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여행
김훈 지음, 이강빈 사진 / 생각의나무 / 2004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살아서 아름다운 것들은 나의 기갈에 물 한 모금 주지 않았다. 그것들은 세계의 불가해한 운명처럼 나를 배반했다. 그러므로 나는 가장 빈곤한 한 줌의 언어로 그 운명에 맞선다. 나는 백전백패할 것이다. (...) 갈 수 없는 모든 길 앞에서 새 바퀴는 얼마나 아름다운가. 아, 아무 것도 만질 수 없다 하더라도 목숨은 기어코 감미로운 것이다, 라고 나는 써야 하는가. 사랑이여, 이 문장은 그대가 써다오.― 「책 머리에」 가운데.

삶은 소설이나 연극과는 많이 다르다. 삶 속에서는 언제나 밥과 사랑이 원한과 치욕보다 먼저다. (54쪽)

스타일리스트, 김훈. 이 책은 아름다운 문장으로 유명한 그의 여행 에세이집이다. 풍륜(風輪)이라는 이름의 자전거를 타고 전국을 돌면서 산과 물을 건너며, 그리고 사람들을 만나고 만났다. 이 책이 기억에 오래 남을 수 있는 책이 된다면, 그것은 놀라우리 만치 시적이고 아름다운 미문 때문일 것이다. 그의 시집을 방불케 하는 표현력은 읽는 맛을 더해주지만 그 때문에 실재감을 잃어버리게 하는 아쉬움도 있다. 그래서 이 책은 <여행기>라기보다 <에세이>라는 이름에 가까운 듯 하다. 다녀간 곳곳마다 마치 꿈속을 거닐다 온 듯한 필체로 써 내려서 여행기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이다.

개인적으로 몇 년 전부터 자전거 여행을 하고 싶었고, 또 올해는 직접 그 꿈을 현실 위에 펼쳐보고 싶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이 책을 들었는데 자전거 여행 자체의 묘미에 대한 소개는 그다지 없어서 아쉬웠다. 어쨌거나 이 책의 미덕은 김훈의 시적인 문장과의 만남에 있고, 그런 문장을 가능케 하는 그의 삶에 대한 치열한 자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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