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잔해를 줍다 은행나무 세계문학 에세 26
제스민 워드 지음, 황근하 옮김 / 은행나무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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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7년 캘리포니아 버클리에서 태어나 세 살 되던 해에 가족의 원래 고향인 미시시피 덜레일로 이사해 청소년 시절까지 보낸 제스민 워드. 중등학교 시절에 학교에서 왕따를 당해 미시시피주와 겨우 천여 명이 사는 고향 덜레인은 워드에게 애증의 장소가 되었다고 한다. 가족 가운데 유일하게 대학에 진학한 워드는 스탠포드에서 영문학학사, 미디어 석사. 몇 년 지나 2005년에 다시 미시간 대학에서 문예창작 석사를 취득했다. 바로 이 해, 2005년 8월에 미국 남동부 해상에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발생했다. 플로리다를 관통한 1등급 허리케인 카트리나는 멕시코 만에 머무르면서 하루만에 초대형 급인 5등급 허리케인으로 몸집을 키운 후 드디어 미시시피 강을 따라 북상한다. 이 영향으로 뉴올리언스와 인근 지역을 온통 물바다로 만들었으니, 카르리나 양이 호수의 제방을 무너뜨려 버렸기 때문이었다.

  이때 숱한 사망자와 실종자 그리고 이재민이 발생해 수만명이 뉴올리언스 돔 경기장과 컨벤션 센터 등에 수용되었는데, 지금도 기억하거니와 전기와 용수 등의 문제로 고생 깨나 했다는 내용의 방송을 연일 송출했었다. 왜 이렇게 상세하게 기억을 하느냐면, 2005년에 내가 빌어먹고 살던 회사의 당시 회장이 겨우 14세에 미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파키스탄계 미국인 수재였는데, 회장으로 부임하자마자 갑자기 흡혈귀로 변신해 모든 지역의 인원감축, 급여 동결, 복지 프로그램 취소와 더불어 극단적인 원가절감을 강조, 직원 전체, 말로만 직원 전체가 아니라 진짜로 모든 직원을 들들 볶아대고 있던 찰나, 뉴올리언스의 수퍼돔과 컨벤션 센터의 참상과 이에 따른 인종간 갈등 등의 방지를 위하여 전세계 법인이 솔선해 모금을 하자고 제안했기 때문이다. 인원감축과 급여동결, 복지 취소, 그리고 달달 볶는 원가절감으로 파김치가 되어 버린 직원들한테 뭐? 태평양 건너 멀고 먼, 얼굴을 봐도 누가 누군지 구분도 못할 사람들을 위해 돈을 모아 달러로 바꿔 보내주자고? 걔네들 천조국 국민 아냐? 그 회장새끼도 자기가 파키스탄 출신이라는 핸디캡 때문에 더 지랄을 했던 것인지 모른다. 아직도 그렇게 생각한다. 회장새끼 아니었으면 좋은 마음으로 모금에 응했을 것인데 사는 게 뭐 그렇지.

  게다가 각 국에서 가장 큰 이익을 내지만 인당 인건비가 가장 높은 우리나라 법인을 철수하겠다고 날이면 날마다 엄포를 뻥뻥 쳐대던 와중에 피 같은 돈을 주고 싶은 마음이 나겠느냐고? 정말 우리나라가 직원의 인당 인건비가 제일 높았을까? ‘생산직 직원 인건비’는 그렇다. 일본, 타이완, 이탈리아, 미국보다 높은 임금을 받았다. 임원 인건비는 아니다. 2005년에는 확실하다. 아마 지금도 그럴 것 같다.

  하여간 2005년 워드가 미시간 대학에서 석사를 받고 얼마 되지 않아 카트리나가 상륙해 이이의 고향땅을 결딴냈고, 소식을 듣자마자 차를 몰고 달려갔건만 제방을 무너뜨려 온 천지가 물바다가 되어 그저 발만 동동 굴러댈 수밖에 없었다. 이 작품은 미시시피 인근의 가상 흑인 거주 마을 부아소바주에 카트리나가 오기 전 열흘, 당일, 그리고 다음날까지 12일 동안의 흑인 가족 이야기이다. 따라서 작가의 체험담이 아니고 전적으로 픽션으로 읽어야 마땅하다. 물론 작가의 가족이나 이웃, 주변사람들이 하는 말을 다 채록해서 참고했겠지만 하여간 그렇다는 거다.


  로즈와 클로드 바티스테 부부는 연년생으로 랜들, 스키타, 그리고 주인공인 외동딸 에쉬를 낳아 없는 살림이지만 흑인 커뮤니티 부아소바주 마을에서 만족하며 살았다. 삼남매가 연년생 비슷한 터울이었다가 이후에 태기가 없었는데, 에쉬가 여덟 살이 되자 늦게 아이가 들어섰고, 엄마는 막내 아들 주니어를 출산한 직후 즉시 병원으로 옮겼지만 안타깝게도 그걸로 끝이었다.

  처음엔 아빠가 주니어의 기저귀를 갈아주고, 분유를 타 먹이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위로 삼남매에게 이런 것들을 가르쳐주고 주니어를 키우게 했다. 그러니 막둥이한테 두 형과 누나와는 엄마 비슷한 관계일 수밖에. 아빠도 열심히 산다. 홀아비가 된 이후에 술이 더 늘어 알코올의존 성향이 짙어져 일상생활에 지장을 받을 정도이지만 어떻게 해서라도 돈을 벌고, 부아소바주로 향해 온다는 카트리나에 대비하기 위하여 애를 쓴다. 그러나 역시 문제는 “일생생활에 지장을 받을 정도”의 술. 가족은 빈곤에서 벗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집은 40년 만의 5등급 허리케인을 버틸 만큼 튼튼하지 않은데, 그나마 하나 있는 벌이 수단인 트럭도 이제는 수리하지 못할 정도로 낡아 버렸다. 게다가 고물 트럭을 이용해 집을 보수하려다가 허리케인이 오기 전날 한 번에 아버지가 손가락 세 개를 날려버렸으니 이를 어쩔꼬.

  맏아들 랜들은 농구실력이 뛰어나다. 자기 생각으로는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대학에 가야 하는데, 국영수 공부해서 대학 가는 건 꿈도 꿀 수 없어서 농구 특기생이 유일한 방법이다. 그러기 위해 여름 농구 캠프에 들어가야 하지만 입회비가 문제다. 얼른 보면 집안일엔 관심 없고 오직 농구 하나에만 몰두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천만에. 집안에 조금이라도 문제가 생기면 주니어는 랜들의 등에 딱 달라붙어 떨어질 줄 모르고, 랜들 역시 한 순간이나마 막둥이를 품에서 내려놓을 생각이 없다.

  둘째 스키타. 엄마를 닮은 랜들처럼 키가 크지는 않지만 단단한 근육으로 뭉친 소년. 얼핏 보면 아빠나 형제, 누이보다 자기가 돌보는 ‘차이나’라는 이름의 맹견 흰색 핏불테리어를 더 소중하게 여기는 것처럼 보인다. 차이나가 초산으로 새끼를 분만하는 것이 작품의 첫 장면이다. 말이 핏불테리어지, 이게 보통 맹견이 아니라서 주인이 아니면 누구라도 공격하는 본능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가족 누구도 차이나와 차이나의 주인인 스키타를 함부로 하지 않는다. 꼭 그래서 만은 아니고 스키타 역시 고집불통에 사나운 성정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집안 돌아가는 걸 식구 가운데 누구보다 훤히 꿰뚫고 있는 건 가족 아무도 모른다.

  셋째가 주인공이자 외동딸 에쉬. 얘만 형제 가운데 공부에 소질이 있다. 지금은 그리스 신화, 이 중에서도 메데이아에 관해 열심히 뇌활동을 하고 있다. 열두 살 때 랜들 오빠의 친구이고, 아직도 자주 집에 놀러 오는 매니 오빠가 자신의 몸을 만졌고, 기분이 좋았다가 나빠졌다가 다시 좋아져 그냥 내버려둬 첫 경험을 했다. 이후에도 매니 오빠가 좋다. 다른 남자애들도 에쉬에게 접근했다. 에쉬는 거절하는 귀찮음보다 허락하는 간편한 방법을 택해 상당히 많은 남자애들과 숲 덤불 속으로 향했다. 이 사이에 매니 오빠는 자기 마음도 알아주지 않고 다른 여자애와 애인 사이가 됐고,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가끔 에쉬를 범했으며, 특히 최근 다섯 달 동안엔 매니 오빠하고만 했는데 어느덧 열다섯 살이 된 에쉬가 덜컥 임신을 해버리고 말았다.

  막둥이 주니어. 이제는 좀 컸다. 그래도 식구 가운데 제일 작다. 미국 남부의 집을 보면 집과 땅 사이에 공간을 띄운다. 해충이나 독사 같은 것들의 침입을 막기 위해서 그렇게 만들었다. 이 틈 사이에 주로 잡동사니 같은 것을 집어넣고는 하는데, 이것 가운데 하나를 꺼내 오기에 주니어의 체구가 아주 딱이다. 주니어 역시 그곳이 자기 아지트로 생각해 무슨 섭섭한 일이라도 있으면 얼른 그곳으로 내뺀다. 대여섯 살 정도의 소년이라 틈만 나면 밖에 나가 놀려 하지만 막둥이는 역시 막둥이. 집에서 그나마 귀여움을 독차지하고 당연히 식구 모두의 보살핌을 받는다.

  그리고 차이나. 새끼를 다섯 마리나 낳았다. 한 마리는 씨를 준 수컷의 주인 로키에게 주어야 하고, 나머지 가운데 한 마리 정도만 주인 스키타가 키울 것이다. 다른 새끼들은 팔아서 큰형 랜들의 농구 캠프 가입비로 쓸 예정이지만 안타깝게도 생각대로 되지는 못한다. 그래서 랜들의 대학 입학도 물 건너 간다. 날 때부터 맹견, 그리고 투견. 어렸을 때는 투견장에서 지기도 했지만 조금 큰 다음 부터는 적수가 없었다. 지금은 출산한 직후라서 투견장에 세우는 건 무리. 그러나 소설에 투견이 일단 나왔다 하면 개싸움 장면이 빠질 수 없는 법. 작가 제니스 워드는 투견장에서 맞상대하는 수컷 개가 사람이 생각하기에 수컷으로 가장 악독한 방법으로 차이나를 공격하지만 그것을 극복하고 승리하는 장면을 연출한다. 당연히 실제 상황에서는 전혀 가능하지 않는 장면이나 픽션이니까 넘어가자. 그럼에도 마음 약한 독자가 읽기에 부담이 될 만큼 잔혹한 장면을 글 좋은 솜씨로 묘사하고 있으니 각오하고 읽으시라.


  그리고 드디어 상륙하는 5등급 초대형 허리케인 카트리나. 멕시코만에서 5등급으로 몸집을 키운 다음 미시시피에 상륙할 당시는 3등급, 조금 약해졌다고 위키피디아에 쓰여 있지만 그딴 거 중요하지 않다. 역대급의 피해를 주고, 많은 사상자, 실종자, 재해민이 발생한 건 틀림없는 사실이니까.

  게다가 제방이 터져 쏟아지는 물은 바티스테 가족의 집을 무너뜨리고 침수시켜 버린다. 거실에 모여 있다가, 다락방으로 올라가고, 천장을 뜯어 지붕까지 올라간 아빠, 형제자매, 차이나와 새끼들. 범람한 물은 이제 튼튼하지 못한 집 전체를 기울이고, 더 지붕에 머물렀다가는 여지없이 가족 전부 물귀신이 되고 말 처지. 그러나 크게 걱정하지 마시라. 미국 소설이다. 미국 소설에서 가족은 함부로 죽지 않는 법이니까. 그렇지만 이 어려움 속에서 적어도 손실 하나 정도는 있어야겠지? 그렇다. 손실이 없지는 않다. 그리고 그건 당신이 생각하는 것이 맞다.

  한 가지 더 붙이자면, 미국 소설에서 빠뜨릴 수 없는 것. 가족애. 여기까지 이야기했으니 할 말 다 했다. 그래도 재미있으니 읽어도 후회하지 않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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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안 - 쑤퉁 장편소설
쑤퉁 지음, 문현선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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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년 반 만에 쑤퉁을 다시 읽는다. 당시 <쌀>을 읽으면서 나는 이후 또 쑤퉁을 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세상이 마음먹은 대로 되는 건 아니라서 그 말을 지키지 못하고 다시 읽는다. 전에 50~60년대 초반에 출생한 중국 작가들의 작품을 읽은 첫 감정이 별로 좋지 않았다. 옌롄커와 위화 그리고 쑤퉁까지. 어린 시절에 대기근과 문화혁명, 대약진운동 같은 큰 사건에 대해 듣고, 직접 목격하기도 하고, 어쩌면 가족이 피해 당사자가 되었을 수도 있었을 터이니 좀 독해져 있었을 수도 있겠다. 처음 읽은 옌롄커의 <풍아송>, 처음 읽은 쑤퉁의 <쌀>은 도무지 즐겁게 읽을 수 없을 정도로 내용이 거칠어 두 번은 읽지 못할 작가라고 단정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나라 독자는 중국 작가에 비해 참 곱게 늙어가는 거 같았다.

  그러다 어찌어찌 옌롄커를 다시 읽게 되었는데, 그건 옌롄커보다 조금 선배 작가들, 다이허우잉과 모옌 같은 이들의 작품이 그래도 중국 소설을 더 읽어보는 것이 좋겠다고 옆구리를 찌르는 거 같은 느낌을 주었기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을 듯. 이제는 옌롄커, 위화, 쑤퉁은 물론이고 류전윈, 거페이 등, 추천을 받으면 서슴없이 읽는다. 그게 확장되어 타이완 소설까지 이젠 막 읽는다. 하필 쑤퉁을 다시 찾는 데 근 9년이 걸린 것은, 도서관 서가의 쑤퉁 책 위에 먼지가 너무 쌓여 손 대기가 거시기해서. 이번엔 마음잡고 물휴지 한 장 가지고 들어가 앞뒤, 위아래 박박 닦고 대출해 읽었다. <하안>이 그나마 먼지가 덜 두껍게 쌓여서 고른 거다. 다른 이유는 없다.


  도저한 장창(長江)의 지류인 진췌강(金雀江)은 위키피디아 검색을 해봐야 일본술 사케 하나만 나올 뿐이라서 진짜 있는 강인지 허구의 강인지 당췌 모르겠지만 동정호 남쪽의 후난성 일대를 흐르는 강처럼 보인다. 이 진췌강을 따라 여러 선대船隊가 오르내리며 펑황진, 유팡진, 마차오진의 물자를 보급하고 생산물을 다른 고장으로 보냈다. 그리하여 크게 양분하면 각 진 그러니까 뭍에 사는 사람들과 진췌강을 오가며 배위에 삶의 터전을 잡은 물 사람들로 나눌 수 있어서 쑤퉁은 물 사람들을 하河, 진 사람들을 안岸이라 칭해 작품의 제목을 <하안河岸>이라 했으리라.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지만 중국사람들도 크게 다르지 않아, 뭍에 사는 사람들은 뱃사람들 알기를 우습게 알고, 천하게 알고, 막 대해도 괜찮지는 않지만 큰 허물은 아닐 것들로 생각했다. 그건 프롤레타리아가 계급투쟁에 성공해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확립한 공화국 수립 이후에도 이하동문으로 작품의 시간적 배경이 1960년대부터 70년대 초반으로 보이는데 그때 역시 뭍에서 정치적, 사회적 문제로 밀려난 불가촉 천것들의 향, 소, 부곡 정도로 여겼던 것 같다.


  시간을 저 앞으로 당겨 대 일본 전쟁 시기에 이 동정호 이남 후난성 부근에는 이름난 열사가 있었으니 덩사오샹. 덩 열사에 관한 이야기는 여러 말이 있단다. 이것들을 섞어 (내가) 스토리를 만들어보자면 이렇다.

  펑황진에서 크게 장의사를 하던 집안의 아름다운 외동따님으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계급의식이 강해 가난함을 좋아하고 부유함을 경멸해 흙투성이 농투성이를 사랑했다. 남자를 따라 산골로 시집을 가니 하는 일도 마땅하지 않았고 사람들도 자신을 은근히 따돌리는 거 같아서 아들 하나 들쳐업고 집안에 불을 확 싸지른 다음에 친정 펑황진으로 돌아왔다. 이때 전쟁이 한창이어서 진췌강 일대가 온통 붉은 피로 물들었을 때, 덩사오샹은 진췌강 유격대를 위하여 총기와 탄약을 운반하는 책임을 맡았다. 사람이 죽으면 큰 관 속에 시신과 총기 그리고 총알을 함께 넣어 묻은 다음, 유격대 대원에게 관이 들은 새 묫자리를 알려주면 대원들이 알아서 총과 총알을 가져간다. 거의 완벽한 방법이다.

  그러다 한 번은 겨우 총 세자루를 운반해야 하는 명이 떨어져 큰 보따리에 아들과 함께 총을 넣고 길을 떠나 유팡진에 있는 정자까지 짊어지고 갔다. 하지만 운이 다했는지 정자에는 일본 장교와 중국인 유지가 장기를 두고 있었다. 정보가 샌 거다. 자기의 생명은 끝났음을 눈치챈 덩사오샹은 조금도 굽히지 않고 재판을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총살을 요구한 것도 일언지하에 거절당해 교수형에 처해지게 됐다. 대신 자루 속 아들은 마차오진으로 보내달라고 유언했는데 이것 역시 확답을 하지 않았다.

  덩사오샹은 목매달려 죽고, 이를 안타까이 여긴 동족 한 명이 아들을 버들광주리에 담아 진췌강에 띄워 보내 며칠 후 정말로 마차오진의 게으름뱅이 낚시꾼 펑라오쓰의 그물에 걸린다. 펑이 광주리를 열어보니 광주리 바닥에 커다란 잉어가 반짝이는 등짝으로 부레옥잠 한 덩어리를 받치고, 이 위에 아이가 앉아 벙긋 웃고 있었다. 그래서 아이 엉덩이에 물고기 모양의 몽고반점이 생겼다고. 펑라오쓰가 예전에 수적질을 해먹고 살던 불한당이라 자기가 키울 수 없어 마차오진의 고아원에 맡겨 놓았다.

  드디어 일본군이 물러가고 해방을 맞아, 정부 요원이 덩사오샹 열사의 후손을 찾아 고아원에 왔는데, 누가 누군지 알아야지? 그래 펑라오쓰를 데려와 덩사오샹과 닮아 보이는 사내 아이를 데려왔더니 펑은 아이들의 엉덩이를 훌떡 까놓고 몽고반점이 가장 물고기처럼 생긴 아이를 손가락잘하며 저 아이가 덩사오샹 열사의 아들이 분명하다 했으니 이이가 바로, 주인공은 아니고, 주인공 쿠둥량의 아버지 쿠원쉬안이다. 죽을 때까지 자신이 덩사오샹 열사의 아들로 알았던 이.


  어린 쿠원쉬안은 정부에 의하여 발탁되어 공부도 엘리트 코스를 따라 했고, 열사의 아들답게 총명해 머리도 똑똑한데다가 마음도 넓어 덩 열사가 죽은 현장인 정자에 추모비도 세운 유팡진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한다. 열사의 아들이라 출세길은 따논 당상. 그리하여 현에서 가장 아름다운 아가씨이자 진의 공작 선동대이며 지방방송국의 메인 앵커이기도 한 차오리민과 결혼해 외동아들 쿠둥량을 낳았고, 진의 서기로 진급했다. 서기는 공산당 직급이지만 오히려 진의 장보다 더 강한 세력을 쥔 자다. 지역 공산당의 최고 자리이니 당연하다. 이런 사람이 매사 정확하고 올바르게 민원을 처리하는 등, 물론 사소한 부정이야 아주 없지는 않았겠지만, 늘 인자하게 진의 인민을 보살폈으니 존경을 받지 않기도 힘들었다. 다만 한 가지, 배꼽 아래 달린 돌출물 관리가 좀 미흡했다. 중화인민공화국이 예수교를 믿지 않아서 다행이지, 어떻게 십계명 가운데 일곱번째 계명만 골라서 어기는지, 이웃의 아내는 전부 자기 것인 줄 알았다니까? 아무리 사람이 좋아도 이런 판국에 더 높은 기관에 민원이 올라가겠어, 안 올라가겠어? 아마도 이것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어느 해에 드디어 지구 조사단이 파견 나와 아버지가 정말로 덩사오샹의 아들인지 조사하기 시작했다. 제일 큰 의문은, 아버지가 해적질 하던 펑라오쓰와 배 타고 창녀질을 하던 논다니 사이의 사생아였다는 거. 이건 보고서에 기록하지는 않았지만 유팡진 전체에 널리 퍼져나갔다. 아버지는 창문 없는 별실이 있는 여관에서 석달을 조사받은 후에 완전히 기력이 빠져 집으로 왔고, 그날로 진 서기 자리는, 집에 와서 아버지와 장기를 두곤 하던 아버지의 부하직원이자 선전부장 자오춘탕이 맡았다. 자오춘탕에게 두 여동생이 있었는데 둘 다 아버지가 홀딱 해치웠단다. 자오춘탕도 모르지는 않았던 듯.

  이날로 어머니는 끌과 망치로 대문에 영광스럽게 빛나던 “열사가문”이란 붉은 명패를 순식간에 때려 부수고 아들 쿠둥량에게 소리친다.

  “오늘부터는 꼬리 내리고 사람답게 살아! 놀이란 놀이는 무조건 금지야!”


  공산당 서기의 외아들이었으니 위세가 어땠을지 말로 하면 입 아프겠지?

  다음날 아침 학교 가는 길에 이웃집 우라이쯔, 치라이쯔 형제와 애들 누나를 만나 조금의 다툼이 있었다. 근데 그애들 누나가 쿠둥량의 얼굴에 냅다 침을 뱉아 버렸다. 세상이 변한 걸 아이들도 금세 알아버린 것. 이제 쿠둥량은 당 서기의 아들이 아니라 ‘헛방귀’로 불리기 시작했다. 무슨 말을 해도 헛방귀, ‘말로만’이라는 뜻이다. 아무도 진지하게 듣지 않을 것이고, 어떤 말도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뜻. 그리고 그건 점점 사실이 된다.

  위에서 명령이 떨어졌다. 전직 유팡진 당서기 쿠원쉬안은 샹양 선대의 7호선을 맡아 지내라고. 이렇게 쿠원쉬안과 쿠둥량은 아내이자 엄마인 차오리민과 떨어져 진췌강 위의 뱃사람으로 살아야 했다.

  이제 새롭게 부각하는 것은 유팡진 사람들 즉 출신성분과 계급, 극좌 이데올로기가 문화혁명이라는 광풍을 초래한 뭍사람들과, 그것에 소외당하고 존엄성도 잃어버린 인간들이 모인 공간인 진췌강 사람들의 대립, 대립까지는 아니고 차별화해서 사는 모습을 그리는데 역점을 둔다. 당연히 13세부터 26세까지의 쿠둥량이 주인공이니 사랑 이야기까지 포함해서.

  재미있다. 대립과 분노와 투쟁과 발전에 전력하는 뭍(岸) 사람들과 이에 소외되었지만 보살핌과 협력과 배려의 커뮤니티를 만들어 사는 강(河) 사람들의 다름에 공감하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듯. 남우세스럽지만 내 경우를 들어보자면, 은퇴를 하니 무엇보다 경쟁하지 않고 시험 치룰 이유 없이 사는 것 만 가지고도 강 위로 나온 것 같은 기분이다. 땅을 버리고 강에 오르니 좋고 편하다. 그저 조용히 살다가 가면 바랄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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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5-12-19 11: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니 도서관 직원들 책에 쌓이 먼저 안 털어내나요? 어떻게 이용객이 털어야하는 건가요? 아쉬운 사람이 우물 파라 이건가요? 참... 저의 경우는 경쟁하고 시험 치르는 게 싫어서 사회로 못 나가긴 했죠. ㅎㅎ 속편하게 사는 게 장땡이죠. 좋아 보이십니다. ^^

Falstaff 2025-12-19 15:21   좋아요 1 | URL
털어내도 매일 할 수 없어서 결국엔 종이에 눌어 붙게 되더군요. ㅎㅎㅎ
물론입니다. 속 편한 세상이 장땡입죠. ^^

yamoo 2025-12-19 1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새 부쩍 별5개가 종종 출현하네요...저는 중국이나 일본 소설은 별로 찾아 읽지 않은 편인데...별5개는 좀 고민이 되네요.. 것두 재밌다니...일단 찜해놔야 겠습니다..ㅎㅎ

Falstaff 2025-12-19 15:22   좋아요 0 | URL
동아시아 3국 가운데 아마도... 아닙니다. 우리나라 수준이 제일 높습니닷! ㅋㅋㅋㅋ
함 읽어 보셔요. 생각보다 괜찮을 수도 있습니다.
 
제니의 초상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116
로버트 네이선 지음, 이덕희 옮김 / 문예출판사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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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로버트 네이선은 1894년에 뉴욕의 저명한 세파르딤 유대인 가문의 자제로 태어났기는 한데, 단언하노니, 네이선의 작품은 한 권도 더 읽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세파르딤 유대인? 이슬람은 무려 4세기 동안 이베리아 반도를 지배했다. 이를 북북 갈면서 반도 수복과 무어인에 대한 복수를 꿈꾸던 서고트족의 이사벨과 페르난도는 백 년 전 중국 명나라가 발명해 막강한 몽고족을 굴복시킨 신무기, 소총을 수입해 드디어 무슬림을 이베리아 반도에서 싹 쫓아내는 데 성공했다. 그런데 이사벨과 페르난도의 눈에는 무슬림이나 유대인이나 그게 그거다. 무슬림은 아니지만 내버려 두었다가는 언젠가 다시 무슬림으로 하여금 이베리아 반도를 재탈환하게 만들지도 모를 불온분자들. 실제로 무슬림이 4백년을 내리 통치했던 건 아니다. 중간에 서고트족이 한번 되찾기는 했었다. 이때 세 불리했던 무슬림이 아프리카 사하라 북쪽의 무슬림에게 긴급 무선통신을 보내 (돈쓰돈돈 도도쓰돈 쓰쓰쓰 돈돈돈……) 지원군이 도착했는데, 이 지원군이 진짜 무슬림 원리주의자 비슷한 족속이어서 반도인들을 더 강압적으로 통치하기에 이르렀다. 내가 뭐 아나? 특급 작가 포이히트방거가 쓴 <톨레도의 유대여인>에 이런 게 좀 나온다. 이 당시 죄 없는 유대인들이 (세상에 죄 없는 인간이 어딨어? 그냥 당한 것에 비하면 죄가 덜하다는 의미이지) 서고트 족속의 눈 밖에 난 거라고 짐작하지만 어디까지나 내 생각, 다른 데 가서 인용하지 마시라. 망신당하기 십상이다. 이리하여 반도를 회복한 이사벨과 페르난도는 석달도 되지 않아 기독교로 개종하지 않은 유대인은 당장 이 나라를 떠나라, 하는 알함브라 칙령을 내려 거의 모든 유대인들이 맨몸으로 쫓겨나 주로 서부 인도로 향했다. 이들의 후손 가운데 한 명이 아.마.도. 가명 조지프 앤턴, 본명 살만 루슈디…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그건 루슈디가 이때 이베리아 반도에서 쫓겨난 세파르딤 유대인 이야기를 하도 재미나게, 많이 써서 그렇다. 루슈디는 무슬림 집안 출신의 바람둥이. <악마의 서>를 써서 눈알 하나를 잃었어도 (이슬람법 상 사면되었으나 무슬림 환자들한테는) 아직도 완전히 집행되지 않은 사형수이자 비종교적 무슬림이다. 하여간 이때 고민이야 했겠지만 잽싸게 기독교로 개종해서 이베리아 반도에 남은 유대인을 일컬어 서부 세파르딤, 또는 이베리아, 또는 세파르딕 유대인이라 한단다.

  별 재미도 없고 황당하기만 한 소설의 독후감을 읽는 수고로움에 대한 보상으로 그냥 한 번 소개했다. 뭐 일종의 시시한 잘난 척이기도 하다.

  로버트 네이선이 저명한 세파르딤 유대인 가족의 일원이라고? 여기서 저명하다는 건 사는 곳이 뉴욕이니까, 그냥 돈이 많은 집안이라 생각하면 딱 맞다. 이 정도로 이해하시면 될 듯. 로버트도 스위스에서 사교육을 받은 다음에 하버드에 입학했으나, 일찍 장가드는 바람에 가족 먹여 살리느라 학교 때려치우고 글을 쓰기 시작했고, 소설 몇 개가 영화화되는 바람에, 아따 이거다, 문학성이고 뭐고, 소설 역시 잘 팔리는 대중소설이 대빵이다 싶어 줄창 대중소설만 쓰다 갔다. 많은 작품을 양산했지만 이제 독자는 <제니의 초상>과 <주교의 아내>만 아주, 아주, 아주 드물게 읽어보고 실망할 뿐이다. 영화로 만든 건 재미있는지 모르겠다. 안 봤다. 혹은 보긴 봤는데 잊었는지도 모르겠다. 영화 <제니의 초상>에는 제니퍼 존스와 조셉 코튼이 출연했다니 아주 오래전 KBS 명화극장에 나왔었을까?


  작품은 일인칭 화자 ‘나’의 시점이다. 독후감은 3인칭으로 쓰겠다.

  주인공은 이벤 애덤즈. 초상 속 인물은 제니 에플턴. 작품은 ㅆㄴㄹ, “씨나락”, 귀신 씨나락 까먹는 얘기다.

  이벤 애덤즈는 훗날 영화의 주인공이 될 인물이니까 당연히 잘 생기고 허우대 멀쩡한 청년이다. 게다가 여태까지는 뉴잉글랜드 지역의 풍경만 죽어라 하고 그리던 화가. 일찍이 프랑스 파리에서 그림 공부를 했지만 작품 목적상 극도의 가난에 시달리고 있다. 얼마나 가난하냐 하면 자주 끼니를 거를 정도. 시간적 공간이 아무리 미국 대공황 시기라고 한들 불과 몇 년 전에 그림 공부를 위하여 파리 유학을 시켰고, 유학 중 파리의 명소와 카페와 음식점을 섭렵할 수 있었을 정도인 가문의 자제가, 마치 크누트 함순의 <굶주림>의 주인공 수준이면 이게 말이 되나?

  그러나 역시, “예술가의 괴로움, 추위와 굶주림이 아닌 다른 종류의 혹독한 괴로움”이라는 것이 있으니 그건 “천재의 생명이, 자기 작품이 생명의 즙이 얼어붙은 채 꼼짝없이 죽음의 계절에 붙들려 있는 것처럼 생각되는 것”이란다.

  1981년에 이 책을 번역한 이덕희는 그때는 몰랐겠지만 만년에 질병으로 고통을 받게 되자 정신적 고통이 육신의 고통에 비하여 보잘것없음을 확실하게 알게 된다. 이 책의 중판이 나오고 1년이 지난 2016년에 세상을 뜬 마지막 아날로그 작가 가운데 한 명인 이덕희의 불운한 말년을 생각하면 이벤 애덤즈의 “영혼의 즙”이 얼마나 황당한 발상인지 헛웃음이 나올 뿐이다.


  때는 1938년 겨울. 공원을 지나 집으로 가던 중이다. 훗날 센트럴 파크가 될 공원에서 셋방 겸 작업실이 있는 웨스트사이드에 가려면 양 방목장을 건너야 한다. 아휴. 다른 곳도 아니고 뉴욕의 센트럴파크 옆에 양sheep목장이 있었다니! <제니의 초상> 뒤로 가면 이벤이 제니를 그린 초상을 팔아 선수금으로 3백 달러를 받는데, 1백 달러 정도는 자기 용처로 쓰고 2백 달러로 양목장 부근의 아무런 맹지라도 땅 좀 사놓지! 책을 읽는 내내 이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니까? 세상에서 가장 비싼 땅값을 자랑하는 도시 뉴욕의 양목장 말이지.

  하여간 무거운 화구가 든 가방을 든 채 양 방목장을 가로질러가려는 건 당연히 차비가 없어서다. 방목장 부근의 몰가街. 안개가 자욱한 가로를 굶주려 기진맥진 걷고 있었으니 머리가 약간 이상해진 상태였을 지도 모른다. 근데 안개 낀 밤중에 거리 복판에서 어린 소녀가 혼자 돌차기 놀이를 하고 있었다. 눈이 마주쳤고, 그저 일상적인 대화가 오고 갔다. 소녀가 말한다. 이름은 제니. 자기를 기다리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선생님만 괜찮다면 함께 가고 싶다고. 이벤은 선뜻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 안개 낀 밤중에 거리에서 혼자 놀고 있는 어린 여자 아이를 다 큰 남자가 경찰관에게 인계하는 게 아니라 함께 거리를 가는 모습이 다른 사람, 특히 경찰에게 눈에 뜨인다면, 유괴범이나 변태로 볼 수도 있다. 그럼에도 하여튼 함께 걷기 시작한다.

  자기는 부모와 함께 호텔에서 생활한다고. 어린 시절의 유진 오닐처럼 부모가 배우이고 지금은 햄머슈타인 뮤직홀에서 밧줄 위에서 요술을 부리는 공연을 한단다. 공연이 늦게 끝나 시간에 맞춰 호텔로 돌아가기만 하면 된다고. 둘이 걸으며 이벤이 들은 이야기다. 그는 직감한다.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햄머슈타인 뮤직홀은 수년 전 이벤이 소년이었을 때 이미 박살난 공연단체 아닌가? 아직 나이가 어려서 오전에만 학교에 간다는 제니도 유행에 뒤떨어진 구식 차림새이고. 옛날식 코트와 이젠 아무도 쓰지 않는 보닛. 어디서 봤더라? 맞다. 미술관의 계단 위에 걸린 그림, 누구더라? 부라슈? 그림 속의 소녀와 비슷한 느낌이 든다. 제니가 보닛 챙 아래로 이벤을 올려다보며 억양 없는 목소리로 노래한다.


  어디서 내가 왔을까

  아무도 모르네 ―

  그리고 내가 가고 있는 곳으로

  모두들 가네.

  바람은 불고,

  바다는 흘러 ―

  그래도 누구 하나 알지 못하네


  작품이 절반 이상 지나면 위 노래 가사가 결정적 결말을 나타낸다고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초장에는 큰 관심 없이 지나가게 된다. 아니, 벌써 이 책을 선택한 걸 후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여간 몰가의 끄트머리에 도착하자 제니는 더 이상의 동행을 거부한다. 돌아서 가기 바로 전에 제니는 이벤에게 말한다.

  “제가 자랄 때까지 선생님이 기다려주셨으면 해요. 하지만 그러진 않으실 테죠, 아마.”


  4일 후, 이벤은 제니를 스케치한 그림이 담긴 가방을 든 채 거리를 걷다가 우연히 매튜스 화랑을 지난다. 아무 생각 없이 들어간 화랑에서 헨리 매튜스를 발견한 이벤은 그에게 자신의 그림을 보여주고, 곤혹스러운 처지를 당한 마음 약한 매튜스 씨는 건성으로 그림을 휙휙 보다가 제니의 스케치를 보고는 당장 그것을 사버린다. 30달러. 이건 대단히 좋습니다. 이전에 어디선가 이런 어린 소녀를 본 적이 있답니다. 어디였는지 말할 수는 없지만요. 같은 소녀라는 말이 아니고 분위기가 비슷하다는 것이지요.

  매튜스는 이벤에게 풍경이 아닌 초상을 그려볼 것을 권한다. 특히 여성을 그리라고. 남성의 초상은 이미 예전에 끝났지만, 여성의 초상은 늘 새롭고 신비한 것이란다.

  몇 주가 지나고 본격적인 겨울이 시작되자 호수가 꽝꽝 얼어붙었다. 이벤이 호수 위에서 낡은 스케이트를 타고 있다가 다시 만난 제니. 몇 주가 흘렀을 뿐인데 제니는 그 새 더 큰 것 같다.

  다시 몇 주가 지난 춥고 지저분한 셋방에 돌아와보니, 셋방 주인 지크스 부인이 방에 손님이 기다리고 있다고 불편한 기색으로 전한다. 또다시 제니. 더 큰 모습. 이젠 다 자란 숙녀 같기도 하다. 지크스 부인의 마음을 불편하게 할 정도로.

  어떠셔? 속성으로 커버린 제니하고 이벤 사이에 불장난이 생기겠어, 안 생기겠어? 물론 빵 줄 사람은 생각하지도 않는데 미리 우유부터 벌컥벌컥 마실 필요는 없다. 어디까지나 ㅆㄴㄹ 소설임을 명심하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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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디오스
후안 까를로스 오네띠 지음, 김현균 옮김 / 창비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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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네티O’Nety 가문은 스페인과 아프리카 사이, 지브롤터 최남단에 위치한 영국령의 아일랜드 또는 스코틀랜드 출신 영국인 가문이었는데 이름을 이탈리아 식으로 오네띠Onetti로 바꾸고 우루과이 가는 배에 오른다. 그의 손자 가운데 한 명인 카를로스는 브라질 귀족 가문의 딸 오노리아 보르헤스와 결혼해 순서대로 아들, 아들, 딸을 낳아 이름을 라울, 후안, 레이철이라 했다. 셋 중에 가운데 후안 카를로스 오네티 보르헤스가 오늘 소개하는 책 <아디오스>를 쓰고, 9년 여 전에 내가 읽은 <조선소>를 쓴 우루과이의 소설가이다. 생몰은 1909년~1994년.

  우루과이 몬테비데오에서 출생해 21세 때 사촌 마리아 아말리아와 첫번째 결혼을 하고 부에노스아이레스로 가서 로이터 통신사에서 일했다. 46세 때인 1955년에 귀국해 저널리즘 일을 하다 시립도서관장에 올랐다. 이때 라틴아메리카는 전반적으로 독재체제가 유행할 때라 반체제작품을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하는 심사위원의 한 명으로 지목돼 잠깐 나랏밥도 자시고(보람찬 빵생활도 하시고) 이런 체제에 염증을 느껴 1974년,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스페인으로 날아가 정착해 1994년 마드리드에서 죽었다. 

  <조선소>에서 보듯이 사람이 좀 염세적이었지 않나 싶은데 여든다섯까지 살았다. 자신도 그렇게 오래 살 줄은 몰랐다고 나중에 한 마디 했단다.


  <아디오스Los Adioses>는 1953년작. 즉 아르헨티나에서 쓴 중편소설이다. 책은 프롤로그, 본문, 에필로그로 되어 있다. 놀랍게도 프롤로그는 안또니오 무뇨스 몰리나가 썼다. 재미있는 책 <폴란드 기병>과 <리스본의 겨울>을 쓴 작가. 독자가 책을 헤매면서 읽는 걸 방지하기 위하여, 본문이 110페이지 조금 넘는 수준이니까 분량을 확보해준다는 의미도 포함해 몰리나의 서문을 프롤로그라는 이름으로 붙여 파는 모양이다. 사실 나 같은 보통의 독자가 한 방에 읽으면 약간 멀미가 날 수도 있겠다. 프롤로그가 책을 읽는데 도움이 되는 건 사실이다. 오네티도 당대의 라틴 아메리카 작가답게 다분히 붐문학적 구성을 따라 작품을 쓰는 작가라서.

  몰리나의 프롤로그를 보면, 헨리 제임스의 <나사의 회전>이 이 작품에 큰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나사의 회전>은 한 부유한 지방 저택에 입주한 가정교사와 아이들, 그리고 출몰하는 유령들이 엮는 ㅆㄴㄹ,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인데, <아디오스>는 아르헨티나 국가대표 농구팀 센터를 지내면서 농구 최강국 미국과 결승전에서 맞짱을 떠 영광의 준우승 경험이 있는 남자가 나이들어 결핵에 걸려 아르헨티나 산악지방에 있는 요양소 부근의 호텔과 별장에서 점점 병이 심해지는 내용이다.

  스토리만 크게 보면 그렇다는 말. 병자들이 모인 지역이라는 폐쇄성, 결코 밝은 색채를 띨 수 없는 의사와 간호사, 호텔 호스티스, 정류장 인근에서 술집과 우체국을 겸하는 잡화점 주인, 스물다섯 살 처녀들만 네 명이 죽은 별장을 관리하는 부동산 중개인. 구성부터 좀 우중충.

  그러나 산 속에 자리해 맑은 공기, 상쾌한 바람, 아름다운 자연. 이건 오네티가, 몇번째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르헨티나 산악지역으로 신혼여행 갔던 지역을 기억해서 작품의 배경으로 깔았다고 한다.


  중편소설이지만 줄거리 소개가 좀 길다. 인상깊게 읽은 작품이라서. 물론 독자마다 감상을 다를 터이니 감안하시옵고.

  결핵요양원이 있는 산골 이야기는 토마스 만의 <마의 산>에서 충분히 익숙하다. 그러나 이곳은 아르헨티나의 산촌. 들어가면 걸어서 퇴원하는 예가 거의 없는 요양원으로 한스 카스트로프가 7년을 보낸 다보스 플라츠 근방의 국제요양원과는 여러가지로 비교하기 힘들다. 1930년대 유럽과 라틴아메리카 수준, 부르주아 전용과 일반 시민 전용 요양소의 차이 정도. 그리하여 <아디오스>의 요양원, 숙소로 사용하는 호텔의 환자, 숙박객, 휴양객, 의사, 간호사, 종업원들은 절대로 알프스 중턱의 국제요양원과 인근 소도시에 사는 환자와 철학자가 나누는 신학, 철학, 과학, 인문학적 대화를 나눌 엄두도 내지 못한다. 그래서? <마의 산>보다 쉬운 착한 소설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마의 산>보다 착하다는 것이지 결코 만만하지 않다. 후안 오네티의 문장과 구성이 쉽게 읽히게 하지 않는다. 그래도 내 마음에 딱 들었다. 무엇보다 문장과 구성과 분위기가 내 스타일. 작품의 화자는 요양원과 호텔으로 가는 정류장 옆의 잡화점 주인. 술도 팔고, 별정우체국도 겸한다. 그러니 환자들에게 오는 편지는 전부 이곳을 거쳐야 하고, 이건 마음만 먹으면 편지 몇 통 정도는 수신자에게 전해주지 않고 ‘나’가 펴 보고 불태워버릴 수도 있다는 뜻. 시간적 배경이 1938년이니 이 정도 행위는 라틴아메리카에서는 보통 인정되는 범위에 드는 일이었을 지도 모른다. ‘나’는 이 휴양지에 들어와 산지 15년차. 12년 전에는 한쪽 폐를 절단하는 수술을 받았다. 정말 얼마 되지 않는 생존자 가운데 한 명이다. 이곳은 폐결핵 환자들의 요양지로 알려진 코르도바주의 산악도시 코스킨을 모델로 한 가상 지역.

  작품을 시작하면 키가 크고 햇볕에 그을리지 않은 흰 피부에 확신 없이 움직이는 길쭉한 손을 지닌 남자가 느릿하고 소심하고 꿈뜬 모습으로 가게에 들어온다. 오늘 버스를 타고 도시에서 들어온 남자. 비슷한 얼굴을 15년 간 보며 살아온 ‘나’가 그를 보니 병을 고치지 못할 것이고, 병을 고치겠다는 일말의 의지도 찾아볼 수 없었다. 마흔 살 언저리쯤 됐나? 큰 키에 떨 벌어진 어깨를 가지고 있지만 구부정한 자세. 틀림없이 중병은 아닐 것이다. 가망이 전혀 없지 않더라도 병을 고치지 못할 사람. 이제 ‘나’는 이런 사람은 척 보면 안다. 이이가 전직 국가대표 농구선수.

  더 높은 지역의 구식 호텔에 짐을 푼 농구선수는 수도행 기차가 들르는 날이면 편지 두 통을 주머니에 넣고 버스를 타거나 걸어서 시내에 나가 우체국에서 직접 편지를 부친다. ‘나’가 운영하는 별정우체국을 믿지 않아서가 아니라, 아마도 자신이 누구한테 편지를 보내는지 알리지 않고 싶기 때문일 것. 그러면 뭐해? 그들의 답신이 ‘나’의 별정우체국에 도착하는 것을. 답신 역시 두 통이 온다. 한 통은 여자가 쓴 것임이 틀림없이 녹색의 동글동글하고 큼직한 글씨체. 다른 한 장은 주소를 타이프한 봉투.


  의사 군스는 농구선수에게 걷는 것을 금하라고 했다. 그러나 아직 상태가 나쁘지 않는 농구선수는 그 말을 들을 생각이 없는 듯하다. 결혼할 생각인 남자 간호사와 호텔의 키 큰 호스티스 레이나의 말을 듣고 알았는데, 농구선수는 호텔 말고 숲 속에 있는 작은 산장을 통째로 빌렸다고 한다.

  사실 이건 조금 나중의 이야기기는 한데 일어난 일을 일일이 다 말할 수 없어서 처음부터 본론으로 갔다. 농구선수한테 손님이 왔다. 당연히 여자. 농구선수만큼은 아니지만 키가 크고 아들로 보이는 아이를 하나 데려왔다. 한 가족으로 보인다. 근데 처음에 선글라스를 쓴 키 큰 여자가 도착했을 때는 아이에 대해 아무 말도 없다가 나중에 갑자기 아이가 보이는 거다. 그러니 선글라스를 쓴 키 큰 여자는 틀림없이 농구선수의 아내거나 연인일 터.

  아르헨티나에서는 한여름인 크리스마스와 새해 전야의 파티. 이때 전혀 병색이 없는 어린 여성이 산골 휴양지에 도착해 보잘것없는 무도회장으로 꾸민 ‘나’의 잡화점으로 들어와 춤도 추지 않고 한 자리에 앉아 있다. 누구를 기다리는 모습. 도시에서 떠나기 전에 전보를 쳤지만 기다리라 한 남자는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고. 여자는 몰랐겠지. 전보가 도착하려면 이틀 이상 걸린다는 걸. 그래서 ‘나’는 파티가 끝난 새벽 여자, 차라리 소녀를 구식 호텔에 데려다 준다. 이 여자도 농구선수를 찾아온 손님이다.

  독자가 읽기로, 선글라스를 낀 키 큰 여자는 겨울에, 어린 여자는 여름에 농구선수를 찾아온 것 같은데? 하여간 농구선수는 어린 여자를 포르투갈 처녀들의 방갈로로 데려가 한 주일을 지낸다. 그리고 어린 여자는 도시로 돌아간다.


  문제는 위에서 말한 것이 전부 화자 ‘나’의 내레이션이라는 거. ‘나’는 확신에 차서 말하지만 어디까지나 왜곡이 많고 ‘나’가 본 것에만 ‘나’의 해석으로 진술했던 내용이다. 그러니 여태 ‘나’의 진술을 믿고 따라간 독자는 당연하게도 ‘나’와 함께 왜곡, 잘못된 해석으로 미끄러졌던 것.

  그런데 독후감을 쓰는 나는 이제 진짜 딜레마에 빠진다.

  이 책이 왜 특별한지를 말하고자 하면 책의 뒷부분, 호텔에서 이들을 직접 서빙했던 호스티스 레이나와 남자 간호사의 말을 들어야 하는데, 그걸 소개하면 흥미로운 책의 결정적 스포일러가 드러나지 않을 수 없다. 나도 본문을 읽기 전에, 워싱턴 주립대 교수였던 볼프강 A. 루칭이 쓴 이 책의 에필로그를 먼저 읽은 걸 후회하고 있어서 뒷부분과, 농구선수와 두 여자의 관계를 거의 언급하지 않았다. 그걸 알면 ‘충격적인 결말’이 시시해지고 말 터이니까.

  그래서 바라건대, 본문이 겨우 110페이지 조금 넘어가고,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합쳐도 150페이지에 불과한 중편소설이라 직접 읽고 판단하시는 것이 좋겠다.

  다만 이 책이 1953년에 나온 것이고 루칭 교수도 에필로그를 53년에 썼을 터, 그이의 에필로그 속에 든 여성차별적 의견/표현이 언짢을 수 있으니 조금 너그럽게 읽어야 하실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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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25-12-17 1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르는 작가인데...찾아보니 <조선소>도 있네요...<나사의회전>에 영향을 받은 작품이라니....그리 재밌는 소설은 아닌 듯보이지만...그래도 뭔가 아우라가 느껴지는 소설처럼 보입니다. 별5개리니...저도 주문해야 겠습니더~~^^

<말한마리..>는 어제 배송되어 왔습니다. 아마도 다음달에나 읽을 수 있을 듯합니다. 왜냐면 지금 <특성없는 남자> 1권 열심히 읽고 있거든요~ㅎㅎ 읽을수록 무질은 참..제 취향입니다.^^ <생도 퇴를레스의 혼란>은 지루해서 덮었는데..<특성없는 남자>는 작가의 철학이 주가 된 작품이라 읽는 맛이 있네요..ㅎㅎ

Falstaff 2025-12-17 17:02   좋아요 0 | URL
이 책, 재미는 있습니다. 북적북적 앱에 토 안 달고 5별 준 책인데요, 읽는 사람에 따라 좋고 안 좋고 차이가 많을 거 같아서 말입죠. 선뜻 사서 읽어보시라 권하기가 쉽지는 않네요. ㅎㅎ
 
아무도 보스를 찾지 않는다 일루저니스트 illusionist 세계의 작가 16
오타비오 카펠라니 지음, 이현경 옮김 / 들녘 / 2009년 11월
평점 :
품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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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오타비오 카펠라니를 위키피디아 검색해봐도 이탈리아어로 된 거밖에 없어 구글번역을 시켰더니, 이거 뭐, 진정한 구글번역이라서 도무지 어느 한 구석 가져올 것이 없다. 시칠리아 카타니아 출생의 1969년생. 근데 어떻게 나보다 더 늙어 보여? 어쨌거나 고대의 고귀한 시칠리아 피라이니토의 카펠라니Cappellani di Pirainito 가문 출신이란다. 그러니까 가족 조상이 귀족이었다는 것인데, 그게 뭐 어쨌다고?

이 책을 고른 건, 다른 때처럼 이탈리아 서가를 어슬렁거리다가 마음에 딱 차는 역자의 이름을 보고 골랐다. 이현경. 이탈로 칼비노, 프리모 레비, 주세페 토마시 디 람페두사, 움베르토 에코 등을 우리말로 번역하고 이탈리아 대사관 주관의 제1회 번역문학상과 이탈리아 국가 번역 문학상을 받은 이. 이 역자 덕분에 특히 칼비노를 읽을 수 있었다. 이현경이 번역했으면 기대에 어긋날 리가 없다 싶어서.

그리고 이 책이 들녘의 ‘일루저니스트 세계의 작가’ 시리즈 가운데 한 권이라는 점도. 벌써 10여 년이 흘러 이제 시리즈의 많은 책들이 품절, 절판되었지만 이 시리즈를 통해 읽은 책이 제법 있다.

출판사의 책 소개를 읽어보면, “소설 형식의 새로운 패러다임”이니 “조직보다 자아가 먼저인 21세기형 패밀리의 탄생”이니 말이 많은데, 물론 틀린 말처럼 읽히지는 않지만 이것보다는 마지막 단정인 “대중문화 코드에 기반을 둔 블랙 유머”라는 표현이 딱 와 닿는다. 즉 어떻게 말을 하던 간에 <아무도 보스를 찾지 않는다>는 대중소설이라는 점. 그게 어떻냐고? 재미있다는 뜻이다. 심지어 마피아 패밀리 이야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도 이 책은 특히 뒤로 가면 갈수록 끌리는 맛이 있었다. 역시 패밀리 이야기는 죽고, 죽이고, 깔끔하게 죽이고, 그것도 폼나게 죽이는 장면이 나와야 제 맛이지.

가장 중요한 주인공은 돈 루 쉬오르티노. 시칠리아 출신의 이탈리아계 미국인. 뉴욕의 암흑세계를 대표하는 대부들 가운데 한 명. 뉴욕이 워낙 커서 한 명의 대부가 지배하는 건 불가능하다. 돈 루와 또다른 이탈리아 출신의 ‘존 라 브루나’와 더불어 뉴욕을 거의 양분하고 있는 밤의 실력자. 하지만 라 브루나와 더불어 늙어가 이제는 은퇴를 생각할 수밖에 없는 노인이다. 이 바닥에서 뼈가 굵은 만큼 현명하고, 자존감이 강하지만, 세대 차가 많이 나는 손자 루 쉬오르티노 주니어에 대한 사랑이 좀 과하다.

돈 루는 손자 루에게 끊임없이 강조한다. 누구한테나 존경받는 사람이 되라고. 하지만 그것을 즐기지는 말라면서 꼭 필요한 순간에만 힘을 사용하라고. 젊은 루가 더 젊었던 시절에 시내 한가운데 간이식당에서 자잘한 일 때문에 얼굴이 박살나 돌아온 적이 있었다. 이때 할아버지는 껄껄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이런 바보녀석. 멍청한 놈 같으니! 드디어 널 이렇게 만든 놈을 손 봐줄 때가 왔구나. 하지만 지금 당장 그놈을 죽이면 안 돼. 이번엔 그냥 넘어가자. 시대가 변했거든. 한 가지 명심할 게 있어. 그런 놈들은 말이다, 슬픈 눈빛으로 죽여야 돼. 네가 놈을 죽이는 걸 슬퍼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두에게 보여주어야 한다는 말이다.”

돈 루의 철학에 의하면 보스가 되는 건 지배하고 장악한다는 뜻이다. 상납금도 마찬가지. 상납금은 지불하는 게 아니고 거두어들이는 행위를 말한다. 돈 루는 오직 자신이 권력을 장악하는 데 방해되는 자들만 살해했다. 거기서 벌어들인 돈은 다시 투자해 사업을 키우고, 날로 커지는 사업 덕택에 지역 사람들 모두 행복하고 삶에 만족할 수 있었다. 그들을 괴롭히는 다른 세력들로부터 철저하게 보호해주었으니까. 물론 경찰과 FBI의 견해는 이것과 조금 다르기는 하지만. 이제 자금의 흐름이 문제였다. 날이 가면 갈수록 자금 운용이 투명해져 거두어들인 돈을 어떻게 합법적으로 보일 수 있을까, 하는 돈세탁이 가장 큰 문제였다. 이때 돈 루의 시야에 들어온 것이 LA를 중심으로 하는 영화산업. 대규모의 자금이 흘러 들어오는 영화산업 이야말로 돈세탁을 하는 데 그만이었다. 그래서 돈 루는 손자 루를 LA로 보내 친구들이 만든 무비 스쿨에 가담하게 해 스타쉽 영화사를 차려(아마도 인수해서) 대표 자리에 앉혔다.

어디에나 한 명의 골통은 있다. 스타쉽에서는 감독 레오나르드 트랜트. 이탈리아 출신 영화감독이다. 그러나 이탈리아 정체성을 버리기 위하여 남자 이름에 의례 붙는 알파벳 ‘o’를 떼어버려 레오나르도가 아니라 레오나르드라는 이름을 선택한 골통 감독은 노골적으로 시오르티노 가문이 어떻게 돈세탁을 하고 있는지 자기가 알고 있다고 협박하기에 이른다. 자기도 CG를 사용해 영화를 만들고 싶으니 CG회사를 하나 차리자는 조건을 디밀면서. 너무 길어져 중간을 뚝 떼고 말하자면, 이 영화사의 복도에서 폭발 사건이 터진다. 할아버지는 돈 루를 즉각 LA에서 시칠리아의 카타니아로 보내 손자를 카타니아의 거물 살 스칼리에게 보호해줄 것으로 기대한다.

할아버지 돈 루는 전화 한 통을 받는다. 맞수 존 라 브루나. 자기가 사람 한 명을 보낼 터이니 스타쉽 영화사의 비어버린 사장 자리에 좀 앉히면 안 되겠느냐고. 돈 루는 즉각 라 브루나의 부탁을, 말 그대로 흔쾌하게 받아들인다. 어차피 누가 와도 새 사장은 라 브루나의 바지사장일 뿐이니 하다못해 신문배달 소년이나 성냥팔이 소녀가 와도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쯤은 뻔히 알고 있다.

시칠리아 카타니아의 대부 가운데 한 명인 살 스칼리는? 할아버지 돈 루 덕분에 뉴욕에서 ‘스칼리 아마레티’ 제과점 체인을 열어 갈퀴로 돈을 긁었다. 아마테리는 시칠리아 식 과자를 말하는데 ‘살 삼촌’이라 불리는 살 스카리는 영화 <나 홀로 집에>에서 나오는 키 작은 악당 조 페시와 아주 흡사한 외모를 지녔고, 하는 짓도 좀 그렇다. 근데 돈 루가 손자를 맡기기에 살 삼촌이 이제는 너무 커져 버렸다. 뉴욕에서라면 감히 돈 루 앞에서 얼굴도 제대로 들지 못하겠지만 전통적인 지역 마피아가 딱 자리를 잡고 있는 시칠리아에서야 아무리 돈 루일지언정 살 삼촌을 가볍게 대할 수 없는 처지. 살 삼촌은 뽀대를 잡기 위해 손자 루에게 그냥 밥을 먹여줄 수는 없고, 아마테리 과자의 광고를 위한 영어 카피를 뽑으라고, 과자점 2층에 작은 사무실 하나를 내주었을 뿐이다.

살 스칼리 수하에 건달 세 명이 있다. 투치오, 누치오, 눈치오. 이름 같은 건 사실 알 필요 없지만, 하여간 이 가운데 한 명이 전직 마피아 패밀리인 고지식한 노인이 운영하는 가게에 들어가 노인 역시 당연한 질서라고 여기는 상납금을 받으려다가 우연히 현장에서 마주친 경찰관의 얼굴에 총을 갈겨 죽여버린 사건이 터진다.

딱 이때를 맞추어 뉴욕에서는 존 라 브루나가 바지사장 프랭크 에라에게 카타니아 출장을 명령하고, 돈 루 역시 살 삼촌이 자기 손자 루한테 당연하고도 마땅한 대우를 해주지 않는다는 것이 신경쓰여 전설의 칼잡이이자 돈 루 쉬오르티노의 충실한 경호원인 ‘협죽도’ 그러나 이제는 늙은 노장 핍피노와 함께 카타니아로 돌아오니 어찌 한 탕 칼부림, 총부림이 벌어지지 않으리오. 하지만 특히 이런 잘 쓴 대중 폭력 소설이야말로 함부로 스토리를 이야기했다가는 욕이나 푸짐하게 얻어 터지기 마련이라, 그걸 뻔히 알고 있는 내 입에서 더 이상의 말이 나오기를 기대하지 마시라. 우짰든 개.봉.박.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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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5-12-16 13: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폴스타프 님 얼굴은 1970년대 생 얼굴이군요?! 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Falstaff 2025-12-16 15:52   좋아요 1 | URL
하여간 잠자냥님 짓궂으셔 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