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현관
요코야마 히데오 지음, 최고은 옮김 / 검은숲 / 2020년 10월
평점 :
절판


.

  요코야마 히데오는 1957년에 도쿄에서 출생한 미스터리 작가이자 만화 작가라고 위키피디아는 소개한다. 만화라고? 소설가 치고는 이색 직업을 가지고 있군, 싶어서 검색해보니, 만화를 그리는 화백이 아니라 만화의 원작 대본을 책임지는 사람을 가리키는 거란다. 도쿄에 있는 국제상업대학, 현 도쿄국제대학 상학부를 졸업하고 군마현에 있는 지방신문의 기자로 12년 동안 있다가 본격적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데뷔작은 <루팡의 행방>. 제목으로 보아 청소년을 위한 가벼운 미스터리 물이 아닐까 싶다(믿지 마시라, 추측한 거다).

  내가 읽은 책 <빛의 현관>에서는 행방불명 사건이 벌어지고, 그걸 형사나 탐정이 수사에 나서서 갖은 추리와 도주, 추격 끝에 체포하는 전형적인 미스터리 작품은 아니고, 일본의 거품경제가 붕괴 당할 때 가족의 해체를 경험한 건축사가 자신의 가족과 직장, 건축사로서 인생 최고의 작품인 집의 소유주, 일본에 망명했던 독일인 건축가 등등을 등장시킨, 일종의 추리극이기는 한데, 어떻게 말해야 할지 조금 망설여지지만, 잘 차려진 오첩반상 비슷한 대중소설이라고 할까 싶다.

  그러니까, 추리소설이기는 하지만 추리소설 쪽의 장르문학이라고 주장하기보다, 상당한 부분을 순문학 쪽으로 기울고 있어서 장르의 경계 없이 ‘그냥 소설’로 생각하고 읽으면 딱 좋겠다. 어제 읽은 정영문 식으로 말하자면 “재래식 소설.” (재래식 소설, 진짜 웃겼다.)

  근데, 적어도 소설의 핵심 사건이 되는 “실종 사건”이라면, ①겁나게 부잣집, 적어도 재벌급 가족의 일원, ②한 국가의 운명을 좌우하는 최첨단 (무기, AI, 식량, 에너지) 기술을 가진 과학자, ③만 명 가운데 한 명 있을까 말까 한 아름다운 외모의 젊은 여자나 남자, 이 정도가 아니라면 적어도 ④조직폭력단의 두목이거나 두목의 애인 혹은 딸 정도는 돼야 어울릴 터. 하지만 이 책에서는 아니다. 어쩌면 찌질할 수도 있는 수입가구전문 판매점의 주인도 아니고 지배인 급의 키 작고 통통한 남자. 거기서도 해고당하고, 이혼까지 당해서 이제 자기도 ‘인터넷 수입상품전문점’을 차리고 싶어하는 남자. 가구제작 장인의 아들이면서, 가구 제작에는 별로 관심이 없어 가업을 잇지도 못한 자. 어째 좀 후져 보이지? 납치는 당했지만, 이런 외모와 재력, 학벌, 지능을 감안해보면 당연히 주인공은 아니다. 참 세상 야박하다. 소설도 그렇다.


  주인공을 소개합니다.

  아오세 미노루. 지상 100m 댐 최상부에 붙어 몸을 구부리고 콘크리트 패널을 짜맞추는 작업에 관한 한 업계에서 알아주는 일인자의 2녀1남 가운데 막내. 댐 최상부에서 하는 작업이라 일이 끝나면 곧바로 다음 댐 건설현장으로 가족 모두 이사해 새로운 댐의 꼭대기에 매달려야 해서, 가족들은 댐 노동자들이 사용하는 사택에서 몇 년씩, 길어봐야 1~2년 살다가 다른 곳으로 또다시 이사를 했다. 이러니 두 누나들과 마찬가지로 아오세도 초등학교와 중학교 다니는 동안에는 거의 언제나 교실에서 따돌림을 당했는데, 비록 사는 곳과 환경이 열악해도 작업의 위험도를 감안해 아버지가 받는 보수가 반 아이들 부모가 벌 수 있는 현금보다 훨씬 많았던 것도 따돌림의 원인 가운데 하나였겠지? 어린 아이들도 다 마찬가지다. 아오세는 그래서 친구 없이 사는 법에 어린 시절부터 통달할 수 있었고, 대신 산새를 비롯한 여러 새들의 우는 소리를 구별할 줄도 알 정도로 새와 친했다. 새와 관련한 에피소드도 나오지만 그런 거 다 소개하자면 내가 소설 한 편을 써야 할 판이다. 그냥 넘어간다.

  아오세는 공업고등학교 건축과를 다녔다. 아버지는 건축은 말고 자기 일을 이어 돈 잘 버는 콘크리트 패널 전문가가 되었으면 하고 바랐지만 세상에 자식 이기는 부모가 없는 법이라서 대학 진학을 위해 결혼해 도시로 나간 누나 집에 머물며 공부를 하는 동안 아버지가 사고로 세상을 떴다. 그래도 건축과에 입학해 다니면서 유명한 건축사무소인 아카사카 건축사무소에서 인턴 생활을 하다가, 떡잎을 알아본 아카사카 씨가 집중 교육을 시켜, 굳이 비싼 돈 주고 졸업까지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해 2학년까지 다니다가 관뒀다. 이때 함께 건축과에서 공부하던 친구가 오카지마 아키히코와 노세 다쿠미. 훗날 오카지마는 아오세의 은인이라면 은인이 되고, 노세는 연애부터 건축 실력까지, 그러니까 공적, 사적 양 방향으로 몽땅 아오세한테 판판이 깨지지만 사회적으로는 무지하게 성공하는 건축가가 된다.


  아오세는 키 크고, 늘씬하고,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유카리와 결혼한다. 이 짝짓기 경쟁에서 아오세가 꺾은 라이벌이 부잣집 아들이자, 대학 건축과 동기동창이자, 아카사카 건축사무소에서 아오세의 경쟁 부서인 공건물 시공팀에서 일하던 노세 다쿠미. 연애와 결혼을 둔 1차 승부에서는 아오세가 간신히 이겼다. 이때 산새의 울음소리만 가지고 어떤 새인지 아는 아오세의 재주가 크게 가산점을 받았다. 아카사카 건축사무소의 2차 승부에선 노세의 완전한 승리. 때는 일본의 버블 붕괴시기. 산업 전반에 걸친 파국으로 아오세가 일하던 사적 건축은 거의 완전히 거덜이 난 반면, 공적 건축은 사회 인프라 유지를 위한 최소의 유지가 필요했던 것이 노세가 생존할 수 있었던 환경을 만들어 주었다.

  아오세는 정리해고를 당하기 전에 그렇게 될 것 같아서 자진해 먼저 사직서를 던졌고, 이를 알게 된 아내 유카리는 마음 속으로 대단한 불만이 싹텄지만 굳이 입 밖에 내지 않았다. 결혼 후 버블 경제 시기에 아오세 부부는 조금 무리를 해서 도쿄 중심가에 괜찮은 맨션을 구입했는데, 아오세가 사직을 한 후에 가정을 위한 고정비만큼도 수입이 없음에도, 다른 해고자들처럼 아무 일이라도 해야 하건만 아오세는 그래도 건축 엔지니어 가오 문제가 있어서 그저 백수로 남아 있었던 것이 부부 사이에 돌이킬 수 없는 절벽을 만들었다. 그리하여 결국 이혼에 이르렀고, 도쿄의 맨션에는 아내 유카리와 딸 히나코가 살고, 아오세는 허랑방탕한 알코올 의존자로 점점 빠져들 즈음, 혜성같이 나타나 자기 건축 사무소에서 함께 일해보자고 제안해 수렁에서 건져준 사람이 또다른 건축과 동기동창 오카지마 아키히코다.


  아오세 미노루. 오카지마와 노세가 보기에도 자기들보다 능력이 월등한 천생 건축사. 하지만 아오세는 한 번 크게 인생을 실패해보았으며 대학을 졸업하지 않아 어디가서 말빨이 좀 달린다. 이게 성격상 결함으로 조금 나타나는 듯하다. 사회생활에서만 그랬으면 좀 나은데, 아내 유카리도 오카지마와 노세하고 업계에서 공적으로 친밀한 전문 인테리어 디자이너. 아오세가 빌빌거린다고 한 마디 하면, 아내니까 당연히 그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듣기 싫기는 하겠지, 그래도 충동적으로 극도의 열을 받아 크게 소리지르며 다투었던 모양이다. 그토록 사랑하면서도.

  만일 이 가족이 살 집을 짓는다면, 아오세는 아버지의 콘크리트 작업을 보며 자라서 그랬는지 자기 건축 인생을 시시각각 태양의 움직임에 따라 외벽의 포장이 바뀌는 서양식 콘크리트 집을 짓는 걸 주요 테마로 생각한 반면, 유카리는 중학생 때까지 살았던 어린 시절의 집, 오랜 농가 안채에 일본 전통가옥을 증축한 따듯한 목재 집에서 살고 싶어했다. 이젠 콘크리트 집이나 목재 집이나 다 끝난 일이지만.

  이들이 이혼하고 벌써 8년. 딸 히나코가 유치원 다닐 때 아오세가 도쿄의 맨션을 떠나 지금은 도쿄도에서 멀지 않은 사이타마현의 도코로자와의 원룸에 살고 있는데, 한 달에 한 번 도쿄의 카페에서 딸을 만나 이야기하고, 밥과 차도 마실 뿐이다. 아이가 이젠 자기 삶을 알기 시작하는 열세 살, 사춘기를 시작하고 있었다. 작품은 비가 오는 3월 아오세가 히나코를 만나러 도쿄로 가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아오세는 작년 11월에 시나노오이와케에다 집을 한 채 지었다.

  금슬이 좋으면 생긴 것도 닮는다고, 생김새도 비슷한 요시노 부부가 오카지마 건축사무소에 찾아와 아오세가 지은 집을 본 적이 있다고, 자기들이 살 집을 꼭 직접 지어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다. 요구조건은 간단했다. 시나오오이와케의 땅 80평. 건축비 최대 3천만엔. 그리고:

  “아오세 씨가 살고 싶은 집을 지어주세요.”

  그래서 아오세가 지었다. 도심 한복판이라면 터부시되는 북향 창을 원하는 만큼 낼 수 있는 사방이 탁 트인 땅이라, 노스 라이트North Light를 채광의 구역으로 하고 다른 빛은 보조로 돌리는 은은한 빛의 전당을 만든 것. 침실의 북으로 난 창문 커튼을 젖히면 들어오는 짜낸 베일 같은 노스 라이트. 그 너머 보이는 아사마 산의 장엄한 모습. 노스 라이트. 이 공간의 진정한 주인은 노스 라이트, 북쪽에서 스미는 빛이었다. 창문은 이 집의 “빛의 현관”으로써 존재하고 있었다.

  아오세가 언젠가 만들고 싶었던 빛을 환대하고, 빛에게 환대받는 집은, 놀랍게도 목재 건물이었다.

  그리고 몇 달 후, 집 주인 요시노 부부는 행방불명되고 만다.


.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coolcat329 2026-10-16 08: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요코야마 히데오의 소설을 읽으셨군요! 저는 십여 년 전에 「64」를 읽었는데 다 읽고 나서 든 생각이 폴스타프님과 같았어요. 이건 단순 추리소설이 아니다! 라구요. ㅎㅎ 경찰 내부에서 일어나는 갈등과 배신을 64만큼 자세하게 보여준 소설이 또 있을까 싶어요. 『빛의 현관』도 평이 좋아서 읽고 싶었는데 또 그냥 흘려보냈네요. 저도 꼭 읽어 봐야 겠습니다~^^

Falstaff 2026-10-16 18:58   좋아요 1 | URL
냅! 이 책 재미있었습니다. ㅎㅎㅎ 64도 언젠가는 읽어봐야 하겠군요.
이 양반, 은근히 매력있는 듯. ㅋㅋㅋㅋ

yamoo 2026-10-16 10: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런 작가도 있었네요...이 소설 재밌으면 찾아서 읽겠습니다!
도통 감을 못잡겠어요..ㅎㅎ 별4개인데...일본 만화 작가라...

Falstaff 2026-10-16 18:59   좋아요 1 | URL
그냥 큰 기대 하지 마시고 읽으시면 만족하실 듯합니다.
요즘 별점은 믿지 마세요. 어디서나, 누구한테나 인플레가 넘실댑니다. 저도 용기가 없어서 그냥 파도에 편승하고 있고요. ㅜㅜ
 
강물에 떠내려가는 7인의 사무라이 ㅣ 입장들 2
정영문 지음 / 워크룸프레스 / 2018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정영문의 2018년 작품. 이이가 1996년에 장편소설 <겨우 존재하는 인간>으로 등단했으니 <…사무라이>를 출간했을 때는 벌써 22년의 짬이 쌓였을 때였다. 사실 내가 정영문의 소설을 읽고 이러니 저러니 할 계제가 안 되는 건 당신도 알고, 나도 알고, 정영문도 안다. 그리하여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은 주로 작가가 쓴 <…사무라이>에서 자기 입으로 한 말을 여기저기 조금씩 뽑아 소개할 뿐이란 점을 기억하시라.

  정영문이 문단 밥을 22년 동안 먹고 나니 문득 소설이 특정 서사, 즉 사람이라는 인격을 가진 등장인물의 행위에 관하여 이야기해야 하는가에 회의를 느낀 것 같다. 나 원 참, 기가 막히네. 지금 내가 인용하려는 부분이 책의 뒤표지에 딱 CTRL+V가 되어 있다. 그가 뭐라 했느냐 하면:


  “어쩌면 재래식 소설이라고 할 수 있는 소설은 언젠가 이후로 쓸 수 없게 되었는데 거기에는 여러가지 이유들이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그런 소설 속에 등장시킨 소설적 인물들은 나와는 상관없는 남들 같았고, 그 인물들에게 이래라저래라 하고 그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나와는 상관없는 남들의 일에 참견하는 것 같았는데, 나는 남들의 일에 참견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p.59)


  작가가 스스로 만든 등장인물의 행위에 끼어들지 않으려면 최선의 방법이 등장인물을 없애는 것이고, 등장인물을 없애면서 동시에 소설을 쓰려면, 작가가 할 수 있는 건 자기가 직접 경험하고, 보고, 먹고, 듣고, 비비적거린 실제 이야기, 물론 실제는 실제라 해도 적당한 과장이나 축소, 아니면 은근한 거짓말 정도야 허락이 되겠지만, 어쨌든 자기 이야기를 해야 할 터, 마침 정영문은 2010년 봄과 여름에 대산문화재단의 지원을 받아 샌프란시스코에 체류한 적이 있어서 이때의 기억을 바탕으로 <어떤 작위의 세계>로 쓴 경험을 오늘에 되살려, 이번 2017년에는 텍사스에 있는 미국인 친구 부부, 소설가 남편 D와 미술, 미술 가운데서도 특별히 조각으로 이름을 낸 N의, 댈러스에 있는 집에서 11월부터 얼마간 머물렀던 모양이다. 정영문은, 당연히 서울로 돌아와, 텍사스에서 초안 일부를 잡긴 했겠지만, 하여튼 서울에서 당시의 체험과 생각했던 것, 또는 생각했던 것을 메모한 내용을 바탕으로 이 소설을 썼다.


  이렇게 새로운 소설을 쓰긴 쓰는데, 이번 소설에서 정영문이:


  “유일하게 궁금한 것은 밑도 끝도 없는, 계속해서 이야기가 옆으로 새는, 말하는 것이 없는, 말하는 것과 말하지 않는 것이 차이가 없는, 결국에는 하나 마나 한 이런 이야기를 언제까지 얼마나 더 할 수 있나 보는 것뿐이었고, 이 글 역시 그것을 보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었다(그리고 당연하게도 그것의 즐거움을 아는 사람에게는 즐거움을 주지만 그것의 즐거움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즐거움을 주지 않는, 단어와 어구의 반복적인 사용을 얼마나 할 수 있나 보는 것이기도 했다.).”  (p.37)


  앞의 인용은 “재래식 소설”을 지양하게 된 내력을 말했다면, 이번 인용은 재래식이 아닌 소설을 어떻게 쓸 것인가를 설명하는 바, 밑도 끝도 없고, 만일 이야기가 있다면 그것도 계속 옆으로 새는 이야기, 하나 마나, 들으나 마나, 읽으나 마나 한 이야기이며, 그걸 묘사하는 것도 독자가 즐거움을 느끼기가 쉽지 않은 반복적인 어구를 계속 사용하자는 것인데, 이걸 조금만 뒤집어 생각하면 만일 독자가 반복적인 어구를 사용하는 것을 견딜 수 있거나, 그 지경을 넘어 독자가 반복적인 어구를 사용하는 것을 즐길 수 있기만 하다면, 이 짧은 분량의 말도 안 되는 소설을 즐길 수도 있고, 공감할 수도 있을 거라는 뜻이기도 하겠다.

  이 책을 안 읽어본 독자는, 그러면 모든 문장들, 처음부터 끝까지 소설을 채우는 문장들이 전부 반복하는 묘사로 가득할 것인가가 궁금할 수도 있을 터인데, 이 책을 읽어본 독자가 말해드리자면, 처음부터 끝까지 소설을 채우는 모든 묘사가 같거나 비슷하거나 완전히 반대되는 단어, 구절을 계속 반복적으로 채운다는 걸 미리 알려드릴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반복적인 묘사로 채우기만 했을 뿐, 작가가 염두에 둔 묘사의 기법, 염두에 두었지만 작가 정영문이 묘사의 기법을 구사하는 일에 있어서 성공을 했는지 아닌지, 독자는 작가가 구사한 기법을 이해하고 있는지 아닌지 양방향으로 소통이 가능하지 않아서, 작가는 독자가 이해했는지, 독자는 작가가 주장하는 바를 진짜로 써먹었는지 써먹지 못했는지 도무지 알아챌 방법이 없는 문제가 벌어지는 바, 작가가 자신이 써먹었다고 주장하는 묘사의 기법은, 자신이 2017년 11월부터 일정기간 머물렀던 미국 텍사스의:


  “이런저런 것들에 대한 근거 없는 가설을 세우다 마는 것으로, 의식의 흐름 기법과 의식의 마비 기법과 의식의 착란 기법이 뒤섞인 소설로 그것을 보면 지나가는 개도 웃고 갈 소설”  (p.21)


  이라고 주장하는데, 소설가 정영문, 이 사람이 정말 마음에 드는 것이, 자기가 쓴 소설이 개도 웃고 갈 소설이라고 솔직하게 고백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소설 <…사무라이>가 재래식 소설의 바운더리를 넘고자 했다면, 그러면 <…사무라이>에는 스토리가 전혀 없느냐, 하는 건 아니고, 있기는 있으되, 진짜 사건인 건 텍사스 대농장의 농장주라고 주장하지만 진짜 농장주인지 아니면 진짜 농장주라고 술김에 큰소리만 뻥뻥 치는 한 물 간 카우보이 나부랭이인지 헛갈리는 백인 남자를 술집에서 만난 일, 케네디 암살사건으로 악명 높은 도시가 된 댈러스의 한 거리에 늑대 동상을 세우기로 한 친구 부부 N과의 대화 내용, 텍사스에 있는 농장을 전부 둘러보려면 말을 타고 하루 종일 돌아다녀도 다 보지 못할 정도로 커서 트럭을 타고 다녀야 했다거나, 근데 그건 새발의 피고, 정말로 큰 텍사스의 농장에는 자가용 비행기를 보관하는 격납고는 물론이고 활주로까지 깔아 놓은 곳도 있다는 등의 것들이 진짜 사람들과 만나 이런저런 행동을 했던 이야기이고, 대부분의 이야기는 정영문의 머리 속에서 마음대로 생각한 것들에 관한 것으로, 어떤 것들이 있느냐 하면, 존 F 케네디를 암살한 오스왈드와, 존 F 케네디를 암살한 오스왈드를 암살한 잭 루비의 콜트 코브라 38구경 권총 같은 것들, 예컨대 텍사스의 명성을 가장 끔찍하게 만든 건 영화 <텍사스 전기톱 살인사건> 아니었겠느냐, 하는 거, 뭐 기타 등등 이런 거, 즉 위에서 정영문이 실토했듯이 진짜로 읽어보면 지나가던 개도 웃을 소설 거리들이라지만 그래도 그가 주장하는 것 가운데 절절하게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은 독일에서 관념철학을 공부한 정영문의 친구를 정영문이 관찰한 내용으로:


  “현대 철학자들 가운데는 말이 안 되는 말을 아주 난해하게 해 그것이 말이 안 된다는 것을 모르게 해 누가 더 말이 안 되는 말을 할 수 있는지 일종의 내기 같은 것을 하고 있는 철학자들이 있다고 했는데, 그 역시 말이 안 되는 말을 하는 데 남다른 데가 있었다.”  (p.34)


  는 것이었으니, 내가 평소에 주장한 바, “철학이라는 학문은 쉬운 얘기를 어떻게 하면 이해하기 어려운 말로 하느냐 하는 방법을 연구하는 학문”과 매우 비슷해, 깜짝 놀랄 수도 있어, 내가 짧은 메모를 하나 써서, 이렇게 붙인 바 있다. “개공감!”

  여태까지 두서없이 <…사무라이>에 관해 독후감입네, 써 보았지만, 이 책을 읽어보실 분은 이 영양가 없는 독후감에 조금의 관심을 두실 필요 없이 그냥 팍, 읽어버리고, 정영문이 주장한 바 대로, 밑도 끝도 없고, 계속 옆으로 새기만 하고, 하나 마나 한 이야기를 같은 묘사를 반복하는 의식의 흐름 또는 의식의 마비, 아니면 의식의 착란을 견딜 수 있는지 기꺼이 시험에 들 각오를 한 연후에 읽는 편이 좋을 수도 있는데, 만일 개도 웃고 갈 이야기가 독자의 취향에 맞기만 하면 그야말로 대박이라 아니할 수 없을 터이니, 제위께서는 주목하셔도 좋을 터.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마신자 - 끌려간 거인 ㅣ 묘보설림 21
샤오샹선 지음, 김지민 옮김 / 글항아리 / 2026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샤오샹선瀟湘神. 가명이다. 본명은 Luo Chuanqiao羅傳樵. 1982년생 타이완 소설가. 그리고 요괴 연구가. 놀랐지? 요괴. 내가 읽은 모든 소설 가운데 요괴가 제일 많이 등장하는 건 명나라 소설가 오승은이 쓴 <서유기>. 그 요괴 연구가, 맞다. 동우東吳대학 중문학과와 국립타이완대학 철학대학원 동양학부 석사과정에서 유교를 전공했단다. 인류학과 민속학에 관심이 지대해 타이완대학 원주민학 센터에서 근무하기도 했다. 책을 읽으며 나는 샤오샹선의 족族이 궁금했다. 타이완의 여러 원주민 족을 비롯해 오키나와의 북, 중, 남쪽의 구성 족들에도 통달한 거 같아서. 하지만 <마신자>의 핵심 주제가 이 족별 구분, 분리를 지양하고 더 큰 세상을 만들자는 거라서 오히려 궁금해했던 것이 쪽팔리는 순간을 맞았다. 뭐 다 그런 거지.


  책은 본문이 240페이지가 조금 넘는 분량인데, 그래도 만만하지 않다. 주제를 이야기하기 위하여 샤오샹선은 타이완의 작은 섬에 대한 내력과 그 섬에 내려오는 전설부터 시작해 타이완, 오키나와 등의 요괴, 그 사람들 말로 요마귀괴妖魔鬼傀를 뜻하는 마신자와 삿키의 과거 활약상 같은 것이 정신없이 출현한다. 샤오샹선이 요괴 연구가라잖아? 그러니 요마귀괴가 이야기의 중심을 잡는 것이 그리 어색하지 않다. 다만 문제가 독자인 내가 눈에 보이는 것만 믿는 유물론자라서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를 뜻하는 ‘ㅆㄴㄹ 소설’을 지극히 안 좋아하기 때문에 불행하게 됐다.

  그러니 간단하게 작은 섬, 옛적에 ‘투만’이라고 불린 곳에서 내려오는 전설을 알아보자.

  아주 태고적에 이 작은 섬에 해초와 어란(물고기의 알)로 뒤덮인 거대한 짚신이 떠내려왔다. 얼마나 크냐 하면, 마을에서 제일 발이 큰 남자의 발보다 여덟에서 아홉 배 정도나 더 컸으니, 진짜 몸은 얼마나 큰 거인이겠는가 싶었다. 마을 촌장이 회의를 소집해서 말하기를, 이제 거인이 우리 마을로 쳐들어오면 거덜이 날 터, 이 일을 어쩌면 좋으냔 말이냐, 했더니 총명한 사람이 있어서, 거인이라도 자기보다 더 큰 거인을 보면 틀림없이 무서워할 것이니, 우리가 그것보다 훨씬 더 큰 짚신을 만들어 바다로 돌려보냅시다.

  이렇게 거인이 쫓겨났다는 이야기. 이게 거인한테는 얼마나 슬프면서도 한스러운 일이었겠냐는 것인데 그거야 보지를 못했으니 알 턱이 있나?


  다음은 마신자. 처음에 ‘마신자’라고 해서 나는 술 같은 건강음료를 ‘마신 자’를 띄어쓰기를 제대로 하지 않은 건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앞에서 말했듯이 요마귀괴를 뜻하는 거였다. 귀괴는 귀괴이지만 타이완 섬에 사는 귀괴가 마신자이고, 오키나와에 터를 잡은 귀괴는 싯키. 즉 속지주의에 따라 타이완 귀괴가 마신자. 문제는 2차세계대전이 터지고 미군이 오키나와에 상륙해 괜히 멀쩡한 오키나와 사람들한테 자결을 강요한 일본군 때문에 아무것도 모르고 픽픽 죽어나간 섬 사람들 말고 그나마 많은 사람들이 타이완으로 배를 타고 피난을 와 있었던 것. 그러면, 타이완에 피난 온 사람들의 귀괴는 속인주의에 따라 싯키일까, 속지주의에 의하여 마신자일까?

  이게 만만한 이야기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본문에 들어가면, 시대는 21세기. 타이완에서 이륙해 일본으로 향하는 여객기가 지상 3만5천 피트, 즉 10킬로미터 상공을 비행하고 있었다. 기장 이름이 천신야오千鑫壵.

  신야오가 말한다. 비행하기 싫다고. 기가 막히는 부기장. 부기장의 이름은 알 거 없다. 나오지도 않는다. 하여간 부기장은 벙쪄서 지상 1만미터 상공에서 기장이 비행하기 싫으면 어쩌냐는 거다. 신야오가 얼버무리기를, 조종사 일을 더 하기 싫다는 뜻이었다고. 그러다 부기장이 화장실에 간 사이에, 천신야오가 갑자기 사라져버렸다. 상공 10km에서. 부기장은 화장실에 가서도 귀에 이어폰을 끼고 있어야 하는데, 기장이 사라지기 바로 직전에 했던 말이,

  “어? Appa, 어떻게 여기에 계셔요?”

  타이완어였다. 원주민의 말이라고 이해하면 되겠다. 그러니까 천신야오의 정체성은 타이완 산족山族. 중화인민공화국에 밀려 중국 땅에서 해협을 건너온 중화민국 한족한테 밀려 산으로 쫓겨간 원주민의 후예라서 산족이라 불린다.


  이제 족보가 복잡해진다.

  밀폐된 10km 상공의 조종실에서 실종된 기장 천신야오의 할머니 이름이 천황칭쯔. 이름이 칭쯔. 칭쯔의 엄마 이름이 나쓰코 오바. 오키나와 여성이다. 피난을 와 오빠 집에서 살다가 황씨 성을 가진 상인과 결혼해 딸 청쯔를 낳았다. 황청쯔가 천씨 성을 가진 남자하고 결혼해 천황칭쯔가 된 것. 그러니까 칭쯔는 반 오키나와 사람. 엄마와 마찬가지로 양 손등에 문어 먹물로 잔뜩 문신을 그려 넣었다. 오키나와 여인들의 징표라고 한다. 정확하게 오키나와 특정 족들의 징표.

  그런데 청쯔의 엄마 나쓰코 오바상이 사라졌다. 쥐도 새도 모르게. 틀림없이 마신자가 데려간 것이라고 말이 나왔다. 마신자가 데려가면 현장에서 1백이나 2백킬로미터 떨어진 곳, 흔히 산 속으로 뚝 떨어지는, 순간이동 비슷한 걸 하게 되는데, 마신자가 먹을 것 비슷한 것을 주어 생명이 끊어지지는 않는다고 한다. 이때 사라진 사람들은 돼지나 닭고기인줄 알았던 것이 사실은 진흙이거나 동물의 분변이라나? 뭐 귀괴의 장난 비슷한 것일 수도 있고 진짜 납치해 평행우주로 보낸 것일 수도 있다. 하여간 복잡한데 나쓰코 오바가 이렇게 사라졌다.

  세월은 흘러 이제 나쓰코 오바의 진증손, 청쯔의 손자 천신야오가 저 높은 비행체에서 또 사라져 버린 것. 엣다, 화끈하게 더 알려드린다. 3년 전에 천쯔 역시 사라져 버렸다. 그것도 집에서. 그러니까, 진증조할머니, 할머니, 그리고 손자가 사라졌거나 순간이동을 했거나, 지옥의 구렁텅이로 빠졌거나, 산속 요괴의 간식거리로 먹혔거나 하여간 그렇게 됐다.

  천신야오가 마지막으로 한 말, 부기장이 헤드셋으로 들은 말, “Appa, 어떻게 여기에 계세요?”에서 Appa는 타이완어로 ‘할머니’를 뜻한다. 그러니까 할머니가 갑자기 10km 상공의 밀폐된 비행기 조종실에 홀로 있던 손자 옆에 턱하니 나타나고, 즉각 비행기의 기장이 사라져 버린 것.


  그런데, 여태까지 말한 등장인물들 가운데 주인공은 없다.

  여객기 기장의 실종이 대단히 특별한 일이 아닐 수 없어서 타이완과 일본에서는 난리가 났다. 그리하여 각 매스컴마다 집중보도에 열을 냈는데, 이 가운데 신문사 한 곳에서 천신야오의 고향인 난팡샤오에 특별 취재 기자 한 명을 파견한다. 이이의 이름이 뤄쉐펀. 천신야오의 학교 동아리 2년 선배. 앞에서는 1년 선배였다가 뒤로 가면 2학번 위라고 하니까 뭐 대강 비슷한 또래라고 생각하면 된다.

  비슷한 나이라고 해서 딴 마음먹지 마시라. 최근에 만난 것도 10년 정도 됐다. 신야오는 약혼녀도 있다. 그래, 뤄쉐펀도 미혼 여성이다. 쉐펀이 난팡샤오에 와서 3년 전에 행방불명된 신야오의 할머니 댁을 탐방하고 나오는데, 물론 우여곡절이 있는 방문이었지만 내용은 건너뛰고, 딱 방문에 나오는 순간 마주치는 여성이 바로 신야오의 약혼녀 중유어. 이 두 여성이 신야오와 할머니 칭쯔, 그리고 진도를 더 나가면 진증조할머니 나쓰코 오바, 타이완어로 위청샤쯔의 실종까지 거론하면서 신야오의 행방불명의 실체를 논리적으로 따지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마신자>는 이제 추리소설 방면으로 달리기 시작하는데, 이 추리극을 주도하는 사람이 진짜 주인공 뤄쉐펀이다.

  그래서 결국 요괴 연구가가 쓴 소설이 잘 꾸민 추리소설로 해결이 되느냐고? 에이, 내가 그걸 어떻게 맨입으로 이야기하나? 나는 체질에 맞지 않아서 별로였지만 이런 엽기, 괴기, 요괴가 출몰하는 기묘한 이야기 좋아하는 분들은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듯. 아니더라도 타이완과 오키나와 근방의 근현대사에 관심있는 분한테는 강추할 수 있을 작품. 그래서 좀 길게 썼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암퇘지 ㅣ 블루 컬렉션
마리 다리외세크 지음, 정장진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10월
평점 :
품절


.

  프랑스 바욘에서 출생한 1969년생 작가. 바욘이 어디냐 하면, 스페인과 무지하게 붙어있는 대서양 인접 지역. 그곳의 농가 출신이다. 파리의 바칼로레아를 마친 후에 파리3대학, 파리7대학에서 문학을 공부했는데, 지금은 전설이 된 유대인 작가 조르주 페렉을 연구했다고 책의 앞날개에 쓰여 있다. 근데 이건 조금 과장. 7대학에서 박사학위 논문 주제가 “비극적 아이러니와 오토픽션”이었고, 이를 위한 작가들의 실례 가운데 한 명이 조르주 페렉이었다고 위키피디아 영문판에 나와 있다. 뭐 아무러면 어떤가, 우리는 <암퇘지>를 읽기만 하면 되지.

  <암퇘지>는 다리외세크가 스물일곱 살 때 발표한 작품으로 이이를 “단숨에 화제의 작가로 만든 이 작품은 55만 부 이상 팔렸고, 34개국 이상에서 번역되었다”고 책 앞날개에 밝혔다. 위키피디아 영문판은 “40개 언어로 1백만 부 이상” 팔렸다는데, 이것 역시 아무러면 어떤가, 우리는 <암퇘지>만 읽으면 되지.


  근데 문제는, 이 <암퇘지>를 마음 편하게 읽기가 쉽지 않다는 거.

  지금 독후감을 쓰려고 이이의 다른 작품을 검색해보니, 아이쿠, <가시내>가 있다. 이이가 바로 <가시내>를 쓴 작가구먼. 미리 알았으면 생각 좀 해볼 것을. 나는 읽어보지 않았는데, <가시내>가 나왔을 때 장안의 독자들이 말하기를, 지하철에서 읽기 곤란한 책, 그래서 읽으려면 책 껍데기를 하다못해 신문지로 싸서 읽어야 할 수준이라고 하는 조언을 받아들였던 거다. 10대 아이들, 특히 소녀들의 섹스에 관해 썼다고 해서, 내가 지금 나이가 몇 갠데 십대 아이들의 탐구생활에 관심을 둘쏘냐, 싶어 관뒀다. 그 책의 작가를 단번에 스타로 만들어준 책을 당시부터 15년의 세월이 더 흐른 후에 읽는다니, 내가 알았으면 정말 이 책을 읽었겠느냐고.

  책은 도발적이다. 변신metamorphosen은 변신이건만, 외판원 그레고리 잠자가 한 마리 딱정벌레 과의 곤충으로 변한다면 문학 역사상 기념비적인 부조리 소설이 되겠건만, 향수 판매 체인 회사의 판매원이 점점 돼지로 변하는 건 이건 부조리도 아니고, 차라리 영화 <엑스맨>에 나오는 무수한 돌연변이 가운데 불쾌/불량한 쪽의 한 명을 빙자한 무차별 은유 비슷하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고 도무지 정신을 잡도리할 방법이 없었다.

  여성 육체의 과잉과 과장, 임신과 임신중단, 여성성을 보여주는 페미니즘 작품으로 보였다가, 천만의 말씀, 뭘 주장하는지 모르겠는데 하여간 페미니즘 작품은 아니고, 끝까지 이름을 밝히지 않는 여성 화자 ‘나’의 육체적 과잉과 그로 말미암은 소멸을 그린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고, 하여튼 뭔가 이야기하려는 거 같기는 한데 끝내 모르겠다. 그렇다고 부조리 소설도 아니고 말이지.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펼쳐질 때 ‘나’는 실직상태였으나, ‘나’의 몸은 바야흐로 본격적으로 무르익기 시작했다니까 아마 20대 초반이었을 듯. ‘나’가 스스로 하는 말이, 모든 남자에게 기가 막히게 탄력적인 여인으로 취급받기 시작할 때였다고.

  이때 ‘나’가 인터뷰한 회사가 바로 향수 판매 체인회사. 입사 면접을 할 때부터 지배인의 한쪽 손은 ‘나’의 몸에, 다른 한 손은 이력서와 입사 계약서에 가 있었으며, 최종 합격을 했지만 최저임금 반을 받는 조건으로 한 파트타임 직원이었단다. 그래도 집의 월세와 치마 한두 벌을 사 입을 수 있어서 만족한 수준. 여기에 재고조사가 끝나면 화장품 장기 재고를 그냥 얻어갈 수 있었으니 그걸로 충분했다.

  하지만 ‘나’의 진짜 직업을 말해보자. 이때 ‘나’에게는 ‘드 발자크’는 아니지만 오노레라는 이름의 중학교 교사 애인이 생겨서, 오노레가 ‘나’에게 옷을 한 벌 사주었을 때, 옷 갈아입는 박스에서 처음으로 섹스를 했듯이, ‘나’의 직장인 향수 가게에도 향수를 뿌려보는 방이 있었는데, ‘나’의 진짜 업무는 이 방 안에서 고객들에게 마사지를 해주고, 향수도 뿌려주어 구매를 촉진하는 일이었다.

  근데 ‘나’의 몸이 점점 포동포동해지며 ‘나’의 육체에 손님들이 열광하기 시작했고, 이 가운데 특히 남자 손님들이 대거 밀려들어 여자 손님들은 오히려 질투에 휩싸였나 어쨌나 모르지만 점점 떨어져 나갔다. 남자 손님은 향수방에 들어와 마사지를 받고, 정신없이 향수 폭탄을 투하하면 거금이 들더라도 ‘나’가 권하는 향수를 다 구입했다나? 물론 맨입에 비싼 돈을 들여 향수를 사준 건 아니었다. 그들이 바란 건 특별 마사지. 대강 짐작하시겠지?

  이 손님들은 당연히 ‘나’의 몸 상태에 관해서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결과, ‘나’는 갈수록 몸이 더 불면서 점점 더 배가 고파지고, 배도 불룩해지는 것이, 아차차, 생리가 끊긴 지 좀 된 거다. 손님 가운데 아주 단골손님이 하나 있어 다행히 양심이 좀 있는 편이라 중절수술 비용을 몽땅 지불해주었다. 하지만 ‘나’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임신한 것도 아닌데 괜히 돈을 쓴 거 같다. 이런 과정이 몇 번 더 있었고, 결과는 아니나 다를까, 불임. 그런데 이것도 확실하지 않다. 원래 불임이었을 수도 있고, 수술 후에 불임이 되었을 수도 있다. 이런 거 함부로 써 놓으면 확실하게 욕을 먹을 수 있어서 유심히 읽어봤는데 마찬가지다. 다리외세크는 절대 정확하게 이야기하지 않는다. 하여간 불임이다.


  이후 ‘나’는 조금도 쉬지 않고 계속 살이 찌고, 유방도 두 가슴 위에 하나가 새로 생기고, 어어 하는 사이에 세 개가 더 생겨 모두 여섯 개의 유방과 열두 개의 젖꼭지를 달게 된다. 귀는 위로 뾰족하게 나오고, 코는 뭉툭하고 두툼해졌다. 근데 늘 돼지 상태로 있는 건 아니라서, 기분이나 몸의 상태가 이상한 단계가 되면 암퇘지로, 뭐하고 비교하는지는 몰라도, 정상 상태가 되면 다시 인간으로 돌아오는데, 정말 영화 <엑스맨>의 돌연변이들 가운데 한 명 같다니까?

  막판 가면 돌연변이들은 서로 만나듯이, 보름달이 뜨면 늑대로 변하는 늑대인간을 만나 둘이 서로 의지하는 장면도 나오지만, 딱 보니까 다리외세크의 작품에서 해피엔드를 바라면 짱구 같다. 즉 <암퇘지>도 비극으로 끝맺는데 당연히 종장은 가르쳐드리지 않겠다. 이 책도 권하지 않을 터. 그냥 이런 책도 있구나, 하시라는 건데, 출판사 열린책들은 어쩌자고 이 책을 중쇄도 아니고 중판까지 찍었을까? 내가 읽은 책이 중판. 그리고 품절이라서 후진 독후감을 써도 그나마 좀 덜 미안하다.


.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잠자냥 2026-10-13 08: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저 이거 구판으로 읽었는데…. 읽고 제가 미련 없이 버린 책 중 하나입니다…. 제겐 참 드문 일이죠. 🤣

Falstaff 2026-10-13 16:47   좋아요 1 | URL
이걸 중판 찍는 출판사는 또 뭡니까? ㅎㅎㅎ 그저 웃음만....
 
울려고 일어난 겁니다 ㅣ 문학과지성 시인선 556
김경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1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1971년에 서울에서 나서 이대 독문과와 대학원 독어교육과를 거쳐 명지대에서 문예창작 박사과정을 수료했다는데, 내 가방끈이 짧아 이게 박사학위가 있다는 건지, 없다는 건지 잘 모르겠다. 1998년, 스물일곱 살에 시인 등단해 여러 권의 시집을 출간한 중견 시인. 반성하자. 그런 시인의 시집을 왜 이제야 처음 읽는지. 이 시집 《울려고 일어난 겁니다》는 2021년, 시인이 쉰 살 부근에 냈는데 여전히 그립고, 뒤를 돌아보고, 때로는 고독하다. 물론 이게 다는 아니다. 시인이 펜을 놓을 때까지 끊임없이 고민해야 하는 화두, 시란 무엇일까, 시인은 또 무엇일까, 하는 결코 풀리지 않는 매듭도 또다른 시의 주제로 놓여 있다.


  먼저 그리움 또는 뒤돌아봄에 관하여. 시집의 제일 앞에 실린 시는 제목 자체가 <뒤>이다.



  한밤의 택시 안, 어디쯤일까, 핸드폰을 본다, 우주정거장이 방금 내 머리 위를 지나고 있다, 이건 너무 큰 그림, 어디지, 거기가 바로 여기네, 이 말을 자주 하던 사람의 그림자 사진, 핸드폰을 본다, 이번엔 너무 지난 그림, 그는 그늘, 여기는, 신호 없음, 연결 상태를 확인해주세요, 빨간 신호마다 과속으로 지나친 여기, 어디지,


  해 질 녘마다, 거실 이 끝에서 저 끝까지, 나는 그의 그림자를 담요처럼 끌고 갔다, 끌려갔다, 오늘도 어제처럼, 저기를 여기처럼, 그늘을 그림처럼, 저 멀리 그네처럼,


  우주정거장은 밤의 지역을 지나고 있습니다, 그래, 그는 그늘, 다시, 우주정거장은 돌고, 어떤 사랑이 지구에 있었는지, 보이지 않고,


  한밤의 택시, 내린 후, 여기일까, 뒤돌아본다,   (전문.  p.9)



  나는 이 시가 생전 처음 읽는 김경후였다. 아후, 근사한 걸? 한밤중에 택시 타서 핸드폰을 보는데, 핸드폰이라는 게 위성으로 너와 내가 통신하는 거라서 내 머리 위를 지나는 우주정거장을 연상하는 거부터, 후, 누가 시인 아니랄까봐, 이랬다. 휴대폰 속의 많은 사진과 통신 기록, 그리고 연결상태. 별의 별 정보, 중요하거나 중요하지 않은 무수하게 넘치는 정보. 이미 지나버린 것들, 그래서 휴대폰을 보는 시인은 결국 뒤돌아볼 수 밖에.

  이런 느낌이 하나였고, 다음은 쉼표의 연속. 시인이 시 속에 쉼표를 썼으면, 독자는 쉼표가 마치 악보의 지시표인 듯, 쉼표가 나올 때마다 한 박자씩 한숨을 돌리는 것이 마땅하고 좋다. 비단 시뿐 만 아니라 산문도 마찬가지이긴 하지만, 아무래도 시의 경우, 입밖으로 소리를 내어 낭송하거나 속으로 암송하거나를 막론하고 탁탁 박자, 리듬감을 훨씬 더 얻을 수 있다. 김경후의 시에서 이런 쉼표들을 아주 많이 볼 수 있었다. 나는 착한 독자. 시인이 쉬라고 콤마를 탁, 찍어줄 때마다 나는 헛, 꼬박꼬박 한 박자씩 쉬면서 읽었다. 이 정도면 착한 독자, 맞지?

  이렇게 ‘뒤돌아봄’의 주제와 많은 쉼표를 사용하는 재미있는 시가 또 하나 있다. 물론 여러 수가 있지만 특히 이 시를 재미있게 읽었다.



  넙치



  그래, 나 바닥이다, 울툭불툭, 넙치, 시장 바닥에 누워 있다, 뭘 보고 있나, 그것, 진창 바닥보다 넓적하게, 바닥의 바닥이 되면서, 대체 뭘 보고 있나, 가끔, 이게 아냐, 울컥, 찌끄레기를 게운다, 뒤척인다, 하지만 다시, 눌어붙어, 바닥이 되지, 바닥, 뭘 볼 수 있나, 게슴츠레, 흰 눈자위로, 울컥, 찢어진 노을, 키득대든 웃음, 흐르고, 슬리퍼 끄는 소리, 지날 때마다, 울컥, 소리친다, 그래, 나, 바닥이다, 그것, 더욱 맹렬히 바닥이 되기로 맹세한다, 끌로도 끝으로도 떼어낼 수 없는 바닥, 더 바닥, 더, 더 바닥이 되기로, 울컥,


  지금 넙치가 나올 철인가, 뭐, 그렇지, 이 바닥이나, 저 바닥이나, 다 그렇지, 사내 둘, 바닥 끝 지나 골목 끝, 횟집 문을 연다,   (전문.  p.13)



  독후감의 초두에서 김경후의 시는 그리워 뒤돌아보거나, 여전히 고독하다고 했다. 이번엔 고독에 관하여 한 방 꽝. 고독. 우리말로 외로움. 먹고 사는데 가장 외로운 장소 가운데 하나가 어디? 화장실? 거기 말고. 비슷하지 않지만 화장실에 버금가게 고독한 곳. 나는 거기 살아본 적 없어서 사실 잘 모르지만, 원룸. 그것도 혼자 사는 원룸. 김경후는 <원룸 전사>라는 제목으로 두 편의 시를 올렸다. 이 가운데 앞에 나온 <원룸 전사>. 원룸에 사는 전사warrior인지, 원룸에서 전쟁처럼 살다가 죽는 전사fall in battle인지 궁금하시지? 일행 시이긴 한데 읽어보자.



  밤마다 막차다, 아무도 없어도, 나는 몰고 돌아가는, 밤, 막차다, 배차 간격, 없음, 인센티브, 없음, 유급휴가, 없음, 직업, 없음, 내가 탈 차, 없음, 기다릴 차, 없음, 막차에서 막차 사이는, 폐터널이지, 밤마다, 막차다, 출가하지 않아도, 밤새 흐르는 수도, 물방울 독경 소리, 면벽으로, 먼 산 먼 숲 조망 가능, 이러다 심안으로 동쪽에 창을 낼, 내가, 막차다, 돌아오지 않을 수 없는, 밤마다, 창 없이 창살 없이, 막차, 필요 없는 거, 없음, 둘 데 없음, 아무도, 울 수, 없는 밤마다, 나는, 막차다,  (전문.  p.18)



  쉼표가 휘날린다. 쉽표가 찍힌 곳마다 따박따박 쉬어 주기만 하면 훨씬 공감이 가는 시. 설마 밤마다 막차일까? 말이 그렇다는 것이지. 인센티브와 유급휴가가 없는 무직자. 설마 무직자겠어? 하다못해 시라도 (넙치처럼) “찌끄리겠지.” 창문이 있어 그나마 창문을 열면 다른 원룸 건물의 벽을 맞바라보는 면벽. 그것도 시인의 눈으로 보면 심안으로 동쪽으로 창을 내, 동창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 먼 산과 먼 숲을 조망할 수 있다니, 거 참, 시인이 아니라 신선이로세. 진짜로 신선이겠어, 그렇게 알고 지내는 것이겠지.

  근데 왠지 그럴 듯해 보이지? 고독. 또는 외로움. 하지만 너무 감동받지 말 것. 세상에 안 외로운 사람 있으면 두 명만 이름 대봐. 자기 인생 다 저마다 외로운 거다. 다만 우리 같은 종자들은 시인처럼 나 외로운 걸 리듬 타면서 말할 수 없을 뿐. 뭐 그렇게 사는 거지.

  외로움은 뭘 기다리게 만든다. 그걸 시인은 <젓가락 행진곡>이라는 유쾌할 뻔한 시에서 재미있게 노래했는데, 지면상 이 시집의 22~23쪽에 실렸다는 것만 알려드리고, 그것보다 더 치명적인 시 한 수 소개한다. 외롭지 않아도 괜찮다. 다만 혼자 있을 때 나만 들을 수 있는 소리, 툭. 뭔가 허파 아래 옆으로 횡단하는 막이 하나 분질러지는 듯한 기분이 나는 소리, ‘툭’에 관하여.



  툭



  그건 젖은 나무 문이 주저앉을 때

  그건 가슴뼈를 움츠릴 때

  그건 할 말이 없을 때

  나는 소리

  툭

  슬픔이 무릎을 건드릴 때

  그래도 설 수 있다는 걸 알았을 때

  나는 소리

  마음의 고무줄 삭아 끊어질 때

  나는 소리

  툭


  툭

  밤의 송곳니가 부러지는 소리

  그때 우리도 함께 부러지는 소리

  말도 안 되는 소리

  서로 돌아서는 소리

  툭

  홀로가 아니라 스스로 내가 되는 소리

  툭

  내가 나를 뚫어지게 보라고

  진흙탕에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

  젖지 않은 나무 문은 내지 못할 소리

  툭   (전문.  p.30~31)



  시인 또는 시는 무엇일까? 숱한 시인들이 고민했고, 고민하고, 앞으로도 영원히 고민할 거리. 괜히 고민해봤자 아무 소용도 없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안 할 수 없는 천형의 벌 또는 엄살. 김경후도 예외는 아니다. 쉰 살에도 아직 그리움과 외로움을 노래하는 시인한테 시는 무엇일까?



  말미고개



  말은 연탄 수레를 끌었다, 난 말을 배웠다, 말미고개, 그곳, 절뚝거리며, 난 시인이 되고 싶었다, 뭐가 되고 싶었을까 말은, 끙끙거렸다, 난 받아쓰기 시험, 말은, 연탄 배달, 컴컴했다, 절뚝, 절뚝거렸다, 눈가리개 하고 수레 끌던 말, 시험지 받은 날, 말미고개, 높고 좁은, 끝난 것 같지 않은, 말미, 끝의 끝, 말의 끝, 씩씩거렸다, 뜨겁게 콧김을 뿜던 말,


  시커멓게, 절뚝절뚝,


  말이 미쳤다고 했다, 난 말을 배울수록, 말을 믿지 않았다, 미친 말, 말미고개, 넘고 넘어, 연탄을 날랐다, 어떻게 하면, 끝나나, 가파른, 말미고개, 끝은 어떻게 시작될까, 엎드렸다, 말미고개 끝, 거품 물고, 그러나 말은, 일어나, 절뚝거렸다, 달렸다, 절뚝거리다, 다시, 엎드렸다, 다시, 쓰러졌다, 이제 나는, 술자리에서 말거품만 뱉는 오십대, 그러나 아직, 말미고개, 미치고 싶은, 말들,


  시커멓게, 절뚝거린다, 절뚝,   (전문. p.61)



  이 시에서 연탄 끄는 말이 진짜 말, 영어로 horse라고 믿는 독자는 설마 없겠지. 말미고개가 진짜 지명에서 따왔는지는 몰라도 말미, 말의 꼬랑지일 수도 있고, 일로 말미암아 생긴 시간 틈일 수도 있지만, 아무래도 시인한테 ‘말미’는 말, 문자 또는 언어의 틈바구니 정도로 감안하는 편이 좋을 듯하다. 그리하여 시에서 말은 연탄 끄는 견마가 아니라 가파른 고개를 말, 언어나 문자로 넘어가야 하는 시인 자신을 일컫는 것이겠지. 나이 오십을 먹어도 아직 오를 길이 어려워 절뚝거리고 있다는 건데, 아무래도 자신의 아픔과 힘듦을 포르테, 너무 심하게 노래한다. 세상에 안 힘든 시인 있어? 아니지. 세상 살이 편하게 사는 사람, 있어? 편한 말미고개, 살림고개 넘는 팔자 좋은 사람, 혹시 있으면 거수 바람. 없지? 그래, 편하면 인생이 아닌 걸.

  시인이 더 젊었을 때 이이의 시집을 안 읽어본 게 아쉽다. 이제는 기다림, 외로움을 조금 벗었으면 좋겠는데, 그건 시인의 영역이니 독자가 간여할 건 아니고.


.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자목련 2026-10-13 09: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김경후의 시집 <열두 겹의 자정>을 정말 좋아해요. 근데 그 이후로는 읽은 시집이 없군요 ㅎ
폴스타프 님의 별점과 리뷰 때문에 이 시집, 읽고 싶네요!

Falstaff 2026-10-13 16:47   좋아요 0 | URL
워낙 시를 좋아하시잖아요. 저도 열두겹 찾아봐야겠습니다.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