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나무로부터 봄-나무에로
- 황지우
나무는 자기 몸으로
나무이다
자기 온몸으로 나무는 나무가 된다
자기 온몸으로 헐벗고 영하(零下) 십삼도(十三度)
영하(零下) 이십도(二十度) 지상(地上)에
온몸을 뿌리박고 대가리 쳐들고
무방비의 나목(裸木)으로 서서
두 손 올리고 벌받는 자세로 서서
아 벌받은 몸으로, 벌받는 목숨으로 기립(起立)하여, 그러나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온 혼(魂)으로 애타면서 속으로 몸 속으로 불타면서
버티면서 거부하면서 영하(零下)에서
영상(零上)으로 영상(零上) 오도(五度) 영상(零上) 십삼도(十三度) 지상(地上)으로
밀고 간다, 막 밀고 올라간다
온몸이 으스러지도록
으스러지도록 부르터지면서
터지면서 자기의 뜨거운 혀로 싹을 내밀고
천천히, 서서히, 문득, 푸른 잎이 되고
푸르른 사월 하늘 들이받으면서
나무는 자기의 온몸으로 나무가 된다
아아, 마침내, 끝끝내
꽃피는 나무는 자기 몸으로
꽃피는 나무이다
......3월에 100년만의 폭설인지 뭔지가 내리고, 내 눈에 보이는 나무들도 아직은 헐벗은 겨울-나무들이다. 곧, 봄-나무로 옷을 갈아입겠지. 환절기만큼 설레는 날들이 또 있을까. 아직 겨울에 머무르면서 마음은 봄에 가 있는, 그런 날들. 황지우의 시에서, 봄-나무는 겨울-나무를 힘겹게 죽이고서야 봄-나무가 된다. 봄은 겨울과의 투쟁의 전리품이다. 봄은 오는 게 아니고, 얻어지는 것.
...그런데 황지우의 이 시가 이름으로 붙은 시집은 학교 도서관 서가에 꽂혀있지 않던데... 역시나 봄-나무는 힘겹게 얻어내는 것? 창 밖의 겨울-나무들은 비명을 지르느라 내게 답을 해주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