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득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44
제인 오스틴 지음, 원영선.전신화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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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말, 특별히 제인 오스틴은, 진짜, 더 이상 읽지 않으려 했다. 오스틴을 많이 읽은 건 아니다. <오만과 편견>으로 오스틴한테 폭 빠졌다가 <노생거 수도원>에서 대폭 실망했는데,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에서 가장 두껍다는 <에마> 광고에 또 홀랑 넘어가 작품 속 젊은 아이의 대책 없는 오지랖에 질려 더 이상 제인 오스틴은 읽지 않겠다고 결심했었던 거다. 그러니까, 기껏해야 남녀 사이 혼인을 전제로 한 밀고 당기는 신경전이 나와 극적으로 맞지 않는 거다. 이건 완전 개인 취향의 문제일 뿐, 내가 오스틴의 명성도 모르면서 함부로 깎아내리는 것도 아니고, 당신 역시 오스틴을 읽지 말라고 권유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아무리 제인 오스틴이 범세계적인 찬사와 갈채와 감동의 후광을 뒤집어쓰고 있다고 하더라도 소비자인 내가 나하고 맞지 않는다, 라고 결론을 내면 그걸로 끝이라는 이야기. 그런데 또 오스틴을 읽었다. 유사 이래 영국에서 쓰인 가장 위대한 소설 스물다섯 편 가운데 오스틴의 마지막 작품 <설득>이 들어 있어서. 그래 오스틴에 대한 여태까지의 내 생각이 어땠는지는 다음으로 하고, 일단 ‘위대하다’니까 나 역시 <설득>을 읽어봐야 하지 않겠는가, 하고 작심했다. 이제 진짜 오스틴은 더 안 읽겠다. 그러다 또 읽으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읽으면 읽는 거지 뭐. 어차피 남아일언 풍선껌인 걸.
 이게 오스틴의 마지막 작품이란다. <설득>을 탈고하고 이듬해 마흔두 살의 아까운 나이로 천국의 기쁨을 맛보기 위해 세상을 떴다. 마지막 작품이니 이제까지 이이가 주특기로 사용했던 젠트리 계급의 연애 이야기에서는 단연 최고의 품질을 자랑할 수 있겠다. 19세기 초의 영국에도 결혼의 첫째 조건은 여자와 남자가 서로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었으리라. 그런데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있었으니 과연 상대가 나하고 맞는 짝이어야 한다는 거. 제인 오스틴 본인이 대표 젠트리 그룹의 일원인 교구 목사의 딸로 태어나긴 했으나 목사 아빠가 거느린 교구도 코딱지만 한데 8남매 가운데 일곱 번째로 태어나 집안의 부를 머리수로 나누면 거의 별 볼일 없어서 스무 살 때 연애도 거의 성사가 되는 듯싶다가 마지막 순간에 파투가 났고, 스물일곱 살 때, 당시 스물일곱이면 결혼을 하거나 당할 수 있는 거의 마지막 기회로 옥스퍼드 나온 못생긴 말더듬이 남자의 청혼을 받아들였지만 그것 역시 마지막에 깨져버렸던 바, 두 번 다 상대의 요구조건을 자기 집안이 충족시키지 못한 결과, 즉 서로 맞지 않는 짝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쓰라린 경험이 있는 제인 오스틴인지라, 내가 읽은 모두 네 편의 작품에서 공통적인 가장 중요한 터닝 포인트, 주인공 남녀가 고통을 당하고, 번민하고, 서로 밀고 당기는 이유 역시 속으로는 서로를 사랑하거나 상당한 호감을 갖고 있지만 상호 요구조건을 서로가 맞춰주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설득>에서는 열아홉 살 앤 엘리엇과 프레더릭 웬트워스 총각이 서로 눈이 맞아 프레더릭 총각이 청혼을 했으나, 일찍 세상을 떠난 엄마 대신에 앤 처녀가 의지하고 살던 레이디 러셀의 설득,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일개 해군 장교에게 어떻게 준남작 영양의 일생을 의탁할 수 있겠느냐는, 일견 그럴 듯하고 안정적 선택을 선호하는 연장자의 입장을 이기지 못해 청혼을 거절했으니, 첫 번째가 여자는 준남작의 영양인데 남자가 일개 교구 목사의 동생, 젠트리도 말단 젠트리 계급이란 거, 둘째가 그럼 남자가 돈이라도 왕창 있어야 하거늘 현재 사정으로 보면 가까운 시일 내에 전쟁이 터지고 거기서 큰 공훈을 세우기 전까지 그리 큰 비전이 보이지 않는다는 ‘진실’, 계급과 돈이라는 두 가지 요구조건을 아무것도 충족시키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청혼을 거절당하고 열 받은 프레데릭 총각은 2년 후 몇 천 파운드의 돈과 대위 계급장을 달고 앤 처녀가 사는 켈린치 부근에 들르기는 했지만 아무래도 이 정도 가지고는 준남작과 그녀의 후원자의 요구엔 여전히 족탈불급이겠다, 라고 지레짐작해 다시 바다로 나가 전투하고, 승리하기를 몇 번, 다시 6년 이상이 더 흘러, 그러니까 모두 합해 8년여가 지나 이제 앤 처녀가 스물일곱 살의 늙은 처녀가 되었을 때 수만 파운드의 재력을 가진 웬트워스 대령이란 명함을 파고 다시 켈린치에 도착하면서 제인 오스틴의 마지막 작품이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거다.
 웬트워스 대령이 켈린치에 도착하기 위해서는 한 가지 필요한 것이 있었으니, 그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앤의 집, 켈린치 저택을 방문하게 만드는 일. 제인 오스틴에게 참 다행스럽게도 원래의 저택 주인인 1760년생으로 현재 54세의 만년을 즐기고 사는 준남작 월터 엘리엇 경은 아내가 죽고 무려 13년간 별로 탐탁치도 않은 레이디 러셀의 조언을 듣고 살면서 오직 하나, 용모와 지위에 대한 허영심만 붙들고 사는 바람에 근동에 월터 경보다 더 잘 차려입고, 잘 관리한 얼굴을 소지한 남자가 없을 정도의 사치를 부리느라 기둥뿌리 뽑히는지 모르는 처지였다. 그러다 경제적 위기가 닥쳐오자 영지와 저택을 크로프트 제독에게 임대하고 자신은 두 딸과 함께 온천 요양지 바스로 옮길 수밖에 없었다. 근데 크로프트 제독의 아내 소피가 프레더릭 웬트워스 대령의 누님이었던 것이고, 앤은 때마침 시집 간 동생 메리가 아파 당분간 동생 간병차 사돈댁에 머물게 됐으니 어떻게 더 자연스러운 만남이 있을 수 있겠느냐는 말이지.
 태생이 젠트리인 제인 오스틴의 마지막 소설 <설득>에서 보면 준남작 이상의 귀족 구성원 중에서 주인공 앤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귀족은 말 그대로 허영과 사치와 불평과 욕구불만과 비교와 아첨 아니면 무시라는 형태로 드러나는 사교와 치레의 엉망진창으로 그려놓았다. 반면에 해군 제독과 대령들, 지주와 교구 목사 같은 젠트리들은 적어도 기본적인 인간미에 충만한 사람들, 비록 간혹 경박하긴 해도 곧바로 자신의 오류를 알아채 다시 방향을 잡는 인간들로 설정했다.
 제인 오스틴 소설은 결혼이란 최종 목표를 위해 서로 눈치보고 재고 밀고 당기는 소위 밀당의 경지를 보여준다고 했는데, 이 ‘밀당’이란 것이 말이 그렇지 사실 오스틴만큼 재미있고 다양하고 설득력 있게 그린 작가는 별로 없다. 대단한 실력이란 건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데, 왜 사람들이 제인 오스틴과 그의 작품에 열광하느냐 하면, 무엇보다 먼저 내가 아마추어 독자임을 다시 한 번 환기시키고 이야기하는 바, 이야기를 적극적으로 ‘심리소설’의 테두리 안에서 만들기 때문이다. 모든 훌륭한 작품이 다 심리소설은 아니지만, 잘 쓴 심리소설은 언제나 훌륭한 작품이란 평을 듣는 건 이유가 있다. 독자가 책 속에서 마치 자신의 내면을 그대로 발견한 것처럼 읽을 수 있으니까. 그러니 제인 오스틴의 소설을 읽어가며, 마음 속 또는 혼잣말로 그래, 맞아, 맞아 라고 까지는 하지 않더라도 등장인물의 심리상태에 푹 빠져 시간 가는 줄 모를 확률이 대단히 높다는 뜻.
 이 작품 <설득> 역시 마찬가지다. 훌륭한 소설임은 인정한다. 다만 내 취향이 아닐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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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0-01-07 19: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영드로도 재밌게 본 기억이 나네요 :>

Falstaff 2020-01-07 19:52   좋아요 0 | URL
아..... ‘영드‘요!
저는 ‘영드로‘가 뭔지 한참을 생각했지 뭡니까. ㅋㅎㅎㅎ

CREBBP 2020-01-08 14: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같은 과 맞네요. 제인 오스틴을 읽어야지 읽어야지 하면서도 손이 언듯 가지 않는 이유가요. ㅋ

Falstaff 2020-01-08 15:26   좋아요 0 | URL
앗! 그러십니까. ㅎㅎㅎ 더욱 반갑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