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아들
데니스 존슨 지음, 박아람 옮김 / 기이프레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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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희망도서는 전반적으로 망쳤다. 작년에 신청했던 책이 예산 부족으로 올해 이월되어 한 방에 여러 권의 책을 받았는데, 어제 아침에 읽은 데니스 존슨, 어제 저녁 때 읽은 고바야시 다키지는 확실히 망했다. 오늘 쉬고 내일 읽을 조지 엘리엇도 기대 난망이다. 그래도 사람들이 괜히 조지 엘리엇, 조지 엘리엇 하겠어? 조금 기대를 해봄직 하지 않을까? 미치너가 뽑은 영국 최고 소설가 4인방 가운데 한 명이란 이름값을 믿어본다. 4인방이 누구냐고? 제인 오스틴, 조지 엘리엇, 조지프 콘래드, 그리고 헨리 제임스. 이번 달에 엘리엇을 읽고 다음 달엔 콘래드를 읽을 예정. 그건 그렇고 누가 헨리 제임스의 <황금잔>을 다시 번역해주지 않으려나…. 

  어째 책 이야기는 하나도 하지 않고 딴 말만 하고 앉았지? 그렇게 보이지?

  맞다. 읽기는 읽었는데 뭐 도무지 할 얘기가 없네.

  약쟁이들 이야기. 내가 약쟁이 소설을 경원하는 건 아닌데, 모르긴 해도 책방에서 특별히 나를 위한 목록이라고 권하는 리스트를 보고 호기심이 동해 며칠 뜸을 들이다가 도서관에 사달라고 신청한 건 맞는데 책을 받아서 기쁜 마음으로 펼친 순간, 어머, 이게 뭥미? 책이 왜 이래? 설마 로렌스 스턴처럼 등장인물의 사망을 조의하기 위하여 한 페이지를 통째로 검정색으로 도배해 놓은 것을 본받아 검정 무늬만 있는 페이지로 작가가 독자에게 무언의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거 아닐까? 이를테면 약을 코로 들이마시거나, 복용하거나, 수액으로 정맥에 주입하거나 또는 알코올이라는 약한 C2H5OH 용액을 구강을 통해 벌컥벌컥 마신 후의 애매몽롱함 같은 느낌을 구현한 걸까? 만일 그런 것이 아니라면 출판사가 페이지 수를 늘리기 위해 꼼수를 쓴 것뿐이라고 단정할 수밖에 없을 텐데, 설마 그럴 리가.

  그런데 더욱 중요한 건, 내가 지금 이런 페이지 같은 하드웨어 이야기로 독후감을 질질 끌고 있는 것도 사실은 책을 읽기는 읽었건만 정작 하고 싶은 말이 하나도 없다는 거다.

  알코올 남용자를 비롯한 약쟁이들의 비교적 순한 이야기들. 저 1940년대 잭 케루악이나 윌리엄 버로스 같은 선배 약쟁이들하고 비교하면 그동안 세월이 많이 독해졌음에도 그래도 순둥이 약쟁이들이 자기 발로 치료소에도 들어가고 뭐 개선해보려고 애도 쓰는 거 같은데, 하여간 어떤 형태의 중독이라도 사고는 피할 수 없는 거니까. 게다가 나 스스로 가운데 중과 약할 약자를 쓰는 중약급 알코올 의존증이 있어 이런 종류의 소설은 읽기가 불편하다. 책 속에 담긴 작품들처럼 극단적으로 짧은 소설도 좋아하지 않는 것도 큰 이유가 되겠지.

  아, 몰라, 몰라. 하여간 다 읽었다. 반나절은커녕 두 시간도 걸리지 않은 거 같은데 무지하게 지루하게 읽었다. 독자를 위해 추천하는 AI를 아직까지는 믿을 수 없군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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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6-04-22 10: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 희망(도서)에서 절망(도서)으로 나락으로... 망한 도서 목록이네요. ㅋㅋㅋ

잠자냥 2026-04-22 10: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니 근데 문제의 이 책이 -2026 서울국제도서전 한국에서 가장 재미있는 도서-로 꼽혔다는 거 아닙니까! ㅋㅋㅋㅋㅋㅋㅋㅋ
저 소식 보고... 엥? 심사위원들이 다 약빨았나 싶었습니다요. ㅋㅋㅋㅋㅋㅋㅋㅋ

참고 링크

https://sibf.kr/62/103

Falstaff 2026-04-22 11:04   좋아요 0 | URL
sibf.kr
흠. 어딘지 알 거 같네요.
거기... sibalfxxk 의 줄임말입니다. ㅋㅋㅋ

잠자냥 2026-04-22 11:23   좋아요 0 | URL
🤣🤣🤣🤣👏👏
 
사랑의 한 페이지 빛소굴 세계문학전집 12
에밀 졸라 지음, 이미혜 옮김 / 빛소굴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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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밀 졸라의 루공-마카르 총서 여덟번째 작품. 아델라이드 푸크가 마카르와의 혼인 외 관계로 얻은 1남 1녀, 앙투안 마카르와 위르실 마카르 가운데 딸, 위르실이 모자 제조공 무레와 결혼해 고향 마르세유에서 낳은 외동딸 엘렌을 둔다. 이 엘렌 무레 그랑장이 루공-마카르 총서 8번 <사랑의 한 페이지>의 주인공으로 출연한다.

  부유한 제당업자의 아들 샤를 그랑장은 불같이 엘렌을 사랑하여 결혼하기로 결심을 했지만 아버지 그랑장씨는 엘렌의 집이 너무 가난해서 결혼을 결사 반대하는 바람에 이들은 비밀결혼을 치룰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마르세유에서 숨어 근근하게 살다가, 고맙게도 친척 아저씨가 죽으면서 남편인 샤를에게 연 1만 프랑의 연금을 상속해주어 부부는 한 방에 팔자가 피었다. 연금이 생기고 제일 먼저 감행한 일은 부부가 외동딸 잔을 데리고 지긋지긋한 마르세유를 탈출, 파리 교외 언덕의 깨끗한 집으로 옮기는 일이었다.

  이때 엘렌이 열일곱 살(오타 같음. 확인 후 수정 예정), 샤를은 스물세 살. 잔이 아홉 살쯤 됐으려나. 지금 살고 있는 트로카대로 언덕 위에 있는 4층 집으로 옮기기 전에 잠깐 바르 호텔에 머물기로 했었는데, 파리에 도착한 다음날 기쁜 마음으로 파리 구경을 하려 외출을 나갔다가 감자기 남편 샤를 그랑장이 병에 걸려 1주일 동안 고통스러운 투병 끝에 숨을 거두어, 졸지에 과부와 고아가 되어버렸다. 그리하여 막이 올라가면 모녀는 검은 상복을 입고 있다.


  이 작품의 문제는 딸 잔. 아이의 엄마 엘렌은 균형잡힌 아름다운 몸매를 가지고 있는 당당하고 키도 크고, 금빛 도는 밤색 머리가 마치 해라 여신을 연상시킬 만한 미인에 건강체질이지만, 잔은 죽은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병약한 체질과 격세유전으로 넘어왔는지 정신적으로 문제도 있었고 결국 결핵으로 일찍 생을 마감한 할머니를 닮아 매우 예민하고 신경질적이며 엘렌이 다스릴 수 없을 정도로 감정의 폭이 커서 자주 폭발하는 성격에다가 질투가 엄청나다. 아마 증조할머니 아델라이드 푸크가 중증 정신병으로 정신병원에 몇십년 간 강제 입원했던 형질도 잔을 피해가지 않았던 모양이다.

  첫 장면이 바로 이 잔이 언덕 위의 4층 과부 엘렌의 집에서 수면 중에 근육수축, 경련, 경직, 동공개방과 체온상승을 겪는 것으로 시작한다. 얼음장 같은 2월 밤. 엘렌은 하녀 로잘리를 시켜 늙은 주치의 보댕의사를 데려오라 하지만 아무래도 자기가 직접 뛰어갔다 오는 편이 빠를 것 같다. 그래 지금 당장 입고 있는 실내복에 숄 하나만 걸치고 맨발에 실내화를 신은 채로 보댕박사 댁으로 뛰어갔으나, 박사는 임산부의 해산을 도와주기 위해 왕진을 가 새벽에나 돌아올 것 같다고 한다. 그리하여 넋이 빠진 엘렌은 그 밤에, 그것도 겨울 밤에 만나는 사람마다 다른 의사를 어디에 가면 만날 수 있는지 묻고 또 묻는다. 그러다가 번쩍 든 생각이, 자기가 지금 살고 있는 집의 건물주이자 바로 앞에 면한 집의 주인 드베를 씨가 의사라는 것이 생각났다. 엘렌은 서둘러 그 집의 초인종을 누르고, 집 안에서는 늦은 밤에도 불구하고 35세쯤 보이는 갸름한 얼굴과 잿빛 눈, 엷은 입술을 한 잘 생긴 의사 앙리 드베를이 나타난다.

  앙리 드베를의 눈앞에 몸이 눈부시게 드러난 여성이 서 있다. 숄이 흘러내려 벌어진 실내복 사이로 가슴이 노출되고, 팔도 드러났지만 정숙하고 바른 몸가짐에서 품위가 배어나오는 모습. 보댕의사가 말하는 바에 따르면 앙리 드베를은 아버지 드베를로부터 150만의 재산과 상류고객을 물려받은 실력있는 의사라고 한다. 드베를의 세심한 치료와 처치로 잔은 정상을 찾아가고 그래도 불안한 엘렌은 드베를에게 밤새 환자의 곁을 자신과 함께 지켜주었으면 한다. 그리하여 환자와 젊은 남녀, 이미 사랑과 정욕을 아는 남녀 둘이 아침이 밝아오도록 한 밀폐된 장소에서 있게 되는데, 첫날이라서 그저 바라만 보고 있었고, 가끔 볼이 따뜻해질 정도였다. 아침이 되자 잔은 정상을 되찾아 다시 예의바른 아이가 됐고.


  의사가 치료를 해준 것도 모자라 바로 옆집에 사는 건물주. 감사 인사차 방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하여 검정드레스를 입은 모녀가 드베를가의 초인종을 누르고, 집사의 인도로 응접실에 들어가니 여주인 쥘리에트 데베를과 일곱 살 정도의 버릇없는 아들 뤼시앵, 쥘리에트의 여동생 폴린과 폴린의 아버지 르텔리애씨, 집안의 가난한 옛친구이자 노처녀인 오렐리양이 함께 있었다.

  크림전쟁 전 프랑스에서 연수 1만 루블이 얼마정도의 수입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엘렌과 잔 그랑장 집안에 비할 수 없을 정도의 부르주아 가정인 드베를 가문의 안주인 쥘리에트는 자유분방하고 호들갑스러우며 어떤 행사를 치루더라도 자신이 주도하고 싶어하는 외향적 성격이다. 즉 이 동네 사교계를 쥐락펴락하고 있다 해도 별로 어색하지 않은 인물. 20대, 많으면 30대 초반 정도로 당시 기준에 인생의 절정기에 도달해 있는 여성. 그리하여 유혹도 많겠지. 이 가운데 한 명이 드베를 가문과 친한 잘 생긴 청년이자 독설가 부르주아 말리뇽씨. 저 뒤로 가면 언젠가는 젊은 말리뇽과 하여튼 사고 한 번 치겠다는 생각이 독자의 머리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그런데 쥘리에트 여사가 엘렌과 잔에게 좋은 인상을 받았다. 자기 커뮤니티의 중요한 한 명으로 만들려는 듯. 그래서 이날부터 엘렌과 잔은 드베를 집안의 정원과 응접실을 무람없이 드나들 수 있는 권리, 자격을 갖게 되어 쥘리에트와 더욱 돈독한 정을 나눌 수 있고, 동시에 합법적으로 남편 앙리 드베를 씨와 열정적인, 간혹은 불타는 정염의 눈길 살짝 나눌 수도 있었다.

  소설에서 이런 사전 작업이 몇 페이지에 이르면 당연히 언젠가는 한 번 화르륵 불이 붙는 법이니 독자는 기대를 해도 좋다. 개봉박두.


  한편 엘렌의 집에서는 남편 그랑장이 죽을 때 미사를 집전한 주브 신부와 신부의 동생인 랑보 씨가 매주 화요일 저녁 7시에 와서 함께 식사를 하는 것이 관습이 됐다. 뜻은 엘렌의 외로움을 달래주기 위하여라는데 목적은 아무래도 엘렌과 랑보 씨를 엮어주려 하는 것 같다. 랑보 씨가 비록 나이 차이는 좀 있지만 사람이 진중하고, 친절하고, 진지하며, 하여간 작품이 끝날 때까지 상당한 신사로 어디 한 군데 까탈을 잡기 어려운 신의 있고 점잖은 사람 중에서도 점잖은 사람이다.

  엘렌도 랑보씨를 좋아하기는 하지만 연인이나 남편감이 아니라 의지할 수 있는 남자, 편한 남자, 속상한 거 있으면 털어놓을 수 있을 것 같은 남자 정도로 생각해 그의 청혼에 대한 대답은 무기 연기 중이다. 랑보씨도 십년이 지날지라도 그때까지 기다리겠노라고 묵묵히 견디고 있다.

  어때, 소설 읽은 짬밥으로 보면 결국 이 커플이 이루어지겠지? 물론 지지고 볶는 과정을 다 극복하고 나서. 안 알려준다.

  근데 이번 주 화요일 식사 후에 주브 신부가 엉뚱한 말을 엘렌한테 한다.

  “가난한 교구민 페튀 할멈이 아주 아픈 모양입니다. 문안 한 번 가면 좋아할 거예요.”

  그리하여 엘렌은 다음 날 지저분하고 냄새나는 진흙길을 따라 허물어져 가는 외딴 집에 들르는데, 정말 해골 같은 할멈이 얼굴만 퉁퉁 부은 모습으로 엘렌을 보자마자 궁상스런 수다를 떨어대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때맞춰 드베를 의사까지 집에 들어온다. 아마도 드베를 의사가 아직 젊어서 정의로운의사협회 회원 정도 되는 모양이다. 할멈이 보기에, 엘렌이 먼저 무너져가는 집에 들어오고 이어서 곧바로 의사가 뒤를 따라 들어왔다. 그리고 척 보니 둘이 이미 알고 지내는 사이가 확실한데 좋은 쪽으로 알고 지내는 사이로 보인다. 속으로 꿍얼거렸겠지. “내가 나이가 몇 갠데, 척 보면 알지.” 그리하여 두 사람에게 외치다시피 큰 목소리로 말하기를:

  “아, 두 분은 잘 어울려요. 내가 그런다고 언짢아하지 마세요. 그게 사실이니까.”


  이 페튀할멈. 잉글랜드의 디킨스 소설에 나와서 극을 전격적으로 뒤집어 버리는 잠깐의 역할, 소위 트리거 역이다. 할멈의 활동영역이 (연인들이 한 달 정도 방을 빌려 러브호텔로 쓰기도 하는)자기집 부근, 성당과 공동묘지 인근이다. 이곳들을 돌아다니면서 수십년 동안 발달시켜온 눈치 하나로 온갖 사람들한테 부정과 불륜과 기타 등등을 마치 관심 없는 척하며 지도 편달하는 데 도가 텄다. 그래 눈치 하나는 9단 정도. 이 할멈은 성당 계단 밑에 앉아서 벌써 쥘리에트와 말리뇽이 이제 익을대로 농익어 손만 대면 톡 터질 정도라는 것도, 엘렌과 앙리 드베를 역시 단지 시간 문제일 뿐이라는 것도 훤하다.

  하지만 할멈도 몰랐겠지. 엘렌과 앙리 사이에는 절대의 장벽, 자신의 질병이 오히려 더 그들을 감시하고 관계를 멀어지게 하는 무기로 삼는 잔이 있다는 것을.

  지나가면 다 한 시절, 한 페이지일 뿐이다. 삶도 한 페이지, 사랑도 한 페이지. 이제 석양이 물든 파리를 내려다보며 한 시절, 한 사랑이 다 간 것을 그저 내려다볼 수 있을 때까지, 소설은 진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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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6-04-21 09: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페튀할멈 짜증나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에잇 요망한 할망구 ㅋㅋㅋㅋㅋ

Falstaff 2026-04-21 17:09   좋아요 1 | URL
ㅎㅎㅎ 워쩝니까 그래도 할망구 없으면 소설이 콱 막힐 텐데요.
 
헤르쉬트 07769 (양장) 알마 인코그니타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지음, 구소영 옮김 / 알마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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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 B, C, D, E, F, G, H

  알파벳 H는 여덟번째 나온다. 독일지역에서 머리통 박박 밀고 검은 가죽 자켓을 입었으며 몸 일부에 피어싱을 한 건장한 청년이 울뚝불뚝한 이두박근에 88을 문신했으면, 그건 우리나라처럼 88 서울올림픽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HH, 하일 히틀러, Heil Hitler를 외치는 네오 나치의 일원일 확률이 대단히 높다. 마찬가지로 18이라 새겼으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대중적으로 사용하는 욕설이 아닌 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를 의미한다. 지금은 모르겠는데 이 사람들은 신발도 옆구리에 N자가 박힌 미제 운동화 뉴발란스 제품을 즐겨 신는단다. N이 ‘나치’의 첫 글자라서. 타이완 소설가 천쓰홍의 작품 <귀신들의 땅> 주인공 텐홍의 애인 T가 네오 나치의 일원으로 등장하면서 설명한 내용이다. 88은 <헤르쉬트07769>에 나온다.

  보통의 독일인 또는 독일의 지배하에 있던 동유럽 몇몇 국가의 시민들에게는 이 네오 나치에 의하여 저질러지는 집단행동, 반유대주의, 난민유입 반대, 테러리즘 같은 것을 상당한 위기의식을 갖고 지켜보고 있는 듯하다. 크러스너호르커이는 말한다. 화가 지망생이었던 오스트리아의 키 작은 군인, 히틀러 상등병의 집단도 처음엔 한줌밖에 되지 않는 볼품없는 무리에 지나지 않았다고. 실제로 네오 나치를 자칭하는 이들은 집단으로 움직이면서 군대 비슷한 조직을 구성해 폭력과 강도 등 불법행위도 서슴지 않아 시민들의 삶을 불편하게 한다니 생활의 큰 위협이긴 할 터이다.


  구 독일의 동독 출신 사람, ‘오시’라고 낮추어 부르는 말을 간혹 듣는 이들은, 상대적 박탈감과 서독 자유주의에 익숙하지 않아 생기는 자존감 결여, 상대적 빈곤감 등의 통일 후유증에서 아직도 ‘완전히’는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작가는 이런 지역 정서를 극대화하기 위하여 <헤르쉬트07769>의 무대를 바흐의 출생지 튀링겐 자치주 내 가상의 작은 마을 카나로 정했다.

  이 카나가 인구도 별로 없고 크기도 작은 산골 마을이지만 그래도 카나 오케스트라와, 분데스리가는 아니더라도 하부 축구 리그도 운영하고, 꽤 오래된 성당도 있는 곳이다. 한 시절 도자기 공장을 건설해서 모자라는 인력을 충원하기 위하여 형제의 나라인 공산주의 베트남 인들을 들여와 일을 시키기도 했지만 독일 통일 전에 사업이 번창하지 못해 지금은 거의 다 자기나라로 돌아가버린 상태이다. 그들이 살던 8층짜리 좁은 아파트 “호흐 하우스”도 공장과 더불어 낡아버렸지만 보수하고자 하는 마음도 별로 없어서 엘리베이터가 여간해 작동하지 않는다. 낡고, 생산품도 없는 산골마을. 자연경관도 그리 볼만하지 않아 간혹 관광객 몇 명이 와서 길어야 두세 밤만 자고 가는 곳. 이런 마을의 세계적 공통점이 하나 있다. 연령층이 높다는 것. 그래서 이들 주민에게 네오 나치의 출현은 더욱 두려움과 반발의 대상이었다.

  근데 젊은 청년이 이 호흐 하우스 꼭대기 8층에 산다. 이이의 이름이 바로 플로리안 헤르쉬트.


  카나에 있는 리히텐베르크 중등학교 건물에 시민을 대상으로 하는 일종의 교양 강좌인 시민대학이 개설되어 학교에서 물리학을 전공한 늙은 쾰러 강사가 “현대물리학의 행로들”이란 제목으로 강좌를 열었다. 플로리안 헤르쉬트로 말할 것 같으면 일종의 유로지비 비슷한 면이 있다. 거대한 덩치와 상상을 불허하는 완력을 가지고 있지만 마음이 여려 사나운 개와 모진 사람들을 무서워해 얼핏 보면 벌벌 떠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이웃들이 힘든 일을 도와달라고 하면 군소리 없이 어떤 일이 됐든 깔끔하게 마무리할 때까지 성실하게 일을 끝내 거의 모든 사람들한테 바른생활 청년으로 귀여움을 받는다. 물론 대가로 소소한 먹을 거리나 편의를 얻기도 한다. 책 좀 읽은 사람들은 이런 인물이 등장하면 언젠가 한 번 거창하고 파괴적인 힘을 제대로 구사하겠구나, 생각하실 걸?

  유로지비 비슷하다니까 머리가 좀 모자라다고 볼 수도 있다. 사실이 그런 거 같다. 본인도 알고 있어서 무엇을 배우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 그래서 쾰러 씨의 강좌 “현대물리학의 행로들”을 수강했으며 강의 중에 ‘소립자의 놀라운 세계’가 인상 깊었는데, 얼마만큼이었느냐 하면, 진짜로 놀라운 세계라서 한 학기를 더 수강했다. 쾰러 씨도 흡족했겠지?

  플로리안이 배운 바에 따르면 빅뱅 이전인가 이후인가 하여튼 그날 아침이나 저녁 때, 진공상태에서 10억개의 물질입자와 반물질입자가 서로 막 부딪혀 결국 제로, 진공을 만들고 있었는데, 10억 한 개 째의 물질입자가 말썽이었다. 이것과 대응해 공空, 없음의 상태로 이끌 반물질이 생성되지 않은 거였다. 그리하여 평형이 깨지는 결과의 중대한 파급력으로 이 잉여 때문에 급기야 세상의 종말이 초래될 수 있다는 급박한 위기의식을 느끼게 된다.

  순진하고 성스러운 바보 플로리안 헤르쉬트는 이 문제가 하도 엄청나서 해결을 위하여 반드시, 적어도 UN의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다루어야 할 터인데, 독일 내에서 안전보장이사회의 안건으로 제안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한 명, 스스로 과학자이기도 했던 앙겔라 마르켈 총리 말고는 없었다. 그리하여 플로리안은 이런 내용을 꼼꼼하게 적어 앙겔라 마르켈 총리에게 길고 긴 편지를 부친다. 단 편지 봉투에 보내는 사람의 주소는 쓰지 않고 딱 이렇게 적어 놓았다.

  “헤르쉬트 07769”

  07769는 카나 지역의 우편번호. 카나에서 헤르쉬트는 딱 한 명, 자기밖에 없으니 만일 총리가 답장을 한다면 틀림없이 자신이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총리한테 굳이 자기 이름까지는 밝힐 필요 없겠지 싶다.

  플로리안이 유로지비의 일원임이 분명하다. 그는 자기가 보낸 편지는 틀림없이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읽어볼 것이고, 여사 또한 과학자이니 사안의 심각성을 단박에 이해해 자기 의견을 받아들여 UN 안전보장이사회에서 토의할 것을 제안했거나, 벌써 비밀리에 전지구를 위협하는 평형의 깨짐 상태를 해결할 모종의 연구나 대처가 진행중일 거라고 여긴다.


  플로리안은 작품을 시작할 당시엔 10대 후반으로 보인다. 카나에서 청소, 그냥 청소부가 아니라 특별 청소, 예를 들어 벽에 스프레이로 낙서한 소위 그래피티 예술을 칭한 장난이나 시설에 어울리지 않는 바닥의 오염 같은 걸 전문으로 청소하는 업체의 사장 ‘보스’ 당연히 따로 이름이 있지만 그냥 보스라고 불리고 자기도 별명에 감정이 없어 그렇게 불리는 걸 받아들이는 보스가 예나의 고아원, 라니스 킨더하임에서 10대 중반의 건장하고 힘이 장사인 플로리안을 데려와 자기 조수로 삼았다. 당연히 변변치 않은 임금을 주고 잘 부려먹었지. 대신 호흐 하우스 8층에 작은 방을 얻어 주었는데 플로리안은 난생 처음 생긴 자기 방, 자기 집, 자기 영역이 그렇게 좋을 수 없어서 보스에게 충성을 다 한다.

  다만 사리 판단에 문제가 있는 플로리안은 보스가 카나 지역의 대표적인 네오 나치, 이른바 군대의 대장 지위에 있는 줄은 모른다. 보스는 플로리안더러 자기 군대에 입대하라고 재촉하지만 그건 마땅하지 않다. 거기 가입하면 피어싱과 문신을 해야할 터, 플로리안은 특히 문신이라면 아주 질색이다. 겁이 난다. 거기 구성원들도 성격이 우락부락하고 거칠어 정이 도무지 가지 않는데, 몸집 작은 여자 카리가 특히 그렇다. 눈치 챘어? 나중에 카리하고 뭔 문제가 생길 거라는 거?

  카나의 나이 든 주민들은 플로리안을 좋아하지만 플로리안이 모시고 있는 보스는 철저하게 경계하고, 경원하고, 의심한다. 그가 데리고 있는 부대원들도 마찬가지다.

  근데 카나를 포함한 예나, 아이제나흐, 에어프루트, 고타, 줄 지역에서 감히 이곳 출신의 대 작곡가 악성 바흐와 관계된 건물에 스프레이로 “우리”라고 쓴 옆에 늑대 대가리를 그리고 도망가는 일이 속출한다. 보스가 바흐 추종자이다. 감히 튀링겐의 아버지이자 독일 정신의 창조자이며 (플로리안 생각엔) 우주적 파괴의 궁극적 해결인 바흐를 훼손하려는 행위를 참지 못해, 자기 군대를 동원해 스프레이어를 잡고자 하지만 실패한다.


  반면 주민들은 나치 아이들이 늘상 저지르는 테러의 일환으로 바흐와 성당에 낙서를 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당연히 지시는 보스가 한 것으로. 바흐를 연주하기 위하여 카나 오케스트라를 만든 보스인데도. 그때 워낙 네오 나치에 의한 파괴행위가 극을 달했기 때문에 그랬겠지. 이렇게 오해가 다른 오해를 만들고, 튀링겐 지역에서는 이 오해에 겹쳐 팬데믹이 창궐하기 시작한다. 카나의 산에서는 19세기 말에 멸종했으나 복원사업으로 개체가 생기기 시작한 늑대가 그곳까지 들어와 선량한 유대인 도서관 사서 링어 부인의 가슴과 목을 물어뜯었고, 아내를 보호하려던 링어 씨의 등짝까지 물어 부상을 입히는 일이 벌어진다. 엎친 데 덮친 꼴로 보스의 군대 가운데 제일 골통인 위르겐이라는 쓰레기는 보스와 플로리안의 단골 주유소, 휘발유보다는 커피가 맛있어 자주 들르는 아랄 주유소의 트란실바니아 출신 안주인 나디르를 겁탈했거나 하려다가 남편 로자리오가 휘두르는 쇠뭉치에 맞아 크게 다치는 일이 발생한다.

  이게 작품의 모든 것이 크게 바뀌는 전환점이다. 이 사건을 중심으로 작품은 갑자기 바뀌는데, 작품이 바뀐다는 건 당연히 주인공의 성격이 돌변한다는 것과 같은 뜻이다.

  보스와 군대는 쓰레기이기는 하지만 어쨌거나 자기편 위르겐을 위무하기 위하여 아랄 주유소를 폭발시켜버리며 이 사건으로 플로리안과 친했던 나다르-로자리오 부부가 불타 죽는다. 카나는 이제 안으로는 보스가 이끄는 군대에 의한 테러, 밖으로는 팬데믹의 확산, 역사적으로는 사라진 늑대의 출현과 공포에 휩싸이게 되는데, 이것이 묵시록적인 종말론? 거기까지는 모르겠고, 그래서 플로리안은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답장을 받았다는 거야, 못 받았다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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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4-23 11: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6-04-23 16: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타임퀘이크
커트 보니것 지음, 유정완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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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트 보니것 탄생 백주년 기념으로 2022년에 문학동네가 찍은 보니것의 마지막 소설책. 진짜 마지막은 아니고 이 책 찍은 다음에 보니것이 앞으로는 소설을 쓰지 않겠다고 했단다. 이때가 1997년이니까 그의 나이 일흔 넷? 다섯? 하여간 그 근방. 70대 중반에 접어든 보니것이 소설을 써 보니 이젠 힘이 달려 은퇴를 선언했겠지. 잘 했다.

  근데 돌려 생각해보면 보니것 자신이 썼지만 읽어보니까 이젠 더 이상 예전과 비교하지 못할 정도라고 생각한 건 아닐까? 뭘 비교하느냐고? 뭐든지. 하여간. 그래서 딱 지금이 은퇴하기 좋은 시간이란 걸 알아차리고 재빨리 그만 쓰기로 했다면, 비록 작품은 장난기 그득한 촌철살인으로 메워져 있지만, 현명한 판단이라고 생각한다. 무릇 노인이란 물러날 때를 알아야 존경이고 뭣이고 간에 얻어 받을 수 있는 거다. 그걸 놓치면 소위 노추老醜, 노망난 꼰대 취급이나 당하는 것이다.


  수십억 년 전 텅 빈 공간에서 빅뱅, 꽈과광 폭발이 일어나 찬란하게 우주가 탄생했다. 그랬다는 거다. 정말 빅뱅이 있었는지 누가 봤어? 사진이라도 찍은 거 있냐고. 그냥 과학자들이 그렇게 추리하는 바에 따르면 그렇다는 것이지. 아, 그렇다고 하늘에 게신 우리 아버님이 만든 건 아닌 거 같다.

  커트 보니것의 우주도 물리학자들의 우주 기원설에 입각해 빅뱅이 터진 다음에 한 순간도 빼지 않고, 순간도 순간 나름이라 지금 얘기하는 건 퀙토세컨드quectosecond 즉 10의 -30제곱 초의 시간도 쉬지 않고 계속 팽창했고, 지금도 열라 팽창 중이다. 근데 우주가 잠깐 경기가 났는지 고뿔이라도 걸렸는지 잠깐 딸꾹, 뒷걸음질, 즉 순간적으로 팽창 대신 아주 잠깐, 진짜 잠깐 수축하는 일이 있었는데, 이때 지구에서 어떤 현상이 벌어졌느냐 하면, 글쎄 시간이 10년 뒤로 훌쩍 넘어가버렸다. 그래서 사람들은 1991년 2월 17일부터 2001년 2월 13일, 1년에서 사흘 모자란 기간을 다시 한번 살아야 하는 운명에 처했던 거다.

  그리하여 지구상 모든 생물체는 10년 전에 이미 겪었던 것을 그대로 다시 한번 당해야 했는데, “(경마장에서)또다시 엉뚱한 말에 돈을 걸고, 또다시 엉뚱한 사람과 결혼하고, 또다시 임질에 걸리고, 무슨 일이건 한번 더!”(p.14)


  우주가 잠깐, 퀙토세컨드 정도의 시간 살짝 팽창으로 포기하고 수축하는 순간 땅이 진동한 수준을 넘어 시간이 움찔, 경련을 일으켜 10년 세월 뒤로 물러서버렸으니, 죽었던 사람도 무덤에서 벌떡 일어나거나 화장로에서 엉금엉금 기어나왔다고? 그건 아니다. 죽은 사람은 정말 짜증나게시리 죽을 때 고통을 다시 한번 또 겪어야 하는 팔자가 되어 버렸다. 오, 나 죽은 다음엔 결코 이런 일 생기지 않기를! 아무 생각 없이 책을 따라가면 혹시 백투더퓨처, 10년 전에 내가 저지른 과오를 올바르게 되돌릴 기회가 있으려나, 싶기도 하겠지만, 그런 기대는, 예전엔 이런 표현도 썼는데, “깨몽”, 꿈 깨시라. 사는 동안 행복한 법은 없으니 인간들 앞에 기다리고 있는 건 그저 생로병사의 고달픔뿐일 걸?

  소설이기는 하지만 화자는 틀림없이 작가 커트 보니것 본인일 터. 그가 말하고 있는 시점, 오늘은 1996년 11월 12일이다. 즉 타임퀘이크가 있고 5년 여가 흘렀을 때. 그의 나이 일흔네 살. 커트 보니것의 아빠도 이름이 커트인 건 아시지? 그래서 이이는 커트 보니것 주니어인데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은 그냥 ‘주니어’라고만 부른다. 물론 보니것 면전에서 그냥 주니어라고 해버리는 간 큰 인간은 없고, 자기들끼리 이야기할 때 그렇게 부른다. 누가? 보니것의 장성한 여섯 자식들이. 이 가운데 셋은 암에 걸려 일찍 죽은 누이동생의 아이들로 동생이 죽은 다음에 입양한 조카들이고 나머지 셋은 진짜 자기가 낳은 아이들이다. 이 책에서 사용하는 문법으로 말하자면 “내 아내의 산도에 사정을 해 만든” 자식들.


  타임퀘이크가 발생한 내력과, 10년 전으로 돌아가 고스란히 과거의 경험을 똑같이 당해야 하는 걸 설명하는 프롤로그가 끝나면 당연히 본문이 나온다.

  이제부터 독자는 그동안 커트 보니것이 책을 통해 주구장천 주장해왔던 이야기들을 한 번 더 들어야 한다. 제일 먼저 등장하는 인물이 물리학자 고 안드레이 사하로프. 망상에 빠진 소비에트 연방을 위해 수소폭탄을 만들고 그 폭탄을 확실하게 작동하게 하고, 그 후 핵무기 실험 중단을 요구한 공로로 1975년애 노벨 평화상을 받은 인물. 이에 소련 당국은 사하로프를 반체제 인사로 구분해 연방과학원에서 추방, 당연히 모스크바에서도 쫓아내 저 초라한 동토의 마을로 유배해버렸다. 세상의 눈이 있어 그러지 못해 망정이지 하마터면, 시절이 스탈린 체제였다면, 얄짤없이 죽였을 걸? 보리스 파스테르나크도 그랬잖아. 노벨문학상을 받게 되니까 한다는 말이, 동무, 가서 노벨상 받고 싶으면 받으시오. 다만 한 번 나가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오. 알아서 기시오. 사하로프도 결국 오슬로에 가지 못하고 소아과 의사였던 아내 옐레나 본네르가 대신 가서 받았다.


  사하로프 동무는 실화. 근데 다음 건 어디서 읽어본 것 같기는 한데 실화인지 픽션인지 모르겠다.

  미군 폭격기 조종사의 어머니 이름이 조이 피터슨. 조종사는 자신의 애기에 페인트로 ‘조이스 프라이드’라 이름을 써 붙였다. 이 인간은 1945년 8월 어느 날 이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떨어지고, 전쟁은 서류에 서명하는 일 빼놓고 거의 끝난 상태인데, 승전이라는 훌륭한 과업을 완수한 양키들을 위한 심심한 감사의 표시이자 이제는 쇼 비즈니스로 접어든 축제 삼아 무지하게 커서 도저히 폭탄 투하실에 싣지 못하는 대용량의 원자폭탄 ‘개쌍놈’을 폭격기 배 아래에 붙들어 매고 요코하마로 날아가던 중, 거의 다 가서, 즉 요코하마 상공까지 오기는 왔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니지 싶어 하늘에서 그대로 유턴, 출격했던 바날룰루 기지로 귀환해버렸다.

  당연히 지시 불이행 또는 항명 또는 반역의 죄목으로 영창에 수감됐고, 이어 열린 바날룰루 군사법정에서 “어머니가 그렇게 하길 바랐을 것이기 때문에” 유턴해 돌아왔다고 최후진술을 했다. 이어 재판장이 형을 선고하려는 순간, 태평양 바닥에 거대한 균열이 생겨 바날룰루 군사법정, 폭격기 조이스 프라이드, 사용하지 않은 원자폭탄 ‘개쌍놈’과 그밖의 모든 것을 삼켜버렸다.

  이 요코하마 원자폭탄 개쌍놈 이야기는 커트 보니것의 페르소나인 킬고어 트라우트, 일찍이 <챔피언들의 아침식사>에 등장해 117편의 장편소설과 5천편의 단편소설, 물론 이 가운데 거의 대부분이 야설이긴 하지만 어쨌든 막강한 필력을 과시하던 소설가가 쓴 <타임퀘이커1> 가운데 <웃음거리 아님>에 나오는 에피소드이다.


  이렇게 2차 세계대전 이야기가 나온 김에 보니것의 대표 서사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서사인 반전 메시지가 등장하고, 특유의 아이러니와 블랙 유머를 동반한 문화비평이 한 줄로 죽 늘어선 장편소설. 그리하여 장편소설이라고 해도 특별한 서사가 있는 것이 아니라 순간순간 파편의 연속으로 그가 주장하는 메시지를 독자는 알아서 읽어야 한다. 그럼 뭐 같겠어? 그려, 단편소설을 주욱 나열한 연작.

  웃기는 얘기 많다. 예를 하나 들어볼까?

  “여러분이 부모님을 정말 괴롭히고 싶다면, 그럼에도 동성애자가 될 만큼 배짱이 두둑하지 않다면, 최소한으로 할 수 있는 게 바로 예술 분야로 진출하는 겁니다.”


  킬고어 트라우트가 즐겨 쓰는 말이 “땡그랑, 땡그랑”이다.

  미국 대서양변 경치좋은 제너두에 미국문학예술협회가 건설한 창작을 위한 건물이 있었던 모양이다. 트라우트가 거기 헤밍웨이 실에서 책도 읽고 글도 쓰면서 지냈을 당시, 2001년 조개구이 파티에서 들은 이야기.

  한 도망자가 여자 사는 집으로 숨어 들어갔다. 집이 마치 성당처럼 생겨서 서까래가 그대로 보이게 지었는데 아뿔싸, 시간 맞춰 경찰들이 집집마다 도망자를 찾으러 검문을 하다 드디어 이 집에 도착했다. 도망자가 잽싸게 서까래 위에 숨었으나, 저걸 어째, 그의 초대형 불알이 서까래 아래로 축 늘어져 눈에 훤히 보이더라고. 경찰이 여자한테 수상한 사람 봤냐고 물어보니까, 여자는 능청맞게 못 봤단다.

경찰 하나가 서까래 아래로 늘어진 불알을 보더니 저게 뭐냐고 물었는데, 집이 성당처럼 생겨서 여자가 중국 범종이라고 했다. 경찰은 여자의 말을 그대로 믿었다. 그러면서 자기가 평소 소원이 중국 범종을 한 번 쳐보는 거란다. 그 소리를 듣고 싶었다고. 경찰이 경찰봉으로 불알을 세게 툭 쳤는데도 소리가 나지 않았다. 당연하지 살가죽에 부딪혀봤자 무슨 소리가 나겠어? 그래서 경찰이 더 세게, 다시 훨씬 더 세게, 또다시 몹시 세게 불알을 때렸더니 도망자가 이렇게 소리쳤다나?

  “땡그랑이다, 이 개자식아!”


  뭐 재미있는 장면만 소개하자면 그렇다는 거다. 아쉬운 건, 예순세 개의 에피소드와 에필로그가 거의 이 비슷한 톤이라는 거. 그래서 어느 순간이 되면 재미있기보다 좀 지루해진다. 이 단계를 지나도 마찬가지이고 더 나아가면, 커트 보니것, 은퇴하는 거 잘 생각했구나, 라는 생각까지 든다. 보니것의 영원한 팬인 내가 이런 생각이 들었으니 그건 보니것을 위한 일종의 걱정이었을 거다. 그렇게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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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6-04-17 09: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보니것의 팬인데 이 분 책이 좀 호불호가 생기더라구요. 읽다보면 농담이 좀 지겨워진달까? ㅎㅎ

Falstaff 2026-04-17 16:18   좋아요 0 | URL
ㅎㅎㅎ 맞습니다. 어쩔 수 없어요. 나이 들면 곱게 가는 게 최선입니다.

yamoo 2026-04-17 1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니것은 일단 평타는 칩니다. 소설이든 에세이든. 아주 인상적이지가 않은 게 흠. 저도 보니것 소설과 에세이 몇 권 읽어본바 보니것의 촌철살인은 처음에는 신선하지만 자꾸 읽으면 깊이 빠지는 뭐 그런거..ㅎㅎ 최고 작품은 아직 못 만나 봐서 최고로 좋은 한 권만 제외하고 이제 정리하려고 합니다..^^

Falstaff 2026-04-17 16:21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요. ㅋㅋㅋ
그래도 필립 로스 열 명하고 보니것 한 명 하고는 바꾸지 않을 겁니닷! ㅎㅎㅎ
 
한때 흑인이었던 남자의 자서전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8
제임스 웰든 존슨 지음, 천승걸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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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이 수정헌법에 의해서 노예를 해방시킨 1865년에서 불과 6년 더 지난 1871년에 플로리다 잭슨빌에서 태어난 제임스 웰든 존슨. 당시 잭슨빌은 부르주아들의 유명 여름 휴양지였는데 그중에서도 세인트 제임스 호텔이 꽤 고급이었던 모양이다. 존슨의 아버지는 이때 그곳에서 수석 웨이터 일을 하고 있던 혼혈 흑인이었다. 엄마는 바하마 출신으로 서인도제도의 백인을 포함해 모든 유색인종의 유전인자까지 가지고 있어서, 제임스 존슨은 아프리칸 미국인 가운데 그나마 덜 검은 피부를 가진 것처럼 보인다. 태어나면서부터 자유인이었던 존슨은 애틀랜타 대학에서 학사 학위를 받았으니 졸업했다고 봐야 하는데, 졸업 후 음악, 특별히 작곡에 자질이 있는 동생 로자몬드와 함께 뉴욕으로 가서 유색인종의 지위향상을 위하여 조직을 만들어 일을 했다. 플로리다 출신이라 스페인어를 습득할 수 있었을 것. 존슨은 루스벨트 대통령의 선거 보좌진으로 들어가 공을 세웠던지 당선 후 7년간 베네수엘라와 파라과이의 영사를 지내기도 했다.

  시민권 운동도 하고, 할렘 르네상스 시대를 맞아 흑인예술이 만개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는데 아쉬움이 없었다는데, 뭐 남의 나라 작은 역사 부스러기를 기억할 필요가 있을까 싶기도 하다. 그러면서 위키피디아 기록에 의하면 딱 한 편의 소설을 완성했으니 그게 바로 <한때 흑인이었던 남자의 자서전>이다. 미국에서는 대단한 유명인사 가운데 한 명. 그의 이름을 딴 일련의 작업을 보더라도:


  2007년 애틀란타 에모리대학, 제임스 웰던 존슨 인종과 차이 연구소

  메릴랜드 볼티모어 고핀 주립대학 내 제임스 웰던 존슨 빌딩 건축

  플로리다 존슨빌 그의 출생지에 제임스 웰던 존슨 중학교

  플로리다 세인트피터스버그 소재 제임스 웬던 존슨 커뮤니티 도서관

  1988년 2월, 미국 우정국, 존슨 사진 우표 발행

  2020년 플로리다 잭슨빌의 헤밍 공원 이름을 제임스 웰던 존슨 공원으로 개명

  2021년 메인주. 6월 17일을 제임스 웰던 존슨 연례 기념일로 제정.


  핫따. 이 정도면 자기 이름 하나는 확실하게 남겨놨군. 죽은 다음에 이런 거 부질없다, 부질없어. 그러거나 말거나, 이런 존슨의 행적은 이 “한때 흑인이었던 남자”의 이야기와 전적으로는 아니지만 그리 연관되지 않으니 굳이 알 필요 없다. 근데 왜 이리 장황하게 소개를 했느냐 하면, 이거라도 쓰지 않으면 독후감 분량이 너무 적어질 것 같아서.


  “한때 흑인이었던 남자”라고 하니까 지금은 적어도 흑인이 아니라는 말씀. 흑인이 아니면 그새 백인이라도 된 거야? 아니다. 흑인에서 사람으로, 백인도 백인에서 사람으로 되는 것처럼. 물론 이 책 나온 시점이 1912년 또는 1927년이라 아직도 버스에 백인 남자가 탔는데 흑인 임산부가 앉아 있으면 버르장머리 없다고 무차별 폭행을 당하던 시기라 정확히 맞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그저 그런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는 선언이겠지. 1920년대에는 아.마.도. 백인이 타는 버스, 흑인이 타는 버스가 따로 있어서 이런 불상사도 없었을 것 같지만. 여전히 흑인은 백인과 비교해 어리석기 짝이 없고, 마땅한 결론을 내릴 전두엽이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백인이 늘 돌보고, 지도해주고, 귀여워해야 그나마 자기 생을 살아갈 수 있는 고등한 미개 영장류 정도로 여겼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1865년 흑인 해방 이전에도 주로 합중국 북부에 산포해 있었을지언정 자유신분증을 품에 가지고 다니며 여러 사업을 벌여 돈 푼 깨나 벌어서, 좋은 집에 아이들 교육도 빵빵하게 잘 시킨 백인들 사교계에 말석이기는 하지만 기웃거릴 정도의 중산계급 정도는 벌써 발생한 상태였다. 이들 바로 밑으로는 탁, 떠오르는 작가가 있지? <패싱>을 누가 썼더라? 맞아, 넬라 라슨. 라슨의 작품에서 본 적 있는 밝은 피부의 유색인. 그래서 자신을 백인이라고 주장하고 싶어했던 주인공들의 안간힘이라니. 하지만 이 책이 그 정도까지는 아니다.


  주인공 화자 ‘나’. 남북전쟁이 끝난 후 몇 년 지나지 않아 조지아주의 작은 도시에서 출생했다. 어린 시절이라 어렴풋하게만 기억나는데 앞마당에 꽃밭이 있던 작은 집. 집 뒤켠 헛간에 큰 빨래통이 세 개 있었으니 이 빨래통은 평생에 걸친 혐오품목 1호에 오른다. 엄마가 ‘나’를 발가벗겨 통이 집어넣고는 하도 박박 문질러 때를 벗기면 아예 껍데기가 홀랑 까지는 것처럼 얼마나 아팠는지.

  이 시절을 기억하면 어머니와 검은 콧수염을 얍삽하게 기른 키 큰 남자가 보인다. 2~3주에 한 번 집에 올 때마다 ‘나’에게 5센트짜리 동전을 주고는 했다. 그가 마지막으로 오던 날에는 ‘나’를 무릎 위에 앉히더니 10달러 금화에 구멍을 내고 줄로 꿰어 ‘나’의 목에 걸어주었다. 10달러 금화 목걸이는 이후 ‘나’의 인생에 절반을 넘어 매달리게 되고 아직도 작은 보석함에 보관하고 있다.

  이 백인 남자. 독자가 척, 보니까 당연히 ‘나’의 아버지. 이른바 생부다. 혼자 사는 확실한 흑인 여성, 그러나 피부가 까맣지는 않고 옅은 갈색으로 보이지만 누가 봐도 흑인이라고 할 정도의 피부색을 가지고 있는 여성과 혼인을 전제로 하지 않고, 사랑, 사랑? 사랑 까지는 턱도 없이, 그저 마음에 들어 내연의 관계를 갖다 보니 아들이 하나 생기게 된 것처럼 보인다. 그래도 백인 남자가 아주 막 나가는 인종이 아니라서 다른 보통의 흑인가족에 비하면 상당히 여유있는 환경에서 살게 해주었다. 여자도, 아이도 그 당시에, 그러니까 19세기 미국 남부 조지아주에서 2층집에 살며 피아노를 연주할 수 있었다면 말 다 한 거 아냐? 게다가 ‘나’는 작가 제임스 웰던 존슨의 친동생 존 로자몬드 존슨처럼 피아노 연주를 비롯한 음악 일반에 굉장한 재능을 가지고 있어서 클래식부터 재즈, 래그타임까지 연주하지 못하는 장르가 없다. 당연히 이 피아노 솜씨와 음악적 재능은 앞으로 ‘나’가 배를 곯을 일이 별로 없을 것임을 미리 알려주게 된다.


  키 큰 백인이 ‘나’에게 목걸이를 만들어준 날, 어머니와 ‘나’는 존슨빌을 떠났다. 마차로 서배나에 가서 다시 증기선을 타고 도착한 곳이 뉴욕. 거기서 또 마차로 코네티컷의 작은 도시로 갔는데, 그곳이 이른바 소년시절의 고향이 된다. 거의 모든 기억이 남아 있는 장소. 거기가 고향이지.

  어디서 살았느냐 하면, “호사스러울 정도로 잘 갖춰진 조그만 독립가옥. 그리고, 그랜드피아노는 아니지만 새 피아노도 있다. 이 집에서 ‘나’는 옷도 잘 차려 입어 자부심도 빵빵해져 마치 완벽한 꼬마 귀족이 된 기분이었다. 이 집에서 본격적으로 피아노 교습도 받았다. 글공부도 시작했는데, 음악이나 글이나 ‘나’는 전체를 한 덩어리의 그림으로 여겨 ‘나’가 생각하는 의미로 재구성하는 것이 재미 있었다. 쉬운 얘기로, ‘나’가 대단히 똑똑하고 뭐든지 잘 배우는 신동이었다고 겁나게 잘난 척하는 중이다.

  아홉 살 때 학교에 입학했다. 학교는 검은 피부와 갈색 피부를 가진 남녀 학생도 섞여 있었다. 많이 검지는 않지만 눈이 초롱초롱하게 빛나는 아이도 있어서 ‘나’는 그를 “빛나”라고 불렀는데 세월이 가면서 진짜 이름을 잊었다. 훗날, 한 삼십 년가량 흐른 다음에 좋은 자리에서 다시 만난 기회가 있었으니 그때도 ‘나’는 그를 “어이, 빛나! 오랜만이네.”라고 인사할 예정이다.

  ‘나’는 학교 성적은 우수했지만 워낙 장난이 심해 품행성적이 좋지 못했다. 제일 특별한 학생은 당연히 빛나였지만, 피부색 때문인지 아무리 특출해도 좀 업신여김을 받는 듯했다. 그러던 어느 날 교장이 교실에 들어와 백인 학생들은 전부 나가고 유색인 학생만 남아 있어요, 라고 지시를 했다. ‘나’는 당연히 주섬주섬 ‘나’의 소지품을 챙겨 교실 밖으로 나가려는데, 인자한 담임선생이 ‘나’의 팔목을 잡더니, 너는 여기에 있어야겠다, 라고 하는 거였다. 아오, 이런 수치가.

  학교가 파하고 당장 집으로 뛰어가 거울을 본다. 곱슬곱슬 흘러내리는 검은 머리카락. 상앗빛 피부, 아름다운 입매에 크고 촉촉한 눈. 깊고 검실검실한 눈썹. 엄마한테 달려가 묻는다.

  “말해줘 엄마! 내가 깜둥이야?”

  어머니 눈에 눈물이 고인다. ‘나’가 묻는 질문에 정확한 대답은 아니다.

  “아니, 엄마는 백인이 아니야. 하지만 네 아버지는 이 나라에서 가장 훌륭한 사람 중 한 분이셔. 네 몸 속에는 남부의 가장 훌륭한 피가 흐르고 있어. 아버지가 누구인지는 나중에 이야기해주마.”


  백인 친아버지는 어머니한테 편지라도 받았는지 정말로 코네티컷의 작고 화려한 집에 와서 자기가 아버지임을 말한다. 그래서 이제 ‘나’는 흑인, 정확하게 아프리칸 아메리칸은 아니지만 유전자 속에 흑인의 인자가 어쨌든 포함되어 있다는 걸 알고, 본격적으로 흑인 커뮤니티 안에서 살게 된다.

  작가 제임스 웰던 존슨이 성공한 유색인이라 주인공인 ‘나’도 인생이 우리가 흔히 소설책에서 보는 대다수의 흑인처럼 짜부러들지 않는다. 교육도 마치고, 애틀랜타 대학에 입학하러 갔다가 입학금 전액을 도둑맞아 빈털터리가 되어도 ‘나’한테는 피아노 연주 솜씨가 있으니. 하여간 그 재주 때문에 파리에도 가고, 런던과 암스테르담, 독일 구경도 하면서 여러나라의 언어도 습득한다. 파리의 오페라 공연장에서는 아내와 딸을 동반해 관람석에 앉아 있던 친아빠도 만난다. 눈길을 마주치지는 못했지만. 사랑도 하고, 어여쁜 백인 소프라노 부잣집 아가씨와 연애도 하고, 결혼도 한다.

  그리하여 결론은? 저 앞에 써 놓았다.

  스토리만 이렇게 써 놓아 재미있어 보일 지 모르지만, 작품의 반은 에세이다. 에세이로 쓰면 재미가 적을 것 같아서 소설 형식으로 쓴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이런 논의를 21세기에 읽는 건 그리 즐거운 경험이 아니다. 동양 사람들 눈꼬리나 옆으로 찢지 말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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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26-04-16 12: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Falstaff님 덕분에 책 한 권 읽은 기분입니다. 스스로는 찾아 읽지 않을 책을요. 감사합니다.^^

Falstaff 2026-04-17 03:56   좋아요 1 | URL
ㅎㅎ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