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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잇
김영하 지음 / 현대문학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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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의 산문집 <포스트 잇>은 포스트 잇처럼 가볍다. 가벼운 메모를 담는 포스트 잇처럼 가벼웁다. 그리고 언제든 다시 붙였다가 뗄 수 있을 만큼의 융통성도 정말이지 포스트 잇을 닮았다. 그런 감각은 젊은 소설가로서의 김영하의 소설을 그리고 그의 삶을 닮았는지 모른다.

이 책을 4월에 읽기 시작해서, 중간에 그만 읽다가 다시 6월에 빌려서 끝까지 읽어냈다. 많은 분량의 책은 아니지만 어쩌다가 그렇게 읽다보니까, 처음 읽기 시작한 때와 두 번째로 끝까지 읽었을 때의 느낌은 상당히 다르다. 처음 <포스트 잇>을 읽었을 때에는 인상적인 제목의 글들만 몇몇 개씩 중간중간 골라서 읽었다. 그래서인지 상당히 읽는 재미가 있었고 발상의 독특함도 느껴졌다. 그런데 두 번째로 끝까지 읽었을 때에는 순차적으로 처음부터 읽기 시작했고 처음보다는 독특한 미감이 느껴지지는 않는 듯 했다. 표지의 강렬한 주황색깔처럼 내용도 첫 인상만 강한 것일까? 아니면 개인적인 느낌에 불과한 것일까?

하지만 분명한 것은 김영하의 산문은 발랄하고 새로운 시각의 젊은 글이지 철학적인 사유가 진득하게 배어있는 그런 에세이들은 아니다. 가끔씩 진지한 삶의 성찰을 보여주기도 하는 글이 있기는 하지만, 이 책에서 맛볼 수 있는 김영하 산문의 묘미는 젊고 독특한 시각이며 유쾌한 분위기라고 할 수 있겠다. 그것이 김영하만의 득의의 영역이라 하겠고, 또 그 어떤 작가도 자신만의 독특한 영역 안에서만 빛을 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렇게 아쉬운 것도 아니겠다. 하지만 신영복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읽었을 때의 그 오랜 파장의 감동은 접착력이 쉽게 사라져버리는 포스트 잇에서는 얻을 수 없는 것이겠다.

요즘 에세이의 문학성에 대해서 논한 권성우의 평문을 접하고, 그리고 스스로도 에세이의 매력에 대해 생각해본 일이 있어서, 에세이에 대한 입맛도 점점 높아지나 보다. 가벼운 에세이는 그 가벼움 때문에 오히려 깊이 있는 사색의 자유를 선사한다. 그래서 에세이는 어떤 문학 장르보다도 성찰적인 '삶'에 가까운 문학 장르이며 그래서 높은 문학성을 갖는다. 에세이여, 내게 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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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런 책을 읽어 왔다 - 다치바나 식 독서론, 독서술, 서재론
다치바나 다카시 지음, 이언숙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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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이 가득한 책을 발견했다. 놀라운 독서 경력과 독서술을 가졌고, 그런 독서를 바탕으로 해서 원숭이학, 인터넷, 일본 공산당 연구, 뇌사, 우주, 섹스, 에콜로지에 이르기까지 최첨단의 학문에 관한 다양한 저술 활동을 펼치고 있는 사람. 그가 바로 이 열정이 넘쳐나는 책을 쓴 것이다.

다치바나 다카시는 어린 시절부터 문학과 철학 서적을 탐독했다. 젊은 시절, 그의 학력은 불문학과 철학이지만 실상, 뒷날에는 이과 계열의 논픽션들을 주로 읽었으며 여기서 감동을 얻게 되어 최근까지 독서와 연구, 집필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그는 지금은 문학을 거의 읽지 않는다고 한다. 잡지사 초년 시절 선배에 의해 문학만을 읽는 독서 행태를 지적 받고 나서 논픽션을 접하게 되었는데 그 이후로는 픽션의 세계가 논픽션에 비하면 얼마나 보잘 것 없는 지를 느끼게 되었다고 한다. 여기서 한편으로 그의 다방면에 걸친 독서편력이 여기서 무너지는 것은 아닌가 생각하고 또 인간의 감정과 고뇌, 사랑을 다룬 문학을 폄하(?)하는 그가 잘 이해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조금 더 책을 읽어보면 그의 지적 열망이 어린 시절의 문학 독서에서 내공이 쌓여 폭발하기 시작되었음을 간파하게 된다. 그의 관심사가 다른 곳으로 이동해 간 것뿐이다.

자신을 호기심과 지적 욕구가 비정상적으로 강한 '이상 지적 욕구자'라고 말하는 다치바나 다카시는 제너럴리스트인 동시에 스페셜리스트이다. 폭넓은 독서가 제너럴리스트가 되는 길을 열었고, 깊이 있는 독서가 스페셜리스트의 이름을 붙여주었다. 그가 걸어온 독서 여정을 역추적해 나가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독서와 일에 대한 지칠 줄 모르는 그가 부러워지면서 동시에 그 열정이 조금은 내게도 전염된다.

더욱이 놀라운 독서 경력을 가진 독서가이며 탐구가인 그가 일러주는 독서론과 지식에 대한 이야기는 흥미롭고 경쾌하면서도 때로 진중한 울림이 된다. 고전에 대한 그의 생각을 들어보자. '다시 말해, 그 저서(고전)가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는 매체로서 그 역할을 다하는 것이 아니라 그 책 자체가 토론의 대상이 되어, 서로 이야기를 나눌 때의 소재로 활용되기에 적절한 책만이 결국 진정한 의미의 고전으로서 살아남게 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55쪽) 그러면서 결국 지의 총체란 언제나 최신 보고서 속에서만 존재한다고 본다. 지금은 최첨단 이학계열의 열정에 빠져있는 그에게는 자연스런 답변이었으리라. 그러나 문학과 철학 등의 인문계열의 경우에도, 고전 자체의 메시지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다시 되풀이하여 '새롭게 널리' 읽는 책이 될 때 진정한 고전이 될 수 있다는 깨달음도 얻을 수 있다.

독서론에서부터 그는 독학의 방법을 끌어낸다. 늘 새로운 주제의 학문 세계로 진입하여 그 세계의 최정상과 최첨단에까지 뛰어오르기를 원했던 다치바나는 그런 요구 때문에 나름대로의 독학 방법을 만들어 이것을 소개해주고 있다. 학창 시절에 중고등학생의 가정교사를 하면서 생활비를 버는 처지였음에도 페르시아어를 배우기 위해서 개인 가정교사를 고용했다고 한다. 그 교사에게 지불하는 돈은 땀의 결정체였기 때문에 이를 악물고 공부에 매달렸다는 에피소드는 참 처절하면서도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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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운상가 키드의 사랑 문학과지성 시인선 172
유하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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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은, 미친 짓이다>의 영화감독 유하. 그는 영화감독 이전에 시인이다. 그런데 나는, 그를 시인 이전에 영화감독으로 먼저 알게 되었다. 그런데 또 나는, 그를 영화 이전에 시로서 처음 만나게 되었다.

시인 유하는 '세운상가'로 대표되는 지하세계에서 재즈나 비틀즈, 룰라의 김지현 등의 대중문화와 너무도 맑은 유년 혹은 세운상가의 흘러간 어제를 사유하고 노래한다.(이 시집의 전체적인 구성은 재즈를 닮았다.) 세운상가는 이 시대의 뒷골목을 상징한다.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는 것보다 더 많은 의미를 가진 것처럼, 세운상가는 욕망과 일탈의 숨겨진 천국이고, 또한 지옥이다. 중고 제품, 해적판과 포르노의 세계가 세운상가의 세계이다. 우리 모두에게 있는 세운상가는 개인의 음산한 몽상과 금지된 일탈에의 욕망의 지하실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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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관 옆 철학카페
김용규 지음 / 이론과실천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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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많은 사람들이 영화에 대해 글을 썼다. 영화를 전공하거나 그쪽 직업을 가지지 않은 사람들도 많은 책을 냈다. 특히 인문학을 하는 사람들이나 문학을 하던 사람들이 철학적 시각을 통해서 영화를 보거나(또는 영화를 통해 철학적 사유의 아이디어를 얻거나) 문학을 비평하듯이 영화를 비평하는 작업을 많이 했다.

그런데, 영화 쪽 사람들은 이걸 그다지 반기지 않는 모양이다. 영화란 철학이나 문학과는 다른 언어와 다른 매체를 이용하고 다른 형식이기에 그만큼 차이가 많기 때문이다. 똑같은 줄거리에 똑같은 인물과 배경을 가진 소설과 영화라도, 표현의 방식이 나름대로 다르고 이런 작은 차이가 '전혀 다름'을 만들어 내는 법이다. 그러기에 영화 쪽 사람들의 이런 비판적인 견해에 고개를 끄덕일 수 있다. 그러나 인문학자나 그밖에 영화 밖 사람들의 시각은 '전문적'이지 않기에 오히려 신선할 수 있다.

『영화관 옆 철학카페』는 철학자의 시선으로 영화를 보여주고 있다. 행복, 희망, 시간, 사랑, 죽음, 성과 같은 보편적 주제를 다루었다. 이 주제들을 우리가 자주 들어본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칸트, 사르트르, 그리고 프로이트, 마르쿠제, 프롬 등에 이르기까지 여러 철학자들의 인생과 세상에 대한 깊고 넓은 사유들을 풀어내고 있다. 각 장이 주제별로 나뉘어져 있어서 그 주제에 대한 관심이 커졌을 때 읽기에 좋다. 책에 나오는 영화를 굳이 보지 않아도 글의 내용을 이해하는 데에는 큰 지장이 없지만 영화를 한 편씩 보고 나서 읽는 맛도 꽤나 쏠쏠하다. 내가 영화를 보고 느낀 것과 철학자가 본 것은 어떻게 다른가도 비교해볼 수 있고, 영화를 다시 '읽어보는' 재미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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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여행
김훈 지음, 이강빈 사진 / 생각의나무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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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서 아름다운 것들은 나의 기갈에 물 한 모금 주지 않았다. 그것들은 세계의 불가해한 운명처럼 나를 배반했다. 그러므로 나는 가장 빈곤한 한 줌의 언어로 그 운명에 맞선다. 나는 백전백패할 것이다. (...) 갈 수 없는 모든 길 앞에서 새 바퀴는 얼마나 아름다운가. 아, 아무 것도 만질 수 없다 하더라도 목숨은 기어코 감미로운 것이다, 라고 나는 써야 하는가. 사랑이여, 이 문장은 그대가 써다오.― 「책 머리에」 가운데.

삶은 소설이나 연극과는 많이 다르다. 삶 속에서는 언제나 밥과 사랑이 원한과 치욕보다 먼저다. (54쪽)

스타일리스트, 김훈. 이 책은 아름다운 문장으로 유명한 그의 여행 에세이집이다. 풍륜(風輪)이라는 이름의 자전거를 타고 전국을 돌면서 산과 물을 건너며, 그리고 사람들을 만나고 만났다. 이 책이 기억에 오래 남을 수 있는 책이 된다면, 그것은 놀라우리 만치 시적이고 아름다운 미문 때문일 것이다. 그의 시집을 방불케 하는 표현력은 읽는 맛을 더해주지만 그 때문에 실재감을 잃어버리게 하는 아쉬움도 있다. 그래서 이 책은 <여행기>라기보다 <에세이>라는 이름에 가까운 듯 하다. 다녀간 곳곳마다 마치 꿈속을 거닐다 온 듯한 필체로 써 내려서 여행기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이다.

개인적으로 몇 년 전부터 자전거 여행을 하고 싶었고, 또 올해는 직접 그 꿈을 현실 위에 펼쳐보고 싶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이 책을 들었는데 자전거 여행 자체의 묘미에 대한 소개는 그다지 없어서 아쉬웠다. 어쨌거나 이 책의 미덕은 김훈의 시적인 문장과의 만남에 있고, 그런 문장을 가능케 하는 그의 삶에 대한 치열한 자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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