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안에서의 택시잡기 민음의 시 16
장정일 지음 / 민음사 / 198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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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 같은 장정일의, 마력적인 시를 읽는 일은, 매력적이다. 장정일의 시는 쉽고, 재미있다. 시를 읽지 않는 사람에게도, 권해주고 싶다.

장정일의 시는 다채롭고, 이채롭다. 그의 문학에 대한 욕망은 자꾸만 환유 되는지, 시에서 시로, 시에서 소설로 영화로 희곡으로 시나리오로, 자꾸만 자꾸만 옮아간다. 전염된다. 예를 들자면, 시 「요리사와 단식가」는 영화 [301·302]의 모티브이다. 서사가 있는 시들이 많기 때문에 어쩌면 그가 시에서 소설 등으로 업종변경을 하게 된 것은 예상된 일인지도 모른다. 형식의 면에서도 다양한 실험을 하면서, 그의 시들은 다양한 화학반응을 보인다. 「라디오같이 사랑을 끄고 켤 수 있다면」은 김춘수의 잘 알려진 시, 「꽃」을 패러디한 시이다. 「약속 없는 세대」는 하나의 세대론이다. 「잔혹한 실내극」, 「즐거운 실내극」, 「진흙 위의 싸움」은 희곡의 모양새를 보여준다. 「자동차」는 영화 시나리오의 꼴을 띤다. 「조롱받는 시인」은 시인 장정일 자신의 경제적 무능력함을 기사화된 문체로 희비극적으로 보여준다. 「독일에서의 사랑」과 표제시인 「길안에서의 택시잡기」는 시작(詩作) 과정을 보여주는 시에 대한 시 쓰기이다.

「삼중당 문고」는 장정일의 한 생애를 집약적으로 그려놓은 이력서이다. '삼중당 문고'라는 문고판 책들을 탐독해 나갔던 지난 젊은 날이 오늘의 장정일을 있게 했을까.

장정일에게 있어, 시 쓰기는 자신과 세계에 대한 환멸감 드러내기 작업이다. 그러나, 어찌하랴. 그만큼 환멸스런 세계를 그도 아직 '달리고' 있지 않은가. 달린다는 것은, 그만큼의 세계애와 자기애를 포함한 것이다. 비탄함 속에서도 철저히 숨길 수 없는.

장정일에게 섹스는 주요한 테마이자 레토릭이다. 사도마조히즘에 대한 다양한 변주가 이 시집에서도 조금은 싹이 보인다. 그가 왜 그렇게 그것에 집착하는지 정확히는 알지 못하지만, 「나, 실크 커튼」에서 보여주는 바에 따르면 조금은 남성 중심의 시각이 드러나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본다. 실크 커튼이란 장벽을 두고서 벌어지는 남자의 관음증과 여자의 결백증을 보여준다. 그런데 결국 실크 커튼은 남자에게 주도권이 있다. 실크 커튼은 남자에게서의 시작되는 (화자의) 시점의 위치를 조금은 알려주는 장치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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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 창비시선 219
박성우 지음 / 창비 / 200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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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읽은 황지우와 박성우의 두 시집, 모두 대단한 작품들이었다. 황지우는 그 실험적이면서 독특한 형식이 놀라웠는데 박성우의 시들은 다른 의미에서 감동케 한다. 생물학적 상상력이라고나 할까, 아니면, 어린아이나 원시인의 상상력이라고 할까나. 그가 시인의 눈으로 보기에는 사람과 자연 사이에는 거리가 없다. 초록 애벌레와 사내는 같은 길 위에 앉아 있고(「길」), 시인이 거미를 보며 노래(「거미」)하기도 하지만 거미가 시인을 관찰하며 사유(「거미2」)하기도 한다. 박성우의 시각은 이렇게 사람과 자연을 구분짓지 않는 상상력이 발동하는데, 이런 그의 상상력 덕분인지 그가 주로 소재로 끌어쓰고 있는 가난과 소외 등도 처절하게 아픈, 뼈저린 통증의 문체는 아니다. 젊음이 본 눈답지 않게 담담하게, 그리고 주위의 온갖 사물과 자연을 끌어 빗대는 척 하면서도 지나칠 정도로 솔직한 말소리로 말한다.

시인의 입으로 꼼틀꼼틀하는 생물학적 상상력이 거미줄을 쳐내자, 가까이서 보아왔으나 늘 지나쳤던 세상의 작고 약한 것들이 거미줄에 걸린다. 파르르 떨리는 날개를 보고 시인은 거미처럼 걸어간다. 거미는 입을 벌린다. 먹이감은 눈을 질끈 감는다. 거미의 입에서는 거미줄로 된 베개가 나오고 이불이 나온다. 오늘 거미줄은 식탁이 아닌 시의 침대가 된다. 먹이감은 그러자 안도하면서 푸근한 가난뱅이의 잠에 빠진다. 거미줄 아래에, 놀랍도록 잔잔한 그늘을 만들어진다. 이것이 『거미』의 시인, 박성우의 전모다.

「길」과 「거미」는 모두 유사한 서사 구조를 가지고 의미의 흐름이 진행된다. [애벌레와 거미의 강하 → 시인의 관찰 → 애벌레와 거미의 걷기와 길 만들기 → 어느 사내와의 유사점을 두고 말하기]이다. 자연물의 관찰에서 상상력의 실마리가 이끌어 나온다는 점에서 경쾌하지만 사람 세계와의 연결에서는 무언가 아스라한 옹이(나무의 상처)들을 보여준다. 결국 나무의 옹이와 사람의 상처 사이에서 교류하고 작용하는 상상력이 시의 원동력일 것이다. 이것은 다른 시들에서도 찾아 볼 수 있는 박성우 시들의 독특함이다. 그래서 그의 시의 제목들은 한결같이 거미, 새, 달팽이가 지나간 길은 축축하다, 초승달, 민달팽이, 옹이, 감꽃, 망둥어, 굴비, 누에, 황홀한 수박, 콩나물, 깨꽃과 같은 질감과 질량이 살아있는 자연물에 가깝다. 지나치게 달콤해서 지겨워지기 쉬운 서정시나 자의식과 난해함으로 무장한 요즘 시들과는 전혀 다른 맛을 준다.

그리고 때로는 「콩나물」처럼, 또는 모든 푸른 이파리 가진 식물들이 그러하듯 아래에서 위로의 상승지향과 개김의 저항의식을 보여준다. 그것이 시적 상상력을 거미줄로 이용하는 시인의 몫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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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전혜린 에세이 1
전혜린 지음 / 민서출판사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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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처럼 전설처럼 불타올랐던 여자, 피어오르는 젊음을 온통 인식에 바쳤던 여자. 자기 자신의 삶을 철학과 예술의 제단에 기꺼이 내던졌던 그녀. 그런 그녀가 남기고 간 흔적들. 때로는 참을 수 없이 죽음의 사유에 빠져들고, 또 때로는 너무도 주체할 수 없는 생의 격렬한 충동에 휩싸였던 그녀의 영혼의 궤적들. 그녀의 열정이 남기고 간 검붉은 재들. 사로잡힌 한 넋의 노래. 치열하게 자신과 싸웠고, 무섭게도 자신을 사랑했던 그녀는 자기 삶으로 모든 것을 말하고 '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전혜린, 그녀가 그랬던 것처럼, 나도 이 책의 이곳저곳에 온통 밑줄을 그어두고 또 느낌표, 물음표 따위를 새겨두고 싶다. 문체도 그녀를 닮아 열정적이고 시적이고 아름답다. 그리고 학문에 바쳐졌던 그녀의 젊음을 따라서 가고 싶은 맘이 조금씩 싹트기도 한다. 이 책은 그런 열정의 감동이 숨겨지지 않고 그대로 드러나는 책이다.

'사랑? 사랑이란 무엇일까? 한 개의 육체와 영혼이 분열하여 탄소, 수소, 질소, 산소, 염, 기타의 각 원소로 환원하려고 할 때 그것을 막는 것이 사랑이다' ― 마지막 편지(3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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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문학과지성 시인선 32
황지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8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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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쓴 詩를 두 번 다시 보기 싫다. 혐오감이 난다. 누가 시를 위해 순교할 수 있을까? 나는 시를 불신하고 모독했다. 사진과 상형문자 사이를 오락가락하며, 아 그러니까 나는 시가, 떨고 있는 바늘이 그리는 그래프라는 것을 波動力學이라는 것을, 독자께서 알아주시라고 얼마나 시의 길을 잃어버리려고 했던가. 죄송합니다.'라던 황지우.

그러니까, 자괴감이 느껴지는 이 自序는 그의 시집의 마지막 화룡점정이다. '사진과 상형문자 사이'라는 지나가는 듯한 말로서 그의 시들의 독특한 실험-파괴-의 방법론을 확실히 설명한다. 지금 이 글에서는 그의 시들이 구현 불가능하는 것이 아쉽다. (그의 시는 시각적 미학에까지 닿아 있으므로.) 그의 시는 詩文이면서 詩問을 市門에 닿게 한다. 시장의 잡담과 통속의 언어인 듯하면서 시처럼 울림이 있다. 그의 시는 詩畵로 詩話를 詩化한다. 시에 그림이 더한 詩畵가 아닌 글자 속으로 그림이 녹아 들어가고, 그림 속으로 시가 빨려 들어간 詩畵이다. 또, 시에 대한 시들(메타 시)도 시가 됨을 보여준다. 시를 통해서 시 쓰기에 대한 자의식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러한 메타 시들은 '도대체 시란 무엇인가'를 되묻기도 하는 것이다.

'다섯 살 난 한 아이가 공터에서 힘껏, 돌을 던진다.'(87쪽)로 시작하는 어떤 시는 제목마저 달아나고 없고 단지 글꼴이 크게 부각된다. 「묵념, 5분 27초」는 시의 제목만 있고, 내용이 실종되었다. 그야말로 내용은 5분 27초 동안 묵념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생명보험회사 송일환씨의 어느 날」(109∼111쪽)은 신문 읽기를 詩化한다. 즉 신문을 시각적으로 훑어가는 송일환의 안구 움직임을 따라가면서 시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표를 주워 주인에게 돌려 / 준 청과물상 金正權(46)'과 '령=얼핏 생각하면 요즘 / 세상에 趙世衡같이 그릇된'과 같은 연이 이어질 수 있다. '미디어가 곧 메시지'라고 하던 맥루언의 말처럼 그는 신문의 모자이크성을 시적 구성으로 삼고 있다.

「이준태(1946년 서울生, 연세대 철학과 졸, 미국 시카고 주립대학 졸)의 근황」은 어느 2인칭을 두고 말한 어지러운 잡담 또는 환멸적인 넋두리 가운데에 글 상자를 넣어 '사람이 산다 / 사람은 산다 / 살아 있는 날만 / 그리고 大腦와 / 性器 사이에 / 사람들 세상이 있다'를 부각시킨다. 혼란과 무질서 안의 시. 또는 시 밖의 혼란스러움. 그리고 시인과 시인 밖의 세상. 이 시에서는 네모 상자가 테두리를 갖고 있지만, 실제 세계에서는 그렇지는 않은 듯 하다. 그래서 사람은 살기 사는데 살아 있는 날에만 살고 그 나머지의 날들에는 죽어 있다. 그리고 대뇌와 성기의 각각에서 사는 것이 아닌 그 사이에서 사람들이 사는 것이다.

「숙자는 남편이 야속해 ㅡ KBS 2TV · 산유화(하오 9시 45분)」는 모더니즘의 패러디 또는 포스트모더니즘의 혼성모방의 방법론이 드러나는 시이다. 신문의 텔레비전 프로그램 안내란의 문구들과 화장실의 음담패설에 가까운 낙서 같은 문장을 나란히 배열했다. (이것은 신문의 사람찾는 광고문안들을 주욱 보여주고 나서, '나는 쭈그리고 앉아 / 똥을 눈다'라는「심인」에서도 사용되고 있다.) TV 프로 안내와 같이 똑같은 너비에, 마지막 문장은 말줄임까지 같다. 같은 형식을 사용한 두 글 사이에 무슨 차이가 있을까? TV와 낙서/음담패설은 구분될 수 있는가? 우리는 TV를 통해 끊임없이 배설하고 잡담하고 음담패설을 나누고 있다.

황지우의 시집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는 재미있으며/슬픈 시들이다. 실험적인 시의 이채롭고 다채로운 결들이 느껴지면서, 또 한결같이 시대와 시인의 어둠에 손을 넣어 말하고 있다. 도무지 알 수 없는 시들이며, 알 수 없는 세상들이다. 그래서, 시인은 이렇게 말한다. 아니,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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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을 거울에 비추어볼 것)

ㅡ 「의혹을 향하여」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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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나
최윤 외 지음 / 문학동네 / 199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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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명의 소설가들의 자전적 소설. 사실, 소설이라기 보다는 에세이에 가까운 글들이다. 그들, 그리고 그녀의 속 이야기들. 그리고 나의 독서 기록들.

- 최윤, 「집·방·문·벽·들·장·몸·길·물」
2인칭 시점의 '너'를 두고 글이 걸어간다. 개인적으로 2인칭 시점을 처음 접해서 참신했다. 에세이 분위기에 9가지 소재를 두고 쓴 글. 감미롭고 자유로운 문체-의식-의 움직임들.

- 장정일, 「개인기록」
소설가 장정일의 고백과 그 생의 일지. '거침없는 솔직함'. 역시 장정일은 끝까지 밀고 나간다. '글을 잘 쓰게 해달라고 악마에게 기도했던' 그 장정일. 그의 삶이 소설이다. 시다.

- 김영현, 「새장 속의 새」
조금은 방어적인 글. 3인칭 '그'의 가면을 쓰고서 고백을 하는 작가. '그'가 될 수밖에 없던 그.

- 정찬, 「은빛 동전」
가정사, 특히 어머니에 대한 회고를 중심으로 쓴 글. 가난한 어린 시절, 은빛 동전을 잃어버리고 나서 소설가의 눈물의 힘이 소설을 쓰게 했을까?

- 신경숙, 「마당에 관한 짧은 얘기」
신경숙 특유의 우울하고 고독한 문체. '소녀'의 환상이 인상적. 닭을 안고 있던 그 소녀는 누구였을까? 자신의 어린 모습? 아니면...?

- 해설 : 김훈, 「램프와 페이지 사이의 공간」
스타일리스트 김훈! 문학평론가로 글을 쓰다. 역시 시의 맛을 깊이 느끼게 하는 글의 결. 램프와 페이지 사이의 그 행복한 공간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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