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우리피데스 비극 전집 2 - 2021년 개정판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에우리피데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21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비극 아홉 편을 실은 책. 그리스 비극을 거칠게 구분하면, ① 오이디푸스 왕, ② 트로이 전쟁, 그리고③ 그리스 신화를 그렸거나, 위의 세 가지를 주축으로 하되 내용을 각색한 작품이 대부분이다. 이 책에서 눈길을 끈 것도 기존의 트로이 전쟁과 다르게 해석한 두 작품이었다. 제일 앞에 실은 <헬레네>와 두번째 이야기 <타우리케의 이피게네이아>. 다섯 번째 작품 <오레스테스>은 각색은 되어 있지만 원래 이야기하고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에우리피데스의 <헬레네>는 20세기에 들어 그리스 시인 요르고스 세페리스가 한 번 더 원래 이야기와 많이 상충하는 허구를 만들었고, 이를 바탕으로 유명한 대본가 휴고 폰 호프만스탈이 <이집트의 헬레나>를 써서 이를 리하르트 슈트라우스가 오페라로 만들기도 했다. 나는 에우리피데스의 <헬레네>를 이번에 처음 읽어봤다. 반면에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오페라를 통해 헬레네가 이집트로 간 내역을 곧이곧대로 믿고 있었기 때문에 에우리피데스를 읽고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두 작품 간의 내용 차이가 매우 컸기 때문이다.

  어떤 버전이 진짜인지 모르지만, 내가 아는 원래 이야기로 말하자면, 십년 간이나 그리스 군대를 애먹이던 트로이 성을 함락한 침략자들은 불쌍한 늙은 왕 프리아모스를 필두로 그의 아들들을 몽땅 도륙하고, 늙은 왕비 헤카베를 포함해 죽은 영웅 헥토르의 아내인 안드로마케까지 몽땅 전리품이란 명목의 노예 또는 첩으로 끌고 갔다. 특히 헥토르의 어린 아들들까지 남자들은 전부, 혹시라도 훗날을 도모하지 않을까 싶어 높은 성벽 위에서 아스팔트 포장도로를 향해 패대기 쳐버렸고. 브래드 피트가 아킬레우스로 출연하는 영화 <트로이>에선 파리스가 아이네이스와 함께 트로이를 탈출하는 데 성공하건만, 천만의 말씀, 파리스 역시 점령군의 칼날을 피하지 못했다. 이 모든 전쟁의 막을 열게 한 헬레네도 옛 남편, 아니, 호적에 아직 남편으로 이름이 올라있는 메넬라오스한테 잡혀 스파르타로 돌아가, 일반 상식 관점으로 보면 웃기게도, 기운 센 천하장사 메넬라오스와 사이좋게 다시 한번 깨를 볶는다. 자기 형 아가멤논은 늘 정확한 예언을 하고도 믿어주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는 불행한 예언자 카산드라(알렉산드라)를 데리고 귀환했지만 첫날 발가벗고 목욕탕 욕조에 누웠다가 부정한 미모의 아내 클뤼타이메스트라한테 칼 맞아 죽는다. 아가멤논이 아내한테 죽는 가장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는 클뤼타이메스트라가 제일 좋아했던 맏딸 이피게네이아를 출전 당시 희생 제단에 올렸던 일이다.

  에우리피데스는 이 두 가지 내용을 자기 마음대로 바꾸어 버린다. 왜? 늘 같은 이야기만 하면 청자는 뻔하게 알고 있는 걸 한 번 더 듣는 일밖에 안 되니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기원전 5세기 사람이다. 원작의 빈 틈을 자기가 어떻게 각색을 하는 건 좋지만 그렇다고 그게 원작의 비의를 콕 집어냈다고 말하긴 쉽지 않다.


  에우리피데스는, 파리스가 헬레네를 꼬드겨서 배에 싣고 트로이로 향할 때, 도둑과 나그네와 상인의 신인 헤르메스가 진짜 헬레네를 아무도 모르게 호주머니에 집어넣고 이집트 프로테우스 왕의 궁전으로 옮겨 그곳에서 남편 메넬라오스를 기다리게 해준다. 파리스가 배에 태워 프뤼기아 땅으로 데려간 것은 스파르타의 왕비 헬레네가 아니라 헤르메스가 마법을 써서 만든 헬레네의 환영일 뿐이었다. 그러니까 헬라스와 프뤼기아 사람들은 허수아비 헬레네를 위해 수만명의 목숨을 걸고 죽고 죽였던 거다. 메넬라오스는 파리스를 죽이고 헬레네의 환영을 되찾아 배에 싣고 귀국하다가 마치 오뒷세이아처럼 길을 잃고 무려 7년 동안 바다 위를 헤매다가, 결정적인 태풍을 만나 거지꼴을 한 채 이집트 해변에 도착했으니, 이때 배에 타고 있던 사람으로는, 메넬라오스와 헬레네(의 허상), 텔라몬의 아들이자 살라미스 섬의 왕 테우크로스 그리고 몇 명 남지 않은 병사들이었다.

  전쟁을 10년 했고, 방랑도 7년을 했으니 도합 17년을 기다린 헬레네. 17년 동안 이집트에서는 정의롭고 신망 높은 프로테우스 왕이 죽고 그의 아들 테오클뤼메노스가 왕위를 이었다. 어진 임금 사후는 대개 욕정에 눈이 먼 차기 임금이 자리를 잇는 것이 서양 비극의 전통이다. 테오클뤼메노스는 왕자 시절에 세젤예 헬레네에게 청혼을 했다가 아버지한테 얻어 터진 적이 있었는데 이제 왕이 되니 눈에 보이는 것이 없어졌다. 이를 견디다 못한 헬레네는 연극 목적상 궁전과 아주 가까운 곳에 자리잡은 선왕의 무덤에 지푸라기를 깔고 그곳에서 기거하며 왕의 청혼을 생까고 있었다. 아무리 왕이라도 지 아버지 무덤에 와서 아버지 말을 거역한 채 헬레네를 억지로 취할 수는 없는 법이라서. 이때 메넬라오스의 배가 이집트 해변에 도착하고 흔히 쓰는 말이 아니라 정말로 거지꼴을 한 메넬라오스가 등장하니, 연극이니까 가능하다고 생각해주어야 마땅하게, 이집트 땅을 밟자마자 헬레네를 발견, 무려 17년 만에 부부 상봉하는 장면. 눈물이 앞을 가리겠지? 천만의 말씀. 메넬라오스는 분명히 트로이에서 헬레네를 배에 싣고 왔는데 여기 또 헬레네가 있거든. 어리둥절. 갑분싸. 눈 앞에 아내가 보이자마자 헬레네의 환영이 바람과 함께 사라진 걸 조금 후에 알게 된다. 웃기지? 아무리 기원전 5세기 작품이라고 해도 너무 황당하다. 이후로 꾀를 내서 이집트를 떠나는 것만 남았다. 굳이 스토리를 이야기할 필요 없을 듯.


  그러면 세페리스-호프만스탈로 이어지는 <이집트의 헬레나>는 어떻게 될까? 나는 세페리스의 헬레네는 잘 몰라서 검색을 해봤다. 그랬더니 세페리스는 호프만스탈이 아니라 오히려 에우리피데스와 더 가깝다. 이래서 무식하면 용감해지는 거다. 서울 안 가본 놈이 가본 놈하고 서울 얘기하다 싸우면 안 가 본 놈이 이긴다잖는가 말이지. 에우리피데스-세페리스 vs. 호프만슈탈. 이런 구도가 옳다.

  호프만스탈의 이야기에서는 메넬라오스가 파리스를 죽이고 실물 세젤예 헬레네를 배에 싣고 출항한다. 귀국하는 도중에 제우스의 동생이자 바다의 큰 신 포세이돈과의 사이에서 영웅 테세우스를 낳은 아이트라가 매넬라오스의 속셈을 눈치챈다. 스파르타로 돌아가 같이 사는 대신 헬레네를 죽여버릴 생각이란 것을. 여신 아이트라는 헬레네를 가여이 여겨 폭풍을 일으키고, 배가 난파하여 부부는 이집트 땅에 도착한다. 아이트라가 이들 앞에 나타나 시치미 뚝 떼고 두 팔을 벌린 채, 웰컴 투 이집트, 환영을 하지만 메넬라오스는 여전히 파리스를 처단한 바로 그 칼로 헬레네의 어여쁜 목을 뎅겅 잘라버릴 생각을 도무지 멈추지 못한다는 걸 알아차린다. 그러다가 정말로 칼을 쳐들려 하자 여신은 요정들을 불러 칼부림을 멈추게 하고, 요정들은 마법을 써서 메넬라오스로 하여금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았으며 파리스도 여전히 살아있다고 착각하게 만든다. 이어서 헬레네에게도 물약을 먹여 과거를 잊은 채 깊은 잠에 빠지게 만든다.

  요정들이 퇴장하자 제 정신으로 돌아온 메넬라오스는 드디어 자기가 헬레네와 파리스 둘 다 죽였다고 믿는데, 다시 아이트라 여신이 와서 헬레네한테 먹였던 물약을 마시게 해 과거를 몽땅 잊게 만든다. 메넬라오스는 올림포스의 신들이 헬레네를 파리스로부터 구출해냈다고 믿고, 잠에서 깬 헬레네는 메넬라오스와 다시 결합한다. 이들은 아이트라에게 자신들을 아는 사람들이 없는 먼 곳으로 보내달라고 부탁하는데, 2막에 들어서 갑자기 난데없이 사막의 베두인이 나타나 세젤예 헬레네에게 퐁당 반해버려 사랑에 빠지고 이를 파리스로 착각한 메넬라오스가 그를 뎅거덩 두 쪽을 내버린 후 진정으로 헬레네를 사랑하게 되어 우짜구저짜구 막 이런 내용이다.

  결론은, 트로이 전쟁, <일리아드>가 괜히 고전 명작이 아니란 말씀. 비록 <일리아드>에는 이런 후일담이 나오지 않지만, 이렇게 저렇게 우리 귀에 가장 익숙하게 된 이야기는, 많고 많은 것들 가운데 제일 근사하고 그럴듯한 것으로 결정되는 거 아닐까 싶다. 헬레네 이야기도 내가 알고 있는 일반적인 내용이 에우리피데스가 됐건, 호프만스탈이 됐건 간에 다른 어떤 것보다 더 보편적이고 재미있었다.


  <타우리케의 이피게네이아>는 어떻게 되는 거냐고? 그것도 이야기하고 싶지만 지면이 꽉 차서 아무래도 당신이 직접 읽어보셔야겠는데, 그것도 이하동문, 원래 내가 알고 있던 이야기가 제일 그럴듯하고 재미있다는 것만 덧붙이겠다.


.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레이스 2024-08-13 16: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피게네이아와 파이드라가 제일 강렬하게 남아있어요.
아마도 라신으로 다시 읽어서 더 그런듯요
연말에 다시 읽을 계획입니다

Falstaff 2024-08-14 07:16   좋아요 1 | URL
저도 파이드라... 영화도 재미있잖아요.
연말에 또 읽으실 거라고요? 아휴, 진짜 찐팬이시군요! ㅎㅎ
 
우리 패거리
필립 로스 지음, 김승욱 옮김 / 비채 / 2024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로스가 서른여덟 살에 발표한 작품. “필립 로스의 통렬한 정치 풍자극”이라는 시원한 광고글을 달았다. <포트노이의 불평> 이후 2년 만인 1971년. 대통령 리처드 닉슨은 낙태를 인간생명의 신성한 권리를 침해하는 행위로 규정하는 연설을 한다. 낙태 반대는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지구별 꼴 보수들의 전매특허 레퍼토리. TV를 통해서…는 아니고 하여튼 닉슨의 이 연설을 들었든지 읽은 로스는, 이 더러운 공화당원, 이 말은 내가 만든 게 아니고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가 쓴 “올리브 시리즈”의 한 작품에서 여사님의 두번째 남편(이 될 인간)을 본 소감으로 올리브가 하신 말씀 가운데 하나인데, 하여튼 공화당 꼴 보수의 수장이 헛소리 한 번 더 한 것으로 치부하고 넘어가지 않고, 때마침 베트남 미라이 지역에서 있었던 22명의 민간인 학살 주인공, 미 육군 중위 윌리엄 캘리에 대한 감형조치를 걸고 넘어지기로 작정을 했다. 로스가 원래 글발이 워낙 막강해서 불과 몇 달 만에 휘리릭 일필휘지를 날린 것이 바로 <우리 패거리>. 딱 이 두 가지만 가지고는 글감이 차지 않아 1970년에 발생했던 두 가지 사건을 더 했다. 하나는 미국과 남베트남군이 캄보디아 국경을 넘어 진지를 구축한 베트콩의 공격하기 위한 캄보디아 폭격, 다른 하나는 “5∙4학살”이라고도 부르는 5월 4일의 켄트 주립대학 시위대에 대한 발포로 네 명이 사망하고 아홉 명이 부상한 사건이다.


  첫 장면을 로스는 누가 봐도 리처드 닉슨임이 틀림없는 1971년 현재의 대통령 트릭 E. 딕슨, 애칭 트리키와 국민의 대화를 서재극, 레제드라마 형식으로 만들었다.

  트리키는 단연코 낙태를 반대한다. 왈, 태어나지 않은 태아의 생명도 포함해서 인간 생명의 신성함을 “개인적으로” 믿는다고 공표한다. 이거 참. 3일 전에 읽은 울리츠카야의 <쿠코츠키의 경우>를 보면, 소비에트 연방에선 쿠코츠키 박사가 1940년대에 낙태의 자유를 허용하라고, 그렇지 않으면 많은 여성이 불법 낙태로 생명을 잃을 수밖에 없고 심각한 사회적 손실도 초래할 것임을 주장하기 시작해 50년대 중반이든가, 법으로 허용했건만, 소위 “자유진영”의 지도자인 1971년의 미국 대통령이 거 참 안타깝기 한량이 없네. 새삼스레 책을 다시 뒤져보며 정확하게 어떻게 썼는지 확인해볼 정성은 없지만, 트리키 딕슨은 애당초 낙태할 일을 하지 말라는 뉘앙스로 말하기도 해서 사람의 복장을 뒤집어 놓기도 한다.

  이때 매스컴은 국민들의 관심을, 1968년에 있었던 베트남 미아이 민간인 학살 당시 윌리엄 캘리 중위가 스물두 명의 민간인을 총으로 쏴 죽일 때, 피 학살자 가운데 임신중인 여성이 있었다면, 배 속의 태아 인권은 어떻게 하느냐, 하는 문제와 연결시킨다. 국민이나 트리키의 인식 속에선 “민간인 학살” 개념은 다음으로 하고 임신한 여성의 학살도 아니고, 오직 태아 학살에만 초점을 맞추게 된 꼴. 어떻게 대통령이 피 학살자 가운데 임신한 여성이 들어 있지 않았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확신은 안 하지. 그렇게 보고받지 않았을 뿐. 캘리 중위가 여성이 임신을 한 상태인지 아닌지 알 수 없었다. 배가 부른 여성이 있었다고 해도 전투의 와중에 임신을 해서 배가 나왔는지, 잘 먹어 살이 쪄서 배가 나왔는지 어떻게 아느냐, 뭐 이런 식으로 이야기는 자꾸 산으로 가버린다.

  이러다가 결정적으로 한 방 꽝. 1972년에 대통령 선거가 있을 것이고, 이제 다음 대선의 대세는 민주당으로 기울고 있어서, 그냥 내버려두면 대선필패가 분명하니, 공화당 득표를 늘이기 위해, 지금 트리키가 태아에게 투표권을 주려고 하는 것이다, 라는 주장까지 들먹인다. 그리고 그게 사실이긴 한데, 공화당 득표율 때문이 아니라, 흑인의 힘, 여성의 힘을 주장하는 민주당 입장에서도 사회적 약자가 틀림없는 태아의 힘은 어떻게 하느냐, 세포에 불과해도 생명으로 권리를 가지고 있지 않느냐, 하며 비약에 비약을 거듭한다. 1971년부터 미국 헌법은 기존의 21세 이상에게 주어졌던 투표권을 18세로 하향하는 바람에 민주당 지지층이 늘어나 이를 만회하기 위한 공화당의 전략이라는 빈틈없는 슈르드Shrewd 기자의 분석이 그랬다. 하여튼 딕슨은 태아에게 투표권을 주기 위한 연구를 진행할 예정이다. 이 프로젝트는, 태아들을 위해 성취한 모든 일이 향후 언젠가 종족이나 신념이나 피부색과 상관없이 모두가 태아가 되는 세상에 기여하기만 바란다면서, 자기한테 꿈이 있다면 바로 그것이라고 주장한다. 정치인들이 다 그렇지. 아마 자기도 자기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를 걸?


  그러다가 갑자기 장면은 1970년의 켄트 주립대학 학살로 전환한다.

  베트남 참전 상이군인들이 의사당 앞에서 훈장을 반납하며 반전시위를 벌이기 시작한 것. 그러니까 켄트 주립대학 대신 참전 상이군인과 보이스카우트, 이글스카우트들이 중심이 되어 의사당 앞에서 시위하는 걸로 조금 바꾸었다. 대통령은 열을 잔뜩 받았는데, 그건 미국의 보이스카우트가 TV 카메라를 향해 트릭 E. 딕슨이 섹스를 좋아한다고 고함을 쳤기 때문이다. 아내가 TV를 보다가 이 말을 믿게 되면 어쩌지? 내 자식들이 듣는다면? 유권자들은! 여태 내가 주장한 태아의 권리장전은 “태아가 태어나는 절차에 찬성한다는 프리마 파키에가 아니야!” 즉 자신은 한 번도 섹스를 찬양하거나 좋아한다는 어떠한 시그널을 보낸 적이 없는데도 이런 일이 벌어진 거다. 그래서 억울해 미치는 트리키. 시위자들의 피켓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호색가는 캘리포니아로 돌아가라 / 거기가 어울린다 / 음경에 권력을? 절대 안 돼! / 억압 – 사랑하거나 그대로 두거나!”

  이걸 어떻게 한다? 대학 4년 동안 미식축구부의 후보선수 생활을 했던 대통령은 실제로 경기에 뛰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사십 여 년 전에 입었던 유니폼이 여전히 흠 하나 없이 깨끗한데, 지하 벙커에 미식축구 유니폼에 헬멧, 국부보호대까지 착용하고 그의 조언자들을 불러 심야 토론을 벌인다. 이 철없는 데모군중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정치 코치, 마음 코치, 법률 코치, 군사 코치 등으로 구성된 브레인 캐비닛은 결국 실탄 조준 발사를 결정한다. 독자는 이미 알았다. 켄트 주립대학에서 총 맞아 네 명 죽고, 아홉 명 다쳤으니까, 여기서도 그래야 할 걸? 맞다, 그렇게 됐다.

  그리하여 딕슨은 대 국민 연설을 하건만 겨우 보이스카우트 네 명? 그래서 뭐 어쨌는데. 사회질서 붕괴에 따른 크나큰 손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잖여? 그잖여?

  지금 이 단락을 길게 쓰지 않았다. 이 장면은 필립 로스가 <미국의 목가>를 비롯해 앞으로 몇 번 더 작품에서 상세하게 묘사를 할 사건이기도 하고, 점점 뒷부분으로 가고 있어서 책 읽어볼 분에게 스포일러 역할을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내게는 제일 흥미로웠던 부분이기는 하지만.


  그리고 딕슨 암살. 마틴 루서 킹 목사나 존 F. 카리스마 전 대통령처럼 정장을 말끔하게 차려 입은 깔끔한 모습이 아니라, 홀딱 벗은 상태에서 물이 가득 찬 주머니에 몸을 잔뜩 오그린 태아 자세로. 이렇게 다시 처음에 이야기했던 태아의 권리, 태아 생명의 존엄성으로 트리키 자신이 회귀하는 것.

  여기에서 나는 로스에게 한 번 더 실망하고 만다. 엄연히 아직까지 살아있는 사람이다. 살아있는 대통령을 희화화 한 거 가지고 시비하는 게 아니라, “살아있는 개인”을 아무리 작품 속이라 해도 이리 가볍게 살해할 수 있을까? 그럴 수 있다. 그런 거 다 따지면 어떻게 작품을 쓰라고. 맞다. 맞는 말이긴 하지만 나는 마땅하지 않았다. 이 전에도 나는 이미 과한 폭소를 터뜨렸다. 풍자도 풍자 나름. 이 책을 관통하는 로스 표 풍자와 웃음은 처음부터 폭력적이다. 나는 이 작품보다는 덜 경박하게 웃고 싶다. 같은 진보 작가이지만 필립 로스만큼은 왼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미국인, 커트 보니것 정도의 것을 기대했었던 것 같다. 로스의 희극적 작품 전부 다 그렇다는 게 아니라 딱 <우리 패거리>만 가지고 말하자면, 보니것에 비해 너무 통속적이다.

  통렬한 정치 풍자극?

  내가 읽기엔 폭력적이고 경박한 소품이다. 그러니 1971년 작품을 이제야 번역한 거겠지. 여담이지만 로스의 바람과 달리 다음 선거에도 딕슨이 당첨됐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트러스트
에르난 디아스 지음, 강동혁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부 해럴드 배너가 소설 ‘채권‘은 왜 썼을까? 2.5류 소설가가 한 탕 해보려고?
혹시 투기의 귀재 앤드루 베벨이 자신의 신화를 지어내려고? 이렇게 생각해야 지루하게 읽은 게 위안이 되리라.

댓글(2)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coolcat329 2024-08-10 12: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그래도 별 네 개네요? 뒤로 가면 좀 재미가 있는거죠?

Falstaff 2024-08-10 12:47   좋아요 0 | URL
재미라기보다 작가의 속셈을 조금 알아차린 기분이 든다고 할까 뭐 그렇습니다. ^^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 (리커버)
콜슨 화이트헤드 지음, 황근하 옮김 / 은행나무 / 2022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2021년말 인가, 2022년 초에 콜슨 화이트헤드가 쓴 <니클의 아이들>을 인상 깊게 읽었다. 그저 퓰리처 상을 받은 소설로만 알았다. 책의 띠지에 “2020 퓰리처상 수상작”이라고 딱 박아 놓았으니까.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지나갔다가, 엉뚱하게 며칠 전 부스 타스킹을 검색하면서, 미국 문학사상 퓰리처 상을 두 번 이상 받은 소설가가 딱 네 명뿐이고, 범위를 21세기로 좁히면 콜슨 화이트헤드 밖에 없는데, 2020년 <니클의 아이들>과 2017년에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 가 수상작이었다는 걸 알았다. 당연히 즉각 어느 도서관에 있나 검색해, 마침 나 다니는 동네 도서관에도 한 권 있어 다음날 곧바로 대출해서 읽었다.

  큰 줄거리는 그리 특별하지 않았다. 우리나라에 미국 아프리카계 노예에 관한 첫번째 담론이 아마 1970년대 중후반에 TV에서 방영한 드라마 <뿌리>였을 거다. 아닐 수 있지만 내 기억엔 그렇다. 고등학교 다닐 때 흑백 TV로 본 기억이 난다. 주인공 킨타쿤테. 아프리카(잠비아)에서 노예로 잡혀 배를 타고 아메리카에 도착해 경매를 통해 팔리는 장면. 탈출했다가 노예 사냥꾼에게 잡혀 음경과 발 가운데 어디를 자를까, 네가 결정해라, 해서 발등이 잘리는 장면. 킨타쿤테의 딸이 다른 농장에 팔려가 백인 농장주에게 겁탈을 당해 물라토를 낳고, 후손 가운데 닭싸움꾼으로 이름을 날리는 치킨 조지라는 등장인물도 있고, 되는 대로 낳은 아이들을 모아놓고 킨타쿤테부터 아메리카에 도착한 조부모들의 이야기를 전해주는 전통을 내려가기도 하고, 당시에 사회적으로 센세이셔널 했던 기억이 난다. 이후 아메리카의 흑인 노예 농장을 다룬 영화가 많이 수입된 시기도 있었다. 주로 작품성은 별개로 하고, 농장주에 의한 강간과, 여주인의 요구에 응했다가 발각나는 바람에 처형당하는 건장한 체격의 남자 노예 같은 B급 영화도 있었다. 지금은 알렉시 헤일리의 장편소설 <뿌리>를 출판사 열린책들에서 세계문학전집 시리즈 42번, 43번 두 권으로 읽을 수 있다.


  노예의 탈출 이야기를 다시 읽은 건 토니 모리슨의 <빌러비드Beloved>였으니 <뿌리>를 드라마로 보고 참 오랜 세월이 흐른 다음이다. 이 <빌러비드>는 여자 노예가 농장을 탈출해 북으로, 북으로 도망을 하다가, 이 책 읽고 벌써 10년이 흘러 정확하게 기억나는 건 아니지만, 소수의 선량한 백인들의 도움을 받아 탈출에 성공한 흑인 노예의 이야기였다. 화이트헤드의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가 이 선량한 도움을 주는 백인들이 개입해 노예해방을 승인한 주까지 탈주노예들을 이동시키는 일종의 시스템을 다룬 작품이다. 화이트헤드는 어려서 나이든 흑인들로부터 노예의 탈주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 그러면서 19세기 당시에 노예들을 특정지역까지 안전하게 수송하는 지하철도,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가 있어서, 열차가 서는 비밀 역에까지 가면 탈출에 성공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어린 시절엔 이 이야기를 철석같이 믿다가 철이 들면서 탈출노예들에게 도움을 주는 소수의 백인을 포함한 사람들을 비유했던 걸 알고 화딱지가 나서, 정말로 지하철도가 있다고 가정을 하고 이 책을 쓰기로 작정했단다. 당시에 미국 전역에서 탈출 노예들을 일정기간 안전하게 데리고 있던 “역장”들과 이들을 다음 목적지까지 이동시키는 “기관사”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정말로 있었다고 한다. <빌러비드>에도 그런 의미에서 역장과 기관사가 등장했던 거다.

  그런데 화이트헤드를 모리슨과 차별할 수 있는 것은, 모리슨이 생명을 걸고 탈출에 성공한 노예, 해방전쟁을 통해 자유를 얻은 아프리카인들을 그린 반면에, 나도 이번 독서를 통해 처음 알았는데, 화이트헤드의 책이 내게 완전히 달랐던 점은, 농장을 탈출하고 다른 주state로 이주하는 데까지는 성공했지만, 그래서 이후엔 다른 자유 흑인들과 같은 신분으로 나머지 고단한 생을 살았겠거니 했으나, 전혀 그렇지 못하고, 여전히 한 개인의 자산으로 등록되어 있어서 사유재산을 중요시하는 뼈속까지 자본주의 국가인 아메리카는 비록 노예제 철폐를 승인한 주나 도시로 도망을 했다 해도 탈출 노예를 잡아둔 상태에서 농장주가 소유권을 주장하면 거의 이의 없이 소유권을 인정했다는 점이다. 정말 목숨을 걸고 탈출에 성공했다고 믿는 아프리카인들은 그러나 도착한 자유도시에서 선량하다고 믿은 백인에게 흑인 인구의 과잉에 대한 염려 때문에 은근히 단종수술 압력을 받기도 하고, 도시의 분위기가 점점 흑인 탄압 쪽으로 흘러 더 이상 도시에서 버틸 수 없는 처지에 몰리기도 한다. 하지만 가장 두려운 존재는 상상하기 힘든 잔혹한 폭력성을 띠는 노예사냥꾼들의 추적이었다. 이들은 탈출 노예를 잡아 별 탈 없이, 여기서 말하는 ‘탈이 없다’라 하는 건 그저 목숨이 붙어 있는 상태이거나, 주인이 허락했다면 몸통이 붙어 있지 않은 누구인지 알 수 있는 형태를 지니기만 하면 되는 머리통 상태였는데, 하여간 탈 없이 “집으로” 귀가시키는 걸 목적으로 했다.

  당연히 이 책에서도 다시 잡혀온 탈출 노예의 처형장면이 나온다. 빅 앤서니라는 이름의 건장한 노예가 랜들 농장을 탈출해 몇 주 동안 늪지대에 숨어 있다가 잡혀왔다. 이날 목수들은 밤을 새워 특수한 형태의 차꼬를 제작하느라 잠을 한 숨도 자지 못했다. 지면 관계상 차꼬의 상세 모습은 생략. 아침에 농장 저택 앞마당의 빽빽한 잔디밭 위에 차꼬를 설치하고 첫째 날에 빅 앤서니를 단단히 잡아맨 채 그대로 하루를 보낸다. 둘째 날 애틀랜타와 서배너에서 지체 높은 신사 숙녀 여러분이 영국에서 온 외신 기자와 함께 도착했다. 잔디밭에 성대하게 식탁을 차려놓고 거북이 수프와 특급 양고기를 최고급 와인을 곁들여 천천히 음미하는 동안 노예 관리인은 아홉 가닥으로 된 가죽 채찍으로 쉴 새 없이 빅 앤서니의 등을 채찍질했다. 셋째 날엔 모든 노예들, 대 농장 북쪽의 90명, 남쪽 85명을 다 잔디밭에 집합시키고, 신사 숙녀 여러분과 영국의 외신 기자가 우아한 차림으로 보고 있는 가운데 빅 앤서니에게 기름을 바르더니 불에 굽기 시작한다. 대기에 기름과 피부 타는 냄새가 번지기 시작하지만 빅 앤서니는 얼굴만 심각하게 찌푸릴 뿐, 비명을 지르지 않는다. 첫날 노예의 음경을 잘라 입에 쑤셔 넣고 입술을 꿰매 버려 소리를 내지 못했던 거였다. 빅 앤서니는 차꼬와 함께 연기를 피워 올리며 까맣게 타들어갔다. 아무도 구토하지 않았고, 얼굴을 찡그리지도 않았으며, 울지도 못했다. 눈물 한 방울도.

  대농장의 주인 테런스 랜들은 노예 한 명 빅 앤서니의 노동력보다 나머지 175 ‘마리’의 노예들에게 탈출의 무모함을 알리고 경각심을 높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던 거다.


  서아프리카의 밀림지역에서 건강하고 예쁘게 생긴 아자리라는 소녀가 다호메이 족에게 붙잡히고 만다. 유리구슬과 럼주 몇 병에 여러 차례 팔리면서 베냉의 우이다 항에 도착한 아자리는 여기서 노예운반선을 타고 아메리카로 길고 긴 항해를 한다. 아메리카에 도착해 다시 몇 번의 경매를 거쳐 조지아의 노예시장에 도착한 아자리는 조지아 주의 렌들가家가 소유한 대농장에 귀속되어 본격적인 노예생활로 접어든다. 세 번 결혼을 했다. 첫 남편은 옥수수 위스키에 탐닉해 취하기만 하면 아자리에게 주먹질을 하다가 조금 후에 플로리다 사탕수수 농장으로 팔려갔다. 아자리는 아쉬운 마음이 하나도 들지 않았다. 두번째 남편은 남쪽 농장에서 온 다정한 청년이었지만 콜레라에 걸려 죽고 말았다. 마지막 남편은 꿀을 훔쳐 귀가 잘렸다. 아이 다섯을 출산한 아자리는 당연히 자식 복도 없어서, 두 아이는 고열로 죽었고, 사내 아이는 날붙이를 만지다가 베는 바람에 파상풍에 걸려 먼저 갔다. 막내는 작업반장이 일하는 속도가 늦다고 두드려 패 죽였다. 결국 열 살을 넘긴 유일한 아이는 메이블 하나만 남았는데, 메이블로 말하자면, 랜들 대농장 역사상 유일하게 탈출에 성공한 전설적인 노예이며, 작품의 주인공인 코라의 엄마다. 2미터가 넘는 우람한 체격의 잔혹한 노예사냥꾼 리지웨이의 말에 따르면 지독한 메이블은 북쪽으로 끝까지 올라가 캐나다에 도착하는 바람에 아무리 리지웨이가 끈질기더라도 잡아올 수 없었고, 그의 경력에 유일한 오점을 남기고 말았다.

  그 엄마에 그 딸.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는 코라의 탈출기다. 코라가 처음부터 탈출을 하고자 하지 않았다. 오히려 도무지 가능성이 없는 탈출을 시도해 몇 주 동안 조지아 주 습지에 숨어 있다가 독사, 악어, 재규어, 독충에 당하거나,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죽거나, 이 정도면 다행인데, 노예 사냥꾼에게 잡혀와 형편없이 채찍질을 당하고, 온갖 고문도 다 겪으면서 서서히 죽어가는 행위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하여 버지니아의 마음씨 좋은 늙은 과부가 운영하는 작은 농장에서 즐겁게 노예생활을 하다가, 과부가 죽는 바람에 조지아까지 팔려온,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시저’가 지하철도 이야기를 하자 깔끔하게 거절한다. 코라가 왜 시저를 믿어야 하나? 끄나풀인지 어떻게 알고. 정말 손잡고 튀었다가 시저의 한 마디에 잡히고 말면, 한 방에 코라만 훅 가는 거니까. 그러나 빅 앤서니의 처형 며칠 후, 시저는 다시 한 번 코라에게 지하 열차를 타러 가자고 권하고, 이제 드디어 코라는 결심을 하고 만다. 이렇게 탈주를 시작한 코라, 이 아이는 불과 며칠 후 대단히 특별한 범죄를 저지르고 마는데, 밤에 멧돼지 사냥을 나온 백인을 만나 진짜로 죽기 살기로 결투를 벌이다가 열네 살 소년의 머리통을 돌로 쳐 죽여버린다. 백인 소년을 잔혹하게 때려 죽인 흑인 탈출 노예. 이제 결코 되돌릴 수 없는 도주길이 될 수밖에.


.


댓글(5)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Falstaff 2024-08-09 04: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음 주 삽질:
월요일. 필립 로스, <우리 패거리>
화요일. 에우리피데스, 《에우리피데스 비극 전집 2》
목요일. 도메니코 스타르노네, <트릭>
금요일. 브렌다 로사노, <마녀들>

hnine 2024-08-09 10: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 저도 읽은 책이라 반가웠어요. 그새 표지도 바뀌었군요.
저도 이 책 읽으며 어릴 때 TV에서도 방영되었고 아버지께서 1, 2권 두 권으로 나온 책도 가지고 있으셨던 알렉스 헤일리의 <뿌리> 를 떠올렸답니다. (그런데 뿌리 주인공 이름이 쿤타킨테 아니었던가요? )

Falstaff 2024-08-09 16:49   좋아요 0 | URL
ㅎㅎㅎ 쿤타 킨테가 맞습니다.
아참, 저도 도서관에서 빌려 구간으로 읽었는데요, 독후감 올리면서 제목이 같아 아무 생각 없이 업로드 했나 봅니다. 빌려 읽은 티를 낸 건지 참, 저도 어이가 없네요. ^^;;

stella.K 2024-08-09 11: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솔직히 이름이 헷갈리긴 하죠. 과연 쿤타킨테인가 킨타쿤테인가? ㅋㅋㅋ
저도 어렸을 때 뿌리 보고 음악은 웅장한데 내용은 충격적이었죠. 나중에 세 권짜리로 나온 책을 샀는데 읽는덴 실패했습니다. 나중에 2천년대 초에 다시 새로 드라마로 만들어졌는데 처음 보는 거라면 모르겠는데 다시 보려니까 못 보겠더군요. 잔인한 장면도 그렇고 형만한 아우없는 것 같고. 이책 읽어보고 싶긴하네요.

Falstaff 2024-08-09 16:50   좋아요 1 | URL
영상으로는 당연히 <뿌리>도 좋았지만... 이후에 우리나라에서 가위질 겁나게 하고 개봉한 <만딩고>가 으뜸입죠. ㅋㅋㅋㅋ 흑인을 낳은 백인 농장주 부인. 으아...
 

이제 104페이지밖에 안 왔는데, 밋치겠네. 일부러 재미없게 쓴 건가? 나중에 크게 한 방 때리려고?
이런 마음까지 생김. 조금만 더 달려보자. 우짜 코스모폴리스보다 더 재미가 없나 그래...


댓글(7)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잠자냥 2024-08-08 13:3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과연 한방이 있을까요 없을까요 ㅋㅋㅋㅋㅋ

Falstaff 2024-08-08 14:41   좋아요 4 | URL
진도도 무척 안 나갑니다. 재미 없으니까 당연한 건지 모르겠는데요, 도서관에서 보통 250쪽 정도 읽고 퇴근하는데, 오늘은 146쪽, 1부만 달랑 끝냈으면서도 아이고 머리 어깨 무릎이 다 저려서...
증권, 채권 같은 금융 시장 이야기. 발자크의 <사기꾼>하고 에밀 졸라의 <돈>과 <쟁탈전> 읽은 사람한테는 여간해서 재미나단 소리 못 듣지요. 게다가 원래 문장 자체가 덜 재미있는 거 같더라고요. 에휴... 왜 골랐을꼬...

Falstaff 2024-08-09 11:26   좋아요 1 | URL
윽, 스맛폰으로 아래 잠자냥님 댓글 쓰기 눌렀더니 댓글 자체가 지워졌네요. ㅜㅜ
그래서 여기다 답글.
그때 알라딘 보관함에서는 얼른 지웠거든요.근데 도서관 홈페이지 관심도서에서는 걍 냅둔 거랍니다. ㅜㅜ

댓글 지워져서 어쩌지요? 벌금 낼 수도 없고, 책 한 권 사드릴까요? ㅜㅜ

잠자냥 2024-08-09 12:10   좋아요 1 | URL
ㅋㅋㅋ 아이고 무슨 책 한 권을 사주십니까?! 열 권은 사주셔야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농담입니다. ㅋㅋㅋ 지워질 수도 있죠. 폴스타프는 벌로 리뷰를 더 쓰도록 하라!! ㅋㅋㅋㅋㅋㅋㅋㅋㅋ

coolcat329 2024-08-08 17:0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책 잠자냥님도 지루하다고...정말 재미없고 지루한가보네요.
근데 도서관에서 250쪽...놀랐습니다.

Falstaff 2024-08-08 18:59   좋아요 0 | URL
이후는 모르겠고요, 하여튼 1부는 곤혹스러웠습니다. 분량을 뚝 떼서 절반, 2백 페이지 정도로 만들었으면 어땠을까 싶더라니까요. 좀 더 읽어보겠습니다. ㅎㅎㅎ

Falstaff 2024-08-08 19: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흠. 맥주 한 잔 하고 생각해보니..... <코스모폴리스>는 또 뭔 죄가 있어서 들먹거렸을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