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 사려고 줄 서보신 분? 나는 줄 안 섰다. 일단 난, 비록 내가 사는 아파트 같은
동, 바로 옆 래인lane에 확진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감염자가 아니어서 굳이 KF-94인지 뭔지 하는 마스크를 쓸 필요가 없는 사람이다. 그리고 날 아는 분께서는 의아하시겠지만 피부가 워낙 약해 마스크만 썼다 하면 주둥이 근처에 트러블이 생겨서 여간해선 마스크, 안 쓴다.
코로나 생기기 전에 올 봄에도 황사 또는 미세먼지가 처들어올 거라고 아내가 30장 들이 두 박스, 50장 짜리 중국산 한 박스를 사두었고, 사태가 터지니까 아들 내외가 또 한 90매 가량 KF-94가 아닌 그냥 마스크를 가져와 우리 부부가 올 가을까지 쓸 건 다 챙겨놨다. 그래 코로나 터져서 이웃한테 물론 중국산으로 한 스무 장 기증하기도 했다.
내가 요즘 학자로 드물게 존경하는, 통섭의 학문, 최재천 선생이 건강한 사람은 마스크 쓸 필요가 없다고 설파를 했으나, 불행하게도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출근 자체를 하지 못해, 감염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하루 열 시간 이상은 마스크로 얼굴을 뒤덮고 하루 종일 근질근질, 숨쉬기도 기분나쁘고, 피부에 뭣도 나고 막 그렇다.
지금 마스크는 일종의 에티켓. 나 같은 미 감염자도 마스크를 쓰는 이유는 내 주위의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불안하지 않게 해주는 효과 때문이다. 그러니 건강한 사람은 요일에 맞춰, 아니면 토요일에 약국 앞에 줄 설 이유가 없다. 그냥 아무거나 주둥이 근처를 덮어서 다른 사람한테, 나도 마스크 했다, 당신들한테 내 침 또는 비말, 또는 DNA를 살포하지 않을 거라는 걸 알려주면 되는 일.
근데 희한한 건, 거의 전 국민이 마스크를 쓰는 불쾌한 일을 하면서 거의 아무도 마스크 착용에 따른 불쾌함을 표시하지 않는다는 거. 이거? 시민의식? 좋아. 시민의식일 수 있다. 그래도 뭔가 좀 이상하다. 어째 한 명도 마스크 착용에 따른 갑갑함을 토로하지 않는지, 솔직히 이해하기 힘들다.
내 마스크 한 번 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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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하루 쓴 거다. 난 얄짤 없이 하루 쓰면 버린다. 어찌 내 몸의 모든 미생물이 묻은 마스크를 다음날 또 쓰겠는가. 근데 왼쪽 위에 무슨 말 보이시지?
MERDE
이거 보고도 아무도 뭐라하지 않는다. 무슨 뜻인지 묻지도 않는다. 영어 단어인줄 알고 괜히 그것도 모른다 고백할 필요가 없으니까. 내가 밥 먹고 사는 회사가 더군다나 다국적기업이니까.
그러나 이건 불어다. 일찍이 워털루 전투에서 웰링턴 원수의 휘하 가운데 한 명이 프랑스 군에 항복을 권유하자 나폴레옹 아래 한 장군이, 애석하게 그이의 이름을 잊었다, 스탕달이 쓴 <파르마 수도원>에서 나온다, 크게 외치기를, "네 대답에는 다섯 철자면 충분하다, 하고 부르짖던 알파벳이 M.E.R.D.E. 프랑스 말로 "똥"이란 뜻이고, 당시 워털루 전투에서는 "엿 먹어라!" 정도로 해석하면 98점이다.
난, 건강한 내가 쓸데없이 마스크를 쓰고 하루 온 종일 답답하게 호흡하고, 주둥이 근처가 끈적거리며, 피부 트러블까지 일으키는 것이 너무 싫다. 나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그럴 것이다. 특히 하루 종일 마스크를 쓰고 일해야 하는 직장인일 경우에. 근데 왜 모두 조용하지?
그리하여 조그만 목소리라도 난 세상에 외치기 시작했다. 마스크 쓰기 싫다고, 불편하다고.
MERDE !
부모자식 간에는 머뭇거림이 없다. 작은 아이가 마스크를 보더니, 아빠(새끼가 스물여덟 살인데 아직도 아빠라고 한다. 내가 다 쪽팔린다. 얌마, 아버지 또는 아버님이라고 불러!) 이게 뭔 뜻이야?
그래서 일러주었다.
이게 프랑스 말인데 원래 뜻은 "똥"이고, 지금 상황에서 제일 어울리는 번역은 이래.
"씨발!"
* 이 글은 쐬주에 맥주 마시고 취중에 쓴 겁니다. 내일 아침에 정신차린 다음에 읽어보고 지울 수 있습니다. 없으시겠지만 댓글 달아주시는 분께선, 갑자기 본문이 지워져도 그런가보다,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흑흑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