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그늘진 낙원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 지음, 홍경호, 박상배 옮김 / 종합출판범우 / 2021년 3월
평점 :
절판
.
레마르크는 1898년 독일 오스나브뤼크의 로마 가톨릭 가정에서 에리히 파울 레마르크 Erich Paul Remark라는 이름으로 출생했다. 레마르크는 어린 시절부터 책을 제본해 가족들을 부양하는 아버지 페터 프란츠 레마르크 씨를 경원하는 대신 어머니 안나 마리아와 친밀한 시절을 보냈다. 그래서 나중에 작가가 됐을 때 자신의 가운데 이름을 원래 파울에서 마리아로 바꾸었을 뿐만 아니라, 성마저 대표작 <서부전선 이상없다>를 발표할 때부터 Remark를 Remarque로 고쳐버렸다. 비록 독일 태생이지만 조상이 프랑스에서 건너온 것 같다. 이 조숙한 소년은 열네 살에 벌써 칸트, 니체, 쇼펜하우어 등을 섭렵했다고 하고, 자료마다 조금 다른데, 책의 연보엔 열여섯 살 때, 인터넷 자료엔 열여덟 살 때인 1917년 6월에 징집되어 서부전선으로 배치되었다가 부상을 입어 야전병원에 입원, 다시 배치 후 곧바로 종전을 맞았다고 한다. 중요한 것은 레마르크가 십대 시절에 1차 세계대전에 참전을 했으며, 당시의 경험으로 <서부전선 이상없다>와 <사랑할 때와 죽을 때>를 남겨 위대한 반전 문학을 전승했다는 점이다. 여기에 <개선문>을 보태 소위 ‘3대 레마르크’라고 흔히들 이야기한다.
레마르크의 소설을 거칠게 구분을 하면, <서부전선…>, <사랑할 때와…> 등 실제 전쟁에 참여하는 군인을 주인공으로 하는 전장battlefield소설과 <개선문>, <리스본의 밤> 같은 망명문학으로 나눌 수 있는데, 이 <그늘진 낙원: Schatten im Paradies>도 망명문학이며, 레마르크 가운데 내가 처음 읽은 미국, 특히 뉴욕을 무대로 하는 이주민들의 정처 없는 이방인 신세를 그린 작품이다. 레마르크는 서른한 살이던 1929년에 <서부전선…>를 발표하여 당시 기준으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고, 31년에 속편이라 할 수 있는 <귀로>를 간행해 거의 권력을 쥐려고 하는 국가사회주의 당으로부터 반전작가라고, 지금은 본받을 만하지만 당시로 보면 반역자에 가까운 호칭을 얻게 된다. 1932년 나치가 정권을 잡자마자 레마르크는 어쩔 수 없이 스위스로 망명의 길을 떠나고, 1939년에는 독일로부터 국적마저 몰수당한다. 스위스 국적을 취득하지 못한 상태의 무국적자 레마르크는, 하도 많은 이주 피난민 때문에 골머리를 앓아 인심이 야박해진 스위스에서 전쟁 터지기 바로 직전 미국으로 다시 망명을 떠난다. 레마르크는 순서대로 아들-딸-아들-딸 형제 가운데 셋째로 형은 어려서 죽었고, 누나도 당시에 망명을 한 것 같다. 문제는 여동생 엘프리데. 동생은 평범한 재단사로 일하다가 반전 발언을 했다는 죄명으로 1943년에 게슈타포에게 체포된다. 게다가 국가의 적인 반전작가 레마르크의 동생인 것이 알려져 결국 단두대에서 목이 잘리는 최후를 맞는다.
나치의 문화 탄압이라면 소위 말하는 “퇴폐예술”을 빼놓을 수 없다. 원래는 나치 집권시절인 1930년대 초중반부터 1945년까지 그들의 입맛에 맞지 않는 모더니즘 예술을 일컬었지만 급속도로 반anti애국주의 적이고 친유대 적이며, 기타 나치의 사상과 어긋난 예술작업을 통틀어 “퇴폐”라는 멸칭으로 뒤집어 씌운 것이다. 유대인이 아닌 문학가 쪽에서는 좌파 예술인이라 찍힌 베르톨트 브레히트를 선두로, 독일 반전주의 문학의 첨병인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 그리고 1차 세계대전 당시엔 다분히 국가주의자이었을지라도 이후 친유대 경향을 보였다는 죄목으로 노벨 문학상까지 받은 토마스 만도 포함한다. 이들의 책은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인디아나 존스>에서 보듯 광장에 산처럼 책을 쌓아놓고 불을 싸질러버리는 야만도 서슴지 않았다. 기원전도 아니고 무려 기독 탄생력 2천 년이 가까워올 때. 이때 불탄 많은 책 가운데 베를린 책방에서 수거해온 <서부전선 이상없다>도 포함되어 있었을 것이다.
<그늘진 낙원>의 주인공 ‘나’는 유대인이 아닌 기자 출신의 독일인으로 나치와 뜻을 달리하는 것이 들통이 나 독일의 집단수용소에 수용되었다가 탈출해 스위스로 월경을 했지만, 정당한 서류가 없다는 이유로 나중에 생각해보면 호텔 같은 감방에서 몇 달을 갇혀 지내다가 벨기에로 추방당한다. 벨기에 역시 나치의 강한 영향권 안에 있어 정부기관에 잡히기만 하면 큰 위험을 당해야 했는데, 브뤼셀 박물관장의 호의에 힘입어 박물관 내 창이 없는 지하에서 2년을 버텨야 했다. ‘나’는 직원 모두 퇴근한 밤에만 지상으로 나와 달빛과 별빛에 의지해 중국의 은, 주, 한나라 청동 제품을 비롯해 서양의 온갖 예술작품을 감상할 수 있었으며, 이 과정을 통해 작품을 볼 줄 아는 안목을 확장한다. 2년 후 ‘나’는 브뤼셀을 빠져나와 프랑스 국경을 넘지만, 곧바로 체포되어 프랑스 수용소에 수용되고 브뤼셀 박물관장은 ‘나’를 은닉해준 혐의로 체포되어 책이 끝날 때까지 안위를 모르게 된다. 죽었다고 보는 게 마땅하리라. 프랑스 수용소에서도 극적으로 탈출한 ‘나’는 리스본 또는 마르세유를 통해 이미 1933년에 죽은 로버트 로스라는 사람의 여권을 갖고 미국행 상선에 올라 뉴욕에 도착했다. 그러나 여기서도 정착할 수 없어 엘리스 섬에 구속되었다가 3개월 한도로 뉴욕에 머무는 것을 허락받았다. 3개월. 이후 ‘나’는 전시 중인 유럽을 제외한 어느 나라를 향해 미국을 떠나야 하는 처지에서 <그늘진 낙원>은 시작한다.
‘나’는 어쨌거나 미국에서 “로버트 로스”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엘리스 섬에 억류되었을 때 만난 터키인이 뉴욕에 사는 자기 친구의 주소를 일러주었고, 3개월 기한으로 섬에서 빠져나오자마자 로버트는 주소에 쓰인 ‘로이벤 호텔’로 가서 1917년 러시아 혁명 당시 조국을 떠나 미국으로 온 백계 러시아인 멜리코프를 찾는다. 멜리코프, 나이든 망명객은 미국에 도착한지 벌써 수십년이 지나 호텔에서도 주인 다음의 권위를 누리고 있지만 로버트를 비롯한 이주민들에게 친절하다. 로버트의 신세를 듣는 바로 첫날, 자기 방에 침대를 하나 더 가져다 놓아 ‘나’의 숙식을 해결해주고 보드카도 한 잔 주는 등 온갖 편의를 봐준다. 아직 영어도 서툰 ‘나’ 로버트. 그러나 기자 출신이라 그런지 언어를 빠른 속도로 익혀가며 러시아, 독일, 유대인, 프랑스를 거쳐 브루클린 액센트까지 사용하는 영어로 무장하게 되면서 뉴욕의 이주민 커뮤니티에 빠른 속도로 적응하게 된다. 당연히 사랑 이야기도 등장한다. 프랑스 태생의 망명 백계 러시아 여자 나타샤 페트로브나. 내가 아는 레마르크의 다른 작품 속에도 이 나타샤 페르로브나와 매우 비슷한 인물이 있다. <개선문>의 조앙 마두. 이 여자들의 대책없는 허무라니, 얼마나 매혹적인지. 화려한 모델로 큼지막한 다이아몬드와 사파이어로 장식한 왕관을 쓰고, 고급 모피를 둘렀지만 자신의 것은 하나도 없는 모델을 직업으로 가지고 있는 나타샤 같은 작가라서 그럴까? 같은 망명 소설이라서? 아무러면 어떤가. 오히려 마치 오랜만에 마주친 것 같은 친근함이 들어 좋았는 것을.
그리고 대부분 유대인으로 이루어진 이주민 커뮤니티. 그들은 단지 ‘유럽에서 온 이주민’이라는 것 하나로 자기 민족인 유대인들과 차별을 두지 않고 편의를 봐준다. 일찍 미국으로 건너와 갑부가 된 독일계 유대인은 로버트에게 이주민 기준으로 치면 거금을 빌려주어 체류기간 연장을 위해 변호사를 고용하게 해주고, 파티를 열어 실컷 먹고 남은, 진짜 헝가리 여성 주방장이 요리한 굴라시를 왕창 포장해 가져가게 해주고, 서로의 직장을 알아봐준다.
이렇게 많은 이주민들이 조연으로 등장하니까 이들 모두, 역시 유럽을 떠나 미국으로 흘러 들어올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고, 나치의 눈과 손길을 피해 이주해오면서 피할 수 없었던 희생도 있었을 것이며, 작품의 맛을 더해주는 무모한 모험과 모험 과정에서 약간의 코믹한 장면이 있었던 건 당연하다. 이주민들은 몸은 미국, 세계의 수도가 될 뉴욕에 있으나 이들이 누리는 미국이라는 낙원 속에서 절대로 원주민이 될 수 없는 그림자 신세의 이주민들. 그리하여 그들이 보는 뉴욕 속 자신들은 낙원 속의 그림자, Schatten im Paradies일 수밖에. ‘나’ 로버트는 말한다.
“이게 바로 낙원이지. 당신이 좋다면 ‘그늘진 낙원’이라 부르지. 다른 사람들에게도 중요하지만 내겐 더욱 귀중한 모든 것과 격리된 채, 내 편으로 본다면 동면하는 낙원이지. 타의의 방관자의 낙원이야. 나타샤! 우리에게 남아 있는 것만 얘기합시다! 밤과 별, 아직도 우리 내부에 꿈틀거리는 생의 불꽃, 과거의 기억은 그만둡시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과거의 기억은 영원히 그만 둘 수 없다는 것을. 내가 읽은 레마르크 속에서 주인공들은 대체로 우울증을 겪고 있다. 이 증상은 전쟁터 속에서 전쟁에 좌절하는 인물들보다 오히려 어쩔 수 없이 고향을 떠나와 낯선 곳에 자리를 잡을 수밖에 없었던 이주민, 이방인들의 경우가 더 짙었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 속의 낯선 한 명. 하지만 어쩌랴. 당신이나 나나 어차피 세상 속의 낯선 한 명일 뿐인 것을. 그대, 아니라고 생각하면, 자리에서 일어나 한 번 뒤돌아보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