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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한 피 ㅣ 알라트리스테 시리즈 2
아르투로 페레스 레베르테 지음, 권미선 옮김 / 시공사 / 2004년 12월
평점 :
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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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베르테의 알라트리스테 시리즈의 두번째 작품. 첫 작품인 <루시퍼>의 독후감에 내가 “레베르테의 대표적 작품” 운운했는데, 이제 그건 취소를 해야겠다. 출판사 책 소개에 당연히 들어가 있는 표현이라서 쓴 건 아니고, 일단 1편 <루시퍼>가 꽤 그럴 듯하게 시작을 해 시리즈가 가면서 스토리가 더 확장되면 꽤 근사하리라 여겨 출판사가 주장하는 작가의 “대표작”이란 표현을 옮긴 것이었다. 이제 두번째 작 <순수한 피>를 읽은 다음엔 설마 이 정도면 이름이 알려진 한 작가의 대표작은 아니어야 한다고 생각이 바뀌었다. 그저 심심풀이로, 카페에서 연인을 기다리는데 무료한 참에 카페 책꽂이에 아무렇게나 꽂혀 있어서 연인이 도착할 때까지 슬슬 넘길 정도의 책 수준을 조금 넘긴 정도. 목욕하고 마음을 가다듬은 다음에 책상에 정좌해 읽는 것이 옳다, 이렇게 말하면 곧바로 신경정신병동으로 후송 당할 수 있는 책.
그리하여 1부 <루시퍼>에서 했던 말, “나는 “알라트리스테 대위” 연작을 나온 데까지 달려볼 생각이다.” 이건 지금 확실하게 취소한다. 두 권 읽었으면 됐다. 레베르테, 좀 지나서 딱 한 번만 더 보자. 아니면 말던가.
1부에서 영국의 이교도 왕실과의 문제를 해결한 알라트리스테.
기억하실 턱이 없어서 요약을 해드리면, 대귀족과 왕실 비서 알케사르가 두 검객, 알라트리스테와 시칠리아에서 온 괄테리오 말라테스타한테 마드리드로 들어올 두 영국 귀족에 대한 특정한 조치를 의뢰한 후, 곧바로 같은 자리에 종교재판관 보카네그라가 들어와 특정 조치 말고 아예 영국인들을 처단하라고 다시 의뢰한다. 두 검객, 말이 좋아 검객이지 쉬운 말로 청부업자는 돈을 더 주는 보카네그라의 의뢰를 우선으로 여기고 그들을 만나 싸움을 벌인다. 근데 알라트리스테가 자기 상대 영국인의 희생정신이 감동하는 일이 벌어진다. 깊은 인상을 받아 그들을 살려주어, 결과적으로 스페인과 영국 왕실 사이의 관계가 더 좋은 상태로 유지된다.
하지만 알라트리스테의 덕분으로 스페인은 조금 더 명망있는 나라가 될 수 있었으나, 왕실비서 알케사르와 종교재판관 보카네그라, 자신의 임무 수행을 방해한 말라데스타는 알라트리스테에게 깊은 원한을 갖게 되고, 2부 <순수한 피>에서 이를 갚아주려 음모를 짠다.
그러니 이 책은 1부부터 순서대로 읽어야 하는 시리즈. 물론 사건은 권 별로 개별적이라 볼 수 있지만 해당 사건이 왜 일어나는지, 왜 자유스러운 음모인지 알기 위하여 그렇다는 말이다.
시작은 시대-추리물 답게 마드리드 마요르 광장에서 투우경기가 있는 날 새벽에, 산히네스 성당 앞에 한 인력거가 도착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1부에서 알라트리스테가 궁중 귀족들을 만나게 해주는 사람이 순찰대장 마르틴 살다냐. 이번에도 어김없이 그가 먼저 등장한다. 인력거 안에 죽은 사람이 하나 타고 있었거든. 그래서 지금 심통이 대단하다. 사건 때문에 여차하면 투우 축제를 볼 수 없을 수도 있으니. 시신은 이제 갓 50대에 접어든 노파. 사인은 목졸라 죽인 교살. 놀랍게도 시신의 손에 금화 50에스쿠도가 쪽지와 함께 쥐어 있다. 메모는 “미사를 올려서 명복을 빌어 주십시오.”라는 짧은 내용.
이 쉰 살의 노파가 누구인지 앞서 말하면 재미가 없을 텐데, 뭐 설마 이 책을 몇 명이나 읽어보실 것이며, 읽더라도 읽기 전에 내 독후감 먼저 참고하실 분은 없으리라 생각해 무책임하게 알려드리자면, 놀라지 마시라, 수녀원에서 포주 역할을 하는 여자이다.
시대는 1623년. 왕 필리페 4페는 그저 사람만 좋아 정무와 외무, 내무 같은 거엔 다른 비서관들에게 전권 위임하고, 사법은 거의 종교재판관들한테 넘겨주어, 남고 남는 시간에 프랑스에서 얻은 젊은, 아니, 어린 아내와 속닥거리기나 하고, 좋은 먹거리와 즐길거리만 파고 살았다. 그래서 당연히 궁정의 거의 모든 고귀족들은 왕을 장난감이나 유아기 소년으로 취급해,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써서 부정부패, 매관매직, 기타 나라가 거덜날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이 무엇일까 골몰하기에 이른다. 날이 갈수록 망해가는 스페인. 이를 지켜보기 힘들어 올리바레스 백작이 현재 스페인 성직자와 귀족의 돈줄인 이탈리아 제노바 은행 대신 신대륙과의 무역을 통해 금을 모은 포르투갈 은행과 협력해서 스페인 경제의 체질을 개선하려 하지만, 이 책에서는 아니고 그리 멀지 않은 훗날 뜻을 이루지 못한 채 탐관오리들에게 모함을 당해 불운한 말년을 보낼 예정이다. 이 책이 올리바레스 백작이 전성기 무렵이라 생각하면 된다.
종교재판관으로 대변되는 기존 권력자들 입장에서 보면 올리바레스가 눈에 가시이다. 그리하여 멀리 보면 그를 제거하기 위해서, 짧게 보면 포르투갈 금의 국내 유입을 막아 제노바 금에 의한 스페인 지배를 유지하려고 음모를 꾸민다. 여기에 한 가지 더 보태는 게 있으니, 바로 얼마 전에 영국 왕실의 왕자 일행의 목숨을 살려준 알라트리스테를 제거하는 일. 이 일은 또 당시에 벌인 칼싸움에서 무승부를 기록한 시칠리아 검객 말라테스타의 협조를 헐한 값으로 얻을 수도 있다.
그리하여 꾸민 일. 아도라시온 베니타 수녀원에 들어가 있는 발렌시아 여인 엘비라 델라 크루스를 지목했다. 이 수녀원의 실제적 주인은 후안 코로아도 수사와 훌리안 가르소 수사이다. 후안은 성당 전속 사제로 수녀원에서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고, 훌리안은 고해 수사. 둘 다 젊고, 키 크고, 멋지게 생겼으며 귀족의 자제. 사실 이 즈음 귀족의 자제들이 수사가 되는 가장 큰 이유는 전쟁에 나가지 않기 위하여 그랬다는 것이 작가 레베르테의 주장인데, 어려서부터 최고로 좋은 교육을 받아 마음 속에 악마가 들었더라도 입으로는 천사의 말을 나불대는 재주가 있어서, 수녀원의 수녀들을 몽땅 최면에 걸거나, 최면에 빠지지 않는 일부 수녀와 견습수녀한테는 지독한 가스 라이팅을 해, 후안의 경우, 자신과 살을 맞대는 것 자체가 천국에 다가가는 일이라는 환상에 빠지게 했으며, 고해수사 훌리안은 별것도 아닌 죄, 수녀원 안에서 죄를 지으면 얼마나 무거운 죄를 짓는다고 그걸 보속하기 위하여 자기 앞에서 홀랑 누워 있게 만드는데 선수였다.
발렌시아 귀족의 딸 엘비라 델라 크루스가 이 수녀원의 수녀. 정신이 좀 말짱했는지 수녀원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을 아버지한테 말했고, 이에 열을 잔뜩 받은 아버지와 오빠, 동생이 칼을 벅벅 갈더니 마드리드로 쫓아와 먼저 궁정시인이자 한 시절 용감한 군인이었으며, 한 시절 칼과 단검과 권총 사용에 도가 튼 절름발이 프란시스코 데 케베도를 찾아온다. 1부를 읽은 분은 아실 터. 알라트리스테와는 둘도 없는 전우 사이.
케베도가 억울한 사연을 듣고 이들을 알라트리스테와 연결시켜주고, 비록 많은 보수를 요구했지만 다른 사람도 아니고 케베도의 부탁이라 성공하기가 매우, 매우 힘든 수녀원 공격을 감행하기로 한다. 하지만 아무리 날고 기는 알라트리스테도 몰랐던 것이 있었으니, 자신한테 원한을 가진 말라데스타가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고 있었던 것을.
쉽게 말해, 말라데스테와 그보다 훨씬 더 무시무시한 적인 종교재판관 보카네그라 신부는 벌써 이들이 수녀원의 담을 넘을 것을 알고 단단한 경비를 구축해 놓고 있었다. 당연히 알라트리스테, 케베도와 델라 크루스의 세 부자에 의한 수녀원 공격은 섬멸되고, 이 와중에 델라 크루스의 열여덟 살 먹은 막내 아들은 심한 상처를 입어 죽고 만다. 그리고 작품의 화자, 열세 살의 이니고 역시 말라데스타에게 포로로 잡혀 톨레도의 종교재판 형무소로 들어가니 이제 기다리고 있는 것은 화형.
왜 하형인고 하면, 엘비라 델라 크루스 수녀의 조상이 개종 유대인. 게다가 포르투갈 은행의 중요한 핵심인물이다. 당시 스페인에서는 순정하지 못한 피, 즉 유대인, 아랍인들을 극도로 박해하던 시절이라 유대인이 수녀원에 들어갈 수 없었고, 종교재판관은 이를 당연히 유대교에 의한 기독교 오염 의도로 해석해버렸다. 이니고를 잡아야 이니고를 미끼로 알라트리스테를 엮을 수 있을 거 같아서 몇 달 동안 톨리도 형무소에 잡아두고, 결국 화형대에 묶어 태워 죽이려 했던 것.
근데 시리즈에서 주인공 급 화자가 설마 도중에 불에 타 죽기야 하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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