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성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67
나탈리 사로트 지음, 위효정 옮김 / 민음사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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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탈리 사로트의 소설. 생각만 해도 멀미난다. 그러나 이 책은 1939년 작품. 책이 나오자마자 독일이 폴란드 국경 너머로 탱크를 몰아 2차 세계대전의 막이 올랐다. 나탈리 사로트는 자타가 공인하는 프랑스의 누보 로망의 대표선수. 그러나 1939년에는 누보 로망이라는 말 자체가 없었으며, 누보 로망의 기수라고 할 수 있는 알랭 로브그리예는 열일곱 살, 미셸 뷔토르가 열세 살이었다. 내가 읽은 사로트의 소설은 <황금열매>와 <어린 시절>. 각각 63년과 83년 작품이다. 사로트가 1900년생이라 작품을 썼을 때의 나이도 금방 계산이 된다. <황금열매>는 예순세 살, <어린 시절>은 무려 여든세 살에 썼다. 두 작품 다 진땡 누보 로망 작품이며 이때는 특히 로브그리예처럼 미분적 묘사를 사용하는데, 로브그리예보다 훨씬 강력한 배율의 현미경으로 사물과 현장을 탐색하는 바람에 그걸 읽는 독자는 (못 믿으시겠지, 믿는 자에게 복이 있으니 믿으시라) 까무러친다.

  나도 사로트의 소설을 읽는 중에 멀미를 하다가 까무러쳐서 그냥 홱 내팽개치고는 몇 해가 지난 다음에 아무래도 책값 본전이 생각나 다시 읽었지만, 시간이 지나도 멀미 나는 건 여전했다. 근데 사로트나 로브그리예나 하여간 이 누보 로망 작가들이 낸 책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에 보이면 읽게 된다. 그리고 세상에나, 언젠가 흉내까지 내보고 만다니까 글쎄. 이게 말이 되느냐는 말이지. (희곡은 빼고) 사로트의 소설도 그렇게 죽을 똥을 싸며 읽었으면서도 또 다른 번역서가 나오기 무섭게 얼른 찾아 읽는 것을 보시라. 뭐 내가 이쪽 방면으로 병이 좀 있는 건 사실이지만, 읽고 나서도 내 입에서 결코, 재미있게 잘 읽었다, 라는 말이 나오지 않을 것을 번히 알면서 또 읽게 되는 거. 이게 누보 로망이고 나탈리 사로트다.


  이번에도 멀미 났다. 근데 저번보다는 덜했다. 아무래도 작품을 쓴 시대가 본격적으로 현미경 관찰을 시작하기 전이라서 그랬던가 보다. 실제로 물체의 미분적 분쇄는 없다. 그래도 누보 로망의 누군가와 닮았다. 누보 로망이란 건 어떤 특별한 작풍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누로 로망이라는 기치 아래 모여 쓴 반소설적 전위적 작품을 일컫는 것으로, 꼭 물체의 미분적 분쇄만 말하는 것은 아닐 것. 훗날 중국의 찬쉐도 <오향거리>의 주인공 X여사가 사물을 거울에 반사된 모습이나, 현미경을 통해 보는 것이 이 전위적 표현을 염두에 둔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향성>에는 적어도 이런 ‘봄watching’은 존재하지 않아 덜 피곤했다는 말이다. 이들과 같은 패거리로 불리는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후기 작품에 더 가깝다고 할까?

  그래서 이해하기 좋았느냐고? 천만의 말씀. 이번에도 나는 사로트를 제대로 오해했다.

  처음에 좀 헷갈리더니, 읽어가다 보니 한 여성의 시각으로 가족 구성원을 묘사한 것으로 읽혀, 아무리 사로트라도 (내가 예상했던 것처럼) 1939년에 사람 뇌 저리게 만들 수 있었겠어? 이렇게 자만하려고 할 즈음부터 또다시 오리무중의 첩첩산중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스스로 알아서 이런 책을 고르는 (나 같은)인간이 문제다.


  나는 가끔 만들기 쉬운 순두부 계란탕이나 아욱국, 콩나물국, 매운탕 같은 것을 끓인다. 대개 아침 5시 경부터 멸치, 다시마를 끓여 육수를 내는 것부터 시작해 나름대로 ‘제대로’ 끓이려고 한다. 이렇게 그나마 정성껏 음식을 만들고 냉장고에서 반찬을 꺼내 식탁에 올려놓고 밥을 퍼 먹으려는데, 마누라쟁이는 아직 일어나지도 않았다. 그럼 기분이 어떻겠어? 예전에 어머니가 식탁을 차리면 할머니는 걸레들고 마당의 수돗가로 나간다. 어머니는 입이 댓발 나와서 밥상 차리면 꼭 저렇다고(아마도 속으로는, 저 지랄이라고) 지청구를 넣고. 이거 우리나라만 그러는 게 아니다.

  “방에서 방으로 다니며, 부엌을 뒤지며, 누군가가 들어가 있는 욕실 문을 맹렬하게 두드리면서, 그녀는 간섭하고, 지도하고, 닦달하고, 내처 한 시간을 거기서 있을 작정인지 그들에게 묻고, 혹은 늦었다고, 전차나 기차를 놓치게 되리라고, 너무 늦었다고, 되는 대로 무신경하게 있던 그들이 뭔가를 놓쳤다고, 혹은 아침 식사가 준비되었다고, 식었다고, 두 시간 전부터 기다리고 있다고, 다 얼어붙었다고 그들에게 알려주고 싶어 했다… (후략)”  (p.21)

  위 인용문을 읽어보면, 아직 한 문장이 끝나지도 않았지만, 가정주부가 일찍부터 아침식사를 마련해 식탁에 차려 놓았건만 자식새끼들과 남편이란 작자는 내쳐 자빠져 있다가 다 늦어서 허겁지겁 세수하고, 면도하고, 개인위생 처리하는 바람에, 엄마가 열이 빡세게 돈 모습으로 보인다. 나도 소설책 읽은 세월이 있고 페이지 수가 있는데 이런 정도라면 뭐 껌이지, 안 그래? 이런 마음이, 자만심이 들었다는 말씀. 그럴 만하지? 내가 지금 읽어도 그럴 만하다.

  게다가 이런 문장이라니. 가족 가운데 누가 욕실에서 물을 틀고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을 듣는다.

  “팽팽한 침묵 속의 돌연한 물소리, 그것은 마치 하나의 신호, 그것들을 향해 울릴 호출, 막대기 끝으로 건드린 해파리를 역겨워하면서 그게 불현듯이 소스라치며 곤두섰다가 다시 움츠러들기를 기다리는 것과 같으리라. / 그녀는 그것들을 그렇게 느꼈다. 벽 뒤에, 늘어앉아, 부동 상태로, 소스라칠 태세를, 요동칠 태세를 갖추고 있다고.”  (p.19)


  사로트는 남성들의 행위에 관한 묘사도 좋다. 그는 어린 아이와 산책을 간다.

  “그는 길을 건널 때마다 자신의 뜨겁고 끈적한 손으로 그들의 작은 손을 꽉 붙들면서, 그러나 그 작디 작은 손가락들을 짓뭉개지지 않도록 자제하면서, 한없이 신중하게 왼쪽 그다음에는 오른쪽을 살피면서 그들이 지나갈 겨를이 있는지 확인했고, 자동차가 오지 않는지 잘 보았고, 그의 작은 보물, 귀여운 그의 어린애, 그가 책임진 그 살아있고 보드랍고 순순한 작은 것이 짓뭉개지는 일이 없도록 만전을 기했다.”  (p.27~28)

  문장 속에 지시대명사 ‘그’가 필요 이상으로 많이 들어가 읽기 불편하고, 한 문장으로는 동의하기 어려우나 그렇다고 줄줄이 인용할 수도 없어서 그렇지 이 챕터 역시 괜찮다. 나는 당연히 아빠가 두 아이를 데리고 산책하는 줄 알았다. 앞 챕터, 밥 차려 놓았는데 먹으라는 밥은 안 먹고 별 짓을 다 하던 식구들일 것으로 당연히 생각하고 읽었으나, 아이고, 갑자기 이 남자 어른이 할아버지다. 할아버지는 이전에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다. 그러니 작품 속에 등장하는 숱한 ‘그’와 ‘그녀’는 누구를 특정하는 그와 그녀가 아니라 단순하게 챕터를 쓸 때 작가가 떠올린 여자와 남자에 관한 소묘라고 생각해 마땅하다. 이런 생각이 들자 갑자기 뇌가 헝클어지기 시작했다. 아오, 내가 지금 틀림없이 오독하고 있는 중이야. 오독오독한 오독뼈 씹는 게 아니라고. 또다시 죽을 똥을 싸며 오리무중의 첩첩산중으로 자진해서 기어 들어갈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나탈리 사로트는 자신이 이렇게 글을 쓰는 이유를 밝힌다. 소설이라는 픽션의 형식을 통해서 말하기 때문에 이게 진실인지 아닌지 독자는 판별할 수는 없지만 사로트의 소설을 읽기 위하여 큰 힌트가 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그 모든 것, 클리셰들, 복제품들, 발자크, 플로베르, <마담 보바리>로 말하자면, 오, 그들은 아주 잘 알았고, 그 모든 것에 훤했고, 하지만 그들은 겁내지 않았고 ― 그들은 그녀를 상냥하게 바라보았고, 그들은 미소 지었고, 그녀 곁에서 단단히 자리잡고 있다고 느끼는 것 같았고, 또 그들은 그 점을 아는 것 같았다, 자신들이 (하략)”  (p.69)

  사로트는 여태까지 지속해온 소설을 답습하지 않겠다, 그리하여 신 소설을 쓰겠다는 선언이다. 아무도 겁내지 않고 무심결에 쓰는 저 왕년의 거장 발자크, 플로베르를 답습하지 않겠다고. 그리하여 탄생하는 작가군을 그들은 누보 로망이라 불렀던 거디었던 거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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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5-05-16 06: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리고 그 모든 것, 클리셰들, 복제품들, 발자크, 플로베르, <마담 보바리>로 말하자면, 오, 그들은 아주 잘 알았고, 그 모든 것에 훤했고, 하지만 그들은 겁내지 않았고 ― 그들은 그녀를 상냥하게 바라보았고, 그들은 미소 지었고, 그녀 곁에서 단단히 자리잡고 있다고 느끼는 것 같았고, 또 그들은 그 점을 아는 것 같았다, 자신들이 (하략)” (p.69)

이것을:

“그리고 모든 것, 클리셰들, 복제품들, 발자크, 플로베르, <마담 보바리>로 말하자면, 오, 그들은 아주 잘 알았고, 모든 것에 훤했고, 하지만 겁내지 않았고 ― 그녀를 상냥하게 바라보았고, 미소 지었고, 그녀 곁에서 단단히 자리잡고 있다고 느끼는 것 같았고, 또 그 점을 아는 것 같았다, 자신들이 (하략)” (p.69)

이렇게 교정correction 했으면 어땠을까?
 
아이스링크
로베르토 볼라뇨 지음, 박세형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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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볼라뇨의 초기작. 이전에 시집은 몇 권 출간했지만 이 작품 이전의 소설은 친구 안토니 가르시아 포르타와 함께 쓴 것 하나만 볼라뇨의 연표에 나와있다. 물론 그렇다고 자기 이름으로 처음 발표한 작품이라는 뜻은 아니다. 이 책이 내가 읽은 몇 번째 볼라노인지는 모르지만 하여간 꽤 읽은 편이라 생각하는데, 눈에 힘주고 이이의 연표를 들여다본 것은 이번이 처음인 듯하다.

  내가 이전에 읽은 책을 보면 작품의 주인공들이 멕시코시티에서 10대 후반의 나이로 초현실주의를 비롯한 전위 문학, 특히 시 장르에 깊이 빠져 있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멕시코시티를 벗어나 북아메리카와 유럽 각지로 뿔뿔이 흩어져 범죄에 연루되는 스토리가 이이의 특징 가운데 하나였다. 다른 하나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명이 길어 라틴 아메리카에 잠입해 살아남은 나치 잔당과 하여간 어떤 식으로든지 연결이 되는 작품들. 이 두 이야기가 서로 얽히고 설킨 것도 있었겠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볼라뇨는1953년에 칠레 산티아고에서 태어났다. 이이의 작품 속에서 칠레 출신 등장인물이 많이 나오는 바람에 작가 또래의 칠레 사람들이 항용 그러했듯이 피노체트에 의한 쿠데타 전후로 멕시코를 거쳐 유럽 각지에서 살다가 같은 언어를 쓰는 스페인에 정착한 작가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1968년, 열다섯 살 때 가족 전부 멕시코시티로 거처를 옮겼고, 그곳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다가 중퇴한 후 다시는 학교에 다니지 않겠다고 결심을 하는 한편 이 또래들이 왕왕 그러하듯이 입에서 젖내가 가시지 않은 전위시를 지었나 보다. 1973년에 아옌데 대통령의 사회주의 건설을 지지하기 위하여 조국 칠레에 갔다가 피노체트의 쿠데타가 발생하는 바람에 체포되어 빵에 들어갔는데 어릴 적 친구를 만나 74년에 풀려났다고. 이후 멕시코시티로 돌아와 본격적으로 아방가르드 문학운동에 가담했다. 이런 경험들이 볼라뇨의 책 속에 다 들어가 있다. 책을 웬만큼 읽은 다음에 연보를 읽는 것도 재미있구나. 아, 볼라뇨가 이런 경험이 있어서 <야만스러운 탐정들>, <칠레의 밤> 같은 걸 썼구나, 이런 걸 알아채는 재미. 졸라의 루공-마카르 총서를 어느 정도 읽은 후에 첫번째 작품 <루공가의 치부>를 읽을 때 각 등장인물의 족보가 눈에 훤하게 들어오는 것과 유사한 잔재미가 있다.


  <아이스링크>는 한 건의 살인사건을 놓고 세 명의 화자 ‘나’가 각기 자신의 관점에서 이야기하는 플롯이다. ‘나’의 서술이 아니라 ‘나’의 내레이션. 그리하여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을 가리키는 말은 ‘나’가 아니라 ‘저’이고 따라서 존칭을 사용한다.

  레오 모란, 가스파르 에레디아, 그리고 엔리크 로스켈리스.

  레오 모란과 가스파르 에레디아는 각각 열아홉 살과 스무 살 때 멕시코시티 부카렐리가街에서 패기 넘치는 시인들이 상주하던 모호하고 수상쩍은 청춘의 공간에서 처음 만난 사이로, 전위 시를 써서 서로 돌려 읽고 비평하는, 요새 말로 합평이란 걸 했던 동아리 멤버였다. 모두 새파란 청춘이었고 겁 없는 십대 시인이었으며 전부 자기들이 천재인 줄 알았던 시기.

  레오는 일찌감치 프랑스의 루르드에서 시작해 스페인으로 건너와 팜플로나, 사라고사, 바르셀로나에서 노점상으로 푼돈을 벌다가 우연찮게 Z시로 굴러왔다. 해변 관광도시 Z시에서 장신구 가게를 열고 수완을 발휘해 돈을 조금 모아, 이어서 ‘카르타고’라는 옥호의 술집을 인수하고, ‘델 마르’ 호텔, ‘스텔라 마리스’ 캠핑장, 그리고 다섯 개에 이르는 상점도 접수하는 수완을 보여, Z시에서도 손꼽히는 부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시청 사회복지과에서 근무하는 젊은 여성과 불 같은 연애를 하고 결혼도 해서 아들을 낳았으나 3년만에 점잖게, 여전히 우정을 유지하는 수준으로 갈라섰다.

  레오가 사업차 바르셀로나에 가서 피로를 풀려고 불타는 돼지 껍데기에 쐬주 한 잔을 마시고 있을 때 우연히 노점상을 하는 칠레 여자 모니카를 만나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던 중, 젊은 시절, 아니, 어린 시절에 같이 전위시를 쓰던 가스파르 에레디아가 바르셀로나에서 거지꼴을 못 면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럼 Z시로 와서 자기를 찾으라고 말하고는 잊어버렸다. 근데 정말로 모니카가 가스파르를 만나 이야기를 전해 Z시에 도착해, 사람 사이에 척지는 걸 제일 싫어하는 사업가답게 가르시아에게 ‘스텔라 마리스 캠핑장’의 야간 경비원으로 5월부터 9월까지 일하라고 했다. 반년 일하면 멕시코시티로 돌아가 몇 달 버틸 수 있게 괜찮은 급여를 주고 밥도 하루 세끼 먹을 수 있게 해줄 터이라고. 가스파르는 만족한다. 스페인 체류 허가증도, 취업 허가서도 없는 외국인이 이보다 더 좋은 조건이 없다.

  “스텔라 마리스” 캠핑장. 이건 실제로 로베르토 볼라뇨가 야간 경비원으로 일했던 캠핑장 “에스트레야 델 마르”의 라틴어 식 이름이라고 역자해설에 쓰여 있다.


  세번째 화자 엔리크 로스켈러스는 163센티미터의 키에 뚱뚱한 몸집의 카탈루냐 남자이며 사회주의자다. 노동과 정의와 진보를 믿는다. 이렇게 말하면 노동, 정의, 진보가 한 뭉텅이로 다 옳은 거 같지? 착시 현상이다. 이에 관해서는 길게 쓰지 않겠다. 세상에 “다 옳은 건 하나도 없는 법이다.”라는 한 마디로 넘어가자. 전직 사회당 Z 시장 필라르 빌라마르 여사의 최측근으로 Z시의 사실상 최고 권한을 휘둘렀다. 22세에 대학에서 심리학 학위를 취득하고 한때 부적응 아동시설에서 심리상담원으로 일한 적도 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가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사회당 동지 필라르가 불러 진취적 열정과 야망, 그리고 인생의 목표를 위하여 Z시로 와서 지난 2년 동안 시청을 움직이는 동력이자 근육이요 두뇌였다고 자부한다. 이런 인간이 꼭 당하는 것이 있다. 다른 직원들의 질투와 원한을 샀다. 스스로도 사람들이 자신을 증오하고 있다는 걸 알아서, 알 수밖에 없어서 시간이 흐름에 따라 성마르고 비관적인 인간이 된 것 같다. 이이의 사무실 벽을 차지하고 있는 수료증 액자의 종류를 쓰려 해도 A4 반 장은 너끈히 채울 듯하여 여기에 옮기지 못할 정도.

  그런데 한 행사에서 누리아를 만난 것이 사달을 만들었다. 누리아 마르티. 코펜하겐에서 열린 피겨 스케이팅 대회에서 스페인의 위상을 높인 스타. 스타인 것도 모자라 여태 엔리크가 본 여자 가운데 난생 처음 보는 미인이었다. 자신의 외모에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는 엔리크는 누리아를 만나서 친분을 쌓기 위하여 시청 관광축제과에 작업을 해 낙농업 박람회에 홍보대사직을 만들고 초대 홍보대사로 누리아 마르티를 위촉하려 시도했다. 당연히 거절할 것임을 알면서도. 예상대로 누리아는 난색을 표했고, 그래도 홍보대사 건을 계기로 저녁 식사를 갖게 되었으며, 이후에도 간혹 만나 식사를 하고, 점점 가까운 사이로 발전해 엄마와 여동생이 사는 누리아의 집에도 자주 들르는 관계로 발전했다. 당연히 엔리크는 누리아를 사랑하게 되었으며, 사랑의 정도도 점점 증가했다. 사랑이란 것이 점점 증가해? 웃기네. 사랑이란 게 언제나 그렇듯, 폭발적으로 사랑의 농도가 커져버렸다. 카탈루냐 지역에 대한 불평등이랄 수도 있을까, 싶게 누리아는 어처구니없게 국가대표에 포함되지 않는 불상사를 만났고, 따라서 코치와 연습장 및 장비 대여 같은 온갖 혜택이 하루 아침에 물 건너 가버렸다. 누리아를 위하여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이걸 고민하고, 고민하고 또 고민하던 엔리크 로스켈레스.

  Z시에는 몇 십년 전 미국에 이민가서 떼돈을 벌고 돌아온 거부가 저택을 짓고 산 적이 있다. 이제는 시의 재산으로 편입되어 돌보는 사람이 없어서 폐허로 변해버린 괴상하게 생긴 저택을 눈여겨보던 엔리크, 그는 실제로 저택에 가보고, 거대하게 지은 실내 수영장을 유심히 살피더니 시청으로 돌아가 엽기적 기안을 쓰기에 이른다. 이 저택을 대대적으로 수선해 관광시설로 쓰자는 제안. Z시의 실력자요 시장의 최측근에 정말로 능력도 막강한 인간이 하는 일이라 일사천리로 작업을 시작했고, 엉뚱하게 지하실의 실내 수영장을 아이스링크로 만들어버린다. 그래서 제목이 <아이스링크>가 되는 것. 그리고 공사는 1~2년 후에야 끝난다고 보고한다. 그동안 누리아가 연습에 매진하면 다시 국가대표로 발탁될 수 있을 것이라 믿으면서. 누리아의 키스 한 번 받지도 못하는 엔리크는 그렇게 불법을 저지른다.


  그런데 밖에서 보면 여전히 폐허이며, 유령이 나올 거 같은 삭막한 장소의 깊고 깊은 곳. 그곳의 아이스링크. 거기에도 두 발 달린 사람들의 발길이 닿는다. 다만 엔리크와 누리아가 모를 뿐이지. 누군가가 피겨 스케이팅을 연습하고, 다른 누군가는 음악이 든 카세트 테이프를 틀어주고 동시에 자기 업무를 위해 서류를 검토하는 장면. 그것을 보는 눈이 있는 것.

  날들이 지난 어느 날 밤. 우연히 전처의 심부름으로 저택에 가서 사람을 찾으러 건 레오 모란은, 그날따라 찾는 사람이 없어 아직 포장 박스가 널려 있는 저택을 훑다가, 아이스링크를 발견하고, 아이스링크 위에 백여 군데 칼에 찔린 여인의 시체를 발견해 단박에 일이 커지는데….

  죽은 여인이 누구냐 하면, 안 알려줌. 그러면 누가 죽였냐고? 그것도 안 알려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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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gettable. 2025-05-15 12: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누가 죽었는지는 기억이 나는데 누가 죽였는지는 기억이 날랑말랑.. 엔리크 다시
보니 참 안쓰럽군요.

Falstaff 2025-05-15 16:02   좋아요 1 | URL
살인범은 본문에 콧배기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시면서.... ㅋㅋㅋㅋ
 
사이버리아드 - 심너울의 사이버리아드 다시 쓰기 FoP Classic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송경아 옮김 / 알마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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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딱 두 권의 스타니스와프 렘을 읽었다. <솔라리스>와 <우주 순양함 무적호>. 내가 SF 장르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 거의 읽지 않는 편이었는데 우연한 기회에 <솔라리스>를 읽고 뻑, 넘어갔다. 그리고 <우주 순양함 무적호>로 이어진다. 짧은 독서력에 한정해 말하면, 렘은 외계 생명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인간에게, “존재”에 대한 인간식 사고방식의 진지한 전환을 요구하는 심각하고 무거운 주제를 제시하는 작가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스타니스와프 렘은 진지한 작가. 이런 등식이 고정관념 비슷하게, 두 권밖에 읽지 않았으니까 아직 정식 고정관념이 아니고 고정관념 비슷한 생각을 가진 상태에서 <사이버리아드>를 읽었고, 읽기 시작하자마자, 나는, 또 한 번, 뒤집어졌다. 행성의 거대 바다가 통째로 한 생명체이며 이 생명체가 우주선에 탑승한 인간의 뇌에 환상이란 방식으로 영향을 끼친다는 <솔라리스>, 인간이 아닌 유기물 생명체가 한 행성에 두고 온 기계의 부품들이 자체 번식을 통해 진화한다는 <우주 순양함 무적호>, 이런 발상을 한 1960년대의 폴란드의 천재가 이런 코미디 메들리, 희극 연속작품도 썼다는 말이지?

  아주 오래 전에 오페라 좋아하는 사람들의 온라인 커뮤니티에 순전히 가벼운 마음으로 “러시아 오페라는 무겁기만 하고 코미디도 재미없어.”라고 썼다가 (지금은 오페라 평론가 또는 연출가로 활약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은 것도 같은) 모 씨한테 심각한 유감의 글을 받은 이후 찍소리도 못한 적이 있는데(앗다, 드럽게 지랄하데), 이 기억이 불쑥 되살아났다. 정말 SF 장르를 좋아하는 독자가 “스타니스와프 렘은 진지한 작가”라는 내가 그동안 품고 있던 유사 고정관념을 들었으면 그 양반처럼 나하고 온라인 상에서 절교했을 수도 있겠다. 당시엔 프로코피예프가 작곡한 <수도원에서의 약혼>을 듣고 보기 전이었고, 지금은 <사이버리아드>를 읽기 전이었으니 아직 제대로 알지 못하는 불쌍한 어린이들은 조금 어엿비 봐주어야 하는 거 아닌가? 하긴 뭐, 세상이 그렇게 아름답지는 않지.


  스타니슬라프 렘이 보는 세상은 인간보다 기계로 이루어진 세상이 훨씬 아름다운 것처럼 보인다. 그의 세계관에 입각한 인간과 기계의 탄생을 알아보자. 이오니드 왕좌의 계승자 펠릭스 왕자에게 이오니드 왕이 말한다. 이오니드는 금속 이온의 세계를 뜻하고, 펠릭스는 행운Felix가 아니라 철Fe, ferric을 변형시킨 고유명사이다.

  “우주의 종족 창백얼굴(인간)은 역겨운 만큼이나 신비로운 방식으로 시작되었으니, 어떤 천체가 통째로 오염된 결과 그 종이 생겨난 까닭이니라. 유독한 휘발성 기체와 고약한 이상 생성물이 생겨났고, 여기에서 창백얼굴이라 알려진 종이 나왔다. 태초에 그들은 태양에서 육지로 주르륵 올라온 기어 다니는 흙덩어리였고, 서로를 잡아먹으면서 살아갔다. 게다가 그들은 서로 잡아먹을수록 더 늘어났고, 그런 다음 질척한 삶(살)을 석회질 골격(뼈)으로 받치며 일어났으며, 마침내 기계를 만들었다. 이 원형原型 기계로부터 지능이 있는 기계가 나왔고, 그것을 지적 기계를 낳았는데, 지적 기계는 완벽한 기계를 고안했다.” (p.468~469)

  이오니드 왕은 아들 펠릭스한테 지구상 생명체의 기원에서 시작해 수중생물의 육지 상륙에 이어 인간까지 진화를 간단하게 설명한 다음에, 인간이 만든 기계가 최상의 생명체라고 단언한다. 이 기계는 급기야 지능을 갖게 발전하고, 이후 기계적 진화를 거쳐 완벽한 기계 상태가 등장하니 이를 “가가발단” 족이라 한다. “가능한 한 가장 발전한 단계.” 이 가가발단의 구성원들이 뭐할 거 같은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그냥 모래밭처럼 보이는 곳에 누워 몸을 긁거나 코를 후빌 뿐. 그러나 사실 이들은 신의 경지까지 도달한 ‘생명체’이다. 이들은 안다. 다른 지성체 로봇을 억압하는 불행과 불운을 사라지게 하여 모든 로봇을 행복하게 만들어봤자 아무 간섭을 하지 않는 것보다 오히려 100배에서 많게는 800배까지 더 큰 고통을 주게 된다는 것을. (p.441)

  하기야 인간 등의 유기물을 만든 조물주가 특히 에덴 동산에 인간을 벌거숭이로 만들어놓자마자 곧바로, 단 한 순간도 쉬지 않고 들들 볶아댈 뿐이었지 않은가. 그것 보다 그냥 세상에서 가장 편한 자세로 누워 코나 후비고 있는 것이 훨씬 낫기는 낫다.


  어쨌거나 <우주 순양함 무적호>에서 한 번 소개했던 기계의 진화가 이 책에 와서 다양하게 변주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책의 첫번째 주인공은 트루를, 트루를보다 등장 횟수가 약간 못미치는 또다른 주인공이 클라파우치우시. 이들은 로봇이다. 서로 절친한 친구 사이이자 우주 전체로 봐도 막강한 지능을 소유한 라이벌 ‘제작자’이다. 항성과 행성을 재배치해 우주 광고판을 만드는 일도 밥 먹듯 해치우고, N으로 시작하는 것은 뭐든 만들 수 있는 기계를 발명하지만 이것 때문에 세계를 파멸시키기 일보직전까지 가기도 하며,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의미 있는 정보를 그러모으는 ‘제2종 악마’를 창조해내고, 적국의 공주와 사랑에 빠진 왕자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슈퍼 에로티즘 증폭기 ‘팜므파탈라트론’을 만들기도 한다. (p.7 “들어가기에 앞서” 요약) 이런 능력이 있는 우주 최고의 AI를 장착한 로봇을 ‘제작자’라고 칭한다.

  이들이 가지고 있는 AI는 어쩌면 사람보다 더 섬세한 감정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어서, 둘이 서로에게 귀여운 수준으로 실패를 맛보게 하기 위해 예민한 신경전을 펼치기도 한다. 한 에피소드만 소개한다. 앞 문단에서 소개한 N 기계.

  제작자 트루를이 어느 날 N으로 시작하는 것은 무엇이든 만들 수 있는 기계를 발명했다. 시험적으로 만든 것이 바늘needle, 난징산産 무명바지nankeens와 네글리제를 만들라고 명령하니까 기계는 탁, 만들어냈다. 이어서 좀 더 어려운 과제로 주문하기를 “슬픔을 잊게 하는 약nepenthe, 다른 마취제narcotics들로 채운 물담뱃대narghile에 그 물건들을 전부 처넣고 못질해버리라고nail 했다.” (p.42) 나는 이게 잘 해석이 되지 않는데, 물담뱃대의 작은 사이펀 같은 곳에 바늘과 무명바지를 다른 것과 함께 쑤셔 넣으란 얘기인가 싶다.

  하여간 명령을 착실하게 다 완수하니까 이번엔 후광nimbuses, 국수noodles, 핵nuclei, 중성자neutrons, 나프타naphtha, 코nose, 님프nymph, 물의 요정naiad, 나트륨을 만들게 했더니, 다 만들어내고 마지막 나트륨은 만들지 못하겠다고 딱 거절을 해버렸던 거다. 열을 받은 트루를은 왜 소금을 못 만드느냐고 타박을 하니, 기계가 하시는 말씀이 자기는 나트륨은 모르고 소듐sodium만 아는데, 하여간 자기 기준으로 영어로 N에 화학기호 Na, Sodium은 능력 밖이란다. 그냥 넘어간 트루를. 그럼 밤night을 만들어보라고 하니 정말 세상에 밤이 깔리는 거 아닌가 말이지.

  기분이 좋아진 트루를은 친구이지만 경쟁자인 클라파우치우시를 부른다. 트루를이 친구 앞에서 얼마나 자랑을 하는지 은근히 심통이 나버린 클라파우치우시가 허락을 받아 기계한테 명령을 하기를, 자연nature을 만들어봐. 스타니스와프 렘이 가톨릭 집안에서 태어난 무신론자이다. 그래서 기계가 만들어 낸 것은? 순식간에 자연사학자naturalists들로 가득 차서 자기가 출판한 책을 흔들며 남의 책을 갈기갈기 찢어 버린다. 먼 곳에서는 불타는 장작더미가 보이는데 그 위에는 조물주Nature에 대한 순교자들이 지글지글 타고 있었다. 천둥이 치고, 이상한 버섯구름 기둥이 피어올랐다. 모두 동시에 떠들어대고 아무도 남의 말을 듣지 않으면서 온갖 계약서, 항소장, 소환장 같은 문서들이 날아다니는데 이런 모습이 지극히 자연스럽다고 한다.

  열받은 클라파우치우시. 이제 또 명령을 하기를 부정negative를 만들어보란다. 그러니까 기계는 반전자, 반중성자, 반중성미자 등등을 만들었다. 이제 꼭지가 돈 클라파우치우시는 그러면 무nothing을 만들어 보란다. 어, 좀 이상한 생각이 드는 트루를. 도대체 뭘 만들라는 거야? 말 그대로 무無를 만들기 위해서는 현존하는 모든 것을 지워야 하는 것. 그리하여 기계는 세상의 것들을 차근차근 사라지게, 멸절하게 만들었다. 이렇게 없어진 것들이 곤심, 포각, 타갈뱀, 슈뻥, 타타품, 이거뜰, 쇗불과 냥자 등등. 도대체 이것들이 뭐냐고? 없어진 것이니 내가 알 수 있나. 그러나 트루를과 클라파우치우시는 없어진 것들이 얼마나 사랑스럽고 온화했던 것인지 안다. 그런 것들이 없어져버렸다.

  이들은 N으로 시작하는 모든 것을 만들 수 있는 기계에게 더 이상 작동하지 말 것을 명령하고는 이미 없어진 것들을 통탄하게 아쉬워하고, 그렇게 넋이 나가 서 있는 동안 먼저 정신이 슬며시 돌아온 클라파우치우시는 슬쩍 트루를의 집을 나와 그길로 뺑소니 쳐버린다.


  이렇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스타니슬라프 렘은 1964년부터 1979년까지 15년 동안 썼다. 모두 15 편으로 되어 있으며, 전부 독립적이라 단편집/작품집 읽는 기분으로 한 편씩 즐길 수 있다. 책 소개에는 ‘사이버’에 호메로스의 ‘일리아드’를 합쳐 <사이버리아드>라고 제목을 지었다고 했으나, 읽어보니 ‘사이버리아드’보다는 <사이버라자드> 즉 ‘사이버’에 ‘세헤라자드’를 합친 것에 더 가깝다.

  하여간 스타니스와프 렘은 천재 맞다. 머리 속의 뇌활동이 인간과 지구에서 벗어나 우주 공간과 모든 생명 그리고 생명 수준에 근접하거나 초월한 기계까지 확장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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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25-05-14 20: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두 에스에프 안 좋아하는데 백작님 영업에 넘어가서 그 연두색 책 솔라리스 손 닿는 회전 책장에 소장중이란 말이지요...(살아있다면 팔백작님 연세되어 읽을지도?!?!ㅋㅋㅋㅋ)

Falstaff 2025-05-15 05:19   좋아요 1 | URL
천천히 읽으셔요. 언젠가는 읽으실 겁니다. ㅋㅋㅋ

바람돌이 2025-05-16 09: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제가 사랑하는 스타니스와프 렘!!!! 느낌표 백만개요. ㅎㅎ
근데 이 책 저는 구판으로 읽었는데 읽다가 너무 힘들었어요. 번역이..... 무슨 말인지 못알아들을 지경... ㅠ.ㅠ 새 번역이 나왔으니 다시 읽어봐야겠네요.
사이버리아드를 좋아하신다면 저는 이욘 티히의 우주 일지를 강력하게 권해드립니다. 진짜 웃다가 죽는줄 알았어요. ㅎㅎ 저는 사이버리아드보다 이연 티히가 더 좋았거든요. 물론 새 번역본 읽고 다시 판단해야겠지만요. ㅎㅎ

Falstaff 2025-05-16 15:51   좋아요 1 | URL
렘을 좋아하시는군요! 반갑습니다. ㅎㅎㅎ
넵. 저도 이욘 티히, 목록에 올려 놓았습니다. 기대하고 있답니다.
 
파란 눈 검은 머리
마르그리트 뒤라스 지음, 김현준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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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뒤라스의 후기작을 읽으려면 일단 긴장을 좀 해야 한다. 그럴 필요 있다. 내가 읽은 뒤라스, 그러니까 취미로 책을 읽는 일반 독자 수준에서 말하자면 1950년대 말에 출간한 <모데라토 칸타빌레> 이후 작품은 뒤라스가 누보 로망 작가군에 합류하면서 말한 대로 독자가 직접 작품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를 바란다. “독자가 적극적으로 작품에 참여”하는 것이 말이 쉽지, 이제 작품 속에 서사는 사라지고 피상적이라서 애매모호한 이미지만 툭 던져 놓는다는 것과 별로 다르지 않다. 그러니 작품에 대한 해석도 독자가 개별적으로 알아서 해야 한다. 드디어 골 아픈 뒤라스 시대를 맞는데, 웃기게도 이때부터 뒤라스는 본격적인 스타덤에 올라 소설이면 소설, 영화(연극)이면 영화(연극)에서 성공가도를 달린다. 우리나라에서도 50년대 말, 60년대 초에 발표한 작품으로 점점 성가를 높이다가 1980년 작품 <연인>이 92년에 영화화되어 공전의 히트를 치면서 단박에 ‘뒤라스’는 대중적인 이름이 된다. <연인>은 1980년에 단편집에 실렸다가 84년에 단행본으로 다시 찍어 공쿠르상을 받는 기염을 토한다.

  근데 위의 말을 믿지 마시라. 문단 속에 말했듯이 완전히 아마추어 입장에서 쓴 글일 뿐이다. 우리나라 전문가들, 특히 콧대가 하늘을 찌르는 소위 프로방스 학파들의 말마따나 나는 “오독을 마다하지 않는 다양한 독자층” 가운데 한 명에 불과하다. 뒤라스가 우리나라 책가게에 풀릴 때부터 읽어온 오랜 독자라서 이이의 후기작품부터 읽기 시작은 했지만 정작 전기 작품을 더 좋아하는, 문학적 시야가 트이지 않아 기껏해봤자 딜레탕트에 머무는 수준이다. 다 알면서 오늘도 뒤라스의 독후감을 쓴다. 어쩌랴, 잘난 척하는 게 재미있는 걸. 조금만 더 봐주시라.


  뒤라스는 일흔 살에 <고통>을, 일흔두 살에 <파란 눈 검은 머리>, 그리고 일흔여섯 살 때 <여름 비>를 출간한다. 물론 이전에도 그랬고, 세상의 거의 모든 사람도 마찬가지지만 늙은 뒤라스가 말하는 고통은 사랑의 고통이고, 일흔 살 때의 고통은 일흔두 살의 <파란 눈 검은 머리>에서도 이하동문이다. 다만 다른 것은 2년 전에는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호출하는 전화벨을 울려주기를 기다리는 고통이고, 이 책은 나 말고 다른 남자를 사랑하는 여자를 옆에 두는 고통이다.

  1944년에 뒤라스와 함께 레지스탕 활동을 하던 남편 로베르 앙텔므가 체포되어 강제수용소에 감금된다. 그리고 전쟁이 끝난 45년 6월에 다하우에서 돌아오는데, 딱 12개월만에 우리보다 체격이 큰 유럽 성인 남자가 38킬로그램의 몸무게였단다. 뼈에 피부를 살짝 코팅한 수준이었겠지. 오랜 세월이 지나고 뒤라스는 전남편으로 대표하는 레지스탕 포로의 고통 대신 작품 속에 2차 세계대전을 동시대에 겪었으면서 그들의 생명을 지켜주지 못한 유대인들의 정체성을 강조하는 것이 눈에 보인다. <파란 눈 검은 머리>도 예외가 아니지만 <여름 비>에서는 이게 심화 확대하여 일견 엉뚱하다, 뒤라스가 혹시 망령이 난 거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아마추어인 내가 읽기에 그랬다는 것이니 신경쓰지 마시라. 그러니까 이 책은 우리나라에 번역되어 나온 <고통>과 <여름 비> 딱 그 사이에 있어서, 사랑의 고통과 개연성을 의심할 만큼 난데없이 유대인 또는 유대 정서가 등장한다는 말이 하고 싶어서 떠들어댄 거다. 쓸데없이 말 길게 하는 거, 이거 쉽게 고쳐지지 않네 그려.


  장소는 프랑스 북부 해변. 시간은 여름부터 겨울까지. 해는 넘기지 않는다.

  여름 어느 저녁녘이 이야기의 중심이라고 딱 금을 긋고 시작한다. 그러고보니 그렇다. 저녁, 석양 무렵이 주요 시간대이다. 등장인물은 그와 그녀. 첫 장소. 호텔 데로슈의 로비. 호텔 안에는 아이들과 여자들이 모여 있고, 밖에는 테라스의 남자들이 담배를 피우며 몰려 있다. 이들은 여름 저녁 북부 해변의 예외적인 아름다움에 관해 수다를 떨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남자가 호텔 창가에 도착했다. 여자는 이미 그곳에 있다. 창에서 몇 미터 떨어져 다른 여자들 사이에 있어서 그녀의 얼굴을 볼 수는 없다. 흰 운동화를 신은 젊은 여자. 길고 유연한 몸. 하얀 피부. 흰 반바지. 허리에 검은 실크 스카프를 두르고. 이 검정 실크 스카프는 책을 덮을 때까지 중요한 소도구로 계속 사용한다. 나중에 그와 함께 밤을 보내는 방에서 얼굴을 가리는 용도로. 그리고 파란 눈.

  여기에 젊은 외국인 남자가 들어온다. 주인공 ‘그’가 아니다. 막 로비에 발을 딛은 그는 파란 눈에 검은 머리카락이며, 키가 크고 피부가 희다. 그녀처럼. 앞 문단에서 말했듯이 후에 유대인이라고 정해진다. 근데 탁 읽는 순간부터 외모에 관한 묘사가 여자, 그녀와 매우 유사하다. 큰 키와 흰 피부, 파란 눈에 검정 머리카락. 뒤라스는 이 유대인 청년과 그녀의 경계에 크게 무게를 두지 않는다. 그녀가 유대인 남자가 될 수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독자는 그러나 아닌 것으로 읽힌다.

  그리고 잠깐 독자는 헛갈린다. 여기서 등장하는 3인칭 대명사 ‘그.’ 그녀는 그가 놓쳤던 사람이란다. 그녀를 되찾았다는 기쁨으로 가득하지만 다시 그녀를 놓칠 수밖에 없다는 절망에 빠져 있다. 잠시 긴장을 놓은 사이에 파란 눈에 검은 머리카락의 유대인 남자와 그의 장면이 휙 지나갔을까? 그랬을 수도, 아닐 수도 있다. 작가가 그렇게 유도했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도 우아하고, 마르고, 키가 큰 남자이다. 값비싸고 예쁘장한 옷차림을 했다. 탁 떠오르는 것이 동성애자 같다. 조금 후에 추리가 맞는 것으로 드러난다. 그는 동성애자다. 그러나 그녀를 사랑한다.

  그는 호텔에서 나와 카페로 간다. 카페에는 그녀가 다른 사람들과 벌써 와 있다. 여기에 특징적인 문장이 있다.

  “그녀가 파란 눈 검은 머리의 젊은 외국인과 함께 이 카페에 와 있는 것이 아닌 이상 그는 그녀를 알아보지 못할 것이다.”

  그도 파란 눈에 검은 머리카락을 한 키 큰 유대인을 찾고 있는 거다. 먼저 젊은 외국인이 눈에 들어오고 이후에 그녀도 카페에 있으면 알아차린다는 거니까. 그는 게이가 맞다. 그는 그녀를 알아보지 못했다. 오히려 그녀가 그의 테이블로 가 마주 앉는다. 그녀는 누구일까? 혹시 매춘부? 그럴 듯하다. 이들은 카페가 문을 닫을 때까지 머물다가 도시 깊숙한 곳의 술집으로 향한다. 동이 틀 때까지.

  그는 그녀에게 자기 방으로 오라고, 그러면 돈을 주겠다고 제안한다. 그녀는 응한다. 침대도 없는 방. 방의 한 가운데 흰 시트가 깔려 있고 그녀는 거기 눕는다. 그는 그녀와 거리를 두고 누워 몸의 어떤 부위도 닿지 않는다. 처음엔 그냥 이렇게. 날들이 지나면 둘 다 옷을 다 벗고. 그럼에도 피부의 접촉은 없다. 그가 게이라서? 어쨌거나 그녀는 욕망한다. 그녀가 그에게 키스한다. 그리고 그에게 말한다. 지금 그에게 키스하는 거라고. 그 사람. 그 모르는 사람에게. 누구일까? 그녀의 가슴과 팔과 허벅지에 멍을 들게 난폭한 섹스를 하는 남자. 유대인 청년?

  겨울이 오고 테라스에 선 그는 유대인 청년이 흰 크루즈를 타고 해변을 떠나는 모습을 본다.


  이런 것들을 뒤라스는 마치 연극으로 만들 때 출연자와의 토론으로도 읽히기 바란다. 그래서 작품의 첫 문장은 이렇다.

  “여름 어느 저녁녘이, 배우가 말한다, 이야기의 중심이라고 해볼 것이다.”

  여기서 작가의 위치는 어디쯤일까? 연극이라면 드라마투르그 정도로 보인다. 그러나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것보다, 우리말 문장이다. 많이 과장해서 말하면 작품 속 전체 음절의 15퍼센트는 ‘그’이다. 3인칭대명사 ‘그’와 ‘그’녀, 지시대명사 ‘그’가 많아도 너무 많다. 짜증나는 건 당연하고 책을 읽는데 많이 지장을 받을 정도. 나중에는 문장을 읽으며 어느 ‘그’를 빼고 읽으면 더 자연스러울까, 이걸 생각하면서, ‘그’자를 빼는 걸 재미로 생각하니까 훨씬 수월하게 읽힌다. 역자도 나름대로 할 말이 있을 터.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원문을 충실하게 번역하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고 하겠지. 그러나 글쓰기 교본 2장 1절에도 나오듯이 ‘그’는 좋은 문장 쓰기로 가는 지옥의 길이다. 읽는 사람은 멀미난다. 그럼에도 끝까지 읽었으니 나도 참 독종이다. 이 책이 역자의 첫 번역서인 것 같은데, 건필하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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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gettable. 2025-05-13 10: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 와 ”그녀“ ”그들“ 너무 싫어요 ㅋㅋㅋㅋㅋ 검은머리에 초록 눈동자를 가진 사람이 이상형이라고 했던 어떤 사람이 떠오르네요.

Falstaff 2025-05-13 15:51   좋아요 0 | URL
제가 과민형이 아니군요! 근데 이상형이 누구였을지 궁금합니다. ㅎㅎㅎ
 
새해 연습 위픽
김지연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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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3년생 김지연은 “거제도에서 조선노동자 아버지와 가정주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대학은 (가족이 이사를 했는지 혼자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서울에서 명지대 국문과를 졸업했다. 애초 시를 쓰려다가 소설로 바꾸어 2008년에 단편 <작정기>로 등단, 김만중문학상 신인상 그리고 70회 현대문학상을 받아 상금 천만원, 세금 제하고 989만원을 현금으로 받았다. 이 정도면 잘 나가는 소설가라고 할 수 있는데도, 오, 우리나라의 출판 문학이여, 아직 (지금부터 석 달 전까지) 집도 없고 차도 없었단다. 하기는, 적수공권으로 서울에서 시작했으면 마흔둘에 집 사기 쉽지 않지. 뭐 요즘 사는 게 다 그렇다. 마음 넓은 김지연 씨가 이해하고 지나가자.

  2008년 데뷔 치고는 출간한 책 권수가 적다. 그동안 소설집 두 권, 중편 한 권, 장편 한 권. 이렇게 네 권이다. 단편 꼴랑 하나 실은 <새해 연습>은 책으로 세지 않으면 그렇다. 나는 <새해 연습>이 처음 읽은 김지연이다. 근데 마음에 든다. 내가 좀 까다롭다. 특히 단편일 경우에는 더 그렇다.


  차분해서 좋다. 튀려 하지 않는다. 웬만하면 쓸 거 같은 자극적인 장면도 없고 따라서 과장도 없다. 맛이 없어서 좋다. 아니, 맛이 약하고 순해서 좋다. 당연히 할 말은 다 한다. 새해면 제일 추운 겨울인데도 춥지 않아서 좋다. 날이 안 추운 게 아니고 글이 안 춥다.

  홍미의 부모는 일찌감치 갈라섰다. 그리고 각기 다른 사람과 다시 결혼해 살았다. 홍미는 이쪽 저쪽을 오가며 살았다. 이쪽에 씨다른 형제, 저쪽엔 배다른 형제.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기숙사 있는 공장에 취직해 들어갔다. 아버지는 교통사고로 죽었고 어머니는 폐암으로 갔다. 홍미는 누구의 장례식에도 가지 않았다. 가봤자 찬밥이었을 거라는 이야기를 작가 김지연은 하지 않는다. 대신 거기 갔더라면 혹시 할머니를 만날 수 있었을까, 라고 잠깐 생각한다. 싸구려 작가들의 경우, 장례식장에 나타난 전남편, 전처 소생이 찬밥이란 말을 하지 않기도 쉽지 않다. 독자는 거기까지 염두에 둘 필요는 없지만 이렇게 조금씩 김지연이라는 작가를 알게 된다.

  할머니가 죽었다. 목을 맸고, 죽고 일주일이 지나 독거노인 관리 담당 공무원이 발견했다. 세상에 오롯이 홍미 혼자 남았다. 올 사람도 없어 빈소 없이 장례를 치뤘다. 할머니가 살던 집은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언덕 위의 낡은 집. 이제 그 집은 홍미 것이 될까? 아니다. 왜 아닌지는 나오지 않는다. 할머니 소유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집이 이제 자기 것이었으면 좋았겠지만 그렇다고 미련이 있는 것도 아니다. 어차피 세상에 나서 뭔가 제대로 된 걸 가져본 적이 없으니 뭐 그런가 보다 했다. 외로우면 빨리 깨는 법이라서.

  할머니 이름은 ‘양지.’ 이름처럼 바닷가 언덕바라지라서 바람은 많아도 햇빛 또한 많은 곳에서 살다 갔다. 아무것도 남기지 않았다. 18년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쓴 일기장 더미만 빼고. 18년치의 일기장이 이불장에 차곡차곡 재여 있었다.

  “그냥 버리셔도 돼요. 이제 전적으로 임홍미 님 소유니까요. 마음대로 하시면 돼요. 종이니까 그냥 밖에 내다 놔도 다 수거해 갈 거예요.”

  홍미는 그럴 수 없다. 누가 볼까봐. 일기니까. 그래서 담배도 한 대 피울 겸 옥상에 올라간 김에 조금 태워본다. 근데 유일한 친구 민석에게 전화가 온다. 이런저런 얘기하다 옥상에서 무엇을 태우는 건 불법이라고 한다. 홍미는 불법을 저지르기 싫다. 법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보호받고 싶은 홍미.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법을 어기지 말아야 한다. 홍미는 발로 밟아 불을 끄고, 태우는 대신 조금씩, 한두 권씩 회사에 가지고 가 파쇄하기로 하고, 그렇게 한다. 순백의 파쇄지 사이에 누렇게 변색한 할머니의 일기. 그 작은 파편들.

  할머니 양지의 일기가 보통 수준을 넘는다.


  “덥지도 않은데 선풍기를 틀었다. 선풍기를 틀어놓고 있으면 바람이 불어서 화장대 앞에 있는 휴지가 팔랑팔랑 움직인다.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는 것을 보고 있으면 갑갑하다는 기분이 들어서 무언가라도 움직이는 것을 보는 것이 좋다. 시간이 흐른다는 것이 느껴진다. (후략)”  (p.15)


  이처럼 쓰기 쉬울 것 같지? 결코. 홍미가 할머니를 닮았으면, 유전자 좀 물려받았으면 소설가가 될 뻔했는데, 엉뚱하게도 DNA는 홍미 대신 김지연에게 가버렸다.

  홍미는 유일한 친구 민석과 함께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의 할머니 옛집에 들러본다. 철대문은 누가 떼어갔고 마당의 시멘트 갈라진 땅에서 잡초가 돋았다. 방과 부엌에는 갖은 쓰레기가 넘쳐있다. 이거나마 내 집이었으면. 잠깐 생각한다.

  할머니가 죽어도 시간은 계속 흐른다. 홍미가 법을 지켜도 세상은 그렇지 않다. 지금 경리로 일하는 작은 기념품 회사의 사장 경식은 홍미에게 터치하며 일종의 연애를 제안하고 홍미는 당연히 거절한다. 사장 경식은 유부남이며, 아내가 아닌 여자와 연애 경험이 있다. 홍미가 거절하고 며칠 후, 경식은 회사의 사정이 어려워져 인원을 줄여야 하니 퇴사해달라고 요구한다. 그렇게 하는 홍미. 하지만 곧 구인광고를 발견한다. 세상은 그렇게 흐른다. 여차하면 나올 거 같은 202X년의 성추행 장면을 김지연은 묘사하지 않는다. 경식의 차 안에서 홍미는 말을 듣지 못한 듯 “내일 뵐게요.”하고 내리는 것으로 마감한다. 세상을 둘러봐도 자기 혼자인 홍미는 “자기 자신에 대해 생각하고 싶었지만 그보다는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 대해 생각할 때가 더 많았고 그날도 그랬다.” (p.60)

  반지하에 살고 있는 빌라도 경매에 넘어가 전세금 되돌려 받기가 쉽지는 않을 거 같다. 꼭 없는 사람들한테만 일은 엎친 데 덮친다. 홍미는 덤덤하다. 덤덤하게 세상에서 유일한 친구 민석에게 말한다.

  “민석아, 우리 결혼할래?”

  저번에 먼저 결혼하자고 했던 민석은 안 된다고 대답한다.

  “생각해봤는데 그래도 친구가 한 명은 결혼식에 와야 할 것 같아서. 너 말고는 친구가 없거든.”

  민석도 부모가 다 돌아가고 세상천지에 자기 혼자다. 사는 게 다 그렇다.

  그래도 이들은 꿀꿀하지 않다. 속으로 곪아도 겉으로만 그러는지, 아니면 속도 정작 얹힌 것이 별로 없는지 이들은 어쨌거나 나쁘지 않게 인사한다.

  “해피 뉴 이어!”

  물론 이게 끝은 아니다. 끝이 아니지만, 그래도 이들은 새해가 되면 아주 잘 살아보고 싶다.

  이게 끝은 아니다.

  김지연의 책을 좀 더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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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5-12 15:5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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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5-12 16:4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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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5-13 11:3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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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5-14 22:2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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