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와 형리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123
프리드리히 뒤렌마트 지음, 차경아 옮김 / 문예출판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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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뒤렌마트는 두 권의 책을 통해 희곡만 세 편 읽었다. <노부인의 방문>, <과학자들>, <천사, 바빌론에 오다>. 그러다 <판사와 형리>가 재미있다는 얘기를 듣고 찜해두었고, 이번에 읽었다. 이 책은 단편소설 두 편이 실렸다. 내가 읽은 뒤렌마트 때문에 생긴 선입견으로는 상상도 못하게, 무려 추리소설이었던 거다. 표제작 <판사와 형리>는 유명매체에 의하여 죽기 전에 읽어봐야 할 책으로 선정되었다고 하는 뒤렌마트 최초의 추리소설이고, <혐의>는 시리즈를 염두에 두고 쓴(것 같은) 전작의 바로 후속 작품이다.
 먼저 이야기하고 넘어가야 할 것은, 나는 책을 사도 책 뒤편에 있는 간략한 소개 같은 건 절대 읽어보지 않고 무조건 본문부터 읽어나가기 시작한다. 그래서 <판사와 형리>를 중간까지 읽었음에도, 설마 뒤렌마트가 추리소설을 썼겠는가 싶어, 틀림없이 살인사건의 범인이 누구라고 확정하지 않고 독자들이 마음대로 생각하게 내버려둔 상태로 끝날 것이라고 단정했었다. 그렇다. 짐작이 아니라 단정斷定, 딱 잘라 판단해서 결정했다. 그러면 어떻게 되는 줄 아시나? 추리소설 읽을 때보다 훨씬 더 집중해야 하고 작품 속에 조금이라도 빈틈을 파고들기 위해 작은 단서라고 보이는 묘사를 전부 기억해야 되는데 그게 마음대로 될까? 그리하여 아예 처음으로 돌아가 노트 꺼내고 볼펜 꺼내서 수시로 메모해가며 읽는 상태, 이른바 주화입마에 빠지게 된다. 진짜다. 그러니 이 독후감을 읽어보시고 진짜로 유명한 작품 <판사와 형리>를 읽어보실 분은 나처럼 이상한 짓 하지마시고 애초부터 추리소설인 것을 아는 상태에서 편하게 읽으시면 되겠다.
 1908년 경 콘스탄티노플. 보스포루스 해협 근처의 지저분한 유대 술집에 마주앉은 스위스 사람 한스 베르라하와 국적불명의 코즈모폴리턴1 가스트만이 마주 앉아 심각하게 인간 본성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한다. 인간존재와 완전범죄에 대하여. 철학적 논의 끝에 결국 의견의 합치를 보지 못한 두 사람. 이들이 헤어지기 전에 가스트만은 하늘을 걸고 내기를 하기에 이른다.
 “나는 자네 코앞에서 범죄를 저지를 것이며, 그리고 내 범죄를 자네가 입증하지 못하게 하리라!”
 ‘하늘을 건 내기’를 다른 말로 하면 ‘맹세oath’가 된다. 그가 맹세한 시점부터 가스트만에게는 악이 무슨 철학이나 이익을 취하기 위한 충동의 표현이 아니라 자신의 자유를 표현하는 수단이 되어버리고 만다. <판사와 형리>의 후속작인 <혐의>에서도 범죄는 허무를 행사하는 자유의지로 규정하는 바, 악의적 자유의지는 뒤렌마트의 추리소설에 대단히 중요한 요소로 기능하는 것 같다.
 이후 세월은 흘러흘러, 한스 베르라하는 콘스탄티노플과 프랑크푸르트에서 명수사관으로 성가를 높이다가 이제 고향인 스위스 베른에서 은퇴를 앞둔 경감으로 근무하고 있는 1948년 11월 3일. 트란바하 계곡 도로에 세워둔 푸른 메르세데스 안에서 정수리에 총을 맞은 베른 시경의 가장 능력 있는 형사 울리히 슈미트 경위의 시신을 순찰중인 산골 동네 경찰 알폰스 클레닌이 발견하고나서 기껏 한 짓이라고는 시체를 옆자리로 옮기고 직접 메르세데스를 운전해 베른 시경으로 가서 사망자의 상관 베르라하 경감에게 사건을 인계한 것뿐이다. 경감은 자기 보스 루치우스 루츠 박사에게 그저 마음에 둔 용의자가 있다는 말만 하고 현재 휴가 중인 찬츠 경위를 자신의 대리인으로 지목해주기 바란다는 요청을 해 이제 베르라하 경감과 찬츠, 이렇게 두 명이 사건을 해결해나가기 시작한다. 여기서 40년 만에 나타나는 등장인물, 가스트만. 피해자가 죽임을 당한 이름 없는 산악지역 아래 넓게 퍼진 평원에 자리잡은 저택의 주인이자 슈미트 경위가 죽은 당일 밤에 호화 파티를 연 인물. 나중에 밝혀지지만 슈미트 경위는 무보수로 뮌헨대학의 교수를 하고 있는 프란틀 박사라고 자기 신분을 속이고 가스트만의 파티에 참석했던 것으로 보인다. 사망 당시 외투 속에 연미복도 입고 있어서 그리 생각하는 것이 당연하기도 하고. 그러나 경찰의 신분으로 행동한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사적인 목적으로 가스트만의 저택에 잠입해 결국 죽음을 맞았다고, 모든 독자들은 생각할 수 있는데, 문제는 상당히 진도가 나갈 때까지 우리의 주인공 베르라하 경감과 가스트만 사이의 악연에 대하여 모르고 있다는 점. 자, 이 독후감을 읽으신 분들은 이제 누가 슈미트 경위의 정수리에 권총을 발사했는지 감이 잡히시겠지?
 하지만 작가가 다른 사람도 아니고 프리드리히 뒤렌마트다. 이이가 그렇게 쉽게, 마치 20세기 초 영국의 탐정소설 작가들과 비슷하게 결론을 내릴까? 가스트만이 40년 전에 맹세한 것, 경감의 코앞에서 저지를 범죄를 결코 베르라하가 입증하지 못하리라는 건 실현이 됐을까? 만일 그렇다면, 베르라하는 어떤 방식으로 가스트만의 맹세를 뒤집을 수 있을까. 그리고 뒤집었다고 해도 그게 반드시 베르라하의 승리로 볼 수 있을까? 그러나 이건 일반적으로 잘 쓴 범죄소설, 추리소설의 경우의 결론일 것이고, 뒤렌마트의 <판사와 형리>와 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 공산주의자, 집시를 가둔 수용소 안에서 마취 없는 수술을 집행했던 고문torture광 넬레 박사를 다룬 <혐의>에서 작가는 특정 범죄행위보다는 사람 혹은 미치광이가 어떤 의식으로 범죄를 저지르는지에 더욱 초점을 맞추고 있다.
 특히 <혐의>에서 뒤렌마트는 내가 좋아하는 작가 알베르 코엔을 읽는 것처럼 화려체와 강건체를 혼합해 범죄의 당연성을 웅변하는 미치광이 집단들의 성명을 발표하는데, 아, 그만 껌벅 넘어갔지 뭐야. 뒤렌마트의 희곡만큼 좋더라, 라고 말하기는 힘들어도 매우 색다르고, 색다른 만큼 재미있는 추리소설이다. 요새 말로 "짱"이다. 이이는 어쩌자고 쓰는 작품마다 이리 매력이 있는 걸까. 나는 얼른 뒤렌마트의 다른 책 한 권을 골라놓았다.


 

  1. cosmopolitan의 표준말이 ‘코즈모폴리턴’이란다. 여태 ‘코스모폴리탄’이라 썼다. 우리말 참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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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삼 시집 범우문고 53
박재삼 지음 / 범우사 / 198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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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시절에는 시인들이 이런 시를 썼다.


 이렇게 한 줄을 써 놓으니 더 말을 붙일 방법이 떠오르지 않아 하루를 그냥 보냈다. 슬픔. 아련한 슬픔. 사물을 바라보는 시인의 눈에 유독 슬픔이라는 이름의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건 어머니의 고향에서 시작한 유년시절부터 해변의 가난한 소년시절, 고독하고 궁상스러워 틀림없이 실연을 경험했을 청년시절, 서른이 넘어 시작했으나 3년 만에 작파한 대학시절, 1960년대 말만 해도 변두리 산동네였던 정릉에서 중년에 이르며 이후 노년에 이르기까지 고혈압, 위하수, 신경통 등에 시달리던 한 세상살이, 이 모든 것에서 비롯했으리라. 그러나 그의 시집에서 발견하는 슬픔은 피를 토하지도 않고, 취하지 않으면 감당할 수 없는 고통도 아니고, 자신을 산산이 쪼개는 자해의 모습은커녕, 무채 또는 유채의 아름다움으로 독자의 심상을 조각하고 만다. 시집을 열고 맨 앞에 나오는 시 <울음이 타는 가을 江>. 말을 보탤 필요 없는 박재삼의 대표시를 읽어보자.



 마음도 한자리 못 앉아 있는 마음일 때,
 친구의 서러운 사랑 이야기를
 가을 햇볕으로나 동무 삼아 따라가면,
 어느새 등성이에 이르러 눈물나고나.


 제삿날 큰집에 모이는 불빛도 불빛이지만,
 해질녘 울음이 타는 가을江을 보겠네.


 저것 봐, 저것 봐,
 너보다도 나보다도
 그 기쁜 첫사랑 산골 물소리가 사라지고
 그 다음 사랑 끝에 생긴 울음까지 녹아나고
 이제는 미칠 일 하나로 바다에 다 와 가는
 소리 죽은 가을江을 처음 보겠네.   (전문)



 ‘해질녘 울음이 타는 가을 강’ 즉 한가을의 강이 이제 먼 길을 마치고 노을에 젖어 바다에 이르는 광경을 노래한 시다. 산골 물소리로 시작한 기쁜 첫사랑이 한 생을 다 마치고 이제는 독자에게 수수께끼로 ‘미칠 일’ 하나를 남겨두고 바다에 거진 와 가는, 소리 없이 흐르는 가을 강. 그것을 시인은 독자에게, 저것 봐, 저것 봐, 영탄하며 바라보기를 재촉하고 있는 시. 깊은 병도 아니며, 독한 고통도 아니고, 철철 흐르는 피도 아닌, 슬픔으로의 아스라한 아름다움이 시 속에서 보이지 않는가. 한 시절, 시인들은 이런 시를 썼다. 젊었다는 이유 하나로 가질 수 있는 슬픔이라는 특권. 아, 누군들 이런 것 하나쯤 가지고 살지 않았을까. ‘소리 죽은 가을江을 처음 보겠네.’ 마지막을 읽고 저절로 저려오는 가슴 속 아련한 그리움이여, 아름다움이여, 그리고 이미 저만치 지나간 나의 젊음이여. 썅. 하마터면 눈물 하나 떨어뜨릴 뻔했다.
 시인의 심미안은 봄바다 저쪽에 떠있는 섬 하나를 보고도 그냥 지나가지 않는다.



  화안한 꽃밭 같네 참.
  눈이 부시어, 저것은 꽃핀 것가 꽃진 것가 여겼더니, 피는 것 지는 것을 같이한 그러한 꽃밭의 저것은 저승살이가 아닌 것가 참. 실로 언짢달 것가, 기쁘달 것가. (<봄바다에서>. 부분)



 라고 노래하며 만물이 움트는 봄의 바다, 그 위에 떠있는 섬을 보면서조차 저승살이를 떠올리는데 세상에, 그것이 반드시 언짢은 일은 아닌 것이다. 그러더니 어려서 자신들을 아껴주던 한 여인, 남평문씨부인의 자살사건을 떠올리며 봄바다를 그 여인의 치맛자락으로 은유하고 있다.


  우리가 少時적에, 우리까지를 사랑한 南平文氏夫人은, 그러나 사랑하는 아무도 없어 한낮의 꽃밭 속에 치마를 쓰고 찬란한 목숨을 풀어 헤쳤더란다.
  確實히 그때로부터였던가, 그 둘러썼던 비단치마를 새로 풀며 우리에게까지도 설레는 물결이라면
  우리는 치마 안자락으로 코 훔쳐 주던 때의 머언 향내 속으로 살 달아 마음 달아 젖는단 것가. (같은 시. 부분)



 시인은 연애를 해도 애인한테 부끄러워 슬프다. 근데 슬픔의 근원인 부끄러움이 예상외의 장소인 <과일가게 앞에서> 촉발한다.


 사랑하는 사람아,
 네 맑은 눈
 고운 볼을
 나는 오래 볼 수가 없다.
 한정없이 말을 자꾸 걸어오는
 그 수다를 나는 당할 수 없다.
 나이 들면 부끄러운 것,
 네 살냄새에 홀려
 살戀愛나 생각하는
 그 죄를 그대로 지고 갈 수가 없다.


 저 수박덩이처럼 그냥은
 둥글 도리가 없고
 저 참외처럼 그냥은
 달콤할 도리가 없는,
 이 복잡하고도 아픈 짐을


 사랑하는 사람아
 나는 여기 부려놓고 갈까 한다.  (전문)



 재미있다. 시인이 과일가게 앞에서 수박이며 참외를 내려 보고 있는데 수박의 둥근 모습과 참외의 단 맛을 애인의 몸에 은유하고 있다. 애인의 맑은 눈과 고운 볼, 재잘거리는 귀여운 모습 대신 둥근 몸과 달콤한 맛이라는 살(로 하는) 연애를 연상함으로써 시인은 스스로 복잡하고 아픈 짐을 지었는데, 그게 부끄러워 이제쯤 내려놓을까 한단다. 이쯤 되면 시인에겐 세상살이 모든 것이 다 아픔이고 부끄러움이고 슬픔이어서 아름다움이려니.


 한 시절에는 시인들이 이런 시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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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생백년 2021-02-08 19: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돌아보면 인생은 눈물같은 것이고
삶과 더불어 죽음도 바로 눈 앞에 다가와 있고
때는 가을의 해질 녘이고
다다른 곳은 등성이 저 편으로 노을이 타고 있는
가을 강이다.

죽음의 인식보다 앞서
눈물 어린 눈으로 바라보는 가을 강이 가슴까지 파고 들어와
울음까지 콱 막히게 한다.
그것은 죽음에 대한 미학인 동시에
삶에 대한 자각이다.

--박재삼의 울음이 타는 가을 강에 대한 글인데 누군지는 모르겠습니다,시 못지 않게 좋은 것같아 한번 올립니다 --

Falstaff 2021-02-08 20:06   좋아요 0 | URL
오, 시도 아니고 시를 읽은 감탄을 외우고 계시는군요.
대단하십니다!!!
 
하워즈 엔드 열린책들 세계문학 98
E. M. 포스터 지음, 고정아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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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표지 사진이 하필이면 안소니 홉킨스. 이이가 사람 고기, 사람의 안심쯤은 눈 하나 깜박이지 않고 미디엄-레어 스테이크로 구워 식도락을 즐기는, 심지어 뇌는 육회로 섭취하기도 하는 한니발 박사이기도 하지만, 또 한 편으로는 충실하기가 영국의 국가대표 급인 집사steward이기도 해서, 책 표지만 보고 생각하기를 ‘하워즈 엔드’라 이름 붙은 저택의 집사와 주인 간의 이야기인 줄 알았다. 이게 그동안 이 책을 읽지 않은 첫 번째 이유고, 두 번째는 <전망 좋은 방>을 읽고 단번에 포스터의 팬이 되기로 결심을 했다가 바로 다음에 고른 <인도로 가는 길>이 너무 절망적이어서 포스터에 관한 기대를 접었기 때문이었고, 사소하지만 세 번째는 E.M 포스터의 대표작, 심지어 세계 100대 문학작품으로 <인도로 가는 길>만 거론을 할뿐 <하워즈 엔드>에 관해서는 언급을 하지 않았다는 것.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건, ① <인도로 가는 길>에 대한 내 기대가 워낙 컸던 반면에, ② 우리나라에 두 종의 번역본이 있는데 내가 읽은 건 기대 수준에 정말 미치지 못하는 우리말 문장으로 일관한 우스운 책이었던 데다가, ③ <하워즈 엔드>에서도 포스터의 시각이 변함없이 이어지지만 그의 식민주의적 관점이 극도로 불쾌했었다는 점이다.
 <하워즈 엔드> 역시 시대적 배경은 유럽에서는 벨 에포크 시기를 맞아 최전성기의 문화, 문명, 과학의 발달을 즐기는 한편, 아프리카에서는 영국의 제국주의가 극도의 지랄발광을 했던 보어전쟁 발발 바로 전 시기인 19세기 말에 시작해 약 5년 동안을 그리고 있다. 작품이 시작되자마자 두 주인공 가문 슐레겔 가의 둘째 딸 헬렌과 윌콕스 가의 둘째 아들 폴이 서로 사랑을 고백하고 생애 첫 키스를 나누고, 키스를 얻어내기 위해 청혼을 하고 승낙까지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폴이 나이지리아로 떠나는 일정을 앞에 둔 잠깐의 격동이었음이 밝혀져 청혼 문제가 저절로 흐지부지되어버린다. 부계가 학자이며 반제국주의적 성향을 띄어 이민을 온 독일인인 슐레겔 가문과 달리 색슨 족이기는 하지만 켈트의 피가 전혀 섞이지 않았다고 할 수는 없는 윌콕스 가의 사람들은 영국의 젊은이라면 당연히 국가를 위하여 세계경영에 참여해야 한다고 내놓고 말한다. 작품의 말미엔 아프리카에서 돌아온 폴이 말하기를 자신이 아프리카에 퍼뜨려놓고 온 씨앗들을 다 모으면 넓은 마당쯤은 꽉 채우고도 남는다고 마치 농담마냥 푸념하기도 한다. E.M 포스터가 비록 1949년 영국 왕실이 그간의 공로를 인정해 작위를 수여하겠다는 걸 거절할 정도로 개명한, 그래서 좀 ‘덜 재수 없는’ 영국인이라고 해도 그의 식민주의적 세계관에 질려버린 걸 어떻게 하겠느냔 말이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워즈 엔드>를 읽은 이유는 이 작품이 영국인이 뽑은 가장 위대한 영국소설 스물다섯 편에 들어간다고 해서였다. 며칠 있다가 포스터의 다른 작품을 하나 더 읽을 예정인데 거기서는 그의 식민주의나 유색인 차별 같은 것이 없거나, 적어도 보이지 않기를 기대한다.
 말이 나왔으니까 먼저 조국인 독일 또는 프러시아를 등지고 영국으로 이민을 온 슐레겔 씨를 보면, 천생 학자로 본인이 비록 보불전쟁에 참여하여 독일이 승리를 거두는데 기여를 했음에도 조국이 매년 군비를 확장하고 늦게나마 식민지 개척에 뛰어드는데다가 독일인들 특유의 아리안 족 우월주의에 기반을 둔 전체주의적 애국심에 질려 자유로이 학문연구에 몰두할 수 있는 영국으로 건너와 국적을 영국으로 바꾼 다음에 에밀리라는 참한 아가씨를 만나 2녀 1남을 둔 것까지는 좋았으나, 슐레겔 여사는 막내아들 티비를 낳다가 그만 짧은 생을 마감해버리고, 5년 후 자신까지 덜컥 숟가락 놓는 바람에 열여덟 살의 큰딸 마거릿, 열 살의 둘째 딸 헬렌, 다섯 살의 막내아들 티비, 이렇게 셋만 남는다. 그래 마거릿은 이모인 먼트 부인이 내민 도움의 손길을 고맙게 받아들여 몇 년을 함께 살다가 작품이 시작될 때는 마거릿, 헬렌, 티비의 나이가 각각 29세, 21세, 16세인 상태이다. 프롤로그 격인 마지막 장을 빼면 이후 4년 동안 슐레겔 가와 윌콕스 가가 각기 둘째 딸과 둘째 아들의 첫 키스로 시작해 만수산 드렁칡처럼 얽히고설킨 이야기가 바로 <하워즈 엔드>다.
 그러나 윌콕스 가에서 독자가 주목해야 하는 사람은 엉뚱하게도 젊은이가 아니라 바로 나이 많은 윌콕스 부부. 책이 시작되기 얼마 전에 마거릿과 헬렌이 독일 여행을 한 적이 있었는데 거기서 헨리와 루스 윌콕스 부부를 만나 인연의 끈을 잇기 시작했고, 부부는 친절하게도 영국에 돌아가면 자신들의 집 하워즈 엔드에 한 번 방문해주기를 청해 진짜로 방문하려 날짜를 잡았지만 며칠 전부터 막둥이 피비가 꽃가루 알레르기, 책에서는 ‘건초열’에 걸려 앓아눕는 바람에 헬렌 혼자 놀러갔다가 위에서 말한 사달을 벌이고 만다. 젊은 청년 폴은 키스 한 번 하기 위해 청혼 비슷하게 했고, 헬렌은 그걸 수긍한 다음 두 팔로 폴의 목을 감고 생각보다 보들보들한 남자의 입술을 자기 입술로 느끼는 것까지는 좋았지만 이후 둘은 극도의 혼란에 빠져버린 채 다음날 아침밥을 먹으러 식탁에 앉게 된다. 근데 둘이 누구한테도 이야기하지도 않았고 그럴 수도 없었음에도 현명한 루스 윌콕스, 그러니까 윌콕스 여사는, 어떻게 알았는지, 다 그런 거야, 없는 걸로 해, 하고 단 칼에 정리를 해버리고 만다. 이 정도로 신기가 있는 현명하고 조신하고 친절한 여인. 반면에 헨리 윌콕스 씨는 전형적인 영국인답게 ‘재미있다’는 말 자체를 싫어하는 인간으로 ‘재미’를 낭비된 노력과 병적인 상태 비슷한 것과 같은 의미로 보고 오직 일, 돈, 발전, 계획, 실행 등에만 관심을 쏟는 인물이다.
 그런데 키스 사건이 있고 그것 때문에 서먹서먹해진 2년 후, 런던의 위컴 플레이스에 살고 있는 슐레겔 가 바로 옆의 맨션아파트 한 채를 구입해 윌콕스 사람들이 런던에 일이 있을 때마다 머물기로 해서 두 집안의 인연이 이어지고 윌콕스 여사는 기꺼이 이들을 방문하고 초청도 하고 해서 좋은 관계를 계속한다. 하지만 독자들은 금방 눈치 챈다. 루스 윌콕스 여사가 중대한 병에 걸려 있음을. 그러나 조금 있으면 깜짝 놀란다. 예상하지도 못한 속도로 루스 여사가 임종의 침상에서 숨을 거두어. 윌콕스 씨가 루스 여사의 유언을 자식들에게 다 일러준 조금 후에 런던의 병원 수간호사로부터 한 통의 편지가 도착하는데, 루스 여사가 직접 친필로, 그러나 서명도 없이 쉽게 지워지는 연필로 메모 수준의 편지를 써서 가족들에게 보내니, 뭐라 적혀 있느냐 하면, “하워즈 엔드는 마거릿 슐레겔 양에게 주고 싶어요.”
 자, 당신 같으면 어떻게 하겠나. 줘? 말아? 나 같으면 어떻게 하겠냐고? 당연히 파바박 구겨 버린다. 담배를 5년 전에 끊었기 때문에. 아직 담배를 피웠으면 그 자리에서 라이터 댕겨버리고 만다. 이게 정상 아냐? 글쎄 몇 번 만나지 않은 “아무러치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1 아가씨한테 건물 값은 다음으로 하더라도 땅값만 수억에 이를 그 집을 준다고? 미쳤어?
 그러나, 문학작품, 소설을 포함한 모든 공연예술 속에서 무당, 마법사, 마녀, 죽어가는 자의 예언은 언제나 이루어진다는 것이 <소설작법> 2장 1절에 나오지 않는가. 이 책에서도 그게 어떤 식이라도 벌어질 것이란 건 알겠는데, 그거야 내가 알려드릴 수 없지. 재미있는 책이니 직접 호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사 읽으시든지, 아니면 냅다 도서관으로 뛰어가셔서 확인하시라.


1. 정지용, <향수> 중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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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득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44
제인 오스틴 지음, 원영선.전신화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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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말, 특별히 제인 오스틴은, 진짜, 더 이상 읽지 않으려 했다. 오스틴을 많이 읽은 건 아니다. <오만과 편견>으로 오스틴한테 폭 빠졌다가 <노생거 수도원>에서 대폭 실망했는데,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에서 가장 두껍다는 <에마> 광고에 또 홀랑 넘어가 작품 속 젊은 아이의 대책 없는 오지랖에 질려 더 이상 제인 오스틴은 읽지 않겠다고 결심했었던 거다. 그러니까, 기껏해야 남녀 사이 혼인을 전제로 한 밀고 당기는 신경전이 나와 극적으로 맞지 않는 거다. 이건 완전 개인 취향의 문제일 뿐, 내가 오스틴의 명성도 모르면서 함부로 깎아내리는 것도 아니고, 당신 역시 오스틴을 읽지 말라고 권유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아무리 제인 오스틴이 범세계적인 찬사와 갈채와 감동의 후광을 뒤집어쓰고 있다고 하더라도 소비자인 내가 나하고 맞지 않는다, 라고 결론을 내면 그걸로 끝이라는 이야기. 그런데 또 오스틴을 읽었다. 유사 이래 영국에서 쓰인 가장 위대한 소설 스물다섯 편 가운데 오스틴의 마지막 작품 <설득>이 들어 있어서. 그래 오스틴에 대한 여태까지의 내 생각이 어땠는지는 다음으로 하고, 일단 ‘위대하다’니까 나 역시 <설득>을 읽어봐야 하지 않겠는가, 하고 작심했다. 이제 진짜 오스틴은 더 안 읽겠다. 그러다 또 읽으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읽으면 읽는 거지 뭐. 어차피 남아일언 풍선껌인 걸.
 이게 오스틴의 마지막 작품이란다. <설득>을 탈고하고 이듬해 마흔두 살의 아까운 나이로 천국의 기쁨을 맛보기 위해 세상을 떴다. 마지막 작품이니 이제까지 이이가 주특기로 사용했던 젠트리 계급의 연애 이야기에서는 단연 최고의 품질을 자랑할 수 있겠다. 19세기 초의 영국에도 결혼의 첫째 조건은 여자와 남자가 서로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었으리라. 그런데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있었으니 과연 상대가 나하고 맞는 짝이어야 한다는 거. 제인 오스틴 본인이 대표 젠트리 그룹의 일원인 교구 목사의 딸로 태어나긴 했으나 목사 아빠가 거느린 교구도 코딱지만 한데 8남매 가운데 일곱 번째로 태어나 집안의 부를 머리수로 나누면 거의 별 볼일 없어서 스무 살 때 연애도 거의 성사가 되는 듯싶다가 마지막 순간에 파투가 났고, 스물일곱 살 때, 당시 스물일곱이면 결혼을 하거나 당할 수 있는 거의 마지막 기회로 옥스퍼드 나온 못생긴 말더듬이 남자의 청혼을 받아들였지만 그것 역시 마지막에 깨져버렸던 바, 두 번 다 상대의 요구조건을 자기 집안이 충족시키지 못한 결과, 즉 서로 맞지 않는 짝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쓰라린 경험이 있는 제인 오스틴인지라, 내가 읽은 모두 네 편의 작품에서 공통적인 가장 중요한 터닝 포인트, 주인공 남녀가 고통을 당하고, 번민하고, 서로 밀고 당기는 이유 역시 속으로는 서로를 사랑하거나 상당한 호감을 갖고 있지만 상호 요구조건을 서로가 맞춰주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설득>에서는 열아홉 살 앤 엘리엇과 프레더릭 웬트워스 총각이 서로 눈이 맞아 프레더릭 총각이 청혼을 했으나, 일찍 세상을 떠난 엄마 대신에 앤 처녀가 의지하고 살던 레이디 러셀의 설득,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일개 해군 장교에게 어떻게 준남작 영양의 일생을 의탁할 수 있겠느냐는, 일견 그럴 듯하고 안정적 선택을 선호하는 연장자의 입장을 이기지 못해 청혼을 거절했으니, 첫 번째가 여자는 준남작의 영양인데 남자가 일개 교구 목사의 동생, 젠트리도 말단 젠트리 계급이란 거, 둘째가 그럼 남자가 돈이라도 왕창 있어야 하거늘 현재 사정으로 보면 가까운 시일 내에 전쟁이 터지고 거기서 큰 공훈을 세우기 전까지 그리 큰 비전이 보이지 않는다는 ‘진실’, 계급과 돈이라는 두 가지 요구조건을 아무것도 충족시키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청혼을 거절당하고 열 받은 프레데릭 총각은 2년 후 몇 천 파운드의 돈과 대위 계급장을 달고 앤 처녀가 사는 켈린치 부근에 들르기는 했지만 아무래도 이 정도 가지고는 준남작과 그녀의 후원자의 요구엔 여전히 족탈불급이겠다, 라고 지레짐작해 다시 바다로 나가 전투하고, 승리하기를 몇 번, 다시 6년 이상이 더 흘러, 그러니까 모두 합해 8년여가 지나 이제 앤 처녀가 스물일곱 살의 늙은 처녀가 되었을 때 수만 파운드의 재력을 가진 웬트워스 대령이란 명함을 파고 다시 켈린치에 도착하면서 제인 오스틴의 마지막 작품이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거다.
 웬트워스 대령이 켈린치에 도착하기 위해서는 한 가지 필요한 것이 있었으니, 그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앤의 집, 켈린치 저택을 방문하게 만드는 일. 제인 오스틴에게 참 다행스럽게도 원래의 저택 주인인 1760년생으로 현재 54세의 만년을 즐기고 사는 준남작 월터 엘리엇 경은 아내가 죽고 무려 13년간 별로 탐탁치도 않은 레이디 러셀의 조언을 듣고 살면서 오직 하나, 용모와 지위에 대한 허영심만 붙들고 사는 바람에 근동에 월터 경보다 더 잘 차려입고, 잘 관리한 얼굴을 소지한 남자가 없을 정도의 사치를 부리느라 기둥뿌리 뽑히는지 모르는 처지였다. 그러다 경제적 위기가 닥쳐오자 영지와 저택을 크로프트 제독에게 임대하고 자신은 두 딸과 함께 온천 요양지 바스로 옮길 수밖에 없었다. 근데 크로프트 제독의 아내 소피가 프레더릭 웬트워스 대령의 누님이었던 것이고, 앤은 때마침 시집 간 동생 메리가 아파 당분간 동생 간병차 사돈댁에 머물게 됐으니 어떻게 더 자연스러운 만남이 있을 수 있겠느냐는 말이지.
 태생이 젠트리인 제인 오스틴의 마지막 소설 <설득>에서 보면 준남작 이상의 귀족 구성원 중에서 주인공 앤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귀족은 말 그대로 허영과 사치와 불평과 욕구불만과 비교와 아첨 아니면 무시라는 형태로 드러나는 사교와 치레의 엉망진창으로 그려놓았다. 반면에 해군 제독과 대령들, 지주와 교구 목사 같은 젠트리들은 적어도 기본적인 인간미에 충만한 사람들, 비록 간혹 경박하긴 해도 곧바로 자신의 오류를 알아채 다시 방향을 잡는 인간들로 설정했다.
 제인 오스틴 소설은 결혼이란 최종 목표를 위해 서로 눈치보고 재고 밀고 당기는 소위 밀당의 경지를 보여준다고 했는데, 이 ‘밀당’이란 것이 말이 그렇지 사실 오스틴만큼 재미있고 다양하고 설득력 있게 그린 작가는 별로 없다. 대단한 실력이란 건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데, 왜 사람들이 제인 오스틴과 그의 작품에 열광하느냐 하면, 무엇보다 먼저 내가 아마추어 독자임을 다시 한 번 환기시키고 이야기하는 바, 이야기를 적극적으로 ‘심리소설’의 테두리 안에서 만들기 때문이다. 모든 훌륭한 작품이 다 심리소설은 아니지만, 잘 쓴 심리소설은 언제나 훌륭한 작품이란 평을 듣는 건 이유가 있다. 독자가 책 속에서 마치 자신의 내면을 그대로 발견한 것처럼 읽을 수 있으니까. 그러니 제인 오스틴의 소설을 읽어가며, 마음 속 또는 혼잣말로 그래, 맞아, 맞아 라고 까지는 하지 않더라도 등장인물의 심리상태에 푹 빠져 시간 가는 줄 모를 확률이 대단히 높다는 뜻.
 이 작품 <설득> 역시 마찬가지다. 훌륭한 소설임은 인정한다. 다만 내 취향이 아닐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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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0-01-07 19: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영드로도 재밌게 본 기억이 나네요 :>

Falstaff 2020-01-07 19:52   좋아요 0 | URL
아..... ‘영드‘요!
저는 ‘영드로‘가 뭔지 한참을 생각했지 뭡니까. ㅋㅎㅎㅎ

CREBBP 2020-01-08 14: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같은 과 맞네요. 제인 오스틴을 읽어야지 읽어야지 하면서도 손이 언듯 가지 않는 이유가요. ㅋ

Falstaff 2020-01-08 15:26   좋아요 0 | URL
앗! 그러십니까. ㅎㅎㅎ 더욱 반갑습니다.
 
황폐한 집 동서문화사 월드북 227
찰스 디킨스 지음, 정태륭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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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찰스 디킨스 하면 꽤나 익숙한 느낌이 들지만 사실 그의 작품을 그리 많이 읽지는 않았다. <위대한 유산>, <두 도시 이야기>, <데이비드 코퍼필드> 이렇게 세 작품을 읽었고 마지막 디킨스로 <올리버 트위스트>를 선택해 이젠 디킨스 졸업장을 받으려 했는데, 엉뚱하게도 <황폐한 집>이 가장 위대한 영국소설 스물다섯 편 안에 포함된 걸 알고 이 책을 읽게 된 것. 이 책은 본문이 11쪽에서 시작해 985쪽에서 끝난다. 모두 975쪽. 한 페이지에 30줄, 한 줄에 40자로 쪽 당 200자 원고지 여섯 매, 그러니까 책 전체의 분량은 최대 원고지 5,850매 분량이다. 대략 우리나라 작가들이 요즘 발표하고 있는 장편소설 세 권 반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작품은 전지적 작가시점과 날개 없는 천사 에스더 서머슨 양의 수기가 교차로 편집되어 있다. 이런 작품은 목차 바로 앞이나 뒤에 주요 등장인물을 소개하고 나서 시작하면 좋을 텐데, 디킨스는 그런 친절을 베풀지 않았다. 애초에 눈치를 챈 나는 일찌감치 메모장과 볼펜을 준비하고 메모를 해가면서 읽기 시작했고, 잔글씨 메모가 꽉 찬 두 장에 이르렀다. 겨우 네 번째 읽는 디킨스라 그의 작품 성향이나 서술의 특징 같은 걸 운운할 수준은 되지 못한다. 곧바로 작품 속으로 들어가기로 하자.
 디킨스가 영국 법원에 유감이 좀 있었던 모양이다. 본문에 들어 겨우 한 장을 넘기자마자 “법정은 돈 많고 힘 있는 사람이 정의로운 사람의 기력을 완전히 빨아먹을 수 있도록 편의를 돕고 있다.”라고 선언을 해 놓고 무려 40년 동안 끝나지 않은 유산 상속에 관한 재판 “잔다이스 대 잔다이스 사건”을 이야기한다. 이 사건 자체가 진짜 영국에서 있었던 법정다툼을 염두에 두고 썼다는 얘기도 있는 바, 수십 년을 끈 재판으로 상속인은 재판비용으로 파산해버리고 정작 돈을 번 사람은 변호사뿐이었다는 눈물이 앞을 가리는 실제 상황이었다나. 하여간 그런데 소송 당사자 중 한 명인 잔다이스 씨로 말하자면 영국산 ‘부처님 가운데 토막’으로, 소송 당사자와 특별한 관계이면서 고아가 된 에이더 클레어 양과 이보다 한 살 많은 열아홉 살의 리처드 카스톤 군을 친절한 마음으로 후원하고 있는 사람이다. 출생이 귀족은 아니었지만 조상님 가운데 한 분이 갑자기 돈벼락을 맞는 바람에 부르주아의 반열에 올랐으나 변덕스런 증조부가 이상야릇한 유언장으로 인해 소송을 시작해 끝도 없는 혼란의 와중을 맞았으면서도 어려움 속에서 자신이 받은 재산을 지켜낸 인물이기도 하다. 이이가 또 한 명의 불쌍한 고아로 하여금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게 후원했는데 사촌 간인 에이더 양과 리처드 군을 자신의 집에서 직접 보육하기로 하면서 때마침 학교를 졸업한 고아소녀 에스더 서머슨 양을 이들의 말벗으로 채용해 돈독한 우정을 쌓게 만들고, 에스더 양으로 하여금 수기를 쓸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준다.
 한 자매를 소개해야겠다. 데들독 부인과 그의 언니 에스더 양.
 데들록 부인은 당시 잉글랜드와 웨일스, 스코틀랜드를 다 뒤져봐도 이이보다 더 아름다운 여자는 단 한 명도 찾을 수 없었을 정도의 미녀였다. 근데 미인박명이라는 진실이 영국에서도 통하는 모양이다. 이 여인이 한 남자에 빠져 죽자사자 연애를 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하필이면 상대가 앞으로 20년 이상을 지속할 유산 상속에 관한 재판 “잔다이스 대 잔다이스” 소송의 당사자로 한 방 제대로 터지면 하늘에서 금화, 은화가 쏟아지겠지만 자신이 죽기 전엔 결코 결판이 나지 않을 송사에 미쳐버려 부인의 배 속에 여자 아이 하나만 만들어놓고 폐인이 되어 홀연히 사라져버리고, 20년 후에 법원 근처 알코올 중독자이자 고물상 사장인 크룩 씨의 허름한 하숙집에서 야매 대서인으로 푼돈을 받아 살다가 어느 날 약물과다복용으로 숨을 거두고 만다. 근처에 사는 젊은 의사 엘런 우드코트 씨조차 이 사건이 자살인지 사고사인지 판명을 하지 못하게 애매모호한 상태로. 19세기 초 당시는 어쨌든 배에 아이가 들어서면 좋든 싫든 낳는 방법 외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어서 어엿한 법적 처녀의 신분으로 어여쁜 딸을 낳긴 했지만 아이가 숨을 쉬지 않는 거라. 그래 죽은 줄 알고 피 빨래가 쌓인 보퉁이에 올려다 놓고 부인은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는 신념하에 새로이 몸을 추슬러 결혼에 이르렀으니, 자신보다 스무 살 연상의 준남작이자 링컨셔 지역의 최고 부자인 데들록 경의 아내로 간택이 되어 이후 경의 무한한 존경과 숭배 속에서 나날이 거만의 극치를 부리는 팔자를 즐기게 된다. 맞다. 영국에서도 여자 팔자는 뒤웅박 팔자였다. 이 미모의 준남작 부인의 생애는 이 정도면 이해가 되시지?
 그럼 부인의 언니, 한 많은 에스더 양을 보기로 하자. 에스더 양은 마음씨 하나는 선하지만 풍모나 기상이나 행위나 특별히 언어 구사에 있어서는 천하의 영웅인 로렌스 보이손 씨와 심각한 연애를 벌이고 있었다. 여기서 심각한 연애라고 함은 19세기 초 영국의 양식있는 계급의 남녀 수준에서 심각하다는 뜻이지 21세기 젊은이들의 연애라고 생각하면 수원 밑에 병점 찍고, 오산이다. 에스더 양은 하나밖에 없는 동생의 사생아 출산을 돕고, 숨이 끊어진 조카를 살펴보던 중에, 에그머니, 이 아이의 심장이 약하게나마 박동을 멈추지 않고 있는 거라 차마 멀쩡하게 살아있는 아이를 죽게 내버려둘 수도 없고, 벌써 출산의 자리를 박차고 돈 많고 나이 많은 남자를 향해 떠난 동생에게 엣다 네 딸 받아라, 하고 던져줄 수도 없어서 할 수 없이 자신이 직접 키우기로 작정을 해야 했던 터. 그러나 약혼자 보이손 씨에게마저 가문의 명예와 동생의 명예가 달려 있어 동생이 낳은 사생아를 키워야 한다는 조건을 내세우지 못해 고백도 할 수 없는 처지여서, 말 그대로 피눈물을 흩뿌리며 보이손 씨에게 결별을 선언하고 진짜 처녀가 엄마를 대신해 사생아를 키워야 하는 팔자로 떨어진다. 동생이 준남작의 부인으로 자리를 잡고 온갖 거만을 떨며 사는 것이 너무도 미워 꼴 보기 싫어도 차마 얘기도 할 수 없었으니 얼마나 조카딸이 미웠을까. 사실 화통하고 건전하기 짝이 없는 보이손 씨 성격으로 보면 사실을 고백하기만 했다 하면 그까짓 것쯤 얼마든지 좋은 마음으로 덮은 채, 죽음이 서로를 갈라놓을 때까지 행복하게 20년 해로(에스더 양의 명이 그것밖에 안 됐다)를 할 수 있었건만, 화통한 보이손 씨의 입나팔을 도무지 믿을 수 없었던 건가 어쨌던 건가 하여튼 온갖 저주를 퍼부으면서도 조카딸을 성년이 되도록 키워주고, 보이손 씨 역시 평생을 독신으로 살게 하니, 죄를 받아 남은 생으로 20년 밖에 허여 받지 못했던 것일까.
 그렇다고 이기적인 동생 데들록 양도 명이 긴 편은 못된다.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줄거리가 바로 이들 자매가 얽혀있는 실타래를 푸는 일. 그것까지는 독후감에서 줄거리입네, 설명할 수는 없으니 정 궁금하시면 영국에서 가장 위대한 소설작품 스물다섯 편 안에 든 <황폐한 집>을 직접 읽어보시면 될 터.
 그럼 제목이 어떻게 <황폐한 집 Bleak House>가 되었을까. 여기서 ‘황폐한’을 그저 형용사로 보면 바람직하지 못하다. ‘황폐한 집’을 통째로 고유명사로 보면 딱 맞는다. 작품 속에서 황폐한 집은 적어도 사촌 남매와 에스더 양이 도착한 후에는 언제나 친절하고 정의롭고 화기애애하고 영국식 습기와 안개와 애매모호가 없는 따뜻한 애정의 집이기 때문이다. 황폐한 집은 세인트 올번스 근처에 위치한 저택으로 앤 여왕 재위 이전부터 존재했다고 한다. 원래 저택의 이름은 “봉우리의 저택”이었으나 말썽꾼 톰 잔다이스 증조부가 소송을 시작해 가문에 큰 혼란을 맞으면서 저택의 이름도 ‘황폐한 집’으로 바뀌었단다. 원래 있던 세인트 올번스의 황폐한 집 말고 책의 끝머리에 또 한 채의 ‘황폐한 집’이 지어지는데 이 두 채의 황폐한 집의 공통점은 사랑과 자애와 친절과 우정과 삶의 소소한 즐거움이 넘쳐나 근본적으로 황폐한bleak이란 단어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 정도는 미리 알려드려도 괜찮을 듯싶다.
 여태까지 쓴 독후감은 내가 책을 읽으며 메모장에 써놓은 것의 20 퍼센트에도 미치지 못한다. 욕심을 내 나머지 80 퍼센트를 다 이야기한다면, 지금이 이른 아침이지만 내일 새벽이 훤하게 밝아야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책의 줄거리보다 디킨스가 당시 런던과 법정과 귀족계급을 묘사해놓은 문장이 훨씬 좋았다. 내가 읽은 어떤 영국 작가보다 런던의 유명한 ‘안개’에 대해 실감나게 표현해 놓았으며, 법원과 귀족에 대한 비아냥 또는 풍자의 문장 역시 대단히 매혹적이었다. 내용? 그건, 19세기 초에 쓴 책을 21세기 초의 독자가 읽으면서 그 정도는 한 눈에 훤히 보이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 출생의 비밀과 독자를 현혹하기 위한 장치 같은 것 역시 지금 시각으로는 무지하게 구식이라 특별히 눈에 띄는 것도 없지만, 썩어도 준치, 그래도 찰스 디킨스다, 어떻게 그리도 뻔한 스토리로 사람을 ‘읽는 재미’의 골짜기로 빠뜨려버릴 수 있을까.
 근데 이 책에 등장하는 몇 몇 인물은, 평생 화장실 한 번 안 가고 천상의 넥타만 마시면서 사는 거 같다. 세상에 이런 사람들 있으면 한 명만 구경하고 나서 죽고 싶다고 조건을 걸면 아마 나는 불멸의 삶을 살 수 있을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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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en 2020-01-06 11: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황폐한 집>에 대해 정말 맛깔나게 리뷰해 주셨군요. 저도 디킨스 최고의 작품은 <황폐한 집>이라고 생각하는 1인입니다. 그토록 많은 인물들을 어쩌면 그렇게도 꼭꼭 숨겨놓았다가 안개가 걷히듯이 차츰차츰 그 비밀들을 하나하나씩 풀어내고 드러내는지, 정말로 경이로울 지경이더군요.^^

Falstaff 2020-01-06 12:43   좋아요 1 | URL
예. 진짜 이 작품은 메모하지 않고 그냥 읽었다가는 작가가 지금 하는 이야기가 어디서 연결이 되는지 깜깜했을 뻔했습니다.
등장인물 구성이 데이비드 코퍼필드하고 유사하다고 생각을 했는데, 어쨌거나 내용의 복잡 다양은 시대의 이야기꾼 디킨스 아니면 누가 만들 수 있겠습니까. ^^

반유행열반인 2025-01-16 21: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디백작님은 다른 판으로 5년 전에 보셨었네요 ㅋㅋ 그런데 이거 이거 요약문에 스포일러가 너무 많습니다? ㅋㅋㅋ

Falstaff 2025-01-16 21:07   좋아요 0 | URL
ㅎㅎㅎ 동서문화사에서 나온 책으로 읽은 건 맞습니다. 책 표지가 좀 바뀌었는데, 저도 좀 이상한 걸요? 중판/개정판이라 원판 독자서평을 그대로 가져왔을까요? ㅋㅋ 아무려면 어떻습니까.
앗, 스포일러. 앞 부분만 좀 그렇지 않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