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눈팔기와 글쓰기 - 김화영 문학선 나남문학선 25
김화영 지음 / 나남출판 / 199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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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화영. 유명한 번역문학가. 유려한 에세이스트. 불문학자. 그에 대해 알고 있던 전부였다. 그러다가 우연히도 두툼한 두께의 김화영의 문학선집을 읽게 되었다. 시, 에세이, 예술기행문, 문학평론, 미술평론, 영화평론에 이르기까지. 생각보다 그의 스펙트럼은 상당한 편이다.

서문에서부터 느껴지는 그의 부드럽고 아름다운 문체는 독자를 아늑하고 평화로운 세계로 이끈다. 그래서인지 그의 글들은 피아노의 선율과 닮아있고 그 둘은 사이 좋게 어울린다. 시 모음에서는 그가 젊은 시절 시인이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시들에서는 단정하고 조용한 바람냄새가 난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김화영은 에세이에서 화사하게 빛난다. '공간'과 '그리움'과 '아름다운 것들(예술)'에 대한 천착은 그로 하여금 여러 예술기행문을 쓰게 했던 모양이다. 주로 프랑스의 문인과 화가, 고성 등을 스케치한다. 세 편의 영화평론을 읽고 나서는 모두 감상하지 않은 영화들임에도 불구하고 생생하게 이미지들이 살아있는 느낌이다. 어지간한 스케치 실력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강가의 나무에 매여 형벌을 받는 거역의 신 탄탈로스에게 물어보라. 그는 대답하리라. 우리를 삶에게로 치달리게 하는 것은 물이 아니라 우리들 영혼 속에 불타고 있는 영원한 '갈증'임을. 생명은 부유한 자의 소유가 아니라 위로받지 않으려는 자, 영원한 속의 굶주림을 간직한 자의 것임을.'(1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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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tty99 2015-09-30 2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어떤 시인의 일생을 쓴 글이 생각나요. 그 시인은 어린 시절 집을 나와 홀로 사는 법을 배운 사람이었어요. 전화 교환원으로 일했다는 것이 기억나요...
저도 이 책 고등학생 때 읽고 감동 많이 받았었죠!
 
문자의 역사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 1
조르주 장 지음, 이종인 옮김 / 시공사 / 199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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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공 디스커버리 시리즈는 사진과 이미지들이 당당하게 활자들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실려있다. 읽는 즐거움에서 보는 즐거움으로, 아니면, 읽고 보는 즐거움을 함께 누리자는 게 이 시리즈의 모토인 듯 싶다.

하지만 때때로 순차적인 활자 읽기에 익숙한 독자들은 활자의 위치(내용 전개)와는 조금씩 어긋나 있는 이미지들이 번거롭기도 하겠다. 게다가 짜깁기 책답게 일관성이 부족한 것도 흠이라면 흠. 이미지가 풍부한, 특정 주제의 스크랩북이라고 생각하면 될까?

문자를 주제로 잡은 이 책에서도 고대의 문자로부터 세계 각국의 문자들이 다채롭게 출몰한다. 책을 읽으면서 생각하게 되는 것은 두 가지다.

첫째로는, 문자와 계급. '역사적 사건을 보존하려는 구체적인 필요 때문에 문자를 만들었다'(12쪽)고 하는데, 때문에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에서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것은 권위와 특권의 상징이었다'(39쪽)라고 한다. 문자를 포함한 지식정보의 보관/유통의 체계적인 기술은 계급성을 띨 수밖에 없는가. (요즘 흔히들 얘기하는 디지털 리터러시도 예외는 아니겠다.) 사가(史家)가 때로 왕보다 더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는 건, '지식과 권력'에 대한 오래된 명상거리가 된다.

둘째는, 문자의 시각적인 미. 누구나 아는, 너무도 당연한 말이겠지만, 굳이 데리다를 인용하자면, '최초의 글쓰기는 그려진 이미지이다'. 우리는 오랫동안 문자 저 멀리의 뜻만을 가지고 놀아왔다. 문자의 형상에 대한 재발견. 얼마나 흥미로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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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나이 창비시선 107
김정환 지음 / 창비 / 199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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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시집 표지에는 기인 밧줄에 목을 맨 회색빛 다섯 동상의 모습이 나옵니다. 굳은 표정의 동상들이 무섭기만 하군요. 자살인지 타살인지 알 길이 없습니다. 누굴까요? 레닌인가요? 세상과 역사에 어두워, 정확히는 모르겠습니다. 소련이 몰락하고 나서 이 시들을 썼겠지요. 시집의 제목처럼, '희망'을, 그리고 '나이'를 끈질기게 질문하고 있는 당신의 노래를 듣습니다.

첫 번째 나오는 시, 「첫 눈」에서부터 거리의 눈 내리는 풍경에다 소련연방의 해체를 겹쳐서 볼 정도로 절망을 외칠 수밖에 없었던 당신. …그리고 당신의 눈은 끊임없이 '선배'와 '후배'들의 얼굴에 닿습니다. 그건 말이죠, 선배와 후배들의 얼굴을 바라보는 게 아니라 바로 당신의 자리를 더듬어보는 일이었겠죠.

여기, 좌파 시인의 내적인 탄식이 '시간의 사회적 흐름'인 역사의 도상에 놓여 있습니다. 내게, 그건 물음표 모양의 역사적 화석으로 보입니다. 과연, 희망에도 나이가 있을까요? 희망도 나이가 들면, 절망으로 늙어 가는 것인가요? 두고두고 꺼내어볼 물음표 화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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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는 없다 - 기독교 뒤집어 읽기
오강남 지음 / 현암사 / 200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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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이 아니라 생활에 밑줄을 그어야 한다는
그의 말은 집사들 사이에서
맹렬한 분노를 자아냈다, 폐렴으로 아이를 잃자
마을 전체가 은밀히 눈빛을 주고받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주에 그는 우리 마을을 떠나야 한다
(…)한참 동안 무엇인가 생각하던 목사님은 그제서야
동네를 향해 천천히 페달을 밟았다, 저녁 공기 속에서
그의 친숙한 얼굴은 어딘지 조금 쓸쓸해 보였다

― 기형도 「우리 동네 목사님」

예수는 없다? 다소 상업주의 냄새를 풍기는 선정적 제목이 거슬렸지만, 이런 책이라면 백 번이라도 용서가 된다. 선정적 제목 때문에 더 많은 독자가 생긴다면 그것도 좋은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예수를 잘못 읽고 있는 모든 독자들이여, '그런 예수는 없다.'

비교종교학자 오강남의 '기독교 뒤집어 읽기'는 사실상 '기독교 바로 읽기'나 '기독교 제대로 읽기'이다. 어느 문명비평가가 지적했다는 '무슨 증거, 무슨 논리, 무슨 개인적 체험, 그 어떤 것을 들이대어도 '계시된 진리'에 대한 근본주의자의 마음을 바꿀 수는 없다.'(47쪽)는 인용은 꽉 막혀 있는 한국 기독교계의 어둠에 자신의 저서가 얼마나 빛이 되어줄 수 있을지 하는 의심과 회의의 표현이다. 하지만, 논문식 글쓰기에 익숙할 그가 쉬운 말로 진실을 담아 쓰기 위해서 얼마나 힘을 기울였는지 알게 된다. (더 찾아보고 싶은 독자를 위해서 꼼꼼하게 참고도서목록과 원문의 출처를 제시하는 친절한 저자!)

폐쇄적·독단적이며 근본주의, 율법주의, 문자주의적 성경해석 등의 온갖 난감한 늪에 빠진 한국 교회의 문제 제공의 1차적 원인은 한국에 기독교를 소개한 선교사들에 돌려질 수 있다. 그러나 그 우물 밖으로 빠져 나오지 못하고 교회 체제를 무반성적으로 유지, 확대시키려는 목회자 및 일반 신자들에게 더 큰 문제가 있다. '많은 외국 신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교회가 성장하기 위해서 갖추어야할 필수 조건으로 대략 1) 교리의 절대화, 2) 획일적인 행동강령, 3) 무조건적인 복종, 4) 철통같은 소속감과 헌신, 5) 전도열 등을 꼽는다'(268쪽)라는데, 이런 것은 부정적인 한국 교회를 분석해낸 결과에서 얻어낸 것이 아닌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들어맞는다. 웃을 수밖에 없고, 웃을 수도 없는 현실이다.

사도 바울은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노라.'(고전13:11)고 고백했다고 한다. 어린아이의 믿음은 순수하고 강하지만 의심할 수 없다는 점에서 위험할 수 있다. 산타 클로스가 있다고 믿는 아이는 아름답고 순수한 영혼을 가지고 있지만 산타의 선물을 받기 위해서 집에 굴뚝을 뚫는 불혹이 넘은 아이 아닌 아이를 우리는 그대로 둘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김진호 목사의 말처럼, 진리를 위해서 죽을 수 있는 자를 우리는 경계해야만 한다.

…기형도의 어느 시에서 나오는 '우리 동네 목사님'은 얼마나 기다려야 다시 돌아와서, 아이들과 웃는 얼굴로 목사관 뒤터에 푸성귀를 심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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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이란 무엇인가
유종호 지음 / 민음사 / 199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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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미술이 존속하는 이상 그 민족은 열렬하리라.'

정지용 시인의 말이다. 아니, 정지용을 떠나 유종호의 말이다. 이제는 내 혀에 달라붙은 말이다. 유종호와의 첫 만남은 정지용을 소개하는 글(http://www.sfoc.org/cni1/cultureni/2002/02/etc_01-2.html)에서였다. 이렇게도 멋진 문장을 맥락과 숨겨진 의미를 모른 체 내 혀로 끌고 와버렸다. 아직도 뇌가 없는 내 혀는 이 말을 주기적으로, 자동적으로 내뱉고 있다.(이것이 말의 매혹이며 말의 폭력일까.)

유종호는 정지용을 옹호하며 이상에 대한 주위의 지나친 평가를 경계한다. 그에게 문학이란 '언어예술'이므로, 예술 언어에 대한 자의식을 보여준 정지용이야말로 뛰어난 시인이고, 얄궂은 말놀이의 시를 보여준 이상은 뛰어난 산문에 비해 높은 평가를 받지 못한다. 각별히 동요에 대한 애정을 보여주는 것은 그 자신 동요를 좋아했던 어린이였던 이유도 있겠지만 동요가 언어미를 담는 노래로 '시의 어린이꼴'이기 때문일 것이다.

문학이란 무엇인가? 문학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많은 사람들이 세계에 대해 인간에 대해 던져 왔던 수많은 물음표 중에서 제대로 해결된 일이 거의 없는 것처럼, 이 질문도 본래가 정답이 없는 것인지 우문에 현답으로 대답해줄 목소리가 별로 없다. 덕분에 아직도 끊임없이 여러 표정의 시인작가와 문학자들이 제 목소리로 답을 제출해왔으니 우문이 아니라 너무도 소중한 현문인가 보다.

유종호의 이 책도 문학이란 무엇인지 묻는 질문에 대한 친절하고 자상한 대답들로 이루어져있다. 이 대답들이 과연 현답인지 체크해보는 것은 독자의 몫이다. 아마도, 독자들은 이 책을 문학공부 초행길의 듬직한 길벗으로 여기게 될 것이리라.

* 내 체크 리스트에는 문학과는 관계없이 그의 보수적인 정치관에 대해서만큼은 X표가 그어졌다. 젊은이들의 지적 급진주의를 비판하며 맑스나 엥겔스의 인문주의 전통을 본받으라고 한다. 옳은 말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유종호는 도저한 인문주의자이지만 맑스는 되지 못하나 보다. 그가 안타깝게 여겼을 그 수많은 젊은이들은 편향된 시각과 현실감각의 결여 때문에 들고일어난 것이 아니라 그 반대이다.

** 덤으로 말하자면, 어떻게 읽고 쓸 것인가에 대한 조언과 추천도서목록이 튼실한 혹으로 붙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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