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세계 살림지식총서 85
강유원 지음 / 살림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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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원의 <책과 세계> 강의노트의 맨 처음에 이런 말이 나온다 : “엄밀히 말해서 이 책은 고전 해설서가 아니라 이전에 쓴 《서양문명의 기반》(도서출판 미토, 2003)을 사상적 측면에서 압축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일종의 간략한 서양 사상사 또는 지성사이다. 그리고 이 책은 그것 자체로 완결된 하나의 구조를 가질 수 있도록 치밀하게 계산해서 만들어진 책이다. 디자인에 관여할 수는 없었지만 그 이외의 부분은 그렇게 하려고 노력했다는 것이다.”


엄밀히 말해서 고전 해설서가 아니라는 이야기는, 이 책의 구성과 내용이 고전 해설서라고 생각하기에 좋게 엮여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실제로도 책에서 다루고 있는 서양 고전들은, <길가메쉬 서사시>와 <모세 5경>에서부터 그리스 비극들과 플라톤의 <국가>를 거쳐 <군주론>, <국부론>, <종의 기원>에 이르른다. 그러나 이 책은 93쪽의 많지 않은 분량이므로, 몇 수십 권의 서양 고전들을 백과사전 식으로 요약하는 무리를 범하지는 않는다. 또한 그렇다고 해서 서양 고전 하나를 붙잡고 거기에 자세한 각주와 해설을 하는 것도 아니다. 저자 강유원의 저술 의도는 그것이 아닐 것이며, 독자 역시 이 책에서 그러한 것을 얻을 수도 없다.


그러므로 이 책의 미덕은 다른 곳에서 찾아야 한다. 내가 <책과 세계>를 읽고서 얻은 것은 고전 몇 종류에 대한 호기심보다는 책을 어떻게 읽어내야 하는가를 생각해볼 수 있었던 점이다. 텍스트는 텍스트를 산출해낸 컨텍스트, 즉 책이 쓰이던 시기의 사회 환경과 조건을 갖는다. 텍스트 읽기는 컨텍스트 읽기와 함께 이루어질 때 큰 힘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한편, 컨텍스트의 품안에서 잉태되어 저자의 손끝에서 세상의 빛을 보게 된 텍스트는 역으로 컨텍스트였던 세계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우리는 ‘고전’을 열심히 읽으려 들고 ‘지성사’의 흐름도 그려보려는 것이 아닌가.


강유원의 <책과 세계>는 가벼운 책이다. 서양 지성사를 산책하는 즐거움으로 이 책의 독서를 마쳐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단단한 책이다. 간결한 문체와 짤막한 글들이 빈틈없이 엮였다.  다른 공부와 고전 읽기의 출발점으로 삼아도 훌륭한 길잡이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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