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는 따로 자란다 ㅣ 위픽
안담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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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담. 처음 듣는 이름. 책의 앞날개에 작가 소개가 있다. 1992년 서울 서대문에서 출생. 이후 좀 헛갈리는데, “봉고 차를 타고 전국을 떠돌다가 강원도 평창에서 긴 시간 자랐다.” 이 문장에서 “봉고 차를 타고 전국을 떠돈” 사람이 안담은 아닐 것 같다. 평창에서 긴 시간 “자랐다”고 말했고, 자랐다는 말은 어린 시절부터 어른 또는 청소년 시절까지 성장했다는 말이니, 소녀 안담을 봉고 차에 태우고 전국을 떠돈 인물은 안담의 부모, 또는 부모 가운데 한 명, 아니면 안담을 키워주기로 한 후견인일 것 같다. <소녀는 따로 자란다>를 읽어보면 전국을 떠돌 때 안담을 데리고 다닌 사람 가운데 엄마는 있었을 듯하다.

  대학에서는 미학을 전공했단다. 그러면 서울대, 홍익대, 영남대 가운데 한 학교의 졸업생. 대학 졸업하고 예술 언저리에서 서성였다고. 직업 가운데 하나가 스탠딩 코미디언도 들어있다. ‘무늬 글방’이란 걸 열어서 쓰고, 읽고, 말하는 일로 돈을 벌고 있단다. 책방인 것도 같지만 책방을 핑계로 모임 장소를 두어 하여간 문학 언저리의 것을 궁리하는 소모임의 두목 정도가 아닐까 싶다. 아니면 말고.

  하여간 이렇게 문학을 포함한 “예술 언저리”에서 서성이는 사람으로 현재는 은평구에 사는 개 산책자. 마음에 드는 건, 주머니에 들어가는 작은 품종의 강아지가 아니라 성질나면 사람도 간혹 깨물 것 같은 늠름한 사냥개 종류처럼 보이는 중형 개를 키운다는 점. 은평구에서 달리거나 걷다가 안담 만나면 까불지 마라. 여차하면 사냥 당하는 수가 있으리니.

  안담은 특별히 등단 과정을 거치지 않은 작가란다. 나름대로 문학판에 아는 사람도 있고, 빽도 있고, 돈도 좀 있는 거 아냐? 짐작이다. 말이 그렇다는 것이니까 믿지도 말고 어디 가서 진짜인 척 얘기도 하지 말자. 정말로 <소녀는 따로 자란다> 읽어 보시라. 글이 만만하지 않다. 나도 이 책을 읽은 후에야 안담이라는 이름을 알았는데, 독후감을 쓰기 위해서 검색해보니 이 작은 단편 하나 실은 책이 2023년에 꽤 주목을 받았다. 흠. 이 정도면 나도 안목이 있는 편이군. 기분이 나쁘지는 않네.

  책방 검색을 해보니까 소설은 위픽 시리즈의 단편 <소녀는 따로 자란다> 이거 딱 한 권. 본문이 59페이지에서 끝나고, 다 읽는데 한 시간도 걸리지 않는 겁나게 짧은 단편 하나. 등단하지 않은 이유는 자신이 소설가가 아니기 때문이었을까? 이 작품도 오래 전에 무슨 마감이 있어서 쓴 것이 아니라 살면서 한 번 써본 것이란다. 그러니 사실 알고 보면 별 거 없는 ‘작가’가 되기 위해 머리 터지게 습작을 쓰고, 학생, 교수들의 얼토당토 않는 비평을 들으며 절망하면서 무슨 문학상 비슷한 것만 보이면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투고를 하는 시절을 어쩌면 겪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이런 거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글만 잘 쓰고, 그게 마음에 들기만 하면 독자는 읽으니까.


  초등학교 고학년 여자 아이 이야기.

  내겐 완전하게 신세계. 나 초등학교 시절도 생각나지 않는데 더구나 여자 아이의 어린 시절과 딱 그 때 감각과 생각과 느낌 같은 것은, 정말로 한 번도 궁금해본 적조차 없는 거 같다. 나도 남자형제 가운데 둘째고, 아이도 아들만 둘 있어서 더 그랬던 것이겠지. 발 한 번 딛지 않은 벌판의 언덕 위에서 처음으로 바라보는 듯한 느낌. 이게 이 책, 50쪽짜리 읽고 ‘책’이라 말하기도 좀 어색하지만, 하여간 이 단편을 읽은 감상이다.

  더구나 문장이 마음에 들었다. 괜히 폼잡지 않고, 질질 짜지도 않으면서 그냥 슬슬 지나치듯 할 말 다 하는 아이. 세상의 모든 아이들이 그렇듯이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꼬마도 아닌 사춘기 바로 전 단계.

  잘 읽었다. 소설도 좀 더 자주 썼으면 좋겠다. 크게 기대하지는 않겠다. 무대 예술도 해야 하고, 돈을 좀 번다는 ‘무늬 글방’ 주인도 해야 하고, 개 산책도 시키면서 소설까지 쓰기는 쉽지 않을 거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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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6-09-22 08: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요즘 위픽시리즈 계속 읽고 있는데 괜찮더라고요.
이 소설도 읽어 보겠습니다.

Falstaff 2026-09-23 05:45   좋아요 1 | URL
흠. 재미있게 읽으셔야 할 텐데요. ㅎㅎ

yamoo 2026-09-22 1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등단하지 않은 사람이 그냥 취미로 쓴 글이 만만치 않다는 게 좀처럼 어떤건지 모르겠네요. 여러가지 하는데, 소설까지 잘 쓰면 사기캐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92년 생이면 젊은편인디...궁금하네요~

Falstaff 2026-09-23 05:46   좋아요 0 | URL
설마 취미로 쓰기야 했겠습니까. 뭐 다른 이유가 있겠지요. 즐기시면 좋겠습니다.
 
끝이 좋으면 다 좋아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김종환 옮김 / 지만지드라마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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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극은 대개 비극 아니면 희극, 이렇게 나뉘는데, <끝이 좋으면 다 좋아>는 거참, 애매모호하다. 확실히 비극은 아니다. 그렇다고 희극이라고 하기도 뭐하다. 엘리자베스1세 시절의 시대극이라고도 할 수 없겠다.

  하여간 좋은 희극이 되기 위한 고전적 방법. 그건 비극의 등장인물 못지 않은 악당이 나와 나름대로 치밀한 계략을 펼치다가 극의 뒤로 가서 결정적으로 쌍코피를 흘리며 주인공 커플의 아름다운 결말을 맺어주어야 하는 법. <끝이 좋으면 다 좋아>에서는 주인공인 루시용의 젊은 백작 버트럼이 바로 그 악당이다. 당연히 주인공은 나중에 대오각성해서 선한 인물이 되어야 하니 조연 가운데 한 명에서도 악당이 등장해야 하는 바, 허풍 가득하고 말과 달리 무척 겁이 많으며, 하루라도 거짓말을 하지 않으면 입에 가시가 돋는 버트럼의 추종자 겸 껄떡쇠 겸, 사기꾼이라 결국 고전극의 천하 진리인 “악당은 지옥으로”를 이루어 줄 것처럼 보이는 늙은 건달 파롤.

  아, 지금 내가 뭐라고 했지? 악당이 지옥으로 간다고 한 거 아니다. 고전 희극에 등장하는 악당들이 종종 지옥에 간다고 했을 뿐. 셰익스피어는 좀 다르지? 욕심장이 술꾼이자 사기 기질이 농후한 귀염둥이 악당 폴스타프가 곤욕을 치루기는 하지만 셰익스피어는 이 악당을 지옥으로 떨어뜨리지는 않았던 것처럼, <끝이 좋으면 다 좋아>의 누더기 악당, 개전의 정이 안 보이는 파롤이 지옥으로 떨어질지, 아닐지는 직접 읽어보고 알아내시면 좋겠다.


  셰익스피어라면 고전 시대의 가장 훌륭한 시인이자 극작가로 알려져, 정말 셰익스피어를 읽지 않아도 대표작 몇 편의 스토리는 각종 영상 컨텐츠를 통해 대충은 알고 있고, 오히려 그것 때문에 작가의 책을 읽어보려 하지 않는 독자가 많은 편이다. <로미오와 줄리엣>, <베니스의 상인>을 정말로 책으로 읽어본 독자는 별로 없을 걸? 그러나 내용을 모르는 중졸 이상 우리나라 시민들도 별로 없을 걸? 이런 식이다. <로미오…>, <베니스…>에서 진보한 독자 군群도 마찬가지로 두 작품의 자리에 <햄릿>, <리어왕>, <맥베스>, <오셀로>를 가져다 놓으면 비슷할 것이고. 하물며 <끝이 좋으면 다 좋아>을 읽어본 독자는 거의 없으리라고 생각한다. 나도 이제서야 이 작품을 읽어보았다.

  다만 다른 건, 사극이 아닌 셰익스피어의 작품 가운데 스토리조차 거의 알지 못했던 작품이라는 점. 그랬으니 책을 읽으며 종종 놀랄 수밖에.

  뭐, 셰익스피어의 작품 속에 가끔 외설적인 장면이나 단어가 출몰하는 거야 익히 알고 있었지만, <끝이 좋으면 다 좋아>는 왕립극장에서 엘리자베스1세 앞에서 공연을 할 수 있었을까, 처녀왕이 공연을 즐거이 보고 “잉글랜드의 셰익스피어는 영국과도 바꾸지 않겠다.”라고 선언했을까, 하는 게 의심스러웠을 만큼, 지금 시각으로는 껌이지만, 1603년에 여왕이 엇다 잘했다, 칭찬 한 마디 했을까? 뭐 그런 장면도 들어 있다는 것이지, 그게 매력적이기 때문에 직접 읽어보시라는 말은 아니다.


  사랑 이야기.

  루시용의 백작 가문에는 가히 화타華陀는 아닐지언정, 길평吉平 정도의 주치의가 있었는데, 아무리 높은 의술을 가지고 있어도 세월 이기는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 법이라 나이가 들어 자기 갈 길 갔다. 이 의사한테 딸이 하나 있었으니, 누구냐 하면 이름이 헬레나. 무서운 이름이다. 그러나 트로이 전쟁을 일으키게 만든 바로 그 여인은 아니고 그냥 같은 이름을 지녔다. 이 의사가 루시용 가문과 하도 좋은 인연으로 맺어져, 죽어가면서 백작부인에게 자기 딸을 키워달라고 부탁했고, 부인이 아름다운 헬레나를 기꺼이 맡아, 정말로 자기 딸처럼 키우고 있었다.

  죽은 백작의 아들 버트럼이 이제 젊은 백작이 되어 병이 깊은 왕을 알현하기 위하여 파리로 간다. 문제는 연극이니까, 헬레나는 당연히 주위에서 가장 멋있는 남자 버트럼을 연모하다가 속으로 진짜 사랑의 꿈을 꾸고 있었던 반면에, 버트럼은 그깟 의사의 딸, 당시만 해도 의사라는 직업은 가끔 이발사를 겸하는 중인 계급이었을 뿐, 신분의 차이는 헬레나의 아름다움과 조신한 행동, 착한 마음씨 같은 것을 대폭 할인해서 보게 만들었고, 그리하여 버트럼 기준으로 헬레나를 보면 볼품없는 촌년 그 자체였다.

  오히려 헬레나의 가치를 알아본 이는 백작 부인. 부인은 기꺼이 자기 아들 버트럼을 헬레나한테 장가들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런 와중에 버트럼이 파리를 향해 떠났고, 때를 맞추어 왕은 병이 깊어 아직은 의사소통이 가능하지만 모든 궁정의사들이 냉정히 판단한 결과 그저 최선을 다해 고통 없는 죽음을 기다리시라, 하는 조언을 할 뿐이었다. 의사 한두 명이 그러는 게 아니고 모든 의사가 똑같이 말하니 환자인 프랑스 왕 역시 자기가 당연히 죽어야 할 처지에 당한 줄 알고 있었다. 증세가 중한 피부 궤양. 지금 같으면 페니실린 계열의 항생제 주사 몇 방이면 금세 치료할 수 있는 병변이었는데 그걸 하지 못해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던 터.

  여기에 아름다운 헬레나가 뜬다. 아버지가 의사질을 하면서 시간 날 때마다 몇 가지 특효약과 처방법을 가르쳐 주었는데 이 가운데 제일 확실하게 알려준 처방이 바로 지금 왕이 앓고 있는 병. 이런 우연이 어디 있느냐고? 희극에 못 이루어지는 일이 뭐가 있는 데? 그리하여 헬레나는 백작부인에게 부탁하여 자기가 왕의 병을 고치려 버트럼이 간 파리의 왕궁으로 쫄랑쫄랑 따라가기에 이른다. 각기 다른 마차를 타고, 약간의 시간 차이를 둔 채로.


  왕을 만난 젊은 루시용의 백작 버트럼은 무공을 올리기 위하여 피렌체 전투에 참전하려 한다. 바로 이때 헬레나가 소개장을 들고 왕을 만나니, 왕조차 네가 루시용 백작 가문의 전설적인 명의의 딸이라고? 하며 환대하고, 어차피 죽을 목숨이라 기꺼이 헬레나의 처방을 허락하기에 이른다. 당연히 왕은 완치되고, 헬레나한테 소원을 무엇이든 들어줄 터이니 하나만 말해 보아라, 했겠다.

  헬레나 역시 “기초 극작법 ABC” 3장 5절에 나오는 대로, “루시용 백작한테 시집가고 시포요.” 수줍게 소원을 말하니, 왕은 왕의 권한으로 자기가 직접 헬레나의 지참금을 보태 루시용 백작과 즉시 결혼을 명령한다. 결혼도 명령을 받아 하느냐고? 그럼. 원래 귀족들이 그렇다. 걔네들의 결혼은 거의 다 정략결혼. 절대 사랑을 매개로 결혼하는 게 아니었다. 아마도 주례는 가톨릭 붉은 제복을 입은 추기경쯤이 했겠지만 득달같이 식을 올려 그날로 당장 첫날밤을 지내야 했을 걸?

  천만의 말씀. 평소 헬레나를 호환, 마마로 알고 있던 버트럼은 신방에 들기도 전에, 새신부한테 키스 한 번도 안 해주고 피렌체 전장으로 도망쳐 버리면서 아내 헬레나에게 편지만 한 쪼가리 남겼으니 이렇게 쓰여 있구나.

  “당신이 내 손가락의 이 반지를 손에 넣을 수 있다면, 당신 몸에서 내 아이를 낳아 내게 보여 줄 수 있다면, 그때 날 남편이라고 불러도 좋소. 하지만 그때는 결코 오지 않을 거요.”

  그리고 노 백작부인한테도 편지 한 장을 남겼으니,

  “아내가 있는 한 프랑스엔 아무것도 없습니다.”

  여기까지가 5막 가운데 3막 전반부. 근데 주인공 버트럼은 물론이고 독자까지 모르고 있던 것이 하나 있다. 왕이 자기 목숨을 살려준 헬레나에게 보답을 하기 위하여, 헬레나의 지참금까지 두둑하게 주었다는 건 앞에서 이야기했지만, 왕실이 소유하고, 바로 몇 초 전까지 왕이 직접 자기 손가락에 끼고 있던 프랑스의 국보급 보석을 장인이 초절정의 세금기술로 세팅한 반지도 헬레나한테 주었다는 거. 그건 5막에 가서야 나올 터인데, 누가 가지고 있느냐 하면, 바로 젊은 루시용 백작.

  결론은, 희극이라 할 수 있으니 당연히 헬레나 입장에서 해피 엔드. 버트럼 입장에서는 그러면 비극? 아니다. <끝이 좋으면 다 좋아>을 희극이라고 내가 말하는 건, 버트럼은 끝내 개과천선, 중인 계급의 딸년에 불과한 아름다운 헬레나의 진면목을 알아채지 못하게 한 선입견을 물리치고, 헬레나의 진가를 알아보아 정식 아내로 받아들여, 진짜로 그렇게 되었는지, 살다가 별의 별 지랄을 다 했는지는 몰라도, 한 평생 부부로 살기로 결심을 했다는 이야기.

  희극을 더 재미있게 하는 악당이 한 명 등장한다고 했지? 버트럼 백작의 수하로 백작 가는 곳마다 졸졸 따라다니며 자신의 겁 많음과 거짓말과, 젊은 백작에게 끊임없이 아가씨들, 기왕이면 그것도 숫처녀 아가씨들만 조달해주는 크나큰 사명을 띠고 함께 전장에 나간 파롤. 심지어 헬레나한테도 껄떡대던 늙은이. 이 악당 이야기를 할 시간이 없네.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이쯤에서 독후감 끝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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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주일 만에 또 버렸다. 

  명작도 꽤 들어 있다. 그러면 뭐해. 앞으로 안 읽을 거 같은 책, 미련두지 않았다. 제일 아래 사진의 오른쪽 제일 밑에 깔린 책, 패트릭 화이트가 쓴 <인간의 나무>는 사고 몇 달 되지도 않았는데, 읽지도 않았으면서 버렸다. 활자가 너무 작아 읽기에 버겁다. 어느 새 나의 세월이 이렇게 됐다. 저 오래 전, 글자가 보이지 않아 책을 못 읽겠다는 정여사의 말씀이 그저 하는 얘긴 줄 알았는데, 웃기다. 사람 사는 일이지. 자기는 절대 그렇게 늙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랄까 확신으로 차 있던 시절. 

  <홍루몽>도 <봉신연의>도 버렸다. 플라톤, 그르니예도 오늘 아침에 재활용 쓰레기 더미에 던져 넣었다. 어찌 마음이 좋을 수 있었겠나. 아깝기도 하고, 허전하기도 하고, 그래도 확 버렸다. 다른 건 몰라도 속 하나는 시원하다.

  아직도 간행하고 있는 고전문학 시리즈의 책들도 예외를 두지 않았다. 창비 세계문학전집이 제대로 걸렸다. 이 시리즈에서 몇 권이나 더 버려질 지는 나도 모른다. 그래도 제법 남았다. 절대로 안 버릴 창비 시리즈는 알베르 코엔의 <주군의 여인>, 헤르만 브로흐 <현혹>, 요제프 로트 <라데츠키 행진곡>, 토머스 핀천 <바인랜드>, 표도르 솔로구프 <허접한 악마> 등등. 

  엘레나 페란테의 나폴리 사부작은 하다못해 당근에라도 내 놓으면 빵이라도 좀 사먹을 수 있을 터인데 귀찮아 그냥 던졌다. 피터 애크로이드는 <혹스무어>와 <플라톤의 반란>만 남겨 놓았다. 차페크도 남아나지 않았는데 다른 작가들이야 말 해 뭐하겠는가. 

  살면서 욕심이 너무 과했다. 이럴 필요 없었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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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돌이 2026-09-20 14:57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폴스타프님의 <이 책은 절대 못 버려> 시리즈가 나오는 순간, 만인의 장바구니가 터지겠죠? 아, 고프다... (꿀꺽)

다락방 2026-09-20 15:19   좋아요 1 | URL
오! 너무 재밌겠어요!!

coolcat329 2026-09-20 16:14   좋아요 1 | URL
저도 그 생각을 했어요~ㅋㅋㅋ

페넬로페 2026-09-20 19:12   좋아요 1 | URL
만인의 장바구니!
캬, 맞습니다!

Falstaff 2026-09-20 19:45   좋아요 2 | URL
어머나! 아하, 그것 참.... 한 번 페이퍼 써봄 직도 하네요. ㅎㅎㅎ 쉽지는 않겠지만 말씀입니다.

coolcat329 2026-09-20 16: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이 책들 누가 가져갈 지 그 분 정말 대박 행운입니다. 제가 사놓고 안 읽은 책들도 꽤 많이 있네요.
이젠 더 안 버리셨으면 좋겠습니다. 왜 제 마음이 아픈지요. ㅠㅜ

Falstaff 2026-09-20 19:46   좋아요 1 | URL
쐬주 사러 마트 가다가 슬쩍 곁눈질 했더니, 진짜 다행으로 이번엔 누가 가져간 거 같더라고요. 저도 가져간 사람이 고맙습니다. ^^

페넬로페 2026-09-20 19: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번에는 받고싶은 책이 너무 많은데요!
아까워요
집착 버렸는데 저 역시 만인의 장바구니에 동참하나요?

Falstaff 2026-09-20 19:48   좋아요 1 | URL
아이고, 기대하지 않으시는 게 좋습니다. 보실 것도 사실 없을 거예요. ㅜㅜ

wayfar 2026-09-20 19: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맨날 눈으로만 봽다가 불쑥~ 버려지는 게 아직은 아까워 고개 디밉니다!

Falstaff 2026-09-20 19:48   좋아요 0 | URL
앞에 댓글에서 썼듯이 이번엔 다행스럽게 어느 이웃이 가져간 듯해서 마음이 좋습니다.

wayfar 2026-09-20 19: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럴 땐 옆 집 살면 딱 좋겠다며 지나갑니다. 나이로야 저도 이제 버려야될 때고 말고지만요~

Falstaff 2026-09-20 19:50   좋아요 1 | URL
다음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와 <율리시스> 전권을 버리느냐 하는 게 목하 고민 중입니다. 다시 일지 않을 것 같기는 한데, 혹시 손주들이 읽을지 몰라서 말입죠.
도서관 다니셔요. 저도 도서관 다닌 다음부터는 거의 책을 사지 않거든요. 세상에서 제일 좋은 곳이 도서관이더라고요. ㅎㅎ

천학비재 2026-09-21 0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대합니다,버린 책,버릴 책,소장할 책,또,별점 별 도서 리스트 등등,,

Falstaff 2026-09-21 10:38   좋아요 0 | URL
아이구, 황감합니다. 기다리지 마셔요. 별 거 없습니다. ㅜㅜ
 
손을 찬양하다
헤수스 카라스코 지음, 임도울 옮김 / 민음사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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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헤수스 카라스코는 1972년 스페인의 에스트레마두라 주의 가장 큰 도시 바다호스 시 아래 올리벤사에서 태어났다. 카라스코가 쓴 책에 의하면 올리벤사가 시골지역이어서 본인도 어린 시절에 닭한테 모이를 준다든지, 짚을 나르는 일 등의 농사일을 도운 기억이 남았다고 수차례 강조한다. 조부모, 부모와 함께 사는 대가족이었던 모양이다. 이후 청년이 되어 체육교사, 포도 수확 담당자, 그래픽 디자이너 등의 직업을 전전하다가 1992년에 마드리드로 이적하여 최종적으로 작가라는 직업에 정착한 것 같다. 2005년에, 책을 통해 알게 되는 것처럼 세비아로 이주하여 적어도 책이 끝나는 시점까지는 살고 있다. 위키피디아 정보에는 이이의 세번째 책까지만 언급되어 있다. <손을 찬양하다>는 네번째 책으로 2024년 2월에 스페인의 유수 문학상이라는 비블리오테카 브레베 상을 받았다고 책갈피에 쓰여 있다. 비블리오테카? 흠. 어감이, 비블리오 패혈증하고 비슷해서 어찌 좋은 기분은 아니지만, 책가게 알라딘이 하도 오랫동안 이 책이 나하고 맞을 것 같다고 추천을 거듭하는 바람에 희망도서 신청했는데, 도서관 자체에서 구입 예정이 있다고 반려되었던 책이다. 근데 시내 다른 도서관에 먼저 들어와 상호대차 신청해서 먼저 읽고 반납하려니 동네 도서관 신간코너에 같은 책이 꽂혀 있었다.


헤수스 카라스코


  독후감 본문을 쓰기 전에 미리 밝힐 것이 있다. 이 작품은 주인공이 2010년 경부터 거의 10년간 버려진 집을 그의 처남 후안루와 함께 수리, 보수하면서 일종의 별장 겸 셸터 비슷하게 사용한 기록이라는 점. 화자 ‘나’의 이름을 밝히지 않지만 누구나 헤수스 카라스코 본인이라는 것을 알아챌 수 있고, 아내 아나이스, 두 딸 마리와, 알투디투에서 베르타로 개명하는 둘째 딸의 이름 모두 가명이라. 아내와 아이들은 카라스코가 쓰는 소설 <손을 찬양하다>에 나오는 것은 동의했지만 진짜 이름을 밝히는 건 반대하여 스스로 이름을 지었다. 손위 처남 후안루 역시 가명일 것이 틀림없다. 뿐만 아니라 출연진, 출연하지는 않지만 이러저러한 이유로 이름을 밝혀야 하는 배역 모두 가명일 수밖에 없다. 화자는 초두에 밝힌다. 자기 기억에 의하여 쓴 작품이기는 하나, 기억은 언제나 왜곡되어 변형되는 것이라서 50퍼센트 정도만 사실일 것이고 나머지 반은 사실 부근에 있거나 자기가 잘못 들은 내용일 수 있다는 거. 기억과 기억 사이의 공백은 스토리에 적당하게 자신이 창작해 넣었다는 것도 고백했다.

  소설 초입에 쓰인 여기까지 내용을 읽자마자 책을 탁, 덮었어야 마땅했는데, 이틀씩이나 소비해가며 꾸역꾸역 다 읽은 게 아까운 생각이 밀려든다.

  작가는 무지하게 낡은 집, 거의 10년 이상 동안 아무도 살지 않아 폐허가 되다시피 한 집을 처남 후안루와 자신, 그리고 자신의 아내와 아이들, 감당하기 벅찬 수선이나 공사를 해야 할 경우에는 수선공, 베관공, 전기공 등 업자를 고용해 직접 자기들 손으로 살기 편하지는 않지만 어쨌거나 그나마 불편하지는 않게 살 수 있게 만들었다는 데 자존감, 만족감, 자랑하고 싶은 마음을 드러낸다.

  직접 자기 손으로 못을 펴고 나무 판자 위에 올려놓은 상태에서 망치, 아마도 자신의 할아버지 때부터 써온 망치를 두드려 나무와 나무, 나무와 벽을 고정시키는 일을 한다. 크고 무거운 용접기와 전압, 볼트가 맞지 않아서 할 수 없이 용접기만큼 무거운 변압기까지 가져와야 하는 불편 속에서도 생전 처음 해보는 용접으로 철판에 구멍을 숭숭 내기는 하지만 하여간 햇빛 가리개 같은 것을 만들기도 한다. 돌보는 이 없어 굵어지기만 하고 열매를 매달지 않는 포도나무 가지를 직접 쳐준 다음 해부터는 많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포도나무 아래에 테이블을 가져와 책도 읽고, 노트북을 올려 자판 두드리는 일, 작업도 할 수 있고, 아이들한테 책을 읽어줄 수도 있고, 음식도 만들 수 있게 했다.

  허벅지까지 빽빽하던 잡초도 모두 손과 삽, 호미 같은 것을 사용하여 다 제거한 후에 목적상 필요한 화초를 심어 그럴듯하지는 않지만 보기 괜찮은 정원 비슷한 것을 만들어 딸들에게 라틴어 학명을 가르쳐주고 학명을 외웠으면 하는 바람도 가져보지만 그런 일은 아주 가끔만 일어나는 일이고, 기억하는 시간도 극히 짧은 것 같다.

  이렇게 지금은 글을 써서 먹고 사는 전업 작가가 되었어도 땅과 가축과 집이라는 흙, 나무, 철제, 화학물질로 이루어진 가설체를 직접 손을 사용하여 계속 인간이 살 수 있는 안식처, 쉼터, 그것도 아니라면 자연의 공습을 막아낼 수 있는 피난처 정도로는 만들어가는 일, 그걸 찬양하는 이야기이다.


  2010년에 화자의 아내 아나이스의 오빠 후안루는 부동산개발업을 하는 친구 이그나시오와 함께 말라가 해변 앞바다에서 세비야까지 항해를 하고 있던 중이었다. 파도가 거칠어져 요트 주인 이그나시오가 항해 중단을 선언하고 인근 정박지로 배를 끌고 가 묶었던 모양. 거기서 차를 빌어 세비야로 가려 했으나 시간이 너무 늦어, 오래 전에 투자목적으로 매입해둔 집이 있으니 불편하나마 그곳에서 하루 밤을 지새자고 제안을 했다. 그래서 깜깜한 밤에 처음 도착한 곳. 오래된 집과 인접한 36헥타아르 넓이의 초지. 이그나시오가 공격적 투자를 감행해 휴가용 아파트와 초지 안에 고급 방갈로를 몇 채 지으려 했다가, 두 해 전인 2008년에 미국에서 리먼브러더스 사태가 터져 계획을 무기 연기해 방치해둘 수밖에 없었다고. 후안루는 프로젝트가 중단된 동안만 자신이 집을 마음대로 사용하게 해달라고 부탁했고, 집이란 것이 사람이 살지 않으면 빠르게 폭삭 무너지는 것이라 이그나시오도 흔쾌하게 요구를 받아들였다.

  그리하여 ‘우리’ 즉 화자와 아내 아나이스와, 마리와 처음엔 알투디투였다가 베르타가 될 두 딸도 꽤 오랜 세월 주말마다 부모를 따라 넓은 초지와 낡은 집에서 마치 시골 소녀처럼 건강하게 자랄 수 있었다. 그리고 화자는 곧바로 책을 한 권 구상한다. 주제는 “손으로 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이야기하는 책.”


  집이 있으면, 아무리 외딴 집이라 하더라도 이웃이 생긴다. 이 집이 길의 제일 끝까지 가야 바라보이는 막다른 집이고 곧바로 초지와 산으로 연결되는 외진 곳이지만 딱 이들끼리만 살 수는 없는 법. 첫 날에 한 남자가 고삐를 쥐고 노새 한 마리를 끌고 지나간다. 별명이 우스바르나라고 하는데, 머리부터 목까지 죽 이어진 주름진 큰 상처가 흉하게 아문 모습 때문에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이 쓴 <보물선>에 출연하는 선장 빌리 본즈를 닮아 본즈라고 불릴 예정이다. 어딘지 모르게 매혹적인 본즈는 주로 말과 나귀 같은 큰 동물 전문으로 코르크 나무의 껍질 벗기는 일을 하다 전기톱 사고로 경정맥이 절단된 큰 사고를 당했음에도 본즈의 아버지가 끝까지 훌륭하게 지혈을 해주어 목숨을 건진 사나이이다. 이이는 십년 후, 낡은 집이 결국 부동산 업자에 의하여 개발될 때까지 이 가족들과 긴 인연을 이어간다.

  또 옆집에는 할머니 라파엘라, 할아버지 마누엘 부부가 살면서 온화하고 정 많고, 부드럽지만 서로의 자유와 개인생활을 존중하는 태도를 유지하며 살아간다. 한 8년 정도 지나면 친절한 라파엘라 할머니는 세상을 뜰 예정이지만 화자의 가족들은 세월이 지나도 이 노부부와의 인연을 잊지 못할 듯. 이렇게 사는 이야기.


  작품의 주제가 엄연히 “손으로 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이야기하는 것”이지만, 독자 내가 해본 세상 살면서 제일 아름답고, 중요하고, 조심스러우며 행복했던 손으로 하는 일은, “자는 아이의 손톱을 깎아주는 일”이었다. 두번째가 웬수 같은 아내의 눈꺼풀을 손가락으로 더듬는 일이었으며, 세번째 역시 아내의 몸을 만지는 일이었다. 이 세가지는 나 혼자 살면서는 전혀 경험하지 못할, 제일 중요한 작은 공동체에서만 감각할 수 있는 작고, 작고, 작지만 가장 행복한 일이었으리.

  손과 도구와 널린 재료를 써서 가족의 피난처, 휴식처, 놀이터를 만들고, 이웃과 관계를 구축하며, 함께 살 다른 생물을 돌보는 것이 중요하지만, 어찌 손을 찬양하는 항목에 아이의 손톱을 잘라주고 사랑하는 사람의 몸을 만지는, 하다못해 샤워하는 배우자의 욕실에 들어가 등을 밀어주는 행위가 빠졌는지, 나는 많이 아쉬웠다. 물론 책을 일정분량 이상으로 뽑기 위하여 픽션이 아니라 에세이를 읽는 것처럼 수다한 수다를 읽어주는 것도 예상 외로 지루했으며, 심지어 자신이 알고 있는 모종의 지식, 경험을 이용해 경구를 만들려 애쓰는 모습도 보이는 것 같아서, 그것도 여기저기에 자주 보이는 것 같아, 내가 이 책을 꼭 끝까지 다 읽어야 할까? 숱하게 의심을 하며 마지막 페이지까지 읽었다. 그래도 결국 화자가 둘이나 되는 딸아이의 손톱을 깎은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다. 다들 하는 일이라서 그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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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6-09-18 1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 감사합니다... 보관함에서 바로 삭제... ㅋㅋㅋㅋㅋ

Falstaff 2026-09-18 15:50   좋아요 0 | URL
ㅋㅋㅋ 뭘요, 이런 거 갖고...
 
두려워요, 투우사여 ㅣ 암실문고
페드로 레메벨 지음, 임도울 옮김 / 을유문화사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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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2년 칠레 산티아고의 가난한 변두리에서 제빵사 페드로 마르도네스와 비올레타 레메벨 사이의 아들로 난 페드로 세군도 마드로네스 레메벨은, 칠레의 작가, 연대기 작가, 행위예술가 또는 간단히 연기자, LGBTQ+ 운동가로 알려져 있다고 위키피디아에 쓰여 있다. 1980년대 후반 그러니까 이이의 나이 30대 중후반의 한 시절, 아버지의 성인 마드로네스를 버리고 어머니의 성 레메벨을 자기 이름으로 선택했으니, 이것은 자신이 남성이기는 하되 성정체성 상 여성성을 좇는 성향을 따른 결정이었다고. 즉 몸은 남성이되 여성, 이 책의 주인공 ‘로카’처럼 ‘앞집 미친년’처럼 살기로 결심했다는 뜻이다.

  대개 자신이 동성애자인 것을 알게 되는 시기가 2차 성징이 발현되는 때라고 한다. 스페인어 판 위키피디아에는 나오지 않는데, 영어판 위키를 보면, 산티아고 산업대학 부설 교육기관에서 적성하고 무지하게 맞지 않는 금속가공을 일컫는 단조와 목공 가구를 배울 때 드러나기 시작한 성 정체성 때문에 작지 않은 고생을 했을 것 같다. 기능을 포기하고 정규 고등학교로 옮겨 하여튼 고교 졸업장은 땄다.

  이후 1970년에 칠레대학교 부설 교육학연구소에 입학해 조형예술을 공부하고 78년에 졸업, 79년부터 산티아고 외곽 두 개의 고등학교 미술 교사로 4년 동안 지나다가, 1980년대 초반 가톨릭 국가의 교육자들이 남자 동성애 가운데 충실한 바텀이었던 레메벨의 외모를 트집잡아 두 학교 모두에서 해고당하고 다시는 교육계 쪽을 향해서는 오줌도 누지 않았다. 그리고는 문학 워크숍 등 예술 작업에 몰두하기 시작한다. 이름도 레메벨로 바꾸고. 울고 싶은데 학교가 대신 따귀 한 대 때려준 거겠지.

  이때부터 레메벨은 본격적으로 문화 사업에 뛰어든다. 글도 쓰고, 공연도 하고, 글과 공연을 위한 집단에도 참여하며, 짙은 화장과 여장을 하고 다닌 것처럼 보인다. 그랬다는 게 아니라 내 추측이다. 믿지는 마시라. 이이가 지지하는 좌파 집단 속에서도 “좌파 정치권 내 동성애를 혐오, 비판하는 세력”을 향한 선언문, “Manifest, I Speak for My Difference”를 이야기했다고 칠레판 위키에 나온다.

  이이가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던 때가 1980년대 중반. 당시는 아우구스토 피노체트의 독재정치가 말기를 향해 가던 시기로 레메벨 역시 자신의 정치성향을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그는 확실히 공산주의자에 가깝지만, 지금은 모르겠으나 당시 분위기에서는 성소수자를 반기지 않았던지, 공산당에 가입은 하지 않은, 이른바 정치적 프리랜서. 이러저러한 여러 활동을 했음에도 이이의 첫 소설 작품이 나온 시점이, 이미 피노체트가 대통령에서 물러나고 10년이 지나버린 2001년에 출간한 <두려워요, 투우사여>이다. 1986년 9월에 있었던 피오체트 암살 미수 사건을 앞뒤로 40대 여장 게이와 20대 남성 대학생 사이의 연애 혹은 사랑, 아니면 오해. 즉 40대 게이 ‘앞집 미친년’ 로카는 틀림없이 스무 살 잘 생긴 남자 대학생 카를로스를 사랑해서 무엇이든지 그가 원하기만 하면 할 수 있지만, 카를로스가 정말로 로카를 사랑했는지, 그저 이용만 하려다가 인정에 끌려 (사랑은 아니지만 그것과 가까운)좋은 감정까지 갔던 것인지에 관한 이야기다.


  무대는 산티아고의 보통 시민이 모여 사는 살림집, 1986년 봄. 남반구 칠레에서 봄이라고 함은 8월 말부터 9월을 건너 10월까지. 작품에서 콕 짚으면 9월초이다. 작중 주인공, 별호를 “앞집 미친년”이라 하는 마흔 언저리 늙은 게이 로카는 이 건물의 3층과 비둘기집 같은 다락방에 산다. 당연히 혼자 살기에 넉넉한 3층을 깨끗하게 단장하고 살며, 다락방에는 빨래를 널 수 있는 난간 하나만 덜렁 달려 있다. 며칠 후부터 이 다락방이 이야기의 시작이 될 줄은 처음엔 전혀 몰랐다.

  우리의 늙은 게이 로카. 아버지는 로카더러, 물론 진짜 이름은 로카가 아니었지만, 하여튼 엄마가 아버지를 벌주려고 남기고 간 게이 골칫덩이라고 했다. 여차하여 마음에 조금만 안 들어도 ‘사내답게’ 키운다는 명목으로 두드려 팼고, 다른 아이들과 억지로 싸움을 붙였다. 학교에서도 로카한테 신경정신과 적으로 상담을 받아야 한다며 아버지더러 좀 오라고 했지만, 그는 콧방퀴만 뀔 뿐 꿈쩍도 하지 않았다. 군대만 가면 다 해결될 일이라고 하면서. 말로만 그런 게 아니라 정말로 입대절차를 밟았다. 그래서 군대에 갔느냐고? 아니. 생각만 해도 끔찍한데 거길 어떻게 가. 그냥 집에서 뛰쳐나가 다시는 돌아가지 않았다.

  이후 산티아고로 흘러 들어왔다. 수도에서의 삶은 여느 다른 나라의 큰 도시에서 사는 외톨이 게이들의 것과 다르지 않아 주로 몸을 팔아 끼니와 잠자리를 해결했는데, 정말로 운이 좋아 당시 벌써 나이가 많아 뒷방을 차지하고 앉은 흑인 게이 라나의 눈에 띄어 같은 집에 살았다. 여기서 라나한테 손수건, 식탁보, 침대보, 슬립, 리본 등에 자수를 넣은 법을 배우기 시작해 실력이 일취월장, 라나의 비싼 손님이 저절로 로카한테 주문을 넣게 되기에 이른다. 둘의 사이 역시 서서히 틀어지기 시작했고, 드디어 사달이 나 폭발했으며, 얻어 터지고 걷어 채이고, 발로 밟히는 폭행을 당한 로카는 독립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이런 사건 하나로 엄마나 다름없는 라나와 완전히 척이 지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교통을 하면서도 예전 같은 사이로 회복하지는 못했다. 지금 로카는 막강한 군부 실력자의 아내로부터 식탁보, 침대보 같이 비싸고, 화려한 자수를 주문 받아 적어도 전혀 팍팍하지 않은 생활을 하고 있다. 이제 로카에게 남은 건 추억들. 지나간 연인들과, 나이트클럽 무대에서 하던 드래퀸 쇼, 노랗고 커다란 모자, 그리고 고양이 눈 같은 선글래스.


  전문 자수 디자이너. 앞집 미친년 로카의 직업이다. 대통령궁하고는 거래하지 않지만 대통령을 직접 초대하여 자기 집에서 파티를 열 수 있는 장군의 아내들이 수공 요금을 한 푼도 깎지 않고 비싼 가격으로 주문을 하는 침모. 침모針母? 아무리 보수적인 칠레공화국이라 해도1980년대에 침모? 말이 그렇다는 거다. 장군의 아내들은 남편의 직급보다 아래로 보이는 사람들은 인간 취급을 안 하는 버릇이 있었다. 지금은 안 그러리라고 믿지만. 그래서 비록 많은 돈을 받아 마음은 넉넉하지만 식탁보나 침대보를 납품하러 갈 때는 정문으로 가지 못하고 부엌문으로 출입을 해야 했으며, 미리 시간 약속을 하는 건 생각도 하지 못했는데, 만일 납품하러 간 시간에 손님이 와 있으면 몇 시간이 되든지 그 손님 갈 때까지는 하는 일 없어 부엌에서 말라빠진 빵 쪼가리를 얻어 씹으며 멍때려야 한다. 그러니 침모지 뭐.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하는 것도 그런데, 하물며 여장 게이라면 그게 정말 사람으로 보이긴 했겠어?

  사람은 누구나 외롭지. 장군의 아내도 알고 보면 외로울 거고, 현직 내부무장관도 외로울 거야. 10대 초중반에 집에서 뛰쳐나와 하늘 아래 찾을 피붙이 하나 없는 여장 게이는 이 중에서도 제일 외로운 사람들 가운데 한 명일 수도 있을 듯.  그런데 하필이면 시절도 잘 못 만나, 86년 봄, 피노체트가 아옌데를 사살하고 사실상 권력을 잡은 1973년 9월의 쿠데타가 있는지 어언 13년. 독재정권에 반대하는 세력들은 칠레의 지리적 상황, 안데스 산맥을 넘기만 하면 언제든지 망명할 수 있는 길고 긴 국경선을 지닌 나라답게, 벌써 학생운동은 물론이고 피노체트 암살과 내전 발발 등 폭력 행위를 위하여 정규군만큼은 아니지만 무장도 갖추기에 이르렀다. 도시는 날마다 시위와, 삐라와, 방화와 정전, 화염병, 최루탄, 물대포, 기타 등등 1980년대에 우리가 경험했던 모든 것으로 더할 나위없이 흉흉했다.

  이런 정치상황에 전혀 관계없이 지나간 옛노래를 즐기는, 사실상 무명씨들. 이 가운데 최고의 무명씨들 가운데 게이, 이중에도 짙게 화장하고 드레스와 하이힐을 하고 다니는 여장 게이가 있었다. 앞집 미친년 로카도 마찬가지. 하루 종일 식탁보에 화려한 수를 놓다가 해가 저물기 시작해 눈이 침침해지면 즐거이 동네 앞에 있는 카페에 가서 지방 토속주나 가벼운 칵테일 같은 걸 즐겼겠지. 늘 그렇듯이 이미 익숙한 바텐더와 동료들. 원래 앞집 미친년을 사람 취급도 하지 않았지만 이제 오랜 세월동안 그래도 정이 생겨 더 없이 친근해진 단골 사내들. 아무리 남자에 환장한 여장 게이일지언정, 이들의 몸을 탐해본 적 없는 로카. 그러니 더 친해질 여유가 있었을 터.

  하지만 두 달 전쯤 유독 눈에 들어오는 남자가 있었다. 앳된 얼굴을 하고 있는 미남자. 카를로스. 로카와 카를로스는 급격하게 친해진다. 물론 카를로스는 안다. 로카가 게이임을. 그래도 로카에게 착하고 다정하고 친절하다. 그리하여 그녀 로카는 사랑에 빠져 버렸고, 사랑의 포로가 되었고, 사랑의 꿈을 꾸기 시작했다. 카를로스가 자신을 사랑하는지 아닌지는 다음으로 하고.

  이후부터 카를로스는 로카의 다락방에 자기 짐, 종이 상자. 판매금지 서적을 말한다는 정도는 로카도 알아듣는 금서들, 순문학 작품이지만 가지고 있다가 걸리면 골치 아픈 책들을 담은 박스를 몇 개 가져다 두는데 동의한다. 로카는 상자 안에 무엇이, 어떤 책이 들었는지 알고 싶지 않다. 때로는 모르는 것이 좋을 때가 많다는 것을 이해할 나이라서. 그런데 박스가 나날이 늘어나, 어떻게 보관할까 궁리하다가, 침대 머리맡에 놓고 보를 씌워 협탁으로 사용하기도 하고, 박스와 박스 위에 널빤지를 대 선반으로 쓰기도 한다. 앞집 미친년 로카가 살림하나는 끝내준다. 그런가보다 했더니, 이젠 통행금지 시간 넘어 학교 친구라는 젊은이들이 우그르르 다락방에 몰려 들어가 밤새도록 공부라는 것도 한다. 로카는 아예 누가 왔는지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보관을 해달라고 가져온 것이 무섭게 생긴 원통형 금속 파이프. 굉장히 가치가 있는 수기 원고 두루마리란다. 뭐 그런가보지.


  드디어 다가온 1986년 9월 7일.

  피노체트가 휴가지에서 어떤 코스를 택해 산티아고로 진입할 계획인지 미리 알아낸 마누엘 로드리게스 애국전선의 도시 게릴라들은 좁은 도로를 막고 대통령 피노체트와 호송 차량들을 향해 총과 포격을 가한다. 선도차는 포탄을 맞아 길 아래로 굴러 떨어졌고, 피노체트가 탄 메르세데스는 노련한 운전수의 기술 덕에 좁은 도로에서 빠른 속도로 후진하다가 놀라운 솜씨로 360도 회전, 오던 길로 다시 돌아가 피노체트의 몸에 기스 하나 생기지 않게 만든다. 비록 바지 속에 똥을 싸질렀을지언정.

  이제 사태는 심각해진다. 카를로스가 애초에 그의 본명이 아니었다는 건 알고 있던 앞집 미친년 로카는, 뭔가가 들어 있던 종이박스를 9월 7일이 되기 며칠 전에 모두 가져 나갔으며, 금속제 원통도 마찬가지였다는 것도 전부 자기한테는 매우 위험해지리라, 짐작하고 있었다. 그런데 뭐. 나는 그게 뭔지도 몰랐는데.

  정말 그럴까? 그냥 카를로스를 사랑해 그가 안전하기만 하면 나는 그대로 앞집 미친년으로 나머지 인생을 조용하게 살 수 있을까?

  이 이야기에 관해서는 여기까지만 하자. 곧바로 결말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나는 이 책을 아주 재미있고, 흥미롭게 읽었다. 1990년에 다가올 피노체트의 하야와 반정부 민주화 운동의 과정 때문이 아니라, 앞집 미친년 로카의 대사. 쉬지 않고 흘러나오는 엽기발랄하면서, 쓸쓸하고, 체념적이면서도 희망도 얼핏 보이고, 무엇보다 한 남자의 사랑을 받고 싶어하고, 한 남자를 사랑하는 눈물겨운 마음 저림이 독자의 애간장을 태우기 때문이었다. 이 책은 주제의 무거움에도 불구하고 어엿하게 심리 소설이며, 상실을 극복하려는 늙은 여장 게이의 독특한 희생에 대한 송가다.

  잘 읽었다. 책 읽는 재미에 홀딱 빠지는 기쁨을 가질 수 있었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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