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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조자
비엣 타인 응우옌 지음, 김희용 옮김 / 민음사 / 2023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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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중부 해변마을 둑토 출신의 응우옌 부부는 1954년 남베트남, 1년 후부터 1975년까지 20년간 ‘베트남공화국’이라 불릴 반메투엣으로 이사해 한 명의 딸을 입양하고 적어도 두 명의 아들을 낳았다. ‘적어도 둘’ 가운데 큰 아이 ‘퉁’은 훗날 하버드 학부에서 철학을 공부한 의학박사가 되고, 작은 아이는 대학 교육자로 이름을 알릴 것인데 이 둘째 비엣이 2015년에 쓴 소설 <동조자>가 2016년에 퓰리처상을 받는다. 놀랍게도 첫 장편소설이 미국 작가들의 로망인 퓰리처상을 받은 거다.
1975년에 응우옌 가족은, 호치민이 건국한 베트남민주공화국이 미국 등 열강을 등에 업고 세운 일종의 괴뢰국가 베트남공화국의 수도 사이공을 함락시킬 때, 미국으로 ‘도피’했다고 위키피디아에 나온다. “사이공이 함락되자 미국으로 도피했다.” 응우옌 가족이 당시 사이공에서 살았는지는 판단할 수 없지만 미국의 기관이나 유력자 또는 군대와 상당히 밀접하게 지내, 그들이 수송기 탑승을 허락한 극소수의 베트남인이었으며, 미국 내에서 식료품점을 차릴 수 있을 재산을 가지고 도피할 정도의 재력을 보유했다고 보아야 한다. 즉, 당시 부패할 대로 부패한 베트남 정∙재계의 주류 가운데 한 명이었다고 봐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혹시 이 가족이 베트남 마지막 응우옌 왕족의 일원 아니었을까? 짐작이다. 확실하지 않으니 오해 마시라.
간략하게 베트남의 현대사를 살펴보자. 천년 동안 중국의 ‘지배 또는 간섭’을 받아온 베트남은 또 오랜 세월 프랑스에 의해 식민지배까지 겪어야 했다. 2차세계대전이 일어나자 또다시 일본군이 진주해 그들 치하에 있었다가 종전 후 드디어 1945년 9월, 호치민이 하노이에서 독립과 베트남민주공화국의 건국을 선언한다. 하지만 베트남은 불운하게도 승전국 프랑스의 식민지였다. 그들이 자신의 식민영토를 그냥 내버려둘 리가 없어 초현대식 무기와 전폭기를 동원한 인도차이나 전쟁을 벌이지만, 프랑스는 1954년에 결정적으로 얻어터져 쌍코피를 흘리며 철수했고, 드디어 베트남은 독립을 이루었다.
하지만 호치민의 베트남은 공산주의 국가. 당시 전지구적인 냉전 상태는 만일 베트남이 공산화된다면 이웃한 라오스, 캄보디아, 말레이시아, 태국 역시 공산화 물결에 휩쓸릴 것이라는 이른바 도미노 현상의 위협이 서구사회를 압박해 자기들 임의로 위도 17도선을 경계로 남쪽에 응우옌 왕조의 마지막 찌꺼기 하나를 왕으로 삼아 ‘베트남국’을 만들어준다. 시절이 어느 땐데 왕조? 아니나 다를까, 얼마 지나지 않아 군인 응오 딘 디엠이 쿠데타를 일으켜 다시 베트남공화국을 세우게 된다.
자기들이 죽어라 싸워 독립을 쟁취한 북쪽의 베트남민주공화국이 가만히 있을 수 없었겠지. 그리하여 유명한 통킹만 사건을 일으켜 본격적인 내란이 발발하니 우리가 아는 베트남 전쟁이다. 미국이 기록한 최초의 패전. 한국전쟁이 최초의 무승부였고, 베트남전은 여지없이 패전 자체였다. 이때 앞에서 말한 베트남인 가운데 유력자들, 중요한 친미파들은 수송기를 타고 탈출해 미국의 수용소에 도착했고, 돈만 많고 미국과 ‘특별한 관계’까지는 이루지 못한 부자들은 아무 배나 타고 이웃한 나라로 건너간 이른바 ‘보트 피플’ 신분으로 베트남을 탈출했다. 새로이 건국한 “베트남사회주의공화국”에 남았다가는 무시무시한 재교육을 받거나 죽을 지도 몰라서.
<동조자>는 사이공 함락을 불과 며칠 앞두고 시작한다. 화자는 ‘나’. 근데 올림말로 쓴다. 좀 이상하다. 계속 읽다 보면 ‘소장님’과 ‘정치위원’에게 쓰는 일종의 자술서이다. ‘나’가 수용소에 갇힌 상태에서 과거, 즉 사이공 함락 직전부터 이 수용소에 수감될 당시까지의 모든 일을 쓰라는 지시를 받고 쓴 자술서.
그럼 ‘나’는 누구일까?
북베트남, 훗날 베트남사회주의공화국이 될 북베트남의 스파이이자 고정간첩. 동시에 미국 CIA 비밀요원이자 남베트남 장군의 부관이며 정보부 위관장교. 대위였다. 이런 복잡한 일을 아무나 하나? 매우 총명해 1960년대에 국비 유학생으로 미국 캘리포니아 옥시덴털 대학에서 6년간 미국사, 미국문학, 문법, 속어와 마리화나, 섹스까지 이른바 미국인의 사고방식을 모두 몸에 익혀가며 석사까지 공부하고 다시 베트남에 돌아왔다. 이런 특혜는 1954년 프랑스와의 전쟁통에 난민선을 타고 피난할 때 유심히 ‘나’를 발견하고 재능을 알아본 미국인 대사관 직원이자 CIA 요원이었던 클로드의 눈에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클로드는 몰랐지. ‘나’가 점점 커가며 고등학교 다닐 때 의형제를 맺은 ‘만’에 의하여 제대로 의식화교육을 받아 공산주의자가 된 분자인 것을. ‘나’는 만의 지시에 따라 고분고분 클로드가 지원해주는 대로 미국으로 가 모든 것을 ‘작전상’ 흡수하고 돌아온 것이었다. 의형제 가운데 다른 한 명 ‘본’은 북베트남군이 본이 보는 앞에서 아버지를 처형해버린 이후에 극도의 반공주의자가 되어 버리고.
또 하나의 중요한 점. 엄마가 열네 살 때 ‘나’를 낳았다. 아버지는 프랑스인 신부. 맞다. 가톨릭 사제의 아들이자 서양 혼혈. 베트남 사람들이 ‘잡종새끼’라고 부르는. 주인공의 이런 정체성이 작품에서 상당한 의미를 띈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독자마다 생각하는 바가 다르겠지만 나는 이중간첩으로서 이쪽도 아니고 저쪽도 아닌, 이쪽이면서 저쪽이기도 한 인간이자 베트남 자체가 아닐까 싶었다. 나이든 프랑스 가톨릭 사제와 베트남 소녀 사이의 아이, 동양과 서양이 낳은 혼외자, 사람의 눈길을 피할 수 없는 개체, 기타 등등.
‘나’는 만과 직접 만나지는 않지만 숱한 접선을 통해 미군의 폭격 일정을 제공하여 베트콩 및 주민들을 미리 대피시켜 희생을 그나마 줄일 수 있었고, 유력인사의 동선을 알려 그들이 효과적으로 암살계획을 세우게 해주기도 했다. 이런 고급 정보를 보낼 수 있으려면 베트남군 내부에 상당한 신임을 받아야 하는 법, 그러기 위하여 ‘나’는 잡혀온 베트콩 간첩에 대한 고문 같은 것을 직접 수행하지는 않지만 방관하고 참관해야 했으며, 중요하지 않은 베트콩 측 간첩의 체포를 위하여 역시 중요하지 않은 정보를 제공해야 했을 것이다. 즉 양쪽 모두의 철저한 적이 되어야 하는 숙명이다. 어느 쪽이 최종적으로 승리하든 결국 비극적 결말을 맞을 수밖에 없는 운명의 인간.
정말? ‘나’의 경우는 아닐 확률이 많다. 독자는 그렇게 짐작한다.
만일 베트남이 승리한 후에 베트남 군대나 미국의 CIA에서 ‘나’가 베트콩의 스파이였다는 것이 발각나면, 발각날 수밖에 없을 터인데, 무조건 처형당할 것은 확실하다. 반면에 베트콩이 승리할 경우 그들의 중요한 수뇌부에 의형제 만이 있어서 그의 지령을 받아 스파이 행위를 한 것이 전쟁 중에 작전상 행한 밀고보다 우위에 있을 것이 확실하다. 만일 전쟁 중에 만이 죽지만 않는다면.
그럴 듯하지? 그럴 듯한데, 정말 그럴 듯한 과정만 밟아 진행하면 소설이 재미없어진다.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더 묻지 마시고.
하여간 1975년 4월 30일. 사이공이 드디어 함락되기 바로 직전에, ‘나’는 장군과 장군의 직계가족, 그리고 골수 반공주의자 의형제 본과 그의 아내와 아들을 데리고 미군 수송기 C-130 허큘리스를 타고 탈출한다. 이 과정에 본의 아내와 아들은 누가 쐈는지도 모르는 총을 맞고 숨을 거둔다. 베트콩일 수도 있고 탈출하지 못한 채 베트콩의 포로가 될 베트남 군이 쏜 총일 수도 있다. 이 일로 본은 미국에 도착해서 만성우울증과 무기력증에 시달리다 눈 하나 깜박이지 않고 살인할 수 있는 냉혈한으로 변모한다.
사이공을 탈출해 최종적으로 도착한 곳이 캘리포니아. 이곳에서 장군은 잃어버린 나라, 베트남에서의 재혁명을 꿈꾼다. 의용군을 모집해 마치 호치민이 그러했던 것처럼 파르티잔 활동을 하고, 점점 규모를 키워 집권한 베트남사회주의공화국을 무너뜨리고 베트남공화국을 재건한다는 꿈. 당연히 미국과 미국의회, 미국의 돈을 지원받아야 가능하다.
베트남사회주의공화국에서 이런 기미를 눈치채지 못할 이유가 없다. 당연한 일이니까. 그리고 장군의 휘하에 ‘나’가 있음에. ‘나’가 프랑스 파리 13구에 사는 것으로 알려진 만의 당고모에게 정기적으로 편지를 보내고, 편지 글의 행간에 투명잉크를 사용해 장군 주변의 정보를 낱낱이 보고하는 바에. 장군은 정말로 태국에 베트남 패잔병을 모아 캠프를 차렸고, 이들을 라오스를 통해 베트남에 잠입시키기도 했다. 마침 미국에서도 이 캠프로 인원을 보낼 예정인데, 여기에 ‘나’의 의형제 본이 다른 두 명의 전직 장교와 함께 지원을 했다. ‘나’도 지원하려 하지만 파리에서 만의 당고모로부터 편지가 온다.
“너는 그곳에 머물러 있어.”
안 될 말. 이미 ‘나’는 장군의 맏딸과 깊은 관계를 맺었고, 이를 장군 부부가 알게 된 처지. 장군은 이를 끝까지 모른 척했다가 ‘나’가 비행기 트랙에 오르기 바로 전에, 너 같은 잡종새끼한테 그게 가당하기나 한 짓이냐고 말한다.
자, 이제 ‘나’가 왜 진술서, 자술서를 쓰게 됐는지 아시겠지. ‘나’는 태국에서 라오스를 거쳐 베트남 땅에 발을 딛자마자 곧바로 포로로 잡힌다. 그래서 들어간 곳이 포로수용소. 포로만 있는 건 아니고 전에 베트남의 공화국 측에서 그들 시각으로 보아 악행을 저질렀던 분자들이 모인 곳이다.
그곳에서 이른바 ‘개조’가 이루어진다. 이미 우리는 레닌과 스탈린 치하에서, 마오쩌둥의 문화혁명에서 이 개조 과정을 익히 본 바 있다. 그리하여 책에서 상술하는 개조 과정을 소개할 필요는 없을 것.
이 모든 것을 거쳐야 작가이자 미국의 중요한 교육자인 비엣 타인 응우옌이 정말로 하고 싶었던 단하나의 주장을 들을 수 있다. “결코 진부해지지 않을 보편적이고 시대를 초월한 질문들.”에 대하여.
권력에 맞서 투쟁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권력을 잡으면 무엇을 하는가?
혁명가는 혁명이 승리를 거두면 무엇을 하는가?
독립과 자유를 요구하는 사람들이 왜 다른 사람들의 독립과 자유를 빼앗는가? (p.647)
이 물음이 나오기 바로 전에 정답은 이미 제시되어 있다. 나는 차마 그것이 무엇인지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어느 때보다 알려드리고 싶을 정도로 절절하게 동감한 결론을.
* 680쪽이면 요즘 벽돌책이라 하는데, 그게 다가 아니고, 활자의 절대수가 많다. 벽돌이라도 같은 벽돌이 아니다. 그래도 머뭇거릴 필요 없다. 재미있어 술술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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