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동네에서 생긴 일 - 60년대 문단 이야기
정규웅 지음 / 문학세계사 / 199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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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자신이 직접 60년대 문단 안에서 살지는 않았지만, 그 당시의 소설가, 평론가군이 많이 쏟아졌던 60년대산(産) 서울대 문리대 출신으로 그리고 문화부 기자로 재직하면서 60년대 문단을 회고, 정리해보는 책이다. 60년대의 문단은 전후 새로운 문인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또 이들 새로운 문인들이 구세대 문인들을 신뢰하지 않고 그들에게 반발해서 거침없이 공격하면서 나아갔다. 따라서 문단 내 권력의 재편성은 이리저리 심상치 않게 이뤄질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다양한 스펙트럼을 마치 다큐멘터리 필름을 펼쳐 놓은 듯 한 책이 이 책이다.

저자의 60년대 문단사는 문인 제조공장으로 불리던 프로다운 성격의 서라벌예술대학과 아마추어적인 기질이 있었지만 서라벌예대 못지 않은 문인들을 다수 배출했던 서울대 문리대의 생생한 묘사로부터 시작한다. 그로부터 20대의 젊은 교수를 골탕먹이던 대학신입생 김현의 일화나, 가짜 황석영 소동 등 여러 일화를 통해서 그 시절의 문단 풍토나 흐름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60년대의 문단 내에서의 권력 갈등 문제에 대한 것(일제, 혹은 만송이나 군부 정권을 찬양했던 문인의 경우나 다양한 문인협회와 후계자 문인들의 양성 등까지 넓게 봐서)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기성과 젊은이들의 갈등, 그리고 권력을 이미 차지한 자들과 그들의 자리를 빼앗고자 하는 이들의 갈등. 문단, 예술계에서도 예외는 아닌 것이다. 아니, 이들은 자신들의 권력을 위해서 그들의 모든 것이 되어야 할 예술과 글을 양심 없이 팔아버리거나 권좌에 이르는 소도구로 이용하고 있다는 더한 추함을 가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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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 창비시선 46
김용택 지음 / 창비 / 200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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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 시인'으로 불려지는 김용택의 시집, <섬진강>을 읽었다. 이 시들은 논두렁에 고여있는 물의 시, 밭이랑에 묻힌 씨알의 시이다. 농촌에서 사는 시인이, 농촌을 배경으로, 농민의 삶을 주제로, 흙 냄새 풀풀 나게 쓴 시이다.

내가 읽었던 얼마 되지 않은 시집들은 거의 다가 의도하든 의도치 않았든 도회지의 모던한 시들이었다. 그런데 이 시집의 시들은 특정한 시의 요소(여기에서는 '시의 근원'이자 모티브가 되는 것으로서의 '장소')를 고정시켜 두고 쓴 시들이라서 하나같이 흙 냄새와 그 흙 냄새를 종일 맡고 사는 이들의 삶이 담겨있는 것이다.

그것은 시의 주제나 소재에서뿐만 아니라, 문학적 기법에서도 전술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이를테면, 4, 4조의 민요조 운율을 의도적으로 사용한 시들(<밥값>, <너무나 그리들 말더라고> 등)이나, 농민들의 언어(곧, 사투리와 짙은 속말 등)를 이용하여 그들의 목소리를 직접 빌어서 쓴 시들(<마당은 비뚤어졌어도 장구는 바로 치자>, <너무나 그리들 말더라고> 등), 구체적인 그네들(시인의 아버지나 어머니, 누이 등과 그리고 시인 자신까지를 포함하여. 앞에서 말한 '농민들'이란 보편적인 농민들 전체를 말한다.)의 삶을 생생하게 표현해낸 시들(<섬진강4-누님의 초상>, <섬진강20-강傳>, <밥과 할머니>, <고추값>, <어머니 이야기-밭가에서> 등)까지.

이 시집에서 「섬진강 3」같은 사랑의 시는 오히려 이채롭기까지 하다. 물론 『섬진강』의 다른 시들이 '사랑'을 다루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 기법과 언어는 흙 냄새가 다분하게 묻어 있는데 비해서 이 시는 그것이 덜하다는 말이다. 하지만 여전히 이 시에서도 '강 건너 물가', 그리고 '풀잎'은 여전히 풋풋하게 살아난다. 김용택은 섬진강의 흙 냄새나는 시인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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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승의 과학 콘서트 - 복잡한 세상 & 명쾌한 과학
정재승 지음 / 동아시아 / 200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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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과학 서적을 읽었던 때가 언제였을까. 참으로 오랜만에 과학에 관한 책을 읽게 되었다. 늘 대중적인 과학 서적을 한 권쯤 읽기를 원했는데 역시 한 번 멀어져 버리니 그게 쉽지 않았다. 서점의 과학 코너를 둘러보다가 가장 괜찮을 듯한 책이 바로 이 책이었다. <생명과 환경>이라는 교양 수업의 리포트를 쓰기 전에 한 번 읽으려고 했는데 리포트를 제출하고 나서야 다 읽을 수 있었다.

물리학자인 저자가 생활 속에서 마주치는 다양한 현상들을 과학적으로 해부해서 보여준다. 그렇지만 저자의 전공인 <카오스 이론>이나 <복잡성의 과학>이라는 난해한 주제들을 이야기 거리로 삼지만 부담되지 않는 말로 재미있게 풀어낸다. 책의 제목답게 <콘서트에 앞서>로 시작해서 <제 1악장. 매우 빠르고 경쾌하게 Vivace molto>으로, <제 4악장. 점차 빠르게 Poco a poco Allegro>에 이르고, <콘서트를 마치며>로 글을 닫고 있다. 물론, 내용과 음악적 빠르기와는 그다지 부합되지는 않지만 독자에게 가볍고 즐거운 책 읽기를 위해 이런 구성을 생각한 것 같다.

<케빈 베이컨 게임 : 여섯 다리만 건너면 세상 사람들은 모두 아는 사이다>에서는 '작은 세상 이론'에 대해 알려주고, <자본주의의 심리학 : 상술로 설계된 복잡한 미로_백화점>에서는 판매를 극대화하기 위한 상점의 효율적인 설계를 꼬치꼬치 까발려준다. 특히 <웃음의 사회학 : 토크쇼의 방청객들은 왜 모두 여자일까?>에서는 웃음은 인간관계를 위한 사회적 신호라고 하면서 TV 쇼의 녹음된 웃음소리(laugh track)에 대해서도 억지 웃음을 만들어 내지 말라며 비꼰다. 개인적으로 이 부분이 가장 흥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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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페셔널의 조건 피터 드러커의 21세기 비전
피터 드러커 지음, 이재규 옮김 / 청림출판 / 200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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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드러커는 1969년 당시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베스트셀러 『단절의 시대』에서 이미 지식 사회의 도래를 예견했다. 그는 지식 사회에서는 지식이 가장 중요한 생산 요소가 되며, 육체 노동자는 지식 근로자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또한 이후 여러 저서를 통해 지식이 우리 사회와 조직 그리고 개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밝혀오고 있다. 이 책은 그러한 드러커의 저서들과 논문들 가운데 지식(knowledge)과 지식 근로자(knowledge worker) 개인에 관한 부분만 따로 발췌하여 모은 책이다. ㅡ 옮긴이의 글 중, 383쪽.

한참 피터 드러커가 뜨고 있다. 정통부 장관이 과장들에게 읽으라고 선물하기까지 하고. 가히 열풍에 가깝다. 이 책은 최근에 나온 드러커의 책은 아니다. 그래도 이 책을 읽고 피터 드러커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 수 있지 않았을까 한다.

그의 글은 압축적이지는 않다. 상당히 두꺼운 책인데도 부담이 덜한 것은 그 때문일까. 그가 압축적인 문장으로 글을 썼다면 물론 그것은 경구처럼 딱딱해졌을 것이다.

그리고 그의 글에서는 그의 박학다식함이 느껴진다. 3∼4년을 주기로 공부할 것을 바꾸라고 말하는 그는 스스로도 그런 식의 공부를 계속해왔다. 역사며 음악, 심지어는 일본 미술에 이르기까지 이르는 그의 지식에는 감탄과 부러움을 동시에 느끼게 한다. 예시로 드는 다양한 지식과 경험들은 이 책을 더욱 풍요롭게 한다.

60년대에 이미 <지식 근로자>와 <지식 기반 사회>를 예견한 드러커는 재미있게도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사건으로 <인구혁명>을 들고 있다. 인구혁명으로 인해 노동 인구에 중대한 변화를 가져오게 된다. 이러한 변화는 미숙련 육체 노동자를 지식 근로자로 탈바꿈시키게 한다는 것이다. 또한 지식 근로자의 직장은 그의 수명보다 짧아질 것이기 때문에 다양한 준비로 인생의 후반부를 준비해야 한다고도 말하고 있다. 90이 넘은 노학자로서도 늘 다음 책이 가장 완벽한 책이 될 것이라고 하는 그의 열정적인 모습을 보면 드러커는 자신의 말과 행동을 일치시키고 있다는 생각을 들게 한다. 90이 넘고 늙어서도 드러커처럼 열정을 간직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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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문학과지성 소설 명작선 5
조세희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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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쏘·공. 조세희의 이 연작소설집은 20세기의 영원한 명작이다. 3∼4년 전에 이 소설을 처음 접했을 때의 그 놀라움! 짧고도 환상적인 문장과 독특한 소설의 분위기, 시대의 아픔과 사회를 생각하게 하는 슬픔. 소설이 독자를 웃고 울려야 할 책임이 있다면 이 소설은 독자들을 가슴깊이 울리게 만든다. 너무도 사실적인 소설이면서 너무도 환상적인 소설.

이 소설은 '만화책'이다. 칸과 칸의 그림 사이에 자리한 빈틈의 상상력이 만화의 예술성의 기초가 되어주는 것처럼 이 소설에서는 단문과 단문 사이의 그 빈틈이 환상을 보여준다. 이것이 현실을 조금밖에 담지 못할 것 같은 단문이 어떻게 상상력의 영상미를 담아내고 있는지에 대한 답을 해준다. 또, 갑자기 튀어나오곤 하는 시공간이 다른 등장인물은 전경화(튀어나와 보임)로서 시적인 '낯설음'의 효과도 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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