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을 찬양하다
헤수스 카라스코 지음, 임도울 옮김 / 민음사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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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헤수스 카라스코는 1972년 스페인의 에스트레마두라 주의 가장 큰 도시 바다호스 시 아래 올리벤사에서 태어났다. 카라스코가 쓴 책에 의하면 올리벤사가 시골지역이어서 본인도 어린 시절에 닭한테 모이를 준다든지, 짚을 나르는 일 등의 농사일을 도운 기억이 남았다고 수차례 강조한다. 조부모, 부모와 함께 사는 대가족이었던 모양이다. 이후 청년이 되어 체육교사, 포도 수확 담당자, 그래픽 디자이너 등의 직업을 전전하다가 1992년에 마드리드로 이적하여 최종적으로 작가라는 직업에 정착한 것 같다. 2005년에, 책을 통해 알게 되는 것처럼 세비아로 이주하여 적어도 책이 끝나는 시점까지는 살고 있다. 위키피디아 정보에는 이이의 세번째 책까지만 언급되어 있다. <손을 찬양하다>는 네번째 책으로 2024년 2월에 스페인의 유수 문학상이라는 비블리오테카 브레베 상을 받았다고 책갈피에 쓰여 있다. 비블리오테카? 흠. 어감이, 비블리오 패혈증하고 비슷해서 어찌 좋은 기분은 아니지만, 책가게 알라딘이 하도 오랫동안 이 책이 나하고 맞을 것 같다고 추천을 거듭하는 바람에 희망도서 신청했는데, 도서관 자체에서 구입 예정이 있다고 반려되었던 책이다. 근데 시내 다른 도서관에 먼저 들어와 상호대차 신청해서 먼저 읽고 반납하려니 동네 도서관 신간코너에 같은 책이 꽂혀 있었다.


헤수스 카라스코


  독후감 본문을 쓰기 전에 미리 밝힐 것이 있다. 이 작품은 주인공이 2010년 경부터 거의 10년간 버려진 집을 그의 처남 후안루와 함께 수리, 보수하면서 일종의 별장 겸 셸터 비슷하게 사용한 기록이라는 점. 화자 ‘나’의 이름을 밝히지 않지만 누구나 헤수스 카라스코 본인이라는 것을 알아챌 수 있고, 아내 아나이스, 두 딸 마리와, 알투디투에서 베르타로 개명하는 둘째 딸의 이름 모두 가명이라. 아내와 아이들은 카라스코가 쓰는 소설 <손을 찬양하다>에 나오는 것은 동의했지만 진짜 이름을 밝히는 건 반대하여 스스로 이름을 지었다. 손위 처남 후안루 역시 가명일 것이 틀림없다. 뿐만 아니라 출연진, 출연하지는 않지만 이러저러한 이유로 이름을 밝혀야 하는 배역 모두 가명일 수밖에 없다. 화자는 초두에 밝힌다. 자기 기억에 의하여 쓴 작품이기는 하나, 기억은 언제나 왜곡되어 변형되는 것이라서 50퍼센트 정도만 사실일 것이고 나머지 반은 사실 부근에 있거나 자기가 잘못 들은 내용일 수 있다는 거. 기억과 기억 사이의 공백은 스토리에 적당하게 자신이 창작해 넣었다는 것도 고백했다.

  소설 초입에 쓰인 여기까지 내용을 읽자마자 책을 탁, 덮었어야 마땅했는데, 이틀씩이나 소비해가며 꾸역꾸역 다 읽은 게 아까운 생각이 밀려든다.

  작가는 무지하게 낡은 집, 거의 10년 이상 동안 아무도 살지 않아 폐허가 되다시피 한 집을 처남 후안루와 자신, 그리고 자신의 아내와 아이들, 감당하기 벅찬 수선이나 공사를 해야 할 경우에는 수선공, 베관공, 전기공 등 업자를 고용해 직접 자기들 손으로 살기 편하지는 않지만 어쨌거나 그나마 불편하지는 않게 살 수 있게 만들었다는 데 자존감, 만족감, 자랑하고 싶은 마음을 드러낸다.

  직접 자기 손으로 못을 펴고 나무 판자 위에 올려놓은 상태에서 망치, 아마도 자신의 할아버지 때부터 써온 망치를 두드려 나무와 나무, 나무와 벽을 고정시키는 일을 한다. 크고 무거운 용접기와 전압, 볼트가 맞지 않아서 할 수 없이 용접기만큼 무거운 변압기까지 가져와야 하는 불편 속에서도 생전 처음 해보는 용접으로 철판에 구멍을 숭숭 내기는 하지만 하여간 햇빛 가리개 같은 것을 만들기도 한다. 돌보는 이 없어 굵어지기만 하고 열매를 매달지 않는 포도나무 가지를 직접 쳐준 다음 해부터는 많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포도나무 아래에 테이블을 가져와 책도 읽고, 노트북을 올려 자판 두드리는 일, 작업도 할 수 있고, 아이들한테 책을 읽어줄 수도 있고, 음식도 만들 수 있게 했다.

  허벅지까지 빽빽하던 잡초도 모두 손과 삽, 호미 같은 것을 사용하여 다 제거한 후에 목적상 필요한 화초를 심어 그럴듯하지는 않지만 보기 괜찮은 정원 비슷한 것을 만들어 딸들에게 라틴어 학명을 가르쳐주고 학명을 외웠으면 하는 바람도 가져보지만 그런 일은 아주 가끔만 일어나는 일이고, 기억하는 시간도 극히 짧은 것 같다.

  이렇게 지금은 글을 써서 먹고 사는 전업 작가가 되었어도 땅과 가축과 집이라는 흙, 나무, 철제, 화학물질로 이루어진 가설체를 직접 손을 사용하여 계속 인간이 살 수 있는 안식처, 쉼터, 그것도 아니라면 자연의 공습을 막아낼 수 있는 피난처 정도로는 만들어가는 일, 그걸 찬양하는 이야기이다.


  2010년에 화자의 아내 아나이스의 오빠 후안루는 부동산개발업을 하는 친구 이그나시오와 함께 말라가 해변 앞바다에서 세비야까지 항해를 하고 있던 중이었다. 파도가 거칠어져 요트 주인 이그나시오가 항해 중단을 선언하고 인근 정박지로 배를 끌고 가 묶었던 모양. 거기서 차를 빌어 세비야로 가려 했으나 시간이 너무 늦어, 오래 전에 투자목적으로 매입해둔 집이 있으니 불편하나마 그곳에서 하루 밤을 지새자고 제안을 했다. 그래서 깜깜한 밤에 처음 도착한 곳. 오래된 집과 인접한 36헥타아르 넓이의 초지. 이그나시오가 공격적 투자를 감행해 휴가용 아파트와 초지 안에 고급 방갈로를 몇 채 지으려 했다가, 두 해 전인 2008년에 미국에서 리먼브러더스 사태가 터져 계획을 무기 연기해 방치해둘 수밖에 없었다고. 후안루는 프로젝트가 중단된 동안만 자신이 집을 마음대로 사용하게 해달라고 부탁했고, 집이란 것이 사람이 살지 않으면 빠르게 폭삭 무너지는 것이라 이그나시오도 흔쾌하게 요구를 받아들였다.

  그리하여 ‘우리’ 즉 화자와 아내 아나이스와, 마리와 처음엔 알투디투였다가 베르타가 될 두 딸도 꽤 오랜 세월 주말마다 부모를 따라 넓은 초지와 낡은 집에서 마치 시골 소녀처럼 건강하게 자랄 수 있었다. 그리고 화자는 곧바로 책을 한 권 구상한다. 주제는 “손으로 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이야기하는 책.”


  집이 있으면, 아무리 외딴 집이라 하더라도 이웃이 생긴다. 이 집이 길의 제일 끝까지 가야 바라보이는 막다른 집이고 곧바로 초지와 산으로 연결되는 외진 곳이지만 딱 이들끼리만 살 수는 없는 법. 첫 날에 한 남자가 고삐를 쥐고 노새 한 마리를 끌고 지나간다. 별명이 우스바르나라고 하는데, 머리부터 목까지 죽 이어진 주름진 큰 상처가 흉하게 아문 모습 때문에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이 쓴 <보물선>에 출연하는 선장 빌리 본즈를 닮아 본즈라고 불릴 예정이다. 어딘지 모르게 매혹적인 본즈는 주로 말과 나귀 같은 큰 동물 전문으로 코르크 나무의 껍질 벗기는 일을 하다 전기톱 사고로 경정맥이 절단된 큰 사고를 당했음에도 본즈의 아버지가 끝까지 훌륭하게 지혈을 해주어 목숨을 건진 사나이이다. 이이는 십년 후, 낡은 집이 결국 부동산 업자에 의하여 개발될 때까지 이 가족들과 긴 인연을 이어간다.

  또 옆집에는 할머니 라파엘라, 할아버지 마누엘 부부가 살면서 온화하고 정 많고, 부드럽지만 서로의 자유와 개인생활을 존중하는 태도를 유지하며 살아간다. 한 8년 정도 지나면 친절한 라파엘라 할머니는 세상을 뜰 예정이지만 화자의 가족들은 세월이 지나도 이 노부부와의 인연을 잊지 못할 듯. 이렇게 사는 이야기.


  작품의 주제가 엄연히 “손으로 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이야기하는 것”이지만, 독자 내가 해본 세상 살면서 제일 아름답고, 중요하고, 조심스러우며 행복했던 손으로 하는 일은, “자는 아이의 손톱을 깎아주는 일”이었다. 두번째가 웬수 같은 아내의 눈꺼풀을 손가락으로 더듬는 일이었으며, 세번째 역시 아내의 몸을 만지는 일이었다. 이 세가지는 나 혼자 살면서는 전혀 경험하지 못할, 제일 중요한 작은 공동체에서만 감각할 수 있는 작고, 작고, 작지만 가장 행복한 일이었으리.

  손과 도구와 널린 재료를 써서 가족의 피난처, 휴식처, 놀이터를 만들고, 이웃과 관계를 구축하며, 함께 살 다른 생물을 돌보는 것이 중요하지만, 어찌 손을 찬양하는 항목에 아이의 손톱을 잘라주고 사랑하는 사람의 몸을 만지는, 하다못해 샤워하는 배우자의 욕실에 들어가 등을 밀어주는 행위가 빠졌는지, 나는 많이 아쉬웠다. 물론 책을 일정분량 이상으로 뽑기 위하여 픽션이 아니라 에세이를 읽는 것처럼 수다한 수다를 읽어주는 것도 예상 외로 지루했으며, 심지어 자신이 알고 있는 모종의 지식, 경험을 이용해 경구를 만들려 애쓰는 모습도 보이는 것 같아서, 그것도 여기저기에 자주 보이는 것 같아, 내가 이 책을 꼭 끝까지 다 읽어야 할까? 숱하게 의심을 하며 마지막 페이지까지 읽었다. 그래도 결국 화자가 둘이나 되는 딸아이의 손톱을 깎은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다. 다들 하는 일이라서 그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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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6-09-18 1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 감사합니다... 보관함에서 바로 삭제... ㅋㅋㅋㅋㅋ

Falstaff 2026-09-18 15:50   좋아요 0 | URL
ㅋㅋㅋ 뭘요, 이런 거 갖고...
 
두려워요, 투우사여 ㅣ 암실문고
페드로 레메벨 지음, 임도울 옮김 / 을유문화사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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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2년 칠레 산티아고의 가난한 변두리에서 제빵사 페드로 마르도네스와 비올레타 레메벨 사이의 아들로 난 페드로 세군도 마드로네스 레메벨은, 칠레의 작가, 연대기 작가, 행위예술가 또는 간단히 연기자, LGBTQ+ 운동가로 알려져 있다고 위키피디아에 쓰여 있다. 1980년대 후반 그러니까 이이의 나이 30대 중후반의 한 시절, 아버지의 성인 마드로네스를 버리고 어머니의 성 레메벨을 자기 이름으로 선택했으니, 이것은 자신이 남성이기는 하되 성정체성 상 여성성을 좇는 성향을 따른 결정이었다고. 즉 몸은 남성이되 여성, 이 책의 주인공 ‘로카’처럼 ‘앞집 미친년’처럼 살기로 결심했다는 뜻이다.

  대개 자신이 동성애자인 것을 알게 되는 시기가 2차 성징이 발현되는 때라고 한다. 스페인어 판 위키피디아에는 나오지 않는데, 영어판 위키를 보면, 산티아고 산업대학 부설 교육기관에서 적성하고 무지하게 맞지 않는 금속가공을 일컫는 단조와 목공 가구를 배울 때 드러나기 시작한 성 정체성 때문에 작지 않은 고생을 했을 것 같다. 기능을 포기하고 정규 고등학교로 옮겨 하여튼 고교 졸업장은 땄다.

  이후 1970년에 칠레대학교 부설 교육학연구소에 입학해 조형예술을 공부하고 78년에 졸업, 79년부터 산티아고 외곽 두 개의 고등학교 미술 교사로 4년 동안 지나다가, 1980년대 초반 가톨릭 국가의 교육자들이 남자 동성애 가운데 충실한 바텀이었던 레메벨의 외모를 트집잡아 두 학교 모두에서 해고당하고 다시는 교육계 쪽을 향해서는 오줌도 누지 않았다. 그리고는 문학 워크숍 등 예술 작업에 몰두하기 시작한다. 이름도 레메벨로 바꾸고. 울고 싶은데 학교가 대신 따귀 한 대 때려준 거겠지.

  이때부터 레메벨은 본격적으로 문화 사업에 뛰어든다. 글도 쓰고, 공연도 하고, 글과 공연을 위한 집단에도 참여하며, 짙은 화장과 여장을 하고 다닌 것처럼 보인다. 그랬다는 게 아니라 내 추측이다. 믿지는 마시라. 이이가 지지하는 좌파 집단 속에서도 “좌파 정치권 내 동성애를 혐오, 비판하는 세력”을 향한 선언문, “Manifest, I Speak for My Difference”를 이야기했다고 칠레판 위키에 나온다.

  이이가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던 때가 1980년대 중반. 당시는 아우구스토 피노체트의 독재정치가 말기를 향해 가던 시기로 레메벨 역시 자신의 정치성향을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그는 확실히 공산주의자에 가깝지만, 지금은 모르겠으나 당시 분위기에서는 성소수자를 반기지 않았던지, 공산당에 가입은 하지 않은, 이른바 정치적 프리랜서. 이러저러한 여러 활동을 했음에도 이이의 첫 소설 작품이 나온 시점이, 이미 피노체트가 대통령에서 물러나고 10년이 지나버린 2001년에 출간한 <두려워요, 투우사여>이다. 1986년 9월에 있었던 피오체트 암살 미수 사건을 앞뒤로 40대 여장 게이와 20대 남성 대학생 사이의 연애 혹은 사랑, 아니면 오해. 즉 40대 게이 ‘앞집 미친년’ 로카는 틀림없이 스무 살 잘 생긴 남자 대학생 카를로스를 사랑해서 무엇이든지 그가 원하기만 하면 할 수 있지만, 카를로스가 정말로 로카를 사랑했는지, 그저 이용만 하려다가 인정에 끌려 (사랑은 아니지만 그것과 가까운)좋은 감정까지 갔던 것인지에 관한 이야기다.


  무대는 산티아고의 보통 시민이 모여 사는 살림집, 1986년 봄. 남반구 칠레에서 봄이라고 함은 8월 말부터 9월을 건너 10월까지. 작품에서 콕 짚으면 9월초이다. 작중 주인공, 별호를 “앞집 미친년”이라 하는 마흔 언저리 늙은 게이 로카는 이 건물의 3층과 비둘기집 같은 다락방에 산다. 당연히 혼자 살기에 넉넉한 3층을 깨끗하게 단장하고 살며, 다락방에는 빨래를 널 수 있는 난간 하나만 덜렁 달려 있다. 며칠 후부터 이 다락방이 이야기의 시작이 될 줄은 처음엔 전혀 몰랐다.

  우리의 늙은 게이 로카. 아버지는 로카더러, 물론 진짜 이름은 로카가 아니었지만, 하여튼 엄마가 아버지를 벌주려고 남기고 간 게이 골칫덩이라고 했다. 여차하여 마음에 조금만 안 들어도 ‘사내답게’ 키운다는 명목으로 두드려 팼고, 다른 아이들과 억지로 싸움을 붙였다. 학교에서도 로카한테 신경정신과 적으로 상담을 받아야 한다며 아버지더러 좀 오라고 했지만, 그는 콧방퀴만 뀔 뿐 꿈쩍도 하지 않았다. 군대만 가면 다 해결될 일이라고 하면서. 말로만 그런 게 아니라 정말로 입대절차를 밟았다. 그래서 군대에 갔느냐고? 아니. 생각만 해도 끔찍한데 거길 어떻게 가. 그냥 집에서 뛰쳐나가 다시는 돌아가지 않았다.

  이후 산티아고로 흘러 들어왔다. 수도에서의 삶은 여느 다른 나라의 큰 도시에서 사는 외톨이 게이들의 것과 다르지 않아 주로 몸을 팔아 끼니와 잠자리를 해결했는데, 정말로 운이 좋아 당시 벌써 나이가 많아 뒷방을 차지하고 앉은 흑인 게이 라나의 눈에 띄어 같은 집에 살았다. 여기서 라나한테 손수건, 식탁보, 침대보, 슬립, 리본 등에 자수를 넣은 법을 배우기 시작해 실력이 일취월장, 라나의 비싼 손님이 저절로 로카한테 주문을 넣게 되기에 이른다. 둘의 사이 역시 서서히 틀어지기 시작했고, 드디어 사달이 나 폭발했으며, 얻어 터지고 걷어 채이고, 발로 밟히는 폭행을 당한 로카는 독립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이런 사건 하나로 엄마나 다름없는 라나와 완전히 척이 지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교통을 하면서도 예전 같은 사이로 회복하지는 못했다. 지금 로카는 막강한 군부 실력자의 아내로부터 식탁보, 침대보 같이 비싸고, 화려한 자수를 주문 받아 적어도 전혀 팍팍하지 않은 생활을 하고 있다. 이제 로카에게 남은 건 추억들. 지나간 연인들과, 나이트클럽 무대에서 하던 드래퀸 쇼, 노랗고 커다란 모자, 그리고 고양이 눈 같은 선글래스.


  전문 자수 디자이너. 앞집 미친년 로카의 직업이다. 대통령궁하고는 거래하지 않지만 대통령을 직접 초대하여 자기 집에서 파티를 열 수 있는 장군의 아내들이 수공 요금을 한 푼도 깎지 않고 비싼 가격으로 주문을 하는 침모. 침모針母? 아무리 보수적인 칠레공화국이라 해도1980년대에 침모? 말이 그렇다는 거다. 장군의 아내들은 남편의 직급보다 아래로 보이는 사람들은 인간 취급을 안 하는 버릇이 있었다. 지금은 안 그러리라고 믿지만. 그래서 비록 많은 돈을 받아 마음은 넉넉하지만 식탁보나 침대보를 납품하러 갈 때는 정문으로 가지 못하고 부엌문으로 출입을 해야 했으며, 미리 시간 약속을 하는 건 생각도 하지 못했는데, 만일 납품하러 간 시간에 손님이 와 있으면 몇 시간이 되든지 그 손님 갈 때까지는 하는 일 없어 부엌에서 말라빠진 빵 쪼가리를 얻어 씹으며 멍때려야 한다. 그러니 침모지 뭐.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하는 것도 그런데, 하물며 여장 게이라면 그게 정말 사람으로 보이긴 했겠어?

  사람은 누구나 외롭지. 장군의 아내도 알고 보면 외로울 거고, 현직 내부무장관도 외로울 거야. 10대 초중반에 집에서 뛰쳐나와 하늘 아래 찾을 피붙이 하나 없는 여장 게이는 이 중에서도 제일 외로운 사람들 가운데 한 명일 수도 있을 듯.  그런데 하필이면 시절도 잘 못 만나, 86년 봄, 피노체트가 아옌데를 사살하고 사실상 권력을 잡은 1973년 9월의 쿠데타가 있는지 어언 13년. 독재정권에 반대하는 세력들은 칠레의 지리적 상황, 안데스 산맥을 넘기만 하면 언제든지 망명할 수 있는 길고 긴 국경선을 지닌 나라답게, 벌써 학생운동은 물론이고 피노체트 암살과 내전 발발 등 폭력 행위를 위하여 정규군만큼은 아니지만 무장도 갖추기에 이르렀다. 도시는 날마다 시위와, 삐라와, 방화와 정전, 화염병, 최루탄, 물대포, 기타 등등 1980년대에 우리가 경험했던 모든 것으로 더할 나위없이 흉흉했다.

  이런 정치상황에 전혀 관계없이 지나간 옛노래를 즐기는, 사실상 무명씨들. 이 가운데 최고의 무명씨들 가운데 게이, 이중에도 짙게 화장하고 드레스와 하이힐을 하고 다니는 여장 게이가 있었다. 앞집 미친년 로카도 마찬가지. 하루 종일 식탁보에 화려한 수를 놓다가 해가 저물기 시작해 눈이 침침해지면 즐거이 동네 앞에 있는 카페에 가서 지방 토속주나 가벼운 칵테일 같은 걸 즐겼겠지. 늘 그렇듯이 이미 익숙한 바텐더와 동료들. 원래 앞집 미친년을 사람 취급도 하지 않았지만 이제 오랜 세월동안 그래도 정이 생겨 더 없이 친근해진 단골 사내들. 아무리 남자에 환장한 여장 게이일지언정, 이들의 몸을 탐해본 적 없는 로카. 그러니 더 친해질 여유가 있었을 터.

  하지만 두 달 전쯤 유독 눈에 들어오는 남자가 있었다. 앳된 얼굴을 하고 있는 미남자. 카를로스. 로카와 카를로스는 급격하게 친해진다. 물론 카를로스는 안다. 로카가 게이임을. 그래도 로카에게 착하고 다정하고 친절하다. 그리하여 그녀 로카는 사랑에 빠져 버렸고, 사랑의 포로가 되었고, 사랑의 꿈을 꾸기 시작했다. 카를로스가 자신을 사랑하는지 아닌지는 다음으로 하고.

  이후부터 카를로스는 로카의 다락방에 자기 짐, 종이 상자. 판매금지 서적을 말한다는 정도는 로카도 알아듣는 금서들, 순문학 작품이지만 가지고 있다가 걸리면 골치 아픈 책들을 담은 박스를 몇 개 가져다 두는데 동의한다. 로카는 상자 안에 무엇이, 어떤 책이 들었는지 알고 싶지 않다. 때로는 모르는 것이 좋을 때가 많다는 것을 이해할 나이라서. 그런데 박스가 나날이 늘어나, 어떻게 보관할까 궁리하다가, 침대 머리맡에 놓고 보를 씌워 협탁으로 사용하기도 하고, 박스와 박스 위에 널빤지를 대 선반으로 쓰기도 한다. 앞집 미친년 로카가 살림하나는 끝내준다. 그런가보다 했더니, 이젠 통행금지 시간 넘어 학교 친구라는 젊은이들이 우그르르 다락방에 몰려 들어가 밤새도록 공부라는 것도 한다. 로카는 아예 누가 왔는지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보관을 해달라고 가져온 것이 무섭게 생긴 원통형 금속 파이프. 굉장히 가치가 있는 수기 원고 두루마리란다. 뭐 그런가보지.


  드디어 다가온 1986년 9월 7일.

  피노체트가 휴가지에서 어떤 코스를 택해 산티아고로 진입할 계획인지 미리 알아낸 마누엘 로드리게스 애국전선의 도시 게릴라들은 좁은 도로를 막고 대통령 피노체트와 호송 차량들을 향해 총과 포격을 가한다. 선도차는 포탄을 맞아 길 아래로 굴러 떨어졌고, 피노체트가 탄 메르세데스는 노련한 운전수의 기술 덕에 좁은 도로에서 빠른 속도로 후진하다가 놀라운 솜씨로 360도 회전, 오던 길로 다시 돌아가 피노체트의 몸에 기스 하나 생기지 않게 만든다. 비록 바지 속에 똥을 싸질렀을지언정.

  이제 사태는 심각해진다. 카를로스가 애초에 그의 본명이 아니었다는 건 알고 있던 앞집 미친년 로카는, 뭔가가 들어 있던 종이박스를 9월 7일이 되기 며칠 전에 모두 가져 나갔으며, 금속제 원통도 마찬가지였다는 것도 전부 자기한테는 매우 위험해지리라, 짐작하고 있었다. 그런데 뭐. 나는 그게 뭔지도 몰랐는데.

  정말 그럴까? 그냥 카를로스를 사랑해 그가 안전하기만 하면 나는 그대로 앞집 미친년으로 나머지 인생을 조용하게 살 수 있을까?

  이 이야기에 관해서는 여기까지만 하자. 곧바로 결말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나는 이 책을 아주 재미있고, 흥미롭게 읽었다. 1990년에 다가올 피노체트의 하야와 반정부 민주화 운동의 과정 때문이 아니라, 앞집 미친년 로카의 대사. 쉬지 않고 흘러나오는 엽기발랄하면서, 쓸쓸하고, 체념적이면서도 희망도 얼핏 보이고, 무엇보다 한 남자의 사랑을 받고 싶어하고, 한 남자를 사랑하는 눈물겨운 마음 저림이 독자의 애간장을 태우기 때문이었다. 이 책은 주제의 무거움에도 불구하고 어엿하게 심리 소설이며, 상실을 극복하려는 늙은 여장 게이의 독특한 희생에 대한 송가다.

  잘 읽었다. 책 읽는 재미에 홀딱 빠지는 기쁨을 가질 수 있었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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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빼미의 낮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85
레오나르도 샤샤 지음, 이현경 옮김 / 민음사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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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21년 시칠리아 라칼무토 출신의 시인, 소설가, 언론인, 그리고 무엇보다 정치인. 시칠리아의 대표적 시인, 극작가, 소설가라고 알려진 비탈리아노 브란카티를 사사하고 훗날 상원의 공산당 의원이 될 주제페 그라나타에게 프랑스 계몽주의와 미국 문학을 배웠단다. 후에 시집 딱 한 권과 몇 권의 소설을 발표했으며, 1975년에 공산당원이지만 무소속으로 시의회 의원으로 선출됐다. 이후 공산당과 기독교민주당이 모종의 커넥션이 있었던 모양인데 이에 반대하여 자유주의적 좌파정당인 급진당으로 이적했고, 급진당 소속 시의원도 몇 번 해 자신 것처럼 보인다.

  시칠리아 자치구역 안에서 살고, 정치활동에 뛰어들었으나 결국 샤샤의 본질은 소설가. 1989년, 68세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쉬지 않고 집필 활동을 해 온 소설가로, 오늘 독후감을 쓰는 <올빼미의 낮>이 대표작으로 꼽힌다. 전직 가운데 하나가 언론인이라 이이의 작풍도 당연히 리얼리즘에 입각한 시칠리아의 현실 조명이었을 것이고, <올빼미의 낮> 역시 1950년대 말 시칠리아의 문제점 가운데 하나였던 마피아 조직에 관한 작품이다.

  말이 마피아지, 당시에 한갓 언론인이자 소설가 신분으로 시칠리아는 물론이고 로마를 위시한 이탈리아의 많은 지역과 미국의 시카고와 뉴욕 등에 막강한 조직을 갖춘 마피아에 관하여 함부로 작품을 썼다가는 쥐도 새도 모르게, 흔적도 없이 사라질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이를 가능하게 한 것은 젊은 시절에 가르침을 준 주제페 그라나타의 원론적 공산주의와 순수 저널리즘의 가치 같은 것에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 싶다. 근데 완전히 짐작이다. 내 생각에 그렇다는 것이니 아니더라도 좀 봐 주시라.


샤샤의 동상.보도 한 가운데 세워 놓았네?


  작품은 S.의(이후 편의상 S시라고 하자) 살바토레 콜라스베르나라는 이름의 건설협동조합장이 일주일에 한 번 팔레르모로 가는 06시 30분에 출발하는 아침 첫 버스 정류장을 향해 뛰어가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왜 뛰어? 당연히 늦었으니까 그렇지. 아니나 다를까, 벌써 버스는 S시에서 팔레르모 또는 더 큰 도시로 농사 지은 것이나 닭 또는 오리, 기타 등등 쉽게 잡아먹을 수 있는 동물을 든 채 적당한 냄새를 풍기는 중년 이상의 여성들을 태우고 딱 출발한 때였다. 허겁지겁 버스를 쫓아 뛰어가는 콜라스베르나 선생. 나는 이이의 이름을 콜라스-베르나, 이렇게 읽었지만 조금 뒤에 보면 콜라-스베-르나, 이렇게 읽는 게 더 편하다고 친절한 출연자 가운데 한 명이 동아시아 독자에게 말해준다. 하여간 버스의 차장이 살바토레 콜라스베르나가 뛰어오는 걸 보고 급하게 운전수에게 차를 멈추라고 하는 순간, 성당을 중심으로 하는 광장의 한 구석에 놓인 어두운 짐이랄까, 무더기 사이에서 광장을 울리는 총소리가 꽝, 꽝 두 번 들렸고, 바로 즉시 콜라스베르나가 든 서류가방이 먼저 바닥에 떨어지고, 이어 콜라스베르나 조합장의 머리가 서류가방 위로 쿵, 소리를 내며 부딪혔다. 노련한 저격수가 쏜 총알에 맞아 그 자리에서 즉사하고 만 것. 이때 광경을 직접 목격한 S시 주민들은 두 손을 모아 이렇게 말했을까? 삼가 고인의 애도를 빕니다. 편히 쉬시기를.

  왜 짓궂게 목격자들의 애도를 운운하느냐 하면, 사건 발생 즉시 현장에 도착한 군경찰이 일단 승객들을 죄다 버스에서 내리게 했지만 승객 외의 목격자들을 불러모으는 동안 모든 승객들은 슬금슬금 자리에서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져 버렸다. 시칠리아에서는 그래야 오래 산다는 걸 뭐. 봐도 본 게 없고, 들어도 들은 게 없으며, 할 말도 결코 목젖을 넘어 입술 밖으로 나오지 않는 놀라운 기술을 익혀야 만수무강에 지장이 덜한 사람들.


  죽은 이가 속한 ‘산타 파라’ 작은 규모의 건설협동조합. 십여 년 전에 형제 둘과 벽돌공 네댓 명이 뜻을 모아 설립해 명목상 측량사가 현장책임자이지만 실제로는 콜라스베르나가 공사를 지휘하고 회계까지 도맡아 처리했던 알찬 조합이라고, 아는 사람은 다 안다. 부실하지 않은 시공으로 이름값을 높였다. 도로를 깔면 무거운 짐차들이 많이 다니는 도로임에도 몇 년 지나도 여전히 금 하나 가지 않아 보수공사 한 번 하지 않은 공사.

  사건을 해결하기 위하여 군경찰은 이탈리아 북부의 파르마 출신인 대위를 보낸다. 이외에 경위와 자잘한 업무를 하는 스포시토 군경관. 대위는 먼저 산타 파라의 조합원들을 소환한다. 대기실에 가 보니 불안한 표정의 조합원들과 신고를 하러 온 여성 한 명이 있다. 여성은 정원의 가지치기, 즉 전정사의 아내. 지참금과 남편의 성실성으로 비교적 잘 사는 축에 속하는 좋은 가정의 안 주인인데, 전정사가 그저께 일을 나라 돌아오지 않는다고, 행방불명 신고를 하러 왔다. 이 남자, 죽었다. 콜라스베르나를 살해하는 현장에 있었다는 것 때문에 범인들과 함께 이동해서 사람이 살지 않는 암석 지대까지 끌려가 죽었고, 시신마저 깊숙하게 숨겨버린 거다. 물론 나중에 그렇게 밝혀진다.


  군경찰의 대위는 이곳 현지 수사관들, 예를 들어 경위와 생각이 조금 다르다. 대위는 S,에 도착하자마자 많은 관계자와 사건 현장에 있던 사람들을 찾아내 탐문을 해 보았지만 아무도 사건에 대해 본 것과 들은 것을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정작 이상한 일은, 아무도 말하지 않지만 모두 익명으로 편지를 쓰려 하는 것 같았다. 이 사건과 관련하여 벌써 다섯 통의 편지를 받은 것. 그중 하나는 시칠리아에서 가장 흔하고 널리 이해가 되는 살인 형식으로, 피살자는 질투 때문에 살해되었다며 질투에 눈이 먼 남자 이름까지 알려준 것도 있었다. 작품 속에서도 대표적 유형으로 마스카니의 <카발레리아나 루스티카나>를 언급한다. 하지만 대위는 귀담아들으려 하지 않는다. 대신 직업에 유념한다.

  ‘산타 파라’의 일 처리 방식. 그들도 다른 건축조합과 마찬가지로 경쟁업체가 있고, 경쟁업체들과 함께 사업 입찰에 참가하여야 하며, 자재와 장비를 적시에 조달해야 하는 건 물론이다. 자재와 장비는 공사가 진행하는 동안 계속 현장에 쌓아 두고 퇴근한다. 간혹 인부들이 현장에 머무는 경우도 있지만 밤이 깊으면 이들도 잔다. 이럴 때, 절대 밤에 잠을 자지 않는 사람들에게 현장과 시설, 장비를 보호해달라고 요청하는 일이 자연스럽다. 도난이나 파손을 방지하기 위하여. 마음을 나쁘게 쓴 경쟁업체가 밤새 불을 싸지르는 일이 생길지 누가 알랴. 만일 보호해주겠다고 제안을 했음에도, 그걸 거절할 정도로 어리석었다면 어떤 일이든지 하나 정도는 생길 수 있을 것이다.

  대위는 피살자의 친형 주제페 콜라스베르나에게 이렇게 물었지만, “우리는 전혀 아는 게 없다.”라는 대답을 받았을 뿐이다. 이렇게 보호해주는 집단. 밤에 잠을 전혀 자지 않는 무리, 올빼미들이 산타 파라 건설협동조합이 해줄 수 있는 게 이것 하나가 아닐 터이다. 수의계약을 성사시켜줄 수도 있고, 공공사업 입찰에 참여시켜줄 수도 있으며, 공사가 끝난 후에도 준공검사를 통과할 때 그들의 로비로 크게 도움을 줄 수 있으며, 험한 인부들을 효율적으로 관리해줄 수도 있다. 쉬운 말로 백골단을 동원해줄 수 있다는 얘기다. 이 올빼미들이 관리하는 아홉 개의 업체가 일종의 컨소시엄을 형성했다면, 참여하지 않고 견디는 열번째 업체는 희생제물인 검은 양이 될 수밖에 없는 거다. 존재 자체가 도전이고 나쁜 본보기일 뿐이니. 검은 양은 반드시 컨소시엄에 들어오게 하거나, 영구 퇴출시켜야 할 존재일 것이다. 그래서 여태까지는 밤에 절대 잠을 자지 않는 올빼미들의 집단이 낮에도 활동하기 시작해, 낮이 시작하는 아침 6시 30분, 첫차로 주도 팔레르모를 향해 출발하는 버스를 따라 헐레벌떡 뛰어가던 검은 양의 실질적 관리자 살바토레 콜라스베르나를 향해 총열을 잘라낸 산탄총 루파리에서 발사한 총알 두 방을 맞고 현장에서 즉사해버린 것이다.

  대위는 이렇게 수사의 가닥을 잡았다. 남은 일은 낮에 활동을 하기 시작한 “밤에 절대 잠을 자지 않는 자들” 즉 마피아의 최상부까지 헤집어 뿌리를 뽑고 싶은 것. 그러나 1950년대 말의 시칠리아 마피아는 시칠리아는 물론이고 로마의 정치권까지 이미 뿌리를 굳게 묻고 있었으니, 과연 한갓 군경찰의 대위에 불과한 수사관과 이이의 친구이기도 한 검사 한 명의 도움을 받아 낮에 나온 올빼미를 이겨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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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6-09-16 05: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독후감, 길기만 하고 참 못 썼다

케이 2026-09-16 17:31   좋아요 2 | URL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길기만 하고---> 요즘 같은 시대에 제일 대단한 능력 아닐지요. 직접 다 쓰신 것이잖아요. 그것도 길게. 저는 대부분의 책 다 읽고 감상 재밌었다. 재미없었다. 별로다. 최고다. 다 한마디로 끝난는 수준에 이르렀답니다. 좋은 리뷰 항상 감사드립니다.

Falstaff 2026-09-16 17:30   좋아요 1 | URL
아이구 케이 님. 그저 고맙습니다. 내일 올라올 것도 영 마음에 차지 않습니다만, 걍 수정하지 않고 파박 올리기로 했습니다. 아마추어의 특권이잖아요? ㅎㅎㅎ
말씀 고마워요!!!

바람돌이 2026-09-16 09: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유럽에서 참 좋아보이는게 저런 길거리 기념물들요. 틀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기념하는 조각품들이 참 좋더라구요. 통행에 좀 불편할 수는 있지만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그의 책을 읽을 수 있게 하는 것도 좋지 않나 싶어요.

저는 이 책이 굉장히 훌륭한 책이고, 작가님이 용기있는 분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책 자체가 엄청 좋지는 않았어요. 나쁘지 않았다 정도랄까? 그저 그 시대에 정부나 경찰보다 더 무서운게 마피아였잖아요. 그 용기가 진짜 훌륭한거였고....
Falstaff님의 오늘 리뷰는 길지만 이 책의 그런 특징을 잘 전해주는 좋은 글이었습니다. ^^

Falstaff 2026-09-16 17:32   좋아요 0 | URL
유럽에는 저런 조형물이 있군요? ㅎㅎㅎ 몰랐습니다. 능률 지상의 우리나라에서는 상상하기 힘든데 말입니다.
아휴, 칭찬의 말씀 고맙습니다. 그저 잘 읽어주시는 것이 고마울 뿐이지요. ㅎㅎ
 
소금이 왜 바다에 있지
브리기테 슈바이거 지음, 박광자 옮김 / 지식을만드는지식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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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브리기테 슈바이거의 내력을 읽어보니 <소금은 왜 바다에 있지>와 딱 같다고는 할 수 없어도 상당한 부분이 섞여 있다. 이 책이 슈바이거의 첫번째 작품이어서 자신의 경험을 많이 포함시켰겠지. 브리기테 슈바이거는 1949년에 오스트리아의 작은 도시 프라이슈타트에서 출생했다. 우리가 아는 오스트리아의 대도시 빈과 짤스부르크 사이에 있는데, 직선 코스는 아니더라도 하여간 두 도시와 거의 비슷하게 떨어진 곳이다.

  책의 내용과 비슷한 건, 아버지가 소도시의 유지였던 의사라는 것과, 김나지움을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해 심리학, 독문학, 영문학 등을 공부했지만 다음 해인 1968년에 결혼을 하는 바람에 때려 치웠고, 4년 만에 이혼했다는 거. <소금이 왜 바다에 있지>는 주인공 화자인 ‘나’의 결혼 당시부터 이혼이 종결될 때까지를 그리고 있다.

  실제의 슈바이거는 1968년부터 72년까지 스페인 출신의 남편을 따라 마요르카 섬과 마드리드에서 살다가 73년 이혼하자마자 오스트리아 린츠에서 교육학을 공부한 반면에, 작품 속의 ‘나’는 결혼 이후에 줄곧 린츠에서 살다 이혼한다. 린츠? 출신지인 오버외스터라이히주의 주도이자 오스트리아 제3의 도시이며, 아름답기로 이름이 높아 모차르트가 자신의 서른여섯 번째 교향곡의 표제를 붙인 도시.

  나는 린츠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이니, 린츠를 발음하면 어딘지 밝은 기운이 나는 것 같아서, 좀 산뜻한 작품 아닐까 하는 기대도 했으나, 슈바이거는 생전에 책 속의 ‘나’처럼 우울증에 시달렸고, 신경정신과 쪽으로 질병이 있어서 2010년, 61세의 나이에 빈의 도나우 강변에서 익사체로 발견되었단다. 투신 자살로 판정해 종결한 걸로 보인다. 책에서도 ‘나’는 우울증에 시달리는 건 확실하고, 신경정신과 전문의가 입원을 권유할 정도는 아닌 약한 수준의 정신병을 앓고 있는 것 같다.


  ‘나’의 결혼생활을 그린 작품이란 건 위에서 이야기했다. 첫 장면을 결혼식 날 아침에 시작한다. 가족은 할머니와 부모, 그리고 ‘나’. 이렇게 4인 가족. 의사이자 동네 유지인 아버지는 어제 이발소에 가서 이발도 하고 면도도 깔끔하게 했다. 대개 남자들이 그렇듯이 벌써 식장에 들어갈 준비를 마친지 한참이건만 엄마는 오래 시간을 끌면서 꽉 끼는 드레스의 지퍼를 올리기 위해 애를 쓰다가 간신히 잠글 수 있었다. 할머니는 시실리 화산에 관광을 다녀온 이후에 관절염이 심해져 이젠 계단을 오르내릴 때는 비스듬히 발을 디뎌야 한다. 그래도 시간에 맞춰 아래층으로 내려왔는데, 정작 새신부인 ‘나’는 여전히 2층 ‘나’의 방에서 웨딩드레스를 입은 상태로 침대에 발랑 자빠져버렸다.

  남편 롤프. 아버지는 롤프가 참하고 괜찮은 녀석이라 하고, 어머니는 폴프를 보면 자랑스럽다는데, 할머니는 무엇보다 중요한 건 얌전한 혼인이라고 말한다. 근데, 할머니의 삶의 지표인 얌전함과, 이 ‘얌전한 혼인’은 얌전한 결혼식을 말하는 걸까, 아니면 얌전한 ‘결혼생활’을 말하는 걸까? 책을 다 읽은 다음에 생각해보면 좀 헛갈린다. 이것일 수도 있고, 저것일 수도 있다. ‘나’는 확실하게 얌전한 결혼식에 임하려 한다. 놀랍게도 1960년대 후반에 벌써 아무도 기대하지 못했는데, ‘나’는 말 그대로 남편이 될 롤프 외에는 성교를 해본 경험이 없다. 그러니 적어도 이쪽 방면으로만 말할 것 같으면 할머니가 바라는 대로 얌전한 신부인 건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이 결혼에서 독자가 제일 먼저 주목해야 할 것은, 주인공 ‘나’가 결혼식 하는 날 출발할 시간에 웨딩드레스까지 입은 상태에서 그냥 다시 침대에 벌렁 누워 버렸다는 거. 결혼식장에 가기 싫다는 말이다. 당신이 여성이라면 대부분 인생에 많아야 서너 번 밖에 없을 결혼식날, 웨딩드레스가 혹시라도 구겨질까봐 애달캐달 하는 게 정상 아닐까? 아니나 다를까, ‘나’는 절대로 하느님을 믿지 않지만 혼례미사 때 신부神父한테 거짓말을 해버린다. 신부가 뭐라 중얼거리더니,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또는, 죽음이 갈라놓을 때까지, 뭐 이런 질문이었겠지, 대답을 하라고 해서 얼떨결에 “예”라고 말해 버렸던 거다. 속마음은 “아니요”였음에도 그렇게 말했으니 틀림없이 거짓말, 십계명을 어긴 거다.


  롤프와 ‘나’의 친구 가운데 두 명을 소개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먼저 카를. ‘나’의 부모가 롤프에 대한 평가를 할 당시에 ‘나’가 전하는 부모의 의견을 말했더니 카를은 이렇게 말했다.

  “너네 부모님하고는 다르게 생각하지만 (결혼을 앞둔 너한테는) 노 코멘트.”

  카를은 대학을 졸업하고 학생들에게 인권을 가르치고 있는 교사. 인권 관련해서 실제로 지역에 있었던 인물과 사건을 예로 들었더니 아이고 이런, 그날 이후부터 교사들과 학생들 사이에서 외톨이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실제로 있던 일까지는 모르겠는데, 아직 직계가족이 생존해 있는 사람의 실명을 거론했으니 뭐 그럴 수도 있기는 하겠다. 카를은 시인. 자주 ‘나’에게 편지도 보내고 그러지만 그걸로 끝인 나이 많은 친구. 결혼을 하고 싶어하는 여성이 있어도 집안 반대가 심해 부부가 되지 못하니 그건 전적으로 카를이 알코올 의존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카를은 작품이 끝날 때쯤 자진해 알코올 치료 병동에 입원하고, 퇴원 후 2년 동안 술을 한 방울도 마시지 않으면 애인과 애인 가족이 결혼을 허락할 것이라는 기대에 차 있다.

  다른 한 명은 알베르트. 예전에 카를이 말하기를, 알베르트야말로 한 교실에 있는 게 창피하지 않은 유일한 친구, 라고 평가했다. ‘나’의 고종사촌, 고모의 딸 힐데와 연애를 했다. 힐데는 TV 아나운서를 꿈꾸었지만 그것도 딴따라라고 (1960년대니까) 집안에서 반대를 하는 바람에 깨끗하게 포기하고, 대신 크지 않은 집과 알베르트를 구입했다. 정말로 알베르트를 “구입했다”라고 슈바이거가 썼다.

  그런데 문제는 ‘나’가 롤프보다 알베르트를 훨씬 전부터 더 마음에 들었다는 점.


  왜 ‘나’가 롤프와 멀어졌을까? 롤프는 여전히 ‘나’를 사랑한다. 독자가 읽기에 그렇다는 것이지 정말 롤프의 마음이 그런 거란 말은 아니다. 롤프는 꽉 짜인 인생을 사는 인간형이다. 규격이 있으면 규격에 맞춰 자신의 삶 전체를 기획하고 실행하는 사람. 이것도 나쁜 삶이 아닌 것은 확실하지만 ‘나’하고는 극적으로 맞지 않는 취향인 걸 너무 늦게 알았겠지.

  롤프는 공대를 졸업했다. 1학기를 다니다가 자신이 의학에 더 흥미를 느낀다는 걸 알았지만 끝내 공과대학을 졸업한 걸로도 모자라 박사학위까지 취득했으며, 그것도 아쉬워 디플롬 엔지니어 Diplom-Ingenieur학위까지 얻어, 오스트리아의 국책 철강회사에 다닌다. 그러면서 몇 년 후에 어느 직급으로 승진하고, 또다시 몇 년 후에 임원, 중역이 되고 등등의 계획이 다 있다. 하지만 두 개의 학위를 취득한 날 ‘나’는 괜히 썰렁한 기분이 들어 이제는 화요일 저녁엔 더 이상 그와 잘 수 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을 정도이니 애초에 결혼을 하지 않아야 했던 것일 수도.

  결혼 전에 어느 날, 롤프의 팬티가 심히 거슬려서 고개를 돌리지 않을 수 없었으니, 이제 마법이 풀린 순간이었다. 마법이 사라지면 사랑은 어떻게 되지? 어떻게 되긴 어떻게 돼. 마법이 사라지면 사랑은 삶이 되고, 더 곰삭아서 정이 되는 거지. 원래 사랑의 유효기간이 그리 길지 않다는 건 다들 아시잖아? 사랑만 파먹고 살 수는 없어 다시 먹고 사는 삶이 이어지는 거고, 시간의 이끼가 부드럽게 껴서 “사랑보다 더 슬픈” 정이 돈독해져 평생 그걸로 사는 거지.

  그러나 아직 19세, 너무 젊거나 어렸던 ‘나’는 몰랐다. 스무살이 되고, 스물한 살이 되고 더 나이를 먹어도 롤프는 그저 돈을 벌어오는 남자일 뿐. 반면에 ‘나’는 다니던 대학도 때려치우고 한 남자의 살림 도우미, 즉 식모이면서 벌어오는 돈을 사용하는 창녀. 근데 창녀한테는 포주가 있어야 하는 법. 좋다, 포주는 롤프, 네가 해라. ‘나’는 의사가 된 알베르트와 정신없이 외도를 시현하기에 이른다.

  이 장면에서 ‘나’가 가사도우미와 창녀와 다를 바 없다는 걸 롤프에게 따지고 드는 일로 이 작품을 페미니즘 소설로 읽는 독자가 무척 많아 데뷔작임에도 출간과 더불어 오스트리아와 유럽에서 큰 선풍을 일으켰다는데, 그건 1970년대에 그랬다는 것이지, 지금 관점에서 보아도 페미니즘 소설로 읽힐까? 내가 읽기로는 그저 처음부터 잘못된 결혼이 망해가는 모습을 그린 소설인 것 같다. 롤프 입장에서는 애초에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 여자를 사랑해 결혼하고, 어쨌거나 돈을 벌어와 복지를 주면서 결혼 초부터 계속 삐걱거린 여자를 만나 이마에 뿔이 돋는 결과만 얻은 남자. 이를 전적으로 주인공 화자 ‘나’의 시각으로 보니까 원래 밴댕이 소갈딱지를 가진 속 좁은 남자로 보이는 불운한 사람이다. 이이가 정말 불운한 이유는 스포일러를 피하기 위하여 차마 밝힐 수 없어 아쉽다.

  작품의 앞 부분을 읽으면서 그냥 그런 소설, 별점을 잘 주어도 셋 정도로 여겼다가, 후반을 읽기 시작했는데, 확 느낄 수 있던 것은 건조하면서도 공감을 전해주는 문장이 매력적이라는 거. 신경이 서서히 몰락해가는 과정을 실감나게 묘사하는 것 등등, 명작은 아닐지언정 한 번 읽어볼 만한 소설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드릴 말씀은, 한 번 읽어보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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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리아스
호메로스 지음, 이준석 옮김 / 아카넷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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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 번째 읽는 <일리아스>일 듯하다. 중학생 때 처음 읽은 건 당시 수준으로는 꽤 두꺼운 책으로 헤라, 아테나, 아프로디테가 목동 파리스한테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니? 묻는 것부터 시작해 트로이 목마 사건에 이은 멸망까지 망라했으니 호메로스가 아니고 트로이 전쟁과 그리스 신화 같은 것을 소년들에게 소개할 수 있는 기획물이었을 것이다. 아직도 그 이야기가 재미 있어서 밤을 꼴딱 세우지는 못해도 늦은 밤까지 책을 들고 앉았던 것이 기억날 정도이니 처음부터 나는 <일리아스>에 폭 빠졌던 것이 틀림없다. 성인이 된 이후에 천병희와 유영의 번역서를 거쳐, 지금 호메로스 서사시 연구로 박사학위를 따고 현재 방송통신대학 교수로 재직중인 이준석의 번역으로 다시 읽었다.

  하지만 최근에 읽은 <일리아스>라고 해도 족히 10년은 넘어, 이제 이 책의 스토리는 삼천만의 기본상식이 되었을지언정 사실 정작 읽으려고 하면 무수하게 등장하는 신과 사람과, 특히 등장인물들의 전사前史에 관한 내용을 알지 못하면 지독하게 진도가 나가지 않을 터인데, 다행스럽게도 지난 10년 사이에 그리스의 다른 고전, 예를 들어 에우리피데스, 아이스퀼로스, 아리스토파네스 등을 통해 각종 버전의 트로이 전쟁 전후사에 대해 조금의 이해를 마련해 두어, 이번 이준석의 번역서를 읽으면서는 여간해서 각주를 읽지 않아도 무리가 별로 없었다. 이건 정말 기분 좋은 경험일 수밖에. 이 기분 좋은 감정을 유지하기 위하여 오히려 장면, 단락, 문장 하나하나를 꼼꼼하게 읽게 되어, 24권 754쪽을 읽는데 사흘 반을 사용했다. 문장마다 이 문장이, 지금 하고 있는 이야기가 인물의 어떤 전사, 또는 후사를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인지 음미할 수 있는 것, 이건 일종의 자잘한 기쁨이었을까?


  책을 읽자마자 스마트폰 앱 ‘북적북적’에 별 넷을 기록한 건, 일개 하찮은 독자에 불과한 내가 서양 문학의 고전 가운데 고전인 위대한 호메로스의 작품을 별 하나라도 훼손하려는 의도는 전혀 아니고, 기원전 5세기에 나온 창작물, 그리하여 이후 2천년 이상 수많은 예술작품의 영혼의 기원이 되어왔던 이야기라는 측면보다, 현재의 시점에서 본 ‘전쟁소설’ 또는 ‘전쟁 서사시’라면, 즉 호메로스라는 이름값을 빼고, 완전히 근현대인 입장에서 작품으로 읽었으면 어땠을까, 궁리했다는 뜻이다.

  도저히 그럴 수는 없지만 <일리아스>에서 신화를 제거하고 오직 인간들이 만드는 피 터지는 전쟁으로 본다면, <일리아스>는 오직 힘세고, 빠르고, 칼과 활을 잘 쏘는 영웅들의 싸움으로 일관한다. 갈등의 가장 큰 축은 그리스 군과 트로이아 군 사이의 다툼에 있는 것보다 더 크게, 작은 전투의 전리품이기도 했던 여자 포로를 빼앗아가고 뺏긴 아가멤논과 아킬레우스의 사이에 있다. 10년을 끌어온 전쟁의 명분 역시 트로이아의 왕자 가운데 한 명에 불과한 파리스가 스파르타를 다스리는 메넬라오스의 아내 헬레네를 꼬드겨 데려감으로써 그리스 연방에게 수치를 주었다는 거다. 즉 전쟁 발발부터 이들은 별로 중요한 것 같지 않은 명분으로 시작한다.


  여기에 신들이 개입한다. 그리스 쪽에는 헤라, 포세이돈, 이 막강한 신들을 포함해 아테네와 헤파이스토스가 붙고, 막강한 헤라, 포세이돈과 비교하면 아무래도 중량감이 떨어지는 아폴론, 아프로디테, 아르테미스, 아레스 등 A자로 시작하는 신들이 합세한다. 그리고 신들의 신 제우스. 이 양반은 겉으로 보면 트로이아를 슬쩍 미는 것 같지만 사실은 아킬레우스의 엄마이자 바다의 신 네레우스의 딸인 테티스의 부탁을 들어주었을 뿐, 은근히 그리스를 지지하는 것처럼 보인다.

  왜 신들을 언급하느냐 하면, 작품 속에서 신의 역할이 무엇인가, 하는 것 때문. 트로이아 군을 함빡 이끌고 그리스 선단 바로 앞까지 진출해 끝이 휘어진 그리스 배를 향해 횃불을 던지며 화공을 도모하는 트로이아 최고의 영웅 헥토르. 그가 쏟아지는 화살과 창날 속에서도 큰 부상을 입지 않고 선봉에 서서 숱한 그리스의 소영웅들을 도륙낼 수 있었던 건, 전쟁의 신 아레스가 활기를 부어 넣어주었기 때문이고, 부상을 입어 여차하면 마지막 치명적 일격을 당할 순간에는 아폴론이 짙은 안개를 부어 넣어 위기를 모면하게 해주었다, 하는 식으로, 작가가 스토리를 만들어가기에 가장 편한 장치를 마련해주는 역할을 한다. 에우리피데스의 전매특허였던 데우스 엑스 마키나 deus ex machina하고 비슷하지?

  작품의 대전환의 계기가 되는 것이 아킬레우스와 함께 전쟁에 나온 파트로클레스의 죽음. 아킬레우스는 파트로클레스의 죽음을 부여잡고 슬피 울다가 천추의 원수가 된 헥토르를 죽이기 위하여 잠도 안 자고, 밥도 한 그릇 안 먹고, 물이나 포도주 한 잔도 안 마신 상태에서 엄마 테티스 여신이 절름발이 대장장이 신 헤파이스토스한테 부탁해 가져온 투구와 갑옷을 떨쳐 입고 죽음을 모르는 명마가 이끄는 마차에 오른다. 근데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았으며 잠도 안 잔 필멸의 인간이 이런 상태로 전투를 할 수 있겠어? 이때 제우스가 등장한다. 모든 신의 아버지 제우스는 전령을 통해 신들의 음식인 넥타르 등의 즙을 짜 아킬레우스의 입에 흘려 넣는다. 그러니 아무리 끼니를 걸러도 사기 충천해 단칼에 트로이아의 영웅들을 도륙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일리아스>를 읽으면서 내가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던 동아시아의 소설이 있었으니 호메로스보다는 1천8백년 이후 사람인 나관중이 쓴 <삼국지연의>. 월탄 박종화 번역의 <삼국지>를 읽은 것이 우연하게 첫 <일리아스>를 읽은 해 여름방학 때였다. 이후 <삼국지> 번역본도 꽤 읽었다. 최근 번역은 민음사에서 최고 발행부수를 자랑하다가 지금은 판권계약이 해제된 이문열 평역. 번역과 평역은 많이 다르다. 월탄 번역에서는 황건적의 두령 장각이 환술, 요술 같은 것을 사용해 숱한 야수들을 불러 적진을 향해 돌진하게 만드는 반면, 이문열 평역은 해당 부분을 적절하게 자신의 시각으로 바꾸어 원본과 다른 장면을 만들어 낸다.

  아울러 월탄 번역에서는 다분히 도교적 장면도 속출한다. 도교? 맞다. 아니, 맞는 거 같다. 하도 오래 전에 읽어서 기억이 정확하지 않을 듯하다. 이런 장면이 <일리아스>에서 신들의 출현과 뭐가 다르냐, 하면 별로 할 말은 없지만, <삼국지>에서 환술, 요술과 도교적 상상의 세계는 말 그대로 조미료 수준이다. <일리아스>에서 신들이 하는 역할을 <삼국지>에서는 누가 할까?

  놀랍게도 군사軍師라고 일컫는 전략가의 몫이다. 조조한테 탈출한 유비가 관우, 장비를 만나 유표한테 몸의 의탁하자, 유표는 작은 신야성을 맡겼는데 여기서 만난 거의 최초의 전략가가 서서. 도무지 상대가 되지 않는 조조군의 대군이 짓쳐오니 서서는 긴 장대에 낫 비슷한 것을 매달아 유비군을 갈대밭 속에 숨겨 놓았다가 조조군이 행군할 때 적군의 발목을, 발목만 끊어 놓는다. 이거 그냥 두고 갈 수도 없잖아. 죽지 않고 번히 살아 있으면서 고통에 찬 비명을 지르는 전우를 어떻게 내버려둘 수 있겠느냐고. 그리하여 어쨌거나 승리 또는 조조군의 진격을 조금 멈춘 유비군은, 조조의 계략에 의하여 서서를 조조에게 넘길 수밖에 없는 처지에 이른다. 조조의 땅에 사는 늙은 서서의 엄마가 아들한테 자신을 보살피러 오라고 당부하는 거짓 편지를 보낸 거다. 덕의 사나이라고 지칭하는 유비가 어찌 안 보낼 수 있느냐는 말이지. (서서의 모친은 어머니를 모시기 위하여 달려온 아들의 어리석음을 크게 꾸짖고 스스로 목을 매어 자결한다.) 서서는 길을 떠나며, 죽어도 조조를 위하여 꾀를 내지 않을 것임을 맹세한 다음에 걸출한 전략가를 추천하니 그 사람이 바로 제갈량. 이후 <삼국지>는 유비, 조조, 손권 또는 유비, 관우, 장비의 무대에서 제갈량 1인 주인공의 극으로 완벽하게 전환한다. 진짜 제갈량의 독무대. 실제로 제갈량이 죽은 이후 <삼국지>는 무지 지루해진다. <삼국지>의 진짜 영웅은 힘세고, 칼과 창, 활에 능숙하며, 적장의 머리를 단칼에 베는 장수들이 아니라 전략가들이라는 점을 지금 강조하고 있는 거다.

  하지만 <일리아스>에서는 전략가들의 지략 대결을 전혀 볼 수 없다. 조조 측에서는 가후, 정욱, 순욱, 순유. 유비 측의 제갈량, 방통, 마량. 손권 측의 주유, 노숙, 육손. 이런 인물들은 그리스의 여러 도시에서도, 불쌍한 프리아모스 왕의 수하에서도 딱 한 명씩 밖에 없다. 그리스 군의 네스토르와 트로이아 군의 플뤼다마스. 하지만 이들은 전력가라기보다 예언자에 가깝다. 그나마 그리스 군은 네스토르의 조언에 귀를 기울리건만, 트로이아는 현명한 예언자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 전통이 있다. 그래서 망하는 것이지만, 위대한 호메로스는 이것이 다 정해진 운명을 따르는 순서로 생각하는 것 같다. <일리아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필멸의 인간이 맞을 운명. 이건 신의 뜻도 아니다. 신조차 이 운명을 어길 도리가 없었으니, 이 그리스 신들의 전통은 수백년이 지나고 등장할 기독교에서도 예외가 아니었을 걸?

  하여간 전략이 없는 전쟁소설을 읽는 건 그리 매력적이지 못하다. 오직 기운 센 천하장사, 무쇠로 만든 주먹과 깡통 머리통만 가진 영웅들의 난투극. 저 앞에서 말했듯 스마트폰 앱 북적북적에서 별 넷을 준 이유, 즉 별 하나를 제할 수밖에 없던 이유는, 전쟁에서의 전략의 부재 때문이었다. 하다못해 매복도 없고, 화공도 없고, 협공도 없고, 동맹군 간의 이간도 없는 전쟁극.

  물론 호메로스의 작품을 이렇게 볼 필요는 없겠다. 그리고 <일리아스> 역시 딱 한 번 읽고 내버려 둘 작품도 아니다. 이 책 한 권을, 특히 동양의 독자가 한 번 읽고 그걸 기념할 수 없을뿐더러, 만일 나처럼 소년을 위해 읽히기 편하게 편역한 책이 아니고, 천병희나 이준석의 원본 번역을 처음 접했다면, 7백쪽이 넘는 분량을 한 방에 읽기도 쉽지 않을 듯하다. 그래도 읽는 게 훨씬 좋다. 이후 독서량이 늘어감에 따라 저절로 트로이아 전쟁 앞뒤 이야기를 보탤 수 있게 될 것. 그럴 때 다시 읽으면 첫번째보다 훨씬 맛나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말이 필요없는 명작. 한 번 읽고 말 책도 아니고, 지금 읽은 것이 인생의 마지막 <일리아스>도 아닐 필생의 책일 수도 있는, 책 중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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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6-09-14 08:0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글에 별 10개를 드리고 싶습니다. 날들이 ‘‘니가 뭐라고?‘해도 어쩔 수 없고요. 동서양을 넘나들며 두 작품을 비교하는 능력에 감탄하고 그 내용에 정말 공감합니다.
저도 이번에 오뒷세이아 삼독하면서 그리스 고전을 계속 읽은 보람이 있었다는 걸 느꼈거든요.
조만간 일리아스도 재독해봐야겠어요.

Falstaff 2026-09-14 19:20   좋아요 1 | URL
아이쿠.... 낮술에 까무러쳐서 지금에야 깼습니다. 큰일이네... 밤 잠은 어쩌지요?
페넬로페 님 댓글을 읽으니까 어깨가 으쓱으쓱, 별 10점이 아무나 받는 게 아니잖아요. 그저 고맙습니다. ㅎㅎㅎ
근데 이번에 일리아스를 읽으면서 진짜 아쉽더라고요. 물론 결국 목마라는 전략으로 이기기는 했지만 그건 책에 나오는 분량이 아니라서 말입죠. 그리스 이야기가 늘 그렇더라고요. 사건의 중간부터 툭 떨어져 나와서 끝까지도 아니고 얼핏 마무리되기 전까지 딱 잘라서 작품을 쓰는 거. 오이디푸스도 그랬고, 안티고네도 그렇고... ㅎㅎㅎ

호시우행 2026-09-15 07: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항상 읽더라도 그때마다 느낌이 다를 유익한 고전이지요.

Falstaff 2026-09-15 17:54   좋아요 0 | URL
아휴, 그럼요.

잠자냥 2026-09-15 11: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어린 시절에 축약본으로 읽은 거 빼고) <일리아스>를 지금까지는 두 번 읽었는데 아직까지도 그 매력을 딱히 모르겠더라고요. 이건 <오디세이아>도 마찬가지입니다. 신들의 놀이터에서 조종당하는 무기력한 인간이란 존재.... 그렇다면 인간이 살아가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건 맥락상 폴스타프 님이 별 넷 주신 이유랑 비슷하네요) 아무튼 그런 정도로밖에는 읽히지 않아서 그냥 제가 아직 부족한가보다 하고 있습니다. ㅎㅎ

Falstaff 2026-09-15 17:58   좋아요 0 | URL
아무리 세계 명작이라도 싫으면 싫은 것이지요 뭐.
전 일리아스, 중딩 때 읽었을 때는 정말 껌벅 죽어 넘어갔는데요, 점점 나이 들면서 조금씩 생각이 달라지더라고요. 다 인생입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