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난 듯이 눈이 내렸다


눈은 점점 길바닥 위에 몸을 포개어

제 고요를 쌓고 그리고 가끔

바람에 몰리기도 하면서

무언가 한 가지씩만 덮고 있었다


나는 나의 뒤에 발자국이 찍히는 것도

알지 못하고 걸었다


그 후 내

발자국이 작은 냇물을 이루어

근해에 나가 물살에 시달리는지

자주 꿈결에 물소리가 들렸고

발이 시렸다


또다시 나무에 싹이 나고

나는 나무에 오르고 싶어

아무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잘못 자란 생각 끝에서 꽃이 피었다

생각 위에 찍힌 생각이 생각에

지워지는 것도 모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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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aza 2005-04-04 0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번에 나온 장석남 시집 샀습니다ㅋㅋ<왼쪽 가슴 아래께에 온 통증>

도서관여행자 2005-04-04 08: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는 어젯밤에 장석남 시집 <별의 감옥> 읽었거든 ^^우히히 (도서관에서 빌린 거) 프로젝트 409라는 데서 나온 걸 보면, 그리고 일러스트와 디자인이 독특한 걸 보면 아마 한정판인가봐. 아...그리고 나는 <왼쪽 가슴...>을 먼저 읽었는데 그 이후에 읽은 <새떼...>가 더 느낌이 좋던걸. 부드러운 서정시라, 편안해지고 싶은 밤에 읽으면 좋은 거 같애.
 
반동적 근대주의자 박정희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2
전재호 지음 / 책세상 / 2000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하나의 유령이 한국을 떠돌고 있다. 박정희라는 이름의 유령이. 박정희라는 이름은 어떤 사람들에게는 차마 기억하고 싶지 않은 악몽일 것이고, 어떤 사람들에게는 경제 성장의 신화로 연결되는 카리스마적 영웅일 것이다. 분명한 것은, 박정희와 그의 시대를 우리는 역사책에서 지울 수 없으며, 그 과거는 현재와 연결된 과거라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앞에서와 같이 박정희를 단순히 영웅으로, 감정적으로 떠올리는 것은, 일정한 의미를 지닌 사회적 현상의 하나이긴 하지만, 그것이 옳다고 볼 수는 없다.


더욱이, 많은 사람들이 박정희를 막강한 리더십을 지닌 정치지도자로, 한국 경제 성장의 근원적인 힘으로만 쉽게 연결짓게 된 데에는, 박정희를 옹호하면 자신들에게 간접, 직접의 정치, 경제적 이익이 돌아오게 되는 집단들의 박정희 신화 유포가 있었다는 사실을 먼저 염두에 두어야 한다. 박정희 정권 때부터 이미 국민들에 대한 정권의 정당화 작업이 강력하게 있어왔지만, 지금의 언론과 정치인들, 그리고 지식인들까지 여기에 가담하고 있는 형편이다. 그러니까, 사실, 우리가 박정희에 대해 정확히 알려는 노력 이전에 부풀려진 박정희 신드롬을 먼저 철저히 분석해야만 한다. 내가 박정희를 그렇게 생각하게 된 까닭은 과연 무엇 때문인가, 라고.


<반동적 근대주의자 박정희>는 <박정희 체제의 민족주의 연구>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정치학자, 전재호가 박정희와 그의 시대에 대해서 쓴 책이다. 교사를 하다 “긴 칼 차고 싶어” 관동군 장교 다카키 마사오가 되고, 남로군에 가담했다가 배신한 박정희라는 인물의 카멜레온에 가까운, 기회주의적 행태는 그것 자체로 매우 흥미롭고 한국 현대사의 상징적인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박정희 개인의 행적을 꼼꼼히 추적한 인물 평전이라기보다는 박정희 정권 시절에 추진된 정책들을 중심으로 주로 논하고 평가했다.


저자 전재호는, 박정희 정권의 근대화를 서구의 근대성이 지닌 진보성, 혁명성, 합리성, 민주성이 거세된 성격의 ‘반동적 근대주의Reactionary modermism'으로 지칭한다. 반동적 근대주의란 19세기 말 이래 독일에서 진행된 파시즘적 근대화 과정을 지칭하는 역사학자인 제프리 허프Jeffrey Herf의 용어이다. 다른 제3세계 국가들과 같이 한국도 기술과 경제에 대한 과도한 광신과 함께 권위주의, 전체주의, 국가주의로 오염되었다. 문학평론가 김현이 그의 독서일기 <행복한 책읽기>에서 박정희를 일컬어, “그는 상징적 히로뽕 판매자였다!”라고 한 말은, 바로 이러한 배경과 관계가 있는 것이다.


먼저 저자는, 자신의 박사논문 탐구주제이기도 한, 박정희와 민족주의와의 관계를 고찰한다. 논자들에 따라서 박정희는 반민족주의자, 민족주의자, 민족주의자에서 반민족주의자로 변신이라는 세 가지의 평가를 받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민족주의의 정의 자체가 모호한 것으로 다른 특정 이데올로기와 쉽게 결합할 수 있고, 타민족을 억압하는 논리와 피압박 민족을 해방시키는 진보적 논리를 동시에 보여준다. 그렇기에 박정희가 민족주의자냐 아니냐의 문제는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한다.


박정희 정권은 5.16 군사 쿠데타 이후에 민정 이양이라는 약속을 깨고 계속 집권하게 된다. 그리고 ‘민족적 민주주의’나 ‘한국적 민주주의’라는 허황된 이름 아래에 반-민주주의적 군사 독재를 행한다. 그러면 박정희 정권의 경제 정책은 어떤가? 박정희 정권은 “쿠데타 이전에 이미 민주당에 의해 착수되었던” 경제개발계획을 시행한다. 군사 쿠데타로 권력을 잡는 데 성공했기에 정통성이 부재했으므로 그들은 경제 성장에 집중했다.


“박정권의 경제개발정책은 그 내용과 실행에서 케네디 행정부의 대한정책의 영향을 받았다. 그들은 처음부터 ‘발전의 시대Decade of Development'라는 구호를 내걸고 제3세계에서 공산주의에 대한 우월성을 군사력이 아닌 경제 부흥을 통해 입증하기를 원했다. 이는 직접 침략보다 경제 실정에 따른 불만과 이로 인한 정치적 불안정이 공산주의의 토양이 된다는 사고에 기인한 것이었다. 따라서 그들은 미국이 제3세계에 자금(경제 원조), 기술(장기 경제개발 계획, 지역 개발 등), 사상(민주주의의 우월성에 대한 선전과 교육)을 투입하여 전통사회가 근대사회로 급속히 이행하도록 체계적으로 유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61쪽)


또한 북한에 비해 매우 열등한 당시 남한의 경제 상황은 박정권이 체제 경쟁적으로 경제 성장에 몰두해야 했던 이유의 하나가 되기도 했다고 한다. 따라서 “박정희=한국 경제성장의 기원”이란 공식은 타당성이 부족하다. 반인권적인 독재자보다는 그 정권 시절에 세계최장시간의 고통스러운 노동에 시달렸던 노동자들을 기억해야 마땅할 것이다.


책의 후반부에서는 박정희 정권의 대국민 훈육에 대해 다루었다. 대표적 예를 들자면, 이 기간에 ‘이순신’과 ‘세종대왕’이 신격화되어 영웅사관이 복원되었다. 호국 무장 이순신의 신격화는 군인 출신인 박정희에 대한 충성과 존경으로 이어지게 하는 것인데, 이것은 “박정희 이외에 나라를 구할 사람 없다” 식의 무의식을 불어넣기에 좋은 것이다. 세종대왕도, 박정권 시대를 세종대왕과 같은 태평성대, 문화융성기로 포장하기 위해 “동원”당한 것이다. 이순신, 세종대왕은 현재에도 거의 모든 한국 국민이 우상시하는 역사 인물이다. 게다가 우리는 아직도 박정희 정권 시절의 국가주의, 군사주의를 깔끔하게 떨어내지 못하고 있다. 이는 박정희 시대가 아직도 지금 우리에게 끼치는 영향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박정희는 아직도 살아있는 유령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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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대 2004-10-08 2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만으로도 책 한 권을 읽은 것 같네요. 그나저나 논리적으로 글 참 잘 쓰십니다^^

도서관여행자 2004-10-09 1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정희를, 저는 그저 감정적으로 혐오하는 수준에서 여겨왔던 거 같아요. 그래서, 읽은 책거든요. 덕분에 박정희 정권 시절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되었죠.
 

                        땀을 흘려라!
                        돌아가는 기계 소리를
                        노래로 듣고
                        2등 객차에서
                        불란서 시집을 읽는
                        소녀야.
                        나는, 고운
                        네
                        손이 밉더라.



다카키 마사오라는 이름의 독재자가 <국가와 혁명과 나>에 썼다고 하는 시란다.
요즘, 그의 딸은 기계 소리를 들으며 땀을 흘리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뭐, 불란서 시집도 안 읽겠지만...히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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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부후사 2004-10-07 16: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그 시를 강준만 교수의 <한국현대사 산책>에서 읽었어요. 요즘, 그의 딸은 조갑제의 희떠운 소리를 들으면서 <월간조선>을 읽을 듯 하네요. ㅋㅋ
 

고요히 귀신 들린 꽃

흔들리지도 않아


눈썹 위에 숨을 죽이고

보라, 이것이 세상을 만들고 있다


고요히 색깔을 엷게 하면서

좌우 사방으로 번져가는 속삭임


이 속삭임 아래

모든 것이 다시 만들어진다


흙 속으로 발목을 깊이 묻어본다

어느 징그러운 물을 만나


외로이 귀신 들린 꽃

나도 하나의 세계를 만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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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계 살림지식총서 85
강유원 지음 / 살림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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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원의 <책과 세계> 강의노트의 맨 처음에 이런 말이 나온다 : “엄밀히 말해서 이 책은 고전 해설서가 아니라 이전에 쓴 《서양문명의 기반》(도서출판 미토, 2003)을 사상적 측면에서 압축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일종의 간략한 서양 사상사 또는 지성사이다. 그리고 이 책은 그것 자체로 완결된 하나의 구조를 가질 수 있도록 치밀하게 계산해서 만들어진 책이다. 디자인에 관여할 수는 없었지만 그 이외의 부분은 그렇게 하려고 노력했다는 것이다.”


엄밀히 말해서 고전 해설서가 아니라는 이야기는, 이 책의 구성과 내용이 고전 해설서라고 생각하기에 좋게 엮여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실제로도 책에서 다루고 있는 서양 고전들은, <길가메쉬 서사시>와 <모세 5경>에서부터 그리스 비극들과 플라톤의 <국가>를 거쳐 <군주론>, <국부론>, <종의 기원>에 이르른다. 그러나 이 책은 93쪽의 많지 않은 분량이므로, 몇 수십 권의 서양 고전들을 백과사전 식으로 요약하는 무리를 범하지는 않는다. 또한 그렇다고 해서 서양 고전 하나를 붙잡고 거기에 자세한 각주와 해설을 하는 것도 아니다. 저자 강유원의 저술 의도는 그것이 아닐 것이며, 독자 역시 이 책에서 그러한 것을 얻을 수도 없다.


그러므로 이 책의 미덕은 다른 곳에서 찾아야 한다. 내가 <책과 세계>를 읽고서 얻은 것은 고전 몇 종류에 대한 호기심보다는 책을 어떻게 읽어내야 하는가를 생각해볼 수 있었던 점이다. 텍스트는 텍스트를 산출해낸 컨텍스트, 즉 책이 쓰이던 시기의 사회 환경과 조건을 갖는다. 텍스트 읽기는 컨텍스트 읽기와 함께 이루어질 때 큰 힘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한편, 컨텍스트의 품안에서 잉태되어 저자의 손끝에서 세상의 빛을 보게 된 텍스트는 역으로 컨텍스트였던 세계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우리는 ‘고전’을 열심히 읽으려 들고 ‘지성사’의 흐름도 그려보려는 것이 아닌가.


강유원의 <책과 세계>는 가벼운 책이다. 서양 지성사를 산책하는 즐거움으로 이 책의 독서를 마쳐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단단한 책이다. 간결한 문체와 짤막한 글들이 빈틈없이 엮였다.  다른 공부와 고전 읽기의 출발점으로 삼아도 훌륭한 길잡이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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