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 창비시선 219
박성우 지음 / 창비 / 200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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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읽은 황지우와 박성우의 두 시집, 모두 대단한 작품들이었다. 황지우는 그 실험적이면서 독특한 형식이 놀라웠는데 박성우의 시들은 다른 의미에서 감동케 한다. 생물학적 상상력이라고나 할까, 아니면, 어린아이나 원시인의 상상력이라고 할까나. 그가 시인의 눈으로 보기에는 사람과 자연 사이에는 거리가 없다. 초록 애벌레와 사내는 같은 길 위에 앉아 있고(「길」), 시인이 거미를 보며 노래(「거미」)하기도 하지만 거미가 시인을 관찰하며 사유(「거미2」)하기도 한다. 박성우의 시각은 이렇게 사람과 자연을 구분짓지 않는 상상력이 발동하는데, 이런 그의 상상력 덕분인지 그가 주로 소재로 끌어쓰고 있는 가난과 소외 등도 처절하게 아픈, 뼈저린 통증의 문체는 아니다. 젊음이 본 눈답지 않게 담담하게, 그리고 주위의 온갖 사물과 자연을 끌어 빗대는 척 하면서도 지나칠 정도로 솔직한 말소리로 말한다.

시인의 입으로 꼼틀꼼틀하는 생물학적 상상력이 거미줄을 쳐내자, 가까이서 보아왔으나 늘 지나쳤던 세상의 작고 약한 것들이 거미줄에 걸린다. 파르르 떨리는 날개를 보고 시인은 거미처럼 걸어간다. 거미는 입을 벌린다. 먹이감은 눈을 질끈 감는다. 거미의 입에서는 거미줄로 된 베개가 나오고 이불이 나온다. 오늘 거미줄은 식탁이 아닌 시의 침대가 된다. 먹이감은 그러자 안도하면서 푸근한 가난뱅이의 잠에 빠진다. 거미줄 아래에, 놀랍도록 잔잔한 그늘을 만들어진다. 이것이 『거미』의 시인, 박성우의 전모다.

「길」과 「거미」는 모두 유사한 서사 구조를 가지고 의미의 흐름이 진행된다. [애벌레와 거미의 강하 → 시인의 관찰 → 애벌레와 거미의 걷기와 길 만들기 → 어느 사내와의 유사점을 두고 말하기]이다. 자연물의 관찰에서 상상력의 실마리가 이끌어 나온다는 점에서 경쾌하지만 사람 세계와의 연결에서는 무언가 아스라한 옹이(나무의 상처)들을 보여준다. 결국 나무의 옹이와 사람의 상처 사이에서 교류하고 작용하는 상상력이 시의 원동력일 것이다. 이것은 다른 시들에서도 찾아 볼 수 있는 박성우 시들의 독특함이다. 그래서 그의 시의 제목들은 한결같이 거미, 새, 달팽이가 지나간 길은 축축하다, 초승달, 민달팽이, 옹이, 감꽃, 망둥어, 굴비, 누에, 황홀한 수박, 콩나물, 깨꽃과 같은 질감과 질량이 살아있는 자연물에 가깝다. 지나치게 달콤해서 지겨워지기 쉬운 서정시나 자의식과 난해함으로 무장한 요즘 시들과는 전혀 다른 맛을 준다.

그리고 때로는 「콩나물」처럼, 또는 모든 푸른 이파리 가진 식물들이 그러하듯 아래에서 위로의 상승지향과 개김의 저항의식을 보여준다. 그것이 시적 상상력을 거미줄로 이용하는 시인의 몫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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