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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흑인이었던 남자의 자서전 (무선)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8
제임스 웰든 존슨 지음, 천승걸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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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수정헌법에 의해서 노예를 해방시킨 1865년에서 불과 6년 더 지난 1871년에 플로리다 잭슨빌에서 태어난 제임스 웰든 존슨. 당시 잭슨빌은 부르주아들의 유명 여름 휴양지였는데 그중에서도 세인트 제임스 호텔이 꽤 고급이었던 모양이다. 존슨의 아버지는 이때 그곳에서 수석 웨이터 일을 하고 있던 혼혈 흑인이었다. 엄마는 바하마 출신으로 서인도제도의 백인을 포함해 모든 유색인종의 유전인자까지 가지고 있어서, 제임스 존슨은 아프리칸 미국인 가운데 그나마 덜 검은 피부를 가진 것처럼 보인다. 태어나면서부터 자유인이었던 존슨은 애틀랜타 대학에서 학사 학위를 받았으니 졸업했다고 봐야 하는데, 졸업 후 음악, 특별히 작곡에 자질이 있는 동생 로자몬드와 함께 뉴욕으로 가서 유색인종의 지위향상을 위하여 조직을 만들어 일을 했다. 플로리다 출신이라 스페인어를 습득할 수 있었을 것. 존슨은 루스벨트 대통령의 선거 보좌진으로 들어가 공을 세웠던지 당선 후 7년간 베네수엘라와 파라과이의 영사를 지내기도 했다.
시민권 운동도 하고, 할렘 르네상스 시대를 맞아 흑인예술이 만개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는데 아쉬움이 없었다는데, 뭐 남의 나라 작은 역사 부스러기를 기억할 필요가 있을까 싶기도 하다. 그러면서 위키피디아 기록에 의하면 딱 한 편의 소설을 완성했으니 그게 바로 <한때 흑인이었던 남자의 자서전>이다. 미국에서는 대단한 유명인사 가운데 한 명. 그의 이름을 딴 일련의 작업을 보더라도:
2007년 애틀란타 에모리대학, 제임스 웰던 존슨 인종과 차이 연구소
메릴랜드 볼티모어 고핀 주립대학 내 제임스 웰던 존슨 빌딩 건축
플로리다 존슨빌 그의 출생지에 제임스 웰던 존슨 중학교
플로리다 세인트피터스버그 소재 제임스 웬던 존슨 커뮤니티 도서관
1988년 2월, 미국 우정국, 존슨 사진 우표 발행
2020년 플로리다 잭슨빌의 헤밍 공원 이름을 제임스 웰던 존슨 공원으로 개명
2021년 메인주. 6월 17일을 제임스 웰던 존슨 연례 기념일로 제정.
핫따. 이 정도면 자기 이름 하나는 확실하게 남겨놨군. 죽은 다음에 이런 거 부질없다, 부질없어. 그러거나 말거나, 이런 존슨의 행적은 이 “한때 흑인이었던 남자”의 이야기와 전적으로는 아니지만 그리 연관되지 않으니 굳이 알 필요 없다. 근데 왜 이리 장황하게 소개를 했느냐 하면, 이거라도 쓰지 않으면 독후감 분량이 너무 적어질 것 같아서.
“한때 흑인이었던 남자”라고 하니까 지금은 적어도 흑인이 아니라는 말씀. 흑인이 아니면 그새 백인이라도 된 거야? 아니다. 흑인에서 사람으로, 백인도 백인에서 사람으로 되는 것처럼. 물론 이 책 나온 시점이 1912년 또는 1927년이라 아직도 버스에 백인 남자가 탔는데 흑인 임산부가 앉아 있으면 버르장머리 없다고 무차별 폭행을 당하던 시기라 정확히 맞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그저 그런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는 선언이겠지. 1920년대에는 아.마.도. 백인이 타는 버스, 흑인이 타는 버스가 따로 있어서 이런 불상사도 없었을 것 같지만. 여전히 흑인은 백인과 비교해 어리석기 짝이 없고, 마땅한 결론을 내릴 전두엽이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백인이 늘 돌보고, 지도해주고, 귀여워해야 그나마 자기 생을 살아갈 수 있는 고등한 미개 영장류 정도로 여겼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1865년 흑인 해방 이전에도 주로 합중국 북부에 산포해 있었을지언정 자유신분증을 품에 가지고 다니며 여러 사업을 벌여 돈 푼 깨나 벌어서, 좋은 집에 아이들 교육도 빵빵하게 잘 시킨 백인들 사교계에 말석이기는 하지만 기웃거릴 정도의 중산계급 정도는 벌써 발생한 상태였다. 이들 바로 밑으로는 탁, 떠오르는 작가가 있지? <패싱>을 누가 썼더라? 맞아, 넬라 라슨. 라슨의 작품에서 본 적 있는 밝은 피부의 유색인. 그래서 자신을 백인이라고 주장하고 싶어했던 주인공들의 안간힘이라니. 하지만 이 책이 그 정도까지는 아니다.
주인공 화자 ‘나’. 남북전쟁이 끝난 후 몇 년 지나지 않아 조지아주의 작은 도시에서 출생했다. 어린 시절이라 어렴풋하게만 기억나는데 앞마당에 꽃밭이 있던 작은 집. 집 뒤켠 헛간에 큰 빨래통이 세 개 있었으니 이 빨래통은 평생에 걸친 혐오품목 1호에 오른다. 엄마가 ‘나’를 발가벗겨 통이 집어넣고는 하도 박박 문질러 때를 벗기면 아예 껍데기가 홀랑 까지는 것처럼 얼마나 아팠는지.
이 시절을 기억하면 어머니와 검은 콧수염을 얍삽하게 기른 키 큰 남자가 보인다. 2~3주에 한 번 집에 올 때마다 ‘나’에게 5센트짜리 동전을 주고는 했다. 그가 마지막으로 오던 날에는 ‘나’를 무릎 위에 앉히더니 10달러 금화에 구멍을 내고 줄로 꿰어 ‘나’의 목에 걸어주었다. 10달러 금화 목걸이는 이후 ‘나’의 인생에 절반을 넘어 매달리게 되고 아직도 작은 보석함에 보관하고 있다.
이 백인 남자. 독자가 척, 보니까 당연히 ‘나’의 아버지. 이른바 생부다. 혼자 사는 확실한 흑인 여성, 그러나 피부가 까맣지는 않고 옅은 갈색으로 보이지만 누가 봐도 흑인이라고 할 정도의 피부색을 가지고 있는 여성과 혼인을 전제로 하지 않고, 사랑, 사랑? 사랑 까지는 턱도 없이, 그저 마음에 들어 내연의 관계를 갖다 보니 아들이 하나 생기게 된 것처럼 보인다. 그래도 백인 남자가 아주 막 나가는 인종이 아니라서 다른 보통의 흑인가족에 비하면 상당히 여유있는 환경에서 살게 해주었다. 여자도, 아이도 그 당시에, 그러니까 19세기 미국 남부 조지아주에서 2층집에 살며 피아노를 연주할 수 있었다면 말 다 한 거 아냐? 게다가 ‘나’는 작가 제임스 웰던 존슨의 친동생 존 로자몬드 존슨처럼 피아노 연주를 비롯한 음악 일반에 굉장한 재능을 가지고 있어서 클래식부터 재즈, 래그타임까지 연주하지 못하는 장르가 없다. 당연히 이 피아노 솜씨와 음악적 재능은 앞으로 ‘나’가 배를 곯을 일이 별로 없을 것임을 미리 알려주게 된다.
키 큰 백인이 ‘나’에게 목걸이를 만들어준 날, 어머니와 ‘나’는 존슨빌을 떠났다. 마차로 서배나에 가서 다시 증기선을 타고 도착한 곳이 뉴욕. 거기서 또 마차로 코네티컷의 작은 도시로 갔는데, 그곳이 이른바 소년시절의 고향이 된다. 거의 모든 기억이 남아 있는 장소. 거기가 고향이지.
어디서 살았느냐 하면, “호사스러울 정도로 잘 갖춰진 조그만 독립가옥. 그리고, 그랜드피아노는 아니지만 새 피아노도 있다. 이 집에서 ‘나’는 옷도 잘 차려 입어 자부심도 빵빵해져 마치 완벽한 꼬마 귀족이 된 기분이었다. 이 집에서 본격적으로 피아노 교습도 받았다. 글공부도 시작했는데, 음악이나 글이나 ‘나’는 전체를 한 덩어리의 그림으로 여겨 ‘나’가 생각하는 의미로 재구성하는 것이 재미 있었다. 쉬운 얘기로, ‘나’가 대단히 똑똑하고 뭐든지 잘 배우는 신동이었다고 겁나게 잘난 척하는 중이다.
아홉 살 때 학교에 입학했다. 학교는 검은 피부와 갈색 피부를 가진 남녀 학생도 섞여 있었다. 많이 검지는 않지만 눈이 초롱초롱하게 빛나는 아이도 있어서 ‘나’는 그를 “빛나”라고 불렀는데 세월이 가면서 진짜 이름을 잊었다. 훗날, 한 삼십 년가량 흐른 다음에 좋은 자리에서 다시 만난 기회가 있었으니 그때도 ‘나’는 그를 “어이, 빛나! 오랜만이네.”라고 인사할 예정이다.
‘나’는 학교 성적은 우수했지만 워낙 장난이 심해 품행성적이 좋지 못했다. 제일 특별한 학생은 당연히 빛나였지만, 피부색 때문인지 아무리 특출해도 좀 업신여김을 받는 듯했다. 그러던 어느 날 교장이 교실에 들어와 백인 학생들은 전부 나가고 유색인 학생만 남아 있어요, 라고 지시를 했다. ‘나’는 당연히 주섬주섬 ‘나’의 소지품을 챙겨 교실 밖으로 나가려는데, 인자한 담임선생이 ‘나’의 팔목을 잡더니, 너는 여기에 있어야겠다, 라고 하는 거였다. 아오, 이런 수치가.
학교가 파하고 당장 집으로 뛰어가 거울을 본다. 곱슬곱슬 흘러내리는 검은 머리카락. 상앗빛 피부, 아름다운 입매에 크고 촉촉한 눈. 깊고 검실검실한 눈썹. 엄마한테 달려가 묻는다.
“말해줘 엄마! 내가 깜둥이야?”
어머니 눈에 눈물이 고인다. ‘나’가 묻는 질문에 정확한 대답은 아니다.
“아니, 엄마는 백인이 아니야. 하지만 네 아버지는 이 나라에서 가장 훌륭한 사람 중 한 분이셔. 네 몸 속에는 남부의 가장 훌륭한 피가 흐르고 있어. 아버지가 누구인지는 나중에 이야기해주마.”
백인 친아버지는 어머니한테 편지라도 받았는지 정말로 코네티컷의 작고 화려한 집에 와서 자기가 아버지임을 말한다. 그래서 이제 ‘나’는 흑인, 정확하게 아프리칸 아메리칸은 아니지만 유전자 속에 흑인의 인자가 어쨌든 포함되어 있다는 걸 알고, 본격적으로 흑인 커뮤니티 안에서 살게 된다.
작가 제임스 웰던 존슨이 성공한 유색인이라 주인공인 ‘나’도 인생이 우리가 흔히 소설책에서 보는 대다수의 흑인처럼 짜부러들지 않는다. 교육도 마치고, 애틀랜타 대학에 입학하러 갔다가 입학금 전액을 도둑맞아 빈털터리가 되어도 ‘나’한테는 피아노 연주 솜씨가 있으니. 하여간 그 재주 때문에 파리에도 가고, 런던과 암스테르담, 독일 구경도 하면서 여러나라의 언어도 습득한다. 파리의 오페라 공연장에서는 아내와 딸을 동반해 관람석에 앉아 있던 친아빠도 만난다. 눈길을 마주치지는 못했지만. 사랑도 하고, 어여쁜 백인 소프라노 부잣집 아가씨와 연애도 하고, 결혼도 한다.
그리하여 결론은? 저 앞에 써 놓았다.
스토리만 이렇게 써 놓아 재미있어 보일 지 모르지만, 작품의 반은 에세이다. 에세이로 쓰면 재미가 적을 것 같아서 소설 형식으로 쓴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이런 논의를 21세기에 읽는 건 그리 즐거운 경험이 아니다. 동양 사람들 눈꼬리나 옆으로 찢지 말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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