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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 (리커버)
콜슨 화이트헤드 지음, 황근하 옮김 / 은행나무 / 2022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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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말 인가, 2022년 초에 콜슨 화이트헤드가 쓴 <니클의 아이들>을 인상 깊게 읽었다. 그저 퓰리처 상을 받은 소설로만 알았다. 책의 띠지에 “2020 퓰리처상 수상작”이라고 딱 박아 놓았으니까.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지나갔다가, 엉뚱하게 며칠 전 부스 타스킹을 검색하면서, 미국 문학사상 퓰리처 상을 두 번 이상 받은 소설가가 딱 네 명뿐이고, 범위를 21세기로 좁히면 콜슨 화이트헤드 밖에 없는데, 2020년 <니클의 아이들>과 2017년에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 가 수상작이었다는 걸 알았다. 당연히 즉각 어느 도서관에 있나 검색해, 마침 나 다니는 동네 도서관에도 한 권 있어 다음날 곧바로 대출해서 읽었다.
큰 줄거리는 그리 특별하지 않았다. 우리나라에 미국 아프리카계 노예에 관한 첫번째 담론이 아마 1970년대 중후반에 TV에서 방영한 드라마 <뿌리>였을 거다. 아닐 수 있지만 내 기억엔 그렇다. 고등학교 다닐 때 흑백 TV로 본 기억이 난다. 주인공 킨타쿤테. 아프리카(잠비아)에서 노예로 잡혀 배를 타고 아메리카에 도착해 경매를 통해 팔리는 장면. 탈출했다가 노예 사냥꾼에게 잡혀 음경과 발 가운데 어디를 자를까, 네가 결정해라, 해서 발등이 잘리는 장면. 킨타쿤테의 딸이 다른 농장에 팔려가 백인 농장주에게 겁탈을 당해 물라토를 낳고, 후손 가운데 닭싸움꾼으로 이름을 날리는 치킨 조지라는 등장인물도 있고, 되는 대로 낳은 아이들을 모아놓고 킨타쿤테부터 아메리카에 도착한 조부모들의 이야기를 전해주는 전통을 내려가기도 하고, 당시에 사회적으로 센세이셔널 했던 기억이 난다. 이후 아메리카의 흑인 노예 농장을 다룬 영화가 많이 수입된 시기도 있었다. 주로 작품성은 별개로 하고, 농장주에 의한 강간과, 여주인의 요구에 응했다가 발각나는 바람에 처형당하는 건장한 체격의 남자 노예 같은 B급 영화도 있었다. 지금은 알렉시 헤일리의 장편소설 <뿌리>를 출판사 열린책들에서 세계문학전집 시리즈 42번, 43번 두 권으로 읽을 수 있다.
노예의 탈출 이야기를 다시 읽은 건 토니 모리슨의 <빌러비드Beloved>였으니 <뿌리>를 드라마로 보고 참 오랜 세월이 흐른 다음이다. 이 <빌러비드>는 여자 노예가 농장을 탈출해 북으로, 북으로 도망을 하다가, 이 책 읽고 벌써 10년이 흘러 정확하게 기억나는 건 아니지만, 소수의 선량한 백인들의 도움을 받아 탈출에 성공한 흑인 노예의 이야기였다. 화이트헤드의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가 이 선량한 도움을 주는 백인들이 개입해 노예해방을 승인한 주까지 탈주노예들을 이동시키는 일종의 시스템을 다룬 작품이다. 화이트헤드는 어려서 나이든 흑인들로부터 노예의 탈주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 그러면서 19세기 당시에 노예들을 특정지역까지 안전하게 수송하는 지하철도,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가 있어서, 열차가 서는 비밀 역에까지 가면 탈출에 성공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어린 시절엔 이 이야기를 철석같이 믿다가 철이 들면서 탈출노예들에게 도움을 주는 소수의 백인을 포함한 사람들을 비유했던 걸 알고 화딱지가 나서, 정말로 지하철도가 있다고 가정을 하고 이 책을 쓰기로 작정했단다. 당시에 미국 전역에서 탈출 노예들을 일정기간 안전하게 데리고 있던 “역장”들과 이들을 다음 목적지까지 이동시키는 “기관사”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정말로 있었다고 한다. <빌러비드>에도 그런 의미에서 역장과 기관사가 등장했던 거다.
그런데 화이트헤드를 모리슨과 차별할 수 있는 것은, 모리슨이 생명을 걸고 탈출에 성공한 노예, 해방전쟁을 통해 자유를 얻은 아프리카인들을 그린 반면에, 나도 이번 독서를 통해 처음 알았는데, 화이트헤드의 책이 내게 완전히 달랐던 점은, 농장을 탈출하고 다른 주state로 이주하는 데까지는 성공했지만, 그래서 이후엔 다른 자유 흑인들과 같은 신분으로 나머지 고단한 생을 살았겠거니 했으나, 전혀 그렇지 못하고, 여전히 한 개인의 자산으로 등록되어 있어서 사유재산을 중요시하는 뼈속까지 자본주의 국가인 아메리카는 비록 노예제 철폐를 승인한 주나 도시로 도망을 했다 해도 탈출 노예를 잡아둔 상태에서 농장주가 소유권을 주장하면 거의 이의 없이 소유권을 인정했다는 점이다. 정말 목숨을 걸고 탈출에 성공했다고 믿는 아프리카인들은 그러나 도착한 자유도시에서 선량하다고 믿은 백인에게 흑인 인구의 과잉에 대한 염려 때문에 은근히 단종수술 압력을 받기도 하고, 도시의 분위기가 점점 흑인 탄압 쪽으로 흘러 더 이상 도시에서 버틸 수 없는 처지에 몰리기도 한다. 하지만 가장 두려운 존재는 상상하기 힘든 잔혹한 폭력성을 띠는 노예사냥꾼들의 추적이었다. 이들은 탈출 노예를 잡아 별 탈 없이, 여기서 말하는 ‘탈이 없다’라 하는 건 그저 목숨이 붙어 있는 상태이거나, 주인이 허락했다면 몸통이 붙어 있지 않은 누구인지 알 수 있는 형태를 지니기만 하면 되는 머리통 상태였는데, 하여간 탈 없이 “집으로” 귀가시키는 걸 목적으로 했다.
당연히 이 책에서도 다시 잡혀온 탈출 노예의 처형장면이 나온다. 빅 앤서니라는 이름의 건장한 노예가 랜들 농장을 탈출해 몇 주 동안 늪지대에 숨어 있다가 잡혀왔다. 이날 목수들은 밤을 새워 특수한 형태의 차꼬를 제작하느라 잠을 한 숨도 자지 못했다. 지면 관계상 차꼬의 상세 모습은 생략. 아침에 농장 저택 앞마당의 빽빽한 잔디밭 위에 차꼬를 설치하고 첫째 날에 빅 앤서니를 단단히 잡아맨 채 그대로 하루를 보낸다. 둘째 날 애틀랜타와 서배너에서 지체 높은 신사 숙녀 여러분이 영국에서 온 외신 기자와 함께 도착했다. 잔디밭에 성대하게 식탁을 차려놓고 거북이 수프와 특급 양고기를 최고급 와인을 곁들여 천천히 음미하는 동안 노예 관리인은 아홉 가닥으로 된 가죽 채찍으로 쉴 새 없이 빅 앤서니의 등을 채찍질했다. 셋째 날엔 모든 노예들, 대 농장 북쪽의 90명, 남쪽 85명을 다 잔디밭에 집합시키고, 신사 숙녀 여러분과 영국의 외신 기자가 우아한 차림으로 보고 있는 가운데 빅 앤서니에게 기름을 바르더니 불에 굽기 시작한다. 대기에 기름과 피부 타는 냄새가 번지기 시작하지만 빅 앤서니는 얼굴만 심각하게 찌푸릴 뿐, 비명을 지르지 않는다. 첫날 노예의 음경을 잘라 입에 쑤셔 넣고 입술을 꿰매 버려 소리를 내지 못했던 거였다. 빅 앤서니는 차꼬와 함께 연기를 피워 올리며 까맣게 타들어갔다. 아무도 구토하지 않았고, 얼굴을 찡그리지도 않았으며, 울지도 못했다. 눈물 한 방울도.
대농장의 주인 테런스 랜들은 노예 한 명 빅 앤서니의 노동력보다 나머지 175 ‘마리’의 노예들에게 탈출의 무모함을 알리고 경각심을 높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던 거다.
서아프리카의 밀림지역에서 건강하고 예쁘게 생긴 아자리라는 소녀가 다호메이 족에게 붙잡히고 만다. 유리구슬과 럼주 몇 병에 여러 차례 팔리면서 베냉의 우이다 항에 도착한 아자리는 여기서 노예운반선을 타고 아메리카로 길고 긴 항해를 한다. 아메리카에 도착해 다시 몇 번의 경매를 거쳐 조지아의 노예시장에 도착한 아자리는 조지아 주의 렌들가家가 소유한 대농장에 귀속되어 본격적인 노예생활로 접어든다. 세 번 결혼을 했다. 첫 남편은 옥수수 위스키에 탐닉해 취하기만 하면 아자리에게 주먹질을 하다가 조금 후에 플로리다 사탕수수 농장으로 팔려갔다. 아자리는 아쉬운 마음이 하나도 들지 않았다. 두번째 남편은 남쪽 농장에서 온 다정한 청년이었지만 콜레라에 걸려 죽고 말았다. 마지막 남편은 꿀을 훔쳐 귀가 잘렸다. 아이 다섯을 출산한 아자리는 당연히 자식 복도 없어서, 두 아이는 고열로 죽었고, 사내 아이는 날붙이를 만지다가 베는 바람에 파상풍에 걸려 먼저 갔다. 막내는 작업반장이 일하는 속도가 늦다고 두드려 패 죽였다. 결국 열 살을 넘긴 유일한 아이는 메이블 하나만 남았는데, 메이블로 말하자면, 랜들 대농장 역사상 유일하게 탈출에 성공한 전설적인 노예이며, 작품의 주인공인 코라의 엄마다. 2미터가 넘는 우람한 체격의 잔혹한 노예사냥꾼 리지웨이의 말에 따르면 지독한 메이블은 북쪽으로 끝까지 올라가 캐나다에 도착하는 바람에 아무리 리지웨이가 끈질기더라도 잡아올 수 없었고, 그의 경력에 유일한 오점을 남기고 말았다.
그 엄마에 그 딸.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는 코라의 탈출기다. 코라가 처음부터 탈출을 하고자 하지 않았다. 오히려 도무지 가능성이 없는 탈출을 시도해 몇 주 동안 조지아 주 습지에 숨어 있다가 독사, 악어, 재규어, 독충에 당하거나,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죽거나, 이 정도면 다행인데, 노예 사냥꾼에게 잡혀와 형편없이 채찍질을 당하고, 온갖 고문도 다 겪으면서 서서히 죽어가는 행위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하여 버지니아의 마음씨 좋은 늙은 과부가 운영하는 작은 농장에서 즐겁게 노예생활을 하다가, 과부가 죽는 바람에 조지아까지 팔려온,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시저’가 지하철도 이야기를 하자 깔끔하게 거절한다. 코라가 왜 시저를 믿어야 하나? 끄나풀인지 어떻게 알고. 정말 손잡고 튀었다가 시저의 한 마디에 잡히고 말면, 한 방에 코라만 훅 가는 거니까. 그러나 빅 앤서니의 처형 며칠 후, 시저는 다시 한 번 코라에게 지하 열차를 타러 가자고 권하고, 이제 드디어 코라는 결심을 하고 만다. 이렇게 탈주를 시작한 코라, 이 아이는 불과 며칠 후 대단히 특별한 범죄를 저지르고 마는데, 밤에 멧돼지 사냥을 나온 백인을 만나 진짜로 죽기 살기로 결투를 벌이다가 열네 살 소년의 머리통을 돌로 쳐 죽여버린다. 백인 소년을 잔혹하게 때려 죽인 흑인 탈출 노예. 이제 결코 되돌릴 수 없는 도주길이 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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