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변의 조문객 쏜살 문고
메리 셸리 지음, 정지현 옮김 / 민음사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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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리 셸리, 하면 당연히 <프랑켄슈타인>. 정말 다양하게 변질된 모습으로 유년 시절부터 경험한 캐릭터라서 오히려 작품을 읽지 않게 되는 명작. 그러나 귀동냥으로 한 번 읽으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프랑켄슈타인>을 쓴 작가. 하지만 오히려 이 작품이 작가 또는 독자에게 난처한 허들로 작용할 수 있으니, 독자는 메리 셸리의 다른 작품을 읽을 때에도 당연히 <프랑켄슈타인>을 염두에 두고 시작하기 때문이다. 단편소설도 마찬가지.


  《강변의 조문객》은 단편소설 아홉 편을 실었다.

  이 책뿐 만 아니라 메리 셸리를 읽기 전에 독자가 감안해야 했던 것은 이이가 18세기 말에 태어나 19세기 전반을 살다 간 작가였다는 점. 제인 오스틴의 딸 뻘이지만 윌리엄 새커리, 찰스 디킨스, 브론테 자매의 이모 뻘이다. 이걸 감안하지 않으면 작품이 어떨 것 같을까? 당연히 조금 촌스러울 수 있다. 지금부터 2백년 전에 쓴 소설이니 어쩌겠어?

  지금 읽기에는 너무 오랜 스타일이다. 2백년 전에 읽었더라면 재미 있었겠다는 의견에 동의하지만 21세기에는 아니다.

  게다가 머리 속에 들어 앉아있는 <프랑켄슈타인>의 그늘. 이렇게 이야기할 수밖에 없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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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6-03-19 09: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메리 샐리의 최후의 인간을 읽으면서 천재가 몰락하는 걸 보는듯했어요. 프랑켄슈타인을 쓴 어린 천재가 다른 사회적 경험을 모두 차단당했을 때, 번뜩이는 아이디어와 재치만으로는 부족한 인간사의 다양한 디테일을 살려야 할때 그것을 어떤 식으로든 차단당한 이가 결국 할 수 있는건 딱히 없구나 싶었어요. 메리 샐리는 지금 태어났다면 정말 역사에 길이 남는 대작가가 되지 않았을까싶어 안타깝더라구요.

yamoo 2026-03-19 09:19   좋아요 1 | URL
프랑켄슈탕인...한 작품으로도 역사에 길이 남을 이름을 남겼다고 생각합니다..ㅎㅎ
대표작이 넘사벽이면 다른 작품들은 모두 아쉬울 수밖에 없겠죠..^^;;
 
순수한 피 알라트리스테 시리즈 2
아르투로 페레스 레베르테 지음, 권미선 옮김 / 시공사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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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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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베르테의 알라트리스테 시리즈의 두번째 작품. 첫 작품인 <루시퍼>의 독후감에 내가 “레베르테의 대표적 작품” 운운했는데, 이제 그건 취소를 해야겠다. 출판사 책 소개에 당연히 들어가 있는 표현이라서 쓴 건 아니고, 일단 1편 <루시퍼>가 꽤 그럴 듯하게 시작을 해 시리즈가 가면서 스토리가 더 확장되면 꽤 근사하리라 여겨 출판사가 주장하는 작가의 “대표작”이란 표현을 옮긴 것이었다. 이제 두번째 작 <순수한 피>를 읽은 다음엔 설마 이 정도면 이름이 알려진 한 작가의 대표작은 아니어야 한다고 생각이 바뀌었다. 그저 심심풀이로, 카페에서 연인을 기다리는데 무료한 참에 카페 책꽂이에 아무렇게나 꽂혀 있어서 연인이 도착할 때까지 슬슬 넘길 정도의 책 수준을 조금 넘긴 정도. 목욕하고 마음을 가다듬은 다음에 책상에 정좌해 읽는 것이 옳다, 이렇게 말하면 곧바로 신경정신병동으로 후송 당할 수 있는 책.

  그리하여 1부 <루시퍼>에서 했던 말, “나는 “알라트리스테 대위” 연작을 나온 데까지 달려볼 생각이다.” 이건 지금 확실하게 취소한다. 두 권 읽었으면 됐다. 레베르테, 좀 지나서 딱 한 번만 더 보자. 아니면 말던가.


  1부에서 영국의 이교도 왕실과의 문제를 해결한 알라트리스테.

  기억하실 턱이 없어서 요약을 해드리면, 대귀족과 왕실 비서 알케사르가 두 검객, 알라트리스테와 시칠리아에서 온 괄테리오 말라테스타한테 마드리드로 들어올 두 영국 귀족에 대한 특정한 조치를 의뢰한 후, 곧바로 같은 자리에 종교재판관 보카네그라가 들어와 특정 조치 말고 아예 영국인들을 처단하라고 다시 의뢰한다. 두 검객, 말이 좋아 검객이지 쉬운 말로 청부업자는 돈을 더 주는 보카네그라의 의뢰를 우선으로 여기고 그들을 만나 싸움을 벌인다. 근데 알라트리스테가 자기 상대 영국인의 희생정신이 감동하는 일이 벌어진다. 깊은 인상을 받아 그들을 살려주어, 결과적으로 스페인과 영국 왕실 사이의 관계가 더 좋은 상태로 유지된다.

  하지만 알라트리스테의 덕분으로 스페인은 조금 더 명망있는 나라가 될 수 있었으나, 왕실비서 알케사르와 종교재판관 보카네그라, 자신의 임무 수행을 방해한 말라데스타는 알라트리스테에게 깊은 원한을 갖게 되고, 2부 <순수한 피>에서 이를 갚아주려 음모를 짠다.

  그러니 이 책은 1부부터 순서대로 읽어야 하는 시리즈. 물론 사건은 권 별로 개별적이라 볼 수 있지만 해당 사건이 왜 일어나는지, 왜 자유스러운 음모인지 알기 위하여 그렇다는 말이다.


  시작은 시대-추리물 답게 마드리드 마요르 광장에서 투우경기가 있는 날 새벽에, 산히네스 성당 앞에 한 인력거가 도착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1부에서 알라트리스테가 궁중 귀족들을 만나게 해주는 사람이 순찰대장 마르틴 살다냐. 이번에도 어김없이 그가 먼저 등장한다. 인력거 안에 죽은 사람이 하나 타고 있었거든. 그래서 지금 심통이 대단하다. 사건 때문에 여차하면 투우 축제를 볼 수 없을 수도 있으니. 시신은 이제 갓 50대에 접어든 노파. 사인은 목졸라 죽인 교살. 놀랍게도 시신의 손에 금화 50에스쿠도가 쪽지와 함께 쥐어 있다. 메모는 “미사를 올려서 명복을 빌어 주십시오.”라는 짧은 내용.

  이 쉰 살의 노파가 누구인지 앞서 말하면 재미가 없을 텐데, 뭐 설마 이 책을 몇 명이나 읽어보실 것이며, 읽더라도 읽기 전에 내 독후감 먼저 참고하실 분은 없으리라 생각해 무책임하게 알려드리자면, 놀라지 마시라, 수녀원에서 포주 역할을 하는 여자이다.

  시대는 1623년. 왕 필리페 4페는 그저 사람만 좋아 정무와 외무, 내무 같은 거엔 다른 비서관들에게 전권 위임하고, 사법은 거의 종교재판관들한테 넘겨주어, 남고 남는 시간에 프랑스에서 얻은 젊은, 아니, 어린 아내와 속닥거리기나 하고, 좋은 먹거리와 즐길거리만 파고 살았다. 그래서 당연히 궁정의 거의 모든 고귀족들은 왕을 장난감이나 유아기 소년으로 취급해,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써서 부정부패, 매관매직, 기타 나라가 거덜날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이 무엇일까 골몰하기에 이른다. 날이 갈수록 망해가는 스페인. 이를 지켜보기 힘들어 올리바레스 백작이 현재 스페인 성직자와 귀족의 돈줄인 이탈리아 제노바 은행 대신 신대륙과의 무역을 통해 금을 모은 포르투갈 은행과 협력해서 스페인 경제의 체질을 개선하려 하지만, 이 책에서는 아니고 그리 멀지 않은 훗날 뜻을 이루지 못한 채 탐관오리들에게 모함을 당해 불운한 말년을 보낼 예정이다. 이 책이 올리바레스 백작이 전성기 무렵이라 생각하면 된다.


  종교재판관으로 대변되는 기존 권력자들 입장에서 보면 올리바레스가 눈에 가시이다. 그리하여 멀리 보면 그를 제거하기 위해서, 짧게 보면 포르투갈 금의 국내 유입을 막아 제노바 금에 의한 스페인 지배를 유지하려고 음모를 꾸민다. 여기에 한 가지 더 보태는 게 있으니, 바로 얼마 전에 영국 왕실의 왕자 일행의 목숨을 살려준 알라트리스테를 제거하는 일. 이 일은 또 당시에 벌인 칼싸움에서 무승부를 기록한 시칠리아 검객 말라테스타의 협조를 헐한 값으로 얻을 수도 있다.

  그리하여 꾸민 일. 아도라시온 베니타 수녀원에 들어가 있는 발렌시아 여인 엘비라 델라 크루스를 지목했다. 이 수녀원의 실제적 주인은 후안 코로아도 수사와 훌리안 가르소 수사이다. 후안은 성당 전속 사제로 수녀원에서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고, 훌리안은 고해 수사. 둘 다 젊고, 키 크고, 멋지게 생겼으며 귀족의 자제. 사실 이 즈음 귀족의 자제들이 수사가 되는 가장 큰 이유는 전쟁에 나가지 않기 위하여 그랬다는 것이 작가 레베르테의 주장인데, 어려서부터 최고로 좋은 교육을 받아 마음 속에 악마가 들었더라도 입으로는 천사의 말을 나불대는 재주가 있어서, 수녀원의 수녀들을 몽땅 최면에 걸거나, 최면에 빠지지 않는 일부 수녀와 견습수녀한테는 지독한 가스 라이팅을 해, 후안의 경우, 자신과 살을 맞대는 것 자체가 천국에 다가가는 일이라는 환상에 빠지게 했으며, 고해수사 훌리안은 별것도 아닌 죄, 수녀원 안에서 죄를 지으면 얼마나 무거운 죄를 짓는다고 그걸 보속하기 위하여 자기 앞에서 홀랑 누워 있게 만드는데 선수였다.

  발렌시아 귀족의 딸 엘비라 델라 크루스가 이 수녀원의 수녀. 정신이 좀 말짱했는지 수녀원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을 아버지한테 말했고, 이에 열을 잔뜩 받은 아버지와 오빠, 동생이 칼을 벅벅 갈더니 마드리드로 쫓아와 먼저 궁정시인이자 한 시절 용감한 군인이었으며, 한 시절 칼과 단검과 권총 사용에 도가 튼 절름발이 프란시스코 데 케베도를 찾아온다. 1부를 읽은 분은 아실 터. 알라트리스테와는 둘도 없는 전우 사이.

  케베도가 억울한 사연을 듣고 이들을 알라트리스테와 연결시켜주고, 비록 많은 보수를 요구했지만 다른 사람도 아니고 케베도의 부탁이라 성공하기가 매우, 매우 힘든 수녀원 공격을 감행하기로 한다. 하지만 아무리 날고 기는 알라트리스테도 몰랐던 것이 있었으니, 자신한테 원한을 가진 말라데스타가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고 있었던 것을.


  쉽게 말해, 말라데스테와 그보다 훨씬 더 무시무시한 적인 종교재판관 보카네그라 신부는 벌써 이들이 수녀원의 담을 넘을 것을 알고 단단한 경비를 구축해 놓고 있었다. 당연히 알라트리스테, 케베도와 델라 크루스의 세 부자에 의한 수녀원 공격은 섬멸되고, 이 와중에 델라 크루스의 열여덟 살 먹은 막내 아들은 심한 상처를 입어 죽고 만다. 그리고 작품의 화자, 열세 살의 이니고 역시 말라데스타에게 포로로 잡혀 톨레도의 종교재판 형무소로 들어가니 이제 기다리고 있는 것은 화형.

  왜 하형인고 하면, 엘비라 델라 크루스 수녀의 조상이 개종 유대인. 게다가 포르투갈 은행의 중요한 핵심인물이다. 당시 스페인에서는 순정하지 못한 피, 즉 유대인, 아랍인들을 극도로 박해하던 시절이라 유대인이 수녀원에 들어갈 수 없었고, 종교재판관은 이를 당연히 유대교에 의한 기독교 오염 의도로 해석해버렸다. 이니고를 잡아야 이니고를 미끼로 알라트리스테를 엮을 수 있을 거 같아서 몇 달 동안 톨리도 형무소에 잡아두고, 결국 화형대에 묶어 태워 죽이려 했던 것.

  근데 시리즈에서 주인공 급 화자가 설마 도중에 불에 타 죽기야 하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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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26-03-18 0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 이 책 있어요. 시리즈 3권인가 있는데, 아직 읽지 않았습니다만...별 3개면 읽지 말고 처분해야 겠습니다.ㅎㅎ 진짜 너무 읽을 책이 많아요..ㅜㅜ

Falstaff 2026-03-18 15:11   좋아요 0 | URL
집에 책이 있으면 1부 <루시퍼>만 읽고 어떤 책인지 감만 잡으셔요. 그냥 처분하기는 아깝잖습니까. ㅎㅎ
 
악어를 조심하라고? 문학과지성 시인선 53
황동규 / 문학과지성사 / 199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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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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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장 속 30여 년 전에 사 놓은 시집 가운데 한 권. 즉 두고두고 읽는 시집이라는 뜻이다. 황동규는 뭐 말이 필요 없는 시인. 문학과지성 시인선 1번에 빛나는 《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 부터 이 시인이 낸 시집의 오랜 독자 가운데 한 명이다. 근데 사실 요즘에 이이를 잘 읽지 않는다. 해서, 새삼스레 옛 시집을 꺼내게 된 것.

  지금은 같은 서울대 영문과 명예교수 처지이자 황시인보다 3년 선배인 유종호가 쓴 해설의 제목이 “낭만적 우울의 변모와 성숙”이다. 그러니까 이 시집의 주된 서정은 시인의 우울에서 시작한다고 봐도 괜찮을 듯하다. 평론가의 의견에 따르면 그 우울이 모습을 바꿔가며 성숙해지는 과정을 발견할 수 있는 시집인데, 우울 자체가 낭만적 우울에서 시작한다. 시집에서 낭만적 우울의 시작점은 2부에 실린 “풍장風葬” 열여섯 수에서 극점을 달한다. 많은 사람들이 황동규의 대표 시로 뽑는 연작인 <풍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길더라도 전문을 인용한다.



  풍장(風葬) 1



  내 세상 뜨면 풍장시켜다오.

  섭섭하지 않게

  옷은 입은 채로 전자시계는 가는 채로

  손목에 달아놓고

  아주 춥지는 않게

  가죽가방에 넣어 전세 택시에 싣고

  군산에 가서

  검색이 심하면

  곰소쯤에 가서

  통통배에 옮겨 실어다오.


  가방 속에서 다리 오그리고

  그러나 편안히 누워 있다가

  선유도 지나 통통 소리 지나

  배가 육지에 허리 대는 기척에

  잠시 정신을 잃고

  가방 벗기우고 옷 벗기우고

  무인도의 늦가을 차가운 햇빛 속에

  구두와 양말도 벗기우고

  손목시계 부서질 때

  남몰래 시간을 떨어뜨리고

  바람 속에 익은 붉은 열매에서 툭툭 튀기는 씨들을

  무연히 안 보이듯 바라보며

  살을 말리게 해다오.

  어금니에 박혀 녹스는 백금 조각도

  바람 속에 빛나게 해다오.


  바람을 이불처럼 덮고

  화장(化粧)도 해탈(解脫)도 없이

  이불 여미듯 바람을 여미고

  마지막으로 몸의 피가 다 마를 때까지

  바람과 놀게 해다오.  (전문. p.43~44)



  풍장의 매력은 사실 황동규가 가고 싶어하는 서해의 한 작고 버려진 작은 섬이 아니다. 건조한 고원이나 사막지대에 놓여 햇빛과 바람과 달과 별의 광선에 의하여 육신이 바싹 말라 비틀어진 미라 상태로 있다가 결국 하얀 백골만 남기게 되는 장례. 백골마저 가능한 가장 빠른 시간 안에 결국 풍화되어 모래로 돌아가는 길고 긴 과정이다. 사실 황시인이 바라는 것은 그가 평생동안 좋아하던 여행길을 나서기 위하여, “마지막으로 몸의 피가 다 마를 때까지 / 바람과 놀게 해” 달라는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풍장>의 우울은 이후 2, 3, 4… 계속 농도가 진해지기도 하지만 시인은 함께 놀 바람에 실려 우리 국토의 방방곡곡을 떠다닌다. “소주가 소주에 취해 술의 숨길 되듯 / 바싹 마른 몸이 마름에 취해 색깔의 바람 속에 둥실 떠…” (<풍장 2> 부분 p.45) 가면서 인왕산, 남산, 낙산 그리고 밀주를 파는 도시의 골목을 배회하고,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 루카치를 만나면 루카칠 / 바슐라르 만나면 바슐라를 / 놀부 만나면 흥부를…”(<풍장 4> 부분. P.48) 죽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이 시집이 다 우울한 건 아니다. 그러면 황동규가 아니지. 1부의 시작은 오히려 생기에 충만하다. 제일 앞에 배치한 시를 읽어보자.



 



  나는 나무들이 꽃을 잔뜩 피워놓고

  열매가 생기기를

  우두커니 서서 기다린다고 생각할 수가 없다.


  사방에서 벌이 잉잉거릴 때

  꽃들은 먼발치서 달려오는 벌을 맞으러

  하나씩 문을 열 것이다.

  꽃송이 하나하나가

  마침 파고든 벌을 힘껏 껴안는

  이 팽팽함!


  배나무나 벚나무 상공(上空)에서

  새들은 땅 위에서 환한 구름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잠시 천상(天上)과 지상(地上)을 잊을 것이다.  (전문. P.11)



  이 시에서 읽을 수 있는 생기와 발랄함은 두번째, 세번째 시 <삶에 취해>, <별>에서도 계속된다. 그런데 이 시들은 1982년부터 85년까지 <풍장> 시리즈를 쓰고 난 다음인 1985년~86년에 지은 노래들이다. 우리나라 현대사에서도 가장 폭력적이었던 5공화국 시절. <풍장>은 시가 갖고 있는 우울 때문에 그렇다고 쳐도, 이 시절에 <꽃>처럼 생명 가득하고 발랄한 시를 발표하는 것도 쉽지 않았을 때이다. 참여와 저항과 외침의 노래 아니면 백안시 당하던 비극의 시기였으니. 세월이 한참 지나 과거의 한 페이지가 된 지금 생각해보면, 그나마 황시인 같은 모더니스트가 그 당시에도 노래하고 있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하는 마음도 들게 된다. 이게 다 세월의 힘이겠지. 그걸 방에 틀어박혀 숨죽여 읽고 키득대며 좋아하는 독자들도 있었겠지. 내놓고 모더니즘 시를 읽는다는 말도 못하면서. 그러면서.

  모더니스트라고 하기는 힘들지만 더 없는 서정시를 쓴 시인 가운데 한 명인 김종삼 시인이 죽었다. 1984년 겨울이다. 길음성당에서 있었던 장례미사에 황동규가 참석했다. 그날 하늘에서 점박이 눈이 내렸다.


  점박이 눈이 내렸다.

  가늘게 검정테 두르고

  가운데 흰 점 박힌 눈송이들

  머리와 어깨에 쌓였다.

  성당 정문에서 천상병(千祥炳)씨 부인과 인사 나눴을 뿐

  문학판 사람들은 하나도 만나지 못했다

  (“그들은 그때 어디 있었는가, 오버?”

  “프라이버시 침해하지 말라, 오버.”)

  낯선 문학청년 하나가

  눈 맞은 머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

  “사진에서 뵌 선생님이시죠?

  저는 김종삼 시인을 사랑한 놈입니다.

  발자국 따르다보니 예서 그만 끝이군요.

  앞으로 무슨 맛에 살죠?”

  내 장례식에 혹시

  이런 허황되고 멋진 청년이 올까?

  (온다면 깊이 잠들기 힘들리.)  (<점박이 눈> 부분. p27~28)


  84년 겨울. 제대하고 그동안 집구석은 한층 더 폭삭 망해버려 이부망천이라, 서울 사람이 이혼하면 부천가고, 쫄딱 망하면 가는 곳이라는 인천의 작고 작은 집으로 밀려간 시절이었구나. 그새 졸업해 병원 약사 일을 하던 사랑은 당연히 나를 철퍼덕 밟고 지나가버리고, 복학하려니 등록금 구하기가 죽을 맛이던 시절. 그래도 경애하는 김종삼 선생, 전화라도 한 통 하고 가시지. 나 졸업한 서라벌중학교, 대일고등학교에서 세느강만 건너면 바로 길음성당이었을 텐데. 혹시 알아? 잘 하면 내가 그 허황되고 멋진 청년이었을 지도?

  (정말 이것까지 생각하고 쓴 독후감 아닌데, 오늘이 “나를 철퍼덕 밟고 지나가버”린 사랑의 꽤 묵은 생일이구나. 좋다, 해피 버스데이 투유. 우리, 다시는 기억도 하지 말자.)


그건 그거고, 황시인은 이렇게 서정시인, 모더니스트들에게 편지도 보내고(김정웅, 유평근, 마종기) 애도하기도 한다(김현). 그러나 딱 한 명 예외가 있으니 니힐의 아나키스트 김수영(金洙暎). 표제시 <악어를 조심하라고?>의 3부 “종묘 앞 싸락눈”에서다. <악어를 조심하라고?>가 워낙 길어 딱 이 부분만 따와보자.



  《악어를 조심하라고?》


  3. 종묘 앞 싸락눈



  싸락눈 솔솔 뿌리는

  종묘 앞 숯불돼지갈비집


  단성사서 영화 보고 싸락눈 맞으며 걸어가

  잠긴 문틈으로 저 낮고 긴 지붕의 집 종묘가

  곱게 눈 맞으며 서 있는 것을 보고

  동양의 파르테논 어쩌구 헛소리를 하며

  겁먹은 듯 서 있는 조랑말들 사이를 지나

  김수영(金洙暎)씨와 몇 번 들른 집

  잘 모르는 소리 지껄이는 건

  지금도 매양 마찬가지

  “탈[mask] 이론은?”

  (베아트리체를 사랑한 불한당 단테를 보라.)

  “객관 상관물이란?”

  (兩人對酌山花開 <李白>―둘이 서로 술 따르니 막 산꽃이 핀다,

  혹은 OB잔 부딪칠 때 배호의 노랫소리)

  모를 듯 알 듯 모를 순간

  기도(氣道) 조이는 그 쾌감


  가만!

  지금 내 정신 상태 제대로 보여줄 객관 상관물은?

  (아파트 계단을 도로 기어 내려가는 악어?)


  하긴 텔레비나 영화에 등장하는 동물 가운데

  그래도 제일 길 안 드는 게 악어더군

  성(聖)타잔도 길들일 수 없는……


  “황형, 혼자 술 드는 폼

  여직 생생하군요.”

  귀익은 목소리에 얼핏 뒤돌아보니

  민음사판 전집 사진 속에서처럼

  티셔츠에 앙상한 몰골로

  김수영이 앉아 있다,

  양복 윗도리를 술상에 걸쳐놓고

  3센티쯤 자란 머리카락에

  입웃음을 웃으며.

  (하략)  (<악어를 조심하라고?> “3. 종묘 앞 싸락눈”의 부분. p.22~24.  2연의"겁먹은 듯 서있는 조랑말들"은 당시 우리나라 수도 서울을 종횡무진 날아다니던 택시, 현대 포니 자동차를 말하고 있다.)



  이 시집 중에서도 긴 시들을 소개하는 바람에 독후감이 한없이 길어진다. 더 이상 쓰다가는 욕 먹겠다. 별로 한 말도 없이 이거 영 모양 안 나오는군. 하여간 하고 싶은 말은, 황동규, 이 양반을 괜히 대접하는 게 아니었다는 거. 어떻게 시편들이 길면서도 깔끔하고, 서늘하고, 공감이 가는지 말이지. 황동규 선생은 모르겠고, 나 사는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황선생의 부친, 황순원 선생의 산소라도 한 번 가볼까? 아냐, 아니다. 내 부모 산소에도 자주 가지 않으면서 남의 부모 산소까지 들먹이기는 좀 그렇지.

  아참. 잊고 따오지 않은 시 한 수가 있다. 그거 소개하면서 긴 독후감 끝내자.



  풍장 9



  바람이 어디로나 제 갈 데로 불 듯

  서산 마애불을 만나러 갔다.

  마을마다 댓잎 가장자리는

  늦겨울 가뭄에 백동(白銅)색으로 익고

  얼었던 길은 처음으로 녹으며

  춤추는 봄눈을 대숲으로 날려주었다.

  마른 오징어와 함께 가서

  오징어는 먹고 소주는 몸 속에 뿌리고 왔다.  (전문. p.56)



  재미있지? 서산 마애불 기행도 인터넷 어느 한 곳에 쓴 적 있는데, 혹시 검색해보면 나올지 몰라? “그 미소 천년을 이어가시라”로 검색하니까 뜨네. 근데 그거보다 마지막 행, “오징어는 먹고 소주는 몸 속에 뿌리고 왔다.” 이 중에서도 “소주는 몸 속에 뿌리고 왔다.”가 얼마나 감개무량한지. 소주를 왜 뿌려? 죽은 사람한테나 뿌리는 게 술이다. 그래서 ‘나’가 이미 죽은 ‘나’한테 대한 풍장이 완성되는 것. 으아. 이러니 내가 황동규, 황동규 하는 거 아니냐는 말이지. 물론 소주 이야기 나오니까 더 환장을 하긴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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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6-03-17 05:4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종묘앞에 싸락눈 내릴 때 시인이 읊은 한시가 李白이 쓴 술 마시자는 시인데, 어떻게 모두 쉬운 한자로만 되어 있어 심지어 나도 외우고 다닌다. 어디가서 잘난 척하기 좋~다. 전문 읊어보겠다.

兩人對酌山花開 둘이 권커니 잣커니 하니 산에 꽃 피네
一杯一杯復一杯 한 잔, 한 잔, 또 한 잔
我醉欲眠卿且去 나는 취해 이제 자려 하니 자네는 이만 가서
明朝有意抱琴來 내일 아침에 또 생각이 있거든 거문고 품고 오게나

Falstaff 2026-03-17 06: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래도 훈수를 조금 더 두어야할 거 같다.
악어. 1980년대 초중반에 뉴욕 하수구에서 누군가가 애완용으로 키우던 다 큰 악어가 탈출해 하수도에서 살았던 적이 세계만방에 알려졌다. 이리하여 도심 한 가운데의 맹수....라는 썸뜩함 때문에 여러 장르의 예술이 이 악어를 차용했다. 당연히 할리우드의 악어 시리즈도 이 때 나왔고,

곰돌이 2026-03-17 07: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30년이라는 폴스타프님의 시간까지 더해져,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처럼 읽혔어요. 다음 상영도 기다립니다. (좀 더 길게 담아주셔도 괜찮은데 말이죠, 쿨럭)

Falstaff 2026-03-17 07:48   좋아요 2 | URL
이이 이후에 읽은 시집이 장석남 한 권밖에 없어요. 너무 시를 안 읽는 거 같아서 김선우의 시집을 예약해놓았고요.
황선생의 시와 비견하려면 또다른 황인 황지우 정도는 데려와야 이야기가 될 텐데, 황지우 뜨면 또 이성복, 최승자가 가만히 있겠습니까. 안 불러주면 승질낼 거 같아요. 흑흑...

잠자냥 2026-03-17 09: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크읏- 제가 소싯적에 읽은 시집이라 참 반갑네요.
제가 몰운대행 읽고 정선까지 갔었다는 거 아닙니까. ㅋㅋㅋㅋ
황동규 황지우 이성복 최승자....다 소환해야 합니다. 맞습니다. ㅋㅋㅋㅋ

Falstaff 2026-03-17 09:54   좋아요 1 | URL
앗, 몰운대! 나도 갔다왔어요! 비록 작은 정자 하나 말고 볼 거 없어도 크, 드디어 왔군, 언덕 아래 내려다봤습지요. 근데 거긴 공중화장실도 없고, 가락국수도 올챙이국수도 파는 집이 없더라고요. ㅋㅋㅋ 더 반갑네요. 몰운대 정말 다녀온 분 만나니 말입죠!!!
 
동조자
비엣 타인 응우옌 지음, 김희용 옮김 / 민음사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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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중부 해변마을 둑토 출신의 응우옌 부부는 1954년 남베트남, 1년 후부터 1975년까지 20년간 ‘베트남공화국’이라 불릴 반메투엣으로 이사해 한 명의 딸을 입양하고 적어도 두 명의 아들을 낳았다. ‘적어도 둘’ 가운데 큰 아이 ‘퉁’은 훗날 하버드 학부에서 철학을 공부한 의학박사가 되고, 작은 아이는 대학 교육자로 이름을 알릴 것인데 이 둘째 비엣이 2015년에 쓴 소설 <동조자>가 2016년에 퓰리처상을 받는다. 놀랍게도 첫 장편소설이 미국 작가들의 로망인 퓰리처상을 받은 거다.

  1975년에 응우옌 가족은, 호치민이 건국한 베트남민주공화국이 미국 등 열강을 등에 업고 세운 일종의 괴뢰국가 베트남공화국의 수도 사이공을 함락시킬 때, 미국으로 ‘도피’했다고 위키피디아에 나온다. “사이공이 함락되자 미국으로 도피했다.” 응우옌 가족이 당시 사이공에서 살았는지는 판단할 수 없지만 미국의 기관이나 유력자 또는 군대와 상당히 밀접하게 지내, 그들이 수송기 탑승을 허락한 극소수의 베트남인이었으며, 미국 내에서 식료품점을 차릴 수 있을 재산을 가지고 도피할 정도의 재력을 보유했다고 보아야 한다. 즉, 당시 부패할 대로 부패한 베트남 정∙재계의 주류 가운데 한 명이었다고 봐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혹시 이 가족이 베트남 마지막 응우옌 왕족의 일원 아니었을까? 짐작이다. 확실하지 않으니 오해 마시라.


  간략하게 베트남의 현대사를 살펴보자. 천년 동안 중국의 ‘지배 또는 간섭’을 받아온 베트남은 또 오랜 세월 프랑스에 의해 식민지배까지 겪어야 했다. 2차세계대전이 일어나자 또다시 일본군이 진주해 그들 치하에 있었다가 종전 후 드디어 1945년 9월, 호치민이 하노이에서 독립과 베트남민주공화국의 건국을 선언한다. 하지만 베트남은 불운하게도 승전국 프랑스의 식민지였다. 그들이 자신의 식민영토를 그냥 내버려둘 리가 없어 초현대식 무기와 전폭기를 동원한 인도차이나 전쟁을 벌이지만, 프랑스는 1954년에 결정적으로 얻어터져 쌍코피를 흘리며 철수했고, 드디어 베트남은 독립을 이루었다.

  하지만 호치민의 베트남은 공산주의 국가. 당시 전지구적인 냉전 상태는 만일 베트남이 공산화된다면 이웃한 라오스, 캄보디아, 말레이시아, 태국 역시 공산화 물결에 휩쓸릴 것이라는 이른바 도미노 현상의 위협이 서구사회를 압박해 자기들 임의로 위도 17도선을 경계로 남쪽에 응우옌 왕조의 마지막 찌꺼기 하나를 왕으로 삼아 ‘베트남국’을 만들어준다. 시절이 어느 땐데 왕조? 아니나 다를까, 얼마 지나지 않아 군인 응오 딘 디엠이 쿠데타를 일으켜 다시 베트남공화국을 세우게 된다.

  자기들이 죽어라 싸워 독립을 쟁취한 북쪽의 베트남민주공화국이 가만히 있을 수 없었겠지. 그리하여 유명한 통킹만 사건을 일으켜 본격적인 내란이 발발하니 우리가 아는 베트남 전쟁이다. 미국이 기록한 최초의 패전. 한국전쟁이 최초의 무승부였고, 베트남전은 여지없이 패전 자체였다. 이때 앞에서 말한 베트남인 가운데 유력자들, 중요한 친미파들은 수송기를 타고 탈출해 미국의 수용소에 도착했고, 돈만 많고 미국과 ‘특별한 관계’까지는 이루지 못한 부자들은 아무 배나 타고 이웃한 나라로 건너간 이른바 ‘보트 피플’ 신분으로 베트남을 탈출했다. 새로이 건국한 “베트남사회주의공화국”에 남았다가는 무시무시한 재교육을 받거나 죽을 지도 몰라서.


  <동조자>는 사이공 함락을 불과 며칠 앞두고 시작한다. 화자는 ‘나’. 근데 올림말로 쓴다. 좀 이상하다. 계속 읽다 보면 ‘소장님’과 ‘정치위원’에게 쓰는 일종의 자술서이다. ‘나’가 수용소에 갇힌 상태에서 과거, 즉 사이공 함락 직전부터 이 수용소에 수감될 당시까지의 모든 일을 쓰라는 지시를 받고 쓴 자술서.

  그럼 ‘나’는 누구일까?

  북베트남, 훗날 베트남사회주의공화국이 될 북베트남의 스파이이자 고정간첩. 동시에 미국 CIA 비밀요원이자 남베트남 장군의 부관이며 정보부 위관장교. 대위였다. 이런 복잡한 일을 아무나 하나? 매우 총명해 1960년대에 국비 유학생으로 미국 캘리포니아 옥시덴털 대학에서 6년간 미국사, 미국문학, 문법, 속어와 마리화나, 섹스까지 이른바 미국인의 사고방식을 모두 몸에 익혀가며 석사까지 공부하고 다시 베트남에 돌아왔다. 이런 특혜는 1954년 프랑스와의 전쟁통에 난민선을 타고 피난할 때 유심히 ‘나’를 발견하고 재능을 알아본 미국인 대사관 직원이자 CIA 요원이었던 클로드의 눈에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클로드는 몰랐지. ‘나’가 점점 커가며 고등학교 다닐 때 의형제를 맺은 ‘만’에 의하여 제대로 의식화교육을 받아 공산주의자가 된 분자인 것을. ‘나’는 만의 지시에 따라 고분고분 클로드가 지원해주는 대로 미국으로 가 모든 것을 ‘작전상’ 흡수하고 돌아온 것이었다. 의형제 가운데 다른 한 명 ‘본’은 북베트남군이 본이 보는 앞에서 아버지를 처형해버린 이후에 극도의 반공주의자가 되어 버리고.

  또 하나의 중요한 점. 엄마가 열네 살 때 ‘나’를 낳았다. 아버지는 프랑스인 신부. 맞다. 가톨릭 사제의 아들이자 서양 혼혈. 베트남 사람들이 ‘잡종새끼’라고 부르는. 주인공의 이런 정체성이 작품에서 상당한 의미를 띈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독자마다 생각하는 바가 다르겠지만 나는 이중간첩으로서 이쪽도 아니고 저쪽도 아닌, 이쪽이면서 저쪽이기도 한 인간이자 베트남 자체가 아닐까 싶었다. 나이든 프랑스 가톨릭 사제와 베트남 소녀 사이의 아이, 동양과 서양이 낳은 혼외자, 사람의 눈길을 피할 수 없는 개체, 기타 등등.


  ‘나’는 만과 직접 만나지는 않지만 숱한 접선을 통해 미군의 폭격 일정을 제공하여 베트콩 및 주민들을 미리 대피시켜 희생을 그나마 줄일 수 있었고, 유력인사의 동선을 알려 그들이 효과적으로 암살계획을 세우게 해주기도 했다. 이런 고급 정보를 보낼 수 있으려면 베트남군 내부에 상당한 신임을 받아야 하는 법, 그러기 위하여 ‘나’는 잡혀온 베트콩 간첩에 대한 고문 같은 것을 직접 수행하지는 않지만 방관하고 참관해야 했으며, 중요하지 않은 베트콩 측 간첩의 체포를 위하여 역시 중요하지 않은 정보를 제공해야 했을 것이다. 즉 양쪽 모두의 철저한 적이 되어야 하는 숙명이다. 어느 쪽이 최종적으로 승리하든 결국 비극적 결말을 맞을 수밖에 없는 운명의 인간.

  정말? ‘나’의 경우는 아닐 확률이 많다. 독자는 그렇게 짐작한다.

  만일 베트남이 승리한 후에 베트남 군대나 미국의 CIA에서 ‘나’가 베트콩의 스파이였다는 것이 발각나면, 발각날 수밖에 없을 터인데, 무조건 처형당할 것은 확실하다. 반면에 베트콩이 승리할 경우 그들의 중요한 수뇌부에 의형제 만이 있어서 그의 지령을 받아 스파이 행위를 한 것이 전쟁 중에 작전상 행한 밀고보다 우위에 있을 것이 확실하다. 만일 전쟁 중에 만이 죽지만 않는다면.

  그럴 듯하지? 그럴 듯한데, 정말 그럴 듯한 과정만 밟아 진행하면 소설이 재미없어진다.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더 묻지 마시고.


  하여간 1975년 4월 30일. 사이공이 드디어 함락되기 바로 직전에, ‘나’는 장군과 장군의 직계가족, 그리고 골수 반공주의자 의형제 본과 그의 아내와 아들을 데리고 미군 수송기 C-130 허큘리스를 타고 탈출한다. 이 과정에 본의 아내와 아들은 누가 쐈는지도 모르는 총을 맞고 숨을 거둔다. 베트콩일 수도 있고 탈출하지 못한 채 베트콩의 포로가 될 베트남 군이 쏜 총일 수도 있다. 이 일로 본은 미국에 도착해서 만성우울증과 무기력증에 시달리다 눈 하나 깜박이지 않고 살인할 수 있는 냉혈한으로 변모한다.

  사이공을 탈출해 최종적으로 도착한 곳이 캘리포니아. 이곳에서 장군은 잃어버린 나라, 베트남에서의 재혁명을 꿈꾼다. 의용군을 모집해 마치 호치민이 그러했던 것처럼 파르티잔 활동을 하고, 점점 규모를 키워 집권한 베트남사회주의공화국을 무너뜨리고 베트남공화국을 재건한다는 꿈. 당연히 미국과 미국의회, 미국의 돈을 지원받아야 가능하다.

  베트남사회주의공화국에서 이런 기미를 눈치채지 못할 이유가 없다. 당연한 일이니까. 그리고 장군의 휘하에 ‘나’가 있음에. ‘나’가 프랑스 파리 13구에 사는 것으로 알려진 만의 당고모에게 정기적으로 편지를 보내고, 편지 글의 행간에 투명잉크를 사용해 장군 주변의 정보를 낱낱이 보고하는 바에. 장군은 정말로 태국에 베트남 패잔병을 모아 캠프를 차렸고, 이들을 라오스를 통해 베트남에 잠입시키기도 했다. 마침 미국에서도 이 캠프로 인원을 보낼 예정인데, 여기에 ‘나’의 의형제 본이 다른 두 명의 전직 장교와 함께 지원을 했다. ‘나’도 지원하려 하지만 파리에서 만의 당고모로부터 편지가 온다.

  “너는 그곳에 머물러 있어.”

  안 될 말. 이미 ‘나’는 장군의 맏딸과 깊은 관계를 맺었고, 이를 장군 부부가 알게 된 처지. 장군은 이를 끝까지 모른 척했다가 ‘나’가 비행기 트랙에 오르기 바로 전에, 너 같은 잡종새끼한테 그게 가당하기나 한 짓이냐고 말한다.


  자, 이제 ‘나’가 왜 진술서, 자술서를 쓰게 됐는지 아시겠지. ‘나’는 태국에서 라오스를 거쳐 베트남 땅에 발을 딛자마자 곧바로 포로로 잡힌다. 그래서 들어간 곳이 포로수용소. 포로만 있는 건 아니고 전에 베트남의 공화국 측에서 그들 시각으로 보아 악행을 저질렀던 분자들이 모인 곳이다.

  그곳에서 이른바 ‘개조’가 이루어진다. 이미 우리는 레닌과 스탈린 치하에서, 마오쩌둥의 문화혁명에서 이 개조 과정을 익히 본 바 있다. 그리하여 책에서 상술하는 개조 과정을 소개할 필요는 없을 것.

  이 모든 것을 거쳐야 작가이자 미국의 중요한 교육자인 비엣 타인 응우옌이 정말로 하고 싶었던 단하나의 주장을 들을 수 있다. “결코 진부해지지 않을 보편적이고 시대를 초월한 질문들.”에 대하여.


  권력에 맞서 투쟁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권력을 잡으면 무엇을 하는가?

  혁명가는 혁명이 승리를 거두면 무엇을 하는가?

  독립과 자유를 요구하는 사람들이 왜 다른 사람들의 독립과 자유를 빼앗는가? (p.647)


  이 물음이 나오기 바로 전에 정답은 이미 제시되어 있다. 나는 차마 그것이 무엇인지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어느 때보다 알려드리고 싶을 정도로 절절하게 동감한 결론을.



  * 680쪽이면 요즘 벽돌책이라 하는데, 그게 다가 아니고, 활자의 절대수가 많다. 벽돌이라도 같은 벽돌이 아니다. 그래도 머뭇거릴 필요 없다. 재미있어 술술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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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gettable. 2026-03-16 11:0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전 드라마로 봤었는데 마지막에 충격적인 결말을 벌써 잊어버리고는 뭐였지 하고 다시 찾아보고 무릎을 탁 쳤네요 (다시 한 번 ㅎㅎ) 뭐라 말 할 수 없는 감동.. 역시 원작인 책도 재미있군요.

Falstaff 2026-03-16 13:36   좋아요 0 | URL
이걸 드라마로도 만들었군요. 그것도 재미있겠습니다. ㅎㅎ

Forgettable. 2026-03-16 13:40   좋아요 0 | URL
박찬욱감독이 제작했는데 전체 에피소드 감독은 아니어서 막판에 조금 아쉽긴 했지만 그래도 재밌습니다.

yamoo 2026-03-16 14:27   좋아요 0 | URL
포님, 제목이 뭐에요??

Forgettable. 2026-03-16 14:41   좋아요 0 | URL
똑같이 <동조자>입니다. 쿠플에 있어요~~
 
귀환
히샴 마타르 지음, 김병순 옮김 / 돌베개 / 2018년 3월
평점 :
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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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독후감을 쓰는 스타일은, 처음 읽는 작가일 경우 바이오그래피 대강을 먼저 적는다. 주로 위키피디아를 참고한다. 작가의 지난 일이 작품 속에 들어 있는 경우가 많아 미리 작가의 생전을 알아두고 읽으면 조금 보탬이 되는 경우가 왕왕 있기도 하다. 또 남의 사생활 엿보는 게 재미있잖아, 관음증 같은 거 없으니까 괜히 가자미 눈을 해서 볼 필요는 없더라도.

  하샴 마타르의 <귀향>의 독후감을 쓰면서는 굳이 작가의 지난날을 알아보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 전혀. 왜냐하면, 애초에 <귀향>이 히샴 마타르가 쓴 소설인 줄 알았더니, 세상에나, 에세이로 구분하는데, 자기가 살아온 내력을 자기 입으로 줄줄 다 쏟아낸다. 잘 됐다. 골치 아프게 위키피디아 보고, 가뜩이나 짧은 영어 써서 우리말로 바꾸느라 골치 아픈데. 자기 삶을 그대로, 심지어 사람 이름도 그냥 노출시키며 작품을 쓰는 아니 에르노 같은 이도 노벨상 타고 소설만 잘 쓰는데 마타르도 <귀환>이란 제목으로 소설을 썼으면 더 재미있을 수도 있었을 터, 아쉽기는 하다. 왜 아쉽냐 하면, 소설은 어디까지나 허구. 자기 살아온 거에다가 구라를 좀 슬슬 풀어 보태면 훨씬 더 재미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서. 이 허구라는 이름의 구라를 다른 말로 하면 글루탐산나트륨, MSG 잖여.


  리비아는 16세기 이후, 그러니까 오스만 제국이 동로마제국까지 몽땅 삼켜버릴 당시니까 오스만 최 전성기 시절부터 20세기까지 오스만 제국의 식민지 비슷한 상태로 있었다. 18세기부터 약 백년 간 리비아 호족 출신 술탄이 지배했던 시기도 있었으나 19세기 들어 다시 튀르키예의 식민지였다가, 20세기 초에 이탈리아가 튀르키예와 전쟁을 벌여 다시 식민지로 삼았다. 19세기 영국 왕립 지도에도 리비아라는 국호 대신 ‘술탄국 크리폴리아’라고 표기했었다고 <귀환>에 나온다.

  리비아 입장에서 다행이었던 것은 식민지 조선과 마찬가지로 2차세계대전 패전국의 식민지였다는 점. 종전과 동시에 영, 불, 미, 소가 동시에 껄떡거리다가 1951년에 리비아 왕국으로 독립했다. 이때까지 리비아에서는 석유가 발견되지 않아 독립은 했지만 나라가 거지꼴을 면치 못했고, 와중에 모범적인 신생독립국답게 거의 모든 공무원은 태연스레 부정부패에 전념을 해 국민들의 삶은 곤두박질을 치고 있었다. 왕과 귀족을 제외한 모두가 가난을 면치 못한 세월이 흐르고 드디어 당도한 1969년 9월 1일. 국민들의 불만을 등에 업은 스물일곱 살, 대가리에 피도 마르지 않은 젊은 또는 어린 육군 대위가 부대를 이끌고 트리폴리로 진격해 여든 살의 이드리스 왕을 폐위시키고 사회주의 국가 리비아 아랍 공화국을 세웠다.

  이때 런던 주재 리비아 대사관에서 근무하던 장교 자발라 마타르는 소식을 듣자마자 대사관으로 달려가 로비 접수대에 걸린 존경하는 이드리스 국왕의 초상화를 손수 내려 빌로드 천으로 감쌌다. 마타르는 비록 국왕을 모셨고, 존경했지만 현대 공화정 체제에 더욱 열광했다. 새로운 조국에 헌신하기 위해 런던에서 급거 귀국한 자발라 마타르. 그러나 그는 공항에서 곧바로 체포되어 5개월 동안 감옥에서 취조를 받은 다음에야 풀려났다.

  쿠데타 정부는 자발라 마타르 같은 옛 체제의 고급 장교이자 정치인을 적으로 만들고 싶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가장 강력한 체제 위협세력이 아니라고 인정한다는 뜻은 아니었다. 그리하여 일종의 추방 성격을 띠고 1970년 봄에 유엔 주재 리비아 대표부 1등 서기관으로 임명해 맨해튼으로 보냈다. 자발라 마타르는 자신이 당한 계급 박탈과 강제 전역에 이은 하급 외교관으로 해외 파견근무 역시 역사적 변화에 따른 불가피한 과정으로 인식해 기꺼운 마음으로 뉴욕행 비행을 받아들였다. 아내와 아들 지아드와 함께 맨해튼의 아파트에 짐을 푼 마타르 서기관은 바로 그 해에 둘째 아들이자 훗날 소설가, 에세이스트, 평론가로 이름을 날릴 히샴 마타르를 낳았다.

  어떠셔? 이제 겨우 작가 히샴 마타르가 세상에 나왔다니까? 이거, 지금 위키피디아 복사한 거 아니다. 다 이 책 <귀환>에 나오는 거다. 그것만 시간대 조절해서 쓴 것일 뿐. 그럼 계속 간다.


  3년 동안 UN 리비아 대표부에서 일한 자발라 마타르는 1973년에 귀국한다. 다시 리비아 현대사.

  무아마르 알 카다피가 처음부터 폭정을 동반한 독재자가 되고 싶지는 않았을 거라고 추측한다. 스물일곱 살의 정의감에 불타는 청년 장교. 그러나 권력욕은 있었겠지. 1960년대 초부터 원유 생산을 시작하여 검은 오일 머니가 마구 유입되던 시기에 그가 주목하던 정치인은 이웃 이집트 대통령 나세르. 나세르의 어떤 행적을 모방했느냐, 이런 거 따지지 말자. 딱 하나만 알면 된다. 그가 범 아랍권의 대동단결을 외치는 동시에 친 소련, 즉 사회주의에 입각한 정치를 했다는 점. 당시 사회주의국가, 소련, 중국, 북한, 쿠바, 동유럽의 거의 모든 나라의 공통점은, 일인종신독재. 철권통치 왕권에 버금가거나 어깨를 나란히 하거나 월등하게 큰 권력을 쥐게 된다. 카다피가 보니까, 앗다, 저거 괜찮거든. 그리하여 사회주의를 선언하고, 그러다보니 저절로 종신독재의 길로 들어서게 되고, 종신독재를 이루려니까 자기한테 반대하는 모든 세력을 숙청하는 공포스러운 경찰국가가 될 수밖에. 반면에 석유생산으로 유입되는 달러는 석유 말고 다른 생산 기반 없이도 국민생활을 (전과 비교해) 윤택하게 해주어 예상 외로 카다피를 지지하는 국민들도 다수 생기기는 했지만, 주로 지식층을 중심으로 반 카다피 세력도 만만치 않았다. 이 반 카다피, 반체제 인사 가운데 손에 꼽는 사람이 바로 자발라 마타르.

  자발라 마타르는 위협을 감지한다. 더 이상 리비아에 있다가는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을 거 같아서 가족을 모두 데리고 1980년에 망명길에 올라 이집트 카이로에 도착한다. 군인 출신이면서 반 카다피 진영의 지도자 가운데 한 명. 이집트에서도 그는 반정부 활동을 그만둘 수 없었다. 그의 해외 투쟁은 1990년까지 계속된다. 이집트 경찰에 의하여 카이로의 아파트에서 밝혀지지 않은 혐의로 체포될 때까지.


  이 와중에 마타르 선생은 맏아들 지아드를 1982년에 스위스의 산 좋고 물 좋은 알프스 산맥 고지에 있는 사립기숙학교에 다니게 한다. 그러나 카다피의 마수는 스위스까지 뻗어 있었다. 당시 리비아 정보부대원의 특징적인 외모였던 긴 생머리를 한 건장한 남성 네 명이 지아드를 감시하는 것을 눈치챈 아버지는 긴급하고 비밀스러운 전문을 보내 가까스로 맏아들을 무사히 데려온다. 둘째 히샴도 원래는 스위스 알프스의 기숙학교에 가고 싶었으나 형이 그 꼴을 당한지라 어쩔 수 없이 1986년에 영국의 사립기숙학교에 들어가 2년 동안 다닌다. 놀랍지? 전직 장교에 외교관이었을 뿐인 공무원이 두 아들을 스위스와 영국의 사립기숙학교에 보내? 그렇다고 할아버지가 부자도 아니잖아? 그렇다. 책에는 자세하게 나오지 않지만 아버지 자발라 마타르는 군 복무 중에도 부업으로 일본과 유럽의 고급스러운 상품을 수입해 팔아 막대한 돈을 벌었단다. 물론 작품의 주인공이니 돈을 버는 와중에 당시 기준으로 별 잡음도 없었고, 그러니까 부정부패에 관련도 없었다. 그렇게 믿자. 믿어주지 뭐. 믿지 않으면 어쩔 건데?

  하여간 1990년 3월에 이집트 경찰에 의하여 체포된 아빠 자발라 마타르는 이후 모종의 루트를 통해 리비아로 신병이 인계되어 트리폴리에 있는 악명 높은 아부살림 교도소에 수감된다.

  자발라 마타르는 외교관 경력에 사업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한 인물이라 누구보다 카다피 정권에 위협을 준 인사였다고 아들 히샴 마타르는 주장한다. 실제로 자발라 마타르가 속한(또는 그가 우두머리로 있는) 조직은 리비아 국경 이남 차드 땅에 저항군 훈련소를 설치했고, 국내에서도 지하 세포조직을 운영했으니 카다피 입장에서는 반드시 손에 넣어야 할 적이었을 터. 자발라는 아부살림 교도소에서 숱하게 모진 고문을 당했음에도 조금도 굽히지 않고 그걸 다 견뎌냈다고, 주위의 모든 증인이 증언한다. 그러니 그랬다고 믿자. 이때 리비아 내에 있던 자발라의 조카들, 히샴의 사촌동생과 외삼촌 등도 자발라의 세포조직으로 지목당해 함께 수감되었는데, 그들의 의견을 들어보면 적어도 1996년까지 자발라는 아부살림 교도소에 “생존”해 있었단다. 즉, 이후에 그의 생사는 아무도 모른다는 것.

  이 책 <귀환>은 2011년부터 시작해 2012년 리비아 혁명으로 카다피가 물러난 이후에 귀국한 히샴 마타르가 자신의 아버지를 찾는 여정이다. 아버지는 당연히 죽었겠지만 정말 죽었는지, 죽었다면 어디에 묻혔는지, 혹시 생존해 있거나, 짐작대로 묻혀 있더라도 어쨌거나 아버지를 찾는 여정을 적고 있다.

  소감을 말하자면, 우리나라 현대사도 만만치 않아서, 아, 그랬구나. 리비아도 그랬구나. 하는 정도. 문장은 좋다만, 하도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또 하는 바람에 나중엔 지겨울 수 있다. 나는 뒤로 갈수록 지겨웠다. 당신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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