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빔, 잡탕, 혹은 샐러드 연극과인간 중국현대희곡총서 22
장휘 지음, 김우석.김유화 옮김 / 연극과인간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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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 ‘연극과인간’의 중국현대희곡총서 시리즈 22번째 작품. 이 작품을 검색해보면 82년생 극작가 장휘(張慧)의 데뷔작이라 하기도 하는데 인터넷 정보가 늘 그렇듯 믿기는 힘들다. 장휘는 중국 연극판의 인재 풀pool이기도 한 중앙희극학원 연출학과를 졸업하고 공부를 계속해 박사학위를 취득하면서도 2007년 이후 지금까지 스무 편에 가까운 작품을 무대에 올렸단다. 우리나라에도 “희곡 우체통 낭독회”나 “서울 연극제 희곡집” 또는 “봄 작가, 겨울 무대” 같은 청년 극작가나 연출가의 창작물 지원 프로젝트가 있는 것처럼 중국에서도 비슷한 기획이 있어서 우리보다 훨씬 폭넓은 지원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이 가운데 한 단체가 굴로우서(鼓樓西) 극장이며, 이 극장의 프로젝트에 선정되어 2021년 9월에 초연해 대성공을 거둔다. 이어 제8회 우쩐 연극제 특별 초청작으로 참가했고, 역자는 이를 “파격적”이라고 했으니 상당한 규모의 축제인 듯하다. 이어서 “신경보新京報” 즉 “시나 뉴스”가 선정한 2021년 중국 10대 연극에도 이름을 올렸으니 굉장한 성공이라고 해도 좋겠다.

  시나 뉴스의 “2021년 중국 10대 연극” 심사위원 가운데 한 명인 듯한 중앙연극아카데미 연극문학과 학과장 펑타오는 “과거, 현재, 미래를 가리키는 세 개의 단절된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으며 “젊은 연극인들의 (전염병이 창궐하는) 현실에 대한 성찰이다.”라고 말한다. 작품의 제목에 세 가지 음식, 보통의 시민들이 흔히 먹을 수 있는 일상적인 먹거리인 비빔, 잡탕, 그리고 샐러드가 들어 있으니 Covid를 겪는 일반인들의 닫힌 상태를 세 가지 양식으로 그렸다는 것에는 동의하는데, 그렇다고 과거, 현재, 미래, 이렇게 세 부분으로 똑 잘라서 설명하려고 한 것에 관해서는, 완전한 반대는 아닐지언정 학과장님 하신 말씀이 맞다고 선뜻 동의하기는 쉽지 않다. 변죽만 울리지 말고 스토리를 이야기해보자.


  첫번째 장면의 제목은 쉬슈관(滸墅關). 우리 발음으로 ‘호서관’이다. 등장인물은 등장순으로 남자와 여자. 15년 전에 이혼한 왕년의 부부. 남편의 취미가 고고학 발굴 현장에 가서, 전문가가 아니라 딜레탕트 취미 생활자니까, 적극적으로 학자들과 함께 유물을 발굴하는 건 아니고 잔일을 도와주며, 발굴한 자료를 보고 과거 시대와 인물에 대한 나름대로의 해석을 내리면서 즐거워한 수준이다. 여자는 이런 남편을 이해하기 쉽지 않았고, 그러다 보니 대부분의 부부가 그러하듯 대화가 점점 사라졌다. 과거의 유적지인 쉬슈관으로 탐사여행을 떠난다기에 전처럼 그냥 넘어가지 않고, 정말로 쉬슈관에 가는지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 뒤를 밟았는데, 기차역 큰 시계탑 아래에서 한 여자를 만나 함께 역으로 사라진 것을 보고나서, 남편이 돌아오자마자 이혼을 요구했던 거였다. 쉬슈관, 호서관은 (맹상군 열전) 식객이 닭 우는 소리를 내 맹상군이 무사하게 빠져나가게 할 수 있었던 함곡관이나 촉한의 수도인 성도를 지키던 면죽관 같은 장대하고 높은 군사용 관문이 아니다. 물품의 이동과 통과에 따라 일정 비율의 세금, 즉 관세를 걷는 상업적 용도의 관이라서 비교적 멀지 않은 과거에 설치되어 크게 고고학적으로 발굴할 것이 없어 보인다. 호서관은 19세기 청나라 때 탐관오리들이 하도 착복을 해 세수가 모자란 것이 국가적 문제가 된 곳이란다. 내가 중국사람도 아니니 믿지는 마시라. 하여간 그렇다는 거다.

  그런데 헤어진 부부가 어떤 일로 15년 만에 한 방, 아니면 적어도 한 공간에 머물게 되었으며 14일 동안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하는 처지에 떨어졌을까? Covid19 시절의 14일 격리조치를 떠올리면 정확하다. 우리나라에서도 잠복기가 14일이라서 지금 바이러스를 가지고 있는지, 아닌지 알려면 14일 동안 완전히 격리 생활을 해야 했던 것, 다 기억하시지? 그래도 뭔가 이상하다는 말이지. 나는 읽으면서 도무지 이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15년 전에 이혼하고 여태 따로 살아온 남녀가 아무리 Covid 상황이라도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한 집에 딱 둘 만 있을 수 있을까? 예전에는 서로 말, 대화 없는 부부였지만 이제 옛 남편이 도망가려 해도 문 밖으로 한 걸음도 나갈 수 없는 처지라 어쩔 수 없더라도 이야기를 해야 한다. 아내는 15년, 아니 150년이 더 흘러도 전남편을 생각할 때마다 지겹게도 궁금했던 것을 물어보고, 의심하고, 질투할 수밖에 없었다. 정말 쉬슈관엔 간 건가? 그 여자하고 함께 간 건가? 갔다면 거기서 뭘 했을까? 남편은 미치기 일보직전이 되어 당장 트렁크에 되는대로 옷가지를 쑤셔 넣고 밖으로 나가려고 하지만 결코 현관문을 열지 못한다. 이렇게 단절된 사람들. 하지만 알고 보면, 남편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던 거다. 격리생활을 하고 있는 여자가 이미 죽은 남자의 혼령을 불러냈든지, 자기 의식 속에서 여전히 끊임없이 괴롭히고 있는 남자를 스스로 만들어냈는지 그건 감상자 마음대로 생각하면 될 것이다. 이 장면을 중앙연극아카데미 펑타오 학과장은 “과거”라고 말한 거 같은데, 여자의 생각만 과거이지 처한 상황, 펜데믹이 아니었더라면 여자가 남자를 호출할 생각도 하지 않았을 것 같아 현재성을 삭제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그의 의견에 전적으로는 공감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적극적으로 펑 교수에게 반박하기도 어렵기는 하지만.


  두번째 “잡탕” 장면의 소제목은 “아치阿齊”다. 진짜 이름은 치밍(齊明)이지만 편하게 아치라고 부른다. 아치 역시 갇혀 있다. 어디에? 교도소에. 아치로 말하자면 여태 살면서 돈 버는 일이라고는 너구리를 죽여 가죽을 벗기는 일 딱 하나였다. 갑자기 너구리 가죽 가격이 떨어지는 바람에 한 번에 수백 마리의 너구리 가죽을 벗겨야 하는 시기가 있어서 급하게 임시 일꾼을 구했을 때, 친구 따라 갔다가 눈치 없이 토란 찜닭을 아치 혼자 다 먹어 치우는 바람에 일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생전 처음 짐승을 죽여야 하고 몸이 식기 전에 가죽을 벗겨야 하는 일을. 이것 말고 아치가 하는 건 도둑질이었다. 특히 전기 자전거를 좋아해 가히 전기자전거 전문 절도범이라 할 수 있을 정도였다. 아치는 도둑질을 한 다음에 벌판의 풀밭에서 전기자동차를 베고 피로를 풀기 위해 한바탕 낮잠을 자는 습관이 있었다.

  독자가 이걸 어떻게 알게 되는가 하면, VR 안경을 쓴 기자가 교도소에 취재 왔다가 아치를 인터뷰한 것. 그러니까 기자와 감옥 안 접견실이라는 한 공간에 있으면서 비록 인터뷰 형식이지만 대화를 하고 있건만, 기자에게 이게 진짜 현실은 아니다. 그저 VR 스코프를 통해 바라보는 가상 현실일 뿐. 공부를 하고 학교를 졸업하고, 경쟁 시험을 통해 신문사 기자가 되는 지극히 정상적이고 바람직한 삶을 사는 기자와, 본업이 절도이며 유일하게 해 본 일이 동물을 죽여 가죽을 벗기는 것이었던 청년은 동시대를 살고 있으되 서로의 사이에는 견고하고 높아서 완벽한 단절, 벽이 있을 뿐이다. 이 벽을 무너뜨리는 일은 서로 공감할 무엇인가를 나누는 일일 터. 교도소에 들어온 것을 일종의 휴식이라고 생각하는 아치는 여전히 수많은 너구리의 목에 줄을 걸고, 졸라 죽이고, 매달고, 한 쪽에 구멍 하나씩 내고, 거기에 손가락을 걸어 당기고, 찢어서 흠 없고 온전한 너구리 가죽 한 장을 손에 든 듯하지만 자신은 여전히 살고 있다는 그로테스크한 현실을 체감한다. 인터뷰를 진행한 기자도 점점 아치의 도살과 각피 과정에 동의하면서 견고했던 벽은 무너질 수 있었을 것이고, 드디어 관객 앞에서 VR 안경을 벗는다.


  세번째 장면 역시 단절된 공간. 바로 무대다. 무대가 소통의 장소라고? 가끔 아닐 때가 있는데 이 작품의 샐러드 파트가 그렇다. 무엇보다, 언어가 박탈되었다. 세번째 씬의 소제목이 그래서 “무언극”이다. 영상을 통해 관객에게 나타나는 극장 밖의 남자가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극장에 들어오고, 공연장에 입장하며, 역시 알 수 없는 힘에 의하여 무대에 오른다. 여기서 남자를 기다리고 있는 건 AI. 연극의 기본은 소통이니 AI와 남자 역시 소통을 해야 하리라. 이들에게 가능한 것은 자판을 매개로 한 화면. 제일 먼저 AI와 남자의 대화는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들이 이곳에 있는지, 감염되지는 않았지만 발열이 나타나는 사람은 몇 명이나 되는지, 뭐 이런 것들이다. 그러면서 남자를 위시한 인간은 점점 AI에 예속되기 시작한다. 우리나라보다 훨씬 앞선 AI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중국이라서 그런지 예술가들의 AI에 대한 경계 또는 공포 역시 우리나라보다 더 큰 거 같다. 결국 거대한 오르골 위에서 남자와 여자, 즉 인류와 AI가 함께 끊임없는 원을 그리며 춤추는 인형으로 변하면서 지구엔 일식이 시작되며 막이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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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의 알 환상하는 여자들 1
테스 건티 지음, 김지원 옮김 / 은행나무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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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3년 인디애나주 사우스벤드에서 출생한 작가. 데뷔작인 <토끼장: Rabbit Hutch>으로 전미도서상 소설 부문National Book Award for Fiction을 수상했다. 이 <토끼장>을 우리말로 옮긴 책이 <우주의 알>이다. “우주의 알”이 뭐냐고? 책에 그냥 지나가는 말로 딱 한 번 나온다. 이걸 출판사 은행나무 편집자가 관심있게 읽었던 모양이다.

  테스 건티는 노트르담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했다. 나처럼 무식한 사람은 이 대목에서 잠깐 의아해한다. 영문학을 공부하려면 차라리 영국에서 하지 왜 하필이면 노트르담에서 했을까? 무식하면 용감한 법. 이러다가 말 길어지면 건티가 프랑스 유학했다고 우길 수 있다. 인디애나주 노트르담이란 커뮤니티에 사립 가톨릭 연구대학을 지어 University of Notre Dame du Lac이라고 했다. 건티는 졸업 후 뉴욕대학 대학원에서 문예창작 석사를 했다. 학교를 다니고 글을 쓴 것 말고 다른 커리어는 이력서에 적혀 있지 않으니 집에서 경제적 지원을 조금 받은 거 같다. 뭐 아니면 말고.

  지난 시절의 작가를 검색해보면 19xx년 밀라노 시장에서 배추장사를 하던 유대인 메뉴힌 씨와 바늘 공장의 유대계 생산직원 출신 마그다 메뉴힌 여사의 외동딸로 태어난 마리아 비토리니는, 뭐 이런 식으로 시작하는데, 위탁가정 출신의 10대 후반 젊은이들이 주인공인 작품 <우주의 알> 또는 <토끼장>에서도 작가의 세부 출생/출신 정보를 알 수 있으면 더 좋을 뻔했으니, 그럴 리 없지만, 테스 건티 역시 위탁가정 출신이었을까? 읽는 내내 조금은 궁금해했던 것도 일리가 있지? 물론 아니겠지. 어느 위탁가정이 뉴욕에서 대학원까지 보낼 수 있었겠냐고. 말이 그렇다는 것이다.


  원제 <토끼장>은 정말 고기나 모피를 활용하려는 목적의 토끼 사육용 hutch 사육통을 일컫는 건 아니다. 사는 데 여유가 별로 없는 사람들이 입주한 작고 낡은 “라라피니에르 저가 아파트”를 위탁가정 출신 십대 후반 아이들이 그렇게 부른다.

  이들이 사는 도시. 바카베일. 자동차 산업의 중심지로 오랜 세월의 호시절을 누렸지만 이제 존Zorn 자동차 회사의 운명과 함께 몰락해버린 곳이다. 사람들은 다시 바카베일 활성화 계획을 수립한다. 도시 인근의 채스터티밸리의 자연적 아름다움과 고급스러운 주택단지 건설을 통해 탈공업화 도시에서 스타트업 허브로 전환하려 하지만 그게 어디 쉽게 되는 일인가. 도시의 범죄율은 실업률과 손에 손잡고 급격한 우상향을 보이고 있으며 바로 몇 달 전에 5백분의 1 확률에 불과한 대규모 홍수 피해를 입었다. 결과, 뉴스위크는 연례적으로 발표하는 “죽어가는 미국 도시 톱 10” 가운데 영광의 1위 자리를 바카베일의 이마 위에 올려 놓았다. 그러니까 도시는 사회적 우울증의 중증 상태에 처해 있으며, 이런 도시에 살고 있는 시민 역시 삶의 활기를 찾기가 그리 쉽지 않은 건 물론이다. 그리하여 작품의 분위기는 전체적으로 우울 모드. 이 속의 쇠락해가는 토끼장, 아파트 입주민들 구경이나 해보자.


  C12호. 60대 벌목꾼이 산다. 직업적 유효기간은 끝났지만 은퇴하자니 경제적, 심리적으로 저축이 부족해 아직 일을 하고 있다. 6년 전에 아내를 잃었는데도 얼마나 아내한테 얻어 터지며 살았는지 여자들이 지구상의 어떤 사람보다도 더 큰 권력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 그게 아니라는 증거가 나오면 도무지 분노를 멈출 수 없다. 휴대전화를 통해 “당신의 데이트를 평가하세요” 앱을 깔고 수요일 밤 9시인 지금도 그걸 들여다보고 있다. 자신의 프로필에는 “걍 괜찮음. 실제는 사진보다 뚱뚱함.”이라 썼다.

  C10호. 10대 소년이 혼자 산다. 분량이 별로 많지 않고 따라서 중요한 인물도 아니다.

  C8호. 호프Hope라는 이름의 웨이트리스 출신 스물다섯 살 산모가 4주 된 젖먹이 아들과 산다. 남편은 하루종일 건설 현장에서 일하다 밤이 깊어야 안전모를 쓴 채로 귀가한다. 호프는 산후 우울증이 좀 있는지 각성제를 투여한 여우가 된 기분이며, 임신, 출산, 산후회복이라는 직접 겪기 전에는 아무도 미리 보여주지 않는 공포영화의 3막을 몸으로 직접 겪는 한편, 아기가 바카베일과 전 지구에서 벌어지고 있는 불안, 총격, 살인, 석유유출, 테러리즘, 산불, 납치, 폭격, 홍수, 이상기후 속에 살 수밖에 없는 것을 두려워한다. 다행스럽게 공사판에 나가는 남편이 우리 주변에서 흔하고 흔하게 볼 수 있는 개 막장 잡것이 아니어서 자기도 녹아 떨어지게 피곤할지언정 말로나마 호프를 위안하려 노력한다.

  C6호. 아이다와 레지. 둘 다 70대 커플이다. 아이들은 다 분가했고 맏딸 티나의 아들 프랭크는 강도짓을 하면 했지 하필이면 총을 들고 업장에 들어가는 바람에 이번에는 길게 감옥 생활을 해야 한다. 티나는 작품 속에 한 번 등장한다. 노숙인으로. 아무래도 위층에서 쥐덫에 걸린 쥐를 던져버린 거 같다. 아이다는 남편 레지널드한테 쥐덫과 죽은 쥐를 윗집 현관에 두고 오라고 바가지 벅벅 긁는다. 아무래도 옳은 일 같지 않지만 늙어서 마누라한테 얻어 터지는 것보다 서글픈 일이 없는 걸 아는 현명한 레지는 책이 거진 끝날 때쯤 해서 지긋지긋한 마누라의 말을 좇아 쥐꼬리를 들고 위층으로 올라간다.


  C4호. 3명의 십대 소년, 1명의 십대 소녀가 돈을 합해 입주했다. 소년들은 잭, 말라크, 로드이며 소녀는 블랜딘 왓킨스. 작품의 주인공이다. 이들은 각자 다른 위탁가정 출신으로 만 18세가 다가오자 독립을 위한 교육을 받으러 갔다가 거의 대장격인 말라크가 방 네 개짜리 저렴한 ‘라라피니에르 저가 아파트’에 빈 집이 나왔다는 걸 알고 룸메이트를 구하다 마지막 자리를 채울 수 없어 그냥 말로만 블랜딘에게 얘기해본 것인데 블랜딘이 흔쾌하게 그러자고 해 함께 살게 된 거다. 이들은 가장 넓고 깨끗한 방을 블랜딘이 쓰게 하는 데 동의했으며, 독자들이여 다른 맘 먹지 마시라, 룸 메이트 간의 어떠한 육체적 문제도 발생하지 않는다. 비록 남자 셋 가운데 둘은 여자애를 사랑하고 나머지 하나도 호감을 느끼고 있지만서도.

  그런데 문제의 날. 7월 17일 이른 밤. C4호의 바로 아래층인 C2호에 사는 마흔 살의 독신 여성 조앤 코월스키는 청각예민증을 앓고 있어서 멜라토닌 정제를 수도물로 삼키고 큰 소리로 TV 뉴스를 틀어 놓았다. 외로운 여자의 침실용 탁자 위에는 마라스키노 체리가 한 병, 그 옆에 작은 포크가 놓여 있으나 병을 열거나 포크를 쓴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멜라토닌을 먹었음에도 위층에서 쿵쿵거리는 소리가 커지더니 급기야 비명소리, 치는 소리, 북소리, 심지어 가능하지 않을 거 같은 발굽소리까지 들린다. 이틀 전에 세탁소에서 만난 탈색한 하얀 머리카락의 소녀가 떠오르면서 아이가 말했던 땀 대신 피 흘리기, 예수, 프러포즈, 손바닥과 가슴과 옆구리의 성흔stigmata 같은 것이 휙 지나간다. 그러다가 조앤은 결국 살면서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여자의 비명소리를 들었고, 놀라서 TV를 껐으며, 그 여자 아이의 입/목에서 나왔을 가능성이 아주 높은 비명이 또다시 들려왔으나 조앤은 엄지손톱 주위의 피부를 깨물 뿐이었다. 조앤은 두렵다. 피가 얼어붙는다는 표현이 이렇게도 적절할 수가. 마침내 비명은 멈추었지만 조앤의 손이 닿는 거리 안에 휴대전화나 노트북이 놓여 있지 않다.

  사실 이때 C4호에서는 열여덟 살이 된 블랜딘 왓킨스가 육체에서 빠져나오고 있었다. 7월 17일 21시 43분. 고통은 신비주의자들이 책을 통해 약속한 듯 달콤했으며 영혼이 빛으로 찔리는 느낌이랄까 싶었다. 이것을 신비주의자들은 “심장의 황홀경”, “천사의 공격”이라 불렀지만 확실한 것은 그녀는 그저 무nothing의 반대라는 것.

  블랜딘의 눈엔 눈물이, 그의 손에는 칼. 아니, 제발 그만 둬. 아니, 하지 마. 소년 한 명은 휴대폰으로 촬영하고 있었고, 다른 한 명은 “이건 엄청난 조회수를 달성할 거야.”라고 외치고 있었다.


  이 외에도 작품에는 중요한 두 가지 사건이 추가되어 블랜딘이 육체에서 빠져나오는 일과 밀접하게 관련을 짓는데, 그건 독후감 분량 때문에 그냥 넘어가야겠다. 하여튼 젊은 작가가 쓴 독특한 문장과 문체로 쓴 엽기발랄한 이야기. 촘촘한 조판으로 해설 없이 470쪽 분량이지만 생각만큼 페이지가 넘어가지는 않을 듯하다. 거부감도 좀 드는 촌스러운 표지는 원서와 같은 모습이니 그런가 하고 넘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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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4-05-31 06:2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이 책의 별점. 별4는 좀 야박한데 그렇다고 별5까지는 아닌... 애매함? 난처함? ㅎㅎㅎ 정답은 ˝신경쓰는 사람 없음.˝

다음 주 삽질:
월요일. 장휘, <비빔, 잡탕, 혹은 샐러드>
수요일. 한야 야나기하라, <리틀 라이프>
금요일. 궈창성, <피아노 조율사>
 
내 남편
모드 방튀라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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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휴, 지금 무려 반나절을 써서 162 페이지까지 달렸습죠. 자간, 행간, 널럴하거든요. 알라딘 AI가 저를 위한 특별 추천이라 하는 바람에 읽었는데요, 결혼 15년차가, 사랑, 사랑, 사랑... 요즘 E 마트에서 사랑 한 근에 얼마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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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4-05-30 17:3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800원입니다~!!

Falstaff 2024-05-31 06:41   좋아요 1 | URL
ㅎㅎㅎ 호연지기 함양을 위하여 프랑스 화폐단위 1유로, 1,500원으로 하심이...

라파엘 2024-05-31 09:14   좋아요 1 | URL
자냥님, 어느 동네세요? 우리 동네보다 싸네요~!! 😆

페넬로페 2024-05-30 18: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목 자체부터 좀 그런데요.
처음 보는 작가인데 프랑스 소설인거죠?
프랑스 사람들은 정말 사랑에 열정적인 것 같습니다.

Falstaff 2024-05-31 06:43   좋아요 1 | URL
옙. 프랑스 작가입니다 사랑에 열정적일 20대 시절에 쓴 작품 아닌가 싶어요. 그 시절에 열정적인 사랑을 못 해보는 것도 좀 그렇긴 합니다. ^^
 
태풍의 계절 암실문고
페르난다 멜초르 지음, 엄지영 옮김 / 을유문화사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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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지영 씨와 동갑인 82년생 페르난다 멜초르. 멕시코에서 가장 유명하고 오래된 항구도시이지만 제일 위험한 곳으로도 꼽히는 베라크루스 시에서 출생해 베라크루스 대학을 졸업하고 저널리즘에 종사하면서 작가 생활을 하고 있다 한다. 현대 작가 답게 이이의 바이오그래피 같은 건 찾기가 쉽지 않다.

  베라크루스 시는 2010년에 카테고리 3급의 허리케인에 의해 크게 외상을 입어 외신에도 소개가 된 적이 있었지만 제목의 “태풍”하고는 거리가 있다. 문학하는 사람한테 태풍이 반드시 기상 현상이어야 한다는 법도 없다. 베라크루스에 사는 사람들의 무차별적인 열정, 증오, 사랑, 폭력 같은 것을 통틀어 그냥 태풍이라고 못할 이유도 없는 것처럼. 작가 페르난다 멜초르는 자신의 고향인 베라크루스에서 실제로 일어난 살인 사건, 마녀라고 불리던 여성이 살해당한 일에 집중하여 그것을 한 편의 장편소설로 엮었다. 게다가 베라크루스라고 하는 지역이 선주민, 아프리카 이주민, 스페인인들의 문화가 복합적으로 어지럽게 뒤섞인 곳이어서 ‘마녀’라고 하면 인중에 수염이 덥수룩하게 나고 적그리스도나 악마와 침상에 오르기를 즐기는 유럽형 마녀 뿐 아니라 아프리카에서 유래한 부두교 식으로 생 닭의 목을 쳐 뿜어져 나오는 피를 보고 운세를 점치는 마녀일 수도 있다.

  스토리를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거론하고 싶은 것은, 이 작품이 2020년 맨부커-인터내셔널 상의 최종심까지 올라 장렬하게 미역국을 먹었으며, 작품 속에 폭력과 혐오, 노골적인 성애 묘사로 ‘빈곤 포르노’라는 지적까지 받았을 정도로 노골적인 장면이 많다는 거다. 정말 그렇다. 내가 읽기에도 좀 난처한 장면이 자주 등장했지만 그렇다고 빈곤 포르노 운운하는 건 좀 오버 아닌가 싶다. 반드시 있어야 할 장면이라고 강조하고 싶은 마음은 없으나, 해당 씬에 전혀 불필요한 장치라고도 생각하지 않았다. 도대체 어떤 씬이기에 그런지 궁금하시지? 알고 싶으면 읽어봐야 할 걸? 


  작품의 무대는 베라크루스 해안에서 멀지 않은 라 마토사 마을이다. 이곳에 무려 1백 헥타르, 즉 백만 제곱미터, 또는 30만2천5백 평의 경작지와 목초지를 가지고 있으나 나쁜 놈으로 악명을 떨치던 마놀로 콘데 씨가 살았는데 저 먼 몬티엘 소사에 본처와 이미 학업을 마친 장성한 두 아들을 거느렸으면서도 동부해안에서 홀로 거대 목장을 거느리는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외지에서 매춘부 한 명을 데려와 함께 살았다. 분명히 백인은 아니고 그러면 인디오나 아프리카 계이겠지만 정확하게 밝히지 않은 이 여인은 생각지도 않게 들판과 언덕배기에서 자라는 온갖 약초에 관한 지식이 풍부해서 그것들을 자유자재로 혼합, 가공해 동네의 가난한 이웃들을 치료해주고 간혹 주술 행위도 해주어, 자연스럽게 마녀라고 불리기 시작했다. 그러다 마누엘 콘데가 죽었다. 사실은 급성 심근경색이었으나 동네 사람들은 마녀가 유적지의 풀에서 추출한 무색무취의 독으로 독살했다고 소문을 내고 스스로 그것을 믿었다. 장례식을 할 때 몬티엘 소사에서 내려온 두 아들이 장례의 선도 차량에 탑승했다가 묘지로 가는 길에 크게 교통사고를 만나 악마가 나타나 데려가는 바람에 이 믿음은 2 곱하기 2가 4인 것처럼 확실해졌고, 이후 마녀는 집에 틀어박혀 밖에 나오지 않고 지내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동네 여인들이 마녀의 집에 드나들며 사고뭉치 아들이 교도소에 들어갈 것인지, 임신한 딸이 언제 도망갈 것인지, 남편의 바람기가 잠잠해지기는 할 것인지를 물으려 오면서 먹을 것을 가져다주어 연명했다.

  마녀는 콘데 씨와 살면서 당연히 소생 하나를 낳았다. 사람들이 “새끼 마녀”라고 부른 이 아이는 동네 여인들이 올 때마다 부엌의 식탁 아래에 숨어 마녀의 치마자락을 쥐고 있었으며 어릴 적부터 검은 머리카락과 눈동자가 병약해 보였다. 아무도 아이의 이름을 몰랐으니 금요일마다 그 집에 가던 단골들도 어미 마녀가 새끼 마녀를 너, 이 멍청아, 너 이 망할 년아, 이 악마의 딸년아, 라고 부르는 것 말고 다른 호칭을 들어본 적이 없었으니 말 다 한 거다. 이 호칭도 내가 그대로 옮겨 쓴 것이 아니라 독후감을 순화할 목적으로 자체 검열한 표현이니 알아서 상상하시라.

  영생하면 사람이 아니니까 마녀도 죽었다. 1978년 멕시코만을 휩쓸었던 허리케인이 라 마토사 마을에도 큰 영향을 미쳐 산사태가 일어나 유적지가 완전히 붕괴될 때 마녀 역시 이에 휩쓸려 짧고 드런 세상을 하직하고 말았다. 얼핏 생각하면 유적지 붕괴와 더불어 마녀의 집까지 파괴되었을 것 같은데, 집은 멀쩡한 걸 보니 그렇게 비바람이 몰아치는데도 밖에 나갔다가 휩쓸린 거 같다. 허리케인의 위력이 태평양의 태풍과 비교해 네 배 정도 더 크다고 하니, 간이 배 밖으로 나온 게 틀림없었다. 검색해보니까 1978년에는 기록적인 허리케인이 발생하지 않은 해인데도 그랬다. 다 팔자지 뭐.

  아무리 마녀라도 죽었으니까 장사를 지냈다. 그리고 몇 주 후, 큰 마녀가 죽고 이제 새끼 마녀가 정식 마녀로 등극해야 하는 순간이 왔고, 드디어 라 마토사를 품은 도시 비야 가르보사에 등장한 새끼 마녀는 검은 스타킹, 긴 소매 검정 블라우스, 검정 치마, 검은 색 하이힐, 검은 베일 차림이었다. 병색이 완연했던 새끼 마녀는 책 읽기가 가능했고, 헝클어진 곱슬머리를 했으며 커다란 발의 사나운 모습을 그렇게 감추면서 라 마토사의 유일한 마녀로 등극한다.

  마녀가 죽으면 미신을 만든다. 여인네들이 자신의 기구한 운명, 육신의 고통과 불면증, 꿈에 나타난 죽은 식구나 친척, 산 사람들과 티격태격한 일, 아니면, 이게 대부분이지만 돈 문제나 남편과 도로변의 매춘부와의 관계 때문에 마녀 앞에서 눈물을 질질 짠 대가로 돈 몇 푼이나 먹을 거리 조금을 건넸을 뿐이면서도 악마와의 거래를 지속한 마녀가 한 번도 공개하지 않은 2층에 막대한 돈과 보석 그리고 금이 쌓여 있을 거란 믿음을 거두지 않았다. 새로운 마녀는 게으르기가 한정이 없어서 이게 집구석인지 야채시장 장바닥인지 헛갈릴 정도에다가 밤이면 밤마다 반지하 식당에서 동네 젊은 건달, 날나리들이 모여 마리화나, 가벼운 마약을 겸한 노래잔치가 벌어지는 일종의 해방구로 기능하는 동시에 주로 공개 동성애 장소로도 알음알음 널리 유명세를 떨치고 있었다.

  마녀에 관해서는 여기까지 하자.


  작품을 시작하는 광경을 소개한다.

  5월 초, 다섯 명의 남자들이 일전도 불사하겠다는 각오로 새총을 단단히 쥔 채 농수로에 도착한다. 빨간 수영복을 입은 이가 이들의 우두머리였으며 나머지는 반바지 차림으로 그를 따랐다. 강에서 고른 돌멩이를 양동이에 한 가득 채운 이들은 언제든 온몸을 바칠 각오를 한 것처럼 잔뜩 사나운 표정을 지었다. 이때 “등 뒤의 나무에 척후병처럼 숨어 있는 작은 새의 울음소리도, 갑자기 나뭇잎이 바스락거리는 소리도, 그이 얼굴 앞으로 공기를 가르며 휙 하고 날아가는 돌멩이 소리도, 하연 하늘에 콘도르들이 새까맣게 날아다니는 가운데 얼굴에 모래를 한 주먹 맞은 것보다 더 고통스러운 냄새, 그러니까 곧바로 뱃속으로 들어와서는 발걸음을 돌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전에 구역질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지독한 악취를 풍기는 후덥지근한 바람”을 참아가며 농수로를 따라 살금살금 가다가, 그들의 눈에 뜨인 것이 있었다. 갈대와 길에서 바람에 날려 온 비닐봉지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 죽은 이의 부패한 얼굴. 한 무더기 검은 뱀들 속에서 거무죽죽한 빛깔의 가면처럼 꿈틀거리는 그 얼굴은, 웃고 있었다.

  어때? 살벌하지, 처음부터. 이미 새들의 공격으로 인해 눈알이 빠져버린 시신의 얼굴이 웃고 있었는데, 당연히 소설은 죽음 또는 살해의 전모를 밝히려 할 것이고 또 그렇다. 이런 작품을 소개하면서 등장인물을 많이 거론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럼 마녀 이야기는 왜 했느냐고?

  멕시코. <백년의 고독>, <콜레라 시대의 사랑>, <썩은 잎>, <족장의 가을>을 쓴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죽은 곳이다. 이 작품을 쓴 페르난다 멜초르도 마르케스 혹은 붐문학, 마술적 사실주의에 한 발을 걸치고 있다. 350 페이지에 모두 여덟 챕터로 되어 있으며, 각 챕터는 딱 하나의 문단이다. 즉 여덟 문단으로 쓴 장편소설. 얼핏 보면 읽기 지겨울 거 같은데, 절대 그렇지 않으니, 문장 읽는 맛이 대단하다. 당연히 마르케스처럼 타의 추종을 허락하지 않는 만연체도 아니면서 저절로 라틴 아메리카 작품을 읽을 때 느낄 수 있는 독특한 재미를 즐길 수 있다. 그러나 위에서 마녀를 소개했다고 “환상”이라는 측면으로 기대하면 오산이다. 작가는 실제로 있었던 마녀 살해 사건을 쓰기 위하여 사실에 개입할 수 있는 주관적 시각을 배제하려 노력한다. 이 작품을 어떻게 읽을까, 하는 것은 전적으로 독자 마음이다. 처음에 말했듯 포르노 혹은 빈곤 포르노로 규정하는 독자도 있을 수 있고, 나처럼 문장을 읽는 맛과 작품의 독특한 구성을 즐기는 독자도 있다. 독자-작가의 합에 따라 호오가 극명하겠지만 분명한 건 호기심을 대단히 자극하는 작가이며 작품이란 거다. 당신과도 맞는 작품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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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4-05-29 08: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이 책 샀는지 안샀는지 확인해보고 사야겠어요. 와 엄청 재미있을 것 같아요!!

잠자냥 2024-05-29 12:17   좋아요 0 | URL
난 진작 샀는데....ㅋ

다락방 2024-05-29 12:32   좋아요 0 | URL
나 안산 것 같아서 사려고요 ㅋㅋㅋㅋㅋ

Falstaff 2024-05-29 17:51   좋아요 0 | URL
다락방 님도 호오가 맞아 즐기셨으면 좋겠습니다!
 
신부의 딸 조지 오웰 소설 전집 (무선)
조지 오웰 지음, 이영아 옮김 / 현암사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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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71년 준남작 헤어의 작은 아들의 작은 아들로 태어난 찰스 헤어. 영국의 귀족 집안은 장자가 작위를 계승하고, 둘째 아들은 적과 흑, 군문이나 성직의 길을 택하는 것이 일종의 불문율이었다. 저低국교회 소속의 신부가 된 찰스 헤어를 한 마디로 말하자면 시대를 잘못 타고 태어난 인간이었다.

  지금부터 찰스 헤어 신부의 캘릭터를 설명해야 마땅하지만 이전에 먼저 할 말이 있다. 반anti 볼셰비키 공산주의자인 조지 또는 우물, 즉 “Goerge Or-well”이 “신부”의 딸이라는 소설을 쓰기로 작정을 했으면, 이미 지난 세기에 망치를 든 철학자가 명백하게 아편임을 밝힌 종교 종사자를 그리 바람직하게 봤을 턱이 없다는 건 충분히 짐작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점. 그래서 작품에서 나오는 국교회와 가톨릭 신부들 가운데 제대로 된 인간은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 점을 감안하여 “또는 우물” 씨가 설정한 신부의 면모를 살펴보자.


  만일 찰스 헤어 신부가 2백년 전에 태어났더라면 자신은 시를 쓰거나 화석을 수집하며 2백년 전의 화폐가치로 연수입 40파운드로 교구를 운영하는 겸임 성직자로 완벽하게 편안한 인생을 누렸을 것이다. 하지만 19세기, 부르주아 계급의 전성기를 맞아 소수의 부르주아를 위하여 낮은 임금을 불사했던 노동자 계급은 당장 자기 먹고 살기도 죽을 맛이라 조금씩 종교 알기를 개떡처럼 여겼으며, 성직자 알기도 이젠 지까짓 것 까지는 아닐지언정 예전처럼 신주단지 모시듯 할 것을 바라지도, 요구하지도 못했다. 이 정도면 20세기 신부들은 자기들이 알아서 적응해야 마땅하거늘, 애초 준남작의 손자이며 귀족에다가 성직자 신분의 위용으로 살아생전 한 번도 “하층계급” 민중을 인간으로 생각해보지도 않았던 찰스 헤어는, 꼭 봐야 아나, 스스로 만든 끔찍한 결혼생활을 하면서 고객의 대부분인 하층계급 신도 알기를 개밥그릇의 보리알 수준으로 여겨 1908년 37세에 나이프힐의 성 애설스탠 교회에 부임할 때 벌써 묘하게 무뚝뚝하며 얼굴에 경멸에 가까운 초연함을 깃든 겁나게 까탈스런 성격을 굳히고 있었다.

  그의 말 한 마디, 손짓 하나하나에 나이프힐 시민들에게 “나는 당신들의 사제이지 친구가 아니라는 사실을 잊지 마, 인간으로서 나는 당신들을 혐오하고 경멸하니까 말이지.”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아차렸다. 원래 이런 건 메시지를 주는 인간 보다 받는 분이 더 정확하고 빠르게 눈치채는 것이거든. 그리하여 당연하게도 하층계급 주민들에게 신부는 그저 증오의 대상일 뿐이었다. 그러면 지역의 유지나 하급 귀족 집안하고라도 잘 지내야 할 텐데 명문가와는 차례로 다투었고, 하급귀족 가문한테는 자신이 준남작의 손자라는 자만심을 도무지 접어주지 않아, 결투에 이은 사망까지 이르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이었을 정도였다. 부르주아 명문가와 향사들은, 잉글랜드에 교회가 성 애설스탠 교회 하나밖에 없니? 하면서 오랜 세월 겉으로만 미소를 교환할 뿐 속으로는 서로 반목하기를 마다하지 않던 부르주아와 향사 계급까지 찰스 헤어 신부 덕에 극적으로 화해를 해 사이좋게 손에 손잡고 이웃 마을에 있는 고교회파 국교회 성당에 다니기 시작했다니 말 다 했지 뭐. 난 집 나간 검은 양이라 이런 방면에 아무것도 모르는데, 신부들은 자신의 교구에서도 활동을 하는 모양이다. 근데 헤어 신부는 자신이 몸소 하찮은 하층계급의 집을 일일이 방문해 그들과 말을 트는 것을 혐오하여 교구의 궂은 일은 죄다 아내에게 맡겨버렸고, 1921년에 아내가 천국의 편안함을 누리기 위하여 굴뚝 꼭대기로 빠져나간 후에는 외동딸 도러시한테 일임했다. 이 도러시가 <신부의 딸>, 주인공.

  동부 잉글랜드의 서퍽주 나이프힐로 말하자면 야트막한 언덕 꼭대기에 국교회 성당이 있고 바로 밑에 마을이 있다. 남쪽으로 고상한 분위기의 농경지역이 펼쳐져 있으며, 북쪽으로는 블라필고든 사탕무 정제소가 자리를 잡았다. 사탕무 정제소 사장 블라필고든 씨 역시 헤어 신부와 거의 완벽하게 척이 지는 바람에 시골 기준으로 다른 고상한 집안 사람들처럼 이웃 교회를 다니면서 헤어 신부는 물론이고 신부의 딸 도러시를 보면서도 노골적으로 얼굴을 찌푸리거나 길거리에 가래침이나 뱉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다만 몇 년에 한 번 있는 하원의원 선거철에만 환하게 웃는 얼굴로 도러시에게 모자에 손을 대는 시늉을 했을 뿐. 시민 2천명 가운데 절반이 바로 블라필고든 사탕무 정제소의 직원으로 근무하는 외지인이었고 이들은 거의 대부분, 그러니까 딱 한 가구를 빼놓고 신앙이 없었다. 나머지 절반, 그러니까 1천명에 달하는 농업, 축산업 종사자의 거의 전원이 국교회 신지였건만 찰스 헤어 신부가 1908년에 기어 들어온 이후 23년 동안 6백명이 넘는 신도가 2백명 이하로 급격하게 곤두박질친 데는 다 이런 배경이 있었다. 반 볼셰비키 공산주의자 오웰이 만들 수 있는 최선의 성직자의 모습이었다.


  그럼 성직자의 딸 도러시의 일상을 보자.

  도러시의 일상은 아침 다섯시 반 자명종에 이은 주기도문 낭송으로 시작한다. 조금 마르긴 했어도 튼튼하고 균형잡힌 몸, 눈가에 잔주름이 있으며 가만히 있으면 피곤해 보이는 입을 가진 28세 이전의 처녀. 몇 년 있으면 확실히 노처녀로 보일 모습이었고, 사실 그게 운명이다. 얼른 시집가면 되지 않느냐고? 그럴 수 없을 걸? 결혼해 교회를 떠나면 누가 교구의 궂은 일을 대신하고, 목사관과 교회를 관리하며, 철없는 아빠 신부를 돌보겠는가 말이지. 도러시가 제일 질색하는 일이 찬물에 목욕하는 건데, 그래서, 이 부사副詞 “그래서”가 중요하다, 자기가 아주 싫어하는 일이기 때문에 4월부터 11월까지 5시 반에 일어나 차가운 물을 뒤집어쓴다. 스스로에게 고통을 주는 일종의 의식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쉬운 얘기로 기독교 환자 정도 아닐까.

  이날 아침에 이를 닦다가 도러시는 갑자기 내장으로 무시무시한 통증이 지나가는 것을 느낀다. 통증을 느껴? 그렇다. 진짜 아픈 게 아니라 마음 속에서 그렇게 크게 걱정을 하고 있다는 뜻이다. 카길스 정육점에 지난 7개월 동안 한 푼도 주지 않고 외상으로 가지고 온 19파운드에서 20파운드에 이르는 외상값 때문이다. 나중에 정확한 금액이 21파운드 9실링 9펜스라고 밝혀지며, 카길스 씨 말고 하여간 사제관에 외상을 준 메인 스트리트의 상점 주인들이 단체로 들고 일어나 몰려와서 아우성을 치는 바람에 일괄적으로 갚기는 하겠지만, 앞부분에서 도러시가 내장통을 겪을 정도로 끙끙거리고 있을 때만 해도 헤어 신부는 그깟 도살업에 종사하는 하층계급에게 진 빚을 갚기 위해 노심초사하는 다 큰 딸이 어이없을 만큼 세상물정을 모르는 철부지로 보였다. 그깟 하찮은 고깃값이라니. 신부 자신은 다 쓰러져가는 교회 오르간에서 바람 새는 소리가 나는 걸 참지 못해 거금을 들여 오르간을 설치하고 날아오는 청구서를 몇 년째 모르쇠로 일관하던 차였는 걸. 원래 귀족들은 그런 식으로 사는 거란다. 하층계급은 그들대로 높으신 분에게 받을 돈이 있다는 걸 위안으로 삼고, 자긍심으로 여겨야 하는 법이란다. 이 만성 분노 상태의 신부가 입은 또 청와대라서 대구, 정어리, 민어 같은 값싸고 널리 먹는 생선은 입에도 대지 않아 밥상머리에 꼭 한우나 홍어가 올라와야 숟가락을 들어 헤어 집안의 엥겔계수는 하늘이 높은 줄 몰랐다. 3분의 1 아래로 떨어진 신도수는 수입의 급격한 하락을 불러, 신부의 먹을 거리만 빼고, 입을 거리, 사제관의 상태 같은 건 끝이 없이 헐벗을 수밖에 없었다.

  교회 종루에 모두 여덟 개의 종이 있었지만 지금은 오직 하나의 종만 울리고 나머지 일곱 개는 철사에 온몸이 꽁꽁 묶인 채 그냥 매달려 있기만 했다. 근데 이게 큰 위험을 초래할 재앙의 씨앗이기도 하다. 종의 무게 때문에 종루 건물이 이제는 언제 무너져 내려도 이상할 것이 전혀 없는 상태가 되었으니. 그러나 독자여, 걱정마시라. 책을 덮을 때까지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을 터이다. 하지만 다 해진 수단과 거대한 인부용 장화를 신고 다니는 교회 관리인 프로겟 씨는, 하필이면 교회 입구에 위치한 종루가 무너져 언제 신도들이 떨어진 무쇠종에 깔려 토막이 날 줄 모른다는 공포에 휩싸여 있어서 두 주일에 한 번은 꼭 신부의 딸이 도러시에게 보완공사를 호소해야 했다. 신부한테 얘기해봤자 씨알도 먹히지 않는다는 걸 아니 그 딸한테라도 해보는 거다. 결코 받아들이지 않을 것을 뻔히 알면서도.


  소설은 결국 사람 이야기. 이 작품에 등장하는 문제적 인물 두 명을 소개한다. 돈 좀 있고 허리하학적으로 자유분방해 세 명의 사생아를 키우는 50대 대머리 남자 워버턴 씨. 토박이는 아니고 런던으로 보이는 대도시에 살다가 가정부라고 소개한 어여쁜 여인 하나 데리고 이사해 왔다. 그러다 가정부가 덜컥 사내 아이를 낳았고 얼마 후 도무지 정착생활을 견디지 못한 아내이자 가정부가 대책 없이 집을 나가는 바람에 아기를 다른 두 아들을 돌보고 있는 친척한테 보냈다. 1년 가운데 겨우 몇 달만 나이프힐에 머물고 나머지는 유럽 각지를 돌며 최대한 인생을 즐기는 인물이다. 가만 보면 살면서 여성을 사랑해본 적도 없고, 사랑할 마음도 없이 그저 함께 하는 세월과 관계없이 여성과 함께 즐길 수 있기만을 바라는 인간이다. 시절이 20세기 초반이라 마음에 드는 여성이 나타나면 스스럼없음을 강조하며 함부로 몸을 더듬는 습관이 있다. 마음만은 너그러워 자신이 누구에게 도움이 될 수 있으면 약간, 좀 지나치다고 보일 수 있을 정도의 친절은 기꺼이 베푼다. 그래도 썅노무새끼인 건 분명하지만.

  사제관 근처에 워버턴 씨 집이 있고, 불과 몇 미터 떨어지지 않은 곳에 과부 셈프릴 부인이 산다. 셈프릴 부인은 대단한 나팔꾼이다. 문제는 없는 일을 마치 진짜로 자기 눈으로 봤고, 누가 들어도 그게 틀림없이 안 땐 굴뚝에서 나오는 연기는 아닐 것이라 믿게 만드는 힘이었다. 블라필고든 씨가 하원의원 선거에 출마하여 메인 스트리트에서 큰 규모로 유세를 벌일 때 워버턴 씨 눈에 도러시가 띄었고, 그래서 접근했으며, 8월이라 맨살이 드러난 팔뚝을 스스럼없이 슬슬 쓰다듬으며, 오늘 밤에 <양어장과 첩들>이란 작품을 출간한 로널드 뷸리 씨 부부가 자기네 집을 방문하는데 와서 문학적으로 즐거운 시간을 보내자고 제안한다. 아버지 신부와 교구일에 치어 극도로 스트레스가 쌓인 도러시는 제의를 받아들여 밤 열시에 워버턴 씨 댁 현관을 노크했으며, 로널드 뷸리 씨 부부는 워버턴의 거짓말이었는데, 그래서 빈 집에서 둘만 대화를 하다가 또다시 더듬어대려고 하기도 해, 하던 일이 있기도 있었고, 아직 못한 일을 마저 해야 한다는 핑계로 집에서 나오긴 했지만, 워버턴 씨 댁 현관에서 다시 손목을 잡힌 도러시의 입술에 이 50대 부자 대머리가 키스를 해버리는 데 성공한다. 이때 바로 옆집 셈프릴 부인 댁의 창문에 휘리릭, 커튼이 쳐지는 것을 도러시가 본 듯했으니, 아이고 이걸 어쩌나. 이렇게 해서 20세기 식 주홍글자가 생기는 찰라?

  여기에 하나 더 있다. 조지 오웰이 썼으니 오웰 표가 하나 더 나오고 만다. 바로 지독한 가난의 모습. 어떻게 해서 도러시, 제목이 <신부의 딸>이니까 당연히 도러시가 가난의 제단에 오르게 되는 지는, 나는 미리 말할 수 없음. 독후감 길게 쓰긴 했지만 모두 5부 가운데 1부만 “간단하게” 소개했음을 양지하시기 바람. 2부, 명성에 걸맞지 않은 난데없는 장면전환에 당신 턱이 떨어질 지도 모르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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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4-05-27 17: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조지 오웰이 필명이라는건 알고 있었는데 ...Or-well이라는 의미가 있었나요?

Falstaff 2024-05-27 17:47   좋아요 1 | URL
저도 컨닝한 거랍니다. 마거릿 애트우드가 한 말이예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