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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니의 초상 ㅣ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116
로버트 네이선 지음, 이덕희 옮김 / 문예출판사 / 2025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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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로버트 네이선은 1894년에 뉴욕의 저명한 세파르딤 유대인 가문의 자제로 태어났기는 한데, 단언하노니, 네이선의 작품은 한 권도 더 읽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세파르딤 유대인? 이슬람은 무려 4세기 동안 이베리아 반도를 지배했다. 이를 북북 갈면서 반도 수복과 무어인에 대한 복수를 꿈꾸던 서고트족의 이사벨과 페르난도는 백 년 전 중국 명나라가 발명해 막강한 몽고족을 굴복시킨 신무기, 소총을 수입해 드디어 무슬림을 이베리아 반도에서 싹 쫓아내는 데 성공했다. 그런데 이사벨과 페르난도의 눈에는 무슬림이나 유대인이나 그게 그거다. 무슬림은 아니지만 내버려 두었다가는 언젠가 다시 무슬림으로 하여금 이베리아 반도를 재탈환하게 만들지도 모를 불온분자들. 실제로 무슬림이 4백년을 내리 통치했던 건 아니다. 중간에 서고트족이 한번 되찾기는 했었다. 이때 세 불리했던 무슬림이 아프리카 사하라 북쪽의 무슬림에게 긴급 무선통신을 보내 (돈쓰돈돈 도도쓰돈 쓰쓰쓰 돈돈돈……) 지원군이 도착했는데, 이 지원군이 진짜 무슬림 원리주의자 비슷한 족속이어서 반도인들을 더 강압적으로 통치하기에 이르렀다. 내가 뭐 아나? 특급 작가 포이히트방거가 쓴 <톨레도의 유대여인>에 이런 게 좀 나온다. 이 당시 죄 없는 유대인들이 (세상에 죄 없는 인간이 어딨어? 그냥 당한 것에 비하면 죄가 덜하다는 의미이지) 서고트 족속의 눈 밖에 난 거라고 짐작하지만 어디까지나 내 생각, 다른 데 가서 인용하지 마시라. 망신당하기 십상이다. 이리하여 반도를 회복한 이사벨과 페르난도는 석달도 되지 않아 기독교로 개종하지 않은 유대인은 당장 이 나라를 떠나라, 하는 알함브라 칙령을 내려 거의 모든 유대인들이 맨몸으로 쫓겨나 주로 서부 인도로 향했다. 이들의 후손 가운데 한 명이 아.마.도. 가명 조지프 앤턴, 본명 살만 루슈디…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그건 루슈디가 이때 이베리아 반도에서 쫓겨난 세파르딤 유대인 이야기를 하도 재미나게, 많이 써서 그렇다. 루슈디는 무슬림 집안 출신의 바람둥이. <악마의 서>를 써서 눈알 하나를 잃었어도 (이슬람법 상 사면되었으나 무슬림 환자들한테는) 아직도 완전히 집행되지 않은 사형수이자 비종교적 무슬림이다. 하여간 이때 고민이야 했겠지만 잽싸게 기독교로 개종해서 이베리아 반도에 남은 유대인을 일컬어 서부 세파르딤, 또는 이베리아, 또는 세파르딕 유대인이라 한단다.
별 재미도 없고 황당하기만 한 소설의 독후감을 읽는 수고로움에 대한 보상으로 그냥 한 번 소개했다. 뭐 일종의 시시한 잘난 척이기도 하다.
로버트 네이선이 저명한 세파르딤 유대인 가족의 일원이라고? 여기서 저명하다는 건 사는 곳이 뉴욕이니까, 그냥 돈이 많은 집안이라 생각하면 딱 맞다. 이 정도로 이해하시면 될 듯. 로버트도 스위스에서 사교육을 받은 다음에 하버드에 입학했으나, 일찍 장가드는 바람에 가족 먹여 살리느라 학교 때려치우고 글을 쓰기 시작했고, 소설 몇 개가 영화화되는 바람에, 아따 이거다, 문학성이고 뭐고, 소설 역시 잘 팔리는 대중소설이 대빵이다 싶어 줄창 대중소설만 쓰다 갔다. 많은 작품을 양산했지만 이제 독자는 <제니의 초상>과 <주교의 아내>만 아주, 아주, 아주 드물게 읽어보고 실망할 뿐이다. 영화로 만든 건 재미있는지 모르겠다. 안 봤다. 혹은 보긴 봤는데 잊었는지도 모르겠다. 영화 <제니의 초상>에는 제니퍼 존스와 조셉 코튼이 출연했다니 아주 오래전 KBS 명화극장에 나왔었을까?
작품은 일인칭 화자 ‘나’의 시점이다. 독후감은 3인칭으로 쓰겠다.
주인공은 이벤 애덤즈. 초상 속 인물은 제니 에플턴. 작품은 ㅆㄴㄹ, “씨나락”, 귀신 씨나락 까먹는 얘기다.
이벤 애덤즈는 훗날 영화의 주인공이 될 인물이니까 당연히 잘 생기고 허우대 멀쩡한 청년이다. 게다가 여태까지는 뉴잉글랜드 지역의 풍경만 죽어라 하고 그리던 화가. 일찍이 프랑스 파리에서 그림 공부를 했지만 작품 목적상 극도의 가난에 시달리고 있다. 얼마나 가난하냐 하면 자주 끼니를 거를 정도. 시간적 공간이 아무리 미국 대공황 시기라고 한들 불과 몇 년 전에 그림 공부를 위하여 파리 유학을 시켰고, 유학 중 파리의 명소와 카페와 음식점을 섭렵할 수 있었을 정도인 가문의 자제가, 마치 크누트 함순의 <굶주림>의 주인공 수준이면 이게 말이 되나?
그러나 역시, “예술가의 괴로움, 추위와 굶주림이 아닌 다른 종류의 혹독한 괴로움”이라는 것이 있으니 그건 “천재의 생명이, 자기 작품이 생명의 즙이 얼어붙은 채 꼼짝없이 죽음의 계절에 붙들려 있는 것처럼 생각되는 것”이란다.
1981년에 이 책을 번역한 이덕희는 그때는 몰랐겠지만 만년에 질병으로 고통을 받게 되자 정신적 고통이 육신의 고통에 비하여 보잘것없음을 확실하게 알게 된다. 이 책의 중판이 나오고 1년이 지난 2016년에 세상을 뜬 마지막 아날로그 작가 가운데 한 명인 이덕희의 불운한 말년을 생각하면 이벤 애덤즈의 “영혼의 즙”이 얼마나 황당한 발상인지 헛웃음이 나올 뿐이다.
때는 1938년 겨울. 공원을 지나 집으로 가던 중이다. 훗날 센트럴 파크가 될 공원에서 셋방 겸 작업실이 있는 웨스트사이드에 가려면 양 방목장을 건너야 한다. 아휴. 다른 곳도 아니고 뉴욕의 센트럴파크 옆에 양sheep목장이 있었다니! <제니의 초상> 뒤로 가면 이벤이 제니를 그린 초상을 팔아 선수금으로 3백 달러를 받는데, 1백 달러 정도는 자기 용처로 쓰고 2백 달러로 양목장 부근의 아무런 맹지라도 땅 좀 사놓지! 책을 읽는 내내 이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니까? 세상에서 가장 비싼 땅값을 자랑하는 도시 뉴욕의 양목장 말이지.
하여간 무거운 화구가 든 가방을 든 채 양 방목장을 가로질러가려는 건 당연히 차비가 없어서다. 방목장 부근의 몰가街. 안개가 자욱한 가로를 굶주려 기진맥진 걷고 있었으니 머리가 약간 이상해진 상태였을 지도 모른다. 근데 안개 낀 밤중에 거리 복판에서 어린 소녀가 혼자 돌차기 놀이를 하고 있었다. 눈이 마주쳤고, 그저 일상적인 대화가 오고 갔다. 소녀가 말한다. 이름은 제니. 자기를 기다리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선생님만 괜찮다면 함께 가고 싶다고. 이벤은 선뜻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 안개 낀 밤중에 거리에서 혼자 놀고 있는 어린 여자 아이를 다 큰 남자가 경찰관에게 인계하는 게 아니라 함께 거리를 가는 모습이 다른 사람, 특히 경찰에게 눈에 뜨인다면, 유괴범이나 변태로 볼 수도 있다. 그럼에도 하여튼 함께 걷기 시작한다.
자기는 부모와 함께 호텔에서 생활한다고. 어린 시절의 유진 오닐처럼 부모가 배우이고 지금은 햄머슈타인 뮤직홀에서 밧줄 위에서 요술을 부리는 공연을 한단다. 공연이 늦게 끝나 시간에 맞춰 호텔로 돌아가기만 하면 된다고. 둘이 걸으며 이벤이 들은 이야기다. 그는 직감한다.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햄머슈타인 뮤직홀은 수년 전 이벤이 소년이었을 때 이미 박살난 공연단체 아닌가? 아직 나이가 어려서 오전에만 학교에 간다는 제니도 유행에 뒤떨어진 구식 차림새이고. 옛날식 코트와 이젠 아무도 쓰지 않는 보닛. 어디서 봤더라? 맞다. 미술관의 계단 위에 걸린 그림, 누구더라? 부라슈? 그림 속의 소녀와 비슷한 느낌이 든다. 제니가 보닛 챙 아래로 이벤을 올려다보며 억양 없는 목소리로 노래한다.
어디서 내가 왔을까
아무도 모르네 ―
그리고 내가 가고 있는 곳으로
모두들 가네.
바람은 불고,
바다는 흘러 ―
그래도 누구 하나 알지 못하네
작품이 절반 이상 지나면 위 노래 가사가 결정적 결말을 나타낸다고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초장에는 큰 관심 없이 지나가게 된다. 아니, 벌써 이 책을 선택한 걸 후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여간 몰가의 끄트머리에 도착하자 제니는 더 이상의 동행을 거부한다. 돌아서 가기 바로 전에 제니는 이벤에게 말한다.
“제가 자랄 때까지 선생님이 기다려주셨으면 해요. 하지만 그러진 않으실 테죠, 아마.”
4일 후, 이벤은 제니를 스케치한 그림이 담긴 가방을 든 채 거리를 걷다가 우연히 매튜스 화랑을 지난다. 아무 생각 없이 들어간 화랑에서 헨리 매튜스를 발견한 이벤은 그에게 자신의 그림을 보여주고, 곤혹스러운 처지를 당한 마음 약한 매튜스 씨는 건성으로 그림을 휙휙 보다가 제니의 스케치를 보고는 당장 그것을 사버린다. 30달러. 이건 대단히 좋습니다. 이전에 어디선가 이런 어린 소녀를 본 적이 있답니다. 어디였는지 말할 수는 없지만요. 같은 소녀라는 말이 아니고 분위기가 비슷하다는 것이지요.
매튜스는 이벤에게 풍경이 아닌 초상을 그려볼 것을 권한다. 특히 여성을 그리라고. 남성의 초상은 이미 예전에 끝났지만, 여성의 초상은 늘 새롭고 신비한 것이란다.
몇 주가 지나고 본격적인 겨울이 시작되자 호수가 꽝꽝 얼어붙었다. 이벤이 호수 위에서 낡은 스케이트를 타고 있다가 다시 만난 제니. 몇 주가 흘렀을 뿐인데 제니는 그 새 더 큰 것 같다.
다시 몇 주가 지난 춥고 지저분한 셋방에 돌아와보니, 셋방 주인 지크스 부인이 방에 손님이 기다리고 있다고 불편한 기색으로 전한다. 또다시 제니. 더 큰 모습. 이젠 다 자란 숙녀 같기도 하다. 지크스 부인의 마음을 불편하게 할 정도로.
어떠셔? 속성으로 커버린 제니하고 이벤 사이에 불장난이 생기겠어, 안 생기겠어? 물론 빵 줄 사람은 생각하지도 않는데 미리 우유부터 벌컥벌컥 마실 필요는 없다. 어디까지나 ㅆㄴㄹ 소설임을 명심하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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