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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작가의 오후 ㅣ 열린책들 세계문학 122
페터 한트케 지음, 홍성광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6월
평점 :
다시 한트케.
한트케는 <긴 이별을 위한 짧은 편지>로 읽기 시작해 이어 <페널티킥 앞에 선 골키퍼의 불안>과 <소망 없는 불행>을 3일 간격으로 읽는다. 그리고 결심한다. 앞으로 한트케는 읽지 않겠다고. 그렇게 3년의 시간이 흐른다. 그렇게 한트케한테 질려버린 기억이 가물가물해지자 이번에는 희곡 <관객모독>을 고르는데, 젊은 시절 이 연극을 관람했던 기억이 되살아나 좋은 인상을 받는다. 다시 2년 반의 날이 흐른 올해 가을, 범우사 문고판으로 나온 <왼손잡이 여인>을 읽고, 홀딱 반해버린다. 그래서 올해가 가기 전에 한트케를 더 읽으리라 기약을 하고 구입한 책이 <어느 작가의 오후>와 <어두운 밤 나는 적막한 집을 나섰다> 두 권이다. 일단 <어느 작가의 오후>를 20분 전에 다 읽었다.
미치는 줄 알았다.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는 이해했다고 생각한다. 근데, 느므느므 재미없다. 벌써부터 <어두운 밤……>은 어떻게 읽나, 한숨이 폭폭 나온다.
단편소설이다. (짧다. 정말 다행이다.)
매력적인 문장으로 시작한다.
“작가에게는 자신이 과거에 썼고, 앞으로 쓸 수 있다고 느낀 문장 모두가 하나의 사건이 되었다. 말로 표현되지 않고 (대신) 글로 쓰이면서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모든 언어가 그로 하여금 깊이 숨을 쉬게 했고, 그를 세계와 새롭게 맺어 주었다.”
이것으로 한트케는, 작가 주위의 일을 언어가 아닌 문자로 만들었을 때, 또는 만듦으로 해서 그를 세계와 맺어주게 하는 일에 관한 이야기를 할 것이라 선언한다. I hereby declare …….
작가. 벌써 솔찮게 이름이 난 작가답게 규칙적으로 작업을 한다. 아침에 일어나 오전 내내 (IBM?)전동타자기로 글을 쓰고, 오후가 되면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고, 도시로 산책을 나가거나 자전거를 타고 교외를 거닌다. 이 작품의 시간적 공간은 12월 초, 초겨울이다. 그런데도 작가는 샤워를 하고 곧바로 옷을 갈아입고 외출을 하려고 하니, 해 떨어질 때쯤 집에 돌아오면 ① 틀림없이 감기에 걸렸거나, ② 쌍화탕 한 병 마시고 소주 한 잔에 고춧가루 풀어 마셔서 끄떡없거나, 둘 가운데 하나일 거다. 근데 아무리 봐도 전형적 약골로 보이는 한트케 사진을 감안하면 ①번일 확률이 높을 듯.
이 책을 읽기 위해 감안해야 할 것이 있다. 페터 한트케의 바이오그래피.
한트케는 오스트리아 중에서도 산골 가운데 산골지방에서 독일군 장교가 오스트리아 촌 아가씨한테 함부로 뿌린 씨의 열매로 태어난다. 완고한 집구석에선 아가씨한테 사생아를 출산할 수는 없으니 결혼을 하라고 득달을 하는데, 독일 장교새끼가 유부남이었던 것. 그리하여 역시 독일군 한트케 하사관과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결혼을 했고, 결코 남편을 좋아하지 않았던 미세스 한트케는 평생 남편과 불화를 겪게 된다. 당연히 섹스 기피증세가 점점 심해졌으며, 남편과의 불화로 인한 신경쇠약은 결국 이러저러한 처방전을 이용해 머그컵으로 한 컵 이상 분량의 수면제를 확보해 한 방에 삼켜버리는 방식으로 자살에 성공한다. 내가 어떻게 이런 걸 알겠나. <소망 없는 불행>에 나온다.
(* 참고. 현대의학으로도 수면제 많이 복용해서 죽는 방법이 있다. 친절한 폴스타프가 알려드리겠다. 많이, 될 수 있는 대로 많이 모아야 한다. 모아놓은 수면제를 먹는다. 숟가락으로 푹푹 떠먹어야 한다. 그래서 너무 많이 먹어 배가 터져 죽는 것. 그게 수면제를 이용해 자살하는 가장 성공률 높은 방법이다. 두 번째가 수면제 먹다가 몇 알이 기도로 들어가 기도폐색으로 죽는 방법인데, 대개 수면제는 크기가 작게 나와서 별로 가능성은 없다. 마지막으로 수면제 과다복용의 후유증으로 극심한 변비에 걸려 노랑병이 들어 죽는 건데 이건 너무 고통스럽고 시간도 오래 걸려서 추천하지 못하겠다.)
애정 없이 결혼하는 사람이 미세스 한트케 한 명이 아니다. 물론 평균을 내보면 이런 부류의 사람에게 신경쇠약 증세가 나타날 확률이 월등하게 높겠지만, 하여튼 신경쇠약으로 쓰여 있고, 우울증으로 읽는 증세는 유전자 정보로 페터 한트케에게도 이어져, 페터 한트케는 나보다, 당신보다 타인관계에서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한 것은 사실인 모양이다. 독후감의 초입에서 내가 읽어봤다고 말한 다섯 편의 작품 전부, 기본적으로 의사불통, 갑작스러운 단절을 배경으로 깔고 있다. 이런 분위기를 미리 짐작하고 책을 읽어야 한다.
마흔다섯 살이 된 페터 한트케 자신이라고 해도 어색하지 않은 주인공 ‘작가’는 이런 유전인자를 가지고 있어서, 이제부터 집 밖에 나가 여러 가지 사물과 여러 명의 사람을 만나서, 공원을 산책하고, 거리를 걷고, 밥을 사먹고, 신문도 사고 다시 집에 돌아와야 하건만, 작가가 이것/이들을 대하는 방식은 입자가 거친 모래알과 비슷하다. 심지어 자연을 대하는 것도 그렇다. 12월 초임에도 이이의 상상, 공상, 사색, 망상 또는 환각은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을 예전에 본 경험이 있는 것으로 순간적으로 오인하기도 하고, 시간/계절적 변별도 완전히 사라져버리기도 한다. 대인기피증은 어쩔 수 없는 수준이다. 산책 중에 만나거나 보거나, 지나치는 사람들이 지금 자신이 쓰고 있는 작품의 등장인물인 것으로 오인하기도 하고, 그리하여 이들의 난데없는 등장에 화들짝, 놀라기도 한다.
책의 앞부분에서는 이런 현상들을 그나마 제대로 따라갈 집중력이 있었지만, 하도 왔다갔다, 좌충우돌에다가 문화차이까지 합쳐져 어떤 것을 서술하고 있는지 따라가기가 버거울 때도 있었다. 다행스럽게 서양인들이, 마치 어제 독후감 쓴 투르니에의 <메테오르>에서처럼, 종교이야기를 첨가하지 않아서 망정이지, 그것까지 보탰더라면, 겨우 백 쪽을 넘기는 중단편 소설이었더라도 끝까지 읽어내지 못했을 거 같다.
그건 그렇고, 모레 <어두운 밤 나는 적막한 집을 나섰다>을 읽어야 하는데, 이거 참.