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린체
라우라 에스키벨 지음, 조구호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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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우라 아스키벨?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8번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의 작가. 전작에서는 자신이 평생 결혼도 하지 못하고 부모님 뒷바라지나 하다가 늙을 팔자인 것을 알고는 엄마 배속에서 나올 때부터 슬퍼서 앵앵 울며 끝까지 나오지 않으려 했던 한 부엌데기가 음식을 매개로 자신의 슬픔을 이야기하는 소위 붐 문학, 라틴 아메리카 표 환상문학의 하나였다. 작가가 1950년 멕시코시티에서 태어난 멕시코 사람. 피부색을 보면 유색인, 그러니까 인디오의 피가 조금 섞인 듯한데, 그렇지 않은 멕시코 인이 있기나 하나. 스스로를 에스파냐에서 온 백인의 후손이라고 으스대는 족속들도 알고 보면 자신 속에 검은 피부 무어인의 DNA가 섞여 있을 것이다.

 

 

라우라 아스키벨


  지금의 멕시코가 아니라 16세기 이전의 멕시코에서는 이야기를 후손에게 전할 때 ‘코덱스’라는 이름의 그림을 그려 일종의 책으로 만들어 왔는데, 이것이 지금 시대엔 매우 중요한 역사적, 문학적 의미를 지닌다고 한다. 예로부터도 마찬가지라 이 코덱스를 만드는 또는 작성하는 작가들은 보통 사람보다 뛰어난 사람으로 간주했으며, 코덱스 작성을 성스러운 행위로 인식해서 세금까지 면제해주었다고 한다는데, 책에서는 이 주장의 근거를 밝히지는 않는다. 하여간 그런가 보다.
  고대 멕시코와 아즈데카 문명을 합해 그냥 멕시코라고 부르고 이들이 만든 문명을 아즈데카 문명이라고들 한다. 조금 구분을 해야 하지만 여차 잘못 아느니 차라리 나도 그대로 쓰겠다. 레이날도 아레나스가 쓴 <현란한 세상>을 보면, 1765년에 멕시코 몬테레이에서 태어난 풍운의 수도사 세르반도 테레사 데 미에르가 1531년에 멕시코에서 나타났다고 하는 멕시코 수호성인 과달루페의 성모는 완벽한 거짓말이라고, 아직 코르테스가 멕시코를 정복하지 못했을 때인데 어떻게 기독교의 성모가 출현할 수 있느냐고 했다가 평생을 감옥생활과 탈옥을 반복해야 하는 촌극을 재미있게 그렸는데, 이 책에서는 과달루페의 성모가 어렴풋하게나마 1531년 부근에 등장할 수도 있었다고 주장한다. 다만 백인 또는 유럽인의 눈으로 과달루페의 성모를 보는 건 어림도 없고 오직 인디오 고유문화에서 나오는 어머니 신인 ‘토난친’을 이해할 수 있는 인디오의 시선에서만 모습을 허락했을 것이라 시사한다. 라틴 아메리카의 로마 가톨릭은 우리나라 불교와 비슷하게 토속신앙과 밀접한 관계를 이루었다고 들었는데, 전문가가 한 이야기가 아니라 조심스럽긴 하다.
  주인공은 말리날리. 멕시코의 마지막 황제 목테수마가 인신공양을 벌인 날 밤, 바람이 불고 폭풍우가 쏟아지는 가운데 우레와 같은 폭발음이 들리며 은색 뱀(번개)이 하늘에 나타나던 날, 난산 끝에 탯줄이 입술 사이에 물려 있어 할머니가 탯줄을 잘라내 세상에 나오게 된 아기. 말리날리는 이렇게 ‘파이날라’라는 작은 나라의 왕 틀라토아니의 딸로 세상 구경을 한다. 말리날리가 나중에 숨을 거둘 때까지 이이의 한 평생을 그린 소설. 그렇다고 전기적 작품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말리날리의 생몰연대에 관해서는 이론이 있지만 이이가 에스파냐의 에르난 코르테스의 통역사로, 때론 정략적으로 도움을 주며 코르테스의 멕시코 정복에 한 힘을 보탰다는 게 정설인 모양이다. 그래서 당연히 멕시코 인들에게 오랜 세월 미움을 받았던 모양인데 라우라 에스키벨이 문학적 상상력으로 색다르게 해석을 한 듯.
  말리날리가 어려서 아버지는 목테수마 혹은 그의 부하들에 의하여 죽임을 당했고, 어머니는 재혼을 하는 바람에 현명한 할머니, 서서히 시력을 잃어가지만 시력상실의 속도보다 더 빠르게 현명해지는 전형적 ‘인디오 어머니의 신의 현명함’으로 손녀를 양육하며 특히 언어 구사에 관한 교훈을 전해준다. 할머니는 말한다. “만약 말이 다른 사람에게 물(좋은 영향)을 주고, 그럼으로써 신들의 기억을 꽃피우게 하는 데 사용되지 않는다면, 말은 전혀 쓸모없는 것이 된단다.” 할머니에 의하여 만들어진 더없이 보석 같은 유년시절이 마감될 다섯 살 즈음, 할머니는 땅으로 돌아가고, 어머니는 새 남편과 살기 위하여 염소 한 마리 값도 받지 못했음에도 기꺼이 말리날리를 노예로 팔아버린다.
  1504년에 처음으로 아메리카의 라 에스파뇰라(도미니카와 아이티가 있는 섬)에 첫발을 디딘 에르난 코르테스는 외아들로 자라서 그런지 자신이 원하면 뭐든지 갖고야 말겠다는 성취욕이 누구보다도 강한 집착증세를 보인다. 그러나 최고로 빠른 출셋길이었던 군대에 입대하기에는 키가 너무 작아 선택할 수 있는 직업이라고는 ① 궁정시동, ② 사제, ③ 공부밖에 없어, 에이 씨, 나 그딴 거 안 해, 라며 배타고 아메리카로 향한다. 그곳에서 누구보다 더 큰 땅의 정복자이자 영주이자 지배자, 누구보다 더 위대한 남자가 되기로 결심을 한다. 그리하여 상관인 쿠바 총독의 명령을 따르지 않고 그저 관찰 업무에 불과했던 멕시코 탐험을 끝내 원정과 정복으로 만들어버리고 마는데, 처음부터 잔혹한 살인마였던 것은 아니어서 대화와 타협을 최고의 정책으로 삼아 어려서부터 노예로 생활해 에스파냐어와 현지 언어를 두루 사용할 줄 아는 말리날리를 자신의 ‘혀’로 부리기 시작한다.
  여기에 한 명을 더 보태자면, 멕시코의 마지막 황제 목테수마. 그는 멕시코 전역을 무력으로 정복하고 피라미드 위에서 인신공양의 축제를 벌이는 걸 무척 좋아했다. 그러나 마음 한 편으로 자신들의 신 케찰코아틀이 돌아오면 자신에게 멕시코 평정 동안 벌어진 살육과 인신공양에 대한 책임을 물을 것이 확실하다는 쓸데없는 고민에 갇힌 사내이기도 했다. 딱 이런 찰나에 등장하는 키 작은 사나이 에르난 코르테스. 키가 작다고 해도 인디오의 키에 비하면 결코 작은 키도 아니었고, 거기다가 하늘같은 말을 타고 있었던 거다. 또 수염이 난데다가 머리카락이 옥수수수염처럼 황금빛을 띠고 있어서 누가 보더라도 가장 상서러운 표식으로 여길 수밖에 없었다. 멕시코의 신 같은 두 화산 포포카테페를과 이스탁시아우틀 사이를 신에게 공양할 아이들과 걷는 꿈을 꾼 후, 아이들의 두개골을 자신의 물잔으로 사용하겠다고 생각하던 목테수마는 갑작스러운 바람과 햇빛을 보고 아연 공포에 싸여, 에스파냐 사람들의 도래를 케찰코아틀이 귀환하는 것으로 확신하게 된다. 이런 바보 멍청이 같은 황제라니. 신의 징벌에 관한 공포 때문에 군대의 총지휘자 목테수마는 엄청난 전투능력을 마비시켜버렸던 거였다. 그것만 아니었어도 그깟 한 줌의 에스파냐 군대 정도는 단 하루 만에 격퇴시킬 수 있었을 것을.
  이렇게 세 명이 벌인 역사적 사실. 솔직히 얘기하자면 책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이게 아니다. 인디오 문명과 문화, 아름다움, 독특하고 현명하고 자연 친화적인 것들이 어떻게 천박한 에스파냐의 배금주의에 의하여 무너져갔는지, 민족의 배신자로 낙인찍힌 말리날리가 정말 동족을 배신하기나 한 것인지, 대지를 닮은 한 여성으로서의 비폭력과 작물의 연속적 생산 등등, 심지어 (작품해설에 의하면) 여성주의적 시각까지를 망라하고 있다. 그러나 내가 읽기에 가장 흥미로운 것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인디오들의 다양한 신과 자연에 동화하는 방식이었다. 이 책의 결론도 그리하여 여신의 출현으로 귀결이 나는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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