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흐의 집을 아시나요? - 화가들의 삶의 자취를 따라 떠나는 프랑스 미술 여행, 개정판
최내경 지음 / 청어람장서가(장서가)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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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애하는 알라딘 친구 햇살과함께 님의 글을 읽고, 오베르 쉬즈 우아르... 딱, 떠올랐습니다.

2001년에 쓴 글입니다. 이 책의 초판을 읽고 쓴 글로 다니던 회사의 사보에 기고했던 잡문입니다. 지금 읽기에는 낡은 감상문입니다 쪽팔림을 무릅쓰고 소개해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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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새 가을이 쳐들어오고 있습니다.
  당신은 외롭지 않습니까. 당신 가슴 속 깊숙한 고독의 빈자리로 문득 황황한 바람이 불어오지는 않습니까. 어려운 시절, 거친 생활을 살아내느라 무수한 사람들 사이에 부대끼고 함부로 관계들을 만들어가면서도 어느 순간 뒤돌아보면 아무도 없는 사막을 바라보지는 않나요. 부모와 배우자, 그리고 정겨운 살붙이들이 아주 가끔은 전혀 낯선 모습으로 다가오기도 하겠군요.
  자,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 가을에.
  가끔은 길을 떠나고 싶습니다. 지구라는 별자리에 오직 당신만이 혼자가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 때, 당신은 헤진 배낭을 메고 그저 길을 나서고싶어질 것입니다. 당신을 알아보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 곳에서 지친 발걸음을 쉬고싶겠지요. 당신은 신발끈을 풀고 고단한 발바닥을 두드립니다. 그러다가 무거운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두리번거려봅니다. 저런, 그러고보니 외로운 당신을 품고있는 공기 속에서 위대했으나 고독했던 영혼들이 당신을 지켜보고 있군요.
  당신은 행복합니다. 위대한 예술품을 만들어낸 고독한 영혼들이 당신과 함께하니까요.
그러나 정말로 자리를 박차고 길을 나설 수 있으면 대단한 용기를 가진 사람이거나 부모를 잘 만난 사람이겠지요. 보통의 당신은 길 떠날 생각조차 못할 확률이 많습니다. 시간이 없고, 돈이 없는.... 하지만 언젠가 길을 떠나리라, 마치 비밀스런 에로스의 약속인 양 마음 한 쪽엔 그런 갈증을 이 가을에도 당신은 품고 있겠지요. 그 희망, 사실은 조금은 덧없는 그런 희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뒤 돌아보지 않고 베낭을 멜 희망이 있는 당신은 지금 불행하고, 그럴 희망을 갖지 않은 당신은 언제나 불행합니다.

  그날을 기다리나요? 그렇다면 당신이 기다리고 있는 일탈의 그날을 위해 이 책을 소개합니다. 《고흐의 집을 아시나요?》.
  프랑스.... 혹은 불란서를 소리내 발음해보십시오. 그것은 이미 당신에게 어떤 동경으로서의 보통명사입니다. 유럽의 중심, 세계 2위의 농산물 수출국이라는 지리부도적인 지식보다도 당신의 가슴 속에서 프랑스는 로제 마르탱 뒤 가르, 앙드레 말로 같은 작가, <암흑가의 두 사람>에서의 쟝 가뱅과 알랭 들롱의 우수 깊은 눈동자, 장-폴 고띠에, 크리스티앙 디오르 등의 패션 디자이너... 이런 소프트가 먼저 떠오를지도 모릅니다. 아니죠, 당신을 포함한 많은 우리 보통의 사람들은 의당 그러리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어쩌면 몽마르트 언덕의 노천 카페에 몰려앉아있는 혁명가 레닌과 바쿠닌 같은 망명 이방인의 모습을 상상할 수도 있겠군요.
  그런데 프랑스의 무수한 소프트 중에 프랑스를 프랑스답게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소프트는 무엇일까요. 루브르 박물관의 눈썹 없는 여인 <모나리자>를 위시한 미술품을 제일 윗자리에 놓지 않으면 많이 서운하리라 생각합니다.
  책《고흐의 집을 아시나요?》는 그러나 고흐의 작품에 대한 설명서나 입문서가 아닙니다. 《고흐의 집을 아시나요?》에서 고흐를 발견할 수 있는 페이지는 얼마 되지 않는군요. 그의 그림도 여섯 컷의 사진만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럼 이 책의 정체가 도대체 무엇이겠습니까.
  앞에서 얘기했듯, 어느날 갑자기 단행할 당신의 일탈, 그 여행길에 당신의 헤진 베낭 속에 담아갈 안내서입니다. 당신은 이 책과 함께 지난 세기와 지지난 세기에 가장 고독했고 우울했던 영혼들의 흔적을 찾아갈 수 있습니다. 즉, 고흐의 작품을 보러 떠나는 것이 아닙니다. 고흐가 자신을 향해 권총을 발사했던 그 무서운 고독과 절망의 시절을 온전히 담아낸 다락방으로 당신의 발길을 옮길 수 있게하는 책이지요. 낡은 침대가 놓인 그 좁은 다락방에서 밤새도록 신음을 하던 고흐를 당신은 내려다볼 수 있습니다. 비뚤배뚤하게 원색으로 불안하게 그려놓은 오베르 교회, 위대한 그 그림을 볼 수 있게 안내하는 것이 아니고, 어느 천재에 의하여 불멸의 명화로 그려진 교회 건물을 당신은 볼 수 있을 겁니다.
  물론 시간의 마모는 직접 고흐의 집을 찾아나선 나그네의 발길에 쓸쓸한 회한 만을 선사하기 십상입니다만, 고독했던 천재의 숨결마저 어느 한 구석에서 발견하기 기대난망이겠지만 굳이 그 집을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당신의 외로운 영혼을 위해서일 것입니다.
  작가 최내경은 고흐가 최후를 보냈던 오베르 쉬르 우아즈의 셋집을 비롯해서 베르디 오페라 <돈 카를로> 1막의 무대가 되는 퐁텐블로 숲 가의 밀레의 집과 아틀리에, 거장 다 빈치가 만년을 보낸 클로 뤼세, 프랑스 회화의 다른 큰 축을 이룬 남프랑스 지방, 그리고 파리를 대단원으로 해서 간결하게, 그렇습니다, 우리가 섣부른 기행문에서 흔히 읽을 수 있는 허접한 감상을 첨가하지 않고 담담히 그려내고 있습니다.

  최내경의 글은 이렇듯 조금은 건조합니다. 그러나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아까운 지면을 빌어 소개드릴 수 있습니다. 그것은 여백에 대한 매력이지요. 작가는 고흐의 집으로 가는 길을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그곳에 가면 어느어느 것이 있다고 말을 합니다.
  그 다음의 지면은 당신의 순서입니다. 최내경의 책을 헌 베낭에 넣고 남프랑스에서 다시 파리로 향하는 밤 열차를 탄 당신은 열차 객실에서 이방의 문자로 인쇄된 《고흐의 집을 아시나요?》를 꺼내 그 빈 여백에 당신의 감상을 적어놓을 수 있습니다. 최내경은 남부에까지 가서 왜 엑상 프로방스의 세잔의 집엔 들러보지 않았을까...를 빈 자리에 쓸 수도 있고, 끝없이 펼쳐지는 남 프랑스의 들녘을 밤기차에서는 볼 수 없었다고 써놓아도 좋을 것입니다. 그건 당신의 몫이니까요.

  당신 속의 외로운 영혼을 위하여, 어느날 문득 저질러질 일탈을 위하여 기쁘게 《고흐의 집을 아시나요?》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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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2-02-13 21:26   좋아요 7 | 댓글달기 | URL
와 2001년 골드문트는 진짜 골드문트였군요? 감수성 폭발방랑감성! ㅋㅋㅋㅋㅋㅋ

아니 근데 역시 직장이 사람을 망쳤넼ㅋㅋㅋㅋㅋㅋㅋㅋ 그 감수성 다 어디 갔어요!

Falstaff 2022-02-14 07:36   좋아요 4 | URL
그러게 말입니다. 35년 넘게 직장생활 해서 얻은 결론이, 저는 애초에 봉급쟁이 체질이 아니었다는 겁니다. ㅠㅠ
에휴. 오늘 입원하시는군요. 힘! 힘!! 힘힘힘!!!

햇살과함께 2022-02-13 21:36   좋아요 7 | 댓글달기 | URL
이런! 영광입니다! 골드문트님의 갬성 추억을 깨우다니 ㅋㅋㅋ

Falstaff 2022-02-14 07:36   좋아요 3 | URL
제가 고맙지요. PC 저 새까만 구석에서 이 글을 꺼냈잖아요! ㅋㅋㅋ

새파랑 2022-02-13 21:36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와 ㅋ 2001년에 회사의 사보라니 놀랍습니다. 20년의 시간이 지나도 그시절 감성이 어느정도(?)는 남아있는거 같아요 ^^

‘당신 속의 외로운 영혼을 위하여..‘라니 골드문트님이 아마 회사에서 가장 감수성이 풍부하셨을거라 확인합니다 ~!

Falstaff 2022-02-14 07:37   좋아요 5 | URL
지금은 사보 없어졌습니다.
2000년대 들어 아직 사보 만드는 회사는 별로 없을 거예요. 사보도 한물 갔더군요.

페넬로페 2022-02-13 21:53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와우, 짝짝짝👍👍👍🌺🌺
회사 사보에 이런 글을 기고하시다니~~
혹시 승진하시지는 않으셨나요?
글 속에 온갖 문화적인 것과 사람의 향기가 들어 있어요~~
이 책 넘 읽고 싶네요^^

Falstaff 2022-02-14 07:38   좋아요 4 | URL
ㅋㅎㅎㅎ 승진하고는 별갭니다.
사보의 내용과는 별개로 소위 강추....는 아닙니다. 벌써 20년 전에 나온 책이라 지금 얼마나 효용이 있는지는 모르겠어요.

hnine 2022-02-13 22:2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2001년이 무려 20년 전인가요? 바로 몇년 전 같은데 ㅠㅠ
그러니까 이 책은 고흐보다는 고흐가 짧은 일생 동안 거쳐간 장소, 더 정확하게는 프랑스 기행문에 가까운가보죠? 그만큼 고흐가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모으는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는 말이 되네요.
그래도 프랑스를 다섯번이나 방문하고 쓴 기행문이라니 읽어보고 싶네요.

Falstaff 2022-02-14 07:42   좋아요 3 | URL
옙. 최내경 선생이 지금은 서경대 교수를 하고 있는데, 그 자리가 제가 졸업한 대일고등학교 자리라서.... 이건 그냥 농담이고요.... 최현무 선생, 우리나라 불문학계에서 김화영, 김치수 등과 함께 소위 프로방스 학파를 이룬 필명 최윤의 제자인데요, 이 책은, 책을 거의 처음 내던 때라 문장이 조금 거칩니다.
나름 꽤 공을 들였지만 훌륭하다, 정도까지는 아닙니다.

그레이스 2022-02-13 22:3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동경의 보통명사!
멋있어요~~

Falstaff 2022-02-14 07:43   좋아요 4 | URL
ㅎㅎㅎ 고맙습니다.
팔팔했던 때는 이렇게 살았는데 말입죠.

미미 2022-02-13 22:5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술 드시고 쓰셨던 건가요?ㅎㅎ
골드문트님 이 글 너무×30 좋네요!! 이게 대체 책 내용이 아닌 감상문이라는 점이 신기할 따름입니다 ^^*

Falstaff 2022-02-14 07:44   좋아요 4 | URL
오호, 저는 여간해서 술 마시고 글 안 씁니다.
취해서 쓰면 나중에 꼭 후회하더라고요. 거의 대부분, 엄청 후회합니다. ㅠㅠ

바람돌이 2022-02-14 01:1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진짜 이런 소개글을 본다면 당장 저책을 사러 서점으로 달려가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20년 전의 골드문트님은 감성 충만!! 멋져요. ^^

Falstaff 2022-02-14 07:44   좋아요 4 | URL
ㅎㅎㅎ 많은 분들이 늦은 밤에 답글을 주셨네요.
고맙습니다. 그땐 생기기도 잘 생겼었는데 말입죠. 물론 믿거나 말거나. 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