중문화”의 겉과 속을 다룬다고 할 수 있다.


<1장, 대중문화와 이론>에서는 강준만이 자주 거론하는 피에르 부르디외의 ‘문화자본’과 그 외에 어빙 고프만, 보들리야르, 푸코 등의 이론가들의 주장을 담고 있다.


  “대중문화 연구의 관점에서 우리가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문화자본이다. 부르디외는 노동계급의 젊은이가 성공에 이르는 길에 있어서 당면하는 장벽은 물질적 불평등뿐만 아니라 문화적 자본의 결여라고 말한다.

  경제적 자본은 생산적 자본과 비생산적 자본을 구별하지 않고 직접 돈으로 환산될 수 있는 모든 재화를 가리킨다. 반면 문화적 자본은 개인으로 하여금 과학적 정보, 심미적 즐거움과 일상의 쾌락의 사회적 잠재력을 다루는 것을 가능케 하는 모든 능력과 기술을 가리킨다. 교육적 자본은 문화적 자본의 일부이다. 문화적 자본은 부르주아의 휴식과 여가 문화를 통해 전달되는 만큼 노동계급의 젊은이는 아무래도 불리한 입장에 놓일 수밖에 없다.“(22)


특이하게 스톨먼, 토발즈, 게이츠의 3인을 등장시켜 정보사회의 이념을 보여줬는데, 좋은 시도로 보인다. 많은 사람들이 탐욕의 괴물처럼 보이는 게이츠보다는 재미나 공유를 부르짖는 토발즈와 스톨먼의 자리에 서고 싶어 하겠지만, 현실은 그렇지만은 않다.


<2장, 소비문화와 정체성>에서는 사람들이 왜 명품에 집착하는지, ‘보보스’의 뜻은 무언지 얘기하고 있다. 학자들과 대중문화의 악연에 관한 흥미로운 대목이 있는데, “내가 생각하기에 우리 학자들이 물질의 세계를 인정하지 않고 때로는 심한 불쾌감을 내보이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그것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학자들은 자기들에게는 지적인 삶이 있고, 예술이 있고, 인류의 훌륭한 사상과 말들을 접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것들이 필요하지 않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대부분의 학자들이 소비를 통해 다른 사람들과의 유대감을 확인하려는 욕구를 갖지 않는 이유는 학교라는 세계의 특성 때문이다. 학교라는 세계는 교회라는 세계를 모방하는데 이 세계는 아주 애착이 가는 참으로 좋은 세계이다. 왜냐하면 지위와 서열이 잘 알려지고 인정되고 안정적이기 때문이다. 물건 같은 것을 사는 짓은 그 같은 요소를 빛내 주기보다는 되려 퇴색시킨다.”(108, 제임스 B. 트위첼, 『럭셔리 신드롬: 사치의 대중화, 소비의 마지막 선택』448~449쪽.)라는 것. 물론, 학자들이 대중문화나 물질적인 가치를 반드시 이런 이유에서만 비판하거나 혐오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긴 해도 이 유쾌한 해석이 빛을 잃진 않는다.


<3장, 문화공학과 마케팅>에서는 소비자가 유혹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알파 소비자는 집단마다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한다. 주부 알파, 괴짜 컴퓨터 전문가 알파, 스포츠 알파, 어린이 알파 등이 있다. 모든 현상의 배후에서 그것을 시작한 핵심 그룹이 그들이다. 신제품이 나오면 알파 소비자들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그것을 권유하고 다닌다. (…)”(157, Michael J. Wolf, 『오락의 경제: 상품을 팔 것이 아니라 엔터테인먼트를 팔아라』, 199쪽) 나 자신도 인터넷 서점에서 뛰어난 리뷰를 쓰는 알파 소비자들에 이끌리기는 마찬가지. 언제쯤이나 주체적인 시각과 고급한 판단력을 키워 능동적인 문화 소비자가 될 수 있을까나!


<4장, 정보기술의 정치학>에서는 ‘엔터테인먼트 경제’와 ‘데이터 스모그’를 알려준다. “(…) 전통적인 도서관에서 흔히 발생되는 전적으로 새롭고 흥미로운 주제와의 우연한 마주침은 주문 정보 환경에서 훨씬 적게 일어나게 된다. 이것은 공유된 이념과 경험이 매우 중요시되는 자유롭고 편견이 없는 사회에서의 인간으로서의 삶을 심각히 제한하고 있다. 그러한 제한은 스스로 자신의 정보 감옥을 구축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217, 데이비드 솅크, 『데이터 스모그』, 156~157쪽.) 정말로 원하는 데이터만을 보내주는 ‘인포세이지’는 유레카!를 죽이는 정보 감옥일까? ‘인포세이지’만을 두고 봤을 때, 그럴지도 모르지만, 최소한 지금의 인터넷 환경은 너무 열려 있어 문제다. 내 경험으론, 단순한 킬링 타임용 웹 서핑도 있지만, 특별한 테마에 대한 검색은 의도치 않은 유용한 발견을 가져다 주는 일이 많았다.


<5장, 인터넷의 사회학>과 <6장, 인터넷과 휴대폰의 경제학>은 현실 텍스트와 함께 같이 읽으면 더욱 재미있다. MSN, 폐인, 아햏햏, 싸이홀릭, 블로그 등등, 우리는 이 책에서 다루지도 않은/못한 더 현란하고 빠른 속도의 세상에 살고 있다. 단지, 그것을 낯설게 보려는 시도가 없었을 뿐. 그것들을 관찰하고 반성하고, 사유하기를 귀찮아했을 뿐. 대중문화의 겉과 속에서부터 시작해서 우리의 일상 전체를 꿰뚫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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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나무로부터 봄-나무에로


- 황지우


나무는 자기 몸으로
나무이다
자기 온몸으로 나무는 나무가 된다
자기 온몸으로 헐벗고 영하(零下) 십삼도(十三度)
영하(零下) 이십도(二十度) 지상(地上)에
온몸을 뿌리박고 대가리 쳐들고
무방비의 나목(裸木)으로 서서
두 손 올리고 벌받는 자세로 서서
아 벌받은 몸으로, 벌받는 목숨으로 기립(起立)하여, 그러나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온 혼(魂)으로 애타면서 속으로 몸 속으로 불타면서
버티면서 거부하면서 영하(零下)에서
영상(零上)으로 영상(零上) 오도(五度) 영상(零上) 십삼도(十三度) 지상(地上)으로
밀고 간다, 막 밀고 올라간다
온몸이 으스러지도록
으스러지도록 부르터지면서
터지면서 자기의 뜨거운 혀로 싹을 내밀고
천천히, 서서히, 문득, 푸른 잎이 되고
푸르른 사월 하늘 들이받으면서
나무는 자기의 온몸으로 나무가 된다
아아, 마침내, 끝끝내
꽃피는 나무는 자기 몸으로
꽃피는 나무이다



......3월에 100년만의 폭설인지 뭔지가 내리고, 내 눈에 보이는 나무들도 아직은 헐벗은 겨울-나무들이다. 곧, 봄-나무로 옷을 갈아입겠지. 환절기만큼 설레는 날들이 또 있을까. 아직 겨울에 머무르면서 마음은 봄에 가 있는, 그런 날들. 황지우의 시에서, 봄-나무는 겨울-나무를 힘겹게 죽이고서야 봄-나무가 된다. 봄은 겨울과의 투쟁의 전리품이다. 봄은 오는 게 아니고, 얻어지는 것.

...그런데 황지우의 이 시가 이름으로 붙은 시집은 학교 도서관 서가에 꽂혀있지 않던데... 역시나 봄-나무는 힘겹게 얻어내는 것? 창 밖의 겨울-나무들은 비명을 지르느라 내게 답을 해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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